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11.09 18:39
'감독 선동열'의 실패 연구
/연합
류중일, 염경엽, 김경문, 양상문. 2014 한국프로야구 포스트시즌에 초대받은 감독 4인이다. 가을야구에 초대받지 못한 감독 5인 김응룡, 김시진, 이만수, 선동열, 송일수는 우울한 가을을 보내고 있다. 이들 중 KIA 선동열을 제외한 이만수·송일수·김시진·김응룡은 이미 모두 전직 감독의 신분이 되었다.
선동열(51) 감독은 4강 실패 감독 중 유일하게 재계약에 성공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KIA 팬들의 선동열 감독과 KIA구단에 대한 원망은 하늘을 찌른다. 팬들은 “선 감독이 KIA 팀을 망쳐 놓았다”고 주장한다. 그런데도 KIA구단이 선 감독을 재신임했다는 것이다.
선 감독은 현역 시절 설명이 필요 없는 한국 야구 최고의 스타였다. 국보급 투수라는 별명은 전혀 과장된 게 아니다. 일본 프로야구에 진출해서도 명성은 여전했다. 그는 주니치 드래곤스의 태양이었다.
지도자로서의 선동열은 어떤가. 그는 삼성 라이온즈 감독으로 6개 시즌(2005~2010)을 보냈다. 2005~2006시즌은 정규시즌 1위에 이어 한국시리즈도 우승했다. 그러나 2007~2010 4개 시즌에서 삼성은 한국시리즈 우승컵을 SK 3회-KIA 1회에 넘겨주었다. 2009시즌에는 포스트시즌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5위를 기록했다. 그는 2010년 12월 경질됐다.
1년을 야인으로 보낸 그는 2012년부터 고향팀인 KIA 타이거즈 감독을 맡았다. 전임자인 현 KT 위즈 조범현 감독은 3개 시즌을 맡아 4강에 두 번 올려놓았고, 2009년에 정규시즌과 한국시리즈 우승을 동시에 거머쥐었다. 조범현 감독은 하위권에 맴돌던 팀을 상위권 팀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선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뒤로는 3년 연속 4강 탈락이다. KIA는 2012년 5위, 2013년 8위, 2014년 8위를 각각 기록했다. 삼성 시절까지 포함하면 선 감독은 7개 시즌 동안 한국시리즈 우승컵에 입을 맞추지 못했다. KIA 팬들은 왜 선 감독이 KIA를 망쳤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기자는 야구팬이다. 인기 팀의 경기는 퇴근길 버스 안에서 빼놓지 않고 DMB로 시청한다. 물론 야구장도 1년 평균 3~5회는 찾아간다. 야구팬들은 TV나 DMB, 혹은 인터넷 다시보기로 야구를 시청하면서 더그아웃 표정을 살펴본다.
대부분의 감독들은 더그아웃에서 무표정이다. 이길 때나 질 때나 큰 표정 변화가 없다. 그런데 기자의 뇌리에 선동열 감독의 표정은 여러 장면 박혀 있다. 손가락질을 하면서 혀를 끌끌 찬다든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면서 어이없어 하는 표정을 짓는다든지 등…. 야신(野神)으로 불리는 김성근 감독은 한 번도 드러내지 않은 장면이다. 중계카메라에 비친 더그아웃 속의 감독 모습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그러나 사람은 종종 이런 일부분으로 전체를 드러내는 경우가 있다.
선 감독은 KIA를 맡은 3년간 지도자로서 실패했다. 야구팬들은 선 감독을 가리켜 “노력하지 않는 야구 천재”라고 말한다. 선수로서는 탁월했지만 지도자로서 노력하지 않은 결과가 삼성 4년과 KIA 3년에서 전부 드러났다고 말한다.
도대체 KIA 더그아웃에서는 지난 3년간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기자는 KIA 타이거즈를 전담하는 야구기자들과 프로야구 해설가들을 인터뷰했다. 이들은 익명을 전제로 가까이서 보고 느낀 ‘감독 선동열’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성공하는 지도자의 공통점은 조직원들 사이에 소통이 잘 이뤄지게 한다는 것이다. 선 감독은 지난 3년간 어떻게 코치들이나 선수들과 소통을 했을까. 3년 연속 하위권을 맴돌았다는 것은 바로 소통에 문제가 있었다는 방증이다. KIA를 담당하는 K 기자의 설명이다.
“선 감독은 취임하자마자 코치진을 전부 과거 해태 출신으로 뽑았다. 전임 조범현 감독은 코치의 출신을 다양하게 해 경쟁을 유도했다. 조 감독은 같은 팀 출신만 뽑으면 연줄을 만들고 서로 싸운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선 감독이 해태 출신만으로 코치진을 구성해 놓으니 코치진에 선후배 문화가 만들어졌다. 감독과 선수 간의 직접 소통이 막히면서 감독은 제왕적 위치에 놓여졌다. 일례로 투수 보직 변경을 할 때 선 감독은 직접 선수에게 말하지 않고 ‘수석코치→투수코치→선수’라는 방법을 썼다. 투수코치에게 그 말을 전해들은 선수가 ‘왜 내가 그렇게 해야 합니까?’라고 물으면 코치는 그 이유를 감독에게 묻지 못했다.”
이는 보직 변경을 해야 할 경우 직접 호텔방을 찾아가 투수에게 설명한 조범현 감독과는 비교가 되는 장면이다. 보통 1군의 경우 수석코치, 투수코치, 타격코치, 주루코치, 배터리코치, 수비코치, 불펜투수코치, 트레이닝코치 등 7~10명으로 구성된다. 선 감독이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감독과 코치진은 수평적 관계가 아닌 수직적 관계가 된 것이다. 이 같은 관료적·권위적 분위기에서는 자유로운 의견 개진이 불가능하다. 또 다른 L 기자 역시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선 감독은 동기부여에 실패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팀워크가 어그러졌다. 소통이 안 되니까 결과적으로 선수들의 마음을 얻는 데 실패했다. 여기에 전략과 전술에서도 잇달아 실패하면서 팀 성적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것은 선동열이라는 개인의 권위주의적 특성에서 비롯되었을까. KIA를 전담하는 취재기자들이 공통적으로 한 말이 있다. 사석에서 만나면 선 감독은 매우 인간적이고 소탈한 사람이라는 얘기다. 유니폼을 벗으면 매력적인 캐릭터가 유니폼만 입으면 권위적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선 감독이 TV중계가 되는 가운데 종종 보이는 몸짓과 표정은 이미 기자들뿐 아니라 팬들 사이에도 여러 번 문제가 되었던 것이다. 감독이 선수가 실수할 때마다 그런 표정을 지으면 어린 선수들은 마음의 상처를 입고 더 감독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다. 출입기자들은 이 점을 프런트를 통해 여러 번 감독에게 얘기하라고 건의했다. 프런트가 이 뜻을 전달했는지 여부는 확인할 수 없지만 결과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선 감독의 리더십과 관련해 지적받는 게 있다. 감독이 선수들의 ‘기를 죽이는’ 행동을 종종 보인다는 것이다. KIA 담당 기자들이 잊지 못하는 장면이 있다. 2012년 어느 날 KIA는 부산 사직구장에서 롯데 자이언츠와 원정경기를 치렀다. 결과는 큰 점수 차 패배였다. 사단은 롯데 선수들과 관중이 다 빠져나간 뒤에 벌어졌다. 수석코치가 선수들을 전부 세워놓고 팀의 고참이자 간판급 타자를 공개적으로 10여분간 질책했다. 이 타자는 이날 4타석 무안타를 기록했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간판급 선수가 모욕당하는 것을 본 선수들은 충격에 빠졌다. 이 사건 이후 고참선수는 거의 출장기회를 잡지 못했고 현재는 ‘잉여 전력’ 취급을 받으며 선수생활의 기로에 있다.
올해 삼성 라이온즈 이승엽은 타율 0.308, 안타 156, 타점 101, 홈런 32개를 기록했다. 그는 국민타자 이승엽이라는 이름이 명불허전(名不虛傳)임을 입증해 보였다. 선 감독은 삼성 시절 이런 일본에서 뛰는 이승엽의 복귀를 줄곧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이승엽이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주전에 밀려 마음고생을 하고 있을 때 언론에 “삼성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뜻을 우회적으로 내비친 적이 있다. 이 말이 국내 스포츠신문에 보도되자 삼성 선동열 감독은 이런 식의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왜 온대요? 걔 여기 와도 자리가 없어요.” 이후 이승엽의 국내 복귀 가능성이 거론될 때마다 선 감독은 일관되게 “이승엽이 돌아와도 현재 팀 내에 자리가 없다”라는 말을 줄곧 했다. 이 발언은 감독으로서 1루 포지션이 겹치는 최형우와 채태인을 고려한 발언일 것이다. 그러나 선 감독은 자신의 말이 이승엽에게 어떤 상처가 될지를 배려하지 못했다. 결국 이승엽은 선 감독이 삼성을 떠나자마자 친정팀으로 복귀했고 지금 보란 듯이 새 야구역사를 쓰고 있다.
야구계에선 삼성 이승엽·임창용 선수, 현역에서 은퇴한 양준혁, 한화 이글스 코치 이종범 선수 등이 선 감독과 같이 야구를 하면서 상처를 받았었다고 알려져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익명을 요구한 프로야구 해설위원은 이런 설명을 했다.
“선 감독은 100이라는 능력을 가진 선수의 기를 꺾는 발언으로 능력의 60~70%만 쓰게 만드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다 보니 부임 첫해부터 KIA팀을 소리 없이 분위기가 가라앉게 만들었다. 선 감독의 의식 속에는 ‘아직도 내가 최고의 스타’라는 게 강한 것 같다.”
프로야구계에선 감독의 작전 능력으로 승리를 가져오는 경기 수를 5경기 내외라고 본다. 이 경기 수가 시즌 막판 포스트시즌 순위 결정전이 초읽기에 들어가면 얼마나 큰 의미로 다가오는지를 절감한다.
4강 진출에 실패한 5인 중 송일수 전 두산 감독을 제외한 4인(김응룡·김시진·선동열·이만수)은 공교롭게도 스타플레이어 출신이었다. 반면 포스트시즌을 치르는 4인 중 넥센의 염경엽과 NC의 김경문은 스타급 선수가 아니었다. 포스트시즌에 나간 감독을 선수 시절 포지션별로 보자. LG의 양상문 감독을 제외하고 유중일·염경엽(내야수)·김경문(포수)은 투수가 아니었다.
여기서 두 가지 궁금증이 생긴다. 하나는 스타플레이어 출신이 반드시 감독으로서 좋은 성과를 내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선수 시절 포지션에 따라 감독이 되었을 때 경기를 운영하는 스타일이 크게 차이가 난다는 점이다. 투수 출신보다는 포수 출신이나 야수 출신이 감독으로서의 능력이 뛰어난 경우가 많다는 얘기다.
여기서 2014년 미국 메이저리그(MLB)의 경우를 살펴보자. 비교의 대상은 내셔널리그 전통의 강호이자 숙명의 라이벌인 LA 다저스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를 월드시리즈에 진출시킨 부르스 보치(59) 감독은 월드시리즈 3회 우승을 노리는 감독 20년차 명장(名將)이다. 보치 감독은 2006년부터 자이언츠 감독을 맡아 2011~2012년 연속으로 월드시리즈를 제패했다.
자이언츠는 내셔널리그 서부지구에서 LA 다저스에 이어 2위를 기록,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피츠버그 파이리츠를 꺾고 간신히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하지만 디비전시리즈(NLDS)에서 워싱턴 내셔널스를 가볍게 제치고 챔피언십시리즈(NLCS)에 진출했다.
다저스는 서부지구 1위로 포스트시즌에 직행했다. 하지만 NLDS에서 다저스는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 시리즈 전적 1 대 3으로 패배했다. 믿었던 커쇼는 2패로 주저앉았다. NLCS에서 자이언츠는 카디널스를 완파하고 월드시리즈에 진출했다.
자이언츠의 보치 감독은 선수 시절 후보급 포수 선수였다. 1978년 휴스턴 애스트로스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해 뉴욕 메츠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를 거쳤다. 선수 생활 10년간 거의 주목을 받지 못한 채 백업 요원으로 전전했다. 현역에서 은퇴한 이후 보치는 코치가 되어 지도자의 길을 걸어 1995년 나이 마흔 살에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감독이 되었다. 2006년 명문팀 자이언츠의 감독 자리에 올랐다.
다저스의 돈 매팅리(51)는 선수 시절 공수가 완벽한 스타 플레이어였다. 매팅리는 명문 뉴욕 양키스에서 1982년부터 무려 13시즌을 주전선수로 활약했다. 13시즌 동안 통산 타율 0.307, 222홈런, 1099타점, 2053안타를 기록하며 공수가 완벽한 선수라는 평가를 받았다. 올스타 6회, 골든 글러브에 9번 선정되었다. 앞서 나온 야구해설가의 설명이다.
“보치와 매팅리는 선발투수 운용에서 철학이 달랐고 이것은 월드시리즈 진출로 갈라졌다. 매팅리는 잘하는 몇몇 선수에게만 의존해 경기를 운영한 반면 보치는 선발투수 다섯 명을 똑같이 믿음을 주고 기용했다. 보치 감독은 포스트시즌에서 한 경기에 졌다고 결코 선발 로테이션을 바꾸는 법이 없었다. 꾸준하게 믿음을 나눠준 게 쌓여서 그런 결과가 나온 것이다.”
MLB는 투수, 포수, 내야수, 외야수로 구분했을 때 포수 출신 명감독이 압도적으로 많다. 뉴욕 양키스 감독을 11년간 맡았고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조 토리 감독이 바로 포수 출신이었다. 포수는 투수나 야수보다 경기를 넓게 보는 장점이 있다. 조 토리는 양키스 시절 기자들이 “양키스 선발은 특별히 잘하는 선수가 없는데 왜 이렇게 성적이 좋은 거냐”라고 묻자 유명한 대답을 했다. “야구는 선수가 하는 거지, 감독이 야구를 하는 게 아니다. 내가 선수를 믿고 선수들이 나를 믿는데 도대체 뭐가 문제냐?”
상식적인 이야기지만 투수 출신은 투수진을 짜는 데 장점이 있지만 반대로 야수진을 짜는 데는 약점이 존재한다. 야수 출신은 정반대다. 선 감독은 또한 스타플레이어 투수 출신이다. 이 점은 감독으로 팀을 경영하는 데 결코 플러스 요인이 아니다. 이렇게 말하면 LG 양상문도 투수 출신 스타플레이어가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양상문 감독은 선수 시절 승승장구하다가 감독이 되어 밑바닥을 경험했다. 양 감독은 “감독으로 다시 돌아오는 데 7년이라는 세월이 걸릴 줄 몰랐다”면서 “해설위원으로 야구를 밖에서 보면서 선수와 감독 시절 보지 못한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MLB에서는 감독을 매니저(manager)라고 부른다. 1군 선수 25명을 관리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선 감독은 본인이 의도했든 안 했든 선수들 위에 군림한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취재 결과를 종합하면, 선 감독의 명예회복 여부는 ‘군림하는 스타의식’을 버리느냐에 달려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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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