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여전 서울디지털산업단지로 거듭난 구로공단 일대. 쉴새없이 소음을 내뿜던 빨간 벽돌의 공장은 간 데 없고 세련된 지명에 걸맞는 날렵한 고층건물들이 최첨단 벤처 밸리를 형성하고 있다. 적막하기까지 한 이 빌딩 숲속에서 졸졸대는 물레방아 소리를 따라 발길을 옮기다 보면 쭉뻗은 대나무 사이로 정통일식 전문점 「어가(魚家)」의 간판이 보인다. 지난해 문을 연 이곳은 5만~6만원의 높은 객단가에도 불구하고 깔끔한 맛과 한국적 서비스로 일대의 비즈니스 고객에게 ‘접대를 위한 최적의 식당’으로 손꼽히고 있다. 1인당 9만원인 스페셜사시미코스는 보통 7~8종의 회가 제공된다. 제철에 맞는 횟감을 푸짐하게 맛볼 수 있으며 가을철에는 주로 광어, 도미, 전복, 개불, 참치, 방어 등을 선보인다. 코스에 곁들여지는 모듬구이로는 전복, 대하, 대합, 소라, 장어 등이 제공되는데 성게알과 해삼창자로 만든 소스를 발라 고소하다. 둥그런 돌판에 소금을 수북히 쌓고 한 가운데에 빵가루를 입혀 튀긴 대합껍질을 두어개 얹어놓은 형상이 섬을 연상케 한다. 손님에게 내기 직전 대합껍질에 알콜을 발라 불을 붙이면 영락없이 캠프파이어 분위기다. 정통 일식집에서 코스로 흔히 제공하는 조개회 대신 어가에서는 마구로 중에서도 최고로 일컬어지는 혼마구로 머릿살을 낸다. 원가부담은 다소 있지만 은행장, 기업체 대표 등 ‘회맛을 제대로 아는’ 주요고객을 배려하기 위해서라고. 정오가 되면 어김없이 웨이팅이 걸리는 어가의 효자메뉴는 정식류로 전체 주문의 80%를 차지한다. 1만~2만원대의 8종이 마련돼 있으며 이 중 가장 인기 있는 어가정식은 사시미, 초밥, 생선구이, 튀김, 알밥, 소바로 구성해 푸짐하다.
연어구이정식은 알래스카산 연어를 손질해 정종·미림·소금을 살짝 뿌린 뒤 다시마에 싸서 냉장 보관해 두었다가 주문이 들어오는 즉시 구워서 낸다. 계절나물, 김치, 젓갈, 조림, 장국, 계란찜이 곁들여진다. 얼큰한 국물로 정평이 난 탕류의 비결은 다대기에 있다. 민물새우와 한우 간 것을 섞은 뒤 일주일간 숙성시켜서 쓴다. 일식 조리 20여년 경력의 이용 실장은 매일 새벽 4시30분이면 어김없이 노량진수산시장에 나가 직접 신선한 횟감을 고른다. 내점 고객 대부분이 비즈니스 모임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가격이 비싸도 선도가 뛰어난 것을 구매하는 것이 철칙. 어가가 맛과 선도 외에 특히 정성을 기울이는 부분은 데코레이션이다. 계절에 따라 테마를 바꿔가며 시각적인 즐거움을 제공하는데 세밀하면서도 신속한 수작업 끝에 완성되는 데코레이션은 아기자기하면서도 화려하다. 최근에는 온양에서 공수한 투박한 도자기 위에 대살을 쪼개 만든 싸리문, 죽대를 연결한 평상 등을 얹어 소박한 농가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대쪽 끝을 갈고리 모양으로 구부려 부채살처럼 펼친 후 자루를 붙여 만든 갈퀴는 앙증맞기까지 하다. 튀김을 담은 돛단배 모양의 접시나 무를 둥글게 말아 만든 촛대는 단아함의 진수를 보여준다. 6명의 인력이 투입된 주방은 철저한 분업화를 추구하고 있으며 각자의 업무영역에 관해서는 고유의 재량권을 부여하고 있다. 튀김, 조림, 구이, 데코레이션 등 해당 분야에서만큼은 상급자의 제재를 받지 않고 독창적인 기량과 창의성의 발휘가 보장된다. 매·난·국·죽·송·초·목·연·화 등의 이름이 붙은 9개의 룸은 전형적인 일식 하공 테이블로 구성돼 있으며 돗자리와 원목, 흰 벽으로 깔끔하게 정돈해 놓았다. 70여석 규모로 테이블회전율은 일평균 2~3회이다. ☎02-863-57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