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최초로 읽는 책이 동화책이고, 최초로 접하는 영화가 애니메이션인 만큼, 동화책과 애
니메이션이 아이들의 정서와 사고의 발달, 인문학적인 상상력과 창조력의 계발에 미치는 영향
은 지대하다. 영화관에 가야만 만화영화를 반복해서 볼 수 있었던 우리 기성세대들과는 달리,
요즈음의 아이들은 비디오를 통해 집에서도 몇 번이고 같은 영화를 반복해서 시청할 수 있다.
더군다나 요새 어머니들은 집안 일 혹은 바깥 일에 쫓겨 아이들과 함께 놀아 줄 시간이 없어서
또는 아이들의 조기 영어 교육을 위해서 애니메이션을 구입해 반복적으로 틀어 줄 때가 많다.
책이나 애니메이션을 고를 때, 부모들은 그림형제, 페로, 안데르센과 같은 서구의 유명한 작가
들이 쓴 고전동화나 이를 개작한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쉽사리 고르게 된다. 왜냐하면 명작이고
고전이기 때문에. 하지만, 서구고전동화와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우리가 주의 깊게 분석해보면
의외로 많은 문제점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 나라 학계는 아직 동화에 대한 학술적 연구의 중요성을 인식조차 못하고 있는 형편이지
만, 최근 서구의 많은 학자들은 서구고전동화와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내재된 여러 부정적인 측
면에 대해 진지하게 연구하고 있다. 이들 학자들은 서구고전동화와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심층서
술에 내재된 여러 문제점으로 가부장적인 세계관, 백인중심적인 사고방식, 반여성주의적인 요
소, 그리고 자본주의적 가치관 등을 지적하고 있다. 그림형제의 대표작이며 디즈니 애니메이션
의 백미(白眉)로 알려진 <백설공주>가 근래 학자들에 의해 어떻게 해석되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이를 잘 알 수 있다. <백설공주>는 여러 분야의 학자들 -여성주의자, 사회주의자, 정신분석가
등등 -에 의해 다양하게 해석되어 왔는데, 이 글에선 샌드라 길버트와 수잔 구바(Sandra
Gilbert and Susan Gubar)의 여성주의적인 해석과 잭 자이퍼스(Zack Zipes)의 사회철학적인 해
석을 소개하기로 하겠다.
서구의 대표적 여성주의 문학비평가 샌드라 길버트와 수잔 구바는 그들이 공저한 책 {다락방의
미친 여자 The Madwoman in the Attic}에서 그림형제와 디즈니의 <백설공주>를 새롭게 해석한
다. 그들에 따르면, <백설공주>는 대조적인 두 유형의 여성들 -순진무구하고 수동적인 성격을
지닌 나이 어린 천사 백설공주와 사악하고 공격적인 성격을 지닌 늙은 마녀 여왕 -의 적대관계
를 부각시켜 보여주고 있는데, 이 두 유형의 여성들은 실상 서로 크게 다르지 않은 여성들이
다. 즉 두 여성은 모두 서구 사회의 가부장적인 가치관에 지배받는 "갇힌 여인"들이다. 유리관
에 죽은 듯이 갇혀서 자신을 구원해줄 왕자를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백설공주나 왕국의 음산한
방에 갇혀서 거울 속의 남성에 의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평가받고 싶어 전전긍긍
하는 여왕은, 실상 한 여인의 두 모습일 따름이다. 길버트와 구바는 백설공주가 머리빗, 코르
셋 레이스, 빨간 사과를 탐내서 난쟁이들의 지속적인 경고에도 불구하고 행상인을 집안에 거듭
끌어들인 것에서 백설공주와 계모의 동질성을 발견한다. 그들은 백설공주도 계모여왕과 마찬가
지로 자신의 미모에 집착하는 나르시스적인 욕망을 지닌 존재이고, 또 남성의존적인 삶을 사는
데 익숙하기 때문에, 백설공주가 늙어서 더 이상 왕자의 사랑을 받지 못할 경우, 괴물스런 계모
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한다. 즉, 백설공주 자신이 계모에게 복수하기 위해 고안
한 불에 달군 쇠구두를 신고 죽음의 춤을 추는 신세가 될지도 모른다고 보았다.
미국의 대표적 동화이론가인 잭 자이퍼스는 [디즈니 마법의 해체 Breaking the Disney Spell]라
는 글에서, 디즈니 애니메이션, 특히 <백설공주>가 지닌 자본주의적인 논리와 가부장적인 가치
관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자이퍼스는 그림형제가 지닌 가부장적인 가치관을 월트 디즈니가 그대
로 계승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의 애니메이션에서 더욱 강력하고 보수적인 형태로 이를 미화시켰
다고 보았다. 그는 디즈니의 <백설공주>에서 여자와 남자의 역할은 성에 따라 확연히 구분되
고, 왕자와 난쟁이가 차지하는 비중은 그림형제의 동화보다 훨씬 더 크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우유같이 뽀얀 피부로 종달새처럼 귀엽게 노래 부르며 계단 바닥에 엎드려 열심히 청소하는 백
설공주는 아이의 이미지를 지녔지만, 실상 순진무구한 아이라기보다는 남성중심적인 사회가 바
라는 이상적인 여인에 가깝다. 디즈니의 백설공주는 잔혹한 계모 밑에서 하녀처럼 시달리면서
백마 탄 왕자님이 자신을 찾아와서 달콤한 말을 해주길 기다리고, 어두운 숲 속을 공포에 떨며
헤맸으면서도 먼지투성이의 낯선 오두막에 들어가자마자 노래를 부르면서 즐겁게 청소를 하고
음식을 준비할 정도로 완벽한 주부이다. 더군다나 일곱 난쟁이들에게 청결을 엄격히 강조하고
요리를 솜씨 있게 만들고 일터로 나가는 난쟁이의 이마에 키스를 해주는 백설공주의 모습은 그
야말로 가부장적인 전통사회가 꿈꾸는 이상적인 현모양처 그 자체이다. 그림형제의 동화에서 백
설공주가 계모에게 버림받았던 나이가 일곱 살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보여
주는 백설공주의 이러한 여성스런 모습은 너무도 비현실적이다.
디즈니는 백설공주를 이상적인 가정주부의 화신으로 만든 것처럼, 왕자를 구원의 남성상으로 부
각시킨다. 그림형제의 <백설공주>에서 왕자와 백설공주의 사랑은 중심 테마가 아닌데, 디즈니
의 <백설공주>에서는 사랑이란 테마와 왕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다. 그림형제의 <백설공
주>에서 왕자는 대단원에만 잠깐 등장하는 데 반해서, 디즈니의 <백설공주>에서 왕자는 그야말
로 '백마 탄 왕자'로 처음부터 화려하게 등장한다. 백설공주는 궁전 뜰에 있는 '소망의 우물'에
다 대고 미래의 연인을 향한 그리움의 노래- "I'm wishing for the one I love/To find me
today/I'm hoping /And I'm dreaming of/The nice things he'll say"- 를 부르고, 왕자는 시기
적절하게 나타나 「단 하나의 노래 One Song」라는 열렬한 사랑의 찬가로 화답을 한다. 여왕이
백설공주를 죽일 결심을 하게 된 것도 잘생긴 '백마 탄 왕자'와 사랑의 노래를 주고받는 공주
의 모습에 맹렬한 질투심을 느꼈기 때문이다. 또 난쟁이들과 살면서도 백설공주는 「언젠가는
나의 왕자님이 오실 거예요 Some day my prince will come」란 노래를 부르면서 왕자가 다시 나
타나서 자신을 행복하게 해줄 거라는 맹목적인 믿음을 버리지 않는다.
언젠가는 나의 왕자님이 오실 거예요.
언젠가는 우리는 만날 거예요.
멀리 있는 왕자님의 성으로 가서
영원히 행복하게 살 거예요.
언젠가 이 곳에 봄이 오면
우리의 사랑도 다시 살아날 거예요.
언젠가 내 꿈이 실현되는 날
새들은 노래하고,
혼례의 종이 울릴 거예요.
또 대단원에서도 구원자로서의 왕자의 역할이 그림형제의 동화보다 훨씬 비중 있게 그려진다.
그림형제의 동화에서 백설공주가 깨어난 것은 유리관을 어깨에 매고 운반하던 시종이 발을 헛디
디는 바람에 독 묻은 사과조각이 목구멍에서 나왔기 때문인데,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에서는 왕자
의 사랑의 첫 키스가 여왕의 마법을 단번에 풀었기 때문인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잭 자이퍼스
는 이러한 '백마 탄 왕자'의 모습 속에서 월트 디즈니의 나르시스적인 욕망, 남성중심적인 가치
관, 여성을 가부장적인 사회에 순종하도록 길들이려는 보수성 등을 발견한다.
물론, 길버트와 구바, 그리고 잭 자이퍼스와 같은 서구 학자들의 견해가 <백설공주>가 지닌 다
양한 양상 가운데 긍정적인 면은 보지 않고 부정적인 측면을 지나치게 클로즈업한 것일 수도 있
다. 관객들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디즈니의 뛰어난 유머감각, 각자만의 독특한 개성과 매력을 지
닌 일곱 난쟁이들, 동물 내지 무생물과 인간들의 따스한 교류, 밝고 경쾌한 음악 그리고 질서,
아름다움, 조화가 느껴지는 따스한 공간 등은 어린이들에게 환상과 꿈을 심어주고, 관객들로 하
여금 잠시나마 현실에서 벗어나서 유토피아적인 동화의 세계에 빠져들게 한다. 백설공주는 먼지
가 자욱한 일곱 난쟁이의 집을 동물들과 힘을 합쳐서 깨끗하고 아늑한 공간으로 변화시키고, 난
쟁이들은 다이아몬드가 아름답게 반짝이는 광산에서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즐겁게 열심히 일한
다. 백설공주가 난쟁이와 더불어 사는 숲은 노동의 즐거움과 가정의 아늑함이 느껴지고 동물과
인간이 서로 화기애애하게 교감하는 별천지이다. 하지만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펼쳐 보여주는 이
러한 별천지는 아동들로 하여금 현실과 환상의 괴리를 더욱 심각하게 느끼게 해 줄 소지가 크
다.
우리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아름다운 멜로디와 눈부신 영상 이미지에 매혹 당해, 그 이면에 존
재하는 디즈니 영화사의 음험한 자본주의 논리, 가부장적인 가치관, 백인중심적 세계관을 간과
하기 쉽다. 어린 시절에 형성된 사고 체계가 아이들의 인생에 오랫동안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는 사실을 고려할 때,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취학 이전의 어린이들이 홀로 수십 번을 반복해서
시청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보기 힘들다. 여성과 남성의 사회적 역할을 뚜렷하게 구분 지으면
서, 여성을 사랑과 결혼에 자신의 전 존재를 투자하는 수동적인 인물로 그린 <백설공주>와 같
은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어린이의 정서와 사고 발달에 미칠 수 있는 영향에 대해 좀 더 진지하
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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