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이나 항구에서 누군가 짐을 부탁하면 단호히 거절해야 해요.”
봄방학을 맞아 해외로 나가는 어린이들이 많다고 하자 태응렬(55) 서울본부세관장은 ‘꼭 써 주세요’라며 이렇게 말했다. “어린이들은 세관과 경찰의 주요 관찰 대상이 아니거든요. 가방을 들어주면 자칫 여행을 망치는 경우가 생겨요.” 공항이나 여객터미널에서 X선 보안검색대를 통과할 때 짐이 많다며 가방을 맡기거나 아이에게 과자를 사먹으라며 돈을 쥐여주며 짐을 부탁한다면 마약이나 멸종위기 동물 등 불법 반입품일 경우가 많단다. 선의로 부탁을 들어주다 꼼짝없이 ‘당하는’ 경우도 많다고.
종이가방 등에 몰래 불법 반입품을 넣어 통과한 뒤 ‘지갑이 (가방에) 떨어졌다’며 찾아가는 경우가 있다면 반드시 신고해 달라고도 했다.
서울본부세관은 서울과 경기, 충청, 강원 지역 세관(일부 항구 제외)을 책임지는 곳. 14일 서울본부세관에서 만난 태 세관장은 이곳의 수장(首長)이다. 그는 요즘처럼 해외여행객이 많거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국가가 늘수록 세관은 바빠진다.
“세관은 우리나라에 들여오는 물건에 대해 세금을 거둬 나라 살림에 쓰일 돈을 만들죠. 또 마약이나 총기류 등 ‘나쁜 물건’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 일도 해요.” 태 세관장은 1년간 걷는 순수한 상품 관세는 약 7조 원, 부가가치세 등을 포함해 약 39조 원의 세금을 걷는다고 했다. 유해 화학물질이나 희귀 동식물의 불법 반입도 막는다.
한국이 FTA를 맺는 나라가 늘면서 우리 기업들의 해외 수출을 돕고 ‘짝퉁’(원산지 허위 표시)이 들어오는 것을 막는 일도 늘었다고.
예전에는 같은 관세율이 적용되는 ‘경계선(관세선)=국경선’이었지만 자유무역지대나 보세구역 등으로 요즘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 ‘오히려’ 할 일이 많아졌다는 설명.
“우리나라와 FTA를 맺은 나라의 원료를 사다가 가공해 다시 수출하면 원료를 들여올 때 낸 관세를 돌려받을 수 있어요. 하지만 이를 잘 모르는 기업들이 많아 요즘 열심히 알리고 있어요. 같은 품질이라면 FTA 협정국에서 사면 기업은 원가 절감이 되는 거죠. 제품 경쟁력도 생기죠.”
반대의 경우도 있단다. 한국과 FTA를 맺은 칠레의 한 업체가 아르헨티나산 가방을 수입해 ‘칠레산’으로 수출한다면 직접 현지로 가 ‘짝퉁’ 여부를 확인한다고. 아르헨티나산은 세금을 매겨야 하기 때문이다.
“FTA를 체결한 나라마다 자국산(産)으로 인정하는 규정도 달라요. 그래서 협상 때 서로 자기 나라에 유리하게 하려고 ‘마라톤협상’을 하는 거죠.”
기술발달로 법정 다툼도 많아졌단다. 모든 상품은 세계관세기구(WCO)가 분류하는 통일 상품 분류체계(HS·Harmonized System) 코드가 있는데 ‘디카’와 캠코더도 각각 분류돼 있다. 하지만 요즘같이 두 기능을 함께 사용하는 제품의 경우 디카로 분류할지, 캠코더로 분류할지를 놓고 분쟁이 많다고. 세금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태 세관장은 “법이나 제도가 기술을 못 따라 가는 경우”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세관 공무원(관세직)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태 세관장은 “관세 업무는 외국 문물을 제일 먼저 접하는 업무인 만큼 영어 등 외국어를 잘하는 어린이에게 유리해요”라고 했다. 외국 세관과 국제회의도 많고 관세 징수나, 단속 등 일하는 ‘파트’도 다양해 ‘적극적인 어린이가 재밌게 일할 수 있는 직장’이라는 것. 물론 국어, 국사, 영어, 관세법 등 필기시험을 치러야 한다.
어렸을 때 ‘그런’ 어린이였느냐고 묻자 “꼭 그렇지만은…”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태 세관장은 서울 후암초교 시절 남산에 올라 매미를 잡고 칡도 캐며 ‘서울 속 시골 어린이’로 자랐단다. 4∼6학년 때 ‘줄반장’을 한 ‘모범생’이었지만 동네 친구들과 팀을 만들어 이웃 동네 친구들과 ‘10원 내기’ 야구를 하며 놀았단다. 승리하면 ‘우승 상금’으로 복숭아나 자두를 사 먹으며 승리를 자축했다고. “초등생 때 부모님께서 퇴직교사 모임에 가서 공부(과외)를 하라고 하셨는데 노는 게 더 좋아 몇 달 다니다 말았어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내 방식대로 했거든요.”
자녀교육도 마찬가지. “자기가 계획을 세우고 공부하라고 했어요. 그리고 체벌한 적도 한 번도 없어요. 하고 싶은 걸 하라는 거죠.” 큰딸은 영국에서 박사 과정을 이수하고 있고 아들은 최근 군에서 제대했다.
학부모님께 ‘한마디’ 해 달라고 하니 “글쎄요…”라며 생각에 잠기다 ‘세관장다운’ 한마디가 날아들었다. “해외에서 1인당 400달러가 넘는 물건을 사면 반드시 (입국할 때) 신고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