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시의 지명들 -합정동
봄바람 살랑살랑… 가족끼리 안성천 뚝방길 평택근교 나들이 갈 곳 많다.
1.가족들과 함께 봄나들이 가세
춘분이 지나면서 봄기운이 넘실댄다. 계절은 속일 수 없음인지 남녘에서부터 불어오는 매화향기에 학교 담장 곁에 개나리, 진달래가 화사하게 피었다. 우리학교 교정에는 백목련이 여러 그루 있다. 목련은 꽃이 먼저 피고 잎사귀가 나중에 나오는 나무인데 겨우내 잠자던 나뭇가지에 봉긋이 피어오르는 꽃봉오리가 일품이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 보았더니 며칠 전 봉긋하게 피어오르던 꽃봉오리가 만개하여 화사하게 웃고 있었다. 이런 날은 지나가는 강아지라도 붙잡고 반갑게 인사하고 싶다.
봄볕이 따스한 주말 오후가 되면 부모들은 아이들의 손을 잡고 근교라도 나가고 싶어진다. 하지만 똥지팡이도 필요할 때는 없다고, 막상 나가려고 하면 마땅히 떠오르는 곳이 없어 고민이다. 오늘은 내 글을 읽는 독자들을 위해 평택 근교 중에서 두어 시간 조용히 다녀올 만한 장소 몇 곳을 소개한다. 먼저 아산만 아트센터 가는 길, 안성천 뚝방길, 원균장군 묘, 배다리 방죽, 원곡면 지문리 상지저수지 주변, 양성면 덕봉리 운수암, 부락산 자전거도로를 추천한다. 아산만 아트센터부근은 평택호 변을 따라 유원지에서 아트센터까지 원목으로 산책로를 조성해서 가족끼리 조용히 산책하기에 좋다. 더구나 아트센터에서 전시회를 관람하는 행운이 겹치고 자동차 극장에서 좋은 영화 한 편을 본 뒤 횟집에서 쭈꾸미회나 꽃게탕을 맛보는 코스를 섭렵하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안성천 뚝방길은 군문교에서 안중방향으로 나있는 길과 유천동 망근다리 방향으로 가는 길이 있는데 두 곳 다 좋다. 특히 이 길은 갈대가 무성한 늦가을이나 얼음이 살살 녹는 늦겨울이 좋은데 중풍으로 고생하는 분들의 운동하는 장소로도 많이 이용된다. 원균 장군 묘는 도로공사가 진행중인 도일동 내리마을과 갓골 중간에 있다. 이 곳은 덕암산을 배경으로 내리저수지와 아담한 장군의 묘가 산등성이의 사당과 조화를 이루었으며, 묘 앞의 잔디밭이 아이들이 뛰어 놀기에 좋아서 썩 괜찮은 휴식공간이다. 여유 있는 사람이라면 저수지를 건너지 말고 아이들과 함께 능골, 안골까지 산책하며 생가터라든가 울음밭까지 답사하면 더욱 좋다. 지면 때문에 나머지 장소는 다음에 소개하겠지만 평택 주변에도 생각만 바꾸면 보고 즐길 수 있는 장소가 의외로 많다는 사실을 독자들은 기억하기 바란다.
2.됫박산의 당신(堂神)은 지금도 안녕하신가
합정동에는 통미, 조개터, 배미, 하신작, 상신작로와 같은 자연마을이 있다. 통미는 합정동 주공3단지 옆에 있다. 지금은 마을 주변으로 아파트와 주택들이 들어서서 옛 마을을 확인하기가 어렵지만 지금도 길 안쪽으로 들어서면 오래된 기와집들이 몇 채 있고 초가집도 한 채 있다. 본래 이 마을은 됫박산 근처에 형성된 50여 호쯤 되는 마을이었다. 됫박산은 통미 서쪽 끄트머리에 있던 작은 구릉으로 1843년 진위읍지에는 오산(烏山=까마귀산)이라고 기록되었다. 이 산은 됫박을 엎어놓은 것처럼 작았지만 5백여 년 된 통미마을의 당목(堂木)과 당집이 있었던 영험한 곳이었고, 천지개벽 때 떠내려왔다는 전설도 간직했던 산이었다. 하지만 마을의 전통과 공동체 신앙 없이도 잘 살 수 있는 이방인들이 모여들면서 마을이 확대되더니, 어느 때부턴가 당제사가 끊겼고 평택시나 주민들의 별다른 보존노력도 없이 주공3단지아파트 공사 때 슬그머니 사라져버렸다.
조개터는 합정초등학교 서쪽 길 건너에서 공설운동장 사이에 있는 마을로 요즘 한창 택지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간척사업과 경지정리가 있기 전 마을 앞에는 백랑천이라는 내(川)가 있었는데 옛날에는 이곳으로 조수(潮水)가 밀려들어서 갯벌이 형성되었고 부전조개같은 어패류가 많았다. 그래서 "조개터"라는 지명(地名)과 마을이 생겼는데 1914년 일제가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조개터를 "합기(蛤基)"라는 한자로 고쳐 썼고, 합기(蛤基), 배미, 통미를 합쳐 합정리를 만들면서 "합정동"이라는 지명이 생겼다. 조개터는 본래 100여 호가 넘는 큰 마을인데다 마을의 범위도 넓어서 윗말(윗뜸)과 아랫말(아래뜸)로 나뉘었다. 윗말은 공설운동장 방향에 있는 마을이고 아랫말은 합정초등학교 쪽에 있는 마을이다.
개발이 진행되고 마을은 현대화되고 있지만 개발의 혜택은 마을 사람들 몫은 아닌 것 같았다. 아랫말에서 만난 조영희(73세)할머니는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농사를 지었는데 개발이 되면서 뿔뿔이 흩어지고 이웃 간의 도타운 정도 사라졌다며 아쉬워했다. 더구나 보상을 많이 받은 사람들은 그나마 나았지만 세입자나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사람들은 남의 집 전세 살면서 농사를 지어야 될 형편이어서 어려움이 많다고 하였다.
3.배미인가 야미(夜味)인가
공설운동장이 들어서기 전 조개터에서 배미로 가는 길은 평여중사거리 쪽 상신작로에서 안성가는 국도를 따라가는 길과, 공설운동장 뒷산을 넘어가는 길, 그리고 공설운동장 우측산기슭을 돌아가는 길이 있었다. 마을사람들은 산기슭을 돌아가는 길은 "돌아모퉁이"라고 불렀고, 고개를 넘는 길은 "소금재 거리" 그리고 합정초등학교를 비껴 통미를 거쳐 원평동 옛 평택시장가는 길은 "모사리"라고 하였다. 이 가운데 마을사람들이 가장 많이 애용했던 길이 소금재거리였다. 소금재거리를 넘으면 배미마을이다.
배미마을은 옛날에는 마을 앞으로 갯고랑과 뱃터가 있었기 때문에 '뱃미' 또는 '뱃머리'라고 불렸던 것이 발음이 순화되어 '배미'가 된 것으로 생각된다. 배미는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 때 '야미(夜味)'라고 표기해서 지금도 마을 앞 표지석에 배미(야미)라고 쓰고 있는데 그 이유를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다. 선무당이 사람잡는다고, 향토문화에 대한 애정이나 식견 없이 통치의 편리성만 고려해서 마구잡이로 붙인 이름으로 보인다. 현재 조개터 택지개발의 범위가 배미까지는 미치지 않고 있어 배미마을은 당분간 현재의 마을이 유지될 것 같다. 하지만 택지개발이 되지 않는다고 안심할 수 없는 것이, 북쪽으로는 평택고등학교가 슬금슬금 부지를 확장되고 있으며 논밭이었던 동쪽으로는 합정감리교회를 비롯한 여러 건물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어 마을 공동체가 무너지고 지명(地名)이 바뀌는 것은 시간문제처럼 보인다.
변화를 두려워하면 발전이 없다는 말은 옳다. 하지만 "무엇을 위한 발전인가?", 또는 "누구를 위한 발전인가?"를 생각할 때 변화(變化)와 발전(發展)이라는 단어가 무작정 좋게만 여겨지지 않는다. 정든 보금자리 조개터마을에서 쫒겨나 남의 집 셋방을 살면서 올 해 농사를 걱정해야 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말이다.
첫댓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어느 분이 쓰신 글인지 궁금하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