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갈림길에서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은 많은 불확실성을 함께 가지고 가게 됩니다. 그러나 그 불확실성을 불식시킬 수 있을 만큼 기대치가 높거나 수익성에 대한 자신감이 있다면 그 길을 선택하고 도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결과는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지만 선택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시도조차 할 수 없는 벽이 존재하게 되는 것보다는 도전의 길을 열어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의 통신업체에서 의욕적으로 준비했던 하나의 사업, 신성장 동력 사업이 시작도 하기 전에 큰 벽에 부딪치게 되었습니다. 바로 “위성 DMB(Digital Multimedia Broadcasting,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 사업이 그것입니다.
위성 DMB 사업은 위성을 통해서 걸어 다니거나 차량 등으로 이동을 하면서 방송과 음악 등의 멀티미디어 방송을 받을 수 있도록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입니다.
시간과 장소의 구애를 받지 않고 관련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는 측면에서 새로운 미디어 산업으로 각광받고 있었으며, 지난 3월엔 “한별 1호”가 발사되고 중계기(Gap Filler, 갭필러) 등이 설치되었으며, 소비자가 수신할 수 있는 휴대용 단말기 개발에도 성공하여 위성 방송을 송수신할 수 있는 조건을 모두 갖추었습니다.
기업들이 이러한 투자와 노력을 하게 된 가장 큰 요인은 통신시장 성장세의 둔화로 인해 예상되는 수익성 악화 때문일 것입니다. 즉 예상되는 수익성 악화를 가만히 앉아서 보고 있을 수는 없기에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려 하였고, 급격한 기술발전을 바탕으로 통신서비스와 방송서비스의 융합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통신과 방송의 융합에서, 위성 DMB 사업은 초고속망 인프라와 통신서비스 인프라, 기술적인 문제에 의해서 일본을 제외한 다른 나라에서는 아직 쉽게 접근할 수 없었기 때문에 우리의 통신업체는 세계 최초라는 선점효과를 누리기 위해서 매우 빠른 행보를 해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정부부처간 이권개입으로 인해 늦어진 방송법 개정에 이어, 지난 10월 6일 방송위원회(이하 방송위)에서 ‘위성 DMB의 지상파 재송신 불가’를 발표함으로써 위성 DMB의 상용화 시기는 더욱 늦춰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반면에 우리와 치열한 경쟁을 펼치던 일본은 정부의 대대적인 지원에 힘입어 지난 10월 20일 MBCo에 의해 국가기간방송인 NHK의 프로그램이 포함된 40개의 채널을 가지고 세계 최초로 위성 DMB 상용화 서비스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유일한 예비 사업자인 TU미디어와 지상파 방송(SBS, MBC 등)간에 지분참여가 이루어져서 사실상 업무협조가 가능하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방송위에서는 서비스의 시작 시점이 다르면 지상파 DMB와 위성 DMB 사업간의 경쟁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를 들어 지상파 재송신을 불허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위성 TV인 스카이라이프의 예를 통해 지상파 방송의 재송신이 뉴미디어 산업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스카이라이프는 KBS1, EBS만을 재송신하다가 지난 9월이 되어서야 KBS2도 방송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반쪽짜리 서비스로 인해 스카이라이프는 가입자 유치를 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고, 아직까지도 적자상태에 있습니다.
실제로 지상파 재송신 불허와 관련, TU미디어측이 4차례 수요조사를 벌인 결과에 따르면 위성 DMB 가입의향이 있는 사람 32% 중 지상파를 볼 수 없어도 가입하겠다는 사람은 61%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조사는 신규 방송매체 산업의 시장진입을 위해서는 기존에 있는 인프라와 접목(지상파 재송신 등)시켜 발전시켜 나가야 함을 보여주는 사례인 것입니다. 따라서 위성 DMB 시장의 초기 정착에 매우 중요한 요인인 지상파 재송신을 불허함으로써 사실상 위성 DMB 시장의 상용화를 일시 정지시킨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방송위의 결정이 앞으로 위성 DMB 사업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지와 다른 신규 투자에 어떤 효과를 줄 것인지를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위성 DMB 사업과 관련해서는 무엇보다 서비스의 상용화 시기가 늦춰질 수밖에 없게 된다는 점이 가장 큰 영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상파 TV사의 준비과정에 따르면 지상파 DMB의 사업자 선정이 내년 2월경에 결정될 예정이므로 위성 DMB의 지상파 재송신 여부의 판단은 그 이후에나 가능하게 될 것입니다.
지상파 재송신 여부가 위성 DMB 사업의 성패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과 시장형성 초기의 폭발적인 홍보효과를 통해 수요를 창출하여 빠른 시간내에 정상궤도에 진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이러한 부분에서 난관에 부딪쳐서 사업자는 관련사업의 상용화를 당분간 유보시킬 가능성이 커지게 되었습니다.
둘째, 상용화가 늦춰질 것이 예상됨으로 인해 위성 DMB 사업의 수익성에 대한 불확실성 증가하게 됨으로써 사업자체의 지속성 여부가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이번 결정으로 유료 신청자 숫자가 크게 감소할 것과 상용화 시기가 늦춰지는 동안의 운용비용 등을 고려하여 TU미디어측에서는 추가적인 증자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는데, TU미디어에 참여하고 있는 SK텔레콤, 삼성전자, LG전자 등은 상용화 시기가 미루어지자 수익성 악화 등을 이유로 추가 증자에 대해 난색을 표명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TU미디어에 대한 은행대출이 어려워져 자금 확충을 하는데 한층 어려움을 가중시키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으로 일부 주주들은 이번 결정에 의해 TU미디어가 2006년이면 자본 잠식이 발생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동안 투자된 비용과 시간 등을 고려하면 사업은 지속되겠지만, 퇴보한 시간과 증가된 비용에 대한 대가는 관련 사업자를 상당히 힘들게 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셋째, 위성 DMB 사업과 관련된 단말기 제조업체, 부품 제조업체, 소프트웨어 업체 등은 수 백억원에 달하는 많은 개발비와 투자비를 회수할 방안이 없어져 수익성 악화뿐만 아니라 일부 업체의 부도까지 예상되고 있습니다.
초기 참여 기업들은 세계 최초라는 선점효과와 국내 위성 DMB 시장의 활성화를 바탕으로 해외 시장에 진출할 기회로 보고 막대한 투자를 하였는데, 방송위의 이번 결정으로 국내 시장의 축소 및 상용화 시기의 늦춰짐 등이 해외 진출을 하는데 큰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판단됩니다.
또한 이번 결정은 눈에 보이는 이러한 문제 외에도 신규 투자에 과한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 잠재적 시장 진입자의 행보를 늦추게 만들어 위성 DMB 시장의 경쟁을 저해하게 하는 효과를 가져왔다는 것입니다.
SK텔레콤에서 주도하는 TU미디어의 빠른 사업 진행에 맞서, 수면 위로 올렸던 KT의 위성 DMB 사업도 서비스를 시작하기도 전에 중대한 위기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KT는 2003년 위성 DMB 사업에 필요한 위성 주파수 대역을 확보하고 있었으며, TU미디어의 행보를 주시해오고 있었는데 현재는 사업자체에 대한 재검토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지상파 DMB 사업과 위성 DMB 사업간의 경쟁만을 생각하여 위성 DMB 시장 내의 경쟁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둘째, 기업의 신규 투자에 대한 정부기관의 직접적인 개입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는 국내 기업간의 경쟁시대에서 세계 대기업과의 경쟁시대로 접어들었으므로 경쟁법에 의한 시장정의를 보다 크게 획정하여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을 차치하더라도, 기업의 신규 투자에 관한 선택은 그 사업에 대해서 가장 잘 알고 있는 당사자들이 시장에 의한 미래의 불확실성을 감안하고 결정한 사항이기 때문에 기업에게 맡겨두는 것이 적합하지, 정보가 상대적으로 부족한 정부기관의 개입을 통한 결정은 부적절하다는 것입니다.
정책당국자들은 이번 위성 DMB 사업과 같은 신규 투자에 대한 규제 수준이나 가이드라인 등을 결정할 때, “통신시장의 급속한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은 시장형성 초기의 정부의 무간섭과 사업자의 집중적 투자가 있었기에 가능하였었던 것이지, 비대칭규제와 가격규제로 대변되는 규제의 시기에서 크게 발전한 것은 아니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고, 다시는 야심적으로 준비한 사업이 사업의 성패와는 직접적으로 상관없는 다른 부수적인 요인들로 인해 사업이 지체되거나 포기하게 되는 상황은 나타나지 않게 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