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메나산골
기다림의 8월12일
간간이 만난 초등학교 친구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하더니 서울 경기지방에만 14명정도가 된다
워낙 산골이라 초등학교 6학년이 1학급 밖에 없었으니 그럴만도하다
친구들이 금년에 꼭 한번 동문회에 참석하란다
나도 친구들이 보고싶고 궁금하고
그옛날 그때 그시절 내가 뛰놀던 그 산하는 어떤 모습일까 시골마을은 어떻게 변했을까
모든것이 궁금하고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보고 싶었다
새벽일을 하는 나는 일을 마치고 컴퓨터 앞에서 열차편을 검색해 보았다
엉~~ 이상하네 경북 봉화군 석포면 (당시는 석포리)에 가는 기차가 밤 11시넘어서 하루1편밖에없다
뭔가 잘못된줄 알고 몇번이고 검색해 봐도 기차는 없었다
동서울 버스 터미널로 검색해 보니 "석포"는 아예 나오지도 않는다 아니~~ 이럴수가
마음은 급한데 빨아놓은 옷이 덜 말랐다 대충 챙겨입고 가방을 둘러메고 집을나섰다
휴가철에 주말이라 길게 늘어선 행렬 오후4시20분이 되어서야 차표를 끊었다
조금전 4시10분에 차가 출발했단다 다음차는 6시10분이란다 차가 없다네 세상에~~이럴수가
요즘처럼 교통이 좋은때가 언제 있었나 그런데 2시간이나 기다려야되고
야~~ 석포가 그렇게 골짜기인가 6시10분 차를타고 언제 가나
시간이 많아 터미널 외진곳으로 가서 입고온 덜마른 옷을 벗어서 양지바른곳에 말리기 시작했다
세수도 안하고 머리도 안감았다면 지나가는 나그네들이 노숙자나 정시나간 사람인줄 알고
빵이나 동전 몇잎 던저주고 지나갔을지도 모르겠다 1시간 조금넘게 말리고 나니 승차시간도 되었고
옷도 어느정도 말랐다 챙겨입고 버스를 탔다 마음은 재촉하는데 버스 왜 이리도 느린지
한참이나 달렸다 피곤에 지쳐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잔걸까 봉화가 다와간다
차창너머로 스쳐가는 불빛따라 점점 밤은 깊어만 간다 어느덧 봉화로 들어섰다
읍소재지인 봉화는 그리 크지않은 도시였다 종착역인줄 알았는데 사람들이 내리지 않는다
기사양반한테 여기종착역이 아니냐고 물어보았더니 어디까진가 더 간단다
석포까지 가려면 어떻게 가야하냐고 물었더니 춘향까지가서 석포가는차를 갈아 타란다
한참이나 달려 춘향에서 내렸다 그런데 시간이 너무 늦어 차가 모두 끊어졌다
망설이다가 여관을 알아보았더 오늘 춘향에도 초중고 동문회가 있어서 방이없단다
에고머니나~~~ 오는날이 장날이라고 워째 이리도 안풀리나 생각다못해
택시를 대절했다 택시비나 숙박비나 마찮가지다 35000원
높은산하 깊은계곡 굽이굽이마다 피서객이 보인다 음~~~ 골은 골인가보다
친구들 전화가온다 금자,숙희 지금 어디냐고~ 석포가 가까워 올수록 더욱더 설래임이 더한다
고개넘어 연화광업소 굴뚝에서 연기가 솓구친다 내려다본 석포는 조그마한 도시였다
뒤늦은 밤9시10분이 되어서야 석포초등학교 교문앞에 도착했다
교정을 들어서는 순간 옛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조그마한 학교 교정이 눈에 들어왔다
그땐 어려서 일까 꽤나 운동장도 커 보였는데
동문회장 상국이와 정식이 그리고 석포에 살고있는 친구들이 행사를 위해서 수고를 많이했다
연예인 초청가수도 5분이나 모셨단다 규모에 비해서는 과분한 행사였다
그래도 1년에 한번 있는 행사요 친구들을 한곳에서 만날수있는 좋은 기회였다
친구들과 반갑게 악수를하며 38년만에 처음 만나는 친구들도 여러명이였다
상국이 형님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식사도하며 회의를 진행하고 그곳에서 숙식을했다
많은 친구들 가운데 특히나 "영백"이가 눈에 들어왔다 그친구는 내가 가물가물한가 보다
영백이는 시골에서 농사도 짓고 이장일도 맡아 본단다
내가본 영백이는 도시인들의 각박하고 인색한 삶이 아닌
무공해 무농약 자연산 그대로의 때묻지 않은 순수한 인간미가 넘치는 그러한 모습이였다
풍요로운 결실의 계절 넉넉한 농부들의 그 마음처럼
넉넉하고 인자한 그의 모습이 참으로 보기가 좋았다
나도 저러한 모습으로 저물어가는 인생을 살순 없을까
새벽을 가르며 오늘도 힘겨운 삶에 허덕이는 나 자신이 왠지 외소해 보인다
이삼십년 젊음을 불사르며 열심히 살아 왔지만 모든것을 잃어버렸다
이제는 자식들에게 부담이 되지 않으려 건강에 유의하며 살아갈뿐
가진것도 없고 물려 줄것도 없다
하나둘 모여든 친구들 마다 삶이 다르고 성격도 달라 회의중 역정을 내는이도 있었다
나이 50 이 넘어 아직도 혈기가 살아있는 모습을 보며 친구의 부인이 생각났다
한바탕 신나게 축제를 즐기곤 우리끼리 모임에선 왠지 씁씁함이 가시질 않는다
우리 모두 좋은 친구들로 기억되어 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바랄뿐이다
이튿날 석포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다 친구 숙희와춘화가 함께했다
한참동안 진실하게 깊이 기도했다 성가대 찬양중 눈물이 앞을 가린다
설교말씀도 너무나 은혜가되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석포에 가면 꼭 찿아가고 싶다
예배후 돌아와 점심을 함께하고 갈길을 재촉한다 나는 못내 아쉬웠다
혼자서 석포를 돌아 다니며 구석구석 살펴보려고 했는데
친구들과 함께 하다가 보니 시간도 계획도 모두가 흐트러졌다
하는수 없이 친구들과 함께 귀경길에 올랐다 오는길에 봉화에 사는 "화자"네 집에 들러서
전도 붙여먹고 사과도 따고 욕심많은 아낙네들 화자네 무우 많이도 뽑아왔다
이리저리 다 갈라지고 숙희와나만이 여주까지 동행했다
돌아오는 길에 와야할 몇몇 친구들이 참석지 못하고 그냥 이렇게 다녀온것이 못내 아쉬웠다
언제 한번 시간을 내서 조용히 다녀오고 싶다
연어는 수천리 머나먼 태평양을 거슬러 태어난곳으로 돌아오곤 한다
고향이 있고 반겨줄 사람이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38년동안 우리는 많이 변했지만
동심이 서려있는 마음의 고향 "석포:"는 나를 잊지 않고 반겨준다
운동회때 내가 달리던 그 운동장을 다시한번 달려보고 싶다
무우를 뽑아먹던 그 무우밭을 다시한번 가보고 싶다
과수원 서리를 하던 그 과수원을 다시한번 찿아가고 싶다
시개또 타던 그 논두렁길을 다시한번 가보고 싶다
물놀이 하다가 물에 빠져 죽을뻔했던 그 시냇가를 다시한번 가보고 싶다
앞산마루 산 중턱엔 머루랑 다래랑 산딸기며 뽕나무 열매들 그립기만 하다
장난감이 너무나 갖고싶어 살금살금 엉금엉금 낮은포복으로 기어서
살짝 실례했던 그 문방구를 다시찿아가 외상값도 갚아야 하는데
또 이렇게 세월이 가면 그때 그시절은 점점더 멀어지고
마음에 담아 그리움만 더하겠지
잃어버린 38년 기억을 되살리게해준 친구들에게 감사한다
~ 친구 문식~
첫댓글 시골고향 깨댕이 친구들 이야기는 들어도 들어도 새롭습니다. 냇가에서 모래무지 잡다 지각하고는 모래무지가 너무 많아서 올수가 없었다던 친구가 생각 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