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울병(학술적으로는 양극성 장애 bipolar disorder)는 이름에서 느낄 수 있듯이 두 가지 얼굴을 가진 질병이다. 조증(mania)과 우울증(depression)이라는 양 극단이 하나의 병에 공존할 수 있지만, 환자나 가족들은 대개 조증 상태만 병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어 문제이다. 조증 상태에서의 증상이 워낙 현저하고 스스로 절제가 안 될 뿐만 아니라, 공격적이거나 충동적이고 낭비적인 면이 강하기 때문에 병원을 찾는 경우는 대개 조증인 상태이다. 그러나 조증 상태가 전체 조울병에서 차지하는 시기는 그리 길지 않으며 조증이 아닌 상태도 매우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우리가 조증에만 신경을 써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여기서는 조울병의 여러 유형을 살펴보고 그 의미를 살펴보겠다. 그전에 이해를 돕기 위해 몇 가지 용어를 잠깐 짚고 넘어 가겠다. 조울병을 가진 사람은 크게 보아 4가지 상태 중에 하나에 있다. 그런 상태가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첫째는 기분이 고양되고 들뜨며 행동이 많아지는 조증 상태이다. 둘째는 우울증 상태이다. 셋째는 기분이 어느 쪽으로 과다하지 않은 일반적인 정상(euthymic) 상태이다. 넷째는 조증과 우울증이 함께 나타나는 혼합형(mixed) 상태이다.
양극성 장애의 유형
1. 유쾌성 조증 전형적인 조증 상태이다. 기분이 들뜨고 유쾌하며 과대한 생각을 갖고 있다. 이러한 환자들은 보는 사람도 때로 웃음 짓게 만든다. 물론 상태가 나빠서 심각한 마찰이 빚어지고 입원도 하게 되지만 어쨌든 본인의 기분만은 좋은 상태이다. 조울병의 진단에는 조증 상태가 꼭 필요하며 우울증만 있는 경우는 조울병이 아니다. 조울병은 많은 경우에 우울증으로 시작하기 때문에 초기에는 단순한 우울증으로 진단받기 쉽다. 처음부터 조증으로 시작하여 누구나 봐도 조울병이구나 하는 쉬운 진단은 드물다는 뜻이다. 그러다 보니 의사에게 진료를 받는 시기가 늦어지게 된다는 문제가 있다.
2. 양극성 우울증
증상 자체는 우울증과 다를 것이 없으며 조울병을 가진 사람이 우울해진 상태이다. 그러나 양극성 우울증은 여러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첫째, 조증 상태에 비해 관심이 적다. 환자도 쉽게 표현하지 않을 뿐 아니라 보호자들도 괜찮겠지 라고 여기며 의사들도 지나치기 쉽다. 둘째, 환자가 느끼는 괴로움의 강도가 상대적으로 더 크다. 기분이 좋고 무엇이든지 해낼 수 있는 자신감에 차 있던 조증 상태에 비하면 우울한 상태는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괴롭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셋째, 조증을 겪는 기간보다 훨씬 많은 나날(3배 정도)을 우울 상태로 보내고 있다. 넷째, 이 시기에 자살이 많다. 정신과 질병 중에서도 조울병은 자살이 쉽게 나타나는 질병인데 대개 조증 상태에서 보다는 우울한 상태 또는 혼합형 상태에서 자살을 한다. 그런 만큼 깊은 관심과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다섯째, 하지만 치료가 까다롭다. 양극성 우울증 상태에서 우울증 치료제를 사용하면 조증이 유발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그만큼 약물투여에 제한을 받게 되며 신중해야만 한다. 이러한 문제들로 인해 요즘은 우울 상태에 관한 연구들이 활발하게 이루지고 있으며 새로운 치료 방침이 개발되고 있다.
3. 정상적 상태 조울병은 재발이 잦은 질병이다. 그렇기 때문에 재발을 막기 위해 대부분의 환자는 장기간 약을 복용해야만 한다. 치료가 잘되어 정상적 상태에 있더라도 약을 꾸준히 복용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많은 환자들이 정상적 상태로 회복되면 약 복용을 게을리 하며, 그러다가 괜찮겠지 하는 마음에 복용을 중단한다. 다음의 결과는? 재발이다. 물론 소수의 예외는 있을 수 있지만 대다수는 그러하다. 그러므로 정상적 상태에서도 약 복용은 꾸준히 해야 하며 치료의 종결은 의사와 상의하여야만 한다.
4. 혼합형 상태 조증의 증상과 우울증의 증상이 동일한 시기에 함께 있는 경우이다. 남자보다는 여자에 더 흔하다. 혼합형 상태는 유쾌하다기 보다는 불쾌감이 강하며, 불안감, 흥분성 등이 현저하고 쉽게 짜증을 낸다. 자살의 위험성이 높고 일반적인 약물치료에 반응도 나쁘며 오래 가기 때문에 주의를 요한다.
5. 경조증 조증과 증상은 유사하지만 그 강도가 약한 편이기 때문에 환자는 자신의 기능을 유지한다. 때로는 매우 활동적이라서 사회적인 성취가 뛰어나다. 따라서 진단이 되지 않고 병으로 인식되지 않는 경우가 흔하다. 경조증 상태에서 벗어나 우울 상태가 되면 에너지가 급격히 떨어지고 활동성이 감소한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의 기분이 자주 변한다던지, 에너지와 활력이 넘치다가도 어느 때는 만사를 귀찮아 할 정도로 급변한다면 경조증(제2형 양극성 장애)을 의심해봐야 한다. 일반적으로 조증과 우울증이 나타나는 제1형 양극성 장애보다 흔하다.
조울병과 자살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자살은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고 사망의 주요한 원인으로 조사되고 있다. 조울병에서의 자살 시도는 전체 환자의 25-50% 정도에 이르며 자살의 성공은 15% 정도라고 한다. 이러한 수치는 자살의 위험성이 크다고 알려진 우울증보다 높다고 할 수 있다. 대개 자살은 조증 상태보다는 우울한 상태와 혼합형 상태에서 흔히 벌어진다. 즉, 기분이 들떠있을 때 보다는 기분이 저하되었을 때 흔히 벌어진다고 본다. 젊은 남자, 자살의 가족력, 자살시도의 경험, 알코올 남용, 최근에 퇴원한 경우 등에서 특히 위험하다. 적절하고 신속한 약물치료와 환자 및 보호자에 대한 교육을 통해서 미리 예방할 수 있다.
(출처:중앙일보 헬스케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