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간길 가다 만나는 구호들... 배꼽 잡는 구호들!! 밑에다 재밋는거 붙여 보이소. 재미루....
=혼자가는 저 등산객 간첩인가 다시보자! -산골마을 반공탑-
(6,70년대 반공 구호가 희미허니...이 국장)
=많이 드시고 벽에 똥칠 할 때까지 사이소!! - 00마을 청년회-
(원주 치악산 아래인가? 개구리 및 야생동물 보호구호)
=살만큼 살았다 ! 할 테면 해봐라 !! -감천면 노인회-
(김천댐 결사 반대, 부항령 가는 길에서)
=백두대간 표식판 법제처에 등록하라!!(대장, 엉터리표지판이 너무 많아, 이국장 결재 요)
=차선을 지켜라! --어디? 경찰서장 - (현수막이 늘어져 시야를 가림?)
......?......
밤길이라 진입로 찾는 게 장난이 아니다. 아마 전용버스도 산허리 길을 두어 번 헛돌았나 보다. 내 그럴 줄 알고 문경(점촌)에 다다르니 새벽 2시 반이라, 방앗간을 찾았으나 별 무, 제일병원 옆 골목에 밤안개? 실내포장집이 있어 동태찌개에 칼국수 사리를 얹어 후룩 후룩, 목에 걸릴 듯, 장에 걸릴 듯 하야 참소주 한 병 부어 약으로 깨끗이 정리하고, 가은으로 봉암사가는 길로, 괴산가는 913번 도로를 잡고 어둠 속으로. 지난 폭설의 흔적이 선유동 지나면서부터 나타난다. 3시 30분 특별 전용버스와 같은 시간 버리미기재에서 랑데부. 1시간 동안 취침.
04:30 눈을 떠라. 매양 그렇듯이 출발 할 때의 이 서글픔이라니, 길섶의 잔설에 놀라 눈 비비며 전원 아이젠과 스펫츠 착용-나만 빼고, 마지막 눈밭에 미끄러져 보자!-별난 각오...우리의 종마가 처음으로 빠져 씽그런 새벽이 더욱 썰렁.
05:00 버리미기재 입산 금지 팻말 앞에서 한걸음 이어가기 깃발 펼쳐 사진 한판 박고, 곧장마루금으로 머리혹 전등 비추며 들어 감. 예상 보다 눈은 많이 녹았고 날씨 또한 푹하다.
희미한 달빛이래 띄엄띄엄 큰바위들이 길을 돌게 만들고 늙은 소나무들이 가지를 늘어트려 지친 인간들을 불러들인다. 노송의 인자함 앞에 장송의 늠늠함이 치송을 끌어안아, 보란 듯 하는 꼴이 인간세를 부끄럽게 하누만. 열흘 전, 특히 충청지역에 냅다 덮은 폭설 피해에 다들 가슴 아려하며 찬찬히 오르길 1시간.
06:10 장성봉, 아직도 어스름에 스무 사흘 하현달이 서편으로 무겁게 그리고 떠 있는 듯 기우뚱기우뚱 가라앉는다. 정상의 삼각점엔 속리24 표시판이 묻혀 있고 아직도 속리산 국립공원 구간이다. 정상 표지석 앞에 자연석으로 제단을 잘 만들어 놯는데 제물 준비를 미처하지 못해-심총 생각이 불현듯 나누나, 매사 얽힘이 없길-천지신명께 맨입으로 빌었다. 통일조국의 백두대간 한걸음 이어가기가 애초 뜻 한데로 이루어져 한발짝도 놓지 않고 걸어서 걸어서 백두산 천지에 오르게 되길, 지리에서 백두까지 이어온 대간 기운 모아 三足烏 깃발 높이 휘날리며 대고구려! 우리의 영토를 치달아, 바이칼호 한가운데 얼음판에서 호수바닥 깊숙이 살찐 열목어 건져 올려, 옥수수로 빚은 약주에 향 사루어 하늘에 큰 제 올린 뒤 몽롱하도록 흠향, 음복, 음복!! 아! 고구려!!
장성봉 정상에서 동쪽 5리 저편 애기암봉(740m), 10리 저편 원통봉(668.5m)을 구름에 안겨두고 곧장 흐르다 왼편으로 휘 감아 마루금을 잡아야 한다. 어스름 눈밭에 유턴하듯 길을 잡아 50미터쯤 내려가면 다시 왼편으로 갈림길이 나온다. 막장봉(887m)0.7km, 절말 5.7km 표지목을 뒤로 편한 걸음들로 오르내리길 1시간.
07:25 늦은 아침해가 중천에서 얼굴을 내밀고 바람은 불어도 전망이 좋은 널찍한 바위마당에 아침 식당을 차렸다. 어묵 첨가하지 않은 순 삼양라면+짐밥, 반주 쪼까씩.
덕유산맥, 추풍령 지난 뒤 소백산맥 주능을 저으기 조망한지가 그 언제? 없다! 맨 날 비에, 눈에, 어둠에, 에그 긋지긋지. 티방 묵을 소리들 해 쌓는다.- 이제부턴 경치가 쥑여주니 어두울 땐 들지 말자,- 너무 빨리 내 달아 사슴도 산도 다 놓지는 우를 범치 말자.- 유격대가 아니니 당초 노푼뜻데로 인문산행- 쉬며, 명상하며, 한잠 때리며, 은근히 취하며,- 식사는 라면+김밥이 아니라 갖은 찌개에 하얀 쌀밥 정식으로....배부르면 못 하는 소리가 없지롱.
08:00 흰소리들 거두고, 지루하게 나간다. 녹는 눈밭에 바위들이 모두들 제 빛과 멋을 내며 버티고 있다. 정말 누가 신통력을 발휘하여 정원 다듬듯 했을까? 꼬박 두시간.-부산에서 대간 아래로 타는 인간들이 새재에서 새벽 2시에 출발했다며 앞자리꾼들이 지나간다. 29명이란다. 부부팀들이 요즘 유행이다. -펭소에, 나 묵기전에 잘들 하거래이. 나 드러가꼬 이기 무신 일고, 어더븐 밤중에... 아무껏도 몬보고, 후랏씨에 발끄티만 보민서, 말라꼬 건노? 니, 실랑 오 인노. 에이고, 인간아...진품명품에, 오지탐험에, 체험삶의현장에, 전국노래자랑에 일요일 볼만한 TV프로가 오죽 많냐.... 오짜고 저짜고 잔소리 쏟아 부어도 잘만 나간다.
09:40 현주가 간택되어 대간길에서 약 10분 거리의 북쪽으로 솟아 있는 악휘봉 정상으로 특파? 잘 벗겨진 바위산 꼭대기에서 별별 모양새를 다 잡는다. 얼-쑤 잘한다 잘한다 하니 속옷까지 훌러덩 홀라당 다 내리누만. 진호씨사진 올리세요~ 오늘은 가히 현주데이로다, 화이트데이가 아니고.
10:00 악휘봉을 홀로 두고 암릉 길 계속 내리막
10:40- 722봉에서 산상시 낭송과 정상주-캬. 브랜디면 끓여야는데
스카치 위스키라누마....종마를 찾는구나, 대장이. 손전화 전송상태 불량. 도우는 일 잘되길...
오세영 시 < 이별의 날에 >
이제는 붙들지 않을란다.
너는 복사꽃처럼 져서
저무는 봄 강물 위에 하염없이 날려도 좋다. 아니면
어느 이별의 날에
네 뺨을 타고 흐르던 눈물의 흔적처럼
고운 아지랑이 되어 푸른 하늘을 아른 거려도 좋다.
갇혀 있는 영원은 영원이 아니므로
금속테에 갇힌 보석 또한
진정 보석이 아닌 것
아무래도
네 손가락에 끼워준 반지에는
영원이 있을 성 싶지 않다. 그러므로
네 찬란한 금강석의 테두리에 우리 더 이상 서로를
가두지 말자.
이제 붙잡지 않을란다.
너는 복사꽃처럼 져서
저무는 봄 강물 위에 하롱 하롱 날려도 좋다. 아니면
어느 이별의 날에
네 뺨을 적시던 눈물의 흔적처럼
고운 아지랑이 되어 푸른 하늘을 어른거려도 좋다
감태준의 시 < 맨 발 >
어물전 개조개 한 마리가 움막 같은 몸 바깥으로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죽은 부처가 슬피 우는 제자를 위해 관 밖으로 잠깐 발을 내밀어 보이듯이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펄과 물 속에 오래 잠겨 있어 부르튼 맨발
내가 조문하듯 그 맨발을 건드리자 개조개는
최초의 궁리 인 듯 가장 오래한 궁리 인 듯 천천히 발을 거두어 갔다
저 속도로 시간도 흘러 왔을 것이다
누군가를 만나러 가고 또 헤어져서는 저렇게 천천히 돌아 왔을 것이다
늘 맨발이었을 것이다
사랑을 잃고서는 새가 부리를 가슴에 묻고 밤을 견디듯이 맨발을 가슴에 묻고 슬픔을 견디었으리라
아-, 하고 집이 울 때
부르튼 맨발로 양식을 탁발하러 거리로 나왔을 것이다
맨발로 하루 종일 길거리에 나섰다가 가난의 냄새가 벌벌벌벌 풍기는 움막 같은 짐으로 돌아오면
아-, 하고 울던 것들이 배를 채워
저렇게 캄캄하게 울음도 멎었으리라
(짜자자 작짝. 술맛 나고- 안주 한 접시 추가!!)
11:20 은치재를 수월케 통과-귀에 듣던 대로 등산로 폐쇄. 봉암사 쪽은 아예 통나무들로 얼기설기 엮고, 나일론 줄을 길게 늘여 나무사이를 엮어 맴.
30여분 원만한 비탈을 오르면 주치봉(683m) 11시 50분이다. 다시 한숨에 흐르면 호리골재라, 이곳은 탈출구가 별무신통하고 다시 잡목너덜을 오르면 널찍한 마당바위-좀 쉬어가자. 인문산행좀 하자.
13:20 구왕봉-신라 헌덕왕 5년(879년) 지증대사가 봉암사를 창건하며 그 자리에 있던 큰 연못을 메우다 아홉 마리용이 나타나므로, 신통력을 발휘 구룡봉(구왕봉의 옛 이름)으로 쫓고 절을 앉혔단다. 안개가 경계를 흐린다. 용이 무서운지 모두들 스쳐 지나는데 아니 이거 웬 복병? 난리 났다. 수직의 바위 길에 밧줄은 다 헐어 묶인 자리만 달랑달랑하고, 완전히 맨손 빙벽하산이다. 알고 보니 뭇사람(3조)은 일찌감치 은치재에서 하산했단다. 그러면서 나누는 소리들이, 우리가 왜 희양산까지 가냐. 다음 구간에 먼발치에서 보믄 되지. 첨서부터 지름티재에서 하산 할 양... 먼저간 3조 대원들이 벌건 토종닭 잡는데 힘들어 할 테니 빨리 가얀다는둥, 아야, 안되겠다. 혼자 미끄러지듯 바위를 탔다. 오른쪽 뺨을 큰 소나무에 찍혔다. 뒤돌아보지 않고 속도를 냈다. 13:45 지름티재 통과, 몇 겹으로 방패를 쳐 놓았다. 문경경찰서장과 봉암사 주지스님 백. -연중 기도처이니 절대 출입을 금합니다.-사각 현수막- 일체 중생이 번뇌 틀에서 벗어날 기약이 없으니 출가인은 이에 분발하여 사람마다 본래 구족한 불성을 바로 보아 사람과 천상의 스승 됨이라. -모르겠다. 곧장 희양산쪽으로 방향을 잡고 바위 길을 더듬으며 빙벽을 오르는데 선두(1조)꾼 들의 소리. 오른쪽으로! 오른쪽으로!-아하, 길을 잘못 잡았구나. 아니나, 대장과 앞선 셋은 미끄러운 긴 바위에서 고생좀 했네. 그 바람에 나는 쉽게 합류 할 수 있었고 희양산 역시 기분 좋게 보듬었다.
14:40 희양산 정상에서 내려다 본 봉암사전경은 너무 깔끔했다. 가람배치가 군더더기 하나 없고, 108평이나 되는 대웅보전 역시 대자대비 부처님 품이라. 장엄! 그 자체다. 성철 종정의 봉암사 결사 ! ? ! ? !!
허기 질까봐 김밥 한 통 배달 왔는데, 싫단다. 그냥 하산이다. 닭에? 술에? 사람에?
다시 대간 마루금을 타고 조금 내려서면 원형에 가깝도록 버티어 있는 성곽-고구려 신라의 국경인가, 아니면 옛 호족들의? 아닌데, 이곳 역시 봉암사 쪽으론 열심히 얽어 놓았다. 옛사람들의 싸움- 얼마나 인간적이었을까, 마주보고 창이나 칼, 주먹 꼬챙이 등으로 새쫒듯 워이워이 하다 지치면 낼 싸우자며 헤어지고...성터에서 왼쪽으로 길게 훑어 내리면 계곡 따라 깊어지고 똘똘 구르는 유리알 같은 물-엎드려 입으로 쭈욱쭈욱 빨아 마신다. 현주도 엎드려 빤다. 입이 빨대라니. 달다. 봄내음, 이게 초봄의 자연 향인가 보다. 계곡 물소리가 제법 굵게 우는 지점. 지름티재와 은치재에서 내려오는 길과 마주친다.
16:00 하산 완료. 은티마을은 생각보다 넓고 집들도 늘찍허니 개량들 했네. 은티마을구판장(민박.손두부.녹두전.토종닭 전문;043-833-5708) 이종숙 쥔 아지매는 못 말리는 양철북이다. 와, 젊은 각시가 천방지축이다. 귀가 멍멍하다. 어찌나 시끄러운지. 뭘 잘 못 먹었는지...
대장을 대신하여 내가 바람을 잡았다.
나 무건대로 니리옹께 꼬시냐? (1조 완주, 2조 지름티재, 3조 은치재로 하산)
얌마들아, 늘건 놈들마 멀리 돌아 오구로 하고...에그 꼬꼬댁.
계륵 씹으며 계속 막걸리 몇 동이 비우고...
오늘은 이상하게 이별 장면이 슬타.
믄 일일까!! 행복한 이별?
『당신이 행복하지 않다면
집과 돈과 이름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리고 당신이 이미 행복하다면
그것들이 또한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첫댓글 감사합니다.제종구선생님의 고구려기상그리고 가짐없는 큰자유 백두대간의 가짐없이 큰자유인 제정구 딱 들어 맞습니다.선생님의 백두산 정기를 주심을 감사합니다.큰힘을 카페에 주셨습니다.바계동의원도 기필코 되시길...
200일에 큰힘을 실어주셨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제 정구 선생님의 백두산 정기를 주심을 감사합니다.큰힘을 카페에 주셨습니다.감사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