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 1999. 7. 16 ~ 7. 18
곳 : 지리산 반야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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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6일 저녁 10시...
드디어 떠날 시간이 되었다.
베낭, 코펠, 식량 등 산행에 필요한 몇가지 물건들을 자동차에 싣고 여행길에오른다.
지리산을 향해 남쪽으로...
우선 당산역에 들러 "희망"을 태우고 "별산"과 "안반대기(편의상 안반댁)"가
기다리는 명동으로 향한다. 서울역을 지날때쯤 기다리기에 지친탓잉가,
별산으로부터 핸드폰이 울린다.
희망과 별산은 이곳 번역방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터이고 안반댁은
비록 번역방 주위에서 맴돌기만 하지만 미래의 번역방장을 노리는 꿈많은
중동소녀인지라....
정확히 11시 5분에 합류한 우리일행은 모두들 즐겁고 설레는 맘으로 명동,
남산터널, 한남대교를 지나 경부고속도로에 접어든다.
마창(마산, 창원)회원들과 남원 광한루에서 만나기로 한 약속 시간은
새벽 5시...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새벽 4시까지 충분히 도착할 수 있으나, 17, 18일 연휴의 고속도로 상황을 예측할 수 없어 1시간의 여유를 두었던 셈이다
한남대교를 지나 고속도로 입구에서 약간 지체한 것을 제외하고는
무리없이 서울 톨게이트를 벗어나 기흥휴게소까지 달릴수 있었다.
이곳에서 1차 휴식시간을 갖는 이시간 시계바늘이 막 12시를 지나고 있다.
이쯤해서 핸드폰이 울리고 멀리 구름님으로부터 일행 5명이 남원을 향해 막 출발한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창원에서 남원까지는 비록 3시간 거리밖에 안되지만 조금 일찍 도착해 휴게소에서 쉴 요량으로 일찍 출발한 것이렸다.
장시간 운전후 새벽부터 1700여미터 고봉을 오를 생각을 하니 걱정이 앞선다.
기흥 휴게소에서 못이긴척 자동차 키를 별산한테 맡기고 난 조수석에 앉는다.
뒷좌석에서는 희망과 안반댁이 잠도 자지않고 쉴새없이 얘기가 오간다.
같은 나이, 비슷한 취향.... 얼마나 하고 싶은 얘기들이 많을까...
안산, 천안, 신탄진을 지나는 경부고속도로에는 연휴를 맞이하여 도심을 떠나는
차량들로 가득하지만 정상속도를 내는데에는 별무리가 없다.
별산이 담배 한대를 피우기 위해 잠시 죽산휴게소에 들린것을 제외하곤
쉬지않고 달려온 덕분에 어느덧 전주톨게이트에 이르게 된다.
그시각이 새벽 3시경...
여기서부터는 이곳 지리에 익숙한 내가 다시 운전대를 잡는다
전주톨게이트를 빠져나오는 길과 전군가도가 마주치는 삼거리 왼쪽 방향으로
남원으로 향하는 전주 외곽도로가 나오고 곧이어 군부대가 있는 '송천동'이
나오는데...
이시각 이곳 송천동에 계시는 우리 어머님과 할머니 이하 또다른 나의 가족들이
깊은 잠에 빠져있으리라...바로 옆을 지나치면서도 들려보지 못하는 불효가
마음 한켠에 자리잡을 즈음....
'대성장례식장'이라는 네온싸인의 입간판으로 인해 희망과 안반댁이 한바탕
웃는 소동이 벌어진다.
' 야! 무슨 예식장 이름이 대성장이냐?'
'대성 장례식장'을 '대성장 예식장'으로 잘못 읽은 것이다..
요즈음은 장례절차를 대행해주는 '장례식장'이 여기저기 눈에 많이 띄인다.
전주역전을 지나고 외곽도로를 벗어나 전주-남원 국도 춘향로에 접어든다.
이대로만 간다면 어쩜 새벽 4시를 전후해 남원 오작교에서 마창팀과 도킹에
성공할 수 도 있겠다.
새벽 이시간에도 많은 차량이 오고 간다. 주로 화물차량들이......
남원 시내를 불과 몇분 앞두고 2차선에서 굉장히 빠르게 앞서 달리는
화물차량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저 차를 앞지를것인가, 뒤따를 것인가? 망설이다가
순간 앞지르기로 결정하고 급히 페달을 밟자 춘향터널이 나오는데....
뒤처졌던 그 화물차가 내 뒤로 바짝 붙어 달려온다.
나는 더욱 급히 자동차 페달을 밟게되고....
화물차에 밀리지 않아야 된다는 강박관념에 '속도 자동측정' 구역이라는
팻말을 무시하고 달리는데 순간적으로 번쩍하고 자동카메라가 작동된다.
'이런 제기럴(7만원 과태료에 30점 벌점까지)....'
드디어 남원, 이도령과 춘향의 고을.....
아직도 어두컴컴한 거리....새벽 4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다.
약속장소인 광한루에 내리자 마자 모두들 화장실부터 찾는다.
모두들 디게 급했던 모양이다.
마창팀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넓은 광장에 차량만이 몇대 놓여 있고
조금 떨어진곳에서 오작교 다리가 네온싸인에 또렷이 드러나 있다.
모두들 화장실에서 되돌아 나올무렵 드디어 마창팀이 도착한다.
오작교 아래서 (견우와 직녀가 만나듯이) 도킹에 성공한 것이다.
구름님, 갱아님, 루시야, 태균이 그리고 구름님이 대만에서 만났다는
장국정님...모두들 악수와 하이파이브로 인사들 나누고 밝은거리로 이동한다.
음식점 몇개가 나란히 줄지어 있고 밝은 불빛아래 몇명의 젊은이들이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것으로 보아 여기가 혹시 광한루 정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시간이 아직 이른 관계로 우선 '요천'을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잘 발달되어 있는 도보길로 산책에 나선다. 한참을 걸으니 오작교가 나오지만... 견우와 직녀를 볼 수 없었다.
사진도 찍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5시가 되어가자 날이 환하게 밝아오기 시작한다. 남원 콩나물 국밥으로 아침을 간단히 요기하고 곧바로 지리산을 향해 두대의 차량이 움직인다...
어느덧 춘향묘라는 표말이 보이는 듯하더니 남원시 주천면을 지나 정령치 오름길에 이르는데...오르는 길이 예사롭지 않다. 구불구불....
새벽녘이라 내왕하는 차량들은 많지 않지만 운전하기에 여간 까다롭지 않다.
정령치 정상에 이르러 우리가 달려온 길을 뒤돌아 보니 실로 장관이라...
드디어 일행들 입에서 탄성이 터져나오기 시작한다.
지리산의 참모습을 보기 시작한 것이다.
이곳 정령치 휴게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후 뱀사골을 향해 내려가기 시작한다.
오르는 길도 쉽지 않거니와 내림길 역시 쉬운게 아니다. '강원도 면허' 소지자인 별산이 옆에서 한마디 거든다.
'형님, 내려 갈때는 엔진브레이크 사용하는 겁니다'
(누가 그걸 모르남..내차는 오토인데....)
'엔진 소리 정도에 따라 적절히 저속기아를 사용해야 합니다'
(알았어 알아! 지금 열심히 운전하고 있잖아...)
뱀사골 입구 반선이라는 곳에 이른 시각이 7시 10분전...
화장실가랴, 양치질 하랴, 베낭 챙기랴, 모두들 부산을 떨고...
이곳에는 이미 30여대의 차량들이 주차하고 있었다. 산행을 마치고 돌아올때가지 내차도 무사할 수 있을까하고 은근히 걱정도 되면서 정확히 7시 10분에 산행을 시작한다. 드디어 고행길에 접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가 너무 일찍 온 탓일까?
무료입장이다...난생 처음 국립공원을 무료로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곳 뱀사골입구에는 이미 3년전에 가족과 함께 와본 곳이라 익숙한 광경들이
눈에 띈다. 오른쪽 빨치산 전적비를 돌아볼 겨를도 없이 앞으로 앞으로 오로지
반야봉만을 향해 걸어간다.
차량이 드나들 정도의 넓은 등산로에 접어들자 마자 뱀사골 천길 낭떠러지가 나오고 한참을 지나니 바위에서 고승이 수도했다는 석실을 시작으로 뱀소, 병풍소, 재승대, 간장소 등 뱀사골의 유래와 역사를 적어놓은 곳곳에 산재해 있는 안내문 푯말이 나온다. 우리는 이러한 안내문을 보지 않고서는 반야봉에 오를 수가 없다.
그 안내문에는 우리가 지금까지 걸어온 거리와 반야봉까지의 남은 거리가 반드시 표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뱀사골은 입구 반선에서부터 반야봉까지의 거리는
12키로....왕복 24키로의 머나먼 길이다.
뱀사골이 끝나는 뱀사골산장 부근까지 약 20여개의 다리를 건너야 한다. 이러한 다리는 몇개를 제외하고 반드시 다리의 이름이 적혀있다.
다리 이름의 유래는 알수 없으나 아마도 옛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뱀사골 곳곳의
명경들을 본떠 만들었나 보다. 금포교, 제승교, 유유교, 연하교, 등의 다리 이름도 보이고 그냥 무지개 다리라는 이름도 있다. 옥류교라는 운치있는 다리이름도 있고 조영남씨의 노래에 나오는'화개장터'의 화개라는 이름도 있는데....
뱀사골 산장에서 삼도봉에 이르는 고개 이름이 '화개재'이고 뱀사골 맨 마지막
다리 이름도 화개교로 표시해 놓고 있다. 화개교를 지나 30분쯤 오르니 뱀사골
산장이 나온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베낭을 짊어진 내등은 이미 땀으로 완전히 젖어든 상태다.
맨처음 뱀사골에 들어설때에는 들뜬 마음탔이기도 하겠지만 모두들 홀가분한 맘으로 어떤이는 콧노래도 부르면서 앞서거니 뒷서거니 가뿐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그러나 4키로, 5키로를 지날 무렵부터 선두와 후미 중간그룹이 생기고 '
희망'은 많이 뒤쳐지기 시작한다.
'희망'한테 지팡이를 쥐어주고 독려해보지만 이런 발걸음으로 어떻게 정상까지 갈 수 있을까, 그야 말로 '희망'이 절망이다.
그러나 어떻게 해서 여기까지오게 된 발걸음인가?
우리에게 낙오라는 말은 이미 뱀사골에 입구에 들어서며 산바람에 날려
보내버리지 않았던가?
[ 1부 끝 ]
뱀사골 산장에서 반야봉을 가기 위해서는 화개재를 넘어 삼도봉을 지나야만
반야봉에 이를 수 있다. 약2키로를 더 가야만 되는 것이다. 뱀사골 산장에서
화개재에 이르는 가파른 언덕 약 150여 미터에 나무계단이 놓여있는데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이정도는 가뿐하게 오를수 있으련만, 이미 10키로 산행길을 걸어온
아마추어 산악인들에겐 그리 간단치만은 않은 거리다.
더구나 다리에 힘이풀린 '희망'의 입장에서는....
화개재에 오르니 꽤넓은 광장이 나오고 노고단에서 천왕봉 방향으로 가는
등산객과 천왕봉에서 노고단 방향으로 지나는 등산객들의 빈번한 왕래로
시끌벅적 붐비기 시작한다.
우리가 가고자하는 오른쪽 방향에 삼도봉이 솟아있고
반대방향엔 토끼봉이 솟아 있다. 양 산줄기 사이 계곡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사진도 찍고, 그곳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또다른 등산객들과
인사도 하면서 우리 일행은 잠시 또 걸음을 멈춘다.
뱀사골 산장부터 이미 가파른 경사가 시작되고 있었다.
거의 수직형 등산로... 운동선수이던가?
이처럼 힘든 길을 '단국대학교' 이름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은 일행 5,6명이 길을 비켜줄것을 요구하며 땀을 뻘뻘흘리며 험산에서 달리기를 하고 있다.
우리 일행은 순간 작은 박수로 그들을 환영하고 용기백배하여
힘차게 발걸음을 옮긴다.
삼도봉 정상에 오르니 '전라남도','전라북도','경상남도'의 삼도가 새겨진 삼각
표지판이 놓여있다. 아마도 삼도의 경계를 표시한 것이리라 여겨져 그 주위를
뱅뱅돌게되니 불과 몇분사이에 수십번씩 세개의 도를 들락날락한 셈이 되고만다. 삼도봉에 오르니 멀리 노고단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고 지리산의 장엄한 참모습이 시야에 들어온다. 반야봉 이외에는 이보다 더 높은 산이 눈에 띄지 않는다.
시계 바늘은 12시를 지나가고 있는 중이다.
이때쯤 이르러 배고파 못살겠다고 아우성치는 사람이 과반을 넘기 시작한다.
가지고 있던 오이며, 과자며, 부식따위는 이미 뱀사골 중간에서 없어졌고,
도시락 이외에는 오로지 뱀사골산장에서 보충한 물통만있을 뿐이라,
할수없이 반야봉에서의 점심계획을 수정하여 삼도봉 정상을 약간 벗어난
풀밭에 도시락 짐을 풀었다. 갱아를 비롯한 마창회원들이 준비해 온 충무김밥
이다. 깊은 산중, 허기속, 입안에 가득들어오는 김밥은 천하진미다.
인원은 9명, 도시락은 8개..
하나가 부족했던가.. 갱아가 각각의 김밥에서 한개씩 갹출하여 한묶음을
만드니 1인분이 거뜬히 만들어진다. 알뜰한 갱아!
배부른 (돼지가 아닌) 아마추어 산악인들!
잠시 휴식을 취한후 마지막 봉우리를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연휴를 맞이하여
많은 산악인들이 오간다. 우리 일행은 마주오는 등산객들을 향해 인사를 주고 받는다. '안녕하세요' '수고하십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나는 가끔 장난끼 섞인투로 '또 오십시오' 라는 말을 건네면 게중에
'네, 또오지요' 라고 대답하는 사람도 보인다.
삼도봉에서 반야봉에 이르는 길은 지금까지와는 달리 두사람이 비껴가기 힘든
좁은 길의 연속이다. '희망'은 여전히 비틀대면서 잘도 따라온다. '불꽃희망'
드디어 정상이다. 12시 50분쯤으로 기억된다. 산을 오르기 시작한지 6시간만에
반야봉 정상을 밟은 것이다. 반야봉의 반야라는 이름은 다분히 불교색채를 띄고
있음이 분명하다. 혹시 '반야심경'의 그 반야는 아닐까?
般若峰....
그옛날 마고할미, 일명老姑라는 천신의 딸이 지리산에서 도를 닦고 있던 반야
스님을 사랑하게 되는데 8명의 자녀를 둔채 집떠난 남편을 기다리며 옷을
만들던 마고할미는 끝내 돌아오지 않은 반야를 괘씸하게 생각한다.
그리하여 반야를 위해 손수 만들었던 옷자락을 갈기갈기찢어 바람에 날리니 그천조각이 지금의 반야봉에 뿌려지 봉우리 이름을 반야봉으로 부르게 되었다
한다.
정상에는 이곳을 다녀간 증표로 만들어진 약 2,3미터 높이의 돌탑이 있다.
우리 일행도 다녀간 증표로서 조심스럽게 돌들을 올려놓고 기념촬영도 한다.
멀리 노고단이 보이고 뱀사골 입구 반선에서 전남 구례로 넘어가는 구불구불
자동차 도로가 나타난다. 하산후 우리가 넘어가야할 길이다.
여기서 지리산 주봉인 천왕봉이 보이질 않는다. 어쩜 천왕봉이 어느산인지 모르기에 안보일 수도 있겠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사진을 찍고, 점심도 먹고, 괴성을 지르는
사람이 있다. 군데군데 고사목도 보인다. 온통 녹색세상인 산등성이에 드문드문
꽃혀있는 고사목을 보고 있으려니 인간도 늙으면 저모양이 되리라 싶어져 만물의 생과사의 이치가 다를바 없어보인다. 사방을 둘러보니 조금전까지 맑기만 하던 하늘밑 산줄기에서 이곳 반야봉을 향해 뜬구름이 몰려온다.
아하! 이것이 바로 소위 '雲海'라는 것이구나.
손오공이 되어 저 구름위에 나도 한번 앉아 보았으면....
구름인지 안개인지 알수 없는 하얀 물체들이 몰려들면서 어느덧 산줄기는
온통 새하얀 세상이다. 실로 장관이다.
아쉬움을 뒤로 한채 30여분을 머무른 뒤 하산하기 시작한다.
정상을 향해 달릴때에는 앞만보고 뚜렷한 목적지를 향해 나가면 그만이다.
그러나 하산하는 과정은 마침내 이루었다는 만족감보다 목적지를 상실했다는
아쉬움이 더 클 것이다. 내려가는 길 역시 만만치 않다. '희망'은 등산보다
하산이 더욱 어려운가 보다. 지팡이를 짚은 오른손에 더욱 힘이 들어간다.
어느새 우리일행 대부분이 한손에 지팡이를 들고 있다.
내려가는 길은 확실히 지팡이의 효력을 무시할 수 없다. 나역시 묵직한
지팡이를 지렛대 삼아 하산한다. 올라온 길을 되돌아 간다는 것은 그만큼 더 지루할 수 도 있다.
반야봉에서 삼도봉에 이를 즈음 낯익은 얼굴이 눈에 띈다. 고향선배를 만난
것이다. 내가 어릴때 자란 우리 고향 역시 지리산만큼은 안돼도 상당히 깊은
산중에 속한다. 그곳 자연부락에 100여호가 살고 있었다면 굉장히 큰 동네다
물론 지금은 3,40호로 줄어들었지만...
고향 송선배는 이미 연세가 50대 중반에 이르렀고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계시는 분이다. 송선배의 일행은 4명이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것은 4명의 일행
4명중에 고등학교 은사님 한분이 끼어 있었다는 것이다.
세상에! 이럴수가?....21년만인가?. 22년만인가?
'ㅇㅇ고등학교 35회 전대철입니다. 박선생님...' 깜짝 놀라신다.
은사님은 내 얼굴을 기억할리 없다. 담임을 한번도 맡아보지
않았고 1년에도 수많은 제자들이 배출되는데 20년이 지난 얼굴을 기억하고
있을리 만무하다.
내가 특히 선생님을 기억하는것은 같은 고등학교 선배로 모교에서
교직생활을 하셨고, 은사님 막내동생이 나하고 함께 학교생활을 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렴풋이 기억이 났던 것일까?
'자네 혹시 학교다닐때 키가 작지 않았었나?' '네 맞습니다'
나는 고등학교 3년 내내 키순서대로 1번이었다(^^).
지금은 구름님이나 차돌, 별산과 거의 동등한 수준이긴 하지만....
은사님 일행은 노고단을 넘어 뱀사골로 향하고 있던 중이다. 하산하는 방향은
우리와 같은 방향이다. 우리의 목적은 이제 한시바삐 반선, 뱀사골 입구에
도착하는 것이다. 은사님 일행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내려가는 뱀사골은
지루하기만하다. 드디어 그렇게 걱정이던 '희망'이 탈이 났나보다.
'희망'이 구름님 손을 놓지 않는다.
(누가 먼저 손을 잡았는지는 알 수 없다.^^)
나는 오로지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반선에 도착해야 한다는 일념이고...
구름님 역시 희망으로 인해 시간이 지체되면 안되겠다는 생각인지...
구름님과 희망이 손을 맞잡자 행보가 조금씩 빨라지기 시작한다.
내려오는 길은 지루하기만 하다. 가도가도 끝이 없다.
하산길을 너무 쉽게 생각했던 모양이다. 난 3시간이면 충분히 내려올수
있으리라 여겼는데...속된말로 '장난이 아니다.'
다리는 이미 힘이 없어 후들후들 헛디디기 일쑤이고 거의 돌밭을 걷다보니
미끈미끈...
양 발바닥에 물집이 생기는 모양이다. 나도 서울 근교에 있는 산에 자주
오르는 편이지만 내려오는 길에 발을 헛디뎌 넘어지기는 이번이 처음인 듯 싶다.
뒤쳐진 구름님과 희망의 모습에 신경을 집중하고 있는 사이 별산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쉬엄쉬엄 다른 일행은 보조를 맞춰가며 걸어가는데
어느샌가 별산과 태균이 앞으로 앞으로 줄행랑 친 모양이다.
그럭저럭 지루한 길이 끝나갈 무렵 시간은 채 5시도 안되었는데 숲속은 이미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계곡사이에 난 길을 따라 걷다보니 어둠이 빨리 찾아
들고 더욱이 짙푸른 나무숲이 태양빛을 차단하고 있으니 한 낮인데도 불구하고
어둑어둑 어둠이 지는 것이다. 화개교를 시작으로 20여개의 다리와 구름다리를
건너 2키로를 앞둔 마지막 다리에 이르니 앞서 갔던 별산이 여유있게 계곡
바위위에 한숨 자고 있다. 별산을 불러깨우니 어디에선가 태균이도 나타난다.
한 3,40분은 족히 기다렸으리라...
모두들 맥빠진 모습으로 한마디씩 내뱉는다.
'하산길이 와이리 기노?'
'마, 가도가도 끝이 없다아닝교...'
이제 반선까지는 2키로...자동차가 드나들 수 있는 넓다란 길이다.
석실이 나오고 깊은 계곡 밑으로 흐르는 물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마침내
아침에 보이지않던 집단 텐트촌이 나온다. 뱀사골 입구에 있는 야영지에
다다른 것이다. 아침엔 하나도 보이지 않던 텐트족들이 야영장을 가득메운것이다. 연휴를 맞이하여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왔나 보다.
드디어 도착했다. 아니 드디어 해냈다는 표현이 어울릴듯...
모두들 자기자신이 매우 큰일을 치루어 낸듯 자랑스러운 표정들이다.
구름님 하는말 '이대로 쫌만 더 가자잉!'
('희망'의 손을 놓고실지 않은 모양이다....^^)
모두들 잘 견뎌주었다. 특히 '희망'이....
승용차 두대도 아무 탈없이 꿋꿋이 11시간을 버티고 있었다.
정확히 오후 6시가 되었다. 머뭇거릴 틈이 없다.
다음 목적지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은사님 일행은 송선배 한분만 먼저 내려오시고 나머지는 뱀사골 계곡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중이다. 은사님 일행중 송선배가 승용차를 가지러 노고단 입구 주차장으로 가기 위해 우리일행과 함께한 것이다. 우리 일행은 마침 그곳을 지나가야 되기 때문에 내가 우리차로 그곳까지 동행하자고 제안하였다.
승용차 안에서 나는 오늘 우리 모임의 성격을 송선배에게 전해준다.
혹시 은사님께서 우리의 모습을 오해하고 계실지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중동의 일원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괜스레 별산과 장국정이 주고받던
대화에 끼어들어 중국어 한마디를 구사해 본다....^^
고갯길을 오르다보니 왼쪽으로 반야봉 정상이 눈에 띈다. 우리가 정령 저 높은
봉우리를 올랐었단 말인가? 스스로들 대견한 모습들이다..
노고단 입구 고개에서 송선배를 내려드리고 우리는 구룡령을 내려와 반선을
떠난지 1시간여 만에 지리산 온천구역에 위치한 송원리조트에 도착하였다.
체크인과 동시에 438호실에 입실한 우리 일행은 생각보담 훨씬 넓은 공간에
안심할 수 있었다. 지금 시각은 7월 17일 오후 7시 20분...
원래의 계획은 6시에 도착하여 온천욕 일정이 잡혀있었으나, 반야봉 하산
직후부터 배고픔에 삼겹살이 눈앞에 어른거린다는 일행의 요구에 따라
곧바로 저녁식사 준비에 들어간다. 요리의 주관은 전문요리사 자격증 소지자인
루시야...
이미 지하 사우나실 영업시간이 종료되가는 싯점이라...
우리 일행은 일면 저녁을 준비하면서 일면 룸욕실에서 차례대로 샤워를 한다.
세면 순서는 구름님, 하오런, 별산, 장국정, 태균....
그다음은 여성회원들....여성들은 2명씩...먼저 희망과 안반댁이...
맨 나중에는 갱아와 루시야...
이렇게 저녁을 준비하고 몸을 씻고 옷을 갈아입는 사이에 시간은 벌써 9시를
지나고 있다. 음식이 준비되고 모두들 바닥에 신문을 깔고 서울과 마창에서
가져온 김치며 밑반찬이 차려지고 김치찌게와 삼겹살, 상추, 고추, 오이등
푸짐한 만찬이 완성된다. 진수성찬이다...
이자리에 술이 빠질 수 없지...
마침 장국정이 가져온 '죽엽청주'가 일순배씩 돌려지고 건배를 외치며
우리가 오늘 해내었던 무용담들이 쏟아지면서 고행의 순간들은 온데간데 없어
진다. 죽엽청주가 두잔째씩 돌아가고 식사시간이 끝날즈음 포만감과 피곤함,
술기운이 한데 어울리면서 눈까풀이 아른거리기 시작한다.
시간은 벌써 11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고....계획대로라면 지금 이시간...
볼링장에서 한게임 하고 있거나 노래방에서 신나게 노래한곡 불러제껴야할 시간,
갑자기 갱아가 우리의 정모 목적을 꺼내놓는다...
번역방에 대해 한마디 하고 넘어가자는 얘기다...
사실 그얘기는 번역방장인 내가 꺼내야하는데, 꿈벅꿈벅 눈까플을 오르내리는
내모습에서 도저히 번역방 얘기가 나오지 않을 것 같은 모습이었던 모양이라...
여기에 또 구름님이 맞장구 친다....
(아이구! 이거 졸려 죽겠는데...)
구름님 얘기가 끝이 없다...갱아와 구름님..몇몇을 빼놓고 모두들 몸을 비틀기
시작한다....언제쯤 저얘기가 끝이나지?...
'알았습니다..구름님 그럼 정리글은 내가 맡기로 하죠...'
아예 내가 결론을 내고 말았다...
거의 번역방의 활성화 논의가 끈나갈 무렵....
사실은 내가 직접 오늘의 토론 내용을 정리해서 글을 올려야 되겠지만...
도저히 자신이 없다. 무슨말들이 오고갔는지 제대로 기억이 없고..
'그럼, 이번 토론 내용은 오늘 제일 고생이 많은 '희망'이 올리도록...'
방장의 명령이다....
그런사이 누가 또 외쳐댄다..
오늘밤 저녁 설겆이는 남성들의 몫이라고....(흐이구~~~~)
'별산아 부탁한다이...그리고 나먼저 잔다....'^^
새벽 5시 20분...평소와 같은 시간에 눈이 떠진다...
평소 같으면 취침시간중 두세번은 잠에서 깨어나기도 했으련만...
어제밤 잠에 곯아떨어진 뒤로 한번도 깨어나지 않고 단번에 자리에서
일어난 것이다. 모두들 곤히 잠들고 있다. 한켠에 2인용 침대가 있었는데
스프링 부분과 메트부분을 분리해 4인용을 만들어 놓고 여자들이 둘씩 잠들어
있고... 남자들은 마룻바닥에서 코를 드르렁대며 잠에 취해 있다.
사우나욕을 할 요량으로 아랫층에 내려가보니 콘도내 욕탕영업은
아직 영업시간 전이란다.
할수없이 앞건물 욕탕에 들러 사우나를 마치고 방에 들어오니 루시야와 태균이
베란다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다. 덕분에 나도 모닝커피를 마시고....
장국정이 밖에 나갔다 들어오자 모두들 일어나기 시작한다...
아침 7시가 조금 못미친 시각이다...
어젯밤 있었던 소주병 7개중 몇개가 안보인 걸로 보아 분명히 누군가 해결한
모양이다. 대단한 중동인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하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오른쪽 발바닥에 작은 물집이 생긴
것을 제외하고는 전혀 피곤함이 없이 가뿐한 기분이다. 죽엽청주 두잔이
이처럼 피곤함을 싹 가시게 했나보다.
어제 제일 고생한 희망도 마찬가지... 모두들 가뿐하다고 한다.
어제 저녁만 해도 은근히 서울까지의 장거리 운전이 걱정되기도 했었는데...
아침 요리 역시 우리의 일등 요리사가 주관이다.
일품 만두국과 김치볶음 요리로 거뜬히 식사를 마치니...
어제밤 지은죄를 속죄할 요량으로 팔을 걷어부치고 내가 설겆이를 맡는다.
보기에 민망했던지 태균이가 거들고 나선다.
우리가 설겆이를 하는 동안 루시야, 안반댁은 점심 도시락을 준비 한다.
점심 메뉴는 즉석 김밥....
쌀밥에 참기름을 섞어서 손바닥만한 인스턴트 김에 밥을 돌돌 말면
훌륭한 즉석 김밥이 된다. 일등 요리사 루시야의 작품이다. 루시야는 곧잘
김밥을 만들지만 처음 만드는 안반댁의 손놀림은 누가 봐도 서투른 솜씨다.
옆에서 내가 한마디 거들고 나선다.
'안반댁이 싼 김밥은 별도로 표시해놔(일동 웃음)'
점심준비가 끝나자 일부는 방을 치우고 원래의 모습으로 침대를 맞추기도
하고... 화장도 하면서 오늘의 일과에 들어선다.
체크아웃시간...
하지만 모두들 방 나서기를 싫어하는 눈치다. 그저 이대로 1주일만 눌러 앉아
있었으면...
다음 목적지는 국내 3대 사찰로 유명한 구례 화엄사...
송원 리조트를 떠난 시각이 아마 9시쯤 되었으리라...
주유소에서 기름을 보충하고 30여분쯤 달려 화엄사에 도착하였다. 말로만
듣던 고찰에 들어서니 숙연한 맘이 절로 든다. 조선 인조의 왕자 의천군(?)
이 썼다는 대웅전 현판이 눈에 띈다. 병자년 숭정이라는 연호를 보고서
혹시 어느나라 연호인지 궁금하다 하였더니 지나가는 과객이 명나라 연호임을
친절히 알려준다. 그러고보니 병자년은 병자호란이 일어났던 시기가 아니던가?
당연히 청나라가 아닌 명나라 연호를 사용했을 것이란 생각에 미치게 된다.
대웅전 옆에 위치한 2층형 각황전을 둘러보니 중앙 내부건물에 아름드리 나무
기둥이 여러개 놓여있다. 높이로보아 지금의 아파트 4, 5층은 족히 될만하다.
우리나라 목조 건물중 가히 최고의 걸잘품으로 뽑힐만 하다. 사랑방에 놓여있는
갖가지 진귀한 보물급 유물들을 둘러보고 나서 시원한 계곡을 찾아 나선다.
남성 회원은 음식물을 가지러 가고, 여성 회원은 나와함께 목좋은 계곡을 찾아
나선다. 사람들의 왕내가 많지 않은 곳에 자리를 잡은뒤 얼마 안있어 짐들이
올라오고, 수박을 차거운 계곡물에 집어넣고서 모두들 물에 발을 담근다.
장난기가 발동한 막내 태균이가 물을 뿌려대기 시작하자 모두들 흠뻑 물에적셔
진 모습들이 마치 어린아이 모습이다. 그상태로 점심을 먹는다.
점심 내용이 계란모양 김밥이니 굳이 특별히 정돈된 자리가
필요없다. 물가운데 있는 바위를 빙 둘러서서 하나싹 집어 먹는것으로 점심 끝.
수박을 쪼개어 한입씩 입에 물고...후식까지 끝내자 007 게임에 들어선다.
패자에게 물세례를 퍼붓는 것이다. 007게임이 지루해질 때쯤.....
별산은 반바지를 바꿔 입으로 승용차로 돌아가고...
내친김 카드를 가져온다.
인원 9명이 남녀 2명씩 편갈라 훌라게임으로 손목때리기...
남자는 여자를 여자는 남자를 때리기 게임에서 '희망'과 한조가 된 나는
한번도 때리지 못하고 수없이 얻어맞기만 한다.
그럭 저럭 시간이 오후 2시를 넘어서자 '희망'이 은근히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하오런님 몇시에 출발하죠?'
'글세...'
'3시에 출발할까요?'
'그럴까?'
2시 30분을 넘어서자 차량있는 곳으로 짐을 챙겨 내려와 젖은 옷들을 갈아입고
아쉬운 작별을 한다. 구름님에게 중국노래 테이프를 건네주고 별산은 진주를
가기위해 마창팀에 합류하고....
서울팀은 별산을 남겨둔체 셋이서 서울로 서울로 달려간다.
길이 밀리지 않아야 될텐데...
다행히 죽산휴게소에 이르기까지는 정체구간이 없이 내달릴수 있었고...
이후 구간에서 드문드문 정체하기 시작.. 당산역에 도착하니 오후 10시 10분...
다행히 지하철이 끊기지 않아 안반댁이 청량리까지 무사히 갈 수 있는
시간이었다. 장거리 운전에 수고했다며 희망과 안반댁이 저녁을 사준단다.
희망이 잘알고 있는 음식점으로 안내되어 회덮밥을 맛있게 먹고 집에 도착하니 저녁 11시가 되었다. 장장 8시간을 길거리에서 시간을 보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