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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천자국
최창조(崔昌祚)의 집에서 성도 수십 명을 둘러앉히시고 “각기 글 석 자씩을 부르라.” 하시니, 천자문의 처음부터 부르기 시작하여 덕겸이 일(日)자까지 부르니 말씀하시기를 “덕겸은 일본왕도 좋아 보이는가 보다.” 하시며 “남을 따라 부르지 말고 각기 제 생각대로 부르라.” 하시니라.
그 다음날 밤에 담뱃대 진을 쑤셔 내시며 덕겸에게 “한 번 만에 잡아서 놓치지 말고 뽑아 내어 문밖으로 내버리라.” 하시거늘 명하신 대로 하니 온 마을의 개가 일시에 짖어대는지라. 덕겸이 여쭈기를 “어찌 이렇듯 개가 짖나이까?” 하니
말씀하시기를 “대신명(大神明)이 오는 까닭이니라.” 하시니 또 여쭈기를 “무슨 신명입니까?” 하니 말씀하시기를 “시두 손님인데
천자국(天子國)이라야 이 신명이 들어오느니라. 앞으로 시두(천연두)가 없다가 때가 되면 대발할 참이니 만일 시두가 대발하거든 병겁이 날 줄 알아라.” 하시니라.
[道典7:47]
새로운 전염병의 시대가 도래하는가?
질병에 대항할 사회구조가 무너지거나 약해졌을때, 그리고 무분별한
개발과 더불어 문명의 교류가 활발해지고 인간의 생활권이 확대되면서 바이러스는 극성을 부려왔다. 황상익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의학사>
“인간의 역사는 질병의 역사”
<1>선천 인류의 병겁, 천연두
인류사는 질병, 그리고 그것에 대한 극복과 좌절의 역사다. 이렇게 말한다면
역사를 너무 편협하게 해석한다고 비난받을지 모른다. 그러나 질병만큼 시공을 초월해 인류를 괴롭혀온 것이 없으며, 인간의 노력 가운데 질병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울인 것만큼 지속적인 활동을 찾기도 어렵다.
질병은 나라와 사회의 존망을 좌우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역사의 방향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도 하였다. 우리는 흔히 역사 속에서 끔찍한 전쟁들을 떠올리지만 질병이 인류에게 준 고통에 비한다면 그야말로 사소한 것이었으며, 전쟁의 비극은 그것과 동반되는 질병의 만연으로 더욱 증폭되곤 하였다.
전성기를 구가하던 아테네와 로마제국 멸망의 중요한 원인으로 많은 역사가가 역병(疫病·대규모 전염병)의 만연을 꼽고 있거니와, 14세기의 흑사병은 유럽의 중세를 끝장낸 재앙이었을 뿐만 아니라 근대를 연 한 요인이기도 하였다.
질병은 인간의 의식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 예컨대 최근의 에이즈 대유행은 인류의 현재와 미래에 암울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으며, 동성애(자)에 대한 ‘부당한’ 핍박 등 성(性)과 관련한 인간의 의식과 태도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질병은 인류보다 몇백배나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질병의 역사는 생물의 역사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인간이 겪는 질병의 바탕에는 그러한 자연사(自然史)적인 특성도 있지만, 인류가 문명을 이룬 뒤에 더 중요하게 작용해온 것은 질병의 사회사(社會史)적인 측면이다. 인류는 역사와 문명의 진전에 따라 계속 새로운 질병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현대문명에 극단적으로 비판적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의 주장과는 달리 현대인은 과거 어느 시대보다 건강한 삶을 누리고 있다. 건강의 정도를 나타내는 지표가 여러 가지 있지만 그 가운데 수명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하자.
인류의 수명은 석기시대에 20세 미만, 고대 로마시대에 25세 가량, 산업혁명 초기에 40세 정도였으나 지금은 거의 70세에 육박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불과 50년 전에는 평균 수명이 40세 남짓이었는데 이제는 70세를 넘어섰다. 즉 20세기 들어 인간의 수명이 놀라울 정도로 늘어난 것인데 그것은 주로 영아사망률이 감소하고 많은 세균성 전염병과 몇몇 바이러스성 전염병의 발생이 줄었기 때문이다.
1880년대에 세균학이 성립된 이래 오랫동안 인류를 괴롭혀왔던 각종 전염병의 정체가 속속 드러났고, 이어서 항생제와 예방백신이라는 강력한 무기가 개발됨으로써 전염병 문제는 거의 사라진 것 같았다.
특히 1970년대에 "천연두"라는 끔찍한 바이러스성 질환이 완전히 퇴치되면서 전염병에 대한 인류의 자신감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의사들과 일반인들의 관심은 암 심장병 당뇨병 등 만성 퇴행성 질환으로 옮겨졌고 전염병은 별로 눈길을 끌지 못하는 것이 되었다.
1997년 4월7일, 세계보건기구(WHO)는 ‘세계보건의 날’을 맞아 “전염병 시대 다시 오다 ― 우리 모두 관심을, 우리 모두 대응책을”이라는 표어를 내걸고 모든 나라가 전염병에 진지한 관심을 기울일 것을 촉구했다. 세계보건기구가 자신에 찬 어조로 천연두가 완전 박멸되었다고 하면서 더이상 우두 접종이 필요 없다고 선언한 지 20년이 채 안 된 때의 일이다.
전염병 시대의 재래(再來)?
인류는 전염병의 정체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전염병에 걸려 고생하다 죽는 것을 거의 운명처럼 감수해왔다. 그러던 것이 19세기 후반 파스퇴르와 코흐등에 의해 전염병 가운데 많은 것이 병원성 박테리아(병원균)에 의해 생긴다는 것이 확인되고 20세기 들어서는 세균 이외에 바이러스와 곰팡이와 리케차 등도 전염병의 원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인류는 전염병 퇴치에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특히 ‘미생물 병원설(病原說)’이 확립된 1880년대 이래 여러 가지 항독소와 예방백신이 개발되고(우두는 이보다 한 세기 전에 도입되었다) 1940년대부터는 페니실린과 스트렙토마이신 등 각종 전염병에 특효를 나타내는 여러 항생제가 생산되면서 전염병은 그리 어렵지 않게 정복될 것으로 낙관했다.
그러나 그러한 성과와 ‘때이른’ 낙관을 비웃는 듯한 사태가 벌어졌다. 공교롭게도 천연두가 박멸되어가던 1970년대 후반 이래 C형 간염, 에볼라,출혈열, 에이즈 등 감염력 높고 치명적이기까지 한 30여종의 전염병이 발견된 것이다.
이와 함께 말라리아와 결핵 같은 ‘후진국형 전염병’이 최근 선진국에서조차 다시 기승을 부릴 채비를 하고 있다. 더욱 당황스러운 일은 항생제에 내성을 갖춘 새로운 균주들이 나타나고 있는 점이다. 대표적인 것이 1993년 방글라데시에서 발생한 새로운 콜레라(O-139)와 유럽과 일본 열도에 휘몰아쳤던 병원성 대장균(O-157)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10여년 사이에 많은 전염병이 새로 확인되었다. ‘농촌 괴질’이란 이름으로 70년대부터 농민들을 주로 괴롭혀 온 유행성 폐출혈열(렙토스피라증), 그리고 발진과 함께 고열을 동반하는 쓰쓰가무시병, 또 1993년 무렵부터 휴전선 일대의 군인과 민간인에게 발생한 토착성 말라리아가 그것이다.
세계보건기구가 <새로운 전염병 시대>를 경고하는 것은 이와 같은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그리고 세계보건기구는 특히 바이러스에 의한 전염병에 깊은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새로 출현한 바이러스성 전염병에 대해 살펴보기 전에 우선 인류를 오랫동안 괴롭혀 온 두 가지 질병, 천연두와 인플루엔자를 되돌아보는 것은 미래를 전망하는 데 하나의 시사점을 제공할 것이다.
역사 속의 바이러스성 전염병
사라진 문명이 있듯이 아예 존재 자체가 사라진 질병도 여럿 있을 것이다. 그 가운데 오늘날 그러한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천연두뿐이며, 인간의 노력으로 퇴치된 유일한 질병도 바로 천연두이다.
6·25 와중에 태어난 필자의 기억으로 어렸을 때 가장 무서워하던 병이 바보가 된다는 뇌염과 천연두였다. 그만큼 치사율도 높았고 후유증도 만만치 않았다. 실제로 초등학교 시절 학급에는 천연두의 흔적인 곰보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보다 연배가 7년쯤 아래인 세대부터는 곰보를 찾아볼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1959년에 마지막 천연두 환자가 보고된 뒤로 40년 가까이 새 환자가 한 명도 발생하지 않았으며, 세계적으로도 1977년 이후로 환자가 생기지 않아 세계보건기구는 공식적으로 천연두를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라진 질병으로 공표했다.
역사상 천연두의 존재를 분명히 확인할 수 있는 첫번째 사례는 기원전 1160년 무렵, 당시 이집트의 파라오 람세스 5세가 천연두로 사망한 사실이다. 인도에는 그전부터 천연두의 신을 모시는 사원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이 질병의 역사는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이다.
천연두는 곰보, 실명, 지체부자유 등 무서운 후유증도 남기지만 사망률 또한 높다. 독성이 강한 천연두의 경우, 특히 면역력이 없는 집단에서는 사망률이 90%에 이르기도 한다. 그 가장 유명한 피해 사례가 아메리카 원주민의 경우다.
아메리카 대륙에는 유럽의 침략자들이 들어오기 전에는 천연두가 없었으며, 따라서 면역력도 없었다. 약탈자들의 몸에는 총과 칼 외에 그보다 더 무서운 무기, 즉 "천연두 바이러스"가 있었다. 비극은 1518년부터 시작되어 31년까지 원주민의 3분의 1 이상이 천연두로 사망했다.
사망률도 높았지만 원주민들이 받은 심리적 충격은 그 이상이었다. 무서운 병이 도는 데도 신은 원주민들을 돌보지 않았다. 반면 에스파냐 무법자들은 끄떡 없었고 이를 본 원주민들은 저항의지를 상실했다. 찬란하고 평화로운 아즈테카 문명과 잉카 문명은 순식간에 허무하게 붕괴했다.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살아남은 원주민들에게 면역력이 생길 즈음에는 각각 홍역과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몰려들었으며 마지막으로 발진티푸스 병원체가 기진맥진한 원주민 사회를 덮쳤다.
300여년이 지난 뒤에야 존재가 밝혀진 이 눈에 보이지 않는 ‘괴물’들은 중남미 원주민 전체의 90%를 사망으로 몰고가 인류 역사상 최대의 참극을 연출했다. 이러한 비극은 다음 세기, 지금의 미국 땅에서도 재현되었다. "질병의 신"은 단연 유럽인들의 편이었다.
문명과 기독교를 앞세우고 의기양양 세계정복에 나선 백인들의 최대 무기는, 적어도 아메리카 대륙의 경우, 그들의 문명이 아니라 천연두를 비롯한 ‘문명병’이었다.
아메리카 대륙의 새로운 지배자들은 원주민들의 몰살로 노동력 부족이라는 예상치 못한 장애에 직면하게 됐다. 정복자들의 해결책은 흑인 노예의 수입이었다. 이로써 질병의 세계화와 더불어 세 대륙의 세 인종이 교류하는 인종의 세계화 현상이 나타났다.
천연두로 시작된 아메리카 대륙의 질병 대행진은 21세기를 눈앞에 둔 오늘날에는 ‘흑인문제’라는 병명을 가진 백인의 질병으로 이어지고 있다.
중세 말과 근대 초의 흑사병이나 신대륙의 천연두에 비해서는 사망률이 훨씬 낮았지만, 천연두는 유럽에서 19세기까지도 여전히 위협적인 질병이었다. 1680년 무렵 런던에서는 한해에 5000명 가량의 환자가 발생하여 그 가운데 20%인 약 1000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산된다. 19세기 초에 이르러서도 영국에서는 해마다 4만5000명쯤이 천연두로 사망했다.
이 무렵 유럽, 특히 영국에서는 천연두를 근절할 조치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불러 일으키기 위해 천연두의 끔찍한 개인적·사회적 폐해를 널리 알리는 활동이 활발하게 벌어졌다.
에드워드 제너(1749~1823)가 우두접종법을 발견한 것은 바로 이러한 배경에서였다. 제너의 종두법은 근 2세기에 걸친 천연두 박멸의 위대한 역사를 연 위업이었을 뿐만 아니라, 질병에 대해 진정 효과적인 처방을 처음으로 구사하게 된 근대화의 상징이었다. 조선시대 말 우리나라를 포함해 유럽 바깥 지역에 서양의학이 도입된 것은 종두법으로부터 비롯 되었는데 그것은 우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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