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란 무엇인가
누가 물어본다면 우리 삶의 생사고락의 스포츠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러면서
이나라 대한민국 동방의 진정한 국가대표
한사람을 생각해봅니다.
축구를 좋아하고, 또 축구를 인생의 낙으로 여기는 한명의 대한민국 사람으로써, 과연 이동국 선수를 빼고 월드컵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월드컵이라는 대회가 국민적 대회로 거듭났던 90년대 이후, 우리나라는 한차례도 빠지지 않고 월드컵에 진출을 했고, 그 때마다 이동국선수는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습니다. 아직도 우리나라에서 안티팬들이 가장 많은 선수를 뽑자면 이동국선수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정도로, 그의 월드컵 인생, 대표팀 인생, 그를 넘어 축구선수로의 인생은 험난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초고교급 스트라이거카 등장했다고 언론에서 연일 난리였다.
내가 내가 대학시절 이동국을 처음 본 것은 이동국 포공3학년시절 텔레비젼과 신문에서 였다.
그때 해설자들도 훗날 한국축구 10년 이상을 책임질 공격수라고 치켜세웠고, 우리나라 차붐
차범근 감독님이 발굴해냈다고...난 그날부터 팬이 되었다.
나보다는 조금 어린나이로 저렇게 잘한다니...
참 이때가 그립다...
이동국-고종수-안정환 트로이카 시대.....
축구장에는 연일 수많은 팬들이 이들이 가는 경기장과 숙소를 찾아 다니던 시절....
언론과 팬들의 기대 만큼은 아니지만 꾸준하게 평균이상은 해줬던 선수.....
청대 올대 국대를 오가면서도 불평한번 하지 않던 선수....
지금이야 기성용선수나 이청용선수 그리고 이전에 박주영 선수등....
너무 혹사시키지 마라는 팬들의 청원도 나오고 있지만 적어도 이동국선수는
내가 아는 국내선수중 청대 올대 국대를 오가며 혹사아닌 혹사를 당해야 했던 선수가 아닌가 싶다....
브레맨 임대시절이던가?
워낙 오래된 일이라 기억도 생소한 지금 사람들은 실패라고 말했지만
20대 초반의 이동국에게는 너무나 컸던 독일무대....
당시 브레맨은 약팀이였다.
그러나 출전기회도 잡기 힘들었고...역시나 부상은 따라 다녔다....
5천만 국민이 기뻐하고 수억명의 세계인이 한국에 시선을 가지고 있는 그해 여름....2002년
이동국은 없었다....
술 먹고 방황했다는 그의 말과....언론 보도를 보면서 나 또한 울었다......
2002년, 이동국선수는 자신의 모국에서 열리는 월드컵에 당연히 나갈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스타덤에 오른 선수의 자만심이겠죠. 토탈사커를 강조하는 히딩크에게 어쩌면 그는 다른 선수들을 위한 훌륭한 본보기였고, 엔트리에 탈락이 되고 맙니다. 그의 월드컵엔트리 탈락은 엔트리에 든 선수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자극제였지만, 그에게는 너무나 힘든 시간으로 찾아옵니다. 붉은 물결로 물들었던 2002년 6월, 이동국선수는 혼자 술로 달래며, 아픈마음을 달랠 뿐이었죠. 하지만, 더이상은 이러면 안된다는 마음과 함께 그는 상무입대를 결정하게 됩니다.
난 군인 이동국을 상상하지 못했다...쩝
2002년 엔트리 탈락으로 인해 2006년은 그에게 축구선수로의 명예와 축구선수로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도전의 무대였습니다. 그 대회만을 바라보며 컨디션을 최상으로 맞췄고, 잇다른 예선전에서의 골은 그러한 이동국의 노력이 결과로 드러나는 것이었죠. K리그에서도 최고의 득점포에 물이 올랐을때 그는 부상으로 또 다시
월드컵 무대를 코앞에 두고 수술대에 올라야 했다...
2006년, 4월 K리그 경기에서 십자인대가 파열되는 부상을 견뎌야했고, 결국 그는 월드컵에 발을 들여놓지도 못했습니다.
이 시기에 독일 현지에서 가끔 이동국선수 와이프 홈피에 근황이 올라왔는데....
지켜보던 부인께서 마음이 더 아파했던걸로.....
수술을 마치고 절룩거리던 발로 경기장을 찾아 우리 선수들을 응원하던 모습은
지금도 생각하면 짠하기만 하다.....
여태껏 수많은 경기를 뛰고, 수많은 팬들과 안티팬들에도 꿋꿋했던 그는 그 날을 회상하면 눈물을 숨기지 못했습니다.
최선을 다했기에 오히려 홀가분 했다던, 그의 말이 더욱 더 가슴아프게 들렸습니다.
아주 멀지 않은 과거.....
5분국...3분국......많은 팬들이 이를 비난할때 난 그냥 좋았다.
그 곳에서도 여전히 당당했고 아쉬워 하며 짜증나는 얼굴을 할 때에도
난 마냥 좋았다....
왜....?
거긴 그라운드였으니까....
골대도 몇 번 맞추고 하위리그 팀들과 경기에서는 골도 넣었고....
아쉬움이 많았고 많은 한계를 드러내긴 했지만
여전히 나에겐 눈물나도록 고마운 시간이였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방출 쌩큐~
그리고 오늘....
라이언킹 이동국은 두팔을 벌리고 날라 오르고 있다....
어쩌면 79년생의 나이가 무색할 만큼....아직도 진행형이다.....
지금의 어린 친구들에게는 박주영 박지성이 최고인 만큼 나에겐 이동국이 최고다....
가끔은 왜 이동국을 욕하냐고 핀잔을 주긴 하지만...
한 선수를 미치도록 아끼고 좋아 할 수 있다는 그 자체가....
아니 그런 선수가 있다는게 우리에겐 행운이 아닌가 쉽다.
지난 2010년 7월 초, 그렇게 12년을 기다려, 남아공월드컵이 왔고, 이동국선수는 다시한번 부상으로 월드컵행이 불투명해지게 됩니다. 하지만 가까스로 엔트리에 들어온 대회에서 그는 부상회복으로 인해 뛰지 못했습니다. 허정무감독은 그를 한경기, 30분만 뛸수 있어도 데려간다고 했지만 그 30분의 기회는 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드라마틱한 축구선수의 운명은 우루과이전 30분을 허락했고, 그 결과는 처참한 것이었습니다. 우루과이와의 16강전 후반 43분, 스코어는 2:1, 12년을 기다린 이동국의 슛팅, 월드컵에서 단 2개의 슛을 날렸고, 하나의 슛은 그를 대한민국 최고의 스타로, 다른 하나는 대한민국 최고의 역적으로 만든 슛이었습니다.
처참한 것이 맞을 것입니다. 12년동안 그 하나의 슛을 위해 달려왔던 선수의 슛이 골대를 외면했으니 말이죠.
2009 · 2011년 K리그 시즌 MVP로 화려하게 비상을 했지만, 아직도 그를 바라보는 많은 축구팬들의 시선은 곱지 않은게 사실이니 말이죠.
하지만 이동국 선수는 또 다시 국가대표팀을 꿈꿉니다. 국가대표팀을 꿈꾸며 자신을 허락하지 않은 월드컵을 꿈꿉니다. 브라질월드컵이면 그의 나이 36세, 황혼의 나이이지만 대표팀 은퇴를 말하지 않습니다. 그의 컨디션이 허락해주는 한, 그리고 지금 그가 그렇듯 2년뒤에도 최고의 스트라이커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면, 36살 이동국의 월드컵을 응원할 것입니다. 한편의 영화와도 같은 대한민국의 스트라이커 이동국선수의 엔딩이 해피엔딩이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