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종사님께서 밝히신 후생길 인도하는 법설(천도법문/천도품5장)
종재식 가운데 간절하게 돌아가신 영가의 이름을 부르며 부탁하는 천도법문은
1)원불교에서는 각종 천도재나 49재 때 영혼 천도를 위하여 읽는 경문입니다.
2)1935년(원기 20) 경에 새 부처님 소태산 대종께서 직접 지은 경문으로 원불교 교전 천도품 5장에 밝힌 법문입니다.
3)사람의 열반 전후에 그 영혼이 착심에서 벗어나 바른 길을 찾아가도록 인도하는 법문입니다.
4)중요 내용은 사람의 빈부귀천·길흉화복·수명의 장단 등이 모두 자기 스스로가 그렇게 지은 것이며, 성품의 본래 자리에는 부처와 중생이 조금도 다르지 않기 때문에, 애착·탐착을 끊고 청정한 마음과 큰 서원으로 중생계를 벗어나 불보살 세계로 나아가 영생을 통해 생사해탈·성불제중의 큰 일을 성취하기를 축원하는 것입니다.
오늘 종재를 당해서 대종사님께서 직접 밝히신 천도법문을 구체적으로 한번 살펴보고자 합니다.
대종사 천도를 위한 법문으로 "열반 전후에 후생 길 인도하는 법설"을 내리시니 이러하니라.
첫째, 우선 정신을 먼저 차리고 당신의 말을 들으라고 부촉하셨습니다.
「아무야 정신을 차려 나의 말을 잘 들으라.」
사람이 정신이 없으면 말귀를 알아듣지 못합니다. 대화가 통하질 않아 소통이 되질 않습니다.
사람이 정신이 맑고 깨끗하지 못하면 무슨 말을 했는지 알아들을 수 없으며, 비록 알아듣는다 하더라도 완전히 이해를 못하고 곡해하거나 오해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또한, 사람이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못하면 일생일대의 중요한 순간에 판단력이 흐려져 명확한 사리분간을 못해 전도몽상해서 엉뚱하게 사고를 치거나 큰 일을 저질러 버립니다.
우리 사람들이 언제 정신을 놓고 살거나 언제 해찰하며 언제 주로 정신이 맑지 못해 흐리며 혼미합니까?
한번 살펴봅시다. 잠을 자거나 자고 막 일어날 때, 술을 너무 많이 마시거나 마약이나 가스 본드를 흡입할 때, 건강이 극도로 쇠약할 때, 좋아하는 일에 폭 빠졌을 때, 귀신에 홀렸을 때, 한 편에 착해 무명에 가렸을 때, 생을 마치고 저승으로 갔을 때, 또는, 충격을 받았을 때, 멍하고 앉아 있을 때... 등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래서 대종사님께서는 사람이 죽으면 제일 먼저 하도록 하는 것이 정신을 먼저 차려 수습하게 하신 것입니다.
“정신이라 함은 마음이 두렷하고 고요하여 분별성과 주착심이 없는 경지를 이름이요,”고 대종사님께서는 정전 정신수양의 요지에서 말씀해주셨습니다. 덧붙여서 정산종사님께서는 "정신이란 분별성과 주착심이 없는 경지인데, 여기서 분별성이란 예쁘고 밉고 좋아하고 싫어하는 마음들이 잠시잠시 일어나는 것이요, 주착심은 그 분별성이 마음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분별성과 주착심이 없는 때가 정신이다."고 한울안한이치 일원의진리 40절에서 설명을 해주시면서 “정신은 한 생각이 청정하고 온전한 것이다."고 39절에서 밝혀주셨습니다.
따라서 우리 원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의식에서 죽은 영가로 하여금 정신을 차리라고 좌종을 울리고 목탁을 치며 염불을 하며 성주와 독경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산종사님께서는 『우리 정신이 흩어지기 쉽나니 마음을 언제나 집중, 몰두, 통일시키도록 하자. 우리의 지혜가 어두워지기 쉽나니, 사리간에 언제나 배우고, 생각하고, 연마하도록 하자. 우리의 육근이 그릇되기 쉽나니, 육근 작용을 언제나 결단, 실천, 중화로 하자.』고 법문 3집에서 말씀하셨습니다.(교법 46장)
둘째는 일체만사를 다 본인이 짓고 본인이 받음을 확연히 알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네가 선악간 받은 바 그것이 지나간 세상에 지은 바 그것이요, 이 세상에서 지은 바 그것이 미래 세상에 또 다시 받게 될 바 그것이니, 이것이 곧 대자연의 천업이라, 부처와 조사는 자성의 본래를 각득하여 마음의 자유를 얻었으므로 이 천업을 돌파하고 육도와 사생을 자기 마음대로 수용하나, 범부와 중생은 자성의 본래와 마음의 자유를 얻지 못한 관계로 이 천업에 끌려 무량 고를 받게 되므로, 부처와 조사며 범부와 중생이며 귀천과 화복이며 명지장단(命之長短)을 다 네가 짓고 짓나니라. 아무야 일체 만사를 다 네가 짓는 줄로 이제 확연히 아느냐.」고 하여 이 생과 저 생을 통해 선악간 짓고 받는 천업과 또한 자성의 본래와 마음의 자유를 얻지 못해 그 천업에 끌려서 받는 무수한 고통과 업보도 결국은 다 자기가 짓고 받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대종사님께서는 대종경 인과품 16장에서 「모든 사람에게 천만가지 경전을 다 가르쳐 주고 천만 가지 선(善)을 다 장려하는 것이 급한 일이 아니라, 먼저 생멸 없는 진리와 인과 보응의 진리를 믿고 깨닫게 하여 주는 것이 가장 급한 일이 되나니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인과품 1장에서는「우주의 진리는 원래 생멸이 없이 길이길이 돌고 도는지라, 가는 것이 곧 오는 것이 되고 오는 것이 곧 가는 것이 되며, 주는 사람이 곧 받는 사람이 되고 받는 사람이 곧 주는 사람이 되나니, 이것이 만고에 변함없는 상도(常道)니라.」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대산 종사님께서는 「원인이 결과가 되니 주는 자가 곧 받는 자로다. 달게 받아 다시 갚지 말고 선업으로 인연을 맺으라. 금생에 업력에 끌려 다니면 내생에 그 과보가 다시 돌아오고 금생에 업력을 굴리고 다니면 내생에 그 과보가 생기지 않도다.」고 인과송을 노래하셨습니다.
셋째는 생사가 없는 성품(일원상)자리를 확연히 깨달아서 육신 나고 죽는 것을 생사로 알지말고 변화로 알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아무야 또 들으라. 생사의 이치는 부처님이나 네나 일체 중생이나 다 같은 것이며, 성품 자리도 또한 다 같은 본연 청정한 성품이며 원만 구족한 성품이니라. 성품이라 하는 것은 허공에 달과 같이 참 달은 허공에 홀로 있건마는 그 그림자 달은 일천강에 비치는 것과 같이, 이 우주와 만물도 또한 그 근본은 본연 청정한 성품 자리로 한 이름도 없고, 한 형상도 없고, 가고 오는 것도 없고, 죽고 나는 것도 없고, 부처와 중생도 없고, 허무와 적멸도 없고, 없다 하는 말도 또한 없는 것이며, 유도 아니요 무도 아닌 그것이나, 그 중에서 그 있는 것이 무위이화(無爲而化) 자동적으로 생겨나, 우주는 성·주·괴·공으로 변화하고, 만물은 생·로·병·사를 따라 육도와 사생으로 변화하고, 일월은 왕래하여 주야를 변화시키는 것과 같이 너의 육신 나고 죽는 것도 또한 변화는 될지언정 생사는 아니니라. 아무야 듣고 듣느냐, 이제 이 성품자리를 확연히 깨달아 알았느냐.」고 하셨습니다.
생사의 이치는 인간이면 누구나 피해갈수 없는 이치고 하시면서 우리 성품은 원래 청정하고 원만구족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비유하시길 성품자리는 허공에 있는 달과 같이 참 달은 허공에 홀로 있건마는 그 그림자 달은 일천강에 비치는 것과 같이 이 세상에 벌려져 있는 모든 것이 그 근본은 본래 청정하고 원만구족한 자리로 이름도 없고 형상도 없고 가고 오는 것도 없고 죽고 나는 것도 없고 그 자리는 부처와 중생도 허무와 적멸도 없는 지극히 고요하고 평등한 자리인데 한 물건(공적영지의 광명)이 무위 자동적으로 생겨나 이 우주를 성주괴공으로 변화시키고 만물을 생로병사를 따라 육도와 사생으로 변화시키며 해와 달이 왕래하여 낮과 밤을 변화시키는 것과 같이 우리 육신도 나고 죽게 한다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 육신이 낳고 죽는 것이 이러한 우주자연의 자연스런 변화일뿐이지 생사는 아니라고 강조하셨습니다. 낳고 죽는 것이 분명 생사인데 왜 굳이 생사가 아니라고 말씀하셨을까요? 그것은 생사에 대한 두려움과 초조 불안을 없애고 해탈을 해서 자유를 얻으라는 차원에서 하신 말씀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대종사님께서는 「우리 사람의 성품은 원래 선악이 없는 것이나 습관에 따라 선악의 인품(人品)이 있어진다」고 수행품 30장에서 말씀하시고 성리품 2장에서는 「사람의 성품이 정한즉 선도 없고 악도 없으며, 동한즉 능히 선하고 능히 악하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한편, 정산종사께서는 「우리 본성에 무명이 생기는 기원을 알고 싶다」는 제자의 질문에 「비하건대 허공은 본래 청정한 것이나 한 기운이 동함에 따라 바람이 일어나고 바람이 일어나면 구름이 일어나 천지가 어둡게 되는 것 같이 우리의 성품은 본래 청정한 것이나 마음의 동정으로 인하여 무명이 발생하게 되나니, 마음이 정하면 청정하여 명랑하고 마음이 동하면 요란하여 무명이 발생하나니라」고 법어 원리편 16장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대종사은 생사에 대해서는 「사람의 생사는 비하건대 눈을 떳다 감았다 하는 것과도 같고, 숨을 들이 쉬었다 내쉬었다 하는 것과도 같고, 잠이 들었다 깼다 하는 것과도 같나니, 그 조만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이치는 같은 바로서 생사가 원래 둘이 아니요 생멸이 원래 없는지라, 깨친 사람은 이를 변화로 알고 깨치지 못한 사람은 이를 생사라 하나니라.」고 천도품 8장에서 말씀하셨고 16장에서는 신년식에서 「어제가 별 날이 아니고 오늘이 별 날이 아니건마는, 어제까지를 일러 거년이라 하고 오늘부터를 일러 금년이라 하는 것 같이, 우리가 죽어도 그 영혼이요 살아도 그 영혼이건마는 죽으면 저승이라 하고 살았을 때에는 이승이라 하나니, 지·수·화·풍 사대(四大)로 된 육체는 비록 죽었다 살았다 하여 이 세상 저 세상이 있으나 영혼은 영원 불멸하여 길이 생사가 없나니, 그러므로 아는 사람에 있어서는 인생의 생·로·병·사가 마치 춘·하·추·동 사시 바뀌는 것과 같고 저 생(生)과 이 생이 마치 거년과 금년 되는 것 같나니라.」고 하셨습니다.
넷째는 몸 받을 때를 당해서 착심에 끌리지 않도록 더욱 마음을 견고히 하라고 하셨습니다.
「또 들으라. 이제 네가 이 육신을 버리고 새 육신을 받을 때에는 너의 평소 짓던 바에 즐겨하여 애착이 많이 있는 데로 좇아 그 육신을 받게 되나니, 그 즐겨하는 바가 불보살 세계가 승(勝)하면 불보살 세계에서 그 육신을 받아 무량한 낙을 얻게 될 것이요, 또한 그 반대로 탐·진·치가 승하고 보면 그 곳에서 그 육신을 받아 무량겁(無量劫)을 통하여 놓고 무수한 고를 얻을 것이니라. 듣고 듣느냐. 아무야 또 들으라. 네가 이 때를 당하여 더욱 마음을 견고히 하라. 만일 호리라도 애착 탐착을 여의지 못하고 보면 자연히 악도에 떨어져 가나니, 한 번 이 악도에 떨어져 가고 보면 어느 세월에 또 다시 사람의 몸을 받아 성현의 회상을 찾아 대업(大業)을 성취하고 무량한 혜복을 얻으리요. 아무야 듣고 들었느냐.」
또 들으라고 하셨습니다. 이번에는 영가가 새 육신을 받을 때 꼭 명심해야 할 것을 간곡히 말씀해주고 계십니다. 절대적으로 착심을 끝으라고 말입니다. 왜냐면 사람이 죽어 새 몸을 받을 때는 평소 짓던 바에 즐겨해서 그곳에 애착이 있어 육신을 받기 되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그곳에 몸 받을 기회가 없으면 악도에 떨어져 큰 고통을 받게 되니 절대적으로 애착, 탐착, 원착을 여의라고 했습니다. 그래야 또 다시 사람의 몸을 받아 성현의 회상을 찾아 성불제중의 대업을 성취하고 한량없는 복을 받고 혜를 닦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영가께서는 더욱 더 정신을 차리고 듣고 또 들어서 새겨야 될 것 같습니다.
대종사님께서는 천도품 36장에서 「사람이 죽은 후에는 유명(幽明)이 서로 다르온데 영식만은 생전과 다름 없이 임의로 거래할 수 있나이까.」하는 제자의 질문에 「그 식심(識心)만은 생전 사후가 다름이 없으나 오직 탐·진·치에 끌린 영과 탐·진·치를 조복 받은 영이 그 거래에는 다름이 있다」고 하시면서 「탐·진·치에 끌린 영은 죽어 갈 때에 착심에 묶인 바가 되어 거래에 자유가 없고, 무명의 업력에 가리워서 착심 있는 곳만 밝으므로 그 곳으로 끌려가게 되며, 몸을 받을 때에도 보는 바가 모두 전도되어, 축생과 곤충 등이 아름답게도 보여서 색정(色情)으로 탁태하되 꿈꾸는 것과 같이 저도 모르게 입태하며, 인도 수생의 부모를 정할 때에도 색정으로 상대하여 탁태하게 되며, 혹 무슨 결정보(決定報)의 원을 세웠으나 사람 몸을 받지 못할 때에는 축생이나 곤충계에서 그에 비슷한 보를 받게도 되어, 이와 같이 생사에 자유가 없고 육도 윤회에 쉴 날이 없이 무수한 고를 받으며, 십이 인연(十二因緣)에 끌려 다니나니라. 그러나, 탐·진·치를 조복 받은 영은 죽어 갈 때에 이 착심에 묶인 바가 없으므로 그 거래가 자유로우며, 바르게 보고 바르게 생각하여 정당한 곳과 부정당한 곳을 구분해서 업에 끌리지 않으며, 몸을 받을 때에도 태연 자약하여 정당하게 몸을 받고, 태중에 들어갈 때에도 그 부모를 은의로 상대하여 탁태되며, 원을 세운 대로 대소사간에 결정보를 받게 되어, 오직 생사에 자유하고 육도 윤회에 끌리는 바가 없이 십이 인연을 임의로 궁글리고 다니나니라.」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천도품 11장에서는 이러한 「윤회를 자유하는 방법은 오직 착심을 여의고 업을 초월하는 데에 있나니라.」고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