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COFFEE 10월호 기사에서 --
아름다운 그림과 실내악 연주가 있는
갤러리 카페 ‘필하모니’
분당 서현동에 복합문화공간을 표방하는 카페가 최근에 문을 열었다.
커피 하우스이면서 실내악 연주회가 열리고 그림도 전시하고 있는 카페 '필하모니’.
미술과 음악과 커피가 공존하는 그 공간을 만들기 위해 좋은 커피를 배우고, 젊은 화가들과 음악학도들에게 자리를 만들어 주는, 분당사람들만의 아름다운 문화공간을 찾아가 보자
지난 9월 중순, 서현동 시범단지 삼성아파트 길 건너 소위 서현동 먹자촌이라 불리는 육교옆 대로변의 한 건물 지하로부터 콘트라베이스의 낮고도 힘찬 소리가 새어나왔다. 돌아보니 Coffee & Gallery '필하모니'라는 간판이 보인다. 나무 계단을 밟고 내려가니 가장 낮은 음역을 내는 콘트라베이스처럼 들어가는 입구는 다소 좁고 길어도 실내악을 하기에 적당한 공간이 나타났다.
나무바닥의 복도에는 프랑스 작가의 동판화가 걸려있고 홀에는 옵아트계열의 세리그라피 작품들이 걸려있다. 유리창으로 내다보이는 썬큰 가든에는 대나무 위로 하늘이 보이고 마루바닥 위로 스며드는 클래식 선율 위로 햇살이 뚝뚝 떨어진다.
신동헌 화백과 음악회
홀 한가운데에는 제2회 갤러리 콘서트의 진행을 맡은 신동헌 화백이 서 있었다. 신동헌(78세)화백은 1960년 '신동헌 프로덕션'을 설립, 여러 편에 이르는 만화영화를 제작하였고 1967년 한국최초의 장편만화영화 「홍길동」을 제작하여 대종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음악가를 알면 클래식이 들린다」,「음악사 이야기」등의 저서를 낸 만화, 미술, 음악 등 다방면에 걸쳐 활동하는 이른바 예술계의 어른이시다.
KBS-TV 토요객석에서도 음악해설을 진행한 바 있는 신동헌씨는 '분당은 아름다운 음악이 자리잡기 좋은 High Class의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그간 음악을 위한 문화 공간이 적었다.'며 ‘필하모니’의 갤러리 콘서트를 반겼다.
하나 둘 채워지던 자리가 어느새 가득 들어찼고 신동헌 화백의 소개로 등장한 젊은 음악가들이 몸집보다 큰 콘트라베이스를 들고 무대에 섰다.
ꡒ삶의 모습까지 리모델링하세요ꡓ
이들은 한양대 음대 졸업을 앞둔 재학생들로 콘트라베이스만으로 4중주를 연주하였다.
필하모니에서의 연주에 앞서 이미 9월 초 세종문화회관에서도 연주회를 갖었는데 아주 좋은 평가를 받은바 있다
1, 2부로 나누어진 콘서트의 시작은 Tony Osborne의 곡 The Pink Elephant.
젊은 음악도들의 농익지는 않았지만 패기 넘치는 연주였다. 뒤이어 Mozart와 Bizet의 곡들이 이어졌다. 연주회를 다 마치고 신동헌 화백은 음악과 관련한 퀴즈를 내어 맞춘 사람에게 본인의 저서를 사인과 곁들여 선물로 주었다.
그후 연주자들과 참석자들은 중앙의 테이블을 중심으로 앉아 커피를 들면서 음악과 관련한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필하모니’를 운영하는 백정현씨는 '이미 수준급에 오른 음악가들을 초청하여 음악회를 열기도 하겠지만, 음악을 전공하고 있는 학생들이나 취미로 연주를 하는 아마추어 등, 젊은 음악가들도 무대에 서 보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이 무대를 개방하고 싶습니다.'라며 클래식을 위주로 하되 재즈 등의 다양한 연주회도 가질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매주 수요일 오후 7시 30분에 열리고 있는 실내악 연주회의 다음 연주자는 분당에 있는 계원예고 2학년 학생들의 플릇과 첼로 Duo Concert가 열릴 예정이고 이어서 로스 아미고스 기타합주단의 연주 스케쥴이 잡혀 있다
서현고를 졸업하고 대학에서 작곡을 전공한 백정현씨는 분당에 12년째 거주하면서 분당에 많은 문화예술인들이 살고 있지만 그들이 모여 문화와 예술을 논하고 교류할 공간은 부족하다고 판단, 필하모니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음악회와 함께 갤러리에 전시되는 그림도 매달 분당 주위에 거주하는 화가 1명을 선정하여 전시할 생각인데 9월의 프랑스 판화전이 끝나면 10월에는 수지에 거주하고 있는 서양화가 ‘이둘’화백의 전시를 기획하고 있다.
또한 전시 기회가 적은 청년 작가들에게 장소를 대여함으로써 그들의 작품을 판매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생각이라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적지 않은 비용을 들여서 집을 꾸미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비용을 아껴서 좋은 작품 하나를 소장했을 때 얻는 정신적 풍요는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거기다가 후에 그 작품이 높은 평가를 받는다면 재산목록의 하나가 될 수도 있겠죠.' 아파트내부인테리어를 위하여 들어가는 비용은 그 집을 팔면서 없어지지만 그림은 인테리어 효과뿐만 아니고 재산증식의 수단으로 활용될 수 도 있고 화가들의 그림을 구매해 주므로써 화가들은 양질의 작품을 내기 위하여 작품활동을 계속할 수 있는 선순환이 이루어 질수 있다는 얘기다
유럽의 카페가 그러했듯이 우리나라도 60,70년대에 마땅히 갈 곳이 없는 가난한 화가와 문인들이 다방에 모여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열띤 토론을 벌이기도 했던 공간인데 경제사정이 나아지고 또한 테이크 아웃 커피점이 난립하면서 이런 모습은 이제 보기 어려워 졌다.
그래서 ‘필하모니’에서는 이런 공간에 향수를 갖고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1960년대에 제작한 Altec스피커로 음악을 들려 주고 있으며 갖고 있는 LP도 오래된 것들이 많다
그리고 커피도 가급적 핸드드립으로 추출하고 있어 커피한잔하기 위하여 오래 기다려야 하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카페 ‘필하모니’에는 연주자들의 연습실 및 대기실로 쓸 수 있는 작은 공간이 하나 있으며 지하이기는 하지만 한쪽 벽면 전체가 유리창으로 되어 있고 그 너머로 썬큰가든을 바라 볼 수 있어 지하같은 분위기는 느낄 수 없는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썬큰가든에는 대나무가 심어져 있어 외부와의 시선을 차단시키고 있으며 어린 담장이 넝쿨이 서로 키자랑을 하며 크고 있는데 시간이 흘러 가면 좋은 모습으로 바뀔 것이 분명하다
아버지와 딸이 함께 걷는 길
이런 백정현씨의 뒤에는 아주 든든한 후원자가 있다. 금융기관에서 임원으로 재직하다가 현재 벤쳐기업의 창업을 돕고 있는 아버지 백만기 ( F창업투자 고문)씨가 그 후원자. 학교 재학중에 친구들과 악기연주를 틈틈히 하고 그 이후에도 줄곧 음악에의 취미를 버리지 않았던 아버지를 곁에서 보면서 백정현씨는 아예 전공을 음악으로 선택한 셈이다
‘필하모니’를 기획하며 4년 동안 부녀가 함께 커피와 와인공부를 했으니 창업에 대한 준비는 철저하게 한 셈이다. 또한 백만기씨는 20년 전부터 그림 전시회를 쫓아다닌 그림애호가이기도 하다. 그 영향 때문일까, 디자인회사에 다니고 있는 백정현씨의 언니가 미술을 전공했고 ‘필하모니’의 인테리어를 도맡았다.
또한 필하모니 제1회 콘서트의 테이프를 끊었던 '블루마운틴보이스'를 빼놓을 수 없다. ‘블루마운틴보이스'는 블루그래스 음악을 주로 연주하는 4인조 밴드로 아버지와 친구들이 만든 아마추어 음악그룹인데 2년전에 팀을 결성하여 수지 고기리에 있는 '블루그래스하우스'에서 매달 한번씩 공연을 하고 있다. 아버지의 이런 모습을 보며 '필하모니'의 작은 음악회를 생각해낸 것은 아닐까.
좋은 음악, 미술 그리고 커피까지
'학생 때 아르바이트로 커피숍에서 일하던 것과는 천지 차이죠.' 좋은 커피를 고르는 것, 핸드 드립하는 것도 어렵지만 그 문화를 만들어 가려하니 어깨가 무겁다고. '곧 배전기를 들여와서 직접 로스팅도 할겁니다. 그럼 좀 더 힘이 들겠지만 이왕하려면 제대로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연주회를 매주 준비해야 하고 좋은 그림도 매달 바꿔야 한다. 그간 여러 방면으로 공부하며 준비해왔지만 문화사업을 한다는게 쉽지 않은 일이다
다른 사람이 했던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운영을 하기 위하여 여러 모로 준비를 하며 연구를 하고 있는 백정현씨가 서 있는 갤러리이자 연주무대인 커피하우스 ‘필하모니’.
매주 코 앞 작은 무대에서 펼쳐지는 실내악 연주와 행사가 끝난 후 커피를 한잔하며 연주자들과 함께하는 음악이야기.
9월 1일 시작, 이제 막 문을 연 ‘필하모니’와 ‘필하모니’의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백정현씨와 여러 예술가들. 그들의 한 발 내딛음이 분당의 문화예술의 도약과 다르지 않음을 연주가 끝남과 동시에 터져 나오는 갈채와 함께 느낄 수 있었다.
(공연 및 전시문의 031-706-2080)
출처 월간커피 10월호 에서 (송은미 기자)
실내악 연주를 신동헌 화백과 청중들이 듣고 있는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