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시 증산면
2005년 3월 1일 독도같은 오지에
발을 디뎌
산이 좋아, 물이 좋아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이 좋아서
내 삶을 조용히 반추하는 시간이 좋아서
그런저런 이유로 1000고지로 둘러싸인
분지를 누빈다.
어디엔들 학교가 있는 곳엔 명륜의 꽃이 피어 있겠지만
나도 그 꽃 중의 한송이이기를
소망하면서.
그래서 아이들과 동료와, 산골 사람들과
자연과 그렇게 일년이 지나고
1973년 교직으로 들어서면서
잊고 있었던 명륜동으로 가는 추억을
증산에 숱한 이야기를 묻고
교적비로 남은 세 폐교 터를 둘러보면서
되새겨 본다.
개인에게 임대되어
닭들의 놀이터가 된 운동장과
흔적만 남은 건물의 잔해
잡초 속에 드러내기 부끄러운 듯 숨어있는
교적비로 남은 '수도분교'.
2004년 개인에게 매각된
증산의 나이애가라 장전폭포 옆의 '장전' 배움터
창틀마저 다 떨군 2층 건물의 스산함을
등에 지고 있는 교적비는]
얼마나 저 자리에 버티고 서서
폐교의 쓰린 기억을 일깨워 줄까?
고추밭을 일군 순박한 농부가
계면쩍은 웃음으로
"노는 땅이라 고추좀 심었심더."
한때 몇백의 아이들이 밟던 '남곡'
못질된 건물 출입구마다 서글픔을 안고
되돌아 섰을 졸업생들의 발걸음이 허공에서
교문 옆에 교적비로
그들을 대변할 수 있을지?
무성한 거목들의 몸짓은
오랜 역사의 종지부에 대한 슬픔과 안타까움만이
돌아오는 내 등 뒤에서
1978년 우리네 가슴에 묻은
보금자리를 더듬게 한다.
명륜 교우들
가슴에 묻은 우리들의 뜰악을 거닐면서
지금 만발한 꽃을 보면서
누가?
그들의 가슴깊은 곳에
영원히 남을 교적비를 세울 것인가?
'우리'로 묶어 줄 것인가
카페 게시글
명륜마당
증산에 갈 때
산돌
추천 0
조회 9
06.09.18 12:40
댓글 0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