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주말 저녁 7시에 벌어지는 축구경기를 공중파 TV로 중계하지 못하는 것은 축구가 그만큼 한국 사회에서 중요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월드컵이 열리는 나라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며 축구 매니아들은 목소리를 높이겠지만, 주말 저녁 황금 시간에 축구 중계를 원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대단히 적다는 것이 각 방송사의 판단이다. 온 국민이 축구를 사랑하고 그 사랑이 흘러 넘치다 보니 우리가 월드컵까지 유치하게 됐다고 많은 사람들은 믿고 있지만, 사실 대다수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 축구는 그냥 그렇고 그런 것일 뿐이다. 필자가 1년간 영국에서 유학한 일이 없다면 이런 얘기를 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영국 방송에서 축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실로 엄청나다. 영국에서 근대 축구가 생겨나기도 했지만, 중계 방송이라는 게 시작된 것도 1920년대 영국에서의 일이다. 오늘날 영국에서 축구 실황중계는 천문학적 가치의 방송 상품으로서 상업 방송인 위성방송이 중계권을 갖고 있고, 공중파 방송은 경기 당일 하이라이트를 방영할 권리를 갖는데 근래에 이 권리가 오랫동안 권리를 독점해 왔던 공영 BBC에서 민영 ITV로 넘어가게 돼 많은 사람을 놀라게 했다. 필자가 영국에 있을 때는 BBC가 하이라이트 방영권을 갖고 있었는데, BBC 9시 뉴스는 매일 15분 안팎에 불과했지만, 30년 넘게 계속 된 BBC의 'Match of the Day'라는 축구 하이라이트 프로그램은 경기가 있는 날마다 2시간 가까이 진행되었다. ITV가 중계권을 가졌던 99-00 FA컵 결승전 중계방송은 경기가 벌어지기 4시간 30분전에 시작되었고...
너무도 일찍 시작된 재건축될 웸블리(Wembley)에서의 마지막 FA컵 결승전 중계방송은 필자의 입을 떡 벌어지게 했다. 우선 영국 스포츠 중계 방송의 전설, Des Lynam의 진행이 분위기를 압도했고, 그 긴 시간이 다채로운 화면과 다양한 얘기거리로 화려하게 꾸며졌는데, 웸블리 경기장 개장 경기로 벌어진 볼튼 원더러스와 아스톤 빌라의 1923년 FA컵 결승전을 직접 보았다는 90세 넘은 할아버지의 얘기, 1966년 웸블리에서 벌어진 월드컵 결승전에서 결승골을 기록한 조프 허스트 경(Sir G. Hurst)의 감회, 주요 출전 선수들의 다큐멘터리 등 정말 볼거리와 들을거리가 풍성했다. 1871년에 시작돼 100년이 넘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축구대회, FA컵. 모든 순서는 고지식한 영국인들의 전통에 따라 착착 진행이 된다.
정해진 시간이 되면 여가수 한 명이 경기장 한가운데 모습을 드러내고 관중들은 모두 일어나 가수의 선창에 따라 또 악대의 반주에 맞춰 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놀라운 것은 이 노래가 국가도 아니요, 신나는 응원가도 아니라는 점이다. 이 노래는 찬송가로 'Abide with Me'라는 곡인데 우리 나라 개신교 찬송가 531장 '때 저물어 날 이미 어두니'와 같은 곡으로 대단히 잔잔한 노래다. 이 노래가 FA컵 결승전 때 불리기 시작한 것은 1927년의 일로 1926년 총파업 이후 국민적 화합을 도모하는 차원에서 기획된 것인데 1959년 한 번만 빼고 계속된 전통이라고 한다. 오늘날 이 전통이 경기장 분위기를 살리는 데는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지도 하지만, 영국인들에게 공동체 의식을 심어주는 오랜 관례로 'Abide with Me' 제창은 FA컵 결승전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일이 되었다.
영국인을 하나 되게 하는 범국가적 행사 FA컵. 영국에 1년쯤 살다 보면 영국에 이보다 더 큰 행사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 대회에 참가하는 팀은 최근 대회의 경우 602개 팀. 축구협회에 소속된 팀으로 소정의 조건을 갖춘 팀은 어지간하면 다 참가하는 대회다. 우리 나라의 경우에는 축구 선수와 선수 아닌 사람들이 철저히 구별돼 있어서 실감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영국에서는 어지간한 팀의 일원으로 FA컵에 출전해서 계속 이기기만 하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같은 거대기업형 명문구단과도 경기를 벌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모든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축구를 즐기고 갖은 다른 이름의 축구가 하나의 틀 속에서 어우러진다는 점이다.
영국에 축구장은 정말 곳곳에 널려 있다. 영국 땅바닥의 기본은 흙바닥이 아니라 풀밭이다. 이런 환경이 영국을 축구의 종주국일 수밖에 없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동네마다 수십 면씩 널려 있는 천연 잔디 축구장에 두 팀이 유니폼 맞춰 입고 작정하고 모여서 축구를 한다고 하면 눈곱만큼의 실비에 지역 협회에서 심판도 보내 주고 갖은 도움을 아끼지 않는다. 실비가 아까워 각자 알아서 대충 한다고 해도 말리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고... 여하튼 축구는 영국 사람들 모두가 각기 삶의 현장에서 이웃한 동료들과 함께 일상적으로 즐기는 스포츠다. 말이 그런 게 아니라 정말 그렇다. 이렇듯 대중화된 축구의 오랜 결실은 제대로 된 축구의 발전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고 이런 토대 위에 나타나는 영국인의 축구에 대한 뜨거운 열정은 한국인의 상상을 초월한다.
영국에서는 우선 축구장 입장권을 구하는 일이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다. 어느 경기장에나 50∼200만원을 호가하는 연간 입장권(season ticket) 소지자가 수두룩하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경우 경기장 수용인원은 5만 여명인데 입장권 구입 자격을 가진 회원들의 숫자는 10만 명을 훨씬 넘어서 입장권 구입 자격이 없는 비회원 방문객들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홈 경기를 보기란 이론적으로 거의 절대 불가능하다. 매 주 열리는 프리미어리그 경기 가운데 매진이 되지 않는 경기란 거의 없으며, 표를 미리 구하지 못한 사람이 그래도 억척스럽게 경기를 보고자 한다면, 연간 입장권 소지자가 모처럼 경기장 가기를 쉬는 날, 입장권을 좀 빌려 줄 수 없냐고 물어 보아야 한다. 이것도 아는 사람 중에 연간 입장권 소지자가 있어야 가능한 일인데, 이 방법 말고는 또 어떤 방법이 있더라?
이런 와중에 국제 경기 입장권 구입이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일. 유로 2000 본선 진출권을 놓고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벌인 플레이오프 전화 예매 때는 예매 시작과 동시에 150만 통의 전화가 일시에 걸려와 통신망이 마비되기도 했다. 필자는 2시간 30분동안 전화기와 씨름을 했지만 매표소와 연결조차 되지 않았고, 그 무수한 사람들 가운데 예매에 성공한 사람은 불과 3만5천명. 그나마 통화에 성공한 사람이 모두 입장권 구입에 성공한 것은 아니다. 경기장 안전을 염려한 나머지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잉글랜드 응원석에 자리를 잡는 것을 경계한 매표원이 스코틀랜드 억양을 가진 사람에게는 매표를 거부해 물의를 빚기도...
월드컵 입장권 1차 판매분이 아직도 남아있는 나라에서 이와 같은 영국 축구의 열기를 돌아보는 것은 어떤 면에서 볼 때 큰 고통이다. 19세기 후반 영국에서 시작된 근대 축구는 당시 범세계적이었던 영국의 영향으로 인해 거의 일시에 급속히 세계로 퍼져나갔다. 우리 나라에 축구가 도입된 것도 역시 19세기말 영국 선원들에 의해서였다. 이렇게 볼 때 우리 나라의 축구 역사도 종주국 영국에 비해 그리 짧은 것이 아니다. 영국을 제외한 다른 유럽국가와 남미의 축구 역사도 우리에 비해 그렇게 길지 않다. 다만 우리의 경우, 축구가 우리 삶 속으로 제대로 들어오지 못했을 뿐이다.
축구를 좋아하냐고 물어보면 아니라고 대답할 한국 사람은 거의 없지만, 많은 경우 축구 사랑에 대한 강박관념이 있다면 모를까 정말 축구를 사랑하는 사람을 찾기는 힘들고,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내세울만한 축구 문화가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뉴욕타임즈가 지난 밀레니엄 최고의 발명품으로 선정한 축구. 축구문화는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각기 다르게 살아가는 모습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고 하는데, 축구에 비친 우리 삶의 모습은 과연 어떠할지?
필요한 것은 축구사랑에 동원돼 축구를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진짜 축구를 좋아하고 자발적으로 참여하며 그로 인해 건강해지고 그것으로 인생의 지락(至樂)을 삼는 사람들이 많아야 발전하는 축구가 있고 제대로 된 축구문화가 있는 것이다. 발전된 축구문화는 그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즐거움과 만족을 줄 것이다. 조만간 주말 저녁 7시 황금 시간 공중파 TV 축구 중계로 여러분을 찾아 뵐 수 있게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