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eat Soap Opera
요즘 영국 축구팬들이 가장 많이 생각하는게 뭔지 아시는지? 신의 가호 덕에 월드컵은 끝났고 이제 우리는 정말 진지한 사업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됐다. 프로축구, 즉 리그의 개막이 임박한 것이다. 조금 우스운 일 아닌가? 지구 최고의 선수들은 독일에 모여있었을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영국 축구팬들은 프로축구 정규시즌이 돌아오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우리, 그러니까 영국 축구팬들이 정말 관심을 쏟는 것 말이다.
프로축구, 특히 프리미어리그는 TV드라마(Soap Opera)다. 진행중인 드라마나 TV쇼의 캐릭터를 알고 있어야만 재미를 느낄 수 있듯이 프로축구도 마찬가지다. 이 ‘축구 연속극’에서 우리는 팀이나 선수들 간에 맺어진 관계들의 역사 – 누가 누구에게 키스를 했고, 누가 현재의 파트너(축구로 치면 구단)와 이별하고 싶어하는 – 를 알아야 정말 재미있게 즐길 수 있다. 우리는 어떤 선수가 어떤 선수를 정말 싫어하는지, 또 맞붙은 두 팀의 감독이 전에도 만난 적이 있지만 매우 다른 스타일로 경기한다든지 하는 것들을 알고 있다. 구단, 팬, 그리고 그들이 맺은 관계의 역사, 이것이야말로 유럽과 남미에서 축구 산업의 기반을 이루는 요소다. 물론, 매주 토요일, 일요일, 월요일마다 TV를 통해 생생하게 전해지는 에피소드들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다른 대륙에서는 다르다. 아시아에서 사람들의 관심을 독차지하고 높은 시청률을 유도하는 것은 오직 국가대표팀이다. 대부분의 팬들은 축구단에 그다지 관심을 주지 않는다. 한국과 중국에서 (어떤 면에서는 일본도), 명문 구단들은 지역민들이나 지방자치단체와 진정한 연계의식을 갖는 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들 간에는 의미있는 역사도 없고 장소나 정체성에 대한 관심도, 지역 축구팀이 지역민들을 대표한다는 인식도 없다.
이것이야말로 아시아 축구단들이 막대한 TV중계권료 수입으로 든든한 재원을 확보하는 서유럽 구단들처럼 매출을 높이지 못하는 이유다. 최근 프리미어리그 20개팀의 TV중계권 계약은 2007년부터 2010년까지 3년간 17억 파운드(한화 약 3조1천억원)에 팔렸다. 영국내 중계권만 이 액수라니! (중계권을 따낸) 위성채널 BskyB는 한 경기당 410만 파운드(한화 약 75억원)을 지불하게 된다. 이건 아마 K리그 팀의 한해 전체 예산을 능가하는 액수일지도 모른다. 여기에 해외 중계권 판매액이 약 5억 파운드 정도 더해진다. (즉, 한국을 비롯한 170여개국에서 프리미어리그 중계를 보려면 지급해야 하는 돈이다.) DMB 중계권, 인터넷 중계권 등등…
진실은 이렇다. 올 여름 독일 땅으로 날아간 엄청난 숫자의 잉글랜드 축구팬들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국가대표팀은 영국 축구팬들의 맘속에선 항상 2순위에 불과하다. 그들이 진정 사랑하는 것은 자신이 응원하는 축구클럽이다. 만일 여러분이 잉글랜드 축구팬들에게 “잉글랜드 대표팀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살아갈 수 있겠는가?”라고 묻는다면 다들 그리워하긴 해도 고층 건물에서 뛰어내리는 일은 없을거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지지하는 축구팀 없이 살아갈 수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그들은 이렇게 되받아칠 것이다. “이런 멍청한 질문을 봤나!”
이 얼마나 한국과 다른 풍경인가!
이제 8월이 왔고 곧 시즌이 킥-오프된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와 풋볼리그(편집자 주 : 2부리그격인 챔피언십리그부터 4부리그격인 리그2까지 포함)는 축구팬들을 흥분시킬 것이다. 챔피언십리그는 이제 유럽에서 6번째로 큰 리그고 프리미어리그는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리그다. ‘가치(value)’는 어디에서 오는걸까? 그건 영국인들이 자신들의 ‘연속극(soapopera)’을 진정 사랑해주기 때문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