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다 맨발로 산길을 걷습니다
- 인도철학자 이거룡님
나비일지도 모른다. 물음이란 것도, 대답이란 것도. 아․름․다․운․인․터․뷰. 이 일곱 글자에 담긴 생명감. 팔랑팔랑 그 세미한 날개짓이 따뜻한 바람의 첫걸음이 아닐까. 그 바람자락을 걸어 이거룡선생을 만났다. 굳이 인도철학이란 말을 꺼내지 않아도 인도의 한 모퉁이를 연상시키는 모습. 희끗한 긴 머리와 소리 없는 웃음이 참 헐렁하다. 맨발에서 마음의 무장해제를 엿본다.
“낙동강가에 나를 가둡니다. 어둠을 기다려 별을 보려 합니다.”
한 지면에서 발견한 이거룡선생의 글이다. 詩的인 이 문장이 그를 찾아뵙게 한 작은 징검돌이 되었다. ‘가둔다’는 말과 ‘어둠’이라는 말이 가지고 있는 울림 때문이었을까.
명상센터도, 마음공부 한다는 이들도 제법 눈에 띈다. 하지만 시대는 갈수록 참 가파르다. 더 급하고 더 복잡하다. 정보가 넘쳐나지만 지혜에는 더 목마르다. 군더더기 많은 지식들이 영혼을 더 빈약하게 만드는 현실. 삶이 점점 의심스럽고 의문스러운 건 나 혼자만일까. 그는 묻는 행위 자체가 철학이고, 사는 것 자체가 종교라고 말한다.
“가둔다는 말은 어둠입니다. 깊이는 어둠에서 생기지요. 인도철학은 인도 이야기가 아니라, 오히려 나의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인도사상은 내면으로 떠나는 여행이기 때문입니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여행일 수 있으며, 바로 지금 여기의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첫 말로 시작된 가둠과 어둠의 얘기는 철학을 선택한 삶의 경위로 자연스레 이어졌다. 고향이 경북 평해인 그는 해운대에 있던 부산기계고등학교에 입학한 것이 첫 번째 가둠이라고 회상했다.
“한 달에 한 번 외박할 수 있는 기숙사 생활이었는데, 참 외로웠어요. 팔 남매 중 막내라 더 그랬지요. 사투리 때문인지 친구들과 소통이 어려워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았어요. 그때 어둠이 내린 듯합니다. 내면의 세계를 보기 시작한 거죠.”
그후 몇 차례 거친 삶의 길목을 지나, 한동안 산에서 독거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 무렵이 자신을 다시 가둔 때였다.
“약한 바람에 떠는 사시나무의 그림자가 뜰앞에 떨어지는 모습, 그 그늘은 정말 대단한 것이었어요. 어둠이란 바로 그늘입니다. 밤중에도 어둠을 응시하는 일이 많았지요. 추상적이 아니라 내면의 진정한 어둠이었어요. 그렇게 느낀 어둠이 가둠이 되면서 깊이와 고통의 문제를 고민하게 되었지요. 삶의 극적인 요소들은 모두 어둠과 관련된 것임을 깨달았어요.”
문득 심해물고기 한 마리가 머릿속을 스쳐갔다. 고생대의 바다 같은 심해에서 존재는 스스로 빛을 내어야 한다. 떠올려보라. 깊은 어둠에서 투명하게 빛나는 고독한 물고기를. 아마 깊이의 아름다움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동국대 대학원에서 인도철학을 공부한 후, 그는 본격적으로 어둠을 보는 눈을 위해 인도로 떠났다. 마드라스대학과 델리대학 대학원을 마치는 동안 그 어둠은 무수한 층의 깊이를 만들었으리라.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어둠을 싫어한다. 어둠을 직시하는 걸 두려워하며 고통과 연결한다.
“우리는 개념에 대한 오해가 많아요. 체념이란 말도 그렇지요. 체념의 첫 번째 사전적 의미는 ‘도리를 깨닫는 마음’입니다. 모든 건 양면성이 있는데, 포기나 어둠 등도 부정적인 측면만 강조된 거지요. 이 편견은 서구 합리주의와의 상관관계에서 작용하는 겁니다. 이성이란 투명하다는 의미인데, 투명하다는 건 그만큼 얕다는 말이지요. 합리주의의 원천적인 한계이기도 합니다. 깊이는 어둠에 있지요. 내면으로의 침잠은 곧 우주로의 확산입니다. 내면의 세계에서 침잠과 확산은, 칠판에서와 달리 한 방향으로 그려지지요. 이것이 범아일여입니다. 세계화도 바로 이런 시각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지요. 나는 가장 나다울 때 세계적인 인물이 되는 것입니다.”
문득 어둠을 기다려 별을 보려한다는 메시지가 시대의 절실한 숙제처럼 여겨졌다. 기다림이 사라진 우리 문화를 떠올리면서 현실적으로 직면한 문명의 폭력성에 관해 말을 이었다. 폭력적인 속도, 폭력적 언어, 폭력적 교육, 희망과 절망조차도 폭력적이다. 이러한 현상에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
“폭력이란 자기중심이란 말입니다. 비폭력이란 자기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난다는 것이지요. 인간 중심에서 자연이 개발대상이 된 것은 폭력입니다. 그동안 서구적 사고로 이해하고 있지만, 사실 중심이란 無化입니다. 제로 포인트, 즉 X좌표 Y좌표 어디에도 값을 가지지 않은 상태, 없는 듯 있어야 제대로 중심이 됩니다. 사람이 중심이라고 생각한다면, 사람이 가장 많이 포기해야 할 존재라는 말이지요. 가정에서 어머니가 중심인 이유는 그가 제일 많이 포기하고 있음입니다. 물론 그 포기는 가능한 것에 대한 포기입니다. 자식들보다 밥을 더 먹을 수 있지만 나는 배부르다고 말하는 것이지요. 천성산 문제도 마찬가지예요. 산을 뚫어 길을 낸다면 편하겠지만, 가능한 그것을 절제하고 자연을 배려해야 하는 거지요. 그때 진정한 중심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겁니다. 그게 수행이구요.”
그는 아내와 함께 아침마다 맨발로 쇠미산 산길을 걷는다고 했다.
“튼튼한 등산화를 신고 산을 오르는 것도 하나의 폭력일 수 있습니다. 맨발로 산길을 걷다보면 위를 보고 걸을 수가 없어요. 눈을 항상 아래로 하고 마음을 낮추게 되지요. 그건 더 미세한 눈을 갖는 것입니다. 벌레를 밟을까 조심하게 되고, 나무뿌리도 함부로 딛지 않게 되지요. 그런 겸허함이 공부가 아닌가 싶어요.”
서재 구석에 낯선 악기가 눈에 띄었다.
“누구나 쉽게 다룰 수 있는 하모니윰입니다. 인도에서는 구루(선생)들이 설법하기 전 이 악기에 맞추어 노래하곤 하지요. 길거리 구걸하는 아이들도 즐겨 매고 다니는 악기예요. 인도에서 늘 가까이 두고 외로움을 나누던 제 절친한 친구입니다. 가끔 저 하모니윰을 매고 길거리로 나갈까 하는 충동이 일지요. 악기를 다루며 노래하는 장면을 보면 지금도 가슴이 떨립니다.”
아직도 그는 심금을 울리는 서정을 꿈꾸는 걸까. 아름다움은 자연스러움이며, 자연스럽다는 건 이유가 없다며 웃었다. 중3때 읍내 전파사 앞에서 들은 ‘사랑의 스잔나’를 무척 좋아했다던 그는 지금 종종 만트라를 통한 명상을 즐긴다. 그는 자유도 그렇게 가꾸는 걸까.
“자유에 이르는 길은 다양하지요. 분명한 것은 자유란 이유가 없습니다. 그래야 자유라 할 수 있지요. 조금씩 우연히 그 잡히지 않는 세계에 다가가지요. 그러나 우연은 우연히 일어나지 않습니다. 특히 제 경우는 그렇습니다. 요즘은 문득 개념의 둑이 터지는 경험을 합니다. 거창한 건 아니고요. 그럴 때면, 아, 자유란 이런 거구나! 느끼지요.”
자신을 낙동강가에 가둔다는 것은 그가 화명동에 문을 연 리아슈람 요가학교를 의미하는 말이었다. 이거룡선생은 리아슈람을 하나의 실험실로 생각한다. 고대 요가경전들과 현대 전통적 수행처들을 비교하면서 실질적 수행에 대한 전체적인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그는 서울불교대학원대학 교수로 있으면서, 동의대 철학과 박사과정과 리아슈람에서의 철학 강의, 다양한 대중강연에 시간을 쪼개고 있다. 번역한 라다크리슈난의『인도철학사』와,『두려워하면 갇혀버린다』,『아름다운 파괴』,『인도사원 순례』등의 저서들도 깊이를 꿈꾸는 사람과의 교류를 끊임없이 모색하는 열정에 다름 아니리라.
“철학이 부재하는 건 재미가 없는 까닭입니다. 삶과 동떨어진 철학이기 때문이지요. ‘개똥철학이라도 좋다. 재미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평소 신념입니다. 그러나 재미있다는 것은 깊고 깊다는 의미지요.”
그는 포기의 철학자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쉽다. 편안하고 명쾌하다.
“언제 어떻게 포기할 것인가가 제 삶의 명제입니다. 물론 그 포기는 가능한 것에 대한 포기이지요. 나이가 들면 숙명론자가 되는가 봐요. 내 의지대로 산다고 믿었지만 지나고나니 운명을 따라온 것을 알게 됩니다. 지금은 운명에 감사하는 마음이지요. 낙동강가가 와있어야 했던 자리임을 깨닫게 됩니다.”
이거룡선생의 부드러운 웃음은 깊은 수심층에서 길어올린 것. 낙동강가로부터 번져오는 그 겸허한 유쾌함으로 이 도시의 가을 속에 미세한 변화가 일고 있음이 분명했다. 돌아오는 길, 바람도 숲도 깊어가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