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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할아버지 살던 茁浦마을은 그렇지, 한틀 지게를 엎어 놓으면 꼭 맞는 말일지도 몰라. 두 개의 山脈이 지게 목발처럼 내려앉아서 지게 고작처럼 휘어들더니, 바다의 중동을 자르고, 애타게 만나질 듯 만나질 듯 마주친 두 개의 지네 대궁지처럼 물 속에 자물리고 있더란다. 보름 사릿물이 오를 때쯤은 지네발로 두 대궁지가 달싹달싹 일어서는 것이 눈에 역력하더란다.
또 바다는 蓮꽃 시벙글어, 지듯, 風月道師의 손끝에서 떨어진 부채마냥 폈다 오물리면서 마치, 할아버지의 째진 말총 갓 구멍으로 드나드는 겨울 호리바람처럼
피꺽피꺽 여러 마리 산새를 울리기도 하더란다.
언제부터 사람이 들어와 살았는지 모르지만 하옇든 산농민의 상놈의 도둑놈의 떠돌이의 반생으로, 동학군이 날개가 잘리면서 어느 안핵사에게 호되게 걸려, 혀를 뽑힌 채, 한패거리들로 숨어와 터를 잡았더라는데 할아버지가 보기는 잘 본 모양이었다.
그래서 근동에서는 씨종에다 씨文書를 가진 벙어리 쌍것들로 구메 혼인에도 가마에 흰 띠를 못 얹혔다지만, 그래도 귀 떨어진 葉錢 하나는 꼭꼭 때워 쓰는 착한 사람들이더라는 것이다.
한번은 읍내 장터거리 그 쇠전머리 윷판막의 말뚝을 뛰어올라 반벙어리 장쇠아범이 혀를 집게로 뽑혀도 쌍놈의 말은 쌍놈의 씨로 남는 법이여. 그라믄 쓰간디. 그래도 우리 동학장이들이 바구미같이 바글바글 끓던 그때 그 장날이 멋이었당깨. 이러고서는 한참 외장을 놓더라는 것이다.
아 동헌 마루를 우지끈 부수고 알상투를 끌어내어 수염을 꼬시르고 깨를 벗긴 채 볼기를 쳐 三門 밖으로 내쫓았더니 그래도 양반 때는 알았던지 옴팡진 씨암탉처럼 두 손으로 쇠불알을 끄슥드랑깨. 활터거리에서 작것 竹槍 끝에 안 걸렸드랑가. 뚝 소리 내고 떨어졌당깨. 옴마. 그란디 한 여편네가 엎어지드니만, 옴마. 이 작것. 이 작것. 우리 딸니미 잡아먹은 갓끈 달린 이 작것 하드니만 치마폭에다 싸들고 줄행랑을 쳤드랑깨. 혀는 뽑혀도 말은 바로 허지만 말이여. 내가 그 달딴 녀석 아닌가 말이여. 알긋써. 이러더니란다.
그런데 참 묘한 것은 늘 조금때쯤 바다는 복날 개 혓바닥 빠지듯이 그 길게 뽑힌 두 지네 대궁지 사이로 밀어넣고는 혀 뽑힌 茁浦마을 사람들처럼 궁궁을을 궁궁을을 궁궁을을 맨날 이러더라는 것이다.
― 송수권 「茁浦마을 사람들」(『山門에 기대어』, 문학사상사, 1980)
송수권의 동학 서사시집『새야 새야 파랑새야』를 들고, 줄포에 간다. 갑오년 가보세! 동학군의 흔적을 더듬으며 제폭구민(除暴救民), 보국안민(保國安民), 척양척왜(斥洋斥倭)의 외침을 듣는다.
필자가 살고 있는 군산은 갑오년에 유일하게 무풍지대로 남아 있었던 곳이다. 그러나 대야 큰들을 가로지나 만경강, 동진강에 이르면, 강물은 이내 ‘척왜척화 척왜척화’로 물결친다. 피노을로 물드는 서해 갯벌처럼 울림이 큰 만큼 한이 깊어야만 했던 근대사의 강물을 보게 된다. 안도현은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눈 내리는 萬頃들 건너 가네
해진 짚신에 상투 하나 떠 가네
가는 길 그리운 이 아무도 없네
녹두꽃 자지러지게 피면 돌아올거나
울며 울지 않으며 가는
우리 琫準이
풀잎들이 북향하여 일제히 성긴 머리를 푸네
―「서울로 가는 전봉준」1연 (『서울로 가는 全琫準』)
시인은 만경들에서, 순창 피노리(순창군 쌍치면 금성리 피노마을)에서 체포되어 나주 전주를 거쳐 서울로 압송되는 전봉준을 떠올리고 있다. ‘해진 짚신에 상투 하나’ ‘울며 울지 않으며 가는’ 전봉준을 생각하고 있다. 그가 말없이 남긴 말을 기억해내고 있다. ‘기억하라 타는 눈빛으로 건네던 말’의 의미를 깨닫는다. 100년이 지난 지금.
죽산, 백산을 지난다. ‘앉으면 竹山이요 서면 白山이라’. 동학 농민군들의 후손들이 붉은 땅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 저토록 순하디 순한 백성들이 얼마나 노했으면 죽창을 들고 일어섰을까? 송수권의 서사시를 본다.
包旗를 앞세워 치켜들고
앉으면
죽창만 남은 죽산이요
서면
흰옷만 남은 백산일세
청 홍 백 황 흑의 깃발을 들고
백산에서 30리 밖의 죽산땅까지 이은
우리는 성도를 바로 잡는 농민군일세
―『새야 새야 파랑새야』(나남, 1987)
황토현을 지난다. 죄 없는 백성들이 땅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 고부 관아 터였던 고부 초등학교에서 1984년 1월 10일의 고부 봉기를 떠올린다. 함께 일어서면 산맥으로 굽이치고 파도로 달려드는 힘을. 황토현 기념관에서 황토재 전투를 상상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러나 5․16 군사 정권과 1983년 전두환 독재 정권에 의해 각각 건립된 혁명기념탑과 기념관을 보며, 갑오 혁명의 본질이 교묘하게 왜곡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를 바로 잡는 일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임을 다시금 확인한다.
남으로 내려갈수록 댓잎이 푸르다. 남도를 여행해 본 사람이면 알리라. ‘남도의 마을마다 질펀히 깔리는 대숲 바람소리 속에’ 무엇이 묻어나는가를. 송수권은 「대숲 바람소리」에서 ‘대패랭이 끝에 까부는 오백년 한숨’을 듣는다. ‘머리에 흰 수건 쓰고 죽창을 깎던, 간 큰 아이들’과 ‘황토현을 넘어가던 징소리 꽹과리 소리들’을 보고 듣는다. ‘흰연기 자욱한 모닥불 끄으름내, 몽당빗자루도 개터럭도 보리숭년도 땡볕도 / 얼개빗도 쇠그릇도 장타령도 타는 내음’을 맡는다. 남도의 대숲 바람소리 속에서 그는 ‘눈 그쳐 뜨는 새벽별의 푸른 숨소리, 청청한 대닢파리의 맑은 숨소리’를 듣는다.
고부성을 오른쪽에 두고 서쪽으로 달려 줄포에 이르렀다. 북서쪽으로 올라가면 변산이요, 아래로 흥덕을 거쳐 남서쪽으로 가면 선운산이다. 줄포만을 사이에 두고 ‘지게를 엎어 놓’은 듯 마주하고 있다. 노령산맥이 무주와 진안을 지나 정읍 쪽으로 내달리다 들판으로 잦아들었다가 서해 바다에 이르러 솟구친 곳. 줄포만 위로는 능가산(楞伽山)이 채석강까지 달리고, 아래로는 선운산을 이루며 법성포에 이른다. 곰소만과 줄포만에 서서 바다를 바라보면, ‘두 개의 山脈이 지게 목발처럼 내려앉아서 지게 고작처럼 휘어들더니, 바다의 중동을 자르고, 애타게 만나질 듯 만나질 듯 마주친 두 개의 지네 대궁지처럼 물 속에 자물리고 있’다는 표현이 얼마나 절묘한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또 줄포만의 들물과 날물로 인해 ‘蓮꽃 시벙글어, 지’는 모습을 발견하는 시인의 상상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송수권의 시 속에서 줄포리는 정토가 된다. 이제야 알겠다. 송수권 시인이 왜 변산 격포에 살고 있는가를. 그는 지금 뻘밭에 엎드린 아낙들과 함께 ‘한쪽 귀로는 내소사의 범종 소리를 듣고 / 한쪽 귀로는 선운사의 쇠북 소리를 듣는다.’(「대역사」,『수저통에~』) 그 소리에 송수권 시인이 자아와 세계 그리고 전 우주에 관한 진리를 깨우쳐 나가리라.
줄포마을 사람들은 연꽃이 시벙글면 고기 잡으러 나가고, 연꽃이 지면 갯벌에 나간다. ‘겁나게’ 넓은 줄포만 갯벌에는 온통 바지락 양식장이다. 그런가 하면 농게․시렁게․소라들이 다리 쳐들고 입벌리며 생명의 노래를 한다. 그들과 더불어 줄포마을 사람들은 살아간다. ‘겨울 호리바람’ 같은 바다에서 그들은 ‘피꺽피꺽’ 울면서 산다. 줄포 사람들, ‘산농민의 상놈의 도둑놈의 떠돌이의 반생’이다. 장흥부사였던 안핵사 이용태에게 혀를 뽑히고 숨어들어 사는 동학 농민군들의 후손. ‘구메 혼인에도 가마에 흰 띠를 못 얹혔다’는 ‘벙어리 쌍것들’. ‘그래도 귀 떨어진 葉錢 하나는 꼭꼭 때워 쓰는 착한 사람들’. 송수권은 ‘~이더라는 것이다’ ‘~하더란다’라는 간접화법을 통해 100년의 시간을 넘나들고 있으며, 새로운 전설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들은 비록 패자들이지만 그들의 내면에는 갑오 혁명의 자부심으로 가득 차 있다. 그들은 무장(고창) 당산마을 봉기를 기억하고 있다. 탐관오리 쇠불알을 땄다고 자랑하는 ‘반벙어리 장쇠아범’의 건강성 속에서 시인은 비극의 역사를 넘어설 힘을 본다.
이루어지지 않는 안타까움을 지닌 줄포 포구. 그러나 보름 사릿물에 일어서는 산맥처럼, ‘늘 조금때쯤’ 산맥과 바다가 교합하는 것처럼 새로운 세상이 이곳에서 열리리라. ‘무장 장수 개펄로 들어오는 / 짠물 소리에서도 / 혀 뽑혀 말이 되지 않는 / 저 궁을궁을 소리 / 원혼 맺힌 함성’이 배어 나온다. 그 소리가 역사를 바꾸리라. 지리산 뻐꾹새들의 울음으로 강이 열리고, 섬진강 ‘그 힘센 물줄기가 / 하동쪽 남해를 흘러들어 / 남해군도의 여러 작은 섬을 밀어올리는 것’(「지리산 뻐꾹새」)처럼 줄포 마을 사람들의 한(恨)은 역사의 추동력이 되리라.
줄포에서 돌아오는 길에 역사와 문학이 서 있는 자리를 생각한다. ‘역사는 이긴 자의 힘이고 / 패자의 군소리’(「平沙里行」)라지만, 문학은 패자의 목소리들 속에서 삶의 진실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것은 무엇이 영원한 승리인가를 말한다. 동진강, 만경강에 핏빛 노을이 번진다. 지금은 쓰러지는 시간인가? 송수권은 쓸쓸한 어조로 노래한다. 그러나 그 목소리 속에는 희망이, 승리에 대한 믿음이 배어 있다. 전봉준은 패자이지만 ‘지금도 그 원두막 널빤지를 뛰노는 새 보는 애들 틈에선 / 새야 새야 파랑새야의 노래끝인 노래 한 자락이 / 놀비낀 저녁 한때 / 萬頃江 물소리 속에선 때까치 울음처럼 / 비꼈으니 말이다.’(「새보기」)
송수권은 절망적인 70-80년대를 살아내면서 남도 언어로 남도 사람들의 삶을 시화(詩化)하고 있다. 남도 사람들의 삶은 그 자체가 한국 현대사이다.
무등산, 4․19탑, 저 황토현에 내리는 눈
식민지의 옷깃을 흘러가는 바람 소리
오늘 우리들의 패배의 이야기는
어느 대목까지 들려주어야 아름다우냐
군산평야 강경 논산평야
수천만 평 깔아놓은 적막,
이 겨울 황혼은
얼마나 깊고 얼마나 적막하냐 (……)
오늘 밤 꿈 속에서는
날개 달린 아기 장수 하나가
갈기 성성한 흑말 타고
펑펑 쏟아지는 흰 눈을 밟아
백 민(民)자 쥬인쥬(主)자 푸른 깃발 날리며
무등산 잣고개를 또 넘어오겠구나
―『새야 새야 파랑새야』 끝부분
첫댓글 民主~~~~~~~. 아직도 끝나지 않은 명제. 제폭구민, 보국안민, 척양척왜의 기치를 드높였던 우리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들 잊지말더라고.
소문으로만 듣던 대규 글을보니 친구가 쓴것이라 제대로 읽어보게되네...앞으로 시간될때 친구들을 위해 좋은 글 올려주길 바라고 졸업 후 30년만에 만나 정말 반가웠다 항상 건강해라...^^
이대규 오랜만일세 이름만 들어도 반가유이 어찌 이리 오래 보지 못햇는지...참으로 반갑네....
좋은글 잘앍었습니다 진안에서이후처음인가싶기는헌데 잘계시니 반갑습니다
이박사 글보고 들어온 여자팬도 있었네^^ 좋은 글 많이 올려주세요^^
송수권 선생님 시는 빼놓지 않고 읽는데 눈물이 절로 나더군요.특히 아내의 맨발,이사가는 날 뻐꾹새 둥지에 들다 등 등 ~~ 블로그를 가르쳐 주세요. 이대규 선생님, 블로그에 들어가 문학의 이해 읽어 볼까 합니다. 안도현님에 시와 연애하는 법,
대규야~ 오랜만에 다시 글을 읽어보면서 백성 民字 주인 主字 푸른 깃발 이란 글귀가 가슴에 꽂히는구나. 바쁜 삶의 일상일지라도 글좀 올려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