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믿고 싶지 않은 일이...
21일 점심 지나, 총무 중일에게 걸려온 전화 한 통화는 조금은 나른하던 시간에 정신을
번쩍 차리게 했다. '형, 민남형이 등반 중 사고로 구급차에 실려가고 있대...
뭐라고? 형, 아직 모르고 있었네, 그래. 너한테 처음 듣는 소리야. 사고 시간은 꽤 된것같다.
이게 무슨 일인가? 아아, 제발 큰 사고가 아니길... 그런데 119 구급차라니?
얼마나, 어떻게 다쳤길래? 설마 바닥을 친건 아니겠지?
설날 아침 다녀오기가 어렵다는 핑계로 두 분 묘소에 미리 다니러 가는 중이었다.
아무 일도 없는 날이라 생각난 김에 부모님께 다녀올 생각을 하자 그냥 묘지를 향해
떠난 것이었다. 가던 길 멈추어 다시 집으로 향했다. 그리 오래지 않아 비탄에 빠지고 말았다.
형, 민남이 형이 죽었대... 아, 어쩌란 말인가? 혹시 잘못 알려진 정보 아닐까?
우우, 제발 제발... 아마도 잘 못 들었을거야. 뭔가 잘못된 것일게야.
박민남이 그렇게 갈 사람이 아니잖아. 그럴리가 없어...
초고리 토왕폭 등반은 취소되었었다. 언제나 가깝게 지내던 청죽 산악회 김성수 악우의
사고 때문이었다.11일, 비보를 접하고 비통해 했고, 그 한참 전 지인 중 인덕공고 OB 인
악우의 사고도 있었는데...
청죽과 초고리와의 인연은 매우 깊고 끈끈하다. 참 오래되었다.
내가 아는 것보다 훨씬 오래고 살가운 두 산악회다. 물론 인수의 많은 산악회들이 서로
깊은 인연과 산악인의 정을 가지고 있지만 청죽과 초고리의 자일의 정은 특별하다.
그 중에서도 두 고인의 정은 남달랐다. 아마도 가장 가까운 두 사람이었지 않았나 싶다.
10일 전인 11일 김성수 악우가 운명을 달리했을 때 민남형은 그렇게도 슬퍼하며 안타까워 했는데.
먼저 간 그를 많이도 원망했는데. 그러면서 설악 등반은 취소하자고 했었는데, 무슨 소린가?
ㅜㅜ ... 본인이 한동안 등반은 하지 말자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이 무슨 일이란 말인가?
-. 집에 돌아와 옷을 갈아입고 수서로 나갔다. 슬픔이야 크지만 주저앉아 있을 수도 없다.
이미 청죽 산악회 몇 사람이 춘천으로 가고 있다고 했다. 명규와 기욱이도 출발했단다. 그러니
서울 장례식장 준비를 하란다. 활동하는 인원이 많지 않은 초고리라 걱정이 앞선다. 유족도 별로라니.
등반대장 형석이와 청죽 오성호 전회장 사무실에서 만나 의논하는 동안 임성열 회장은
국립의료원으로 가고. 중일이는 영정 사진 준비하고. 청죽 심회장과 회원들도 이미 장례 준비에
임할 자세인 듯하다.
오회장님의 도움으로 이미 모든 준비가 잘 진행되어 가고 있었다.
청죽, 초고리 두 산악회가 합심하여 진행하되 최종 결정은 형석이가 하는 것으로 모든
교통정리가 이루어졌다. 은행에서 현금을 찾아 형석에게 주었다. 작지만 필요한대로 우선 쓰라고...
-. 11시 10분경. 춘천에서 왕삼씨 차가 도착했다. 명규,기욱이와 청죽 문고문님 등도 함께 도착.
지하로 운구하고 나서 안치실에서 만난 민남 악우. 편안(?)하게 잠들어 있는 모습이다.
손등,윗입술 외 다른 곳의 외상은 거의 없다. 다만, 후두부 쪽에 흥건한 피가 고여있다. 상상이 간다.
나신을 천천히 살펴 보았다. 목부터 발가락까지. 임회장, 심회장, 승혁이와 나... 안치 일을
거들었다. 나와 동갑인 당신. 아직은 너무 빠르지 않나요. 산을 사랑하고 등반이 전부였던 산 사람...
위생 장갑을 끼고 손과 팔, 가슴을 만져본다. 그다지 찬 느낌이 들지 않는다. 누군가 절규한다.
죽은 게 확실한 건가요? 안치실 직원에게 괜히 던져보는 말이다. 혹시 살아있는 건 아닌가 하고...
안치실을 나오자마자 다시금 현실이 기다린다. 장례를 잘 치러야 한다. 이제 가신님을 편안하게
보내야만 한다. 청죽 사람들과 합심해 잘 치러야 한다.
-. 21일 밤, 장례식장 203호실은 청죽, 초고리 회원들로 가득했다. 물론 거의 대부분 청죽 회원들이다.
고인의 누님 두 분 내외와 이슬이가 유족의 전부인데 산악인들 때문에 갑작스런 비보에도 장례식장이
썰렁하지 않아 정말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일부 악우들이 돌아가고 조금 한산해진 새벽 2시경.
사무실에 내려가 화장장을 알아보는데 여의치가 않다. 조금씩 걱정스러워진다. 점점 더 걱정이 커진다.
-. 22일 아침, 명규 악우가 집에 다니러 가면서 접수대 인계를 받는다. 한가로운 시간이지만 형석이와
중일이는 화장장 문제로 바쁘다. 서서히 애가 타기 시작한다. 그리 어렵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던
화장장에 자리가 없단다. 여러차례 전화를 했지만 허사였다. 춘천, 벽제, 부평, 수원...
사무실에서 받은 화장장 리스트에 형석이와 중일이 계속 전화를 하지만, 없단다. 비용이 많아
제외시켰던 성남 마저도 이젠 자리가 없다. 이슬이 친구 두 명을 pc방에 보내 벽제 화장장 홈에
들어가 취소되는 걸 잡는 특수 임무(?)도 시켜보지만 아무 성과가 없다.
오후 늦게 사무실에서 성남 화장장에서 취소된 것 하나를 잡고서야 한시름 놓게된다.
저녁 7시 반쯤 되자 산악인들의 발길이 끝없이 이어진다. 거의 두 시간 동안 그야말로 정신이 없었다.
비용을 조금이라도 줄이려던 계획은 포기한다. 오신 손님 홀대할수는 없다는 판단이었다. 형석에게
의논을 한 후 207호실도 하나 더 빌리고 음식 주문도 무제한(?) 받아 즉시 주문을 한다.
민남 형, 이렇듯 많은 악우님들이 찾아 주시니 자일의 정 듬뿍 가슴에 담고 편안히 가세요^^
한동안 끊었던 담배를 벌써 두갑이나 피워댔다. 점심, 저녁을 먹지 않았어도 배고픈 줄 모르겠다.
양희가 온 이후 식구들 챙겨야 한다고 이것저것 실속있는 음료수를 제법 챙겨준 덕분인가 보다.
- . 새벽 3시 경, 이슬이와 친구, 오회장님과 부의금 정리를 하기로 한다.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걱정했던 현실적인 문제는 해결이 된다는 것을 알고 한결 마음이 가벼웠다. 정말 다행이다...
기온이 많이 내려가 어제 저녁부터 쌀쌀하더니만 많이 춥다. 새벽 4시 조금 지나 아침을 먹고 일을
재촉한다. 기욱이가 남은 음식 등 이것저것 정리,준비를 한다. 중일이와 형석이 매점, 냉장고 음식등
마무리 계산하고, 마지막 제를 올리고 서류등을 챙겨 운구차가 있는 1층으로.
BMW 승용차를 선두로 해서 국민대 입구 부근에서 노제를 올리고 인천 화장장으로 향한다.
집에 다니러 갔던 양희는 택시를 타고 국민대 앞에서 기다리다 노제에 참가해주니
정말 고맙다. 인환이도 택시로 뒤쫓아 와 저녁 늦게까지 함께 해줬다. 젊은 사람들이라 바쁠텐데...
-. 화장장에 도착해 접수하려니 진단서 원본을 달라고 한다. 형석이와 사정을 해봐도 안된단다.
수첩에 적어놨던 춘천 담당 경사에게 전화를 하고 접수 직원에게 연결해서 택배로 보내주기로 하고
접수 완료. 11시 화장인데 9시 조금 넘어 도착한 듯. 기다리는 동안 이슬이에게 이것저것 많은 얘기를
한다. 아무 소용도 없었지만... 어느 누구의 말도 소용없었다. 신뢰하지도 않는 사람에게 이해시키려는
것 자체가 헛된 일이지만...
11시 눈 앞에서 관이 사라지는 순간 북받치는 설움으로 눈물이 앞을 가렸다.
이렇게 눈물이 흐르던 때는 그리 많지 않았었다.
민남형과 가깝게 지내지 못했다. 초고리 입회 후 3년이 지나서야 몇 마디 나눌 정도였다.
민남형은 나의 초고리 입회 자체를 몇 년동안 인정하지 않은 듯하였다.
동갑이지만 너무 멀리 있는 사람이었다. 다가가려해도 마음을 열지 않았었다. 그랬었는데 그동안 미운 정이
많이 들었었나보다.
식당에 오자 형석에게 술을 달라고 해 연이어 몇 잔을 마시고 나서야 진정이 되었다.
아침에 형석, 중일에게 장부를 모두 넘겨준 뒤라 편하게 술을 마시고 오랜만에 정말 편한 잠을 잤다.
민남형이 '남형' 이라고 부르는 소리에 깨어보니 우이동이다. 형석이도 중일이도 형은 오지 말라고 한다.
서운했지만 오랜 시간 우촌식당에 남아 막걸리를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오투에서 초고리 악우 중 누군가 화가 나있었다. 그래 모두 화가 나있지만 내색하지 않을 뿐일거야.
무조건 달래야 했다. 모두 힘든 일을 치르고 이제 쉬어야 할 때인데 이 시점에서 감정을 표현하면...
일을 하다보면 어려운 일들이 없을 수 없는 법이거늘 모든 건 민남형을 위해서라는 마음으로
이해하고 넘어 갔으면 하는 바램 뿐.
120번 타고 수유역에서 4호선을 타고는 잠이 들어 눈을 뜨니 경마장을 지나고 있었다. 에고.
다시 사당으로 돌아와 2호선 환승하고 선릉에서 분당선을 타고는 다시 잠이 들어 보정역까지 갔다.
이런 야탑 가는 길이 왜 이리 험한건지. 새벽 2시경에야 집에 도착했다.
휴대폰에는 걱정하는 집사람 전화가 열통도 넘었다. 제 앞가림도 못하는 사람이라는 핀찮을 들으며
샤워하고 잠자리에... 어제 하루 종일 잤는데 아직도 피곤하고 머리가 하얗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초고리 악우님들 청죽 악우님들과 더불어 정말 수고 많았다. 민남형 평안한 영면을 위해 기도하며
두서없는 글 맺을까 합니다. 설 명절 잘 보내고 설움과 괴로운 마음 모두 묻고 새해 힘차게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2009년 1월 25일 14시 30분에
첫댓글 정말 수고많이 하셨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초고리악우님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악우님들 덕분에 민남선배 아마 흐믓하게 가셨을겁니다
나름 순수한 영혼을 가지셨던 분인데.....두 악우님들을 졸지에 山頂으로 보내고 나니 삶의 의미를 상실한것 같아요. 참으로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문준-
초고리악우님들 청죽악우님들 모두들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민남형님 편히 가세요... 형님!
날씨가 매우 추웠었는데, 초고리 악우님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아직도 실감이 나질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