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다니는 게 늘 재미난 것도 아니고, 멀리 가려면 교통비 부담도 크고 해서 애들에게 연락해보니 갈 수 있다는 사람이 지훈(영구라고 안 하니 이게 더 어색하네), 창원 둘뿐이다.
목적지는 강원도 대관령, 영동과 영서 지방을 가르는 기준이요, 평창에서 강릉으로 넘어가는 길목이 대관령이다.
대관령을 넘어 강릉까지 가는 코스는 다음에 밟으면 될 것이고, 이날은 가볍게 옛 대관령 휴게소에서 출발해 양떼목장 옆길로 선자령까지 찍고 돌아 오는 짧은, 그야말로 산책이나 다름 없는 길을 잡았다.
대충 올 거라 생각은 했지만 눈이 펑펑 내리고 발목까지 쌓였는데, 청바지 입고 산에 갈 생각하는 인간도 있다. 첫 산행부터 무리한 길을 잡으면 산에 오르는 피곤보다 그 투덜거림 상대하느라 진이 빠질 게 분명하다. 적당히 데리고 갔다가 담부터 안 따라나서겠다고 하면 그것 역시 나쁜 일만은 아닐 것이다. 창원이도 내심 그런 눈치인 듯했다.
새벽부터 길을 나서 대관령 옛휴게소에 도착하니 8시 30분이 되었다.
횡계에서 대관령 옛길로 나와 10분 정도 차를 달리면 양떼목장/대관령 마을 휴게소가 보인다. 양떼목장 부근 팬션은 연애질할 때 꿈의 장소이기도 하다. 늑대와 양의 공존이랄까.
양떼목장이나 대관령 마을 휴게소 간판을 보고 길을 잡으면 된다. 휴게소 앞에 넓은 주차장이 있어 주차는 매우 편하다.
대관령 휴게소에서 출발해 전망대를 경유해, 선자령 정상까지 갔다가
아래쪽 길로 돌아서 양떼목장 옆길을 지나 원점으로 돌아오는 3~4시간 남짓한 여정이다.
채비를 하고 출발에 앞서... 영구는 청바지 입고 산에 갈 생각이시다. 산책 수준이라 큰 무리는 없겠지만 눈이 내리는 날씨라 바지가 거치적 거릴 듯하다. 시간이 일러 주차장이 텅텅 비었다.
평탄한 오르막 길 30분 남짓, 영구가 벌써 처진다. 체력이 영 젬병이다. 사이즈만 믿는 거냐?
쉴 때 차 마시는 폼만큼은 허영호다. 아니 동네 산악회 회장님에 가깝다고 해야 하나.
호흡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이렇게 코평수를 넓히고, 훕후훕후.... 오이도 먹어가면서.
사람들이 다니지 않은 길은 허리까지 눈이 쌓였다. 다리 길이를 생각하면 그리 대단한 눈은 아니다.
가방에 사진기를 올려 놓고 한 장 찍었다. 영구 청바지가 젖기 시작해서 가져간 각반을 빌려줬다. 청바지에 스패츠를 보고 있으니 십수년 전 겨울, 헐레벌떡 뛰어오던 영구 바짓단 밑으로 하늘색 추리닝이 나풀 거리던 모습이 생각난다.
이 사진이 뭔고 하니...생김새와 어울리지 않는 나름 애교인데, 안 하던 짓이라 그런지 살리지를 못한다.
지팡이로 그린 건 다름 아닌 '♡ 명희', 곧잘 했으나 어색해 손발이 오글 거린다.
두 시간 정도 지나 정상에 도착했다. 안개와 부스러기 같은 눈발이 끊임없이 내려 시야가 좋지 않다. 얼굴 크기는 도찐개찐.
준비해 간 라면과 삼각김밥으로 요기를 하고 출발지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국립공원과 달리 산림관리하는 사람이 없는 탓인지, 등산로 주변에 텐트를 친 사람도 많고, 선자령 정상에서 버너를 꺼내 밥을 먹는 사람도 많았다. 우린 라면 국물 남길까 물도 조금씩 부어 먹었는데, 뭔가 손해 본 느낌이다.
하산 중에..
거의 내려왔다. 길이 험하지 않아 등산이 끝나갈 쯤인데도 다들 쌩쌩하다.
눈밭에 뒹굴어 보는 게 얼마 만이냐. 예상했던 대로 그림은 썩 좋지 않다.
상고대가 핀 숲. 눈에 안개까지 겹쳐 나뭇가지마다 눈꽃이 피었다. 이건 그림이다.
양떼목장 울타리를 따라 하산하고 있는 등산객들. 흔치 않은 절경에 모두 표정이 밝다.
첫댓글 이날 처음 겨울철 눈길 산행을 하고 그 매력에 흠뻑 빠졌다. 산행은 사계절 모두 좋지만 우선을 꼽으라면 겨울철 눈길산행을 최고로 꼽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