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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타닉호의 침몰 음모: 그들은 왜 ?
영국 화이트스타사(社)가 1911년에 건조한 대형 호화여객선. 그리스신화의 타이탄 신족의 이름을 따와 타아타닉으로 이름을 정했다함. 총톤수 46,328t. 길이 259.08m 넓이 28.19m. 높이 19.66m. 1911년에 제작되었다. 주기(主機)는 터빈의 삼연성기기(三連成汽機)의 조립으로 된 기관이다. 삼축선(三軸船)으로 속력은 22kn이며, 당시에는 4만t급 이상의 객선의 개척선이었다.
타이타닉 호는 1912년 4월 10일에 영국 사우샘프턴항(港)에서 뉴욕을 향해 2224명의 승객·승무원을 태우고 처녀항해로 출발했다. 영국 해협을 건너 프랑스 셰르부르에서 승객을 더 태운 후에 뉴욕으로 가기 전에 아일랜드에 잠깐 정박했다. 1912년 4월 14일 저녁 11시 40분에 뉴펀들랜드의 그랜드 뱅크스남쪽 150㎞ 난바다를 22kn(시속 약 40.7㎞)로 항해하던 중 해역에서 부류 빙산과 충돌하고 - 수면 아래에 길이 90m 가량의 틈이 생겨, 16개의 방수구획 가운데 앞부분 5구획이 침수되어 15일 오전 2시 20분에 침몰하였다. 그런데 구명정 수용인원은 모두 1178명 밖에 되지 않아- 이 사고로 승선자 2,208명 중 1,513명이 차가운 해수로 인한 저체온증으로 목숨을 잃었고-700명 정도가 목숨을 건졌다. 이 참사 결과 1913년 해상의 인명안전에 관한 국제회의가 런던에서 열려 오늘날과 같이 배의 안전시설을 충실히하는 계기가 되었다.
1912년 4월 15일에 북대서양에서 일어난 타이타닉 호의 침몰은 <타이타닉 호는 절대 침몰하지 않는 배>로 더 유명해졌다. 사고가 일어나기 12시간 전에 타이타닉 호의 항로에 큰 빙산이 있다는 소식을 다른 배가 무전을 통해 타이타닉 호에 알렸지만 - 웬일인지 아량곳하지 않았다.
1985년에 미국-프랑스 탐사팀이 비디오카메라가 달린 잠수정을 이용해 침몰 위치를 알아냈는데- 타이타닉 호는 가라앉기 전에 이미 두 동강이 상태로 뱃머리와 배의 뒷부분이 반대 방향으로 약 600미터 떨어진 해저에 있었다.
▣ 가장 훌륭한 예수회의 음모 ▣
여러분은 아직도 미 헐리우드 영화배우 레오나르도 디 카프리오가 나온 블록버스터 영화 타이타닉을 기억하는가? 잉글랜드에서 미국으로 가는 그 선상 여행동안 로맨스와 러브 스토리가 있었을까? 글쎄, 그것은 결코 실화가 아니다. 실화라해도, 아마도 단지 실화의 일부분에 불과할 것이다.
이제부터 여러분이 읽게될 이야기가 실제 이야기로서, 타이타닉이라고 불리는 유명한 크루즈 호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다. 여러분이 이제부터 읽게될 정보는 결코 음모 이론이 아니고, 오히려 월드 히스토리라는 책에 잘-기록된 사실이다. 지난 2백년 역사상 가장 커다란 비극들은 예수회에게로 그 흔적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우리는 이제 예수회가 계획을 세웠고 이행하였던 타이타닉호의 침몰에 관하여 증명할 것이며, 우리는 왜 그들이 그렇게 했는지를 보일 것이다.
1830년대 초기 이후로, 미국은 중앙 은행을 소유하고 있지 않았다. 예수회는 미국 내에 또 다른 중앙은행을 원했는데, 그 까닭은 그들이 자기들의 수많은 전쟁들과 전 세계적으로 은밀히 다른 음모들을 수행하기 위해서 돈을 끌어올 수 있는 바닥 없는 금고를 가져야 했기 때문이다.
1910년, 7명의 남자들이 연방준비은행(FRB)이라고 부르는 중앙은행을 설립하기 위해 죠지아해 연안으로부터 조금 떨어진 제킬섬에 모였다. 여기에는 록펠러 금융제국을 대표하는 두 사람 넬슨 알드리히와 프랭크 밴더립이 있었고, J.P. 모건 社를 대표하는 헨리 데이비슨과 챨스 노튼, 그리고 벤자민 스트롱이 모였으며, 유럽의 금융 황제인 로스 차일드家를 대표하는 폴 워버그가 모였다. 우리는 이미 로스 차일드家가 로마 카톨릭 교회의 부의 열쇠를 쥐고 있는 교황청 예수회를 위해 일하는 금융 대리인들임을 알고 있다.
모건家는 로칠드家와 우호적인 경쟁자였고, 사교적으로 그들과 친밀해졌다. 모건가의 런던 주재 회사는 잉글랜드 은행에 의해 1857년에 재정 파산으로부터 구원받았는데, 그 잉글랜드 은행에 로칠드가가 거대한 실권을 쥐고 있었다. 그 이후로, 모건은 로칠드 금융대리인으로서 봉사하여 왔으며, 한편 전적으로 미국인 ...... 인듯 보이고자 무슨 짓이든 다했다.
그(록펠러)의 이 분야로의 입성은 모건에 의해 환영받지 못했고, 그들은 대립하는 경쟁자가 되었다. 결국, 그들은 합작회사에 참여함으로써 서로의 경쟁을 최소화하기로 결정하였다. 결국, 그들은 연방 준비 시스템이라 불리는 일종의 국립 금융 카르텔을 창립하기로 협조하였다.
이 세 개의 금융 패밀리들 즉 로스차일드사, 모건사 그리고 록펠러사 모두는 그들 조직들 속으로 침투된 예수회 때문에 예수회 조직의 명령을 이행한다. 그들은 미국에서 헌법적 자유를 파괴하고 세상의 패권을 교황에게 안기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지 한다.
우리가 20세기를 돌아볼 때, 우리는 예수회가 얼마나 성공적으로 일을 잘 수행해왔는가를 알 수 있다. 그들은 계속해서 미국의 부를 탕진해왔고, 계속해서 미국의 위대한 헌법과 시민자유들을 공격한다. 날마다, 바티칸시에 있는 교황의 권력은 증대되어 간다. 어느 날 그들은 다시 전권을 수중에 넣을 것이다.
타이타닉호의 건조는 1909년에 북아일랜드의 수도 벨파스트의 조선소에서 시작되었다. 벨파스트는 프로테스탄트들의 안식처였고, 예수회의 증오의 대상이었다. 제 1차 세계 대전이 그 몇 년 후 시작되었다. 타이타닉호는 국제적인 선박회사인 화이트 스타 라인사가 소유한 선박 함대중 하나였다.
모건사가 금융부문에만 강한 재정적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금융 권력도구로서 국유 철도에 대한 통제권을 사용하여, 그는 국제적 선박 트러스트를 창조하였는데, 영국의 두 회사중 하나인 화이트 스타 라인에 독일의 가장 커다란 두 라인이 추가되어 거기에 포함되어 있었다.
연방준비시스템에 호의를 가지고 있지 않음을 명확하게 표명했던 다수의 극히 부유하고 실력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J. P. 모건은 예수회에 의해 타이타닉호를 건조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 물에 빠질 수 없는 배는 예수회의 연방 준비 은행 시스템 마련 안을 반대하는 자들을 죽음으로 몰아갈 죽음의 배로 쓰임 받을 것이었다.
이 부유하고 영향력있는 사람들은 연방준비은행의 설립을 봉쇄할 수 있을 것이었고, 그들의 권력과 부는 그들의 손에서 탈취되어야만 했다. 그들은 너무나 상식을 벗어난 방법에 의해 파멸되어야만 했는데, 그래서 누구도 그들이 살해당했다는 의문을 품어서는 안 되었고, 또한 누구도 예수회를 의심해서도 안 되었다. 타이타닉은 그들의 파괴의 도구였다.
세인들의 의심권에서 교황청과 예수회를 벗어나게 하기 위해서, 신세계로 이민가는 수많은 아일랜드인, 프랑스인 그리고 이태리계 로마 카톨릭교도들이 배에 승선하였다. 그들은 소모품이 될 운명이었다. 미국으로 이민가기를 원했던 벨파스트 출신의 프로테스탄트들 또한 탑승하도록 초대되었다. 심지어 신실하고 선량한 로마 카톨릭 사람들도 예수회에 의해 배반당했다. 타이타닉호에 승선했던 아일랜드인들, 프랑스인들과 이탈리아계 로마 카톨릭교도들은 대서양의 차가운 물 속에서 죽어갔다.
예수회가 제거하고자 했던 모든 부유하고 영향력있는 사람들이 선상 여행에 초대되었다. 가장 부유하고 가장 영향력있는 사람들중 세사람은 벤자민 구겐하임, 이사도르 스트라우스 메이시 백화점 회장, 그리고 아마도 당시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이었을 존 제이콥 아스토르 였다.
그들의 총 재산은, 그 당시에, 당시의 달러화 가치를 사용하면, 5억달러 이상이었다. 오늘날 화폐의 가치는 거의 110억불에 달한다. 이 부유(浮游)하는 궁전 타이타닉호에 탑승하도록 집요하게 이 세 사람은 설득당했다. 그들이 자기들의 부와 영향력을 행사하여 연방준비은행을 반대할 뿐만 아니라 또한 이미 계획되어 있는 여러 전쟁들을 방해할 것임을 예수회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반드시 파멸되어야 했다.
타이타닉호에 탑승한 부유한 유대인들. 이 사람들은 연방 준비은행의 설립에 반대했다. 이 사람들은 대서양 한가운데서 죽어갔다. 타이타닉이 침몰한 이후에 예수회원들에 의해 제거되었다. 연방준비은행은 예수회에 의해 오랫동안 계획된 대로 잘 굴러가기 시작했다.
존 제이콥 아스토르는 타이타닉에 탑승한 사람들 중 가장 부유한 사람이었다. 존 제이콥 아스토르는 뉴욕에 소재한 유명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의 원 소유주였다. 에드워드 스미스는 타이타닉호의 선장이었다. 그는 26년 동안 북대서양 물살을 가르며 여행다녔고, 세계에서 가장 숙련된 북대서양 항로의 전문가였다. 그는 수년동안, 예수회원 J.P. 모건을 위해 일했다.
에드워드 스미스는 세상에서 예수회를 돕는 세속 동조자중 한 명이었다. 이것은 그가 사제가 아니라 그가 짧은 옷을 걸친 예수회라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회원들이 반드시 사제들일 필요는 없다. 결코 사제가 아닌 자들도 자기들의 직업을 이용해서 그 조직을 위해 일할 수 있다. 누구든 예수회원이 될 수 있고, 그들의 신원은 결코 알려지지 않는다. 에드워드 스미스는 바다의 선장으로서 자신의 직업에 충실히 예수회 조직을 위해 봉사했다. 사제가 아닌 일반인 예수회 동조자로서 타이타닉호를 고의로 가라앉히라는 명령을 예수회로부터 받았다.
타이타닉호에 관한 수많은 흥미있는 관점들이 1986년 내셔널 지오그래픽사에 의해 만들어진 비디오테이프에서 다루어지고 있다. 비디오테이프의 제목은 타이타닉호의 비밀이다. 타이타닉호가 1912년 4월 10일 서든 잉글랜드를 출발할 때, 에드워드 스미스의 예수회 지배자 프랜시스 브라우니 신부는 타이타닉호 갑판에 있었다. 이 사람은 모든 아일랜드를 통틀어 가장 막강한 예수회원이었고, 로마에 있는 예수회 수장에게 즉시 응답하였다. 비디오테이프는 선언한다:
휴가 중이던 사제, 프랜시스 브라우니 신부가 그의 동료 승객들이 찍힌 가슴 아픈 스냅사진들을 찍었다. 그들 중 대부분은 영원으로 가는 여행자들이었다. 다음날 타이타닉호는 아일랜드 퀸스타운 해변에 자신의 마지막 정박을 하였다. 여기서 거룻배들은 마지막 승객들을 실어 날랐다; 대부분 아일랜드 이민자들이 미국에 있는 새로운 집을 향해 출발했다. 그리고 여기서, 그 운이 좋은 브라우니 신부는 하선하였다... 브라우니 신부는 멸망의 가장자리에서 포즈를 취한 채 타이타닉의 갑판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스미스 선장을 찍었다.
이것이 예수회의 배반의 정점이다. 그 관구장(프랜시스 브라우니 신부)은 타이타닉호 선상에서 그 희생자들의 사진을 찍었고, 예수회원으로서 자신의 서약과 관련하여 그 선장에게 가장 확실하게 브리핑하고, 다음날 아침 그에게 작별을 고했다.
브라우니 신부는 마지막 시간에 북대서양 한가운데서 에드워드 스미스가 정확하게 해내야 할 일에 관하여 그와 상의하였다. 예수회 수장은 프랜시스 브라우니(아일랜드 예수회의 관구장)에게 벌어져야할 일을 명령했다; 브라우니는 그후 스미스에게 명령했고, 나머지는 역사가 되었다. 에드워드 스미스는 다음을 믿었다,
즉 예수회 수장(교황)이 예수회 조직의 신이라는 것과, 예수회 수장의 전기적 접촉이 없이는 그들(예수회원들)의 죽은 시신들을 살아서 행동하게 소생시킬 수 없다. 그(예수회 수장)가 말할 때까지, 그들(예수회원)은 마치 뱀처럼 자기들의 겨울 무덤 속에 엎드린 채 생기가 없고 활기가 없다; 그러나 그(예수회 수장)가 명령의 말을 내는 그 순간, 각 멤버들은 즉시 벌떡 일어서서, 그(예수회원)가 어떤 일에 매여있다 할지라도 그것을 미완으로 내버려둔채, 공격해야할 대상이 누구든지 공격할 준비를 해야하고, 가격할 대상이 어디에 있든지 타격을 가해야 한다.
에드워드 스미스는 타이타닉호를 가라앉히라는 명령을 받았고 그것이 바로 그가 해야할 일이었다. 자기의 하나님(예수회 수장)의 명령에 의하면, 순진한 사람들을 살해하고, 강탈하고, 모든 추잡한 짓을 일삼는 것이 합법적인데, 왜냐하면 그(교황)가 생명과 사망과 모든 것들의 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의 지령을 이행하는 것이 그들의 의무이다.
예수회처럼, 어떤 연합 조직이 세상 사람들과 시간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3백년동안 불변한 채 본래 그대로 유지되어온 것은 역사상 유래가 없는 일이며, 그 조직(예수회)은 인류의 운명들에 무한한 영향력을 행사하여왔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시킨다는 것은 예수회가 가장 좋아하는 격언이다; 그리고 예수회 수장의 유일한 의도대로, 우리가 보아온 대로, 그 조직(예수회)은 그 분부대로 그 어떠한 범죄라도 저지를 준비가 되어 있다.
예수회 조직의 일원이 되려는 각 사람이 선서해야하는 서약을 기억하자:
본인은 마치 어떤 노인의 손에 들린 지팡이처럼 그것을 들고있는 자의 의지에 따라서 거역하지 않고 이리저리 굴려지는 한 작은 십자가처럼, 의지나 지능이 없는 한 죽은 몸으로 내 자신을 간주해야만 한다. 노인은 지팡이를 자기가 필요한대로 사용하고, 지팡이는 최선을 다하여 노인에게 맞춘다.
어떤 사람이 예수회 서약을 할 때, 그는 자신이 죽는 날까지 자신의 주인에게 예속된다. 에드워드 스미스는 의지나 지적능력이 없는 사람이 되었다. 그는 그 조직(예수회)이 그에게 원하는 대로 어떤 범죄든지 행할 것이었다. 에드워드 스미스는 순교를 준비해야 했다. 그 날 밤 타이타닉호의 갑판에서 에드워드 스미스는 자신의 의무를 알고 있었다. 그는 서약에 매여있었다.
그 배는 예수회의 원수들을 위해 건조되었다. 바다에서 3일간 항해한 후, 갑판용 안경을 쓰고, 에드워드 스미스는 달도 없는 어둔 밤에 그 근방 거의 80 스퀘어 마일에 달하는 거대한 빙산지대를 뚫고 타이타닉을 22노트 전속력으로 전진시켰다. 에드워드 스미스 선장은 너무나 빠른 항해속도로 인해서 좀 더 조심하라고 경고하는 최소한 8통의 전보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했다.
에드워드 스미스가 어떤 경고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었는가? 결코 아니다. 그는 26년 동안이나 그 바닷길을 여행해왔다. 그는 그 지역에 빙산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여덟통의 경고문이 예수회 서약 아래 있으면서 타이타닉을 파괴시키라는 명령을 받은 이 사람을 결코 멈추게 하지 못했다.
베테랑 에드워드 스미스 선장에게 타이타닉호의 비극이 일어나던 밤에 속도를 늦추라고 반복해서 경고하는 것은 넌센스에 불과했다. 스미스가 결코 그 경고들을 경청하거나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사실은 비상식적인 것이다. 그는 바티칸에 있는 자신의 신으로부터 명령을 받았고, 어떤 것도 그의 항로를 돌이킬 수 없을 것이었다. 백과사전은 바로 스미스의 마지막 시간들의 그 비극적 모습들을 그리고 있다.
구명보트들에 사람들을 태워서 내려보내라는 명령을 내릴 시간이 되자, 스미스는 망설였고, 그의 조수들 중 하나가 명령을 내려달라고 말하고자 그에게 다가가야 했다. 스미스 선장의 전설적 리더십 기술이 그를 떠난 것처럼 보였다; 그는 이상하게 우유부단했고, 평상시 같지 않게 그 비극의 밤에 조심스러웠다. 26년 간의 경험이 있는 전설적 선장을 설명하기에 이러한 단어들이 적합한가? 아니면, 선장으로서 자신의 의무를 이행해야 하는가 아니면 그에게 그 배를 빠트리라고 명령을 내린 자신의 주인에게 복종할 것인가를 두고 자기 속에서 싸우고 있는 사람을 설명하는 단어들인가?
존 제이콥 아스토르의 아내는 구명보트로 올랐고 구조되었으나, 존 제이콥 아스토르는 북대서양의 물 속에서 죽어갔다. 타이타닉호에는 충분한 구명보트가 없었으나, 보트들 중 대부분은 오직 여자들과 아이들만으로 반쯤만 채워져서 내려졌다. 근처의 화물선들이 구조요청에 응답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조난을 알리는 조명탄으로 하얀 색을 쏘았다. 붉은 색을 쏘아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지나가는 화물선들에게 있어서 하얀 조명탄은 모든 사람들이 파티를 즐기고 있다는 신호였다.
20세기 가장 커다란 비극중 하나인, 타이타닉호의 침몰은 예수회의 탓이다. 결코 가라앉을 수 없는 배, 떠다니는 궁전 타이타닉호는 연방준비은행제도를 반대했던 그 부유한 자들을 위한 무덤으로서 창조되었다. 1912년, 4월까지, 연방준비제도를 반대하는 모든 반대가 제거되었다. 1913년 12월에, 연방준비제도 시스템이 미국에서 실시되었다. 8개월 후, 예수회는 제 1차 대전을 시작하기 위해 연방준비은행을 통해서 충분한 재원을 마련하였다.
주모자들
브라우니 신부는 아일랜드 지역의 예수회 관구장이었고 베른츠 신부는 예수회 총수장이었다. 이 사람들이 고의로 타이타닉호를 침몰시킨 주모자들이었다. 이는 러시아 공산주의 혁명과 제 2차 30년 전쟁(1914-1945) 그리고 순수한 미국인들의 돈과 재원들을 낭비하며 치러지게될 다른 모든 전쟁들의 재정을 지원하기 위해 자기들의 오랜 동안 계획의 일환으로 연방준비은행을 창설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넬슨 알드리히, 프랭크 밴더립, 록펠러, 헨리 데이비슨, 챨스 노튼, J.P. 모건, 폴 워버그는 미국인들에게 있어서 배반자들이었고, 미국 국기와 그 헌법의 배반자들이었다. 이 사람들은 미국에 연합하는 대신에 로마에 자기들의 시민정신을 팔아버렸다(예수회-바티칸). 록펠러와 로스차일드가는 13-사탄적 일루미나티 혈맹에 속해있다.
일루미나티 조직의 출범
사탄적 비밀 형제단/조직인 일루미나이티는 아담 바이스하우프트라는 한 예수회원에 의해 1776년 5월 1일 독일, 바바리아에 있는 잉골슈타트 예수회 대학에서 세워졌다. 브라우니 신부가 찍은 사진 모음집에는 사우스햄튼으로부터 아일랜드까지 타이타닉호를 타고 여행하는 동안 찍힌 유일한 타이타닉호 사진들이 실려있다.
1911년부터 1916년까지, 브라우니 신부는 더블린의 밀타운 파크에서 신학을 공부하였다. 그의 삼촌 로버트(클로이네의 주교)가 그에게 특별한 선물을 보낸 것이 바로 이 기간 동안이었다: 사우스 햄튼으로부터 체어부르그 그리고 이어서 아일랜드, 코코크, 퀸스타운(콥)까지 항해하는 타이타닉 처녀항해의 제1 직항구간 승선권이었다.
배에 승선한 동안, 한 미국인 백만장자가 뉴욕까지 여행할 수 있도록 브라우니 신부의 뱃삯을 내겠다고 제안했다. 이 제안에 감사해하면서, 프랭크 예수회 수장은 퀸스타운에 전보를 쳐서 간결하게 말했다. 그 배에서 내려라, 관구장. (옳다! 프랜시스 A. 브라우니 신부는 아일랜드 예수회의 관구장이었고, 그 배에서 내렸는데, 왜냐하면 계획된 대로, 예수회와 그 자신이 타이타닉을 정교하게 가라앉힐 것이었기 때문이다.)
비극이 일어난 후, 프랭크 브라우니의 사진들이 전 세계 신문들의 일면에 등장했다. 그는 스미스 선장과 다른 사람이 마르코니 룸 안에서 찍었던 그 마지막 사진을 찍었다. 그렇다, 1912년 4월 15일 - 예수회는 그 유명한 배 타이타닉호를 침몰시켰고, 존 제이콥 아스토르, 벤자민 구겐하임과 이사도르 스트라우스(연방준비은행 창설에 반대하였던 사람들)를 죽였다. 정확하게, 타이타닉이 대서양 한 가운데 가라앉은 지 1년 후, 연방준비은행이 설립되었고 러시아 공산주의 혁명과 제 2차 30년 전쟁을 재정지원할 준비가 되었다.
토마스 샤우프에 의하면
존경하는 미국인들이여 여러분의 요청에 따라서, 나는 연방준비은행(FED)에 관해 여러분이 품었던 질문들을 명백하게 밝히고자 노력할 것이다. 나는 연방준비은행을 연구하는데 충분한 시간을 할애하였으며 다음은 거기서 도출된 충격적인 결론들이다:
연방준비은행은 일종의 사유 회사이다. 누가 연방준비중앙 은행들의 실소유주인가? 기밀에 부쳐졌던 비밀, 12개 중앙 은행들의 소유권자가 드러났다:
런던의 로스차일드 은행
함부르그의 워버그 은행
베르린의 로칠드 은행
뉴욕의 레만 형제들
파리의 라자르드 형제들
뉴욕의 쿤 로엡 은행
이태리의 아스라엘 모세 세이프 은행들(시온주의 유대인)
뉴욕의 골드만-삭스
암스테르담의 워버그 은행
뉴욕의 체이스 맨하튼 은행
제발, 월드 히스토리 대로 명심하라. 로스차일드가는 금융가이자 검은 교황청의 예수회 수장 수중에 있는 바티칸 국고(富)의 주 관리인이다. 정직하고 믿을만한 세계의 역사가들은 이미 오래 전에 그것을 알고 있었다. 연방준비社에 대한 미 하원의원 루이스 맥파덴의 연설(연설 후 독에 의해 죽음)을 들어보자 !
존경하는 의장님, 우리는 세상이 이제껏 알고있는 가장 부패한 조직들 중 하나를 이 나라 안에 두고 있습니다. 저는 연방준비이사회와 연방준비은행들(이하 Fed로 호칭)을 말합니다. Fed(연방준비은행)는 이 나라 미국 정부와 미국 국민들을 속이고 국가의 빚을 청산하기에 충분한 돈을 사취했습니다. Fed의 부정과 불법행위들은 국가 부채의 몇 배를 지불하기에 충분한 돈을 낭비하여 왔습니다.
이 사악한 제도는 이 나라 미국의 국민들을 가난하게 만들어왔고, 파괴시켜왔으며, 미국 자체를 파산시켜왔고, 실질적으로 우리 정부를 파산시켜왔습니다. 그것은 현행법의 결함을 이용하여, 그리고 Fed의 그 법의 실정(失政)을 통하여, 그리고 그것을 통제하는 부유한 자본가들의 부패한 관행들을 통해서 이 일들을 행해왔습니다.
Fed이 미국 정부 조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의 사익과 그들의 외국인 고객들, 즉, 국내외 투기꾼들과 사기꾼들 그리고 부유하고 탐욕스러운 금융 대부업자의 이익을 위해서 이 나라 미국 국민들을 포획하는 사적 독점가들입니다. 이 금융 해적들의 은밀한 선원들 중에는 누군가의 주머니에서 일 달러를 꺼내기 위해서 한 사람의 목을 벨 수 있는 자들도 있습니다; 우리의 입법자들을 통제하고자 표를 사기 위해서 이 나라 안으로 돈을 송금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개중에는 우리를 속여 그들의 과거 악행들을 은폐시키고, 다시 그들의 거대한 범죄의 열차를 가동시키는 것을 허용해줄 새 특권들을 허락해주도록 우리를 속이고자 국제적 선동을 지속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이러한 12개 사적 대부 독점가들은 유럽에서 미국으로 온 금융가들에 의해 기만적이고 불충하게 이 나라 미국 내로 몰래 반입되었고, 우리가 그들에게 보인 친절에 우리 미국 조직들을 몰래 무너뜨리는 것으로 보답했습니다.
그 금융가들은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일본을 재정지원하는데 미국의 돈을 끌어갔습니다. 그들은 그 전쟁을 돕기 위해서 우리 미국의 돈으로 러시아에 테러왕국을 창설하였습니다. 그들은 독일과 러시아 사이에 분리된 평화를 선동하였고, 따라서 세계 전쟁에서 동맹국들 사이를 이간시켰습니다.
그들은 뉴욕으로부터 러시아까지 트로츠키의 여행을 재정지원하여서, 그가 러시아 제국의 파괴를 도울 수 있게 했습니다. 그들은 러시아 혁명을 도발하고 선동하였고, 대규모의 미국 달러를 스웨덴에 있는 그들의 은행지점들중 하나에 있는 토로츠키의 계좌에 맡겼습니다. 그리하여 트로츠키를 통해서 러시아 가정들은 철저하게 파괴될 것이었고 러시아 어린이들은 그들의 부모들로부터 멀리 멀리 내던져졌습니다. 그들이 미국 가정들을 파괴하고 미국 어린이들을 해산시키기 시작하였습니다.
“존경하는 의장님, 이 나라 안에서 금융과 통화 사태와 관련한 문제에 있어서는 결코 당파가 없습니다, 따라서 저는 누구와도 대화하지 않습니다. 1912년에 국립 통화 연합은, 고 넬슨 W. 앨드리히 상원의원이 의장직을 맡고 있을 때, 한 보고서를 만들었고 국립 준비 연합 법안이라 불리는 사악한 법안을 제시하였습니다.
이 법안은 보통 알드리히 법안이라고 불립니다. 알드리히 상원의원은 결코 알드리히 법안을 작성하지 않았습니다. 만일 그가 공범자가 아니었다면, 거의 20년 동안 이 나라에 중앙 은행을 세우려고 음모를 세워왔던 유럽 금융가들과 1912년에 그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어마어마한 양의 돈을 써왔고 계속해서 쓰고 있는 자들의 도구였습니다.
우리는 중앙은행을 위한 알드리히의 계획에 반대했습니다. 그때 민주당을 이끌던 사람들은 국민들에게 만일 그들이 권력을 되찾게되면, 그들이 정부의 주권을 쥐고있는 동안에는, 결코 중앙은행을 설립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반면에 13개월 후 그 약속은 파기되었고, 윌슨 정부는 콜로넬 하우스의 배후에 있던 그 사악한 월 스트리트 금융가들의 후견 아래 우리 자유 국가 미국에 그 꼭대기로부터 내려다보며 요람에서 무덤까지 우리를 통제하기 위해 “국왕의 은행”이라는 벌레 먹은 봉건적 조직을 세웠습니다.
Fed(연준)는 우리의 오래되고 독창적인 사업 방식들을 파괴시켰습니다. 그것은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우리의 1-名 상업어음을 냉대하였고, 낡아빠진 2-名 어음을 대두시켰는데, 그것이 바로 미국에 현재 드리워진 저주로서, 그것이 통용되는 나라마다 난파되었습니다; 그것은 이 나라 미국 위에 전제정치를 단단히 뿌리내리게 하였는데, 이 나라 헌법의 구성자들은 바로 이 전제정치로부터 우리를 건지고자 했었던 것입니다.
공산주의와 예수회
상기 정보는 필리핀에 있는 CPP-NPA/ NDF의 근본을 파괴시킬 것이다. (한번 그들이 이 어두운 비밀을 알게되면, 그들은 충격으로 자기들의 입을 막을 것이다.) 실제로, 월드 히스토리대로, 예수회는 공산주의에 관한 강령들을 완성시켰던 비밀 실체이다. 공산주의는 파라과이의 예수회 리덕션으로 그 기원을 거슬러 올라간다.
예수회 조직은 1848년 대영박물관 내부에서 공산주의 강령들에 관하여 칼 막스를 훈련시켰다. 예수회는 거의 30년간 칼 막스를 훈련시켰다. 레닌은 예수회에 의해서 스위스 제네바에서 훈련을 받았는데, 바티칸의 비밀 기차를 통해서 레닌을 러시아로 이동시킬 준비를 한 것은 -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 기간과 히틀러의 나치 독일 기간 동안 바티칸주재 디에고 베르겐 독일 대사였다.
조셉 스탈린은 러시아 그루지아의 티플리스에 있는 종교회 신학교 내부에서 예수회 조직에 의해 훈련을 받았다. 아가기아니안 추기경이 스탈린과 함께 했다. 예수회가 세운 연방준비은행이 러시아의 공산주의 혁명을 재정 지원하였다는 미국 하원에서 발표된 맥파덴 하원의원의 연설과 일치하는 부분이다. 맥파덴 하원의원의 폭로로 인해서 그의 생명을 노리는 수많은 시도들이 있었다.
미하원 내의 그의 동료들로부터 그리고 몇몇 역사가들로부터 맥파덴 하원의원이 독으로 죽었다는 진술이 나왔는데, 예수회의 독배 아닌가? Fed(연준)의 설립은 예수회 조직의 걸작이었다. 타이타닉의 침몰은 예수회 조직의 최고의 음모이다. 주 잘 - 감추어진-암흑의 비밀들, 세계 역사적 사건들이란 주제에 이르면, 몇몇 정직하고 믿을만한 역사가들은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전 세계의 수백만의 사람들, 심지어 가장-고등한 지식인들(대통령들, 수상들, 상원의원들, 하원의원들, 장관들, 사업가들, TV와 라디오 뉴스 지도자들, 방송 관계자들, 연예오락 종사자들, 엘리트들과 유복한 가문들, 대학 교수들, 선생님들, 군인과 정치 관료들, 전문가들 등등)은 이러한 사실들에 무지하다. 세계사에 대한 심오한 지식없는 사람들이 세계사라는 도화지 상의 모든 점들을 잇기는 어려울 것이다.
심지어 바로 이 시간까지, 수백만의 순진한 미국인들이 배반당하여 희생자들이 되고 있다. 그들의 연방준비은행이 사적으로 소유되고, 그 소유자들의 주머니에서 왔다갔다하는 식으로 예수회의 선봉적인 대리인들에 의해 비밀리에 설립되었다는 것에 대한 최소한의 지식도 없이 말이다.
1540년 예수회 조직이 태동한 이래로, 바로 이 시간까지, 로마 카톨릭의 예수회 조직은 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실체이다. 세계사에 대한 심오한 지식은 예수회의 가공할만한 권력을 추적하는 최상의 방법중 하나이다. 심지어 소위 세상에서 가장 막강한 국가 미국에 예수회는 성공적으로 연방준비은행을 설립시켰다.
그렇다면 제 3세계는 얼마나 더 하겠는가? 또한, 월드 히스토리에 따르면, 아메리카 은행과 록히드 마틴사(항공-우주-방위 업자)도 예수회에 의해 소유된다. 어떠한 정치적 사건이나 환경도 바티칸의 그 내부 참여에 대한 지식없이는 진리를 알 수 없다. 그리고 어떤 중요한 세상 상황도 존재하지 않는다 - 그 안에 바티칸이 중요한 외부나 내부적 역할을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아브로 맨하탄, 영국 역사가, 1960 The Vatican And World Politics.
2011년 9월 8일 목: <광야의 소리>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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