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아씨가 이 게시판을 만들어준 기념으로 작년 교지에 실었던 러시아 여행기를 올립니다. 내용이 좀 길으니 여유있는 분들만 보시어요.
- 윤 재 림 -
백야의 러시아
기 간 ; 2002년 8월 10일. 토 - 2002년 8월 14일. 목(5박 6일)
동행인 ; 20명(학교 선생님들, 젊은 부부, 아들과 함께 온 부부, 네 명의 조용한 가족, 홀로남 아저씨)
여름 방학동안 여행 기회가 생긴 것을 안 것은 지난 3월이었다. 10명의 선생님들이 결정되었고 함께 모여 칼국수를 먹으며 여행지와 여행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그동안 여행 경험이 좀 있다고 해서 아무래도 내게 뭔가를 기대하는 선생님들을 생각하며 모임 전에 여행지를 고민해보았다.
중국이나 일본은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이고 나 자신도 두세 번 다녀온 곳이라 또 가기가 그러하고, 여름이라 날씨 조건도 고려해서 더위에 시달리지 않을 곳을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가보지 못한 미지의 땅, 쉽게 접근할 수 없었던 곳, 그리고 여름이 시원한 곳. 머리 속에 번뜩 러시아가 떠올랐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마침 원하는 상품도 있었다. 워낙 멀고 생소하게 느껴지는 곳이라 선생님들의 동의가 쉽지 않으리라는 생각을 했는데 모두들 쉽게 동의를 해 주셨다.
방학 전 학교 축제로 2주 동안 정신 없이 준비와 진행을 하다 보니 모든 에너지가 고갈되었지만 바로 숙제를 챙겨 대학원에 가야했다. 집을 떠나 기숙사 생활이라는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도 그곳에서 여행사나 함께 여행할 선생님들과 전화로만 연락을 하며 일을 진행시켰다. 3주간의 대학원 수업을 마치던 날 가방 속의 짐만 바꾸고 바로 다음 날 아침 러시아 여행길에 올랐다. 종강의 아쉬움에 동기들과 이야기꽃을 피우느라 밤을 지새운 몸은 무척이나 피곤하였고, 별다르게 여행 준비를 하지도 못하고 떠나려니 뭔가 미진한 듯한 기분이 들었으나 그래도 늘상 하던 일이니 그냥 가보자는 마음으로 편안하게 출발하기로 하였다.
아침 여섯 시에 평소대로 기상하여 다시 한 번 줄여볼 수 있는 가방 속의 짐들을 점검하였다. ‘눈썹도 짐이다’라는 여행자들의 체험이 담긴 말을 생각하며 몇 번을 들었다 놓았다 하며 망설여야했던 물건은 카메라였다. 부피도 크고 무거워서 일단은 짐스러웠다. 여행 초기에는 찍는 것이 남는 것이라고 사진 찍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나중에는 뽑아놓은 사진들이 짐스럽고 사진 찍을 시간에 눈으로 가슴으로 한 장면이라도 더 담는 것이 낫다는 생각에 최근에는 사진을 잘 찍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러시아 여행은 사진에 담고 싶은 특별한 장면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결국 카메라를 챙겼다.
짐을 다 꾸리고 지난 번 중국 여행길에 중국 공항에서 샀던 자물쇠를 여행 가방에 채우고 열쇠를 빼려하니 열쇠와 함께 자물쇠의 내장이 함께 빠져 버리는 것이 아닌가? 이 무슨 해괴한 일이? 자물쇠는 이미 채워져 버렸고 버스 시간은 다가오고 어쩔 수 없이 쇠톱으로 자물쇠를 잘라야했다. ‘이런 중국놈들 같으니라고 이런 불량품을 만들어 팔다니’ 속으로 욕이 절로 나왔다.
터미널로 가는 길에 철물점에 들러 작지만 튼튼해 보이는 자물쇠를 하나 샀다. 왠지 믿음이 가고 이것으로 여행출발 신고식을 한번 치른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침 8시 논산 터미널을 출발한 버스가 대전 동부 터미널에 도착하니 9시가 조금 넘어 있었다. 10시 공항 버스를 타기까지 여유가 좀 있어 터미널 주변을 돌아다니며 러시아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초코파이와 누룽지 등의 간식거리를 사고 돌아와 보니 대전과 신도안에 사시는 선생님들이 와 계셨다. 특히 두 명의 신 선생님들은 아침 8시 조금 넘어 도착하셔서 기다리고 계셨단다. 첫 해외여행의 흥분과 불안감이 저 사람들을 일찍 서두르게 했으리라.
일행이 많아서인지 버스 안에서 시끄러운 목소리는 모두 우리 팀의 소리인 듯 했다. 이야기와 간식과 졸음을 섞어 시간을 보내니 한강이 눈에 들어왔다. 비가 많이 와서 한강 둔치들이 물에 잠겨 있고 예쁘게 가꾸어 놓은 나무와 풀, 꽃들이 처참하게 쓰러져 안쓰럽다. 잠수교도 물에 잠겨있었다. 공항에 도착하여 음식 맛이 괜찮다는 식당을 찾아 들어갔다. 한국의 입맛을 간직할 수 있는 비빔밥이나 매운 낚지 덮밥으로 점심을 먹고 여행사 직원을 만나 여권과 비행기표를 건네 받았다. 가이드가 없이 우리끼리 가야하는 길이라 여행사에서는 우리 선생님들 외에 다른 손님들까지도 덤으로 인솔을 부탁했다. 우리 일행은 총 21명이었고 덕분에 그들의 짐표를 다 붙여놓은 내 여권은 묵직해졌다.
예정 시간을 한 시간쯤 넘겨 우리가 타고 갈 비행기가 준비되었다. 상뜨뻬쩨르부르크를 기점으로 하는 풀코버 항공인데 정말로 작고 낡은 비행기다. 사람들의 마음 속에 불안감을 잉태시키기에 충분했다. 머리를 숙여 기내에 올라가야 할 정도로 문도 작았다. 앞좌석에 무릎이 닿고 의자는 등을 기대면 저절로 뒤로 약간 넘어가고 스튜어디스들은 우람한 러시아 아줌마들이다. 비행을 안내해주는 모니터 한 대도 없고 안내 멘트는 모두 러시아어라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가 없다. 피곤함을 무기 삼아 잠을 청했다. 중간 중간 눈을 떠보면 음료수와 기내식 등이 제공되어졌다. 기내식만큼은 그 어떤 비행기보다 맛있고 정성스럽게 잘 나왔다. 그러나 비행기 안에서는 아무리 맛있는 것도 잘 먹히지가 않는다. 싹싹 음식 그릇을 비우는 사람들이 부러울 뿐이다.
4시간 정도의 비행 후에 착륙을 위해 고도를 낮추는 것이 귀에 아프게 전해져왔다. 이건 거의 고문이다. 비행기가 작아 중간 급유를 위해 쉬어 가는 것이다. 높지 않은 건물들이 주택을 이루고 있는 그다지 크지 않은 도시라는 것이 공중에서 느껴졌다. 활주로에 비행기가 멈추고 비행기 문에 계단이 붙여졌다. 새로운 승무원들이 비행기를 향해 걸어오는 모습이 보여 급유 뿐만 아니라 승무원도 교대되는구나 하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백야 현상 때문에 깜깜하지는 않아도 시간은 꽤 늦은 밤인 것 같다. 우리 비행기에 탑승한 손님들 이외에는 일반인들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비행기 트랩을 내려서면서부터 양쪽을 호위인지 감시인지 모르게 굳은 표정으로 우릴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군인인지 경찰인지 공항직원인지 구분이 안가는 그 사람들 사이를 걸어 공항청사로 이동하였다. 도대체 어느 도시에 착륙한 것인지 궁금했다. 결국 다른 여행사 가이드에게 쫓아가 물으니 이르쿠츠크라 했다. 시베리아의 바이칼 호수 옆에 위치한 이르쿠츠크가 머리 속의 지도에 그려지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답답한 비행기를 벗어나 신선한 공기라도 실컷 마시려나 했는데 공항청사의 출입문과 창문을 모두 봉하고 우리를 가두어 놓는 것이 아닌가? 그들은 우리를 보호하는 것이겠지만 아무튼 가슴이 답답했다. 러시아 땅에 발을 디딘 것이 실감이 났다. 공항 청사도 우리 버스 터미널 정도의 크기 밖에 안되고 화장실도 달랑 두 칸이라 줄서다 오줌 싸게 생겼다.
약 한시간 정도 소요하여 급유가 끝나고 승무원들이 바뀐 비행기에 다시 탑승했다. 다시 잠을 청해보았다. 지루한 비행을 이겨나갈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도 하니까. 중간에 눈을 떠보면 우리가 나는 밤하늘은 신비로웠다. 남쪽 창은 단색으로 깜깜하기만 한데 북쪽 창으로는 환상적인 북극의 하늘이 그림처럼 아름답게 전개되고 있었다. 아랫부분은 까맣고 경계는 일출이나 일몰 때의 하늘처럼 붉게 물들어 있으며 윗 부분은 동이 튼 상태의 하늘처럼 밝다. 붉고 푸르스름한 부분과 까만 부분이 띠가 되어 계속 이어지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여름이라 북극에서만 볼 수 있는 백야현상 때문이리라.
우리 시간 새벽 4시 20분 현지 시각 밤 11시 20분 드디어 상뜨뻬쩨르부르크 공항에 착륙을 했다. 입국 심사를 하는 아가씨가 아주 예쁘다. 짐을 찾아 공항을 빠져나오니 현지 가이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반가웠다. 곧바로 공항근처의 호텔로 이동하여 체크인을 하는 동안 로비에 서있는 예쁜 러시아 여자들에게 눈이 휘둥그래진 남자 선생님들 입에서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말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하는 기도문이 절로 나오고 나는 함께 웃을 수 밖에 없었다. 방을 배정 받고 들어가니 시간은 12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로비에서 엘리베이터로 그리고 호텔방에까지 계속 쫒아오는 이상한 김치냄새. 또 하나의 사건이 기다리고 있었다. 누군가의 짐에서 김치가 터져 그 국물이 내 여행가방에 촉촉이 젖어들어 있었고 안에 있는 옷가지의 일부들도 국물로 얼룩져있었다. 결국 그 밤중에 가방을 통째로 빨고 옷들을 쥐어 빨고 정리하니 새벽 3시다. 비행기 안에서 많이 자두길 잘했다. 한국시간 아침 8시인데 잠들 수 있을지 모르겠다. 빨리 환한 모습의 뻬쩨르부르크를 보고 싶다.
잠을 잤다기 보다 잠시 눈을 붙였다 하는 기분으로 일어났다. 아침식사를 위해 로비로 내려가 보니 백인 관광객들로 붐볐고, 식당 안은 더더욱 그랬다. 사람이 많아서인지 커다란 뷔페식당은 접시도 없고 음식도 바닥난 것이 많았다. 미리 식사를 하고 있는 우리 일행들과 합류하여 서로 맛있는 음식을 추천해주고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식사를 하였다.
드디어 관광버스를 타고 시내로 향했다. 거리는 너무나 한산했다. 차도 사람도 거의 없는 상태로 도로에는 차선이 제대로 그려져 있지 않다. 차선은 아무래도 국가의 경제적 사정을 반영하는 듯 했고, 거리가 한산한 것은 일요일이라 사람들이 모두 교외에 있는 자신들의 농장인 ‘다차’로 나가있기 때문이었다. 바로 다음날부터 많은 차와 사람들로 붐비는 거리를 보며 주말은 평양의 거리, 평일은 서울의 거리라는 농담을 주고받았다.
상뜨뻬쩨르부르크는 유럽 북부 스칸디나비아 반도 남동쪽 발트해의 핀란드 만 가장 안쪽에 자리하여 핀란드와 에스토니아가 이웃하고 있다. 북위 60°부근에 위치하여 세계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대도시라고도 한다.
내년이면 도시 건립 300주년을 맞이하는 상뜨뻬쩨르부르크는 ‘성 베드로의 도시’란 뜻이다. 이 도시를 만든 표트르(베드로, 피터, 페테르, 뻬쩨르 모두 같은 표현임)대제의 이름을 딴 것이기도 하고 한때는 레닌그라드로 불리기도 하였다. 표트르 대제가 유럽화를 지향하며 네바강 삼각주 습지를 개간하여 계획적으로 세워진 도시의 모습이 지금까지도 잘 유지되고 있다. 어떤 건물도 함부로 허물지 못하고 시의회의 허락을 받고서야 수리 보수도 가능하다고 했다. 200년 300년 된 건물들의 모습이 그대로 유지 사용되고 그것이 그대로 관광자원으로 이어진다는 것이 부러웠다. 계획도시라 도로나 건물들이 반듯반듯하고 많은 운하와 강을 끼고 있어 이탈리아의 베니스를 연상하게 하고 고층건물이 없이 4층 5층 정도를 유지하는 건물들의 모습은 프랑스의 파리를 생각나게 하여 그 두 도시를 합성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건물들은 조각들이 많아 고풍스런 품위를 느끼게 해주고 파스텔 톤의 밝은 채색이 부드럽고도 깔끔한 인상을 풍긴다. 유럽화를 지향하며 지어진 도시라 그리스․로마의 건축양식을 기본으로 하고 거리 여기 저기에는 이집트 조형물도 놓여져 있어 다른 문화를 동경했던 그들의 마음을 엿볼 수도 있었다. 내년 300주년 기념 행사를 위해 많은 건물들이 보수 중이거나 새 단장을 마친 상태이다.
겨울궁전인 에르미따쥐를 보기 위해 차에서 내리니 우리의 초가을처럼 시원하고 상큼한 공기가 정신을 맑게 했다. 하늘은 파랗고 높으며 흰 구름들이 뭉게뭉게 떠 있고 햇살은 따가운데도 그늘에서는 긴팔 옷이 생각났다. 기분을 참 좋게 하는 날씨다. 이 곳 사람들에게도 이 짧은 여름의 날씨는 축복 그 자체인 듯 한 낮에는 모두 옷을 벗고 잔디밭에서 일광욕을 즐긴다. 우리에겐 해변에서나 볼 수 있는 낯선 풍경이지만 이들은 도시에서 자연스럽게 일광욕을 즐긴다.
에르미따쥐는 겨울궁전이므로 겨울이 긴 이 나라에서는 본궁인 셈이다. 궁전으로 사용되던 것을 지금은 박물관으로 개조하여 세계의 3대 박물관에 끼일 정도의 많은 볼거리들을 보유하고 있는 곳이다. 한 작품을 1분씩만 감상해도 3년에서 5년이 소요된다 하니 짧은 여행길에 다 볼 수는 없는 일이고 2시간 30분 정도의 시간을 소요하여 일부만 돌아봤다. 이 도시를 건설한 표트르 대제부터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였던 로마노프 왕조 니콜라이 2세까지의 유물들과 그들이 사용했던 방들을 감탄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금과 갖가지 희귀한 건축 재료들을 사용한 화려한 궁정의 모습에 감탄과 경외심도 생겼지만 이것이 얼마나 국민들의 피와 땀을 착취한 결과일까 하는 생각에 가슴 한쪽이 시리기도 했다.
네바 강을 따라 차를 달려 점심을 먹기 위해 러시아 식당으로 향했다. 깔끔하고 단순하게 인테리어가 되어 있는 레스토랑 같은 분위기였고 음식맛도 그러했다. 쫄깃쫄깃한 치즈가 섞인 야채 샐러드에 빵을 먹고 빨간 무로 끓인 야채 스프를 먹으면 돼지고기와 감자 튀김이 본요리로 나오고 후식으로 아이스크림과 차가 나왔다. 모두가 우리의 입맛을 크게 거스리지 않았다.
오후에는 스몰리 사원과 오로라호 그리고 피터폴 요새를 둘러보았다. 스몰리 사원은 한참 새 단장 중이었고 네바 강가에 정박한 오로라호는 아주 오래된 군함인데도 잘 보수하여 깨끗이 보전되고 있어 그 안에서 러시아 해군의 역사와 러일전쟁의 흔적 그리고 우리나라와의 관계까지 한 눈에 볼 수 있었다. 피터폴 요새는 베드로와 바울의 요새라는 뜻으로 스웨덴과의 전쟁에서 되찾은 네바 강 주변 지역을 지키기 위해 세워졌는데 요새 안쪽에 베드로와 바울 사원이 자리하고 있어 그렇게 이름 붙여진 것이다. 가늘고 뾰족한 황금색 첨탑 지붕을 한 사원만이 하늘로 뻗어있고 나머지 건물이나 요새는 옆으로 넓게 자리하고 있다. 안쪽으로는 공원과 건물들이 위치하고 네바 강변으로 나가보아야 이곳이 요새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는 성벽이 있다. 성벽 옆 강가에서도 일광욕이 한창이었다. 요새 안쪽 공원에는 1991년 미국에서 선물한 표트르 대제의 동상 무릎에 걸터앉아 사진을 찍는 사람과 왕실 의상을 빌려 입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활기찼다. 우리도 공원 벤치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 비둘기와 참새들이 함께 했다. 빵 조각을 떼서 던져주니 더 많은 새들이 모여들었다. 비둘기야 어느 공원에서나 흔히 사람들의 먹이를 받아먹는 모습을 볼 수 있지만 이곳은 비둘기 보다 더 많은 수의 참새들이 빵 조각을 받아먹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작은 조각은 제 자리에서 먹는데 큰 조각은 여지없이 나무 숲 속으로 물고 날아가 혼자 먹는다. 그래서인지 참새들이 아주 통통하다. 남자들은 ‘저거 구이해 먹으면 맛있겠다.’ 하는 흐뭇한 표정으로 참새들을 지켜본다. 웃음과 여유를 주는 한때였다. 15분 간격으로 울리는 사원의 종소리도 마음을 청아하게 해 주었다.
바실레프스키 섬에 위치한 해전의 승전을 기념하는 뱃머리 등대 주변에서 강바람을 맞았다. 건너편 에르미따쥐와 네바 강변에 위치한 아름다운 건물들과 잔잔한 네바 강 모든 것이 평화롭고 고요하게 마음을 가라앉혀 주었다. 저녁이 되어도 해는 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백야 덕분이다. 아리랑이라는 한식당에서 맛있는 저녁을 먹고 예술의 광장으로 이동하였다.
예술의 광장 중앙에는 러시아 국민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시인 푸쉬킨의 동상이 자리하고 주변에 러시아 미술관, 음악 학교, 공연장, 호텔 등이 위치한다. 우리는 마리인스키 극장에서 발레 공연을 보기로 했다. 영화에서 귀족 부인들이 무대 옆 발코니 좌석에 우아하게 앉아 공연을 보는 모습이 멋져 보여서 나도 한번쯤 꼭 그런 자리에서 공연을 보고 싶었는데 마침 자리가 그렇게 배정되었다. 그러나 이게 왠일인가 결코 우아하지도 그리고 편안하지도 않다. 옆으로 앉아서 무대를 바라보는 격이라 자세가 편하지 않고 내가 앉아 있는 쪽의 무대는 잘 보이지 않았으며 반대편 무대는 보이지 말아야 할 것까지 보여서 좋지 않았다.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 발레 공연이 시작되었다. 지휘자가 등장하고 아름다운 오케스트라 연주가 시작되며 발레가 시작되었다. 많이 알려진 작품이지만 이렇게 러시아에서 실제로 공연을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우리나라 시간으로 새벽 시간인데다 저녁식사의 포만감으로 순간순간 졸음도 엄습했다. 1막이 끝나고 휴식 시간을 갖고 다시 2막이 시작되었다. 왕자님이 백조가 아닌 흑조의 유혹에 빠지며 배우들이 긴 박수를 받고 2막이 내려졌다. 시간도 두 시간이 흘렀다. 스토리는 끝이 아닌 것 같은데 배우들이 박수를 길게 받고 사람들이 모두 일어서 나가는 것이 공연이 끝난 상황 같아 우리도 밖으로 나와 대기해 놓은 버스에 올랐다. 저녁 9시 30분인데 해는 아직도 중천에서 반짝거리고 있다. 잠시 후 가이드가 버스에 올라 ‘여러분 아직 3막이 남아있습니다.’ 하는 것이 아닌가. 아구 창피하고 무안해라. 혼비백산 다시 극장 안으로 들어가니 다행히 아직 휴식 시간이 끝나지 않았다. 시침 딱 떼고 다시 우아한 폼으로 앉아 3막의 해피엔드로 끝나는 스토리의 완성을 보고 주연 배우 발레리나들에게 긴 박수를 보내고서 여유 있게 극장을 나섰다. 피로가 온 몸을 덥쳐왔다. 버스 안에서 발레 꿈을 꾸며 호텔로 돌아와 잠자리에 들었다.
눈을 뜨니 아직 깜깜하다. 시차에 상관없이 이것도 새벽이라고 새벽잠이 없는 평소의 습관대로 여지없이 눈을 떴다. 오늘은 교외에 있는 표트르 대제의 여름 궁전을 보러가야 한다. 날씨는 여전히 쾌청했다. 월요일이라 어제와는 달리 도로에 차가 막혔고, 사고까지 나서 많이 정체했다. 시내를 벗어나니 시내에서는 볼 수 없었던 개인 주택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농가와 부자들의 별장과 새로 짓고 있는 푸틴 대통령의 별장도 눈에 띄었다. 한 시간쯤 시내를 벗어난 곳에 여름궁전이 자리하고 있었다. 궁전 내부 관람은 생략하고 정원 관광에 나섰다. 궁전 정면에 바다로 뻗어나가는 수로를 향해 분수들이 줄을 잇는다. 황금옷을 입은 동상들이 햇빛을 받아 눈부시게 화려하다. 헤라클레스의 분수부터 나무와 꽃의 분수, 개구쟁이 분수 등이 정원과 숲속에 자리하는데 전기를 이용하지 않고 물의 압력만을 이용해 과학적으로 설계된 것이 놀라웠다. 이쑤시개나 자일리톨의 원료가 되는 자작나무가 눈에 많이 띈다. 해변은 모래나 자갈 대신 크고 둥근 돌들이 자리잡고 있었고 별궁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겨울이 되면 바닷물이 얼어 자동차들이 바다 위를 질주한다고 했다.
시내로 돌아와 중국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도스트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집필했던 집을 찾아 작품에 담겨져 있는 그의 생애와 고뇌를 호흡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삭 사원, 까잔 사원, 피의 사원 등을 돌아봤다. 우리나라의 많은 관광지가 절에 집중되듯 이 나라는 그리스 정교회가 주된 종교이니 만큼 정교회 성당들이 관광지가 된다. 거의 모든 정교회 성당들은 황금의 양파 지붕을 하고 있다. 상뜨뻬쩨르부르크에서 가장 큰 이삭 성당은 지붕 위까지 사람들이 올라갈 수 있게 되어있고, 까잔 성당은 로마 바티칸에 있는 성 베드로 성당을 본 따서 지어졌는데 대리석 대신 석회암을 사용하여 만들어졌다. 피의 사원은 알렉산드르 2세가 폭탄을 맞고 죽게 되자 그가 폭탄을 맞았던 자리에 지어진 부활 사원(피 흘리신 우리 구세주)이다.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 있는 성 바실리 사원을 모델로 지어졌는데 동화책에나 나올법한 형형색색의 양파지붕과 화려하고 고풍스러운 건물의 모습이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 이 도시를 상징하는 건물이 되어가고 있다.
그리스 정교회 성당 내부는 모자를 벗고 들어가야 하며 십자 모양에 가까운 내부의 중앙엔 높고 큰 돔이 위치한다. 모든 사람들이 서서 예배를 드리기 때문에 의자는 없다. 신 앞에 앉아서 기도를 드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앉을 수 있는 권한이 있는 사람은 사제와 왕 그리고 왕비뿐이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 모든 성인들을 신격화 시켜놓았기 때문에 그들의 형상을 걸어놓은 성화들이 너무 많아 좀 산만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신을 향한 최고의 찬미는 역시 내부를 치장하는 많은 금장식품들이다. 사제가 미사를 드릴 때는 신자들을 보지 않고 신을 향하여 신자들과 같은 방향으로 서있고 강론을 할 때만 강단으로 이동하여 신자들을 향하여 이야기를 한다. 악기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목소리만을 이용하여 기도문과 성가를 부르는 아카펠라도 정교회의 특징이다.
사원 옆 운하 주변에는 기념품을 파는 노점상들이 늘어서 있다. 러시아를 대표하는 인형들이 가장 많다. 큰 인형 속에 연속적으로 작은 인형이 들어 있는, 다산을 상징하는, 오뚜기 같이 생긴, 화려한 인형이 대부분이다.
상뜨뻬쩨르부르크 거리 어디에서나 마주칠 수 있는 즐거움은 모델이나 배우처럼 늘씬하고 예쁜 여자들이 아주 많다는 것이다. 늘씬하거나 아님 아주 뚱뚱하거나 극과 극을 달리는 모습들이지만 전반적으로 젊거나 어린 여자들은 아주 예쁘다. 그리고 유럽의 다른 도시들과는 달리 흑인들의 모습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동양인 관광객들도 많지 않은 편이고 아직은 백인들이 많이 눈에 띈다. 물론 그런 와중에 단체로 붉은 악마 티셔츠를 입고 관광을 온 한국인들은 그 누구보다 두드러진다. 러시아 사람들이 한국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갖고 한국 사람들을 좋아해주어 다행이다. 거리에 세워진 입간판들의 대부분도 삼성과 LG인데 이곳에서 인지도가 아주 높다고 했다.
저녁 식사 후에 후식으로 러시아 참외를 먹었다. 우리의 참외와는 생긴 모습부터 많이 다르다. 럭비공 같이 아주 크고 색깔은 노란 것이 호박 같이 보이기도 하는데 맛은 참외와 메론을 혼합한 듯한 무지무지 달고 맛있는 과일이다.
오늘 밤엔 야간 열차를 타야한다. 기차 시간까지 좀 여유가 있어 저녁 식사의 포만감도 해소할 겸 상뜨뻬쩨르부르크의 가장 번화가인 넵스키 대로를 걸었다. 활기찬 거리를 활보하며 백화점안에도 들어가 보고 바디 랭귀지를 이용하여 우리돈 200원 정도의 싸고 맛있는 아이스크림도 사먹고 가게에 들어가 판매되는 물건들을 구경하기도 하였다. 무엇보다 우리나라의 초코파이가 눈에 띄었고 컵라면도 있었다. 러시아인들에게 최고로 인기 좋은 것이라니 뿌듯하다.
모스크바로 향하는 열차를 타기 위해 상뜨뻬쩨르부르크의 모스크바역에 도착하여 역 주변과 대합실을 둘러보고 밤 9시 55분 출발하는 열차를 향했다. 현지 가이드가 내게 우리 일행의 명단이 적힌 종이와 보험증을 건네준다. 우리끼리 모스크바에 가야하는 것이다. 보험 증서를 보니 괜한 불안감이 밀려오기도 했지만 다 사람 사는 곳인데 어쩌랴 하는 맘으로 기차에 올랐다. 기차안에 오르자마자 퀴퀴한 냄새가 숨을 막았고 야간열차이니 만큼 침대칸인데 한 칸에 2층 침대 두 개씩 4개의 침대가 있어 4명씩 들어가야 했다. 온 종일 햇빛을 받은 열차 안은 후텁지근했다. 우리 방은 창문이 열리지가 않아 좀 더 답답했다. 기차는 낡고 지저분해 보였지만 이런 경험도 자주 하는 것은 아니니 즐기는 마음으로 견뎌보기로 했다.
잠시 후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허름한 옷을 입은 아저씨가 허름한 가방에서 투명하고 커다란 일회용 도시락에 들어있는 먹거리를 들이민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처음에는 물건을 파는 사람인 줄 알고 거절하려 했으나 이내 기차에서 주는 기내식이라는 것을 알고 하나씩 받았다. 다음 날 아침 모스크바에 내려 확인해보니 우리 방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기내식을 받지 않았다. 모두들 사는 것인 줄 알고 한사코 거절하고 문을 닫아버렸다 한다. 말이 통하지 않는 그 배달맨은 얼마나 황당했을까? 러시아 사람들은 기차 안이 더우니까 윗옷을 벗고 왔다갔다 여자들도 브래지어만 하고 다닌다. 우리는 화장실에서 얼른 고양이 세수를 하고 들어와 바로 문을 닫아 버렸다. 자는 동안 열차는 쉬지 않고 달렸고 새벽 한기에 몸을 움츠리며 뒤척거리다 보니 아침 6시쯤 모스크바에 도착하였다.
모스크바에 내려서니 싸늘한 아침 공기가 피부 깊숙이 밀려왔다. 모스크바 현지 가이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강한 경상도 사투리를 하는, 키가 크고 마른, 담백한 사람이다. 다리가 길어 걸음걸이가 아주 빠르게 느껴진다. 아침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향하느라 모스크바 시가지로 들어서니 온 거리를 포장하고 있는 삼성과 LG간판에 또 한번 놀란다. 이건 거의 홈그라운드 같은 느낌이다.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고 바라보는 모스크바 거리는 생각보다 아름다웠다. 제정 러시아 시대의 고풍스런 건물과 공산국가 시절의 딱딱하고 멋없는 건물, 그리고 현대식 건물들이 혼재되어 있는데도 깔끔하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조선이라는 한식당에서 무와 소고기를 넣은 시원한 국으로 맛있는 아침을 먹고 모스크바 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모스크바 대학이 위치한 보로비예브(참새) 언덕으로 향했다. 옅은 안개인지 아니면 스모그인지 시야가 선명하지 않았다. 240m에 이르는 고층건물로 스탈린 양식으로 지어진 모스크바 국립대학교는 무척 위압적인 자태인데 꼭대기에 세워진 커다란 별은 마치 구 소련을 상징하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10시부터 문을 여는 크레믈린 궁전 앞에 줄을 서니 용케도 한국 사람인줄 알고 보따리 장수가 한국말로 되어있는 안내 책자를 들고 왔다. 흥정을 해서 한 권을 샀다. 뚱뚱하여 넉넉해 보이는 러시아 아줌마 가이드를 만나 크레믈린에 들어서니 감회가 새롭다. 우리나라로 치면 청와대 아닌가? 푸틴 대통령이 거주하는 궁궐을 끼고 인도를 따라 일반인들이 구경할 수 있는 정교회 사원이 있는 쪽으로 이동을 하는데 도로에 함부로 내려서면 저격수가 총을 쏘니 주의하라는 가이드의 말이 농담인지 진담인지 실험해 볼 수도 없고 하여 얌전히 쫓아다녔다. 이반 대제의 개인 성당과 우스펜스키 사원을 보고 종의 왕, 대포의 왕, 공연 홀, 망루 등의 볼거리들이 아기자기하면서도 웅장하게 자리한 크레믈린의 내부를 돌아 붉은 광장으로 이동하니 레닌묘에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이 길게 꼬리를 물고 있었다.
붉은 색은 러시아 사람들에게는 아름다운 색이란다. 그래서 붉은 광장도 아름다운 광장을 의미한다. 광장 한켠은 크레믈린과 레닌묘가 위치하고 맞은편에는 고풍스럽고 아름답고 우아한 국영 백화점인 굼 백화점이 자리한다. 그리고 한쪽에는 모스크바를 대표하는 건물인 성 바실리 사원이 있고 사원을 마주하고 붉은 광장으로 향한 부활 대문과 알렉산드로프스키 정문이 아름답게 배치되어 있다. 작고 단단한 돌 벽돌로 포장된 광장을 향해 따가운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성 바실리 사원 앞에 앉아 다리도 쉬고 지나다니는 사람도 구경하다 시내 중심가 KGB 건물 옆에 위치한 러시아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아르바트 거리로 향했다. 아르바트는 우리나라의 대학로 같은 곳으로 편하고 자유로우며 구경거리가 많은 예술의 거리이다. 카페의 야외 의자에 앉아 음료수도 한 잔 마시고 초상화를 그려주는 화가들의 솜씨도 구경했다. 노점상들이 파는 기념품 가게에서 흥정을 하며 물건도 사보고 하는 동안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갔다.
아쉬운 마음으로 아르바트를 출발하여 빠크론느이 언덕을 찾았다. 이 언덕 위에 넓게 자리하고 있는 것은 ‘1941년-1945년 대(大) 조국 전승기념관’과 오벨리스크 모양을 한 기념탑 그리고 널따란 광장이다. 주변에는 1,800여 개의 분수가 배치되어 시원스럽게 물줄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무엇보다 바람이 상큼하고 좋았다. 여유롭게 트인 마음으로 구경도 하고 휴식도 취한 후 한식당에서 김치찌개에 밥 한 그릇 뚝딱 비우고 호텔로 향했다. 지난 밤 열차에서 시달려 모두들 피곤한 상태였다.
코스모스 호텔은 생각보다 규모가 엄청나게 큰 호텔이었다. 로비에 앉아 방을 배정 받는 동안 터키 관광객이 우리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고 큰 소리로 무척 반가워한다. 터키의 형제애가 새삼 실감이 났다. 호텔방의 가구들은 많이 낡아 있었다. 밖을 내다보니 남산타워 같이 높다란 방송탑과 우주선이 쏘아 올려지는 듯한 비행 동상이 보인다. 새삼스레 모스크바를 다시 실감케했다. 모든 시설면이나 생활면에서 우리 나라가 얼마나 발달되어 있고 살기 편안한 곳인지 대비되어 느껴지기도 했다. 먼저 욕실에 들어가 샤워를 시작한 친구가 탕에서 넘어져 “아야”하는 소리가 들렸고 잠시 후 그 친구는 커다란 혹을 머리에 달고 나왔다. 그러고는 ‘그런데 내가 여기 왜 왔어? 여기가 어디야? 왜 자기랑 나랑 방을 같이 쓰는 거야?’ 하는 것이 아닌가. 여행 기간 동안의 기억을 모두 상실하고 같은 질문을 반복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장난인 줄 알았다가 그것이 아니란 것을 알고 나니 무섭고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엄마가 챙겨주신 청심환을 한 병 먹이고 옆방에 가서 선생님들 불러 함께 이야기도 시켜보고 하니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증세가 나아졌다. 두 시간 넘게 똑 같은 질문과 대답에 지쳐 있다가 긴장이 풀리는 순간 피로감이 밀려와서 세수도 못하고 그냥 쓰러져 잠들어버렸다.
어젯밤에 씻지도 못하고 잠이 들어 다음날 아침은 자고 일어나도 개운치가 않다. 일찍 일어나 씻고 친구 머리 상태를 확인하고 짐을 챙겨놓고 식당으로 내려갔다. 큰 호텔답게 먹거리도 푸짐하고 맛있었다. 머리에 혹을 달았어도 잘 먹는 것을 보면 큰 이상은 없겠지 속으로 생각하며 나 또한 맛있게 아침을 먹었다.
레닌 묘를 보기 위해 다시 붉은 광장으로 향했다. 기나긴 줄에 들어가 볼 엄두를 못 냈었는데 가이드 말이 러시아 현지 가이드에게 돈을 따로 주면 바로 입장이 가능하다고 했다. 이곳도 예외가 존재하고 있었다. 1인당 70루블(우리돈 2,800원 정도)을 주고 길게 줄을 늘어선 사람들 옆으로 유유하게 러시아 아줌마를 따라 입장하였다. 레닌 묘에 들어서니 입구에 부동자세의 군인이 서 있다. 순간 긴장을 하고 계단을 내려가는데 너무 어두웠다. 계단 끝에도 어두컴컴한 곳에 부동자세의 군인이 또 서 있다. 더 여러 명의 군인들이 둘러싼 곳에 유리관이 있었고 그 유리관 속에 레닌이 누워 있다. 편안한 모습의 작지만 큰 사람, 레닌이 생전의 모습 거의 그대로 누워있어 강렬한 이미지로 각인되어졌다. 죽어서도 썩지 못하고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어야 하는 그가 불쌍하기도 하고, 한편 죽어서도 살아서와 같은 생생한 모습으로 남을 수 있다는 것이 부럽기도 하다는 생각이 구경하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생각인 듯 했다.
레닌 묘를 빠져나와 뒤편 크레믈린 벽을 따라 배열된 러시아의 역사적 인물들의 무덤과 두상 조각들을 러시아 가이드가 열심히 러시어로 설명했지만 거의 알아듣지 못하고 가끔씩 아는 이름이 나오면 아하 하는 감탄사와 고개를 끄덕여주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우리 말로 ‘고맙습니다’란 뜻의 러시아어 ‘스빠시바’로 작별인사를 나누고 크레믈린 성벽 아래에 있는 알렉산드로프 정원으로 향했다. 무명 용사의 묘에서 정시마다 시행되는 위병 교대식을 보기 위해서다. 비교적 짧은 시간에 진행되었지만 절도 있고 특이한 그들의 걸음걸이가 인상적이다. 교대식을 보고 돌아선 많은 사람들이 잠시 동안 그들의 걸음걸이를 흉내내어 본다.
모스크바 강가에 정방형 십자가 모양으로 그 자리에 그대로 복원되어 최근에 다시 지어진 예수 구세주 사원은 사방에서 바라보는 모습이 똑 같고 가운데 커다란 황금 돔 지붕이 주변에 작은 황금 돔 4개를 거느리고 있는 듯하다. 반바지를 입고 간 사람들은 내부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내부는 역시 지나치게 화려했다. 지하에도 똑같은 규모의 성당이 존재했고 성당 주변으로 둥그런 회랑을 따라 갤러리가 만들어져 있는데 볼거리가 풍부했다. 들어오지 못한 사람들도 있는데 다른 사람들보다 구경이 늦어져 좀 미안한 마음으로 버스에 올라 그루지아식 음식을 하는 식당으로 향했다. 역시 깔끔하고 예쁘게 꾸며져 있었고 빵과 음식맛도 좋았다. 특히 주요리로 감자와 함께 나온 생선요리는 보통의 생선까스처럼 튀김 옷을 입혀 튀긴 것이 아니라 우리의 동태전처럼 부침개가 되어 나왔는데 우리 입맛과 신기하리만치 똑같아 맛있게 먹었다.
점심 후 러시아 최대 미술관인 트레치야코브 국립 미술관으로 향했다. 유럽의 어느 미술관 못지 않게 그림 소장수나 규모가 대단했다. 전시실 바닥이 나무로 되어 있어 다리의 피로도를 덜어주었고 인공조명을 사용하지 않고 천정의 불투명 유리를 통한 채광이 눈을 편안하게 했다. 단 액자에 유리가 끼워져 있는 그림은 감상에 방해가 되었다. 1시간 30분 밖에 시간이 주어지지 않아 60여개가 넘는 전시실을 차분히 보는 것은 무리였다. 40번 이후의 전시실들은 그야말로 주마간산격으로 보고 나왔다. 밖에 나와보니 미술관 맞은편 건물 앞에 입장하지 않은 일행들이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주변 상가들을 돌아보고 왔다한다. 잠시 담소를 나누고 재래시장으로 향했다. 시장 건물이 멋을 낸 체육관처럼 원형을 이루는 건물 안과 그 주변에 둥글게 시장이 섰는데 주로 과일이나 야채를 많이 팔았고 안에서는 생선이나 육류를 팔았다. 건과류를 조금 사고 차에 오르니 체리를 사오신 선생님이 먹어보라 건네시는데 까맣고 큼지막한 체리가 무척 달고 맛있었다. 농약 값이 비싸서 자연 무공해 농산물들이란다.
러시아 국민의 70%는 절대적인 극빈층이라 했다. 그래서 일부 사람들은 사회주의 시절을 더 그리워 한다고. 그러나 자원이 풍부하고 부지런히 노력하려는 자세를 지닌 사람들도 많아 보여 중국 못지 않게 급성장을 할 수 있는 잠재력을 충분히 갖춘 나라라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나라와 잘 협력을 한다면 서로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도 같았다.
비행기 시간에 맞추기 위해 한식당에서 싸준 김밥으로 공원에서 저녁식사를 대신하고 모스크바 시가지를 벗어나 공항으로 향했다. 우리의 버스터미널 규모밖에 되지 않는 작은 공항이었다. 저녁 7시 30분 비행기는 남자 선생님들이 모스크바에와서도 그렇게 그리워했던 상뜨뻬쩨르부르크를 향해 날기 시작했다. 좌석이 비행기 맨 끝자리라 화장실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스튜어디스들이나 잠깐씩 앉아서 쉴만한 자리인데 손님이 많았던 탓인지 승객들을 그 자리에 전부 앉힌 것이다. 의자를 젖힐 수도 없는 상황에 냄새도 나고 엔진소리는 엄청 요란했으나 그냥 그대로의 부동 자세로 한 시간 반정도의 비행을 참아야했다.
상뜨뻬쩨르부르크 공항에 도착하니 남자 선생님들과 정이 많이 들었던 보조가이드(우리끼린 새끼가이드라 불렀다)가 나와 우리를 반겼다. 이산 가족 상봉을 방불케했다. 한국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국제 공항으로 이동하여 가방 속에서 약품과 컵라면, 소주 등 한국의 물건들을 챙겨서 건네주었다. 내게 초코파이 한 박스를 선물로 받았던 가이드도 평생 잊지 못할 고마운 선물이었다고 받자 마자 집에 가서 한 자리에서 6개를 먹었다고 했다. 머나먼 이국 땅에서 힘들게 살고 있는 그들의 건강과 안녕을 빌며 상뜨뻬제르부르크를 출발하였다.
밤 11시 20분 비행기는 이륙하였고 크기는 똑같지만 지금까지 탔던 것보다 새 것이라 기분이 좋았다. 역시 비행의 지루함을 달래보려 잠을 청하고 자다 깨다 하는 중에 귀에 통증이 느껴지고 비행기가 고도를 낮추는 것이 이르쿠츠크에 왔나 보다 짐작하였는데 시간이 지나도 통 비행기가 착륙을 하지 않았다. 얼마를 더 헤메이다가 비행기가 시골의 작은 공항에 착륙을 했다. 러시아어로 안내 방송이 나왔고 이어 러시아어를 아는 한 승객의 도움으로 한국말 안내 방송이 나왔다. 이르쿠츠크에 안개가 짙어 착륙을 못하고 브라츠크에 착륙을 했는데 여기에서 급유를 조금 하고 이르쿠츠크에 안개가 걷히면 다시 돌아갈 것이며 비행기에서 내릴 수는 없고 기내 화장실은 이용할 수 있다고 하였다. 조그마한 비행기에 감금되어 한시간쯤 기다리니 비행기가 다시 이륙을 시작했다.
이르쿠츠크에 다시 도착하여 비행기에서 내릴 수 있는 자유가 주어졌다. 아침 8시가 되어 있었다. 한 번 와본 곳이라고 낯이 익었다. 비행기에서 내릴 때 카드를 한 장씩 주는 것을 보면 이번에는 우리 말고 다른 승객들도 있나보다. 그들 덕분에 처음 도착했을 때처럼 감금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작은 면세점도 문을 열어놓았고 사람들로 북적이는 대합실은 제법 활기차게 느껴졌다. 승무원이 교체되고 급유를 마친 비행기에 올라 또다시 지루한 비행이 시작되었다. 예정시간을 3시간 이상 넘겨 약 17시간의 비행 끝에 인천공항에 착륙을 하였다. 일부 승객들이 박수를 친다. 많이 지쳐있었으나 우리 땅을 밟으니 다시 힘이 솟는다. 공항버스를 타고 대전으로 대전에서 논산으로 그리고 집으로 짧고도 기나긴 5박 6일의 여정이 무사히 마무리되었다.
일상을 벗어나 여행길을 떠나는 기쁨과 지친 여행 끝에 집으로 돌아오는 기쁨, 그래서 우리는 떠나고 싶어하고 떠나서는 다시 돌아오는 것이 아닐까?
첫댓글 썬배님..역시 최곱니다요. 카페를 함 뒤집어 놓고 은근히 걱정했는데 이렇게 글을 올려주시니 감사합니다. 전 여행담을 올리고 싶어도 사실 글로 써지지가 않아서 못올리고 있어요. 그래도 함 노력은 해볼라구여. 별일 없으시죠?
네 별일 없이 잘 지내고 있습니다. 카페를 새롭게 단장해 주시느라 애 많이 쓰셨어요. 훨씬 좋은 아이템 같아요. 언제나 고맙습니다.
카페를 둘러보며 반가움과 신선함 그리고 세월을 느낍니다 ~^^ 기회되면 18회 동문여행 한번 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