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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전승주체 경북 울진군 기성면 방율리 마을주민 2.전승내용 1. 마을개관 방율리의 속명은 ‘월야月夜’이다. 정선의 전모全某라는 선비가 구내區內에 옥면망월형玉免望月形이 있어 ‘옥야’라고 불렀다고 전한다. 그리고 방율리의 앞산을 문장대文章臺라 하고, 그 봉우리를 문장봉文章峯이라 했다. 그 뒤 마을 주위에 질이 좋은 밤나무가 많기 때문에 마을 이름을 ‘감율甘栗’로 개칭했다.
1) 신격과 영험성 주민들은 동제를 ‘당제’라고 부른다. 이 마을에 좌정한 신은 성황신과 ‘두신’이다. 이규탁 씨에 의하면 두신은 성황신을 모시는 하위신이라고 한다. 신앙심이 깊은 사람은 성황당 앞을 오갈 때 공손하게 인사를 드렸다. 어른들의 행동을 따라 배운 학생들도 등하교 길에 성황신에게 절을 했다고 한다. 예전에는 동제를 마치고 시루에서 떡을 꺼낼 때 떡이 “똑바로 앉으면” 동제를 잘 지낸 결과로 생각한 반면 떡이 엎어지면 동제를 잘못 지낸 것으로 여겼다. "시루를 갖다가 다라 같은데 떡을 비우잖아요. 그때 떡이 바로 앉으면 정성이 들었다 그러고 엎어지면 정성이 안 들었다 이랬는데. 그거는 이치가 바로 앉게 돼있어. 어디라도 한 쪽이 떨어지지 똑같이 떨어지진 않을 거란 말이야. 한 쪽이 들어지면 그게 뺑 돌면 반드시 자빠지지 않게 돼있어요. 비울 때 바로 앉아야 정성이 들었다 그러는데 말하자면 엎어지면 밥상 엎어지듯이 정성이 안 들었다 이런 얘기죠." 이상로(남, 75세, 2009년 1월 8일). 떡이 엎어지면 제관은 바로 성황신을 찾아 정성을 다하지 못한 자신들의 잘못을 빌었다고 한다. 2) 제의의 시공간 예전에는 대보름 자시에 동제를 지냈다. 그러다가 대보름을 명절답게 보내고 밤에 제사를 지내는 불편함을 덜기 위해 제일을 하루 앞당겨 정월 14일 낮에 동제를 지낸다. 한편 약 20년 전에는 유두날이 되면 주민들이 ‘노치떡'(가마솥 두껑을 뒤집어서 거기에 전병처럼 솥두껑 하나 가득 쌀가루로 떡을 부친 것으로 주민들은 커다란 떡 한 판을 ‘한 반디기’라 부른다.)을 만들어 장군바위를 찾아 농가의 큰 재산인 소가 탈 없이 자라게 해달라고 치성을 드렸다. 구전에 의하면 해마다 여름철에 소를 비롯한 가축들이 이유 없이 많이 죽었다고 한다. 그런 가운데 촌장의 꿈에 산신령으로 보이는 노인이 나타나서 “장군이 말 타고 지나간 바위가 노하였다.”고 말하며 장군바위를 잘 보호하라고 일렀다. "약 이십 년 전만해도 우리 상촌에서는 소 가진 분들은 정성 많이 들였습니다. 소를 잘 키워달라고 말이야. 당연히 미신이겠지만 그날은 몸가짐을 단장했습니다. 큰 노치를 해서 소 하나 사람하나. 소 두 마리 먹이면 사람까지 세 개, 이렇게 만들어서 이 마을 자체 상이 있었어요. 제일 성의 있게 제일 잘 해온 분은 일등이고, 그 다음 이등, 삼등까지 이랬어요. 상도 주고 그랬다고." 이능표(남, 74세, 노인회장, 2009년 1월 15일). 주민들이 돼지를 잡아 장군바위 밑에서 제사를 지내고부터 이유 없이 가축들이 죽는일이 사라졌다고 한다. 장군바위를 찾을 때에는 각 가정에서 키우는 소의 숫자만큼 떡을 만들고 주인 몫으로 떡을 하나 더 만들었다. 유두에 주민들이 모이면 어느 집에서 정성껏 떡을 만들었는지 우열을 가리기도 했다. "그 전에는 한 군데 안 지냈어. 그러니까 그 아래쪽이지 제당이. 두신은 이쪽 건너에 별도로 제사 드렸는데 한 80년 전부터 밤에 바람이 불고 불편하니까 합쳐서 같이 지내자 그래가지고 같이 지내기로 했어요." 이규탁(남, 81세, 2009년 1월 8일). 밤에 두 군데에서 제사를 지내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현재 두신이 좌정했다고 하는 돌의 흔적은 찾아 볼 수 없다. 약 10년 전에는 동제를 5일 앞두고 마을회관에 주민들이 모여 제관을 선출했다. 주민들이 모이면 서로 할 만한 사람을 추천해 제관을 3명 뽑았다. 제관에게는 금기를 지키는 3일 동안 마을에서 닭을 잡아주는 등 대우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에는 끼니 걱정을 덜기 위해 제관을 하려고 나서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경제사정이 좋아지고 주민들이 노령화되면서 서로 제관을 기피했다. "옛날에는 열하루날 장보면 금삭쳐요. 금색 쳐 놓고 장보러 가거든. 그때부터 제관은 못나오지. 그 집에서 맨날 목욕재계하고 찬물에. 이제는 모두 연세가 높고 하니까 힘들어서 바꿨어요." 황병남(여, 80세, 2009년 1월 8일). 대부분의 주민들은 제관 선출방식을 바꾼 것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2009년에는 14일 오전 10시경 마을 어른들이 회관에 모여 임의적으로 제관을 정하고 당사자들에게 통보하는 형식으로 제관을 뽑았다. 이날 상제관에 이능표 씨, 종제관에 김종수, 장세현 씨, 축관에 이정노 씨가 각각 선출되었다. 굳이 제관이 아니라도 여러 명의 남자들이 동행한다. 다만 본인의 몸이 좋지 않거나 집안에 유고가 있는 사람은 예나 지금이나 제관을 시키지 않는다. 4) 금기와 정화 제관 선출방식이 변하면서 제관은 물론 주민들도 예전과 같이 까다로운 금기를 수행하지 않아도 된다. 요즘에는 13일에 주민들이 마을회관에 모여 왼새끼를 꼬고 사이사이에 한지를 꽂아 금줄을 만든다. 주민들은 금줄을 ‘금삭’ 또는 ‘금삭줄’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만든 금줄은 성황당에만 친다. 누구라도 제관을 맡을 수 있기 때문에 금줄을 치고 나면 제관과 주민들 모두 백암온천에 목욕을 하러 간다. "초저녁에 목욕을 하고 들어 와가지고 또 제물 갖다놓고 또 거기서 목욕해요. 그러니까 요즘은 춥거나 말거나 방에 들어가니까 덜하지. 그러니까 사람 얼어 가지고 있지 머." 이상로(남, 75세, 2009년 1월 8일). 하지만 제관 선출방식이 바뀌기 전에는 제관을 비롯해 주민들 모두가 까다로운 금기를 수행해야 했다. 제관은 본인의 집에 금줄을 치고 황토를 뿌려서 부정한 사람의 출입을 막았다. 그리고 ‘판관’의 집에서 3일 동안 숙식하며 매일 찬물에 목욕재계를 했다. 금줄을 치고 나면 각 가정에서는 빨래를 하지 않았으며 개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키우던 개를 방에 가두어 놓기도 했다. "금줄 치면 빨래도 안 해요. 또 인제 개 키우면 개를 방에다 가둬. 밖에 내 놓는 거 짖지 못하게. 전에 마실에 있는 사람이 제사 올리는 날에는 이쪽으로 못 건너가. 제관이 왔다 갔다 하기 때문에 길 먼저 건넌다고 해서. 보통 사람은 산 밑으로 다니지 큰 길에는 잘 안 다녀. 제관 때문에." 이규탁(남, 81세, 2009년 1월 8일). 한편 동제를 지내는 당일에는 제관들이 다니는 길로 주민들이 다니지 않았다고 한다. 제관이 갈 길을 먼저 가면 부정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제비는 마을기금으로 마련한다. 마을재산으로는 동답 2마지기(한 마지기 200평)와 동산이 있다. 동산에는 송이가 나기 때문에 입찰을 통해 외지인에게 채취권을 준다. 채취료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대체로 연간 2백만 원 수준에서 결정된다. 동답에서는 해마다 10만 원 정도의 수입이 발생하는데 여기서 나온 돈을 모아 두었다가 제비로 사용한다. 2008년에는 송이채취료 2,100,000원과 동답에서 나온 수익금 70,000원을 마을기금으로 적립했으며, 목욕비 230,000원, 제물구입비 313,000원 등을 제비로 지출했다. "새벽 남들 일어나기 전에 출발해야지. 그 날은 동네 사람들이 알기 때문에 전부 일찍 안 나가. 아는 사람 만나도 인사도 안하고 일찍이 가지만 장꾼들을 만나도 자기들이 먼저 피해버려. 우리 장에 가면 물건 파는 사람들도 제관이 나왔다는 걸 아는데 값을 얼마 달라면 깍지도 안 해." 이규탁(남, 81세, 2009년 1월 8일). 2009년에는 14일 아침 7시 30분경에 유사 장세현 씨와 남병기 씨가 후포장을 찾아 제수를 구입했다. 마침 그 날이 후포장날이어서 기성장을 찾지 않았다. 제수를 구입하고 오전 10시경에 마을회관에 돌아왔다. 제수는 주방에 보관했다. 이날 구입한 제수는 건어, 명태, 가자미, 문어, 소지 창호지, 양초, 김, 대조, 건시, 고사리, 대근, 음료수, 소주, 제주, 맛소금, 미역, 초장, 제미, 회 등이다. 제물의 종류는 예나 지금이나 같지만 양을 조금 줄였다. 메와 탕은 동신의 숫자대로 3개씩을 만든다. 어물은 문어 한 마리와 명태, 가자미를 각각 세 마리 찐다. 예전에는 많은 공을 들여 어물을 구웠다. ‘샛겨불(벼 껍질을 이용해 피운 불)’에 구운 어물이 제대로 익지 않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어물을 구울 때 나는 냄새는 들짐승들을 유인하기 때문에 감시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어물 구울라면 골탕 먹어. 왜 그러냐면 샛겨를 불에다가 태워. 태워 버리면 재가 되거든요. 그거를 까맣게 태우는 거야. 그 위에다가 어물을 구워요. 그러니 시간이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한 명은 고양이 같은 거 못 오도록 감시를 해요. 감시해 가면서 어물을 굽지. 제일 힘든 거는 닭고기 같은 거. 그러나 그거는 올케 못 익어." 이규탁(남, 81세, 2009년 1월 8일). 나물은 고사리, 도라지, 시금치를 쓰며 제주는 시중에서 구입한 막걸리를 사용한다. 떡은 쌀 3되 정도를 사용해서 백설기로 만든다. 이밖에도 대구포와 대추, 밤, 곶감 등의 과일을 준비한다. 대구포를 구하기 힘들면 명태포를 쓴다. 6) 제의의 절차와 내용 제사 시간이 다가오면 제관들은 각자의 집에서 옷을 갖춰 입는다. 보통 바지저고리에 두루마기를 입고 유건을 쓴다. 2009년에는 오전 11시 25분에 제관이 트럭에 제물을 싣고 마을회관에서 제당으로 옮겼으며, 제관이 아닌 주민 5명이 동행했다. 11시 30분경 제당에 도착해서 진설을 시작했다. 축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