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 리그 운영진에 처음으로 합류하게 되고, 경기후기란에 글을 올리기 시작하면서 오래전부터 계획은 했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한
기획안이 있었습니다. 교내 농구계에서 범접할 수 없는 실력을 가진 농구인들에 관하여 직접 만나보고 농구 이야기도 듣고 하며
글을 써보자! 사실 거창하게 생각은 했으나, 대학원생의 바쁜 삶의 시간표에 치이고 치어(?) 실행에 옮기지 못하던 찰나에 감사하게도
지도 교수님께서 해외로 장기출장을 가시는 절호의 타이밍이 나서 드디어 실행에 옮길 수 있었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만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 선수는 SP 의 박동욱 (체육교육, 06) 선수 입니다. 교내에 있는 거의 모든 농구인들이
이미 인정하고 있으며, 스스로도 서울대 최고의 농구선수라고 당차게 말하고 있는 박동욱 선수(이하 박, 박선수)를 만나보았습니다.
들어가며.
동서양을 막론하고 최고의 병법서로 꼽히는 손자병법의 7편 군쟁(軍爭)중에 이런말이 있다. 신속히 움직일 때는 번개처럼 빨라 적에게
피할 틈을 주지 말아야 한다. 적의 정세변화에 따라 마치 바람, 숲, 불, 산, 구름, 천둥, 번개처럼 다양하게 변화를 구사할 줄 알아야
승리하기가 쉽다. 즉, 상대방이 대응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전술이 손쉬운 승리를 가져 온다고 한다. 비록 이러한 전쟁의 방법을
농구에 적응 시키기에는 약간의 무리가 있지만, 농구도 어차피 골을 따내는 치열한 전쟁이기에 큰 무리는 없을 듯하다. 이러한 골을
따내는 치열한 전쟁 속에서 앞서 말한 풍림화산(바람,숲,불,산) 처럼 다양한 변화를 구사할 뿐 아니라 번개처럼 수비수에게 막을 수
있는 틈을 주지 않고 골을 따내는 서울대의 위대한 공격수에 대하여 이야기해 보려한다.
부산 사나이 박동욱은 초등학교 3학년 시절 그의 농구 인생에 첫발을 시작하게 된다. 농구를 곧 잘 하던 한살 많은 동네형의 꾀임에
넘어가 농구공을 처음 잡게된 그는 그 형을 롤모델로 삼아 농구를 시작했다고 한다. 사실, 초등학교 3,4학년이 농구를 한다고 해봤자
얼마나 했겠냐만은 그의 마음속에서는 이미 시작부터 그 롤모델을 넘어서겠다는 일념이 가득했다. 중학교 시절까지 줄곧 농구에 미쳐
매일 같이 농구를 했던 그는 오른쪽 발목에 치명적인 부상으로 약 11개월간의 재활기간을 겪게 된다. 하지만, 오랜 치료의 기간동안
에도 그의 머릿속에는 농구로 가득 찼을 것이다. 농구를 다시는 할 수 없을 거란 의사의 말을 뒤로한채 다시 농구공을 던지던 어린
소년은 금성고등학교에 입학하였고, 오래전 자신의 롤모델을 운명적으로 다시 만나게 된다. 반가움도 잠시, 오랫만의 재회는 당연히
농구로 이어졌고 여기서 그는 그의 롤모델에게 지난날에 당했던 패배를 철저하게 복수해 주게 된다. 또한, 점점더 몸이 성장하고 힘이
붙게 되자 자연스럽게 그의 농구 실력을 부쩍 늘게 되고 이미 또래에서는 범접할 수 없는 위치에까지 오르게 된다. 많은 학생이 좁은
책상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입시를 준비하던 고3 여름, 금성고의 이 농구미치광이는 전국 아디다스 3on3 길거리 농구대회에서 사고를
치고 만다
초반부터 빠른 템포로 득점을 주고받던 양 팀은 6-6 상황에서 다소 소강상태에 빠지며 슛 미스를 주고받았다. 능아쩌는
박태경의 득점으로 앞서 나갔지만, 이지원의 막판 몰아치기를 막아내지 못했다. 이지원은 돌파로 2점을 올린 데 이어
2점슛까지 터뜨리며 단숨에 10-7을 만들었다. 이어 금성고의 박동욱은 공격 리바운드에 이어 골밑 득점까지 성공시켰고
이를 기점으로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 2005년 아디다스 길거리 농구대회 고등부 우승
[점프볼 2005-08-14 23:35]
채치수와 정대만도 이루지 못한 고교시절의 전국제패를 달성한 그는 서울대 체육교육학과에 입학을 결심하고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게
된다. 당시 체육교육학과 입학시험전형의 특성상 윗몸일으키기, 턱걸이 등의 시험이 없던 관계로 다른 입시학원 친구들이 체육관의
메트위에서 구슬땀을 흘르던 시기에, 그는 오랜 그의 벗인 농구공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된다. 마치 대학에 들어가기 전에
완전체가 되려는 듯 많은 연습을 홀로 진행하였다. 그리고 서울대에 입학하였고, 입학 전부터 갈고 닦은 농구 실력으로 서울대를
농구로 제패하겠다고 굳게 마음 먹었다.
그의 대학 시절을 요약하면 아주 간단하게 할 수 있다. 농구-술-하키-농구-술-.... 하키부였던 그는 월요일 오후에 하키 연습을 마치고
지금은 사라지고 리모델링된 기숙사 삼거리의 농구코트 (당시에는 사대코트) 로 향하였고 농구시합을 하며 저녁시간을 보내었다.
시합 후 모두들 돌아간 농구코트에서 홀로 농구를 하며 개인기를 갈고 닦았다. 보통 새벽 2시가 넘어서 집으로 돌아간 그는 하루의
일과를 마무리 하고 새벽 5시경에 잠이 들었다. 오후가 되어 일어난 그는 다시 농구공을 들고 오후 5시까지 체육관으로 향하였다.
자유개방인 종합체육관에서 어제 연습했던 기술들을 써보고 또한 다른 사람들과 치열하게 농구 시합을 하였다. 농구가 끝난후에는
같이 시합을 뛴 형들과 밤새도록 음주가무를 하며 대학생활의 즐거움을 만끽하였다. 그리고 또 오후에 기상 후 하키 연습을 마치고
지금은 사라지고 리모델링된 기숙사 삼거리의 농구코트 (당시에는 사대코트) 로 향하였고 농구시합을 하며 저녁시간을 보내었다.
시합 후 모두들 돌아간 농구코트에서 홀로 농구를 하며....(절대 Ctrl+C, Ctrl+V 아님...)
정말 미치도록 농구를 했다. 하지만, 그냥 하지 않았다. 시합을 통해 나의 부족한 부분이 발견되면 그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끈임없이 노력하였고,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였고, 자존심이 상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플레이를 따라해 보며 연습하고, 다음날 시합을 하며 써먹어 보았다....
(당시를 회상하며, 박동욱)
2006년 3월 말이었다. 박동욱은 교내농구에 처음으로 데뷔하였다. 그의 등장 자체 부터 센세이션이었다. 실제로 필자는 '수퍼루키'가
나타났다고 하여 체육관에 그를 보러 갔을 정도니까, 여하튼 아직 다듬어 지지 않은 1학년때부터 교내에서 진행하는 각종대회
(총장배,체전,호바스배3:3) 에 출전하며 그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소속팀의 고공행진을 이끌게 된다.
물론 IB 리그 대회를 포함하여 모든 대회에서 우승을 거머 쥐며 화려한 수상 실적을 자랑한다.
인터뷰 과정에서 '인상 깊었던 교내 경기가 있는가?' 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그의 입에서는 자신의 팀이 졌던 경기를 아주 필요
이상으로 상세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 상대방의 멤버, 자신이 잘못한 점, 승부처등등 을 아직까지도 기억하고 몇년이 지난 지금에도 아쉬워 하고 있는 그에게서
좋은 기억력따위의 문제가 아니라 그의 농구인생의 원동력을 느낄 수 있었다. 바로 '과거의 실패를 거울삼아 오늘을 달린다.'
교내의 선수들을 대상으로 박동욱의 BEST5 를 구성한다면?
그는 주저없이 이미 가드라인에서 최고의 플레이어로 평가 받는 송인석을 주저 없이 꼽았다. 그냥 말이 필요 없다고 했다. 정말 잘한다!
그리고서는 농구로 해탈하신 또다른 가드 맹혁주 선수를 뽑았다. 맹혁주 선수와는 농구에 대하여 정말 많은 대화를 하였다고 덧붙였다.
다음으로 2012년 IB 리그 1부 MVP 인 권순샘 선수를 꼽았다. 그의 사이즈와 스킬을 칭찬하면서, 특이하게도 마지막으로 새턴의 박종호
선수를 꼽으며 그의 센스있음에 아낌 없는 칭찬을 보내었다. 그리고! SF 에는 박동욱!!!
앞서 언급하였듯이 정말 오래된 경기도 상세하고 기억하고 있고, 교내에서 조금 한다는 선수에 대하여는 어떻게 대처 해야 할지도
아주 상세하게 연구를 했다고 한다. 그는 무턱대도 골대에 골을 넣는 농구를 한것이 아니라, 농구 하는 시간 외에도 농구에 대하여
상대방에 대하여, 상대팀에 대하여 연구하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미지 트레이닝!! 그저 혼자 농구공을 들고 텅빈
코트에서 농구를 하더라도 항상 상황을 가정하고 농구를 하였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에 박동욱이 있다는 어찌 보면 당연한
사실을 우리에게 각인 시켜 주고 있다.
맺으며.
대한민국 예능을 이끌고 있는 '무한도전' 은 그 이름 그대로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항상 새로움에 대하여 도전하고 또 도전하며
예능 이상의 TV 프로그램으로서 그 역할을 다하고 있다. 가끔은 시청률 하락으로 쓴잔을 마실때도 있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환골탈태
하여 우리를 놀라게 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서울대 최고의 선수들 중에 한명인 박동욱의 농구 인생 역시도 이와 궤를 같이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입학 초기부터 정상근처의 자리에 있었지만, 자존심은 세울지언정 자만하지 않고 언제나 새로움을 위하여
도전 하였다. 또한 때때로 좌절의 시기도 있었지만, 보란듯이 극복하고 지금 우리 곁에서 최고의 완숙한 플레이를 보여주고 있다.
박동욱선수는 2013년 2월에 체육교육학 석사학위를 취득하였고 해군 사관학교 체육교육 장교(?)로 군복무를 대신하게 된다. 이제
학교에서 농구는 안한다고 강력히 주장하였으나!! 제2회 IB 리그 클리닉에는 강사로 꼭 참여 하겠노라고 약속을 하였다.
나의 대학생활동안 멋진 플레이로 내눈을 즐겁게 해준, 또한 상대편으로 좌절감을 맛보게 해준 박동욱 선수에게 최고의 찬사를 보낸다.
그리고 그가 걸어온 농구인생에 대한 경외와 앞으로의 농구 인생에 대해서도 기대를 전해본다.
농구를 하며 정말 많은 사람과 사귈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그동안 서울대 농구계의 선후배 들에게 경기중에 거친 언사를 했던것 머리 숙여 사과합니다 -박동욱
Seoul National University Basketball Hall of Fame - 박 동 욱 (SP)
첫댓글 존경합니다 동욱쌤
복학하고 1학년이 sp주전이란 얘기 듣고, sp 많이 죽었네... 했는데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