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5년 2월23일, 미국 시카고에 있는 광산기사 구스타브스 로어(Gustavus E. Loehr)의
사무실에서 양복상을 하는 하이램 쇼리(Haram E. Shorey), 석탄상인 실베스트 쉴(Shilvest Shiele), 그리고
변호사인 폴 해리스(PaulP. Harris)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그 당시 미국은 경제 공황과 전염병의 유행,
대화재 등으로 인해 사회는 극도의 혼란에 빠져 인정은 메말랐고, 기업인들 사이에서도 반목과 갈등이
극에 달해 기업윤리는 황폐화 되어 있었다.
이러한 사회상을 걱정하던 이들은 봉사의 정신으로 인화를 도모하는 것만이 보다 나은 사회를 건설하는 길이
라는데 의견을 같이했다. 이 자리에서 폴 해리스는 서로 다른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한 사람씩 모여 시일
을 정해 정기적인 모임을 가짐으로서 서로간 친목을 도모하고 각자의 직업에 대해서 상부상조할 수 있는
클럽을 만들자고 제안하였고, 다른 세 사람도 모두 동의했다. 그들은 한결같이 "만일 우리들이 정기적으로
만날 수 있다면, 마음으로부터의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이라고 되풀이해 말했다고 한다.
두 번째 모임은 그로부터 2주일 뒤인 3월9일, 해 리스의 초청을 받고 온 인쇄업자 인 해리 러글스(Harry
Ruggles)와 부동산업자인 윌리엄 젠센 (William Jensen)을 입회 시킨체 이들 여섯 사람이 모여 첫 주회를 가졌
니 이것이 바로 세계 최초의 로타리클럽인 시카고로타리클럽의 창립총회인 것이었다.
이어 3월 21일 주회에서는 쉴을 회장으로 하는 집행부가 구성되었으며 정식으로 "ROTARY"라는 명칭이 채택
되었다. 이것은 임원의 임기를 1년마다 돌아가며 하기로 한 것과 회합장소를 윤번제로 하여 회원의 사무실을
돈다(rotate)는 뜻에서 비롯되었다.
로타리 마크(Mark)도 같은 맥락으로 회원의 한 사람인 Montague M.Bear가 제안한 마차차륜이 기초가 되어
그동안의 변천을 거처 오늘에 이른 것이다.
1906년 1월 처음으로 마련된 정관의 강령을 살펴보면 제1조. 회원간 사업상의 거래증진으로 이익을 진흥할
것과, 제2조 사교클럽에 합당한 친목과 기타 바람직한 모든 점을 진흥한다는 것으로 되어 있어 초창기의 모
임의 특성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회원들 중에 이 같은 강령은 다만 회원의 이기심만을 추구하는 것으로, 정작 자신들이 추구하는 사회
적 활동의 의미가 결여되어 있다고 지적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므로 이듬해 제3조를 추가하게 되었다.
제3조는 시카고시의 이익 증진과 시민들에게 시에 대한 자부심과 충성심을 보급할 것으로 했다.
이로서 로타리운동은 단순히 회원간의 이익추구에만 머물지 않고 지역사회에 봉사하고 지역사회를 개
선해 나가는데 까지 그 목적을 확산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