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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악회 백두산 서벽종주 및 중국 북경, 연길 5박6일여행기 ☆
1.세부일정
2.서 언
3.중국 및 연길가는길
4.백두산 가는길 및 산행기
5.돌아오는길
1.세부일정
*기간 : 2001년 6월 16일 ~ 6월 21일 (5박 6일)
*상세일정
-6월 16일 : 광양-부산 김해공항-북경공항 도착후 천단공원 관광 석식후 항공편 연길로 이동(대우호텔 1박)
-6월 17일 : 백두산 이동(버스),이도백하,금강대협곡 관광후 백운봉산장(1박)
-6월 18일 : 찦차이용 백두산 서벽출발-5호경계비-마천봉(옥천봉)-청석봉-협곡-백운봉-녹명봉-장백폭포-노천온천-장백산 온천별장(1박)
-6월19일 : 이도백하-연길-도문시 대성중학교-동방 곰 낙원-두만강변 중국 북한 접경지대-북경 이동 후1박 (CHINA RESOURCES HOTEL)
-6월20일 : 이화원-옥 가공 공장-명13릉-만리장성-용경협-북경 써거스 관람 및 북경 오리구이 식사후 호텔투숙(CHINA RESOURCES HOTEL 2박)
-6월21일 : 천안문광장-자금성-북경대학-북경공항-인천공항-김포공항-사천공항-광양도착.
*참여회원 : 31명
임천모(회장) 강성호(부회장) 노학수(부회장) 조헌균(등반대장) 오수환(총무) 유내석(구호) 이준복(A팀장) 정의석(감사) 윤양상 성관제 유철호 채수양 설영란 김득휴 오한철 조용국 국수현 강영국 김성환 채종화 최인섭 정만시 연성주 김형필 김대성 최경식 구옥근 김금순 김준수 황인성 성영주(국내가이드) 이상31명
백두산 서벽코스 산행 알선업체: 전남 광양시 태양관광주식회사
대표 : 성 영주 TEL:(061)763-9090,6006 H.P 011-621-0882
(총 경비: 98만원/1인 당초 95만원 이었으나 용경협 관광 추가로 북경 현지에서 3만원 추가함. 출국세, 단체비자, 공항세, 공항까지 이동 관광버스 임대료, 국내선 항공료등 제반 모든 경비가 포함한 금액임)
(공동경비: 5만원/1인 거출하여 국내가이드 및 현지 가이드, 산행 가이드,운전기사 팁, 산행 단체사진 인화, 선물구입,등에 사용)
2.서 언
우리 백두산악회 회원들이 생애 영원히 추억으로 간직할 수 있는 뜻있는 산행을 하고자 1999년 5월 17일 지리산 천왕봉에서 고산제를 시작으로 갖은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2000년 7월 17일(월) 끊어진 백두대간의 마지막점인 강원도 진부령에서 장장 646Km(도상거리) 의 남쪽구간을 마치고 또 다른 반 토막인 북쪽대간을 빠른 시일내에 갈 수 있게 해달라고 천지신명께 간절한 기원제를 지냈다.
『축문』
경진년 칠월 십칠일
광양제철소 백두산악회 회원일동은 남북통일의 염원을 기리고 포항제철 산업역군의무사고 를 기원하며 일천구백구십구년 오월 십칠일 백두대간의 출발점인 남쪽의 대표적인 영산인 지리산 천왕봉에서 시작하여 덕유산,속리산,문경새재,소백산,태백산,오대산,설악산을 거쳐 백두대간의 반쪽인 남쪽구간을 완료 하였습니다.
지리산 천왕봉에서 부터 비,바람과 또는 더위와 싸우며 눈보라를 헤치고 십사개월간 육백 사십육 킬로메타의 백두대간을 함께 탐사한 년 인원만 하여도 오백여인에 이르니 이것을 어찌 작은 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며 그 산행 하나 하나마다 산을 배우고 산과 하나가 되는 기쁨으로 충만하였으며 무엇보다도 멀고도 먼 여정동안 탐사대원 아무도 다친이 없고 낙오자 하나 없이 남쪽대간을 마치고 더 이상 갈 수 없는 북녁대간을 아쉬움으로 남긴채 오늘 이곳 진부령 정상에 올라 천지신령님의 자애로우신 보살핌으로 무사히 마침을 고하나이다.
천지 신명이시여!
우리 백두산악회 회원일동은 이곳이 끝이 아니고 또 다른 시작일뿐이오니 아무쪼록 바라옵건데 하루빨리 통일이 되어 못다한 또 하나의 반쪽인 북녁대간을 오를 수있도록 하여주시고 우리의 일터 광양제철소의 무궁한 발전과 무재해가 계속될 수있도록 보살펴 주소서..
오늘 우리가 준비한 술과 음식은 적고 보잘 것 없지만 이는 우리 백두인의 지극한 정성이오니 어여삐 여기시고 즐거이 받아 거두소서..
우리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을 오를 때 까지 남은 산행길을 굽어살펴주소서..!
경진년 칠월 십칠일 광양제철소 백두산악회원 일동.
이후
우리 백두산악회원들은 당시의 진한감동을 영원히 간직하고자 갈수없는 반쪽(북년대간)은 통일이후로 남겨두고 우리 땅의 시작이고 배달민족의 영산인 백두산 탐사계획을 수립한후 근 1여 년만에 꿈에 그리던 백두산을 서벽에서 북벽까지 길림성 장백산 국가급 자연보호구 임려공사 공식집계로 2001년도의 최초로 서벽코스를 탐사하는 기쁨을 누렸다.
이번 산행이 무엇보다 기뻤던것은 중국측 5호 경계비에서 백운봉까지 산행동안 한발 앞을 볼 수 없는 짙은 안개와 비, 세찬 바람이 몰아쳐 천지와 백두산의 각 봉우리를 볼 수 없을것 같은 포기상태 이었으나 백운봉을 어렵사리 올라서자 우리일행을 반겨주는 듯이 그 짙은 안개와 바람이 서서히 사라지고 천지의 남서쪽 면부터 모습을 짙프른 옥빛 몸을 드러내는 것이 꼭 청순한 여인의 옷 벗는 모습같아 넉을 잃고 바라보다 큰 함성과 함께 눈가에이슬이 맺히도록 진한 감동을 느꼈다.
아~ 저기 보이는 못이 천지로구나..
저 시리도록 짙프른 옥빛물이 천지로구나~!
곳곳에 큰 얼음섬을 둥둥 띄우며 뱃놀이를 하고있는 저곳이 내가 그토록 그리던 천지로구나..
이런 진한 감동을 맛보기위해 그토록 흰머리산(백두산)을 염원하였나 보구나.
(흰머리산을 향하여)
그곳에 가면
나를 반가이 맞아줄이 아무도 없고
또
오라하는이 아무도 없는데
오늘도 난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고단한 몸짓으로
한 걸음 또 한 걸음
백두대간의 가파른 마루금을 오르내리고 있다.
때로는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억센 비,바람이 나의 갈 길을 가로막고
하얀 눈보라가 가는 길을 방해해도
우리
배달민족의 영원한 고향이며 안식처인
흰머리산을 향해
거치른 숨을 고르고 있다.
어떤이는
산이 그곳에 있기에 산을 오른다고 했지만
우리 백두인은
흰 머리산으로 가는 길이 그곳에 있기에..
또
민족의 정기를 진한감동으로 함께 느낄 수 있기에..
우리땅의 근간이 이곳에 있기에..
오늘도 진친몸으로 힘찬 걸음마를 하고있다.
-쌍구년 십이월에 백두 임천모-
끝으로 5박 6일 동안 적지않은 여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탈 없이 자기관리를 잘하고 무능한 지도부의 통솔에 적극 협조해준 산 친구들에게 감사 드리고 특히 안전하고 유익한 여정이 될 수 있도록 많은 배려를 해주신 태양관광㈜ 성영주 사장님께 진솔한 감사를 드린다.
아울러
백두산 산행기 및 중국여행기는 확실한 DATA에 의한 객관적인 것이 아니고 백두산 및 중국에 대한 해박한 경험이나 지식이 전무한 필자가 보고 느낀 대로를 기록한 것이니 여러모로 부족하고 잘못 표현된 부분이 있을 수 있음을 사전에 밝혀두며 향후 백두산 등반계획이 있거나 중국여행을 기획하신분들에게 조그만 참고라도 되었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에서 이 글을 기록한다..
3.중국 및 연변 가는길
가.북경 가는길
6월 16일(토) 날씨 맑음
08:30 31명 광양제철소 백운아트홀에서 집결 후 관광버스에 승차
(태양관광 성영주 사장으로부터 이동 중 각종 주의사항 및 참고사항 설명)
10:45 김해공항 도착
11:20 김해 국제공항 탑승 수속후 면세점 쇼핑실시
(품목에 따라 시중보다 약10~15% 저렴.각종 CARD 사용가)
12:50 중국국제항공(AIR CHINA 기종 B777-200) 탑승후 이륙(원래 출발시간 12:30)
14:15 북경 국제공항 도착(북경시는 동경시보다 1Hr 늦음으로 이후 현지시간으로 기록함)
*북경공항은 99/E 개항하여 규모는 크고 청사등이 매우 깨끗하고 시설은 양호한 편이었으나 출입국 수속시 많이 기다려야 하는 불편이 있음.
※북경의 일반사항
*북경의 관광객수는 약 8000만명/년
*북경의 강수량은 약 600mm/년
*북경관광이 가장 좋은 시기는 4~5월
*북경시에서 가장 높은 건물은 53층이고 차량대수는 150만대 임.
15:00 북경 현지 GUIDE 김학봉의 안내로 버스 승차후 천단공원으로 이동함.
이동중 북경시내 도시 고속도로내에서 많은 시민들이 연 날리기를 하고있어 위험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듬.
15:35 천단공원 도착후 관광실시 현지인 및 관광객들이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여기저기 많았고 현지인들이 歌舞하는곳도 있었음.(천단공원은 필자기 7년전에 관광했던것과 크게 변한 것이 없음)
16:30 천단관광 완료후 석식(화강호텔내 相金苑 湖南食部)
천단공원
천단공원은 天橋南大街,永定門내 동측에 자리잡고 있으며 1420년에 건설하였으며 초기는 명,청 황제들이 하늘에 제사 지내여 풍작을 기원하던 장소이다 . 오곡풍년을 받았던 장소로 新年殿,皇穹宇,園丘壇,秦宮등의 고대건축물이 있다.新年殿은 3층 지붕이 있는 원형의 목조 건축물로 天壇에서 가장 크고 아름답다.못을 하나도 사용하지 않은 건물로 명대인 1420년에 세워져 1896년에 재건되었다. 내부 중앙에는 원형의 돌이 있는데 자연의 용무늬가 새겨져 있다. 황제는 정월에 이곳에서 풍작을 빌었다.
천단공원에서 카페지기가,,,
중식과 한식이 가미된 식단으로 회원들 모두가 맛있게 식사함.
17:30 식사 완료후 북경공항으로 이동
나.연길 가는길
18:00 공항도착후 가방등 부하물 탑재.
(북경공항은 국제선 및 국내선이 한 건물내에 있음)
19:00 중국 국제항공 (AIR CHINA 기종 B737-400) 연길행 비행기 탑승.
(옆자리에 중국아가씨가 있었는데 좀 어리게 보여 학생이냐 물어보니 기자라함. 여러가지 유익한 자리가 될 수 있었는데 중국어도 캄캄이고 영어도 짧아 세계공통어를 가미한 대화를 할려니 서로 웃음만 나오고..부단한 자기개발을 해야 할 텐데..
17:35 연길행 항공기내의 창문을 통하여 일몰을 감상하였다.
이 아름다운 일몰처럼 백두산 천지의 아름다운 모습을 모든 회원들이 볼 수 있었으면 하고 기원해본다.
20:00 중국민항내에서 기내식을 처음 접해보았으나 영 먹고싶은 생각이 나질 않는다. 커피를 주문했는데 배달이 되질 않은걸 보니 내가 전달을 잘못했는지 아님 커피가 떨어졌는지 원...
21:30 연길국제공항도착
연길국제공항에 도착하여 우리나라 포항이나 여수비행장같이 활주로를 승객이 걸어서 공항으로 들어가니 공항내 인공 번식곰 대자연에서 번식을 주도하는 자연환경운동 동물 관련 단체들의 환영행사가 있었다.
그러고 보니 기내에서 내 옆자리에 앉아있던 기자아가씨도 그와 관련된 기자였던가 보다.
공항을 나서자마자 온갖 광고용 입간판들이 한국어이고 우리 기업광고 인지라 이곳이 우리 땅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 였다.
현지 GUIDE 의 안내를 받아 버스에 승차후 연길시내에 있는 대우호텔로 이동하였다.
버스 이동중 대로변의 시내상가 입간판들은 상부에는 한글로 되어있고 그 밑에 한자어로 표기되어 있어 GUIDE에게 물어보니 주 자치법에 그렇게 하도록 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대우호텔에 도착후 TV를 켜니 우리나라 KBS TV 가 방영되고있다.
혹시 녹화했던 것을 재방영하고 있는지 자세히 확인해보니 현재방영하고 있는 연속극이다.(KBS 위성1,2 채널)
다음날 현지 GUIDE 에게 물어보았더니 한국방송을 바로 시청할 수 있단다.
그래 그런지 시내의 청소년들은 어설프지만 HOT 마냥 칼라머리를 하고 다니는 청소년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연길의 대우호텔 숙박시 객실내 냉장고에 있는 음료수나 물등은 전부 유료임.
연길에서 수신자부담 전화사용방법은 0+108+821(한국교환 응대)
※장백 대우반점(호텔) TEL 86-433-574601
23:30 몇 몇사람이 술을 먹기 위하여 강성호부회장과 태양관광여행사의 성영주사장이 안주를 마련하기 위하여 호텔 로비로 갔는데 주위가 갑자기 시끌벅쩍하며 한 무리의 한국 관광객이 들이 닥친다.
북경에서 오는 우리가 탑승한 비행기가 마지막편인데 어디서 오는지 궁굼하여 물어보니 백두산 천지를 보고 장백폭포 주위에서 숙소를 정하고 묵을려 했는데 방이 없다고 하여 쫐겨났다고 한다.
예약을 하였는데도 소용이 없다면서 숙소를 정하지 못해 연길까지 장장 6시간을 버스를 타고 되돌아 옸단다.
성사장은 중국측 여행사를 잘 선정해야 하는데 힘이 없는 여행사를 선정하면 국가기관에서 갑자기 행사를하면 많은 방을 비워 주어야 하기 때문에 가끔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서 우리는 연길에서 가장 힘이 있는 여행사를 선정하였기 때문에 걱정하지 말란다.
우리가 예약한 호텔이 그런일을 당하면 순발력있게 다음 행동을 취하기 때문에 아마도 저런 일은 없을 거라면서 그분들에게 천지를 잘 감상하고 이곳 연길에서 묵으면 내일 일정이 순조로우니 잘 되었다면서 위로를 한다.
산행에 관한 문의사항이 계시면 011-9803-8904, 강성호에게 문의 바람니다.
6월 17일 (날씨: 맑음)
우리 민족의 슬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땅 연변.
어디를 둘러봐도 한글 간판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결코 낯설지 않는 중국속의 조선족 자치구이다. 호텔밖으로 바라보이는 연변의 거리모습은 예전의 우리 시골의 모습과 너무나 비슷해서 한국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 킬 정도다.
오늘아침 모닝 콜 예약시간은 06:30 이다.
그런데 03:10인데 밖은 벌써 여명이 밝아오고 03:40분이 되자 완전히 날이 밝았다.
왜 그런지 곰곰히 생각해보니 시간은 북경 표준시를 사용하고 경도는 우리서울과 비슷하고 경도는 북극에 가까우니 그러지않나 생각된다.(정확하게 40분이 앞선다)
창문을 열고 밖을 보자 어제 저녁 입실때는 몰랐는데 호텔주변은 담장으로 둘러 쌓여있고 담장위는 철조망으로 쳐저있다.
꼭 우리의 6~70년대로 회귀한것 같은 느낌이 들고 그 담장밖으로는 5~6층의 겉모습이 깨끗한 소형 APT 가 즐비하다.
아침 일찍 연길 시내를 둘러보고자 사워를 하기위해 물을 뒤집어쓰니 얼마나 센물인지 비누칠을 하고 물 한번 뒤집어쓰면 뻑뻑할 정도다.
간편한 복장으로 호텔밖을 나오니 벌써 많은 시민들이 대우호텔 공터에 나와 氣체조와 劍舞등으로 아침운동을 하고있었다.
정말 부지런한 우리 민족이구나 생각하고 멀지 않은 날 조선족도 우리와 같은 경제 수준로 급 상승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호텔을 나와 시내 도로를 산책하고자 밖을 나섰더니 노학수 부회장님께서 벌써 나와계셔서 같이 시내을 산책하기로 하고 조금 걸어나갔더니 2층 버스가 지나가는데 윗층의 사람들이 너덜 너덜한 이블을 뒤집어쓰고 잠을 자며 이동하고있었다.
처음 보는것이라 좀 신기하기도 하고..
거리는 간밤에 무엇을 하였는지 온통 쓰레기로 뒤범벅이 되어 있고 청소원들이 이 쓰레기를 치우느라 먼지를 풀풀 날리며 빗자루질을 하고있었다.
시내의 대중교통 수단은 북경과 마찬가지로 소형(티코)의 택시가 드문 드문 운행을 하고있고 우리의 70년대 연탄등을 배달하던 3륜 트럭등이 바쁘게 왕래를 한다.
그리고 앞은 리어카에 뒤는 자전거로 복합 제작된 운송 및 이동기기가 많이 눈에 띤다.
아침 산책중 만난 연길 시민으로부터 연길의 실정에 대해 많은걸 들었다.
이곳은 농사도 기후관계로 잘되지 않는 편이고 산업화도 되어 있질 않아 살아가는데 어려움이 많다고 한다.
보통 한국에 나가 벌어와서 먹고 지내는 사람도 많이 있고 한국에서 여러가지 일로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고 도피해있는 사람들의 천국이라 한다.
大 도로변을 약간 벗어나니 사람들의 생활상은 남루하고 주택등도 아침에 대우호텔에서 봤던 그런 주택이 아니고 우리나라 70년대 달동네를 연상케 한다.
불길한 생각이 들어 골목을 급히 빠져 나와 다시 대로변을 걷다 보니 거리의 상점들은 말 그대로 구멍가게 수준이지만 게임방도 보이고 이발소,리용실등이 특히 많이 보인다.
다시 호텔로 돌아와 조식을 할려고 하니 이곳 호텔은 우리팀 전원이 모여서 한꺼번에 입장하여야만 식사가 가능하다고 웨이터가 입장을 못하게 하여 팀원 전원이 모일때까지 기다렸다가 식사를 하였는데 준비된 식단은 양식이 가미된 한식으로 먹을 만 하였다.
4.백두산 가는길 및 산행기
가.백두산으로 가는 길
산을 사랑하는 사람이면 꼭 가고 싶어하는 우리 민족의 영산 백두산.
연길에서 백두산가는 길은 최근 포장한 2차선 도로로 270Km이고 중간 중간 화장실을 찾기 위해 배회하는 시간까지 합치면 버스로 5시간 이상을 달리는 장거리 여행을 각오해야 한다.
그나마 길이 포장되고 도로에 중앙선도 그려 지면서 이정도로 편한(?) 여행이 가능해 졌다는 것이 이곳 가이드의 설명이다.
07:05 호텔주차장에 대기하고있는 90년식 현대자동차의 41인승 도시형 시내버스(에어로 시티)를 개조한 버스에(한국에서 7년 사용후 연변에서 2년째 사용중임) 가방등 짐등을 상차 시킨 후 출발준비.
07:15 이도백하를 향해 출발 (이도백하까지는 210Km 이고 현지 GUIDE 의 설명은 이도백하까지 약 5Hr 소요된다 함)
09:00 1차 휴식(약 100Km 이동했다 함)연길에서 이도백하까지 가는 도로 곳곳에 비닐천막을 치고 간이휴게소를 만든 다음 커피(\1500) 및 음료등과 농산물,조잡한 玉제 품등을 팔고 있으며 특히 산삼이라고 삼을 보여주며 싸게 팔고있는데 99% 가짜임.
이 산삼을 보면 대부분 조작한 것 이거나 백두산 주변에 엄청나게 재배하고 있는 장뇌인삼등임.
이러한 간이 휴게소는 우리 동포들이 운영하고 있는곳도 있으나 중국인들이 운영하고있는 곳도 많이 있고 하나같이 우리말을 잘하고 게시한 입간판들도(천에 쓴 것 이지만) 우리글로 써있다.
또한 가는 길에 만난 모든 관광객들이 전부 우리나라 사람들이니 그럴 수 밖에...
현지 GUIDE 에게 물어보니 장백산(백두산)은 우리민족에게는 영산이고 꼭 가보고 싶은 산이지만 중국인에게나 그밖의 외국인들에게는 그렇게 관심이 있는 산이 아니기 때문에 관광객이 별로 없다고 한다.
연길에서 이도백하까지 가는 길은 도로포장이 잘되어있고 차량도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나 한국에서 대부분 폐차직전의 차량들을 가지고 와서 운행하기 때문인지 조그만 오르막길에도 힘을 쓰지 못하고 덜덜거린다.
그리고 도로의 중앙선은 심한 곡선을 빼고는 전부 추월차선으로 되어있어 차량성능만 좋으면 무조건 추월이다.
또한 이동중 이렇게 한적한 도로에서도 종종 차량의 접촉사고를 목격 하였는데 현지 GUIDE 의 말대로는 교통경찰(공안)이 현장에 와서 검증할때 까지 그 상태로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고 한다.
공안(경찰)의 판정에 따라 부담하는 수리비 부담이 다르기 때문이라나.
이도백하 이동중 도로주변의 농촌풍경은 전형적인 시골 농촌이고 대부분 붉은 벽돌집이다.
집 밖으로는 거의 울타리를 쳐놓았는데 전부 목재를 잘켠 판자를 사용하고 있었고 소나 말을 이용하여 밭갈이를 하고있다.
09:35 휴식후 출발한지 15분 후 우리의 일행중 첫번째 설사환자 발생함.
(중국에서 물을 갈아 먹은 후 발생될 수 있음으로 주의 해야 함)
10:20 홍기 조선족 민속촌 금강산휴게소에 도착(해발 550m) 홍기 조선족 민속촌은 마을주민 전부가 우리 동포들이고 휴게소처럽 생긴 “금강산”에서 안궁환,우황청심환 등 각종 북한산 한약재등을 팔고있으나 엄청 비쌈.
이곳에서 안내를 맡고있는 아가씨들은 17~22세 등인데 신체의 발육정도 가 우리의 초등학교 6학년정도 밖에 안될 정도로 키가 작고 가냘퍼보임.
12:25 이도백하 도착후 고려음식점에서 중식(해발 750m) 이도백하 마을 진입전 도로양편에 말로만 듣던 미인송(美人松)이 하늘을 향해 쭉쭉뻗은 몸매를 우리에게 자랑이나 하듯 주황색 몸치장을 한채 반겨주고 있는 듯하였다.
이 백두산 미인송은 중국당국에서도 보호 수종이고 미인송 주변에 산림관리 및 연구소가 있으며 약 10~15년산의 인위적으로 가꾸는 미인송 밭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이도백하 마을구성은 98%가 중국족이고 이들은 백두산에서 목재를 취하여 가공 및 철도에 운송작업하며 먹고 살고 있으며 이곳의 조선족은 아주 미미하고 있다 해도 이동 인구이거나 관광객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소수가 있다함.
이곳 고려음식점에서 백두산을 안내할 산행 GUIDE가 기다리고 있었음
*연길 GUIDE : 김원준(29세 총각이며 연변중학교 지리 선생임)
동정심을 유발시켜 연길의 조선족가게에서 물품구입을 많이 할 수 있도록 유도함.
(HP 139-4332-2305)
*백두산 GUIDE : 안의호 (36세 총각이며 연변대 법학부를 졸업하고 변호사가 되기 위해 법학공부를 계속하고 있음) 산행경력은 4년 되었고 백두산 백운봉에서 천지 사진을 촬영하여 장백폭포 입구에서 관광객에게 판매하는 사람임.(TEL 0433-571-5710)
*이도백하에서부터 장백산(백두산) 보호구역이고 차량 출입시 중국공안당국에 사전 허가를 득한 후 진입하여야됨.(우리팀은 사전에 연길 여행사에서 입산허가를 받았다고 현지 GUIDE가 말함)
※이도백하에서 백두산 가는 길이 2개소로 분리됨.
우리일행이 산행을 하게 되는 서벽코스와(이곳은 이도백하 마을에서부터 비포장도로) 일반 관광객이 짚차를 이용 천지를 구경하는 북벽코스로 분리됨.
북벽코스 : 5월 하순 ~9월 말까지 가능
서벽코스 : 6월 중순 ~ 9월 말까지 가능
13:00 이도백하를 벋어나자 비포장도로가 시작되었고 관리소인지 건물이 있고 이건물 전방에 바리케이트가 쳐져있어 GUIDE 가 안으로 들어가 신고를 한후 바리케이트를 올려주어 통과함.(바리케이드는 도로보수비용 징수 를 하기 위하여 서벽입구까지 10여 개소에 걸쳐 있음)
★백두산 서벽코스는 매년 6월 중순이후부터 산행이 가능하고 남아있는 결빙이나 잔설 때문에 상당히 위험함.
특히 우리 백두산악회 일행이 2001년 처녀산행이라 하여 기분이 무척 좋았음.
그래서인지 원래 현지 GUIDE가 통상 1명이 하는데 우리 팀은 선두와 후미 두 사람이 붙었음.
(중국당국의 배려인지 아님 GUIDE 비를 더 받아내기 위함인지..?)
★백두산 천지 주변의 솟은 봉들이 기존에는 16개 봉이었으나 최근 위성촬영 결과 24개봉으로 판명되었다 함.
13:17 2차 바리케이트 통과함.
도로주변은 원통 하늘을 찌를듯한 열대우림 같은 원시림 투성이고 한발 앞을 볼 수 없을 정도임.
남한에서 최고의 원시림이라는 민주지산 미니밀골의 원시림은 산림축에도 들어갈 수 없을 정도임.
그렇기 때문에 현지 GUIDE 의 말중 백두산에는 호랑이가 상당이 많이 살고 있었으나 이 호랑이가 인가 주변에까지 내려와 농우(소)를 잡아먹는 사례가 종종 발생하여 사람들이 많이 잡았다함.
현재는 백두산에 약 28마리 정도 살고 있기 때문에 중국당국에서 보호를 하고 있고 만약 주민들의 소등 가축을 잡아 먹을시 중국당국에서 배상을 해주고 있다함.
13:40 갑자기 밀림이 사라지고 수 십만평의 삼밭이 조성되고있었다. 한편으로는 경작중인 인삼밭옆에 원시적인 방법이지만 인간의 노동력으로 벌목작업과 나무뿌리를 삽과 괭이,도끼로 베어내고 캐어내는 작업과 캐어낸 나무 뿌리를 태우느라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현지 가이드는 그렇게 울창한 원시림을 제거하고 장뇌 인삼밭을 조성하고 있는중이라고함.
너무 애통한 생각이 들어 버스를 정지시키고 사진촬영을 하니 이 삼밭을 지키는 이가 무슨 일인가 하고 쫓아옴.
현지 GUIDE 이야기로는 이 장뇌 인삼을 지키기 위해 삼밭주위 울타리에 폭발물등 부비추렙을 설치하여 울타리를 넘어가면 폭발하도록 하고 심지어 총을 소지하여 울타리를 넘으면 관리인이 발포한다함.(기분이 매우 좋지 않아 곧바로 승차후 출발함)
특히 이도백하를 지나면서 백두산 서쪽 산문에 도착하기전에 지나는 산속 비포장도로의 좌우 양쪽으로 백양나무의 쭉쭉 뻗은 잘 생긴 나무들을 지나치며 이국적인 정취를 듬뿍느낄 수 있다.
15:00 장백산 상점(관리소) 도착(해발 1015m 이도백하에서 75Km)
※이곳에서 백두산 입산신고서 작성 및 입장료 징수(중국화폐 50원)하고 의류등 기타 간단한 물품등을 팔고있음.
16:05 금강대협곡 주차장에 도착(서측 산문에서 30km)하였으나 갑자기 소낙비가 쏟아짐.(고도 1360m)역시 고산지대인라 날씨변화가 예측할 수 없어 명일 산행이 걱정된다.
우리일행은 오버자켓등을 걸치고 차에서 내려 금대협곡 가는 길목으로 접어들었다 가는 길은 조금 미끄러웠지만 울창한 밀림속을 지나간다는 생각에 몸 과 마음은 한결 가벼웠다.
금강대협곡에서 카페지기가,,,
약 10여분을 진행하니 갑자기 땅이 그대로 꺼진것 같은 금강대협곡이 우리를 반긴다.
용암이 분출후 흘러내리다 생긴 협곡이라 하는데 정말 장관이다.
일명 백두산의 그랜드캐년이라 불린다 한다.
모두들 금강대협곡에 매료되어 우중임에도 불구하고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다.
단체사진을 찍고 싶었으나 장소도 협소하고 울창한 숲 때문에 촬영이 곤란하여 서둘러 버스에 승차하여 우리가 오늘 숙박할 백운봉산장호텔을 가기 위해 장백산 상점으로 측으로 회귀하였다.
오던중 백주인데도 불구하고 도로를 의젓하게 가로지르는 사슴이 있어 과연 백두산에 동물들이 많구나 하는걸 느꼈다.
17:45 장백산 상점도착 (입장료 징수처)
모두들 차에서 내려 백두산 서벽입구 기념탑에서 단체사진을 찍음
17:50 백운봉 산장호텔 도착
우리일행이 1박을할 백운봉 산장호텔은 지은지 얼마되지않은 매우 깨끗한 건물로 시설은 별로 좋은편은 아니지만 모든게 상당히 정갈한편이었다.
3층은 침대방으로 약 5평정도 되는 방에 4인1실을 쓴는 곳인데 침대도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고 2층은 전기온돌 방으로 4-12인실이 있고 목욕탕은 전기 순간온수기의 샤워 시설을 갖추어 있고 식사의 질도 괜찮은 편이었다.
이곳에서 석식을 하며 우리 일행이 준비해간 간단한 선물을 전달하려고 여종업원이 몇명이나 되느냐고 물었더니 무려 15명(여자)이고 남자들도 주방장을 비롯 여러명이 보였다.
깊은 산속 작은 시설에 이렇게 많은 종업원이 근무할 필요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중국은 사회주의국가인지라 여러 사람이 같이 살다 보니 그럴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화장실은 각층에 하나씩 있는데 남녀 화장실이 한곳에 있고 입구에 여자화장실 3칸이 있으며 비닐 천 같은 포장하나 있는 후 남자 화장실이 있다.
화장실의 내부를 보면 가운데 적당히 큰 배수통로를 설치하고 이곳에 청소용 배수물을 계속 흘러내려 변이나 오물을 청소하토록 하고있으며 쪼그리고 앉아 있으면 상체가 전부 노출이 되니 뒷 일이 잘되지 않는다.
저녁식사중에 “오..총”을 비롯한 酒를 좋아하는 회원들이 38도 정도의 술을 반주삼아 마시더니 식사후 이곳 중국인 주방장과 자칭 酒에 관한한 일가견이 있는 우리의 호프”오..총”간에 자기들이 특별히 제조한 백주 5잔(약 250㎖)을 마시면 돈을 받지않고 못 마시면 돈을 받겠다 하며 게임 을 하였는데 이 이상한 게임을 거뜬히 아니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이 해결하자 이곳 중국인들이 우리의 호프 “오..총”에게 엄지손가락을 치겨 세우며 고개를 살랑 살랑 젖고 만다.
그것도 모자랐는지 이후 몇잔을 더 한후 취침하였다니 내일 산행이 무척걱정이 된다.
회원 모두에게 아침일찍 (01:30) 에 기상하여 02:00 경에 짚차에 나누어 타고 갈 예정이라고 알린후 취침에 들었다.
나.백두산 산행기
- 6월 18일 (날씨: 흐림)
민족과 운명을 함께하는 백두산
백두산은 민족의 발상지로 단군신화의 배경이 되었던 곳이다. 300∼400년 주기로 용암을 뿜 어냈던 휴화산이었기 때문에 사람이 살지 못했고 자연스레 불을 뿜어대는 성역으로 간주되 었을 거라는 짐작이다.
그러나 이 산의 성스러움은 산 스스로 만드는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본격적인 관광시즌에 돌입해도 실제로 천지를 볼 수 있는 것은 열에 한 팀 정도. 산의 정상부는 거의 눈으로 덮 여 있고 천지는 짙은 안개에 싸여 그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단다. 스스로 인간이 접근하기 어려운 성지임을 선언하듯이 말이다.
역사적으로 백두산은 단군조선 개국의 터전이었으며 발해(渤海)가 멸망하기 전까지 부여(夫 餘), 고구려의 영토로 한민족의 정기를 다스려 왔다. 후에 요(遼)를 건국한 거란이나 금을 건국한 여진족의 발상지도 이곳을 중심으로 하였으며 청(淸)나라 때에는 이곳을 장백산신 (長白山神)에 봉하고 출입과 거주를 제한하는 금봉책(禁封策)을 실시하기도 했다.
조선시대에 세종(世宗)은 북방야인의 침범을 막기 위해 1434년(세종 16) 두만강 일대에 6진 을 설치하였고, 43년에는 압록강변에 4군을 설치함으로써 백두산을 중심으로 압록강과 두만 강이 천연적인 국경이 되었으나, 백두산 일대는 너무 광활하여 국경선을 확연히 할 수 없었 다.
1712년(숙종 38) 5월에는 국경을 확실히 하자는 청의 제의에 의해 백두산의 분수령인 높이 2150m의 지점에 정계비(定界碑)를 세웠다. 이 비가 백두산에 전하는 금석문으로서는 최초의 유적이며 비문에 <서쪽은 압록강이고 동쪽은 토문강이다…(西爲鴨綠 東爲土門…)>라고 새겼다. 그 후 1880년(고종 17)부터 청나라는 돌연 토문이 두만(豆滿)을 뜻함이라는 억설을 주장하더니, 1909년(순종 3) 만주 침략의 야욕을 가진 일본이 북경에서 청나라와 회담하고 토문강에서 훨씬 남하하여 두만강이 한·청 두 나라의 국경이라고 임의로 협정을 체결함으로써, 한국의 영토이던 간도(間島) 전역을 청나라에 넘겨주었다.
현재는 백두산 천지 수면을 경계로 하여 동쪽의 비류봉에서 남서쪽 마천우(麻天隅)를 향해 일직선으로 국경선 표시를 분명히 하고 있다.
번호판이 없는 차량도 있고 올해 초에 백두산에 오르던 차량을 모두 새차로 교체한후 낡은 차량을 이곳으로 보내진 차량이란다. 이런 차량으로 올해 초까진 백두산 천문봉을 올랐단 말인가?
하지만 우리들을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태워 달라고 기원할 수 밖에... ...
밖의 날씨는 비는 오지 않으나 잔득 흐린 날씨인지 무척 캄캄하고 바람 한점없는 우중충한 날씨다.
어제 금강대협곡을 다녀 오던중에 도로에 사슴등이 있어 혹시 밤동물이 나와 돌아다니지 않을까 하고 헤드랜턴을 켜고 주변 숲속으로 나서보았으나 동물은 보이지 않고 왠지 써늘한 느낌이 든다.
지리산 등 남한쪽 산들은 야간산행을 많이 해보았지만 이런 느낌이 없었는데 백두산이란 이미지하고(호랑이가 산다는) 우중충한 날씨 탓인가 보다.
01:30 산장으로 돌아온 후 각 방을 돌며 회원들을 기상 시키고 산행 준비를 하였다.
그런데 우리의 호프”오..총”이 좀 이상하다.
잠을 깨웠는데 제 정신이 아닌 것 같아 보이고 비몽 사몽인 것 같다.
산행을 할 수 있느냐고 물으니 역시 백두대간을 완료한 의지의 사나인지라 산행을 하겠다 하여 구호대장 유내석씨와 A팀장 이준복씨가 좌우에 같이 산행을 하도록 부탁하고 이 산장에서 준비해준 조식,중식 및 식수 1병을 전회원에게 나누어주고 짚(도요타)차에 1대당 8명이 탑승하도록 편성하여 승차시킴.
02:00 짚3대를 출발시킨 후 마지막 후미차에 탑승후 백두산을 향하였다.
날씨가 잔뜩 흐린탓인지 산안개가 짚의 가는 길을 방해해도 용케도 운전을 잘하고 간다고 하였더니 산장을 떠난지 약 40여분쯤 갑자기 도로측편의 큰 골측으로 차량이 쏠리며 두 바퀴가 모두 빠져 전복 직전이다.
깜짝 놀라 어렵게 차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니 앞선 차량에서 우리의 사고를 확인했는지 순식간에 모두 모여 걱정을 하였지만 모두 무사하니 다행이다 하는 표정이다.
차를 빼내는 동안 주변을 둘러보니 아직 녹지않은 눈덩이들이 여기저기 무더기로 있고 그 사이 사이 하얀 작은 꽃들이 함초롬이 피어있다.
이것이 정말로 꽃인가 하고 랜턴을 켜고 확인해보니 정말 꽃이다.
반가운 마음에 현지 GUIDE 에게 물어보니 바람꽃과 노랑만병초 란다.
간신히 차량을 빼내었으나 다시는 타고 가고 싶은 생각이 없어 모두들 걸어 갈려고 하는데 중국인 운전사 아저씨들 막무가내 다시 승차하라고 한다.
다시 승차하여 약 10여분 가니 종착지다.
차에서 내리니 짙은 안개구름과 함께 비를 뿌린다.
우리 회원들 모두 무사히 도착했다는 안도감을 느끼지도 못하고 세찬 바람과 비를 피하기 위해 윈드자켙등을 꺼내 입느라 바쁘다.
어쨋건 중국인 짚차 운전자에게 고맙다고 인사하고 사례비를 주었다.
(사례비 공식적으로 약 10$. 우리돈으로 \12,000 지급)
03:55 차에서 내리자 벌써 날이 밝았는지 산행을 하기위해 준비한 헤드랜턴이 필요 없고 등산로가 잘 보인다.
궂은 날씨 임에도 설레이는 마음으로 백두산 서쪽에 있는 5호 경계비(중국과 북한의 경계)를 향하여 전대원이 출발하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우리의 호프 “오..총”을 확인해보니 현재까지 독한 술 때문인지 비몽 사몽이다.
안되겠다 싶어 구호대장에게 꼭 붙어서 산행하라고 일러두고 후미에서서 필자도 출발했다.
해발이 높고 가파른 탓인지 조금 올라가니 금새 숨이 차온다.
걱정되어 “오..총”을 다시 확인해보니 이제 토악질이다.
갈 수 있느냐 다시 확인하니 그래도 간단다.
선두와 조금 뒤 쳐져서 올라가니 5호 경계비다.
04:25 5호 경계비에 도착하였으나 짙은 안개와 비바람때문에 천지를 보는 것은 고사하고 단체사진 한장도 찍을 수 가 없다.
할 수 없이 우리 대원들을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천지쪽을 향하여 정렬시킨 다음 만세삼창과 애국가를 제창하고 백운봉을 향하여 출발하였다(04:35)
약 10여분 진행하다 선두가 멈춰있어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길을 잘못 들었단다.
백두산 백운봉에서 텐트를 치고 사진을 찍으며 4년을 살았다는 전문 GUIDE도 한치 앞이 보이지 않는 산 안개 때문에 길을 잃고 헤메이는구나 생각하고 우리 대원들에게 조심하라 주의를 주고 GUIDE와 나침반을 이용 진행방향을 결정하고 다시 진행하였다.
04:55 마천봉(일명 옥주봉) 도착 주변을 둘러보니 온통 만병초꽃과 바람꽃 천지다.
이렇게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種을 퍼뜨리려는 생태계의 자연활동이 실로 눈물겨울 뿐이다.
05:10 심한 안개비로 인하여 두번째 길을 잃었다.(현재기온 2℃)어렵사리 산행경험에 의한 방향감각과 나침반을 이용하여 길을 찾아 다시 진행하였다.
백두산 서벽코스의 종주는 이래서 노련한 산행 가이드가 꼭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껴본다.
백두산의 산행지도는 북한과 중국의 접경지대인지라 군사보안으로 구하질 못하고 개략적인 지도만 휴대하고 진행하니 노련한 현지등반 전문가이드가 없이는 안개나 구름 때문에 한치 앞도 보이질 않아 산행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05:25 청석봉 도착
청석봉을 오르는길은 백두산이 화산 활동시 생긴 바위들이 부서져 잔 너덜로 등산로에 쌓여있어 미끄럽고 경사가 급하여 무척 힘들다.
05:35 능선 진행중 화산활동으로 생겨난 최초의 잘생긴 바위를 만났으나 짙은 안개 때문에 사진을 찍을 수 가 없어 그냥 지나쳤다.
이후 너덜지대의 급경사면을 계속 내려가니 또다시 올라가야 된다는 생각에 좀 서운한 마음이 들기하기도 하고 후미에서 내려오는 대원들이 조금만 방심해도 바위돌이 굴러내려 위험하기도 하다.
06:10 완만한 안부가 나타나 휴식을 취함.
이곳부터는 백두산 천지의 트레킹을 만끽하는 곳으로 천지 봉우리에서 뻗은 완만한 수목생장선 위의 꽃대궐 구릉을 걸으면서 천지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백운봉능선까지 마치 넓은 초원길에 지천으로 피어난 들꽃을 바라보면서 백두산의 아름다움을 온종일 감상하며 무한정 걸을 수 있는 트레킹 코스로서 시야가 조금만 더 확보되면 아름다운 모습을 볼텐데 안개가 많이 끼어 좀 아쉽기만하다.
06:20 또다시 계속 내려가니 최초의 큰 골짜기가 나타나고 이 골짜기에 아직 녹지 않은 엄청난 눈 무더기가 골짜기를 메워 놓고 있고 주변에는 만병초꽃이 아주 많이 피어있다.(현재온도 3℃)
06:45 눈무더기 위를 계속 걸어 내려와 큰 골짜기에 오니 계곡을 흘러내리는 물도 있고 바람도 피할 수 있어 여기에서 조식을 하기로 하고 자리를 잡았다.
자리를 잡고 앉자마자 주변의 너덜지대에서 못 보던 동물들이 우리를 반긴다.
생긴 모양은 토끼와 같으나 아주 작다.
현지 GIUDE 에게 무슨 동물인지 물어보니 고산토끼란다.
07:15 백운봉 산장에서 준비해준 김밥을 아주 맛있게 먹고 오이등 채소류를 이 산의 주인인 고산토끼가 먹을 수 있도록 바위 위에 올려 놔주고 가파른 백운봉을 향해 출발하였다.
07:45 백운봉을 오르는 길은 코가 땅에 닿을 정도인 경사각이 45도 이상인 급경사면이다.
어렵사리 능선에 도착하여 휴식을 취하였다.
백운봉쪽을 올려다 보니 아직도 구름에 가려 보이지도 않고 약50도 정도 되는 급사면이 끝도 없어 보인다.
다시 출발하여 백운봉 뒷편 7부 능선 안부에 도착하여 2차 휴식을 취한 후 백운봉을 오르려는데 이곳은 완전히 급경사에 설빙으로 큰 경사면을 형성하고 있어 이곳을 통과해야 하는데 우리 대원들이 무사히 통과할 수 있을 것 인지 엄청 걱정이 앞선다.
현지가이드를 앞세우고 산행경력이 많은 대원들부터 앞서가며 눈위에 안전발판을 확보하며 진행하여 무사히 건너갔다.
09:00 드디어 중국측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백운봉에 도착하였다.
양쪽에 바위로 형성된 봉우리로 되어있고 가운데 넓은 분지로 형성되어있다.
이곳 백운봉에는 안개가 걷혔는데 아직 천지쪽에는 안개로 캄캄이다.
좀 실망하고 있는데 갑자기 천지 서쪽방향이 조금 열리며 천지의 쪽빛 물이 살짜기 보여주자 우리일행은 “천지다”하고 외치며 감동을 맞보려는 순간 사막의 신기루처럼 천지는 사라지고 짙은 안개만 첩첩하다.
너무 서운하여 낙담하고있으니 현지 가이드가 조금 기다리면 또 보여줄 수도 있을 거라며 기다리란다.
아니나 다를까 한 5분을 기다리고 있으니 이번엔 서쪽편을 상당히 많이 보여준다.이것이 기회다 싶어 우리 일행은 POSCO 사기 및 백두산악회기를 꺼내어 단체사진 및 개인사진을 찍는데 혈안이다.
이렇게 안개가 내려앉았다 걷혔다를 여러 차려 반복하더니 약 1Hr 정도 지나자 이제는 천지를 완전히 우리들의 눈앞에 드러내보인다.
꼭 새색시가 첫날밤 처음으로 저고리섶을 여는 모습이 이런것이 아닐까.
민족의 영산, 백두산이 눈앞에 보이기 시작한다.
백두산은 북한과 중국의 국경이 만나는 한반도 최고봉의 산이다. 북한의 함경남북도(현 양강도) 삼지연군(三池淵郡)과 중국 만주(滿洲)의 길림성(吉林省)이 접하는 곳에 있다.
해발고도 2744m. 총면적 약 8000㎞. 산 정상부가 백색의 부석으로 이루어져 백두산이라고 불리는 이 영산은 사람이 함부로 다가가지 못했던 성역이었다. 일년의 반 이상 눈이 내리는 기후와 험준한 산세가 처음 장벽이요 민족의 발생지로서 신성함이 두 번째 장벽이다.
10:00 보고 또 봐도 질리지않는 천지를 뒤로하고 백운봉을 출발하였다.
이곳에서부터는 어렵지않는 능선길이다.
10:45 녹명봉 정상에 올라서니 200M 하부는 온통 안개구름 바다 같다.
※녹명봉의 유래
녹명봉의 하단부 (천지 반대편) 에 광활한 분지가 넓게 펼쳐져 있는데 매년 7~8월경이면 백두산의 사슴들이 여름을 나기 위해 이곳에 몰려와 풀을 뜯고 번식을 하기 위해 숫사슴끼리 뿔을 받히는 소리와 울부짖는 괴성이 이 녹명봉까지 크게 들린다고 하여 녹명봉이라 한다함.
녹명봉을 출발하여 백두산 천지의 푸르름을 우측에 두고 마루금을 계속 전진하자 백두산의 가장 높은봉(이북측에 있음)인 장군봉이 안개구름사이로 수줍듯 얼굴을 내밀고 인사를 한다.
아~ 이감동..!
바로,, 바로 저모습이 청순녀.. 그래 지금까지 찿고자 했던 진정한 청순녀가 아니더냐…!
청상과부를 보셨습니까?
앳댄 나이에
사랑하는 이를 저세상 언저리로 보내고
새하얀 소복옷에 다소곳이 머리숙이고
가느다란 향 피어오르는
제단앞에 애처롭게 앉아있는
청상과부의
청조함을 보신적이 있으십니까?
당신은 시리도록 가슴아픈 사연을 묻지만
보는이는
코끝이 찡하고 이 가슴이 뭉쿨해지도록
신선함이 느껴지는것은 왜일까요?
이른아침 산행을 시작하기전 베낭을 둘러메고
오르고자하는 산마루를 보십시요.
목화솜보다더 부드럽고 푹신한 새하얀 산안개가
산마루를 빼꼼이 내어놓고 있는 모습이…….
가슴벅찬 청산과부가 거기에 있을겁니다.
-쌍구년 팔월에 임천모-
11:30 백두산 마루금을 계속 진행하자 관광객들이 천지를 보기위해 오르는 북벽이 보이고 관광객들이 개미 크기만하게 보이며 와글와글 소리가 들린다.
반가운 마음에 우리 일행도 목청껏 소리를 질러보지만 들리는지…
조금 더 진행하자 넓은 구릉지가 나타나고 야생화 밭이다.
이 야생화 밭을 지나면 천지물이 빠져나가 장백폭포로 이어지는 큰 골짜기가 나타난다.
우리 일행은 오전과는 달리 날씨도 화창하고 야생화도 만발한 이곳 구릉지에서 중식을 하기로 하고 백운산장에서 마련해준 도시락을 먹을려고 펼쳤으나 도저히 한입도 먹을 수가 없다.
아침으로 준비한 김밥과 달리 점심 도시락은 쌀이 익지도 않은 완전한 생쌀이며 밥알은 모래알이요 반찬은 마른명태를 찣어 버무린 것이니 목에 걸려 넘어가지를 않는다.
어느 대원은 새벽에 일어나자 마자 잠이 덜깬 상태에서 도시락을 준비하여 밥만 2개 준비하여 아예 아침, 점심을 제데로 먹지 못하고 산행을 하여 더 어려움을 격기도 하였다.
대부분의 대원들이 밥먹는 것을 포기하고 준비해간 소주한잔에 허기를 달래고 만다.
12:00 이젠 우리의 영산 백두산 천지를 남겨두고 떨어지지 않은 발걸음을 달래며 장백폭포를 향해 하산을 하였다.
이 장백폭포로 가는 길은 온통 이름 모를 야생화의 들꽃 천국길이다.
해발고도 2,000-2,500m의 고지대로 6월 중순에야 봄을 맞이하는 백두산 서벽코스는 트레킹하기에 적당한 완만한 경사의 구릉지로 6개월 이상 눈 속에 파묻힌채 혹독한 겨울을 견딘 노란 만병초등이 일제히 꽃을 피워 천지 서편아래의 구릉은 온통 들꽃으로 뒤덥기 시작을 한다.
이 야생화에 취해 사진을 찍으며 하산하다 보니 장백산 온천지대가 보인다.
12:40 큰 계곡이 보이고 장백폭포의 장엄하게 쏟아지는 큰 물줄기가 시원스레 쏟아지는 장쾌한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그 아래로 이도백하의 하얀 물줄기가 깊은 계곡사이 사이를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다.
13:10 장백폭쪽으로 가는 하산길이 너무 가파르다 보니 하산하는데 어려움이 있었고 대원들의 마지막 산행을 고달프게 하였다.
장백폭포 하단 이도백하 근처까지 다왔다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가이드가 또다시 길도 없는 숲으로 들어가며 우리를 안내한다.
지친 대원들이 불평도 하였지만 가이드의 얘기는 이곳 등산로로 하산하면 중국 공안당국에 벌금형이고 또 소천지쪽으로 나갔다가 다시 장백폭포로 입장하면 입장료를 내야하기 때문에 길은 없지만 숲길을 헤친다고 하니 할말이 없다.
13:40 한참 숲을 헤치고 나오니 바로 앞에 시원스레 물줄기를 쏟아내는 장백폭포가 있다.(폭포높이 78M)
반가운 마음에 폭포앞에서 좀 모자란 포즈를 취하고 사진을 찍어보지만 대자연 앞에 하찮은 이 인간이 폼을 잡아 봤자……
이곳에도 관광객을 상대로 백두산 천지사진 및 조잡한 물건등을 파는 행상이 우리를 귀찮게 한다.
백두산 사진 한장에 우리화폐로 만원이다.
인화지로 인화한 사진도 있고 종이에 컬러 복사한 천지의 풍경도 있으니 물건을 잘보고 사야 한다 인화지의 사진은 뒷면에 영어로 인화지회사가 살짝 프린팅이 되어 있으니 자세히 보면 확인 할 수 있다.
또한 폭포앞에서 중국인들이 한복등을 비치하고 사진을 찍도록 하고있다.
14:00 폭포앞에서 사진을 찍느라 폼을 잡다 내려오니 우리 일행을 기다리는 태양관광㈜ 성영주 사장님이 반갑게 우리 일행을 맞이해준다.
성영주 사장님은 이제껏 해외에 손님들을 안내하면서 등산을 하지못한 관계로 손님과 처음 떨어져 보았다며 연신 걱정을 하고있었는데 우리 일행들이 무사히 등산을 마치고 하산하여 반가운 마음에 내려오는 일행들과 “수고하셨습니다”하며 악수를 청한다.
고마운 마음에 악수를 하고 한참 내려오는데 갑자기 장뇌삼을 파는 행상들이 숲으로 몸을 급히 피한다.
왜 그러나 의아하게 생각하고 좀 내려오니 중국 공안원인지 완장을 찬 사람이 올라 오고 있다. 이제서야 이해가 되었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서나 마찬가지로구나...
이도백하를 가로지르기 위해 다리를 건너니 이곳에 장백폭포행 입장료를 징수하는 곳이 있다.(중국화폐 10원/1인)
이국땅에 와서 입장료를 내지 않고 관광을 하고 보니 기분이 묘하다.
조금 내려오니 노천온천이다.
평평한 바위 사이사이에서 퐁퐁 솓아 나는 온천물을 모아 큰 파이프에 이송하고 있고 여기에서 넘쳐 나는 온천물로 달걀을 삶아 한국돈 \1000원에 3개를 팔고있다.
신기하고 못보던 풍경이라서인지 모두들 온천물에 삶은 달걀을 사먹고있다.
필자도 먹어봤는데 좀 맛이 더 있는 것 같기도 하고...
14:20 주차장 근방으로 나오자 온통 물건을 팔려는 호객꾼으로 정신이 없다.
좀 이상한 것이 우리화폐 1,000 짜리 11장에 만원권 1장에 바꾸잔다.
이상해서 물어보았더니 중국당국에서 소액권은 환전하기가 어려워 그런단다.
이곳까지 와서 저 퐁퐁 솟아나는 백두산 온천물에 이 육신을 정갈하게 하지 않으면 후회가 막심할 것 같아 근처 온천장엘 갔더니 \10,000원이나 달랜다.
시설은 우리나라 달동네 목욕탕보다 못한 시설이고 1회용 면도기는 이사람 저 사람이 쓰던 것을 다시 사용하도록 하고있단다.
이곳에서 면도기를 사용하면 깍는게 아니라 뽑히는것이니 그래도 좋다하면 사용하시길.
15:00 목욕을 마치고 주차장에 대기하고있는 버스에 오르니 우리 일행이 없다
운전기사에게 물어보니 이곳에서 멀지않은 장백온천별장호텔로 걸어갔다고 한다.
우리도 걸어 갈려고 나서는데 또 비가 쏟아진다.
다시 버스로 승차하여 비를 피하니 금방 갠다.
버스에서 나와 주변을 둘러보니 장백온천장 주변은 LG.한국통신등 대형입간판 등이 있고 상인모두가 한국말들을 사용하고 있어 이곳이 중국땅인지 한국땅인지 착각이 들 정도임.
현지인의 얘기론 일본인이나 중국인(대만)등은 물건 구매등을 잘하지않는데 한국인들은 현금을 사용하며 물건구매를 잘하기 때문이라함.
16:00 장백산 온천별장 입실후 휴식
온천별장의 시설은 낡았으나 종업원아가씨들이 친절하고 깨끗함.
2층에 이 장백산 온천물을 이용한 목욕탕이 1개소 있으나 이곳도 사워기는 없고 큰 탕만 있음.(온천물은 온천장과 같음)
17:30 석식
이곳 식당주인 할머니가 서울 강남사람으로 반찬등이 정갈하고 맛있음
※원래 이곳에서 숙식중 태양관광 성사장님께서 송아지 바베큐로 뒤풀이를 하기로 했었으나 이곳 북측 산문내에서는 중국공안당국에서 산불방지를 위해 야외에서 불을 지피지 못하도록 하여 마침 인근 주민이 잡은 백두산 천지에서 서식하고있는 (원래 천지는 물고기가 없었으나 북한의 김정일지시로 산천어를 넣었다 함) 산천어가 장백폭포로 떠내려온 것을 잡아 놓은것으로 회 및 매운탕으로 (19:30) 회포를 풀고 향후 관광일정에 대해 협의를 함.
6월 19일 (날씨: 맑음)
03:40 기상후 목욕탕엘 가봤더니 탕에 적당의 물을 받은 다음 계속 흘러 내보내고 있다.
무한정 뜨거운 물이 계속 나오니 굳이 아낄 필요가 없나 보다.
04:30 강성호 부회장이 일어나자마자 곧바로 디지털카메라를 챙겨 소천지를 찾아 나선다.
어제 저녁 산천어회와 함께 먹을 술 준비차 오수환 총무와 함께 나갔을 때 소천지를 보았는데 카메라를 소지하지 않아 촬영을 하지 못했다던데..... 일어나자마자 나가는 것을 보니 미련이 많이 남았던 모양이다.
소천지에서 카페지기가,,,
05:30 조식
06:00 다음 여행지인 연길로 이동하는데 잘 포장된 길 양옆으로 2~30m 쭉쭉 뻗은 원시림들이 끝도 없이 펼쳐진다.
도대체 이평원이 산이고 숲이란 말인가?
산은 산인데 산이 아니고 대 평원이 아니던가 이런 천혜의 땅덩어리가 우리의 땅이 아니고 중국의 땅이라니..
이 명함을 주신분이 북파 산문에 근무하며 백두산 등정시의 모든 편의를 돌봐주고 카페지기의 천문봉 차량운행을 섭외하여(친구가 중국 공안으로 지프 차량을 운전하고 와서 성사장과 둘이서 천문봉까지 다녀오게함)
카페지기가 타고 천지에 오른 중국 공안 지프(10만원을 팁으로 주고감)
천문봉에서 내려서며 흑풍구에서 태양관광 성영주 사장님과 카페지기가,,,
백두산 등반에 도움을 준분의 명함들
06:40 이도백하를 도착하니 소학생등이 예쁘게 차려 입고 등교를 하고 있다.
이렇게 빨리 등교를 하느냐고 가이드에게 물었더니 이곳에서는 07:00에 학교수업이 시작된다고 한다.
시내의 입간판은 연길과 마찬가지로 한글 일색이다.
08:00 홍기 조선족 마을에 도착하여 잠시 휴식을 하자 A팀장을 비롯한 몇 분이서 또 길옆 조그만 가게(고동하 반점)에 들려 옥수수로 만든 술과 땡칠이 삶은 것을 들고 온다.
이동하면서 먹겠다나..멍멍..
연길로 향하던중 고동하반점에서 A 팀장이 구입한 고량주(약 5-10L)가 프라스틱 마개가 불량품인지 차량진동에 부서지면서 흘러 넘쳐 차내엔 고량주의 냄새가 진동하고 차량 천장의 환풍기를 열였는데도 모두가 고량주 냄새에 취하여 연길까지 이동하였다.
10:50 연길시 진입후 주유소에 들러 버스에 주유를 하고 연길 시내를 관통하여 용정시로 출발하였다.※중국에서는 경유가 3원23각 이고 휴발유가 2원 95각 임)
독립투사 영혼이 머무르는 곳 연변의 중심 ‘연길(延吉)’시
연변조선족자치주는 중국의 동북부 길림성에 위치해 있다. 동쪽으로는 러시아, 남쪽으로는 북한 함경북도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곳. 전체 인구 215만명 중에서 조선족이 차지하는 비율은 약 40%정도다. 중국에 거주하는 조선족이 200만여명인 것에 비하면 85만명이라는 숫자가 적은 것은 아니지만 전에는 더 많았었다. 80년대 후반에 중국이 추진한 적극적인 한족 이동정책으로 많이 줄어든 까닭이다.
그러나 아직은 자치주를 형성하고 그 안에서 한글 사용을 법령화할 만큼, 조선족끼리 결혼하지 않는 것을 수치로 알 만큼, 조선족의 사회적 위치나 결속력은 강하고 뜨겁다. 어딜 가도 교육열 높은 민족답게 이 지역 최고의 교육기관인 연변대학에는 조선족의 비율이 과반수를 넘는다.
사실 연변조선족자치주는 전체 중국에서 그리 중요한 부분이 아닐지 모른다. 조선족은 중국내 55개 소수민족의 하나일 뿐이고 연변은 23개 성 중의 하나인 길림성이라는곳의 4분의 1 밖에 안 되는 작은 땅이다. 그러나 한국과 비교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연변은 남한의 약 절반정도의 면적이며 행정구역으로 연길, 훈춘, 도문, 용정, 화룡, 돈화의 6개시와 안도, 왕청의 2현을 두고 있다.
연변의 주소재지인 연길은 조금 지저분한 거리와 간자가 가득한 간판만 빼면 한국의 모습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구멍 가게에서도 천원짜리와 일만원짜리 한국 돈이 자유롭게 통용되는 곳.
집 바깥벽은 꼭 흰색으로 칠하고 굳이 논농사를 고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거리에서 대충 잡은 택시의 운전사가 우리말로 어디 가냐고 묻는 곳.
두만강 북쪽의 연변과 백두산 서쪽의 압록강 하류 지역에 걸쳐 있는 드넓은 간도 땅. 200만 조선족 동포들이 살아 숨쉬는 중국 속의 한국이다.
전주 설렁탕집은 분점까지 있고 시내 한 복판엔 광주사우나가 있다. 한국에서도 못 본 대형 노래방이 있고 외곽으로 빠지면 가든식의 식당도 많다.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연변에는 세 가지가 많다고 한다. 술, 노래방, 택시다.
한국의 경제적인 발전이 조선족에게는 더 없이 다행이라지만 한 조선족 여인은 ‘나쁜 건 한국에서 다 배워온다’며 혀를 차기도 했다.
그의 말대로 깊은 밤 거리를 배회하는 젊은 여자들과 한국에 가서 떼돈을 벌고 싶어하는 젊은 남자들은 이미 사회적인 문제가 된 것 같았다. 조금 씁쓸한 마음, 안타까운 마음.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무시당하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간다는 그들, 그래서 생기는 약간의 안도감을 느낀다.
용정시에 위치한 대성중학교는 민족의 저항시인인 윤동주의 모교로 독립투사들을 양성하는 ‘용광로’라고 불릴 정도로 많은 독립투사를 배출한 학교다.
만주땅으로 찾아 온 독립투사들은 1910년대까지 항일독립운동을 준비하면서 사립학교 설립과 항일단체 조직, 이주민들의 민족의식과 항일사상 무장에 주력했었다.
사육중인 곰들을 다 구경하고 어떤 방으로 우리를 안내하더니 우리 일행 전부에게 곰쓸개 술이라며 한잔씩 권한다. 좋아하는 이들은 몇 잔을 마신이도…
곰쓸개 분말 A급:20만원 B급:12만원 드링크:2만원이란다.
곰농장을 나와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주변에 이상한 과일나무들이 많이 보여 무슨 과일나무냐고 물어보니 사과배 나무란다.
과일맛이 사고와 배를 합쳐놓은 것 같이 달콤하고 맛이 있다나.
그런데 과일이 너무 연하여 보관이나 운송이 어려워 수출등이 안된다니 우리는 제철이 아니면 맛을 볼수가 없다.
15:50 이북과 경계를 이루고있는 변방도시 도문에 도착함.
홍범도의 봉오동 전투 ‘도문(圖們)’
연길의 오른편에 위치한 도문은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의 남양을 바라보는 한중국경선이 맞닿은 곳이다.
이 곳 사람들은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강 건너편 북한을 자유롭게 드나들고 있었다.
도문을 찾는 한국인들은 이 국경선 앞에서 시간가는 줄 모르지만 꼭 가보아야 할 곳이 한 군데 더 있다. 1920년 홍범도(洪範圖)가 지휘하는 독립군이 일본군 1개 대대를 유인하여 기습작전으로 600여명의 사상자를 낸 봉오동전투의 전적지다.
지금은 기념비와 소나무 한 그루가 서로 의지한 채 적적하지만 봉오동전투와 청산리대첩의 쾌거는 당시 국내외 국민들에게 감격과 애국심을 일깨워준 계기였다.
도문시내 대로변은 상당히 깨끗한 편이고 외각지는 형편이 없어 보인다.
현지 가이드말에 의하면 변방도시인지라 중국당국에서 상당히 특혜를 많이 부여한다고 함.
두만강을 사이에 놓고 이북과 경계를 이루고있는 도시로서 이곳 도문시도 백두산 천지를 구경하고 돌아가는 우리 한국인 관광객들로 북새통을 이루고있었다.
강가에서 이북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데 자리에 대한 세금을 인당\1,000 씩을 달라고 하였다. 두만강가 북한을 배경으로한 사진 찍기 좋은 길목에 자릿세를 주고 불하를 받았는지 사진을 찍기전에는 가만히 있다가 한국 관광객이 사진을 찍으면 귀신같이 나타나서 돈을 달란다. 길가에 아무런 표시를 해둔 것도 아니고 봉이 김선달이 살아있으면 "나보다도 더한 놈들있구만"하고 탄식할 노릇이다. 김선달은 대동강의 물을 팔아 먹으면서도 "물"이라는 현물을 주고 돈을 받았으나 아무런투자나 표시도하지 않고 여기에선 사진 찍기만 하면 돈을 받으니....
북한과 연결된 다리를 출입하는데 \3,000원/1인을 받고있었다. 다리 입구에서 민간인에게 국경다리 출입세금(?)을 지불하면 국경을 수비하는 군인 1명이 다리 중간의 경계선까지 함께 동행하여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하고 있어 세계 유일한 분단국가인 한국인을 대상으로한 기막힌 중국 상술에 혀를 내둘러 본다.
우리 일행 몇 사람이 \3,000원을 주고 다리의 국경(경계선이 있음) 까지 가서 사진을 찍고 있는데 북한측 다리 건너편에서 여자 2명이 다릴를 건너온다. 도문에 살고 잇는 조선족 주민이 북한을 방문하고 오는지 둘다 맨몸에 손에 지닌 물건이 없는 듯하다. 죽경을 출입하는데 일상 우리들이 마을앞의 다리를 건너듯 넘어오고 중국측 다리 끝부분의 검문소 건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16:20 출발하였다.
18:40 연길시내 장백산 식당에서 석식
언제부터인지는 잘 모르나 중국에서는 식당에 들어가게 되면 꼭 쇼핑을 할 수 있는 가게앞을 통과해야 하고 식사시간도 쇼핑시간까지 길게 책정해 놓아 관광 시간을 소비하고있음.(20일 설명)
18:55 북경행 비행기의 출발 시간이 21:20으로 연길에서 시간이 남아 회원들의 자유시간 요구에 19:30까지 시간을 주어 시내 백화점에서 쇼핑할 수 있는 자유시간을 부여하였으나 백화점들이 모두 일찍 문을 닫아 연길 백화점 아래층에 있는 슈퍼마켓으로 가서 몇 사람은 술등을 구입하였으나 이곳에서는 달러화나 중국 위안화밖에 거래 할 수 없어 현지 가이드에게 즉석 환전을 하여 물건을 구입하기도 하였다.
19:20 연길 공항으로 이동
19:40 연길공항 도착후 가방등을 탑재시키기 위해 화물운송창구에 가니 모든 짐과 가방등이 시건이 않되어 있으면 공항에서 비닐끈으로 무조건 재포장하고 포장비로 10원(한화 2,000원을 받음 유일하게 중국 당국에서 한국돈을 공공연하게 받고 있는곳임)을 받고 있었다. 공항 한쪽 구석에 비닐 자동포장기를 한 대 설치하여 항공기로 부치는 모든 짐을 육안으로 선별2-3회 재 포장하고는 무조건 중국 위안화 10원, 한국돈 2,000을 받고 있어 이곳에서 또 한번 중국인들의 아주 기막힌 상술을 절감하여본다
이곳 연길공항을 이용할때는 가방의 시건장치 부착과 모든 짐을 묶어서 항공기에 탑재시키기 바람(기내에 휴대품으로 들고 들어가는 것은 상관없음).
화물을 탑재후 공항2층 탑승대기실에 올라가니 매점이 여러곳에 있어 물건값을 확인해보니 지금까지 우리 일행이 각 쇼핑가게에서 구입했던 물건들보다 값이 엄청 저렴하다.
특히 곰 농장에서 구입했던 곰쓸개 분말 A급 20만원짜리가 5만원이란다.
이럴수가…
같은 동포들이라고 믿고 구입했던 것이 이렇게 배신감에 말을 잃었다.
우리 일행이 연길현지 가이드의 안내에 의해 구매한 물품등은 이곳 공항매점에서 가격을 비교해보니 전부 바가지를 썼다.
21:20 북경행 중국 국제항공 (AIR CHINA 기종 B737-400)항공기 탑승 23:10 북경공항에 도착하여 북경측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 북경 CHINA RESOURCES HOTEL에 도착후 1박.
6월 20일 (날씨: 맑음) .
06:00 모닝콜
06:30 호텔 조식(부페식)
이화원에서,,
08:10 서태후의 여름별장인 이화원 도착후 관광실시 (08:50출발)
09:35 북경 옥 가공공장 견학 (10:25 출발)
옥가공공장에 도착하자 안내원이 능숙한 한국어로 우리를 맏이한다.
매장을 둘러보니 이제껏 우리가 옥이라고 샀던것들이 전부 짜가란걸 알았다.
제품 하나하나가 엄청비싸다. 아주작은것 하나라도 우리돈 7~80만원이고 심지어 600만원짜리 제품도 있다.
그곳 안내원에게 이렇게 비싼제품을 사는사람도 있냐고물의니 몇일전 한국분이 사가지고 갔고 주고객이 또 우리나라사람이란다.(기분이 좋은건지..?)
10:40 명 13왕릉 도착
무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관광객들이 엄청많다.
필자가 7년전에 갔을때보다 지하계단등이 많이 보수되어 한결 통행하기가 편하고 환풍 시설등이 잘되어있다.
현지 가이드 얘기로는 이 왕릉이 좌청룡 우백호가 바른 명당중의 명당이라고 얘기를하여 (중국풍수와 한국자생풍수가 다르긴해도) 필자가 주변을 자세히 둘러보니 앞의 조산이 태조산보다 위엄이있고 장엄하며 앞뜰 내명당은 좋으나 외명당이 막히고 없다.
또한 좌 청룡은 기세가 좋은데 우 백호가 너무 빈약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찌됐거나 좋은 명당이라니 그렇달수밖에..
11:00 중식(사위식당)
이곳 식당도 쇼핑을 할수있는 매점을 통해 식당을 들거나 날수있게 되어있다. 식사후 쇼핑시간이 너무길다.
일행중 실크패션쑈를 보고와서 좋아하는이도… 그저 여자라면..
13:00 만리장성도착
장성에 도착하여 주차장에 버스가 정차하자 북경의 현지 가이드가 만리장성 관광시간을 30분내에 하라고 한다.
용경협관광과 북경의 써커스 시간이 없단다.
이에 강성호 부회장이 현지 가이드에게 심하게 항의를한다.
그럴만도 하는 것이 식사후 필요없는 쇼핑시간을 많이 할애하고 관광시간은 짧게 책정하니 누구라도 마음이 편치 않을것이다.
일을 잘수습하고 우리일행들이 만리장성에 올라가자 왠돌풍이 심하게 불더니 번개불과 함께 소낙비가 쏟아진다.
망루에서 비를피하고 서있으니 현지가이드가 옆에있어 왜 식사후 그렇게 쇼핑 시간을 할애하느냐고 물으니 중국관광당국의 지시사항이라 자기도 어쩔수없다 한다. 소낙비가 멈추자 서둘러 만리장성 관광을마치고 버스에 승차하여 용경협으로 출발하였다.
※만리장성은 중국고대의 중요한 군사시설로 기원전 7세기에 건조되기 시작하였고 그 길이는 서쪽의 감숙성 가용관에서 동쪽의 하북성 산해관까지 뭇산을넘고 사막을 경유하여 6개성 1개시를 가로지난 총길이가 6,700Km에 달하는 현재의 장성이 되었다.성벽의 높이는 8.5m 윗부분의 넓이는 5.7m 이고 성가퀴의 높이는 1m이다.
15:50 용경협 주차장에 도착후 버스에서 내려 5명씩 나누어 빵차에 탑승 후 용경협
매표소까지 이동함.(버스가 용경협 매표소까지 갈수있으나 이곳 중국당국에서 버스주차장을 멀리두고 빵차를이용하도록하여 관광수입을 올리려는 목적인듯)
※용경협은 북경의 소계림이라고 불린다.
북경시 동북쪽으로 45Km에 위치하고 있으며 특히 한국 관광객에게 인기가좋 은 곳이라 한다. 처음엔 조그만 계곡이었는데 댐건설후 협곡에 많은 물이고여 지금의 용경협이 탄생되게 되었 다. 입구에들어서면 500m 정도의 용모양 에스컬레이터가 댐 상부까지 설치되어있어 쉽게 올라갈 수 있도록 되있고 인위적으로 만든 굴(통행로)를 따라 조금가면 선착장에 도달한다
이곳에서 배를타고 30~40정도 유람을 할수있도록 하였는데 좌,우측의 계곡은 마치 한폭의 동양화를 보는듯하다.
배를타고 이동하다보면 양쪽의 산과 산을 연결한 줄이있어 물어보니 이곳에 외줄 자전거타기 서커쓰를 한다고 한다.
겨울에는 호수가 얼어 개장을 하지 않는다니 참고하시길..
용경협에 도착후 유람선(배)에 승선후 약 40분정도 유람함.
용경협의 제일깊은 수심은 약 70m정도라함.
17:00 용경협 관광후 북경행
19:10 북경 써커스 구경
20:30 석식후 호텔 복귀후 2박
- 6월 21일 (날씨: 맑음)
06:00 모닝콜
06:30 조식후 천안문광장출발 (07:10)
07:40 천안문광장 도착
천안문 광장에는 많은사람들이 모여있고 중국사람들이 연을 많이 띄우고있다.
연을 아주 정교하게 만들어 정말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인줄 알았음.
필자가 연에 대해 관심을 보이자 연을 날리던 이가 연을 살거냐고 묻는다.
아니라고 했더니 냉랭하다.
우리 일행은 여기서 단체사진을 찍고 자금성으로 향했다.
08:10 지하도를 통해 자금성 도착
자금성은 중국베이징에있는 명,청시대의 궁전으로 자금이란 북두성의 북쪽에 위치한 자금성이 천자가 거처한는곳이란데서 유래된 말로 베이징의 내성 중앙에 위치한다. 남북약1,000m 동서약760m 의 성벽으로 둘러쌓인 1구획으로 둘레에 도랑을 파놓았다. 성벽주위 4곳에 각각 1개씩의 궁문이 있는데 남쪽의 오문이 정문으로 특히 웅대하며 동쪽을 동화문 서쪽을 서화문 북쪽은 신무문이라부르며 네모퉁이에 각루가 서있다.(이하 생략)
11:50 북경시내 춘천식당에서 중식.
이곳에 중식을하기위해 버스에서 내리니 어린거지들이 돈을달라고 조름.
이 어린이들을 농촌에서 데려오거나 매매하여 데리고 와서 구걸을 시킨다고함.
※중국의 한족은 당국에서 1자녀만 갖도록 하고있는데 아들을 낳기위해 더낳은 어린애는 호적에 등재하지않고 버리거나 매매한다고함.
아들 선호사상은 이곳 중국이나 우리나라나 같은 사상인지..
12:30 북경공항 도착
탑승수속후 면세점에서 기념품등을 구입. 특히 중국술등을 많이 구매함.
14:00 인천행 항공기에 탑승하였는데 항공기가 국내선(B737-400)같이 적고 항공기가 적은 관계로 기내 면세품은 판매하지 않음.
운항중 유창한 한국말 안내방송이 있어 이상하게(?) 생각하였으나 기내 서비스 과정에서 대한항공 승무원 복장을한 승무원이 있어 한국어로 물어보니 자신은 대한항공 교환승무원이라 하고 한국에는 며칠전에 비가 많이 와서 가뭄이 해갈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하여주며 중국국제항공과 북경에는 면세품이 비싸니까 사지 않는 것이 좋다면서 출국할 때 국내 면세점을 많이 이용하는 것이 국가 이익에 도움이 된다고 친절하고 상냥하게 안내함.
창가에 앉았으나 구름이 많아 아무것도 보이지않음.
인천공항에 거의 닿아서야 인천앞바다 및 공항이 보임.
말로만 듣던 인천공항이 엄청크게 보이고 주변은 아직 정리가 안된상태임.
17:00 인천공항에도착
인천신공항에 도착하여 공항청사내로 들어오니 시설이 아주 잘되어있고 귀국수속도 아주 간단하고 신속함. 역시 국제 공항에 걸맞도록 되어있다고 생각함. 공항청사 밖에서 김포공항행 리무진 버스에 몸을 실으니 역시 우리의 버스가 편안하고 안락함.
중국정부에서 생산한 버스는 외모는 괜찮은 편인데 편안하고 안락하지 못함.
김포공항에 도착하여 2층매점에서 석식을함.
정의석 감사는 중국에서 거의 음식을 입에 대지 못하더니 이곳에 와서 육개장국을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먹어치움.
20:00 사천행 아시아나(기종 A321 A300 계열의 최신기종이라함)항공기에 탑승
21:00 사천공항에 도착하여 기다리고 있던 태양관광 이도기 기사의 버스에 승차한후 광양으로 이동
함. 이동중 5박6일 동안 중국관광 및 백두산 산행에 대해 서로 의견을 나누고 즐거웠던 일과 미비했던 사항들에 얘기를 나눔.
송구스럽게 회장단에대해 치사도 많았음.
02년09월경에 본 산악회 D팀에서 백두산 산행을 다시 기획하고 있는데 이때는 이번에 미비했던 점들을 보완하고 관광코스도 제 정리하여 알찬여행이 될수있도록 하겠으니 많은 참여 부탁드리며..
이번 백두산 등정기 및 중국관광 여행기를 마치고자 한다.
현지 가이드가 그때그때 얘기한던 것을 빠뜨리지 않고 그때그때마다 기록한다 다고 하였으나 필자가 처음 기행록을 쓰는것이다보니 여러모로 미비하고 부족한점 한이 없으나 향후 보다 더 나은 기록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슴을 약속드리며 부족한 글 마친다.
산행에 관한 문의사항이 계시면 011-9803-8904, 강성호에게 문의 바람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