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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소리에 대해
경기소리는 크게 경기잡가(경기 긴소리)와 경기민요로 나뉜다.
-잡가의 유래
19세기말 조선의 성악곡들은 여러 갈래로 분화되었다. 그중 양반지배층이 불렀던 노래를 정가라 구분 짓고 평민 노동계층이 불렀던 노래를 잡가라는 새로운 개념의 용어가 만들어진 것이다. 잡가는 대부분 서민들에 의해 불려지고 향유되었기에 그들의 의식과 생활감정을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민요와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 민요는 일반 민중들에 의해 만들어져 오랜 시간을 거쳐 온 노래이지만 잡가는 소리를 좋아 하는 도시의 소시민계층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불려졌다는 점에 있다. 또 잡가는 여가를 이용해 불러왔으므로 생계유지의 이유가 아니라 그들의 예술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함이었다.
잡가는 사계축을 중심으로 한 지역의 소리꾼들이 유명했다. 사계축은 지금의 서울역 앞에서 뒤편의 만리재를 돌아 청파동인 청패까지의 일대를 말한다. 이 지역 사람들이 소릿방을 만들게 되고, 이 소릿방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이게 되어 풍류방의 역할을 해냈다.
사계축 소리꾼으로서 잡가로 이름이 높았던 사람들 중에 추교신, 조기준, 박춘경이 가장 유명하며, 후일 경서도창으로 이름을 날렸던 이들이 모두 이들의 제자이다. 이 세 사람 이후로 최경식, 주수봉, 한인호, 이현익, 이경준, 장계춘들 많은 제자들이 활동하고 이들 역시 제자들을 배출해내 잡가를 전수했다.
일제강점기까지 번창했던 잡가는 한국전쟁을 계기로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 명맥만 유지해오다가 몇몇 경기 명창들이 중요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로 지정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12잡가
잡가에는 경기잡가, 서도잡가, 남도잡가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잡가라 하면 경기12잡가를 말하게 된다.
12잡가는 긴잡가라고도 불리며, 좌창이라고도 한다. 12잡가는 원래 유산가, 소춘향가, 형장가, 집장가, 평양가, 제비가, 적벽가, 선유가 이렇게 팔잡가와, 시기적으로 팔잡가 보다 후에 만들어진 달거리, 십장가, 방물가, 출인가를 포함한 잡잡가로 구분되었는데 지금은 통틀어 12잡가라 한다.
이러한 12잡가는 언제 누구에 의해서 만들어졌는지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12가사의 영향을 많이 받은 듯하다.
12가사는 정가에 속하며 19세기에 널리 불린 성악곡이다. 그런데 여러 문집이나 옛 문헌에 의하면 12가사에 드는 악곡이 잡가로 분류되고 있어서 19세기 중엽이후로는 가사가 잡가로 불렸음을 알 수 있다. 완전한 형태의 12가사는 19세기 중엽 『가곡원류』에 와서야 그 형태를 보였는데 시기적으로도 12가사와 12잡가의 전창시기가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악곡수에 있어서도 모두 12개 악곡으로 되어 있다는 점이 같고 음악적으로도 상당히 비슷한 부분이 많다. 가사의 음계도 서도적 특징을 취하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창법에 있어서는 조금 차이를 보이는데 가사는 가곡처럼 가성을 많이 쓰고 가늘게 떠는 요성법을 보이는 반면 잡가는 육성을 많이 쓰고 요성법도 굵고 힘차게 떤다. 12가사와 12잡가는 상당부분 공통점이 있다. 옛 명인들의 증언에 의하면 잡가를 부르기 전에 가곡과 가사 같은 정가계통의 악곡을 먼저 부르고 이어서 잡가를 불렀다고 한다. 12가사가 12잡가에 큰 영향을 미쳤고 둘 사이의 연계성이 있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민요의 개념과 성격
민요는 특정인이나 특정집단에 의해 창작된 노래가 아니라 일반인들 사이에서 자연스레 만들어져 오랜 시간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며 향유되어온 노래를 일컫는 말이다.
어느 나라든지 자국의 민요가 있고 이러한 민요에는 각 민족의 민족성이나, 정서와 풍습, 종교적인 심성이 담겨있다. 이렇게 민요는 다양한 성격을 내포하고 있다.
민요의 성격 중 하나는 비전문적인 성격이다. 하나의 음악문화권 속에서 그 뿌리를 이루는 기층음악에는 민요뿐 아니라 무가, 잡가, 판소리, 불가가 있다. 이런 장르의 음악은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집단에서 불린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민요는 부르는 주체부터가 비전문적이다. 민중자신이 창자이자 작자이다. 대부분의 민요가 그렇듯이 언제 누가 처음 만들었는지 알기가 어렵다. 그렇지만 오랜 시간이 흐르는 동안 없어지지 않고 입에서 입으로 재 창작 된 노래가 바로 민요인 것이다. 민요는 비전문적이고 대중성이 강한 노래라 할 수 있다.
두 번째로 민요의 성격은 현장성이 강한 노래라 할 수 있겠다. 민요는 민중의 노래인 만큼 노래 속에 그들의 생활이 깊이 스며들어 있음은 너무나 당연하다. 특히 일과 관련된 노동요는 거의 모든 민요의 모태가 되는 노래라고 할 수 있다. 우리 민족은 특히 노래를 좋아해서 생활의 거의 모든 일에 노래를 불렀는데, 장례를 치르며 상여를 운반할 때, 아기를 재우거나 어를 때, 농사일을 할 때도 노래가 빠지지 않았다. 노동요는 우리의 일상의 놀이판의 노래로 의식의 노래로서 발전해 나갔고, 더 나아가 예술음악의 장르로 신분이 상승되기도 했다. 지금도 노동요는 가사만 바뀌어 흥을 돋구는 노래로 쓰이거나 집단적인 의식에 사용되는 경우를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세 번째의 민요의 성격으로는 해학성과 풍자성이다. 비록 민중들은 사회의 하층을 차지했지만 보고 느끼는 모든 것을 노래로 표현할 줄 알았다. 이 속에서 풍요와 행복을 기원하고, 삶에 활기를 불어넣는 해학적이고 재치 있는 민요를 많이 불렀다. 또한 자신들의 삶의 모순과 애환, 비판의식 등을 풍자의 방법을 통해 노래로 무리 없이 발산하였다.
이렇듯 민요는 비전문적이고 집단적이며 대중성을 띤 노래로 현장성, 해학성, 풍자성 등 다양한 성격을 가지고 민족의 역사와 함께 해 온 민족의 노래라고 할 수 있다.
-민요의 발생과 발전과정
상고시대의 민요
상고시대 음악에 관한 자료는 매우 미미해서 후한서의 동이전이나 삼국지 위지 동이전을 비롯한 몇 몇 문헌등을 통해 그 음악을 추정해볼 수밖에 없다.
문헌을 종합해 봤을 때 우리 민족은 가무를 즐기는 민족이었음을 알 수 있다. 마한의 경우 5월 씨뿌리기와 10월 추수가 끝난 후 신에게 제사를 지내며 가무를 즐겼다는 기록이 있다. 지금도 농촌에서는 비슷한 시기에 풍물을 동반한 축제를 벌이고 있음을 볼 때 이러한 전통은 이미 상고시대부터 유래한 것으로 생각된다. 고구려에서도 제천의식에 가무를 동반했다.
상고시대의 민요로 널리 알려진 노래는 <공무도하가>가 있다. 이 노래는 『해동역사』, 『대동시선』등은 책에 수록되어 있다.
<공무도하가>의 내용은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이 물에 빠져죽자 그의 아내가 통곡하다 함께 빠져 죽었다는 내용이다. 고조선의 뱃사공이었던 곽리자고의 아내 여옥이 지었다고 하며 현악기인 공후를 타며 불렀다고 해서 <공후인>이라고도 한다.
삼국시대의 민요
삼국시대의 민요는 실제 악보나 가사가 전해지는 것은 매우 드물고 대부분 노래제목만 문헌에 전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고구려의 민요는 유리왕이 지었다는<황조가>가 유명하며, 이밖에 <내원성>, <연약>, <명주>가 있다. <황조가>의 내용은 두 아내인 화희와 치희에 얽힌 이야기이다.
백제의 민요는 <지리산>, <방등산>, <무등산>, <정읍사>등인 전해진다. 그 중 <정읍사>는 『악학궤범』에 의하면 오늘날의 수제천의 가사로 쓰였던 노래이다. <정읍사>의 내용은 한 아낙이 장사를 하러나간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원하는 내용으로 되어있다. 특히 이 노래는 '어기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라는 후렴구가 들어가는 것이 민요에서 흔히 보이는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정읍사>가 민요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신라는 『삼국사기』,『삼국유사』,『고려사』등의 문헌에 <헌화가>, <서동요>, <구지가>, <공덕가>, <해가>, <회소곡>등의 노래가 전해진다. 신라는 향가라는 장르의 노래가 널리 불렸는데, 향가에는 차사 즉 감탄사가 있는 독특한 노래 양식이다. 신라의 민요 역시 설화와 전설을 간직한 노래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고려시대의 민요
『고려사』악지에 고려의 민요로 보이는 노래들이 전해져 있다. <정과정>, 고려 16대 왕인 예종이 지은 <유구곡>이라고도 하는 <벌곡조>와 같은 작자를 알 수 있는 노래들이 있다. 또 고려시대의 민요중 대표적인 특징은 참요 즉 정치요가 많다는 것이다. 정치요는 대개 동요의 성격을 구비하고 있ㅇ며 가창에 있어서도 어린이들의 입을 통해 불려졌다. <사리화>, <장암>, <묵책요>, <보현사>, <우대후>, <아야가>, <표주박 나무>, <가련한 완산 아이>등이 있다. 또한 가사는 전하지 않으나 노래에 관한 사연이 남아있는 민요가 『고려사』악지에 32수가 기록되어있다.
고려시대에는 고려가요 또는 고려속요라고 부르는 노래들이 많이 등장했다. 형식적으로 여러 장으로 나뉘어지는 장가형식의 노래들이 많고 '위 경긔 엇더하니잇고'의 후렴구가 들어가는 경기체가의 노래가 있다.
조선시대의 민요
조선시대의 민요는『악장가사』,『악학궤범』,『시용향악보』,『대악후보』같은 가사집이나 악보, 그리고『용재총화』,『문헌비고』,『패관잡기』,『동계만록』,『대동풍요』등과 같은 문헌을 통해 그 윤곽을 그려 볼 수 있다.
조선전기의 민요는 대개 고려민요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조선후기에 오면 민요의 자료가 비교적 풍부해진다. 특히 많은 문인들이 민요에 관심을 두고 민요를 정리했다. 그중 이학규는 노래를 부르는 방식과 느낌까지 주석을 달아 민요에 대한 다각적인 이해를 가능하게 했다. 조선후기의 민요는 진솔한 감정표현과 비판적 기능이 한시에도 영향을 미쳐 민요풍의 한시가 지어졌다. 또한 당시 사상의 주류를 이루었던 유교의 영향도 많이 받았다. <남산요>, <구맥요>등의 정치요를 비롯 <이아요>같은 노동요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민요라 할 수 있겠다.
일제시대의 민요
조선왕조 말기 전통적인 봉건 질서가 무너지기 시작해 사회, 경제, 문화 등 모든 면에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는데, 이때 생겨난 것이 바로 오늘날의 통속민요이다. 또한 신민요가 새롭게 등장하였다. 신민요는 과거의 민중의 음악이었던 민요나 잡가와 같은 음악의 대중성을 이어받은 형식으로 이 시기에 처음 만들어진 용어이다. 그러나 새롭게 창작된 신민요들도 일제강점기 말 일본에서 유행음악이 물밀듯이 흘러 들어옴에 따라 사라지고 지금까지 겨우 몇 곡만이 전해지고 있다.
-향유계층에 따른 분류
토속민요
토속민요는 제한된 어느 한 지역에서 그 지역의 특징적인 가락을 가지고 그 지역에서만 불리는 민요를 말한다. 대부분의 노동요가 토속민요에 들어간다.
통속민요
통속민요는 어느 한 지역이 아닌 여러 지역에서 불리는 민요를 말하며 토속민요에 비해 예술적으로 세련되어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기능에 따른 분류
노동요
노동요는 일을 하면서 부르는 노래이며 민요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일의 종류에 따라 농업노동요와 어업노동요, 벌채노동요, 길쌈노동요, 제분노동요, 잡역노동요 등으로 크게 나누어 볼 수 있다. 노동요는 박자에 맞게 동작을 일치시켜서 일의 능률성을 높이게 해주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민중들의 노동과 저에서 느끼는 기쁨과 보람, 괴로움과 슬픔 또는 희망과 기대 등이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는 것이다.
유희요
유희요는 말 그대로 놀면서 부르는 노래이다. 놀이는 삶에 활기를 불어넣어 준다. 이런 놀이에 노래가 더해지면 활기와 즐거움은 배가 된다. 모든 놀이마다 노래가 동반되는 것은 아니지만 유희요는 크게 보아 세시풍속에 따른 민속놀이에 수반되는 노래와 ㅣㄹ사의 놀이에서 불리는 노래의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부녀요
부녀요는 부녀자들이 부르는 노래로 일상생활중 주로 부녀자들의 몫인 가사와 길쌈, 육아에 관련된 노래와 신세 한탄 노래가 많다. 전통사회에서 부녀자들은 가사와 육아의 부담 외에 고된 노동과 시집살이 등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큰 부담을 떠 안아야만 했다. 따라서 특히 신세를 한탄하는 내용의 노래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정치요
일명 참요라고도 불리는 정치요는 오랜 세월 지배층의 통치를 받아오는 동안 쌍인 울분과 억압에 대한 저항의식으로 생겨난 노래이다. 사설이 다분히 정치적인 성향을 띄지만 그 표현방식은 직접적이지 않고 해학과 풍자를 이용한 것으로 특히 조선후기 민중의식의 성장과 함께 많은 정치요가 등장했다.
의식요
의식요는 개인적인 축원과 의식적인 기원을 하며 부르는 노래로 크게 보아 세시의식요와 장례의식요, 신앙의식요의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지역에 따른 분류
경기 민요
경기민요는 서울을 포함한 경기와 충청일부를 포함한 지역의 민요를 말한다. 민요는 우리말처럼 지역에 따라 각각 다른 음악어법으로 되어 있는데, 이를 토리라는 용어로 설명한다. 토리는 지역적으로 두드러지는 음악적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토리는 지역에 따라 크게 네 개의 지역권으로 나뉘는데, 서울을 중심으로 한 경기지역과 일부 충청도 지역을 포괄하는 지역의 민요는 경토리, 한강 이북지방을 중심으로 한 서도 지역은 수심가토리, 함경도와 강원도 경상남북도를 아우르는 동부지역은 메나리토리 그리고 충청남부 이하 전라남북도 지역은 육자백이토리권으로 분류한다. 따라서 경기민요는 경토리권에 들어간다. 지역적으로 가장 작은 지역에 분포하지만 전체 토리권을 통틀어 가장 많은 수의 노래가 불린다.
서도 민요
서도민요는 황해도와 함경도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이 서도 지방의 대표적 민요인 수심가의 이름을 딴 수심가토리로 되어있다. 장단은 대개 정해진 장단을 치기보다는 일정한 장단없이 자유리듬으로 치고 독창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고 황해도 민요의 경우는 일정한 장단을 이용해 메기고 받는 선후창방식으로 부르는 노래도 있다.
전라도 민요
전라도는 판소리와 산조를 탄생시킨 고장 답게 판소리와 잡가를 부르는 전문예능인이 많이 배출된 지역이며 문화적 소양이 풍부한 지역이다. 이 지역의 민요는 음악적으로는 육자백이토리로 되어 있지만 토속민요의 경우 경토리와 메나리토리음악이 섞여있다.
경상도 민요
경상도 민요는 거의 모든 민요가 메나리토리로 되어있다. 경남 남해안 일부의 경우는 육자백이토리권의 영향을 받은 곳도 있고 간혹 경토리의 영향을 받은 노래도 보이지만 대부분의 경상도 지역에서 이 메나리토리의 민요를 들을 수 있다. 또한 경기, 충청을 포함한 전라도 지역에서도 메나리토리의 음악을 들을 수 있기 때문에 지역적으로 가장 많은 지역에서 불리는 토리라고 할 수 있다.
강원도 민요
강원도 민요는 경상도 민요처럼 메나리토리로 되어 있다. 경상도 민요에 전라도 민요가 섞여있듯이 경기 민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경토리 음악이 강원도에도 많이 보인다.
충청도 민요
충청도 민요는 충청도만의 특별한 지역적 특징은 보이지 않고, 인접지역 음악의 영향을 받고 있다.
제주도 민요
제주도는 음악적으로 매우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어서 딱히 어떠한 토리로 되어있다고 말하기 힘들다. 제주도 민요는 육자백이토리와 같이 특별한 시김새를 사용한다거나 수심가토리처럼 처연한 애조를 띠지도 않으며 장식음을 화려하게 사용하지도 않아서 육지의 민요와는 전혀 다른 색다른 느낌을 준다.
-민요의 형식과 장단
민요의 형식
민요의 가장 대표적인 형식중 하나는 메기고 받는 형식이다. 이러한 형식을 보통 선후창방식이라고 한다. 특히 노동요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형식이다.
두 번째 형식은 독창으로 부르거나 또는 여럿이 함께 제창으로 부르는 것이다. 제창형식은 역할을 분담하지 않고 한꺼번에 같은 일을 할 때 많이 부르는 가창형식이다. 주로 수공업이나 단순한 작업의 일을 할 때 또는 여흥 삼아 부르는 노래들이 이런 형식을 취하는 경우가 많다.
민요의 장단
민요는 형식면에서나 선율 등이 단순한 형태를 하고 있기 때문에 장단도 비교적 간단하고 쉬운 장단이 쓰인다. 장단에는 중모리, 자진모리, 세마치, 굿거리, 볶는타령 등이 있으며 이중에서도 굿거리와 세마치, 자진모리 세 가지 장단이 많이 쓰인다.
-경기 민요
경기 민요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말 그대로 경기지역에서 부르는 민요란 좁은 의미의 뜻과 나머지 하나는 많은 경기 명창들이 부르고 우리가 통상 경기 민요라고 부르는 넓은 의미의 뜻이 있다. 좁은 의미의 경기민요에는 <고양군 들노래>와 <시선뱃노래>같은 토속민요가 있다. 경기도 지역에서 불리는 토속민요는 경기도라는 지역적 한계를 갖고 불리는 좁은 의미의 경기민요라 할 수 있겠다. 반면 통속민요로서의 경기민요는 서울 경기 지역의 민요 외에도 충청도, 강원도, 경상도 심지어 제주도 지역의 민요까지도 포함하고 있다. <아이랑>, <도라지타령>, <태평가>, <닐리리야>, <노랫가락>, <창부타령>등으로 대표되는 서울·경기지역의 민요외에 <한오백년>, <정선아리랑>, <강원도 아리랑>등의 강원도 민요, <밀양아리랑>, <신고산타령>, <어랑타령> 등의 경상도와 함경도 민요등도 불리워지며 경기민요의 범주에 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