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금자리>의 탄생을 축하 하면서
1994년 7월말경. 군종신부 제대를 한 달 정도 남긴 시점에, 귀뜸으로 들은 신설본당 금호동의 초대주임이라는 소식은 막연한 기대와 설레임 그리고 상당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새로운 임지에 대한 설레임의 일반적인 현상치고는 그 정도가 아주 심했습니다. 하여 선보는 날도 멀었는데 색시가 궁금해서 몰래 담넘어 훔쳐보는 총각처럼 부임 날자도 멀었는데 미리 와 보았습니다. 소감은 엉망이었습니다. 눈에도 들어오지 않는 조립식 공소건물과 호랭이 새끼칠 정도로 잡초 무성한 마당 그리고 성당까지 오는 도로의 비좁음 등등 좋다고 할 수 있는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복잡하고 화려한 것을 썩 좋아하지 않았던 저에게 어찌보면 잘 어울리는 곳인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위안을 삼으면서 금호동과의 첫만남에 대한 묘한 인상을 가슴에 담고 전주 군인성당으로 돌아갔습니다.
1994년 9월 15일. 대명절인 추석을 며칠 앞두고 눈에도 들어오지 않았던 자그마한 건물안에서 금호동 본당 설립 첫미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고향을 찾는 귀성객처럼 여기저기서 나타나는 신자 여러분들을 만나면서 새로운 설레임과 기대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하루하루 시간이 성화되면서 조금씩 조금씩 꼴을 갖추고 모양을 내더니 드디어 오늘 1996년 5월 5일 금호동 성당의 월보인 <보금자리>가 태어났습니다. 금호동의 소리가 울려퍼지기 시작합니다.
이제 <보금자리>는 금호동의 소리이며, 금호동의 흔적이며, 금호동의 얼굴이고, 금호동의 자취이며, 금호동의 역사서가 될 것입니다.
성서는 하느님 백성의 역사를 경신례(敬神禮 : 전례) 안에서 들려주기 위해, 기억시키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말할 수 있다. 성서가 명하고 있는 것들 가운데 많은 것들이 기억하라는 한마디 말로 함축될 수 있다. 공동체에 대한 사도의 일차적 의무는 공동체를 창설하는 일 그 이상으로 그들이 부여받아 이미 알고 있는, 아니면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을 충실하게 기억하도록 만드는 일이다.... 모든 것이 암울할 때, 우리가 절망적인 목소리에 둘러 싸여 있을 때, 우리가 아무런 출구도 발견하지 못할 때 우리는 기억하고 있는 사랑 속에서 구원을 발견할 수 있는 바, 이 사랑은 단순히 지나간 과거를 동경하는 회상이 아닌, 현재 속에서 우리를 지탱해주는 살아있는 힘인 것이다. 기억을 통해서 사랑은 시간의 한계들을 초월하고 우리 삶의 어느 순간에든 희망을 부여한다. (살아있는 기억매체 9쪽. 37쪽)
따라서 좀 더 거창하게 말한다면 <보금자리>는 금호동 성당의 다음 세대에게 들려주고 기억시키는 성서가 될 것입니다.
<보금자리>는 신자 여러분 모두의 보금자리이며 동시에 여러분 모두의 사랑과 관심을 먹으며 성장할 것입니다. 이름처럼 금호공동체의 보금자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여기서 누구나 사랑과 평화와 위로를 얻어가는 보금자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신자 여러분 모두와 함께 금호동 성당의 월보 <보금자리>의 탄생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