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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IN-X(인엑스) 원문보기 글쓴이: 카이저(임성국)
출처:lifeasadog.egloos.com
임재범은 두말할 것 없이 한국 최고의 보컬리스트다. 최고의 성량, 정확한 음정, 완벽한 발음, 무한한 파워, 가성과 진성을 구별이 가지 않게 넘나드는 테크닉, 끝이 안 보이는 고음, 특유의 쇳소리, 완벽한 곡 해석력, 풍부한 감정표현, 그리고 이 모든 걸로 결코 표현할 수 없는 그만의 느낌 꺼지. 보컬리스트로서 퍼펙트 + α 다. 아쉬운 게 딱 하나 있다면 별로 그루브감이 없다는 거 정도다. 지극히 주관적인 평가지만 정말 단순히 기술적 측면으로만 따지면 남성 보컬리스트로서 최고로 거론되는 조용필, 전인권, 김현식, 김건모, 이승철 등등도 임재범 앞에서는 모두 한 수 아래라고 생각한다. (물론, 아티스트로 따지면 좋은 곡과 앨범을 훨씬 많이 남긴 조용필, 전인권, 김현식이 임재범 보다 더 낫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이선희와 같은 최고의 가수도 임재범을 보면서 가수로서 좌절감을 느꼈다고 하고, 임재범 1집 때 같은 녹음실에서 가수 데뷔 준비를 하던 이현우는 "내가 이래서 한국에서 가수를 할 수 있을까" 걱정하기도 했다고 한다. (엔하위키 참조) 그 외에도 김태원, 박정현, 유희열, 박효신 등 수많은 정상급 음악인들이 임재범의 보컬을 최고로 꼽았다. 김형석의 "나만 가수다" 발언은 절대 과장이 아니다.
특히 그의 보컬의 진면목은 헤비메틀에서 빛난다. 서양에서 시작되고, 널리 인기를 얻은 음악 조류인 헤비메틀에서 보컬은 신체 구조상 동아시아인이 하기 불리하다. 서양인들의 파워를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기 떄문이다. 하지만 임재범만큼은 예외다. 성량, 쇳소리(오버드라이브), 공격성에 있어서 임재범은 결코 서양의 정상 보컬들에 뒤지지 않는다. 헤비메틀 팬들은 임재범의 보컬을 평가하면서 꼭 데이빗 커버데일, 디오에는 '못 미치지만'이라는 평가를 넣는다. 하지만 이는 하드록-헤비메틀의 전성기를 열어젖힌 명 보컬들의 명성에 대한 지나친 경외감, 신비화 내지 오리엔탈리즘이라고 생각한다. 임재범은 적어도 보컬에 있어서만큼은 디오, 커버데일 못지 않은 최고의 보컬이라고 생각한다. 조금 과장해서 평가하자면 디오의 파워, 커버데일의 감성, 롭 핼포드(Rob Halford)의 다재다능함을 겸비했다고나 할까.
요즈음 임재범은 <나는 가수다>에 출연하면서, 폭발적인 가창력, 불운했던 과거, 아내의 투병 소식, 조울증에 시달리며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한 이야기들이 합쳐져 큰 화제를 만들어 내고 있다. 2004년에 최초의 단독 콘서트를 연 후로 다시금 잠적해서, 간간히 공연을 하는 것 외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기에, 그의 전면적인 "예능-가요 프로"출연은 큰 화제가 됐고, 임재범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딴지일보 총수 김어준은 임재범 신드롬을 '상처받은 짐승의 영웅서사'로 표현했는데, 정말 정확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임재범은 무대에만 서면 사자처럼 초원을 호령했지만, 금새 상처받고 돌아서서 은둔하기 일쑤였다. 보통 사람들로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한 아픈 개인사가 있기 때문일 터이다. 이번에는 펑크내지 않겠다고 공언했다가, 본의아니게 프로그램에서 하차하게 됐다. 그가 다시 돌아와서 가요계를 점령할지, 다시 자기만의 세계로 빠져들게 될런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최근에 모습을 보며 전자에 희망을 두고 있다.) 방송 후 한 편으로는 "역시 神이다." 다른 한 편으로는 "생각보다 별로다."라는 양극화된 반응이 나오고 있다. 그의 실력과 매력에 대한 판단은 개인의 취향에 달린 거지만, 중요한 건 지금 방송에서 보이고 있는 임재범의 모습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에 대해 별 근거 없이 신격화하거나 혹은 나이든 모습만 보고 폄하하기 전에 묻혀져 있던 그의 음악인생 전체를 조망하며, 그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초기에 영향을 받은 보컬리스트
임재범이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보컬리스트는 직접 언급하기로 두 명이 있다. 딥 퍼플(Deep Purple), 화이트 스네이크(White Snake)의 데이빗 커버데일(David Coverdale)과 레인보우(Rainbow), 블랙 새버스(Black Sabbath), 디오(Dio)의 故 로니 제임스 디오(Rhony James Dio)다. 임재범은 노래를 연습할 때 특정 보컬리스트들의 어떤 스킬을 보고 따라하는 식으로 노래 연습을 했다고 한다. 디오로 부터는 그 엄청난 육성의 파워를, 데이빗 커버데일로 부터는 노래를 '멋있게' 부르는 법을 염두에 두면서 따라불렀다고 한다. 항간에는 고음은 퀸스라이크(Queensryche)의 죠프 테이트(Geoff Tate)를 모델로 연습했다는 얘기도 있고, 마이클 쉥커 그룹(MSG), 레인보우(Rainbow), 임펠리테리(Impelliteri)의 그래험 보넷(Graham Bonnet)을 모델로 했다는 얘기도 있다. 어쨌든 가장 큰 영향을 받은 보컬은 디오와 데이빗 커버데일임은 확실하다. (2004년에 백제예술대학에서 하는 보컬 특강을 들었었는데, 그 때도 저 둘은 꼭 언급됐다.) 참고로 얼마전 <나는 가수다>에서 임재범의 대기실을 비춰줄 떄도 데이빗 커버데일의 Mistreated가 흘러 나오고 있었다. 소울풀한 보컬 스타일을 지닌 커버데일을 통해 노래를 배웠기 때문에 메틀 시절에도 소울풀한 발라드를 곧잘 불렀고, 나중에 솔로로 전향했을 때 최고의 소울 보컬을 보여줄 수 있었다. 나중에 또 이야기 나오겠지만, 임재범은 타고난 재능도 압도적이지만, 지독한 연습벌레이기도 하다. 그는 가수가 노래에 신경쓰지 않고, 겉멋만 들어서 돌아다니는 걸 가장 싫어했다. 인터넷에 떠돌아 다니는 락스타 명언 모음집에 그가 했다는 "폼 잡을 시간이 있거든, 연습이나 더 해라." 라는 말도 돌아다니고 있지 않은가.
커버데일과 디오가 누구인지 궁금하실 분들을 위하여 위에서 언급한 Deep Purple - Mistreated (커버데일)과 Rainbow - Kill the King을 띄워놓는다. 미스트리티드에서 메인보컬이 커버데일이고 베이스와 초고음 샤우팅을 담당하는 이는 글랜 휴즈(Glenn Hughes)다.
초창기 헤비메틀 시절
시나위 1집 (86)
01 크게 라디오를 켜고
02 그대앞에 난 촛불이여라
03 남사당패
04 젊음의 록큰롤
05 잃어버린 환상
06 아틸란티스의 꿈
07 1월(January)
08 하루해 마냥 떠가고
기타 : 신대철 보컬 : 임재범 베이스 : 박영배 키보드 : 김형준 드럼 : 강종수
시나위의 1집인 Heavy Metal Sinawe는 국내 최초의 헤비메틀 음반으로 알려져있다. 하드록에서 헤비메틀로 넘어오는 경계선에 서있는 그룹들은 몇 있었지만, 스스로를 헤비메틀로 표방하고 앨범을 낸 이들은 시나위가 최초였다. 그 파급력이 더 컸던 것이 국내 록의 대부의 신중현의 아들이자, 언더그라운드에서 기타의 神으로 통했던 신대철의 데뷔앨범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현재 신대철, 김도균과 함께 3대 기타리스트라 불리는 부활의 김태원도 시나위 신대철의 실력과, 배경에 주눅들었었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당시 헤비메틀은 국내에 제대로 소개되지 않았었다. 따라서 엔지니어링 기사, 녹음장비 등 물질적 조건과, 언더그라운드 헤비 메틀 씬의 숙성 등 모든 조건이 제대로 되어 있을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대한민국 대중음악사에 길이 기억될 만한 멋진 앨범을 만들어냈다.
임재범은 신대철과 고등학교 동기였다. 임재범은 62년 생으로 올해로 나이가 딱 50이라고 한다. 하지만 널리 알려져있듯 불운했던 과거로 인해서, 호적등록이 늦게 됐고, 학교도 늦게 간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67년 2월 생인 신대철과 같이 학교를 다니게 됐다. 음악이 하고 싶었던 임재범은 기타를 사서 연습을 했지만, 연주가 마음대로 되지가 않았다. 그마저 아버지가 부셔버려서 노래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어느날 그는 시나위가 보컬을 구한다는 얘기를 듣고 시나위 연습실에 가서 슬쩍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당시 보컬리스트가 이병문이었는데, 녹음까지 했었지만 탈퇴를 하게되서 보컬 자리가 공석이었다.) 다들 그의 엄청난 목소리에 놀랐고, 의기기투합해서 앨범 작업을 시작하게 됐다고 한다. 신대철의 집에서 머물면서, 연습실 청소도 해가며 연습했는데, 신대철의 아버지인 신중현이 가끔와서 연습을 봐주었다고 한다. 임재범은 신중현이 키는 조그마하지만 카리스마가 있어서 매우 무서웠다고 술회한다한다.
앨범은 전체적으로 당시에 유행하던 향락적인 느낌이 나는 LA 메틀(ex) 머틀리 크루) 혹은 대중적 멜로디를 중심으로 하는 팝 메틀(본조비)가 아닌 정통 헤비메틀이었다. 헤비메틀 앤썸이 된 "크게 라디오를 켜고"가 첫 트랙이고 큰 인기를 끌었던 메틀 발라드 "그대 앞에 난 촛불이어라"(IZM 특집에서 김태원이 이 노래를 듣고 깜짝 놀랐다며 인생 최고의 명곡 top 15에 선정하며 임재범을 한국의 데이빗 커버데일이라고 불렀다.), 판테라(Pantera) 필립 안젤모를 연상케 할 만한 육중한 파워와 공격성을 드러내는 "남사당패"와 같은 노래들이 인상적이다. 이 때의 임재범은 음정이 살짝 불안했고(이건 애초에 저음의 목소리를 가진 이들이 보컬 인생 초반에, 그리고 나이 들어서 전성기를 지났을 때 겪을 수 밖에 없는 숙명인 것 같다. 그래서 요즘 임재범이 가성이나, 두성으로 넘어가기 전 육성으로 낼 수 있는 최고음역대에서 음이탈이 잦아지고 있다.), 두성을 이용한 초고음을 내고 있지 않다. 트레이드 마크라고 할 수 있는 육성 최고음역대와 가성을 자연스럽게 넘나드는 창법도 잘 보이지 않는다. 이 떄의 주무기는 중음역대의 무지막지한 파워였다. 그걸 가장 잘 드러내는 노래가 바로 남사당패니 한 번 듣고 지나가자. 신해철은 고스트 스테이션 명창열전을 진행하면서 그 임재범도 이런 시절이 있었다며 이 노래를 소개했다. 덧붙여서 '공익' 임재범이 가발을 쓰고 나오는 "젊음의 록큰롤" 뮤직 비디오도 감상하자. 하하하. 그 당시에도 뮤직비디오가 있었나 보다.
외인부대 1집 (1988년)
1. 도시의 비밀
2. 방랑자
3. Another Life
4. 환상의 록큰롤
5. Julie
6. Jump On The Top
7. Rockin' Desire
8. 아름다운 그대
기타 : 손무현, 이지웅 드럼 : 손경호 베이스 : 박문일 보컬 : 임재범
임재범은 시나위 활동을 하다가 공익 문제 때문인지, 임재범 보다 샤우팅 하는 보컬을 원했던 신대철의 의지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신대철이 그의 방랑벽에 지쳤기 떄문이었는지 결국 임재범은 시나위를 탈퇴하게 된다. 1987년 부활의 콘서트 장에서 평소 김태원과 사이가 좋지 않던 부활의 기타리스트 이지웅과 임재범이 의기투합했다고 한다. 부활에 있었던 이지웅과 시나위의 임재범, 다섯손가락 출신의 베이스 박문일과, 드러머 손경호 그리고 현재(특히 90년대에) 세션과 작곡가로 잘 나갔던 20세 약관의 나이의 손무현이 뭉쳐서 만든 그룹이다. 쟁쟁한 그룹들에서 활동하던 멤버들이 헤쳐모였기 떄문에 그룹 이름은 외인부대가 되었다. 사실 앨범 자체가 주옥같은 곡들을 담고 있는 건 아닌데, 초고음을 장착한 임재범 완전체가 탄생했다는데 앨범의 의의가 있다 하겠다. 신해철의 표현에 따르면 전사가 공격마법도 익히고, 회복도 하고 그러는 사기 캐릭터가 된 시점이라 할 수 있다. 레코딩 상태는 시나위 1집 때 보다 훨씬 깔끔하다. 곡은 완전체 임재범을 보여주기 위해 '방랑자'를 골랐는데 시나위 시절 보다 평균음이 훨씬 높이 올라갔다는 걸 알 수 있다. 지금도 어떻게 내는지 신기한 중고음 샤우팅과 초고음 샤우팅이 마구 난무한다. 초고음을 익힌 뒤로 임재범은 샤우팅을 과도하게 사용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곡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시나위 시절의 중음역대의 육중함과 샤우팅을 좀 조절을 했으면 더 좋았을텐데 안타깝다. 록 발라드 Julie는 올타임 베스트 발라드라고 생각되어서 첨부했다. 2004년 콘서트 실황인 라이브 앨범에선 "아마 1988년으로 기억합니다. "라면서 시작하는데 별 의미 없이 툭 던진 말인데 왠지 멋있다.
Project : Rock in Korea (1989년)
1. 멈추지 않는 강
2. Rock in Korea
3. Paradise
4. All Because of You
5. The Same Old Story
6. 허상
7. 기억날 그 날이 와도
8. 미로
기타 : 김도균, 이중산, 오태호, 손무현 베이스 : 강기영(달파란) 드럼 : 손경호, 이병일 보컬 : 임재범, 김종서, 김성헌
87년 백두산의 해외 진출을 염두에 둔 2집 앨범이 영어 앨범이라는 이유로 방송 및 공연 금지 판정을 받는다. 유현상은 일본으로 가서 매니지먼트를 배워와 소위 일본식 아이돌 육성의 시초가 됐고, 김도균은 영국으로 유학을 떠난다. 그에 더해 김태원이 대마초로 구속되고, 이듬해 부활은 이승철의 탈퇴로 공중분해된다. 군사정권은 정권의 정당성 문제를 덮기 위해 락뮤지션을 사회를 교란시키는 일탈분자로 몰아서 대대적인 대마초 수사를 벌이는 등 활동을 방해했다. 이러한 당국의 헤비메틀 뮤지션 탄압은 훗날 임재범의 솔로 전향의 이유 중 하나가 된다. 설상가상으로 88년 발매한 시나위의 3집 <Free Man>은 저조한 판매고를 보인다. 헤비메틀의 시대가 저물어만 가고 있었던 것이다. (http://blog.daum.net/goorabrain/470 참조)
이 때 영국에서 돌아온 명실상부 당대의 최고 헤비메틀 기타리스트인 김도균, 당대최고의 보컬리스트인 임재범, 김종서, 김성헌 미 8군에서 공연하며 전설적인 기타리스트로 널리알려졌지만, 레코딩에는 그 모습을 보이지 않았었던 이중산, 이승환과 함께 이오공감을 결성하고 후에 인기 작곡가로 이름을 날리게 될 오태호 등등이 모여서 마지막으로 헤비메틀의 불꽃을 불태운 올 스타 프로젝트 앨범이다.
84년 한 라이브 클럽에서 종업원 겸 주방장으로 일하던 임재범은 기타리스트 김도균의 연주가 마음에 들어 그에게 무대에 한 번 같이 서자고 제안했다. 김도균은 무슨 노래 할 줄 아는 거 있냐고 물었고, 임재범은 Deep Purple(노래 : 데이빗 커버데일)의 솔저 오브 포춘 Soldier of Fortune을 불렀다고 한다. 당시 자신의 보컬에 대한 자부심이 넘쳤던 그는 당연히 김도균이 오케이를 할 줄 알았다고 한다. 근데 김도균은 "야 너 그딴식으로 노래 할 거면 다신 노래 하지 마라." 라고 퇴짜를 놓았다고 한다. 임재범은 당황했지만, 반드시 김도균이 자신을 인정하게 만든다는 일념하에 다시 마음을 고쳐먹고 연습에 들어갔다. 그는 먼저 데이빗 커버데일의 원곡을 끊임없이 들으며, 틈나는 대로 카세트 테이프에 솔저 오브 포춘을 녹음하고, 녹음된 노래를 들으며 무슨 문제인지를 파악하고, 다시 부르기를 반복했다고 한다. 그 때 솔져 오브 포춘을 2천번을 불렀다나. 그 뒤 6개월 후 김도균을 다시 만났으나, 김도균은 또 한 번 팀 결성 제의를 거절했다고 한다. (내 기억으로는 처음 노래 부르고 퇴짜 맞고, 6개월 뒤 오케이 하고 락 인 코리아 작업에 들어갔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아무래도 신문 기사가 맞으려니 한다. http://cafe306.daum.net/_c21_/album_viewer?grpid=39E&fldid=Eak&dataid=1002&mgrpid=&url=http%3A//pds8.cafe.daum.net/download.php%3Fgrpid%3D39E%26fldid%3DEak%26dataid%3D1002%26fileid%3D1%26regdt%3D20050120150624%26disk%3D11%26grpcode%3Df1r1e1e1%26dncnt%3DN%26.jpg&title=viewer) 아무튼 그 때의 노래 연습이 자산이 되어 임재범은 시나위, 외인부대 등의 활동을 거쳤고 영국에서 돌아온 김도균과 의기 투합해 Rock in Korea 앨범에 참여하게 된다.
콤비는 Rock in Korea와 The Same Old Story 두 곡을 만들어냈는데 아마도 이 게 두 사람 모두에게 커리어의 정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Rock in Korea는 호쾌한 정통 헤비메틀이다. 시나위와 솔로 시절의 임재범만 알다가 처음 듣고 진짜 걍악했던 기억이 있다. 한국에 이 정도 수준의 헤비메틀, 이 정도 수준의 보컬리스트가 있었다니! The Same Old Story는 Stairway to Heaven을 연상시키는 구조로 초반에 어쿠스틱 기타와 함께 블루스 같은 느낌으로 가다가 후반에 폭발한다. The Same Old Story는 한국 메틀 역사상 최고의 명곡으로 불리며 락 매니아들로 부터 높은 평가를 받는다. 둘다 듣고 가자. Rock in Korea는 훗날 참여 뮤지션들이 모두 솔로 가수로 대박을 터뜨리니까, 레코드사가 상업욕에 물들어 내놓은 리믹스 판에 실린 버전인데... 그냥 인트로에 헬리콥터 소리와 관중들 박수소리를 합성한 수준이다.
Asiana - Out on the Street - 1990년
1. Breaking Out (4:25)
2. Struggle (4:25)
3. Tom Kat (5:15)
4. Paradom (5:32)
5. Out On The Street (4:10)
6. Missing You (4:45)
7. Asiana (6:00)
8. Dancing All Alone (4:37)
기타 : 김도균 보컬 : 임재범 베이스 : 김영진 드럼 : 유상원
<락인코리아>에서 호흡을 맞춘 김도균과 임재범은 본토를 공략하겠다는 일념으로 영국에 진출한다. 영국에서 외국인 멤버를 영입해 4인조 그룹 '사랑'을 결성해 백두산, 외인부대 시절의 노래를 중심으로 클럽 등지에서 활동을 했다고 한다. 이 때 BBC에 출연하기도 하는 등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으나, 외국활동의 어려움을 절감하고 국내에 돌아와서 Asiana(아시아나)를 결성하게된다. 밴드명은 아시아의 자존심을 보여주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여담이지만 임재범은 영국 생활 6개월 만에 생활영어를 마스터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영국생활을 하면서 너무 배가 고팠는데, 김도균이 이상한 음식을 만들어줘서 곤욕을 치루기도 했다고 하고, 한국 음식이 너무 먹고 싶어서 조금 정체를 알 수 없는 한국인 종교단체에 가서 밥을 얻어먹기도 했다고 한다. 종교 단체 측에서 가입하실 거냐고 끈덕지게 물어봤지만, 일단 밥 한 그릇 먹고 나서 생각해보겠다고 하고, 배터지게 먹은 뒤에 빠져나왔다고.. 참고로 임재범은 영어 발음이 굉장히 좋은 걸로 정평이 나 있는데, 아마 듣는 귀가 좋아서 그런게 아닐까 싶다. <위대한 탄생>의 셰인도 썡판 모르는 한국 땅에 와서 노래 부르는데 그정도면 발음이 참 훌륭하다고 생각하는데, 이 역시 귀가 좋아서 그런 것으로 보인다. 음악인으로서 뛰어난 재능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한국으로 돌아온 뒤 김도균은 과거 이태원에서 (임재범이 김도균에게 까인 그 시점, 그 클럽에서) 솔로몬으로 함꼐 활동하던 (시나위, 작은 하늘, 카리스마를 거친) 김영진과 유상원을 불러들여서 아시아나를 결성했다. 녹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앨범을 영국 Matrix 스튜디오에서 녹음하기도 하는 등 심혈을 기울여서 최고의 앨범을 만들려고 노력한다. 가사를 대부분 영어로 한 것도 부분적으로세계 진출을 염두에 뒀기 떄문이었다. (헤비메틀을 한국말로 부르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 가장 큰 이유인 것 같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결과물은 Rock in Korea에 비해서 썩 좋지 못했다. 임재범은 지나치게 샤우팅을 남발했고, 인상적인 곡도 그리 많지 않다. 가장 인상적인 곡은 셀프타이틀인 Asiana아 미발표곡인 Soldier's Came다. Soldier's Came은 반전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곡인데, 심사위원회에서 군화발 소리를 듣자마자 이거 5.18 얘기 아니냐며 음반 수록을 불허했다고 한다. 아시아나는 (말 그대로 탈아시아적 실력을 가진 일본 출신 밴드로 서양 헤비메틀 계의 신성한 충격을 가져다 준) 라우드니스의 내한 공연 떄 오프닝 공연을 맡았는데, 당시 몇몇 관계자들로 부터 메인밴드보다 더 낫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엄청난 라이브 무대를 보여줬다고 한다. (라우드니스의 전설적인 기타리스트 아키라 다카사키도 임재범을 보고 '아시아에 이런 보컬이 있었다니!' 라며 충격을 받았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하지만, 한국의 척박한 음악씬 떄문에 메틀밴드로서 활동을 계속 이어나가기가 어려웠고, 경제적 문제 등이 겹쳐져 팀은 해산하게 된다. 김도균은 다시 3인조로 백두산을 재결성하고, 임재범은 솔로 앨범을 계약하게 된다. 계약 조건 중에 아시아나 활동 등을 병행하게 해주겠다는 조건을 내걸기도 했다는데, 임재범은 그것이 오히려 더 헤비메틀 계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해 거절하고 하나만 열심히 하겠다며 솔로 활동에 나서게 된다. 80년대 헤비메틀 기수들 모두에게 다 그랬겠지만, 특히 임재범에게는 헤비메틀이 거의 종교에 가까운 귀속과 애착의 대상이었음을 알 수 있다.
들어볼 곡은 금지된 명곡인 Soldier's Came이다. 초반엔 어쿠스틱 반주에 약간 몽환적인 느낌의 보컬로 가다가 후반에 폭발하는 The Same Old Story와 약간 비슷한 구존데, 키보드도 넣어서 좀 더 웅장한 느낌을 강조하고 있다. 임재범의 샤우팅의 끝을 여기서 맛볼 수 있다.
솔로 전향 이후
임재범은 메틀 뮤지션들의 목을 조르며 자유를 질식시키는 국내의 척박한 음악환경에 환멸을 느끼며 솔로로 전향한다. 그는 헤비메틀 음악을 하던 동료들에게 미안함을 느꼈으며, 스스로도 정말 많이 괴로웠지만, 결국 스스로가 선택한 일이기 떄문에 해보겠다며 마이클 볼튼 같은 음악을 해보겠다고 대중가요계에 도전장을 던진다.
솔로 1집 On the Turning Away (1991년)
1 너의 곁에서
2 이밤이 지나면
3 사진속에 담긴 추억
4 BEING WITHOUT YOU
5 다시 사랑할 수 있는데
6 이제 우리
7 LET ME LIVE MY LIFE
8 JULIE
헤비메틀 음악을 사랑하던 이들에게는 열받는 일이겠지만, 어쨌든 나는 개인적으로 외인부대, 아시아나 앨범 보다는 이 앨범이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그냥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성인 취향의 곡들이 있고, 무작정 질러대기만 했던 외인부대 이후의 노래보다도 솔로 전향 후의 노래가 훨씬 듣기 좋다. 임재범은 자신이 너무 오만했었다고 술회했었는데, 너무 독보적인 (기술적인 면의) 노래 실력 때문에 매너리즘에 빠져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는 당시 가왕으로 군림하던 김현식을 봐도 고개를 까딱하는 정도로 매우 건방졌다고 한다.
이 앨범에서는 후에 '사랑보다 깊은 상처', '너를 위해'와 같은 히트 넘버를 만들어 준 신재홍이 히트넘버 '이밤을 지나며'를 비롯한 몇몇 곡을 만들었다. 너의 곁에서, 이밤이 지나면, 사진 속에 담긴 추억, 다시 사랑할 수 있는데가 들을만 하다. 재녹음한 Julie는 좀 거세된 느낌이랄까, 외인부대시절의 것이 훨씬 낫다. 솔로 활동을 하던 임재범은 헤비메틀을 배신했다는 중압감에 시달리던 중, 불미스러운 사건 까지 터지면서 이게 뭐하는 일이냐 싶어 산 속으로 들어가고 한참 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산 속에 들어가서 살면서 지금까지 남 흉내내기에 급급했던 자신을 반성하고, 다른 이들과의 공존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며, 인간으로서 외로움을 겪으며 영혼을 달래려고 각종 종교에 심취해지내기도 했다고 한다. 그저 음악 외적인 요소를 통해 뜨려고 하는 대중가요계가 못마땅해서 노래에 전념하기 위해 산에서 맹렬히 연습하기도 했다고도 한다. 무림고수의 비밀 수련의 성과물인지 2집, 3집에서 그의 보컬은 훨씬 숙성되어 나온다. 이 때 이후부터는 정말 단지 자신의 기술적 역량을 뽐내는 게 아니라, 음을 하나하나 느끼며 그 속에서 자유자재로 소리로 유영을 하는 느낌이다.
이밤이 지나면의 라이브 버전과 롤 모델로 했던 마이클 볼튼의 How am I supposed to live without you의 라이브를 들어보자. 후자는 국내 소울계에서 최고의 보컬리스트로 손꼽히는 '고모' 임희숙과 듀엣으로 했다. 역시 노래는 절반 이상은 생물학적으로 타고나야 한다는 교훈을 준달까... 들어보면 아시겠지만 마이클 볼튼 보다 음역이 조금 낮고, 중저음대가 훨씬 두텁고 거칠다. 다음까페 <임재범을 알아야 락을 알지>나 검색 서비스 잘 뒤져서 찾아보면 그가 부른 Rain, Sorry seems to be the hardest world 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정말 죽음이다. 꼭 들으시라.
Desire to Fly (1997)
01. 비상
02. 그대는 어디에
03. 사랑보다 깊은 상처
04. 그대... 내게 와
05. 또 다른 날을 위해
06. 추락
07. 궤변... (광란의 축제)
08. Wish
09. 최선의 고백
10. 아름다운 오해
1997년 임재범은 6년간의 공백을 깨고 느닷없이 2집을 발표했다. 1집에서 히트곡들을 만들어준 신재홍이 후일 CF에 실리고, 박정현에 의해서 듀엣으로 녹음되는 '사랑보다 깊은 상처'를 비롯한 몇 곡을 줬다. 그리고 나머지는 한국 대중 음악 역사상 가장 훌륭했던 그룹으로 꼽히는 U & Me Blue의 멤버이자 요즘에는 영화음악 OST 작업을 주로하고 있는 방준석(이인)과 함꼐 공동 작업을 했다. 아마 임재범 솔로 앨범 중에서 가장 잘 다듬어진 완성도 높은 앨범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몇 곡만 빼면 거의 전곡이 고루 들을만 하다. 당시 한국에 와서 가수 준비를 하며 고시원에서 찌는 여름을 보내며 외로워하던 박정현이 여름내내 끊임없이 반복해서 들은 앨범이 이 앨범이라고 한다. 그는 특히 비상을 최고의 '친구'로 꼽는다. 이 최고의 보컬리스트에 반해 고해에서 코러스를 담당하기도 하고 나중에 '사랑보다 싶은 상처'에 자기 목소리를 입혀 듀엣 형식으로 앨범에 수록하고, 나중에 수요 예술 무대에서 '사랑보다 깊은 상처' 듀엣도 한 번 한다.
그대는 어디에에 얽힌 사연도 재밌는데, 앨범을 완성해서 녹음하려는데 임재범 스타일의 노래가 너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 자리에서 임재범이 즉석에서 곡을 만들어내었고, 재즈 피아니스트 김광민이 녹음하러 왔다가 그걸 듣고 자진해서 피아노 연주, 편곡을 해주었다고 한다. 테크닉 적으로 임재범 노래 중에서 가장 어려운 노래이기도 하지만, 노래 자체에 담겨 있는 soul이 정말 엄청난 명곡이다. '비상' 또한 빼놓을 수 없는데, 세상에 나와서 당당하게 활동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하고 있는데, 자뭇 감동적이기는 하나, 사실 이 놈의 의지는 너무 자주 표명하시고, 또 뜻대로 안되시는지라 ^^;;;
수요예술무대에서 그대는 어디에 라이브와, 1999년 엠넷에서의 비상 라이브를 골랐다. 여담이지만 임재범은 이현우와 1집 때의 인연으로 나름대로 친한 사이고, 김광민과도 이렇게 인연이 있는 사이라 방송 출연을 거의 안 하는 도중에도 가끔씩 수요예술무대는 출연해왔다. 김광민, 이현우 덕에 우리가 임재범 절정기의 영상을 그나마라도 감상할 수 있게 된 셈이다. 다들 알겠지만, 찾아보면 박정현과의 "사랑보다 깊은 상처"듀엣도 있다.
Return to The Rock (1998)
1. Intro (고해)
2. 고해
3. Myth
4. Blue
5. Atlantis
6. Exodus
7. War And Order ("진혼" English Ver.)
8. 또다른 만남의 시간
9. Adam
10. Alcohol
11. Mu
12. 진혼
1999년 임재범은 오랜 메틀 팬들의 염원에 보답이라도 하는 듯 갑자기 메틀 앨범을 들고 나온다. 과거의 무작정 달리고. 내지르던 정통 헤비메틀은 아니고 조금 난해한 앨범이었다. 임재범은 단독으로 곡을 만들기보다는 공동 작업을 즐기는데 이번의 파트너는 캡틴퓨처로 활동하던 송재준이었다. 옛날에 밴드로 하던 메틀 사운드보다 훨씬 힘을 많이 줬다. 과거 메틀 시절의 쉼 없는 샤우팅은 자제하고 보컬은 중음역 대의 파워가 강조한다, 기타 리프 역시 과거보다 훨씬 육중하다. Atlantis 같은 곡은 오리엔탈 풍의 사운드도 많이 가미했는데, 어디서 잘 들어보지 못하는 실험적 스타일의 곡인 것 같다. Exodus와 Mu 같은 넘버들은 진짜 엄청나게 헤비하다. 세션으로 참여 한 토미 킴의 기타도 한 몫한다. (그렇다. 토미 킴은 바로 얼마 전 나는 가수다에서 빈 잔의 기타를 담당한 인물이다.)
이 앨범에서 아무래도 가장 유명한 곡은 처절한 발라드 '고해'인데 임재범 식 보컬의 극치를 보여주는 곡이 아닌가 싶다. 임재범 이전 이후 그 누구도 이런 식으로 노래부르지는 못할 것 같다. (그러니까 노래방에서 부르지 말라고!) 특히, 중간에 애드립 부분이 특히나 훌륭하고, 박정현의 코러스도 일품이다. 나중에 베스트 형식의 편곡앨범인 메모리즈에서 다시 부르는데.. 원곡 버전이 훨씬 더 처절해서 개인적으로는 원곡을 더 선호한다. (그 버전은 유희열 편곡이다. 여담이지만 유희열은 임재범 처럼 노래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부르는 이가 없다며, 앨범을 작업할 때 항상 그를 염두에 두고 작업을 한다고 한 인터뷰에서 밝혔다. 언젠가 두 사람의 협업을 기대해봐도 좋지 않을까?) 요즘 라이브에서 고해를 부르면 많이 힘겨워하는 것 같은데, 전성기 때 왜 활동을 안 했는지 정말 아쉬울 따름이다.
참고로 이즈음에 임재범은 박진영과 듀엣 곡('재회')을 하나 부르게 된다. 고해 만큼은 아니지만, 그의 파워가 유감없이 발휘된 처절한 발라드 넘버다. 작곡자 박진영과 편곡자 김형석이 둘다 임재범의 노래를 너무 좋아해서 참여를 부탁했다고 한다. (박진영이 산 속 깊은 곳 까지 임재범을 모시러 갔다는 얘기가 있다.) 영상을 못찾겠는데, 찾아서 한 번 들어보길 바란다. 두 보컬의 역량 차이가 워낙 커서 좀 미스매치 느낌인데, 임재범의 절창이 모든 걸 커버한다. 이거 하나 들을라고 그렇게 싫어하는 박진영의 5집을 구입하기도 했었다..
개인적 판단이지만, 이 앨범을 끝으로 임재범의 무지막지한 파워는 조금씩 쇠퇴하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원 없이 메틀을 하고 싶어서 이런 앨범을 낸 건 아닐까, 그냥 혼자 상상해본다. 들을 노래는 Exodus다. 고해는 다들 워낙 잘 알테니 그냥 생략한다.
4집 - Story of two years (2000)
1. 너를 위해
2. 다시 시작해
3. 아직도 사랑할 뿐인데
4. You're So Beautiful
5. To me
6. 거인의 잠
7. Three Times a Lady
8. 더 늦기전에
9. Reason's To One
10. 너를 위해(MR)
3집 이후 2년 간의 이야기를 담았다는 뜻에서 2년간의 이야기로 앨범 타이틀이 정해진듯 하다. 그러고보면 활동을 안해서 그렇지 2집 이후로는 재녹음-베스트 앨범인 Memories... 까지 포함해서 앨범은 꼬박꼬박 냈던 셈이다. (사실 임재범의 활동의 부족만 문제 삼을 경우 장필순, 들국화-전인권, 사랑과 평화, 한대수, 김도균 등등 7~80년대 풍미하던 언더그라운드 가수들의 단절적인 활동이 잊혀지게 된다. 임재범은 여러가지 개인적인 이유로 자주 음반을 내지는 않았지만, 척박한 대중문화-음악인 수익구조 환경 속에서 특유의 '대중성'으로 인해 다른 뮤지션들보다 음악을 발표할 기회가 더 많이 주어졌다고 봐야한다.) 4집은 그 어느 때 보다 그냥 대중가요의 느낌이 강하고, 창법도 한층 힘을 뺐다. 임재범의 히트 메이커인 신재홍이 곡들을 주로 담당했는데, 여기서 너를 위해가 영화 '동감'에 삽입되면서 그야말로 메가 히트를 쳤다. 요즘은 없어서 못판다지?
재밌는 건 '너를위해'는 원래 그룹 소호대 출신인 에스더의 '송애送愛'라는 노래였는데, 별로 빛을 못 보고 있다가 비슷한 테마에 가사만 손봐서 임재범이 불렀다. 모던락 풍의 '거인의 잠'이 팬들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이고, 나머지는 비교적 평범한 발라드들이다. 팝송 커버가 두 곡 들어가있는데, 소위 원곡자들 보다 더 뛰어난 커버(cover)곡들이다. 나중에 서영은이 박정현을 벤치 마킹해서 '아직도 사랑할 뿐인데'를 듀엣 버전으로 재녹음 하기도 했다. 녹음을 하다가 도중에 임재범이 잠적해버려서, 너를 위해의 MR 버전을 포함해 10곡을 급히 맞춰서 앨범을 냈다는 뒷 얘기가 있다. '거인의 잠'이 검색에 안 잡혀서, 그냥 '너를 위해' 동감 MV를 띄운다. 이 영화를 통해 김하늘과 유지태가 톱스타로 부상했고, 임재범도 자신을 잘 모를 젊은 청중들에게 존재감을 과시했고. 새로이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고해가 여성들이 노래방에서 제일 듣기 싫은 노래 1순위가 되기 시작한 시점도 아마 이 때 이후일 것이다.
Memories... (2003)
1-1 다시 사랑할 수 있는데 2-1 사진 속에 담긴 추억
1-2 너를 위해 2-2 추락
1-3 그대 앞에 난 촛불이여라 2-3 거인의 잠
1-4 너의 곁에서 2-4 사랑보다 깊은 상처
1-5 아름다운 오해 2-5 Reason's To One
1-6 Julie 2-6 아직도 사랑할 뿐인데
1-7 최선의 고백 2-7 그대는 어디에
1-8 비상 2-8 Have I Told You Lately
1-9 The Same Old Story
1-10 고해
아마 가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온 History '86'00 에 대응하기 위해서 새 기획사에서 낸 게 아닌가 싶다. 기존의 곡들을 새로이 편곡해서 임재범이 다시 불렀다. 예전의 스타일보다 한층 힘을 빼고 불러서 기존 메틀 시절 부터의 매니아들은 불만족스러워하는 것 같다. 고해는 유희열이 대성당 미사 풍으로 편곡했는데, 3집에 실린 원곡의 처절함이 부담스러웠던 이들(특히 여성들)에게는 오히려 더 어필하는 면도 있는 것 같다. 로드 슈튜어트(Rod Stewart)의 커버인 Have I Told You 커버 버전이 매우 훌륭하다. 단, 기타톤이 조금 경박한 느낌이 있다. 참고로 김현식 헌정앨범에서 '비처럼 음악처럼', 이영훈 헌정앨범에서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도 불렀는데, 이 노래들 역시 두말할 나위 없이 훌륭하다.
Coexistence (공존) (2004)
1 살아야지
2 백만번째 환생
3 安 (안)
4 安 (안) - Epilougue
5 아낌없이 주는 나무
6 총을 내려라
7 새장을 열다
8 Sixth Chapter
9 Key
10 사람과 사람들
11 SeaSide
12 살아야지 - Piano Version
2001년 결혼하고, 아버지와 화해하고, 이듬해에 딸 까지 나온 임재범의 심경 변화가 묻어있는 앨범이다. 그 누구와도 화해하지 못하고, 홀로 방랑을 하며 살아갔던 과거를 접고 안식처를 찾았고, 안식처를 바탕으로 다시 한 번 세상에 나가보겠다는 의지를 내보이고 있다. 하지만 앨범 전체의 분위기는 좀 쓸쓸하다. 이 앨범에서 임재범이 가장 아끼는 곡들인 'Seaside', '살아야지'가 이를 정확히 대변해주는 게 아닌가 싶다. 오래도록 조울증에 시달려왔다고 하는데, 당시도 좀 감정적으로 다운 된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 결국 임재범은 겨울에 예정되었던 앵콜 공연을 취소하고, 다시 잠적하게 된다. "이제 더이상 오랜 기다림은 없을 거"라더니..
전곡을 김정민, 조규찬 등과 함꼐 작업했었던 작곡가 최남욱과 작업했다고 한다. 하지만 대중성을 배려한 노래는 사실 많지 않고, 많은 부분 임재범이 하고 싶었던 음악을 풀어낸 느낌이다. 락 넘버들이 절반이고 발라드가 절반인데, 발라드도 '안' 정도를 제이하면 그다지 대중성에는 신경쓰지 않는 느낌이다. 데뷔 초부터 견지해왔던 평화사상과 생명존중 정신을 '총을 내려라', 'Sixth Chapter' 등의 락 넘버를 통해 다시 드러내고 있다. 락 넘버들 자체는 사실 그리 귀에 잘 들어오지는 않는데, 타미 킴의 기타 연주만은 발군이다.
노래는 수요예술무대에서 부른 '살아야지'다. 김광민이 피아노 연주로 가담했다. 이 당시 공연보러 갔었는데, 임재범이 무대에 오르기를 힘들어 해서 녹화가 상당히 지연됐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관객들이 떠나지 않고 끝까지 기다렸고, 결국 임재범은 무대에 올라 1시간여의 공연을 앵콜까지 모두 무사히 마쳤다. 다만, 지하철이 끊겨서 집에 돌아가기가 참 난감했던 기억이 있다...
이 외에 생애 첫 라이브 콘서트 실황을 담은 라이브 앨범 Live & Life도 있지만, 사실 여기서 임재범의 보컬은 조금은 실망스럽다. 당시 임재범이 하는 공연은 모두 찾아가서 봤었는데, 전설을 눈 앞에서 지켜본다는 감동은 있었지만, 당시 컨디션이 안 좋았는지, 아니면 내 기대감이 너무 컸는지 노래를 (앨범만큼) 썩 잘 부르지는 못했다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신체적 노화가 진행되다 보니 과거의 곡들에 중점적으로 포진해있던 육성 최고음 부분에서 힘이 많이 부치다 보니 그런게 아닌가 싶다. 육성최고음, 가성, 두성의 자연스러운 연결이 임재범 최고의 강점인데, 그 부분이 흐트러지기 때문에 보컬의 완성도가 많이 떨어져보인다. 그래서 락커들이 나이가 들면 중고음 부분을 확 줄이고, 중저음에서의 파워와, 하이라이트 부분에서 지르는 초고음 샤우팅을 배합해서 드라마틱한 효과를 내는 곡들을 만들어내는데 <나가수>에서 '빈잔'이 그 전형이었다. 요즈음 드라마 OST로 내놓은 '낙인'이나 '독종'도 그런 연장선에서 음역대를 많이 낮추고, 보다 편안한 창법으로 부르는 것일 게다. 그리고 이 곡들에서 임재범의 보컬은 나이에 걸맞는 새로운 매력을 뽐내고 있다.
마치며
임재범 음악인생 리뷰는 진작부터 쓰려고 벼르고 있었는데, 게으름 때문에 미뤄뒀었었다. 그러다가 어제 <나가수>에서 '여러분' 무대를 보고 더이상 미뤄둘 수 없겠다고 생각해서 어젯밤 내내 썼다. 어제 무대는 정말 내가 보고, 들은 임재범의 노래 중 가장 훌륭했다. 윤도현의 표현대로 임재범 인생의 드라마 한 편이 그 짧은 노래 속에 모두 들어가 있었다. 불우했던 가정사, 좋아하는 음악을 하지 못하게 만들었던 군사정권의 검열과 탄압, 노래를 부르고, 음악을 만들며 달랬던 평생 마음 털어놓을 친구 한 명 없었던 외로움, , 아내의 투병과, 그와 더불어 이제야 절실히 깨달은 부모, 남편으로서의 책임감, 끝까지 자신을 믿고 지지해줬던 팬들에 대한 감사, 뒤늦게 다시 느낀 노래부른다는 것의 행복감, 이 모든 것들이 6분 동안의 노래에 담겨 있었다. 특히, 마지막 애드립 부분에서는 진짜 그의 말대로 한 인간이 부르는 게 아니라, 뭔가 이 세계의 것이 아닌 다른 존재가 부르는 듯한 초월감마저 느껴졌다. 그리고 그 드라마는 지난 주말 수백만 시청자들의 가슴을 울렸다.
나는 오래도록 임재범의 팬이었지만 솔직히 2004년 이후로 그에 대해서 포기하고 있었다. 더이상 목소리는 예전같지 않았고, 새로 내놓는 곡들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가수다> 첫 무대 때만 해도, 마음 속 한 켠에서는, 마음 속에서의 멋진 모습 그대로 남겨두기 위해서 안나왔으면 하는 바람도 가졌었다. 그런데 임재범이 정말 달라졌다. 3집 이후로 아무 의욕 없어보였던 그가, 진짜 제대로 다시 음악을 해보고 싶어하는 눈빛을 드러냈다. '낙인', '독종'도 괜찮았지만, 무엇보다 <나는 가수다>에서 특유의 오리엔탈 사운드가 가미된 된 프로그레시브 록으로 풀어낸 '빈잔'이 그 시발점이었다. 심한 목감기로 인해 음이탈 현상이 많이 일어났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장기호가 말하는 단순한 가창력이 아닌 무언가 동물적인 감각, 야수성이 다시 돌아왔다. '여러분'은 결정타였다. 나는 방송이 끝나고 2시간 동안 아무 것도 못하고 멍하니 음원 서비스에서 '여러분'을 무한 반복해서 들었다. 그리고 한 1시간 쯤 더 듣다가 나서야 무언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임재범은 그 음악적 재능과 노래 실력에 걸맞지 않게 좋은 곡들을 많이 못 남겼다. (이를 달래기 위해 수 많은 종교에 심취하기도 했던) 불안한 영혼과 방랑벽, 그리고 하고 싶은 음악을 하지 못하게 국내의 척박한 음악환경이 그가 오래 지속되는 파트너십을 형성해 안정적인 기반에서 음악적 교류를 하지 못하게 만들었고, 그 결과 누적적으로 축적되는 완성도가 존재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한국 최고의 보컬리스트 답지 않게, - 김현식하면 - 3집, 4집, 5집 전인권 하면 - 들국화 1집, 추억 들국화, 전인권 1집 - 이렇게 당당히 내세울 수 있는 마스터피스가 부족하다. 특히, 98년 3집 이후로는 그냥 이대로 팔리는 노래나 부르면서 적당적당히 음악인생 끝나게 되는 거 아닌가하는 우려도 들었다.
하지만 그가 달라졌다. (앞으로 또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지만), 그 어느 때보다 그는 세상과 함께 존재(Coexistence)하고 있다. 솔로 전향 이후로 지금이 최고로 행복해보인다. 지금의 스피릿은 그 어느 때 보다 균형 잡히고 완숙해 보이면서도 야성은 그대로 살아있다. 지금 이대로라면 어쩌면 이제 그의 음악 인생 최고의 마스터피스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루 빨리 맹장염 수술 후유증을 이겨내고 음악 파트너를 만나서 새로 곡을 만들고, 앨범을 냈으면 한다. 임재범은 단지, 최고의 보컬리스트만이 아닌 최고의 아티스트로서 당당히 세상에 우뚝서야 한다. 이대로는 그의 재능이 너무 아깝다. 더이상 상처받은 사자가 아닌, 세월의 지혜를 깨달아 다른 동물들과도 공존할 줄 아는 늙은 사자로 꾸준히 활동해주길 바란다. 먼훗날 내가 외로울 때 임재범의 2011년 앨범이 큰 위로가 되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그의 개인적 행복과 영혼의 평안, 그리고 그의 부인 송남영 님의 쾌유를 빈다.
임재범은 두말할 것 없이 한국 최고의 보컬리스트다. 최고의 성량, 정확한 음정, 완벽한 발음, 무한한 파워, 가성과 진성을 구별이 가지 않게 넘나드는 테크닉, 끝이 안 보이는 고음, 특유의 쇳소리, 완벽한 곡 해석력, 풍부한 감정표현, 그리고 이 모든 걸로 결코 표현할 수 없는 그만의 느낌 꺼지. 보컬리스트로서 퍼펙트 + α 다. 아쉬운 게 딱 하나 있다면 별로 그루브감이 없다는 거 정도다. 지극히 주관적인 평가지만 정말 단순히 기술적 측면으로만 따지면 남성 보컬리스트로서 최고로 거론되는 조용필, 전인권, 김현식, 김건모, 이승철 등등도 임재범 앞에서는 모두 한 수 아래라고 생각한다. (물론, 아티스트로 따지면 좋은 곡과 앨범을 훨씬 많이 남긴 조용필, 전인권, 김현식이 임재범 보다 더 낫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이선희와 같은 최고의 가수도 임재범을 보면서 가수로서 좌절감을 느꼈다고 하고, 임재범 1집 때 같은 녹음실에서 가수 데뷔 준비를 하던 이현우는 "내가 이래서 한국에서 가수를 할 수 있을까" 걱정하기도 했다고 한다. (엔하위키 참조) 그 외에도 김태원, 박정현, 유희열, 박효신 등 수많은 정상급 음악인들이 임재범의 보컬을 최고로 꼽았다. 김형석의 "나만 가수다" 발언은 절대 과장이 아니다.
특히 그의 보컬의 진면목은 헤비메틀에서 빛난다. 서양에서 시작되고, 널리 인기를 얻은 음악 조류인 헤비메틀에서 보컬은 신체 구조상 동아시아인이 하기 불리하다. 서양인들의 파워를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기 떄문이다. 하지만 임재범만큼은 예외다. 성량, 쇳소리(오버드라이브), 공격성에 있어서 임재범은 결코 서양의 정상 보컬들에 뒤지지 않는다. 헤비메틀 팬들은 임재범의 보컬을 평가하면서 꼭 데이빗 커버데일, 디오에는 '못 미치지만'이라는 평가를 넣는다. 하지만 이는 하드록-헤비메틀의 전성기를 열어젖힌 명 보컬들의 명성에 대한 지나친 경외감, 신비화 내지 오리엔탈리즘이라고 생각한다. 임재범은 적어도 보컬에 있어서만큼은 디오, 커버데일 못지 않은 최고의 보컬이라고 생각한다. 조금 과장해서 평가하자면 디오의 파워, 커버데일의 감성, 롭 핼포드(Rob Halford)의 다재다능함을 겸비했다고나 할까.
요즈음 임재범은 <나는 가수다>에 출연하면서, 폭발적인 가창력, 불운했던 과거, 아내의 투병 소식, 조울증에 시달리며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한 이야기들이 합쳐져 큰 화제를 만들어 내고 있다. 2004년에 최초의 단독 콘서트를 연 후로 다시금 잠적해서, 간간히 공연을 하는 것 외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기에, 그의 전면적인 "예능-가요 프로"출연은 큰 화제가 됐고, 임재범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딴지일보 총수 김어준은 임재범 신드롬을 '상처받은 짐승의 영웅서사'로 표현했는데, 정말 정확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임재범은 무대에만 서면 사자처럼 초원을 호령했지만, 금새 상처받고 돌아서서 은둔하기 일쑤였다. 보통 사람들로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한 아픈 개인사가 있기 때문일 터이다. 이번에는 펑크내지 않겠다고 공언했다가, 본의아니게 프로그램에서 하차하게 됐다. 그가 다시 돌아와서 가요계를 점령할지, 다시 자기만의 세계로 빠져들게 될런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최근에 모습을 보며 전자에 희망을 두고 있다.) 방송 후 한 편으로는 "역시 神이다." 다른 한 편으로는 "생각보다 별로다."라는 양극화된 반응이 나오고 있다. 그의 실력과 매력에 대한 판단은 개인의 취향에 달린 거지만, 중요한 건 지금 방송에서 보이고 있는 임재범의 모습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에 대해 별 근거 없이 신격화하거나 혹은 나이든 모습만 보고 폄하하기 전에 묻혀져 있던 그의 음악인생 전체를 조망하며, 그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초기에 영향을 받은 보컬리스트
임재범이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보컬리스트는 직접 언급하기로 두 명이 있다. 딥 퍼플(Deep Purple), 화이트 스네이크(White Snake)의 데이빗 커버데일(David Coverdale)과 레인보우(Rainbow), 블랙 새버스(Black Sabbath), 디오(Dio)의 故 로니 제임스 디오(Rhony James Dio)다. 임재범은 노래를 연습할 때 특정 보컬리스트들의 어떤 스킬을 보고 따라하는 식으로 노래 연습을 했다고 한다. 디오로 부터는 그 엄청난 육성의 파워를, 데이빗 커버데일로 부터는 노래를 '멋있게' 부르는 법을 염두에 두면서 따라불렀다고 한다. 항간에는 고음은 퀸스라이크(Queensryche)의 죠프 테이트(Geoff Tate)를 모델로 연습했다는 얘기도 있고, 마이클 쉥커 그룹(MSG), 레인보우(Rainbow), 임펠리테리(Impelliteri)의 그래험 보넷(Graham Bonnet)을 모델로 했다는 얘기도 있다. 어쨌든 가장 큰 영향을 받은 보컬은 디오와 데이빗 커버데일임은 확실하다. (2004년에 백제예술대학에서 하는 보컬 특강을 들었었는데, 그 때도 저 둘은 꼭 언급됐다.) 참고로 얼마전 <나는 가수다>에서 임재범의 대기실을 비춰줄 떄도 데이빗 커버데일의 Mistreated가 흘러 나오고 있었다. 소울풀한 보컬 스타일을 지닌 커버데일을 통해 노래를 배웠기 때문에 메틀 시절에도 소울풀한 발라드를 곧잘 불렀고, 나중에 솔로로 전향했을 때 최고의 소울 보컬을 보여줄 수 있었다. 나중에 또 이야기 나오겠지만, 임재범은 타고난 재능도 압도적이지만, 지독한 연습벌레이기도 하다. 그는 가수가 노래에 신경쓰지 않고, 겉멋만 들어서 돌아다니는 걸 가장 싫어했다. 인터넷에 떠돌아 다니는 락스타 명언 모음집에 그가 했다는 "폼 잡을 시간이 있거든, 연습이나 더 해라." 라는 말도 돌아다니고 있지 않은가.
커버데일과 디오가 누구인지 궁금하실 분들을 위하여 위에서 언급한 Deep Purple - Mistreated (커버데일)과 Rainbow - Kill the King을 띄워놓는다. 미스트리티드에서 메인보컬이 커버데일이고 베이스와 초고음 샤우팅을 담당하는 이는 글랜 휴즈(Glenn Hughes)다.
초창기 헤비메틀 시절
시나위 1집 (86)
01 크게 라디오를 켜고
02 그대앞에 난 촛불이여라
03 남사당패
04 젊음의 록큰롤
05 잃어버린 환상
06 아틸란티스의 꿈
07 1월(January)
08 하루해 마냥 떠가고
기타 : 신대철 보컬 : 임재범 베이스 : 박영배 키보드 : 김형준 드럼 : 강종수
시나위의 1집인 Heavy Metal Sinawe는 국내 최초의 헤비메틀 음반으로 알려져있다. 하드록에서 헤비메틀로 넘어오는 경계선에 서있는 그룹들은 몇 있었지만, 스스로를 헤비메틀로 표방하고 앨범을 낸 이들은 시나위가 최초였다. 그 파급력이 더 컸던 것이 국내 록의 대부의 신중현의 아들이자, 언더그라운드에서 기타의 神으로 통했던 신대철의 데뷔앨범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현재 신대철, 김도균과 함께 3대 기타리스트라 불리는 부활의 김태원도 시나위 신대철의 실력과, 배경에 주눅들었었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당시 헤비메틀은 국내에 제대로 소개되지 않았었다. 따라서 엔지니어링 기사, 녹음장비 등 물질적 조건과, 언더그라운드 헤비 메틀 씬의 숙성 등 모든 조건이 제대로 되어 있을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대한민국 대중음악사에 길이 기억될 만한 멋진 앨범을 만들어냈다.
임재범은 신대철과 고등학교 동기였다. 임재범은 62년 생으로 올해로 나이가 딱 50이라고 한다. 하지만 널리 알려져있듯 불운했던 과거로 인해서, 호적등록이 늦게 됐고, 학교도 늦게 간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67년 2월 생인 신대철과 같이 학교를 다니게 됐다. 음악이 하고 싶었던 임재범은 기타를 사서 연습을 했지만, 연주가 마음대로 되지가 않았다. 그마저 아버지가 부셔버려서 노래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어느날 그는 시나위가 보컬을 구한다는 얘기를 듣고 시나위 연습실에 가서 슬쩍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당시 보컬리스트가 이병문이었는데, 녹음까지 했었지만 탈퇴를 하게되서 보컬 자리가 공석이었다.) 다들 그의 엄청난 목소리에 놀랐고, 의기기투합해서 앨범 작업을 시작하게 됐다고 한다. 신대철의 집에서 머물면서, 연습실 청소도 해가며 연습했는데, 신대철의 아버지인 신중현이 가끔와서 연습을 봐주었다고 한다. 임재범은 신중현이 키는 조그마하지만 카리스마가 있어서 매우 무서웠다고 술회한다한다.
앨범은 전체적으로 당시에 유행하던 향락적인 느낌이 나는 LA 메틀(ex) 머틀리 크루) 혹은 대중적 멜로디를 중심으로 하는 팝 메틀(본조비)가 아닌 정통 헤비메틀이었다. 헤비메틀 앤썸이 된 "크게 라디오를 켜고"가 첫 트랙이고 큰 인기를 끌었던 메틀 발라드 "그대 앞에 난 촛불이어라"(IZM 특집에서 김태원이 이 노래를 듣고 깜짝 놀랐다며 인생 최고의 명곡 top 15에 선정하며 임재범을 한국의 데이빗 커버데일이라고 불렀다.), 판테라(Pantera) 필립 안젤모를 연상케 할 만한 육중한 파워와 공격성을 드러내는 "남사당패"와 같은 노래들이 인상적이다. 이 때의 임재범은 음정이 살짝 불안했고(이건 애초에 저음의 목소리를 가진 이들이 보컬 인생 초반에, 그리고 나이 들어서 전성기를 지났을 때 겪을 수 밖에 없는 숙명인 것 같다. 그래서 요즘 임재범이 가성이나, 두성으로 넘어가기 전 육성으로 낼 수 있는 최고음역대에서 음이탈이 잦아지고 있다.), 두성을 이용한 초고음을 내고 있지 않다. 트레이드 마크라고 할 수 있는 육성 최고음역대와 가성을 자연스럽게 넘나드는 창법도 잘 보이지 않는다. 이 떄의 주무기는 중음역대의 무지막지한 파워였다. 그걸 가장 잘 드러내는 노래가 바로 남사당패니 한 번 듣고 지나가자. 신해철은 고스트 스테이션 명창열전을 진행하면서 그 임재범도 이런 시절이 있었다며 이 노래를 소개했다. 덧붙여서 '공익' 임재범이 가발을 쓰고 나오는 "젊음의 록큰롤" 뮤직 비디오도 감상하자. 하하하. 그 당시에도 뮤직비디오가 있었나 보다.
외인부대 1집 (1988년)
1. 도시의 비밀
2. 방랑자
3. Another Life
4. 환상의 록큰롤
5. Julie
6. Jump On The Top
7. Rockin' Desire
8. 아름다운 그대
기타 : 손무현, 이지웅 드럼 : 손경호 베이스 : 박문일 보컬 : 임재범
임재범은 시나위 활동을 하다가 공익 문제 때문인지, 임재범 보다 샤우팅 하는 보컬을 원했던 신대철의 의지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신대철이 그의 방랑벽에 지쳤기 떄문이었는지 결국 임재범은 시나위를 탈퇴하게 된다. 1987년 부활의 콘서트 장에서 평소 김태원과 사이가 좋지 않던 부활의 기타리스트 이지웅과 임재범이 의기투합했다고 한다. 부활에 있었던 이지웅과 시나위의 임재범, 다섯손가락 출신의 베이스 박문일과, 드러머 손경호 그리고 현재(특히 90년대에) 세션과 작곡가로 잘 나갔던 20세 약관의 나이의 손무현이 뭉쳐서 만든 그룹이다. 쟁쟁한 그룹들에서 활동하던 멤버들이 헤쳐모였기 떄문에 그룹 이름은 외인부대가 되었다. 사실 앨범 자체가 주옥같은 곡들을 담고 있는 건 아닌데, 초고음을 장착한 임재범 완전체가 탄생했다는데 앨범의 의의가 있다 하겠다. 신해철의 표현에 따르면 전사가 공격마법도 익히고, 회복도 하고 그러는 사기 캐릭터가 된 시점이라 할 수 있다. 레코딩 상태는 시나위 1집 때 보다 훨씬 깔끔하다. 곡은 완전체 임재범을 보여주기 위해 '방랑자'를 골랐는데 시나위 시절 보다 평균음이 훨씬 높이 올라갔다는 걸 알 수 있다. 지금도 어떻게 내는지 신기한 중고음 샤우팅과 초고음 샤우팅이 마구 난무한다. 초고음을 익힌 뒤로 임재범은 샤우팅을 과도하게 사용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곡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시나위 시절의 중음역대의 육중함과 샤우팅을 좀 조절을 했으면 더 좋았을텐데 안타깝다. 록 발라드 Julie는 올타임 베스트 발라드라고 생각되어서 첨부했다. 2004년 콘서트 실황인 라이브 앨범에선 "아마 1988년으로 기억합니다. "라면서 시작하는데 별 의미 없이 툭 던진 말인데 왠지 멋있다.
Project : Rock in Korea (1989년)
1. 멈추지 않는 강
2. Rock in Korea
3. Paradise
4. All Because of You
5. The Same Old Story
6. 허상
7. 기억날 그 날이 와도
8. 미로
기타 : 김도균, 이중산, 오태호, 손무현 베이스 : 강기영(달파란) 드럼 : 손경호, 이병일 보컬 : 임재범, 김종서, 김성헌
87년 백두산의 해외 진출을 염두에 둔 2집 앨범이 영어 앨범이라는 이유로 방송 및 공연 금지 판정을 받는다. 유현상은 일본으로 가서 매니지먼트를 배워와 소위 일본식 아이돌 육성의 시초가 됐고, 김도균은 영국으로 유학을 떠난다. 그에 더해 김태원이 대마초로 구속되고, 이듬해 부활은 이승철의 탈퇴로 공중분해된다. 군사정권은 정권의 정당성 문제를 덮기 위해 락뮤지션을 사회를 교란시키는 일탈분자로 몰아서 대대적인 대마초 수사를 벌이는 등 활동을 방해했다. 이러한 당국의 헤비메틀 뮤지션 탄압은 훗날 임재범의 솔로 전향의 이유 중 하나가 된다. 설상가상으로 88년 발매한 시나위의 3집 <Free Man>은 저조한 판매고를 보인다. 헤비메틀의 시대가 저물어만 가고 있었던 것이다. (http://blog.daum.net/goorabrain/470 참조)
이 때 영국에서 돌아온 명실상부 당대의 최고 헤비메틀 기타리스트인 김도균, 당대최고의 보컬리스트인 임재범, 김종서, 김성헌 미 8군에서 공연하며 전설적인 기타리스트로 널리알려졌지만, 레코딩에는 그 모습을 보이지 않았었던 이중산, 이승환과 함께 이오공감을 결성하고 후에 인기 작곡가로 이름을 날리게 될 오태호 등등이 모여서 마지막으로 헤비메틀의 불꽃을 불태운 올 스타 프로젝트 앨범이다.
84년 한 라이브 클럽에서 종업원 겸 주방장으로 일하던 임재범은 기타리스트 김도균의 연주가 마음에 들어 그에게 무대에 한 번 같이 서자고 제안했다. 김도균은 무슨 노래 할 줄 아는 거 있냐고 물었고, 임재범은 Deep Purple(노래 : 데이빗 커버데일)의 솔저 오브 포춘 Soldier of Fortune을 불렀다고 한다. 당시 자신의 보컬에 대한 자부심이 넘쳤던 그는 당연히 김도균이 오케이를 할 줄 알았다고 한다. 근데 김도균은 "야 너 그딴식으로 노래 할 거면 다신 노래 하지 마라." 라고 퇴짜를 놓았다고 한다. 임재범은 당황했지만, 반드시 김도균이 자신을 인정하게 만든다는 일념하에 다시 마음을 고쳐먹고 연습에 들어갔다. 그는 먼저 데이빗 커버데일의 원곡을 끊임없이 들으며, 틈나는 대로 카세트 테이프에 솔저 오브 포춘을 녹음하고, 녹음된 노래를 들으며 무슨 문제인지를 파악하고, 다시 부르기를 반복했다고 한다. 그 때 솔져 오브 포춘을 2천번을 불렀다나. 그 뒤 6개월 후 김도균을 다시 만났으나, 김도균은 또 한 번 팀 결성 제의를 거절했다고 한다. (내 기억으로는 처음 노래 부르고 퇴짜 맞고, 6개월 뒤 오케이 하고 락 인 코리아 작업에 들어갔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아무래도 신문 기사가 맞으려니 한다. http://cafe306.daum.net/_c21_/album_viewer?grpid=39E&fldid=Eak&dataid=1002&mgrpid=&url=http%3A//pds8.cafe.daum.net/download.php%3Fgrpid%3D39E%26fldid%3DEak%26dataid%3D1002%26fileid%3D1%26regdt%3D20050120150624%26disk%3D11%26grpcode%3Df1r1e1e1%26dncnt%3DN%26.jpg&title=viewer) 아무튼 그 때의 노래 연습이 자산이 되어 임재범은 시나위, 외인부대 등의 활동을 거쳤고 영국에서 돌아온 김도균과 의기 투합해 Rock in Korea 앨범에 참여하게 된다.
콤비는 Rock in Korea와 The Same Old Story 두 곡을 만들어냈는데 아마도 이 게 두 사람 모두에게 커리어의 정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Rock in Korea는 호쾌한 정통 헤비메틀이다. 시나위와 솔로 시절의 임재범만 알다가 처음 듣고 진짜 걍악했던 기억이 있다. 한국에 이 정도 수준의 헤비메틀, 이 정도 수준의 보컬리스트가 있었다니! The Same Old Story는 Stairway to Heaven을 연상시키는 구조로 초반에 어쿠스틱 기타와 함께 블루스 같은 느낌으로 가다가 후반에 폭발한다. The Same Old Story는 한국 메틀 역사상 최고의 명곡으로 불리며 락 매니아들로 부터 높은 평가를 받는다. 둘다 듣고 가자. Rock in Korea는 훗날 참여 뮤지션들이 모두 솔로 가수로 대박을 터뜨리니까, 레코드사가 상업욕에 물들어 내놓은 리믹스 판에 실린 버전인데... 그냥 인트로에 헬리콥터 소리와 관중들 박수소리를 합성한 수준이다.
Asiana - Out on the Street - 1990년
1. Breaking Out (4:25)
2. Struggle (4:25)
3. Tom Kat (5:15)
4. Paradom (5:32)
5. Out On The Street (4:10)
6. Missing You (4:45)
7. Asiana (6:00)
8. Dancing All Alone (4:37)
기타 : 김도균 보컬 : 임재범 베이스 : 김영진 드럼 : 유상원
<락인코리아>에서 호흡을 맞춘 김도균과 임재범은 본토를 공략하겠다는 일념으로 영국에 진출한다. 영국에서 외국인 멤버를 영입해 4인조 그룹 '사랑'을 결성해 백두산, 외인부대 시절의 노래를 중심으로 클럽 등지에서 활동을 했다고 한다. 이 때 BBC에 출연하기도 하는 등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으나, 외국활동의 어려움을 절감하고 국내에 돌아와서 Asiana(아시아나)를 결성하게된다. 밴드명은 아시아의 자존심을 보여주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여담이지만 임재범은 영국 생활 6개월 만에 생활영어를 마스터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영국생활을 하면서 너무 배가 고팠는데, 김도균이 이상한 음식을 만들어줘서 곤욕을 치루기도 했다고 하고, 한국 음식이 너무 먹고 싶어서 조금 정체를 알 수 없는 한국인 종교단체에 가서 밥을 얻어먹기도 했다고 한다. 종교 단체 측에서 가입하실 거냐고 끈덕지게 물어봤지만, 일단 밥 한 그릇 먹고 나서 생각해보겠다고 하고, 배터지게 먹은 뒤에 빠져나왔다고.. 참고로 임재범은 영어 발음이 굉장히 좋은 걸로 정평이 나 있는데, 아마 듣는 귀가 좋아서 그런게 아닐까 싶다. <위대한 탄생>의 셰인도 썡판 모르는 한국 땅에 와서 노래 부르는데 그정도면 발음이 참 훌륭하다고 생각하는데, 이 역시 귀가 좋아서 그런 것으로 보인다. 음악인으로서 뛰어난 재능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한국으로 돌아온 뒤 김도균은 과거 이태원에서 (임재범이 김도균에게 까인 그 시점, 그 클럽에서) 솔로몬으로 함꼐 활동하던 (시나위, 작은 하늘, 카리스마를 거친) 김영진과 유상원을 불러들여서 아시아나를 결성했다. 녹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앨범을 영국 Matrix 스튜디오에서 녹음하기도 하는 등 심혈을 기울여서 최고의 앨범을 만들려고 노력한다. 가사를 대부분 영어로 한 것도 부분적으로세계 진출을 염두에 뒀기 떄문이었다. (헤비메틀을 한국말로 부르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 가장 큰 이유인 것 같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결과물은 Rock in Korea에 비해서 썩 좋지 못했다. 임재범은 지나치게 샤우팅을 남발했고, 인상적인 곡도 그리 많지 않다. 가장 인상적인 곡은 셀프타이틀인 Asiana아 미발표곡인 Soldier's Came다. Soldier's Came은 반전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곡인데, 심사위원회에서 군화발 소리를 듣자마자 이거 5.18 얘기 아니냐며 음반 수록을 불허했다고 한다. 아시아나는 (말 그대로 탈아시아적 실력을 가진 일본 출신 밴드로 서양 헤비메틀 계의 신성한 충격을 가져다 준) 라우드니스의 내한 공연 떄 오프닝 공연을 맡았는데, 당시 몇몇 관계자들로 부터 메인밴드보다 더 낫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엄청난 라이브 무대를 보여줬다고 한다. (라우드니스의 전설적인 기타리스트 아키라 다카사키도 임재범을 보고 '아시아에 이런 보컬이 있었다니!' 라며 충격을 받았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하지만, 한국의 척박한 음악씬 떄문에 메틀밴드로서 활동을 계속 이어나가기가 어려웠고, 경제적 문제 등이 겹쳐져 팀은 해산하게 된다. 김도균은 다시 3인조로 백두산을 재결성하고, 임재범은 솔로 앨범을 계약하게 된다. 계약 조건 중에 아시아나 활동 등을 병행하게 해주겠다는 조건을 내걸기도 했다는데, 임재범은 그것이 오히려 더 헤비메틀 계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해 거절하고 하나만 열심히 하겠다며 솔로 활동에 나서게 된다. 80년대 헤비메틀 기수들 모두에게 다 그랬겠지만, 특히 임재범에게는 헤비메틀이 거의 종교에 가까운 귀속과 애착의 대상이었음을 알 수 있다.
들어볼 곡은 금지된 명곡인 Soldier's Came이다. 초반엔 어쿠스틱 반주에 약간 몽환적인 느낌의 보컬로 가다가 후반에 폭발하는 The Same Old Story와 약간 비슷한 구존데, 키보드도 넣어서 좀 더 웅장한 느낌을 강조하고 있다. 임재범의 샤우팅의 끝을 여기서 맛볼 수 있다.
솔로 전향 이후
임재범은 메틀 뮤지션들의 목을 조르며 자유를 질식시키는 국내의 척박한 음악환경에 환멸을 느끼며 솔로로 전향한다. 그는 헤비메틀 음악을 하던 동료들에게 미안함을 느꼈으며, 스스로도 정말 많이 괴로웠지만, 결국 스스로가 선택한 일이기 떄문에 해보겠다며 마이클 볼튼 같은 음악을 해보겠다고 대중가요계에 도전장을 던진다.
솔로 1집 On the Turning Away (1991년)
1 너의 곁에서
2 이밤이 지나면
3 사진속에 담긴 추억
4 BEING WITHOUT YOU
5 다시 사랑할 수 있는데
6 이제 우리
7 LET ME LIVE MY LIFE
8 JULIE
헤비메틀 음악을 사랑하던 이들에게는 열받는 일이겠지만, 어쨌든 나는 개인적으로 외인부대, 아시아나 앨범 보다는 이 앨범이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그냥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성인 취향의 곡들이 있고, 무작정 질러대기만 했던 외인부대 이후의 노래보다도 솔로 전향 후의 노래가 훨씬 듣기 좋다. 임재범은 자신이 너무 오만했었다고 술회했었는데, 너무 독보적인 (기술적인 면의) 노래 실력 때문에 매너리즘에 빠져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는 당시 가왕으로 군림하던 김현식을 봐도 고개를 까딱하는 정도로 매우 건방졌다고 한다.
이 앨범에서는 후에 '사랑보다 깊은 상처', '너를 위해'와 같은 히트 넘버를 만들어 준 신재홍이 히트넘버 '이밤을 지나며'를 비롯한 몇몇 곡을 만들었다. 너의 곁에서, 이밤이 지나면, 사진 속에 담긴 추억, 다시 사랑할 수 있는데가 들을만 하다. 재녹음한 Julie는 좀 거세된 느낌이랄까, 외인부대시절의 것이 훨씬 낫다. 솔로 활동을 하던 임재범은 헤비메틀을 배신했다는 중압감에 시달리던 중, 불미스러운 사건 까지 터지면서 이게 뭐하는 일이냐 싶어 산 속으로 들어가고 한참 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산 속에 들어가서 살면서 지금까지 남 흉내내기에 급급했던 자신을 반성하고, 다른 이들과의 공존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며, 인간으로서 외로움을 겪으며 영혼을 달래려고 각종 종교에 심취해지내기도 했다고 한다. 그저 음악 외적인 요소를 통해 뜨려고 하는 대중가요계가 못마땅해서 노래에 전념하기 위해 산에서 맹렬히 연습하기도 했다고도 한다. 무림고수의 비밀 수련의 성과물인지 2집, 3집에서 그의 보컬은 훨씬 숙성되어 나온다. 이 때 이후부터는 정말 단지 자신의 기술적 역량을 뽐내는 게 아니라, 음을 하나하나 느끼며 그 속에서 자유자재로 소리로 유영을 하는 느낌이다.
이밤이 지나면의 라이브 버전과 롤 모델로 했던 마이클 볼튼의 How am I supposed to live without you의 라이브를 들어보자. 후자는 국내 소울계에서 최고의 보컬리스트로 손꼽히는 '고모' 임희숙과 듀엣으로 했다. 역시 노래는 절반 이상은 생물학적으로 타고나야 한다는 교훈을 준달까... 들어보면 아시겠지만 마이클 볼튼 보다 음역이 조금 낮고, 중저음대가 훨씬 두텁고 거칠다. 다음까페 <임재범을 알아야 락을 알지>나 검색 서비스 잘 뒤져서 찾아보면 그가 부른 Rain, Sorry seems to be the hardest world 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정말 죽음이다. 꼭 들으시라.
Desire to Fly (1997)
01. 비상
02. 그대는 어디에
03. 사랑보다 깊은 상처
04. 그대... 내게 와
05. 또 다른 날을 위해
06. 추락
07. 궤변... (광란의 축제)
08. Wish
09. 최선의 고백
10. 아름다운 오해
1997년 임재범은 6년간의 공백을 깨고 느닷없이 2집을 발표했다. 1집에서 히트곡들을 만들어준 신재홍이 후일 CF에 실리고, 박정현에 의해서 듀엣으로 녹음되는 '사랑보다 깊은 상처'를 비롯한 몇 곡을 줬다. 그리고 나머지는 한국 대중 음악 역사상 가장 훌륭했던 그룹으로 꼽히는 U & Me Blue의 멤버이자 요즘에는 영화음악 OST 작업을 주로하고 있는 방준석(이인)과 함꼐 공동 작업을 했다. 아마 임재범 솔로 앨범 중에서 가장 잘 다듬어진 완성도 높은 앨범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몇 곡만 빼면 거의 전곡이 고루 들을만 하다. 당시 한국에 와서 가수 준비를 하며 고시원에서 찌는 여름을 보내며 외로워하던 박정현이 여름내내 끊임없이 반복해서 들은 앨범이 이 앨범이라고 한다. 그는 특히 비상을 최고의 '친구'로 꼽는다. 이 최고의 보컬리스트에 반해 고해에서 코러스를 담당하기도 하고 나중에 '사랑보다 싶은 상처'에 자기 목소리를 입혀 듀엣 형식으로 앨범에 수록하고, 나중에 수요 예술 무대에서 '사랑보다 깊은 상처' 듀엣도 한 번 한다.
그대는 어디에에 얽힌 사연도 재밌는데, 앨범을 완성해서 녹음하려는데 임재범 스타일의 노래가 너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 자리에서 임재범이 즉석에서 곡을 만들어내었고, 재즈 피아니스트 김광민이 녹음하러 왔다가 그걸 듣고 자진해서 피아노 연주, 편곡을 해주었다고 한다. 테크닉 적으로 임재범 노래 중에서 가장 어려운 노래이기도 하지만, 노래 자체에 담겨 있는 soul이 정말 엄청난 명곡이다. '비상' 또한 빼놓을 수 없는데, 세상에 나와서 당당하게 활동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하고 있는데, 자뭇 감동적이기는 하나, 사실 이 놈의 의지는 너무 자주 표명하시고, 또 뜻대로 안되시는지라 ^^;;;
수요예술무대에서 그대는 어디에 라이브와, 1999년 엠넷에서의 비상 라이브를 골랐다. 여담이지만 임재범은 이현우와 1집 때의 인연으로 나름대로 친한 사이고, 김광민과도 이렇게 인연이 있는 사이라 방송 출연을 거의 안 하는 도중에도 가끔씩 수요예술무대는 출연해왔다. 김광민, 이현우 덕에 우리가 임재범 절정기의 영상을 그나마라도 감상할 수 있게 된 셈이다. 다들 알겠지만, 찾아보면 박정현과의 "사랑보다 깊은 상처"듀엣도 있다.
Return to The Rock (1998)
1. Intro (고해)
2. 고해
3. Myth
4. Blue
5. Atlantis
6. Exodus
7. War And Order ("진혼" English Ver.)
8. 또다른 만남의 시간
9. Adam
10. Alcohol
11. Mu
12. 진혼
1999년 임재범은 오랜 메틀 팬들의 염원에 보답이라도 하는 듯 갑자기 메틀 앨범을 들고 나온다. 과거의 무작정 달리고. 내지르던 정통 헤비메틀은 아니고 조금 난해한 앨범이었다. 임재범은 단독으로 곡을 만들기보다는 공동 작업을 즐기는데 이번의 파트너는 캡틴퓨처로 활동하던 송재준이었다. 옛날에 밴드로 하던 메틀 사운드보다 훨씬 힘을 많이 줬다. 과거 메틀 시절의 쉼 없는 샤우팅은 자제하고 보컬은 중음역 대의 파워가 강조한다, 기타 리프 역시 과거보다 훨씬 육중하다. Atlantis 같은 곡은 오리엔탈 풍의 사운드도 많이 가미했는데, 어디서 잘 들어보지 못하는 실험적 스타일의 곡인 것 같다. Exodus와 Mu 같은 넘버들은 진짜 엄청나게 헤비하다. 세션으로 참여 한 토미 킴의 기타도 한 몫한다. (그렇다. 토미 킴은 바로 얼마 전 나는 가수다에서 빈 잔의 기타를 담당한 인물이다.)
이 앨범에서 아무래도 가장 유명한 곡은 처절한 발라드 '고해'인데 임재범 식 보컬의 극치를 보여주는 곡이 아닌가 싶다. 임재범 이전 이후 그 누구도 이런 식으로 노래부르지는 못할 것 같다. (그러니까 노래방에서 부르지 말라고!) 특히, 중간에 애드립 부분이 특히나 훌륭하고, 박정현의 코러스도 일품이다. 나중에 베스트 형식의 편곡앨범인 메모리즈에서 다시 부르는데.. 원곡 버전이 훨씬 더 처절해서 개인적으로는 원곡을 더 선호한다. (그 버전은 유희열 편곡이다. 여담이지만 유희열은 임재범 처럼 노래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부르는 이가 없다며, 앨범을 작업할 때 항상 그를 염두에 두고 작업을 한다고 한 인터뷰에서 밝혔다. 언젠가 두 사람의 협업을 기대해봐도 좋지 않을까?) 요즘 라이브에서 고해를 부르면 많이 힘겨워하는 것 같은데, 전성기 때 왜 활동을 안 했는지 정말 아쉬울 따름이다.
참고로 이즈음에 임재범은 박진영과 듀엣 곡('재회')을 하나 부르게 된다. 고해 만큼은 아니지만, 그의 파워가 유감없이 발휘된 처절한 발라드 넘버다. 작곡자 박진영과 편곡자 김형석이 둘다 임재범의 노래를 너무 좋아해서 참여를 부탁했다고 한다. (박진영이 산 속 깊은 곳 까지 임재범을 모시러 갔다는 얘기가 있다.) 영상을 못찾겠는데, 찾아서 한 번 들어보길 바란다. 두 보컬의 역량 차이가 워낙 커서 좀 미스매치 느낌인데, 임재범의 절창이 모든 걸 커버한다. 이거 하나 들을라고 그렇게 싫어하는 박진영의 5집을 구입하기도 했었다..
개인적 판단이지만, 이 앨범을 끝으로 임재범의 무지막지한 파워는 조금씩 쇠퇴하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원 없이 메틀을 하고 싶어서 이런 앨범을 낸 건 아닐까, 그냥 혼자 상상해본다. 들을 노래는 Exodus다. 고해는 다들 워낙 잘 알테니 그냥 생략한다.
4집 - Story of two years (2000)
1. 너를 위해
2. 다시 시작해
3. 아직도 사랑할 뿐인데
4. You're So Beautiful
5. To me
6. 거인의 잠
7. Three Times a Lady
8. 더 늦기전에
9. Reason's To One
10. 너를 위해(MR)
3집 이후 2년 간의 이야기를 담았다는 뜻에서 2년간의 이야기로 앨범 타이틀이 정해진듯 하다. 그러고보면 활동을 안해서 그렇지 2집 이후로는 재녹음-베스트 앨범인 Memories... 까지 포함해서 앨범은 꼬박꼬박 냈던 셈이다. (사실 임재범의 활동의 부족만 문제 삼을 경우 장필순, 들국화-전인권, 사랑과 평화, 한대수, 김도균 등등 7~80년대 풍미하던 언더그라운드 가수들의 단절적인 활동이 잊혀지게 된다. 임재범은 여러가지 개인적인 이유로 자주 음반을 내지는 않았지만, 척박한 대중문화-음악인 수익구조 환경 속에서 특유의 '대중성'으로 인해 다른 뮤지션들보다 음악을 발표할 기회가 더 많이 주어졌다고 봐야한다.) 4집은 그 어느 때 보다 그냥 대중가요의 느낌이 강하고, 창법도 한층 힘을 뺐다. 임재범의 히트 메이커인 신재홍이 곡들을 주로 담당했는데, 여기서 너를 위해가 영화 '동감'에 삽입되면서 그야말로 메가 히트를 쳤다. 요즘은 없어서 못판다지?
재밌는 건 '너를위해'는 원래 그룹 소호대 출신인 에스더의 '송애送愛'라는 노래였는데, 별로 빛을 못 보고 있다가 비슷한 테마에 가사만 손봐서 임재범이 불렀다. 모던락 풍의 '거인의 잠'이 팬들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이고, 나머지는 비교적 평범한 발라드들이다. 팝송 커버가 두 곡 들어가있는데, 소위 원곡자들 보다 더 뛰어난 커버(cover)곡들이다. 나중에 서영은이 박정현을 벤치 마킹해서 '아직도 사랑할 뿐인데'를 듀엣 버전으로 재녹음 하기도 했다. 녹음을 하다가 도중에 임재범이 잠적해버려서, 너를 위해의 MR 버전을 포함해 10곡을 급히 맞춰서 앨범을 냈다는 뒷 얘기가 있다. '거인의 잠'이 검색에 안 잡혀서, 그냥 '너를 위해' 동감 MV를 띄운다. 이 영화를 통해 김하늘과 유지태가 톱스타로 부상했고, 임재범도 자신을 잘 모를 젊은 청중들에게 존재감을 과시했고. 새로이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고해가 여성들이 노래방에서 제일 듣기 싫은 노래 1순위가 되기 시작한 시점도 아마 이 때 이후일 것이다.
Memories... (2003)
1-1 다시 사랑할 수 있는데 2-1 사진 속에 담긴 추억
1-2 너를 위해 2-2 추락
1-3 그대 앞에 난 촛불이여라 2-3 거인의 잠
1-4 너의 곁에서 2-4 사랑보다 깊은 상처
1-5 아름다운 오해 2-5 Reason's To One
1-6 Julie 2-6 아직도 사랑할 뿐인데
1-7 최선의 고백 2-7 그대는 어디에
1-8 비상 2-8 Have I Told You Lately
1-9 The Same Old Story
1-10 고해
아마 가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온 History '86'00 에 대응하기 위해서 새 기획사에서 낸 게 아닌가 싶다. 기존의 곡들을 새로이 편곡해서 임재범이 다시 불렀다. 예전의 스타일보다 한층 힘을 빼고 불러서 기존 메틀 시절 부터의 매니아들은 불만족스러워하는 것 같다. 고해는 유희열이 대성당 미사 풍으로 편곡했는데, 3집에 실린 원곡의 처절함이 부담스러웠던 이들(특히 여성들)에게는 오히려 더 어필하는 면도 있는 것 같다. 로드 슈튜어트(Rod Stewart)의 커버인 Have I Told You 커버 버전이 매우 훌륭하다. 단, 기타톤이 조금 경박한 느낌이 있다. 참고로 김현식 헌정앨범에서 '비처럼 음악처럼', 이영훈 헌정앨범에서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도 불렀는데, 이 노래들 역시 두말할 나위 없이 훌륭하다.
Coexistence (공존) (2004)
1 살아야지
2 백만번째 환생
3 安 (안)
4 安 (안) - Epilougue
5 아낌없이 주는 나무
6 총을 내려라
7 새장을 열다
8 Sixth Chapter
9 Key
10 사람과 사람들
11 SeaSide
12 살아야지 - Piano Version
2001년 결혼하고, 아버지와 화해하고, 이듬해에 딸 까지 나온 임재범의 심경 변화가 묻어있는 앨범이다. 그 누구와도 화해하지 못하고, 홀로 방랑을 하며 살아갔던 과거를 접고 안식처를 찾았고, 안식처를 바탕으로 다시 한 번 세상에 나가보겠다는 의지를 내보이고 있다. 하지만 앨범 전체의 분위기는 좀 쓸쓸하다. 이 앨범에서 임재범이 가장 아끼는 곡들인 'Seaside', '살아야지'가 이를 정확히 대변해주는 게 아닌가 싶다. 오래도록 조울증에 시달려왔다고 하는데, 당시도 좀 감정적으로 다운 된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 결국 임재범은 겨울에 예정되었던 앵콜 공연을 취소하고, 다시 잠적하게 된다. "이제 더이상 오랜 기다림은 없을 거"라더니..
전곡을 김정민, 조규찬 등과 함꼐 작업했었던 작곡가 최남욱과 작업했다고 한다. 하지만 대중성을 배려한 노래는 사실 많지 않고, 많은 부분 임재범이 하고 싶었던 음악을 풀어낸 느낌이다. 락 넘버들이 절반이고 발라드가 절반인데, 발라드도 '안' 정도를 제이하면 그다지 대중성에는 신경쓰지 않는 느낌이다. 데뷔 초부터 견지해왔던 평화사상과 생명존중 정신을 '총을 내려라', 'Sixth Chapter' 등의 락 넘버를 통해 다시 드러내고 있다. 락 넘버들 자체는 사실 그리 귀에 잘 들어오지는 않는데, 타미 킴의 기타 연주만은 발군이다.
노래는 수요예술무대에서 부른 '살아야지'다. 김광민이 피아노 연주로 가담했다. 이 당시 공연보러 갔었는데, 임재범이 무대에 오르기를 힘들어 해서 녹화가 상당히 지연됐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관객들이 떠나지 않고 끝까지 기다렸고, 결국 임재범은 무대에 올라 1시간여의 공연을 앵콜까지 모두 무사히 마쳤다. 다만, 지하철이 끊겨서 집에 돌아가기가 참 난감했던 기억이 있다...
이 외에 생애 첫 라이브 콘서트 실황을 담은 라이브 앨범 Live & Life도 있지만, 사실 여기서 임재범의 보컬은 조금은 실망스럽다. 당시 임재범이 하는 공연은 모두 찾아가서 봤었는데, 전설을 눈 앞에서 지켜본다는 감동은 있었지만, 당시 컨디션이 안 좋았는지, 아니면 내 기대감이 너무 컸는지 노래를 (앨범만큼) 썩 잘 부르지는 못했다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신체적 노화가 진행되다 보니 과거의 곡들에 중점적으로 포진해있던 육성 최고음 부분에서 힘이 많이 부치다 보니 그런게 아닌가 싶다. 육성최고음, 가성, 두성의 자연스러운 연결이 임재범 최고의 강점인데, 그 부분이 흐트러지기 때문에 보컬의 완성도가 많이 떨어져보인다. 그래서 락커들이 나이가 들면 중고음 부분을 확 줄이고, 중저음에서의 파워와, 하이라이트 부분에서 지르는 초고음 샤우팅을 배합해서 드라마틱한 효과를 내는 곡들을 만들어내는데 <나가수>에서 '빈잔'이 그 전형이었다. 요즈음 드라마 OST로 내놓은 '낙인'이나 '독종'도 그런 연장선에서 음역대를 많이 낮추고, 보다 편안한 창법으로 부르는 것일 게다. 그리고 이 곡들에서 임재범의 보컬은 나이에 걸맞는 새로운 매력을 뽐내고 있다.
마치며
임재범 음악인생 리뷰는 진작부터 쓰려고 벼르고 있었는데, 게으름 때문에 미뤄뒀었었다. 그러다가 어제 <나가수>에서 '여러분' 무대를 보고 더이상 미뤄둘 수 없겠다고 생각해서 어젯밤 내내 썼다. 어제 무대는 정말 내가 보고, 들은 임재범의 노래 중 가장 훌륭했다. 윤도현의 표현대로 임재범 인생의 드라마 한 편이 그 짧은 노래 속에 모두 들어가 있었다. 불우했던 가정사, 좋아하는 음악을 하지 못하게 만들었던 군사정권의 검열과 탄압, 노래를 부르고, 음악을 만들며 달랬던 평생 마음 털어놓을 친구 한 명 없었던 외로움, , 아내의 투병과, 그와 더불어 이제야 절실히 깨달은 부모, 남편으로서의 책임감, 끝까지 자신을 믿고 지지해줬던 팬들에 대한 감사, 뒤늦게 다시 느낀 노래부른다는 것의 행복감, 이 모든 것들이 6분 동안의 노래에 담겨 있었다. 특히, 마지막 애드립 부분에서는 진짜 그의 말대로 한 인간이 부르는 게 아니라, 뭔가 이 세계의 것이 아닌 다른 존재가 부르는 듯한 초월감마저 느껴졌다. 그리고 그 드라마는 지난 주말 수백만 시청자들의 가슴을 울렸다.
나는 오래도록 임재범의 팬이었지만 솔직히 2004년 이후로 그에 대해서 포기하고 있었다. 더이상 목소리는 예전같지 않았고, 새로 내놓는 곡들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가수다> 첫 무대 때만 해도, 마음 속 한 켠에서는, 마음 속에서의 멋진 모습 그대로 남겨두기 위해서 안나왔으면 하는 바람도 가졌었다. 그런데 임재범이 정말 달라졌다. 3집 이후로 아무 의욕 없어보였던 그가, 진짜 제대로 다시 음악을 해보고 싶어하는 눈빛을 드러냈다. '낙인', '독종'도 괜찮았지만, 무엇보다 <나는 가수다>에서 특유의 오리엔탈 사운드가 가미된 된 프로그레시브 록으로 풀어낸 '빈잔'이 그 시발점이었다. 심한 목감기로 인해 음이탈 현상이 많이 일어났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장기호가 말하는 단순한 가창력이 아닌 무언가 동물적인 감각, 야수성이 다시 돌아왔다. '여러분'은 결정타였다. 나는 방송이 끝나고 2시간 동안 아무 것도 못하고 멍하니 음원 서비스에서 '여러분'을 무한 반복해서 들었다. 그리고 한 1시간 쯤 더 듣다가 나서야 무언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임재범은 그 음악적 재능과 노래 실력에 걸맞지 않게 좋은 곡들을 많이 못 남겼다. (이를 달래기 위해 수 많은 종교에 심취하기도 했던) 불안한 영혼과 방랑벽, 그리고 하고 싶은 음악을 하지 못하게 국내의 척박한 음악환경이 그가 오래 지속되는 파트너십을 형성해 안정적인 기반에서 음악적 교류를 하지 못하게 만들었고, 그 결과 누적적으로 축적되는 완성도가 존재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한국 최고의 보컬리스트 답지 않게, - 김현식하면 - 3집, 4집, 5집 전인권 하면 - 들국화 1집, 추억 들국화, 전인권 1집 - 이렇게 당당히 내세울 수 있는 마스터피스가 부족하다. 특히, 98년 3집 이후로는 그냥 이대로 팔리는 노래나 부르면서 적당적당히 음악인생 끝나게 되는 거 아닌가하는 우려도 들었다.
하지만 그가 달라졌다. (앞으로 또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지만), 그 어느 때보다 그는 세상과 함께 존재(Coexistence)하고 있다. 솔로 전향 이후로 지금이 최고로 행복해보인다. 지금의 스피릿은 그 어느 때 보다 균형 잡히고 완숙해 보이면서도 야성은 그대로 살아있다. 지금 이대로라면 어쩌면 이제 그의 음악 인생 최고의 마스터피스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루 빨리 맹장염 수술 후유증을 이겨내고 음악 파트너를 만나서 새로 곡을 만들고, 앨범을 냈으면 한다. 임재범은 단지, 최고의 보컬리스트만이 아닌 최고의 아티스트로서 당당히 세상에 우뚝서야 한다. 이대로는 그의 재능이 너무 아깝다. 더이상 상처받은 사자가 아닌, 세월의 지혜를 깨달아 다른 동물들과도 공존할 줄 아는 늙은 사자로 꾸준히 활동해주길 바란다. 먼훗날 내가 외로울 때 임재범의 2011년 앨범이 큰 위로가 되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그의 개인적 행복과 영혼의 평안, 그리고 그의 부인 송남영 님의 쾌유를 빈다.
임재범은 두말할 것 없이 한국 최고의 보컬리스트다. 최고의 성량, 정확한 음정, 완벽한 발음, 무한한 파워, 가성과 진성을 구별이 가지 않게 넘나드는 테크닉, 끝이 안 보이는 고음, 특유의 쇳소리, 완벽한 곡 해석력, 풍부한 감정표현, 그리고 이 모든 걸로 결코 표현할 수 없는 그만의 느낌 꺼지. 보컬리스트로서 퍼펙트 + α 다. 아쉬운 게 딱 하나 있다면 별로 그루브감이 없다는 거 정도다. 지극히 주관적인 평가지만 정말 단순히 기술적 측면으로만 따지면 남성 보컬리스트로서 최고로 거론되는 조용필, 전인권, 김현식, 김건모, 이승철 등등도 임재범 앞에서는 모두 한 수 아래라고 생각한다. (물론, 아티스트로 따지면 좋은 곡과 앨범을 훨씬 많이 남긴 조용필, 전인권, 김현식이 임재범 보다 더 낫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이선희와 같은 최고의 가수도 임재범을 보면서 가수로서 좌절감을 느꼈다고 하고, 임재범 1집 때 같은 녹음실에서 가수 데뷔 준비를 하던 이현우는 "내가 이래서 한국에서 가수를 할 수 있을까" 걱정하기도 했다고 한다. (엔하위키 참조) 그 외에도 김태원, 박정현, 유희열, 박효신 등 수많은 정상급 음악인들이 임재범의 보컬을 최고로 꼽았다. 김형석의 "나만 가수다" 발언은 절대 과장이 아니다.
특히 그의 보컬의 진면목은 헤비메틀에서 빛난다. 서양에서 시작되고, 널리 인기를 얻은 음악 조류인 헤비메틀에서 보컬은 신체 구조상 동아시아인이 하기 불리하다. 서양인들의 파워를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기 떄문이다. 하지만 임재범만큼은 예외다. 성량, 쇳소리(오버드라이브), 공격성에 있어서 임재범은 결코 서양의 정상 보컬들에 뒤지지 않는다. 헤비메틀 팬들은 임재범의 보컬을 평가하면서 꼭 데이빗 커버데일, 디오에는 '못 미치지만'이라는 평가를 넣는다. 하지만 이는 하드록-헤비메틀의 전성기를 열어젖힌 명 보컬들의 명성에 대한 지나친 경외감, 신비화 내지 오리엔탈리즘이라고 생각한다. 임재범은 적어도 보컬에 있어서만큼은 디오, 커버데일 못지 않은 최고의 보컬이라고 생각한다. 조금 과장해서 평가하자면 디오의 파워, 커버데일의 감성, 롭 핼포드(Rob Halford)의 다재다능함을 겸비했다고나 할까.
요즈음 임재범은 <나는 가수다>에 출연하면서, 폭발적인 가창력, 불운했던 과거, 아내의 투병 소식, 조울증에 시달리며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한 이야기들이 합쳐져 큰 화제를 만들어 내고 있다. 2004년에 최초의 단독 콘서트를 연 후로 다시금 잠적해서, 간간히 공연을 하는 것 외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기에, 그의 전면적인 "예능-가요 프로"출연은 큰 화제가 됐고, 임재범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딴지일보 총수 김어준은 임재범 신드롬을 '상처받은 짐승의 영웅서사'로 표현했는데, 정말 정확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임재범은 무대에만 서면 사자처럼 초원을 호령했지만, 금새 상처받고 돌아서서 은둔하기 일쑤였다. 보통 사람들로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한 아픈 개인사가 있기 때문일 터이다. 이번에는 펑크내지 않겠다고 공언했다가, 본의아니게 프로그램에서 하차하게 됐다. 그가 다시 돌아와서 가요계를 점령할지, 다시 자기만의 세계로 빠져들게 될런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최근에 모습을 보며 전자에 희망을 두고 있다.) 방송 후 한 편으로는 "역시 神이다." 다른 한 편으로는 "생각보다 별로다."라는 양극화된 반응이 나오고 있다. 그의 실력과 매력에 대한 판단은 개인의 취향에 달린 거지만, 중요한 건 지금 방송에서 보이고 있는 임재범의 모습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에 대해 별 근거 없이 신격화하거나 혹은 나이든 모습만 보고 폄하하기 전에 묻혀져 있던 그의 음악인생 전체를 조망하며, 그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초기에 영향을 받은 보컬리스트
임재범이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보컬리스트는 직접 언급하기로 두 명이 있다. 딥 퍼플(Deep Purple), 화이트 스네이크(White Snake)의 데이빗 커버데일(David Coverdale)과 레인보우(Rainbow), 블랙 새버스(Black Sabbath), 디오(Dio)의 故 로니 제임스 디오(Rhony James Dio)다. 임재범은 노래를 연습할 때 특정 보컬리스트들의 어떤 스킬을 보고 따라하는 식으로 노래 연습을 했다고 한다. 디오로 부터는 그 엄청난 육성의 파워를, 데이빗 커버데일로 부터는 노래를 '멋있게' 부르는 법을 염두에 두면서 따라불렀다고 한다. 항간에는 고음은 퀸스라이크(Queensryche)의 죠프 테이트(Geoff Tate)를 모델로 연습했다는 얘기도 있고, 마이클 쉥커 그룹(MSG), 레인보우(Rainbow), 임펠리테리(Impelliteri)의 그래험 보넷(Graham Bonnet)을 모델로 했다는 얘기도 있다. 어쨌든 가장 큰 영향을 받은 보컬은 디오와 데이빗 커버데일임은 확실하다. (2004년에 백제예술대학에서 하는 보컬 특강을 들었었는데, 그 때도 저 둘은 꼭 언급됐다.) 참고로 얼마전 <나는 가수다>에서 임재범의 대기실을 비춰줄 떄도 데이빗 커버데일의 Mistreated가 흘러 나오고 있었다. 소울풀한 보컬 스타일을 지닌 커버데일을 통해 노래를 배웠기 때문에 메틀 시절에도 소울풀한 발라드를 곧잘 불렀고, 나중에 솔로로 전향했을 때 최고의 소울 보컬을 보여줄 수 있었다. 나중에 또 이야기 나오겠지만, 임재범은 타고난 재능도 압도적이지만, 지독한 연습벌레이기도 하다. 그는 가수가 노래에 신경쓰지 않고, 겉멋만 들어서 돌아다니는 걸 가장 싫어했다. 인터넷에 떠돌아 다니는 락스타 명언 모음집에 그가 했다는 "폼 잡을 시간이 있거든, 연습이나 더 해라." 라는 말도 돌아다니고 있지 않은가.
커버데일과 디오가 누구인지 궁금하실 분들을 위하여 위에서 언급한 Deep Purple - Mistreated (커버데일)과 Rainbow - Kill the King을 띄워놓는다. 미스트리티드에서 메인보컬이 커버데일이고 베이스와 초고음 샤우팅을 담당하는 이는 글랜 휴즈(Glenn Hughes)다.
초창기 헤비메틀 시절
시나위 1집 (86)
01 크게 라디오를 켜고
02 그대앞에 난 촛불이여라
03 남사당패
04 젊음의 록큰롤
05 잃어버린 환상
06 아틸란티스의 꿈
07 1월(January)
08 하루해 마냥 떠가고
기타 : 신대철 보컬 : 임재범 베이스 : 박영배 키보드 : 김형준 드럼 : 강종수
시나위의 1집인 Heavy Metal Sinawe는 국내 최초의 헤비메틀 음반으로 알려져있다. 하드록에서 헤비메틀로 넘어오는 경계선에 서있는 그룹들은 몇 있었지만, 스스로를 헤비메틀로 표방하고 앨범을 낸 이들은 시나위가 최초였다. 그 파급력이 더 컸던 것이 국내 록의 대부의 신중현의 아들이자, 언더그라운드에서 기타의 神으로 통했던 신대철의 데뷔앨범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현재 신대철, 김도균과 함께 3대 기타리스트라 불리는 부활의 김태원도 시나위 신대철의 실력과, 배경에 주눅들었었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당시 헤비메틀은 국내에 제대로 소개되지 않았었다. 따라서 엔지니어링 기사, 녹음장비 등 물질적 조건과, 언더그라운드 헤비 메틀 씬의 숙성 등 모든 조건이 제대로 되어 있을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대한민국 대중음악사에 길이 기억될 만한 멋진 앨범을 만들어냈다.
임재범은 신대철과 고등학교 동기였다. 임재범은 62년 생으로 올해로 나이가 딱 50이라고 한다. 하지만 널리 알려져있듯 불운했던 과거로 인해서, 호적등록이 늦게 됐고, 학교도 늦게 간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67년 2월 생인 신대철과 같이 학교를 다니게 됐다. 음악이 하고 싶었던 임재범은 기타를 사서 연습을 했지만, 연주가 마음대로 되지가 않았다. 그마저 아버지가 부셔버려서 노래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어느날 그는 시나위가 보컬을 구한다는 얘기를 듣고 시나위 연습실에 가서 슬쩍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당시 보컬리스트가 이병문이었는데, 녹음까지 했었지만 탈퇴를 하게되서 보컬 자리가 공석이었다.) 다들 그의 엄청난 목소리에 놀랐고, 의기기투합해서 앨범 작업을 시작하게 됐다고 한다. 신대철의 집에서 머물면서, 연습실 청소도 해가며 연습했는데, 신대철의 아버지인 신중현이 가끔와서 연습을 봐주었다고 한다. 임재범은 신중현이 키는 조그마하지만 카리스마가 있어서 매우 무서웠다고 술회한다한다.
앨범은 전체적으로 당시에 유행하던 향락적인 느낌이 나는 LA 메틀(ex) 머틀리 크루) 혹은 대중적 멜로디를 중심으로 하는 팝 메틀(본조비)가 아닌 정통 헤비메틀이었다. 헤비메틀 앤썸이 된 "크게 라디오를 켜고"가 첫 트랙이고 큰 인기를 끌었던 메틀 발라드 "그대 앞에 난 촛불이어라"(IZM 특집에서 김태원이 이 노래를 듣고 깜짝 놀랐다며 인생 최고의 명곡 top 15에 선정하며 임재범을 한국의 데이빗 커버데일이라고 불렀다.), 판테라(Pantera) 필립 안젤모를 연상케 할 만한 육중한 파워와 공격성을 드러내는 "남사당패"와 같은 노래들이 인상적이다. 이 때의 임재범은 음정이 살짝 불안했고(이건 애초에 저음의 목소리를 가진 이들이 보컬 인생 초반에, 그리고 나이 들어서 전성기를 지났을 때 겪을 수 밖에 없는 숙명인 것 같다. 그래서 요즘 임재범이 가성이나, 두성으로 넘어가기 전 육성으로 낼 수 있는 최고음역대에서 음이탈이 잦아지고 있다.), 두성을 이용한 초고음을 내고 있지 않다. 트레이드 마크라고 할 수 있는 육성 최고음역대와 가성을 자연스럽게 넘나드는 창법도 잘 보이지 않는다. 이 떄의 주무기는 중음역대의 무지막지한 파워였다. 그걸 가장 잘 드러내는 노래가 바로 남사당패니 한 번 듣고 지나가자. 신해철은 고스트 스테이션 명창열전을 진행하면서 그 임재범도 이런 시절이 있었다며 이 노래를 소개했다. 덧붙여서 '공익' 임재범이 가발을 쓰고 나오는 "젊음의 록큰롤" 뮤직 비디오도 감상하자. 하하하. 그 당시에도 뮤직비디오가 있었나 보다.
외인부대 1집 (1988년)
1. 도시의 비밀
2. 방랑자
3. Another Life
4. 환상의 록큰롤
5. Julie
6. Jump On The Top
7. Rockin' Desire
8. 아름다운 그대
기타 : 손무현, 이지웅 드럼 : 손경호 베이스 : 박문일 보컬 : 임재범
임재범은 시나위 활동을 하다가 공익 문제 때문인지, 임재범 보다 샤우팅 하는 보컬을 원했던 신대철의 의지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신대철이 그의 방랑벽에 지쳤기 떄문이었는지 결국 임재범은 시나위를 탈퇴하게 된다. 1987년 부활의 콘서트 장에서 평소 김태원과 사이가 좋지 않던 부활의 기타리스트 이지웅과 임재범이 의기투합했다고 한다. 부활에 있었던 이지웅과 시나위의 임재범, 다섯손가락 출신의 베이스 박문일과, 드러머 손경호 그리고 현재(특히 90년대에) 세션과 작곡가로 잘 나갔던 20세 약관의 나이의 손무현이 뭉쳐서 만든 그룹이다. 쟁쟁한 그룹들에서 활동하던 멤버들이 헤쳐모였기 떄문에 그룹 이름은 외인부대가 되었다. 사실 앨범 자체가 주옥같은 곡들을 담고 있는 건 아닌데, 초고음을 장착한 임재범 완전체가 탄생했다는데 앨범의 의의가 있다 하겠다. 신해철의 표현에 따르면 전사가 공격마법도 익히고, 회복도 하고 그러는 사기 캐릭터가 된 시점이라 할 수 있다. 레코딩 상태는 시나위 1집 때 보다 훨씬 깔끔하다. 곡은 완전체 임재범을 보여주기 위해 '방랑자'를 골랐는데 시나위 시절 보다 평균음이 훨씬 높이 올라갔다는 걸 알 수 있다. 지금도 어떻게 내는지 신기한 중고음 샤우팅과 초고음 샤우팅이 마구 난무한다. 초고음을 익힌 뒤로 임재범은 샤우팅을 과도하게 사용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곡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시나위 시절의 중음역대의 육중함과 샤우팅을 좀 조절을 했으면 더 좋았을텐데 안타깝다. 록 발라드 Julie는 올타임 베스트 발라드라고 생각되어서 첨부했다. 2004년 콘서트 실황인 라이브 앨범에선 "아마 1988년으로 기억합니다. "라면서 시작하는데 별 의미 없이 툭 던진 말인데 왠지 멋있다.
Project : Rock in Korea (1989년)
1. 멈추지 않는 강
2. Rock in Korea
3. Paradise
4. All Because of You
5. The Same Old Story
6. 허상
7. 기억날 그 날이 와도
8. 미로
기타 : 김도균, 이중산, 오태호, 손무현 베이스 : 강기영(달파란) 드럼 : 손경호, 이병일 보컬 : 임재범, 김종서, 김성헌
87년 백두산의 해외 진출을 염두에 둔 2집 앨범이 영어 앨범이라는 이유로 방송 및 공연 금지 판정을 받는다. 유현상은 일본으로 가서 매니지먼트를 배워와 소위 일본식 아이돌 육성의 시초가 됐고, 김도균은 영국으로 유학을 떠난다. 그에 더해 김태원이 대마초로 구속되고, 이듬해 부활은 이승철의 탈퇴로 공중분해된다. 군사정권은 정권의 정당성 문제를 덮기 위해 락뮤지션을 사회를 교란시키는 일탈분자로 몰아서 대대적인 대마초 수사를 벌이는 등 활동을 방해했다. 이러한 당국의 헤비메틀 뮤지션 탄압은 훗날 임재범의 솔로 전향의 이유 중 하나가 된다. 설상가상으로 88년 발매한 시나위의 3집 <Free Man>은 저조한 판매고를 보인다. 헤비메틀의 시대가 저물어만 가고 있었던 것이다. (http://blog.daum.net/goorabrain/470 참조)
이 때 영국에서 돌아온 명실상부 당대의 최고 헤비메틀 기타리스트인 김도균, 당대최고의 보컬리스트인 임재범, 김종서, 김성헌 미 8군에서 공연하며 전설적인 기타리스트로 널리알려졌지만, 레코딩에는 그 모습을 보이지 않았었던 이중산, 이승환과 함께 이오공감을 결성하고 후에 인기 작곡가로 이름을 날리게 될 오태호 등등이 모여서 마지막으로 헤비메틀의 불꽃을 불태운 올 스타 프로젝트 앨범이다.
84년 한 라이브 클럽에서 종업원 겸 주방장으로 일하던 임재범은 기타리스트 김도균의 연주가 마음에 들어 그에게 무대에 한 번 같이 서자고 제안했다. 김도균은 무슨 노래 할 줄 아는 거 있냐고 물었고, 임재범은 Deep Purple(노래 : 데이빗 커버데일)의 솔저 오브 포춘 Soldier of Fortune을 불렀다고 한다. 당시 자신의 보컬에 대한 자부심이 넘쳤던 그는 당연히 김도균이 오케이를 할 줄 알았다고 한다. 근데 김도균은 "야 너 그딴식으로 노래 할 거면 다신 노래 하지 마라." 라고 퇴짜를 놓았다고 한다. 임재범은 당황했지만, 반드시 김도균이 자신을 인정하게 만든다는 일념하에 다시 마음을 고쳐먹고 연습에 들어갔다. 그는 먼저 데이빗 커버데일의 원곡을 끊임없이 들으며, 틈나는 대로 카세트 테이프에 솔저 오브 포춘을 녹음하고, 녹음된 노래를 들으며 무슨 문제인지를 파악하고, 다시 부르기를 반복했다고 한다. 그 때 솔져 오브 포춘을 2천번을 불렀다나. 그 뒤 6개월 후 김도균을 다시 만났으나, 김도균은 또 한 번 팀 결성 제의를 거절했다고 한다. (내 기억으로는 처음 노래 부르고 퇴짜 맞고, 6개월 뒤 오케이 하고 락 인 코리아 작업에 들어갔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아무래도 신문 기사가 맞으려니 한다. http://cafe306.daum.net/_c21_/album_viewer?grpid=39E&fldid=Eak&dataid=1002&mgrpid=&url=http%3A//pds8.cafe.daum.net/download.php%3Fgrpid%3D39E%26fldid%3DEak%26dataid%3D1002%26fileid%3D1%26regdt%3D20050120150624%26disk%3D11%26grpcode%3Df1r1e1e1%26dncnt%3DN%26.jpg&title=viewer) 아무튼 그 때의 노래 연습이 자산이 되어 임재범은 시나위, 외인부대 등의 활동을 거쳤고 영국에서 돌아온 김도균과 의기 투합해 Rock in Korea 앨범에 참여하게 된다.
콤비는 Rock in Korea와 The Same Old Story 두 곡을 만들어냈는데 아마도 이 게 두 사람 모두에게 커리어의 정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Rock in Korea는 호쾌한 정통 헤비메틀이다. 시나위와 솔로 시절의 임재범만 알다가 처음 듣고 진짜 걍악했던 기억이 있다. 한국에 이 정도 수준의 헤비메틀, 이 정도 수준의 보컬리스트가 있었다니! The Same Old Story는 Stairway to Heaven을 연상시키는 구조로 초반에 어쿠스틱 기타와 함께 블루스 같은 느낌으로 가다가 후반에 폭발한다. The Same Old Story는 한국 메틀 역사상 최고의 명곡으로 불리며 락 매니아들로 부터 높은 평가를 받는다. 둘다 듣고 가자. Rock in Korea는 훗날 참여 뮤지션들이 모두 솔로 가수로 대박을 터뜨리니까, 레코드사가 상업욕에 물들어 내놓은 리믹스 판에 실린 버전인데... 그냥 인트로에 헬리콥터 소리와 관중들 박수소리를 합성한 수준이다.
Asiana - Out on the Street - 1990년
1. Breaking Out (4:25)
2. Struggle (4:25)
3. Tom Kat (5:15)
4. Paradom (5:32)
5. Out On The Street (4:10)
6. Missing You (4:45)
7. Asiana (6:00)
8. Dancing All Alone (4:37)
기타 : 김도균 보컬 : 임재범 베이스 : 김영진 드럼 : 유상원
<락인코리아>에서 호흡을 맞춘 김도균과 임재범은 본토를 공략하겠다는 일념으로 영국에 진출한다. 영국에서 외국인 멤버를 영입해 4인조 그룹 '사랑'을 결성해 백두산, 외인부대 시절의 노래를 중심으로 클럽 등지에서 활동을 했다고 한다. 이 때 BBC에 출연하기도 하는 등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으나, 외국활동의 어려움을 절감하고 국내에 돌아와서 Asiana(아시아나)를 결성하게된다. 밴드명은 아시아의 자존심을 보여주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여담이지만 임재범은 영국 생활 6개월 만에 생활영어를 마스터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영국생활을 하면서 너무 배가 고팠는데, 김도균이 이상한 음식을 만들어줘서 곤욕을 치루기도 했다고 하고, 한국 음식이 너무 먹고 싶어서 조금 정체를 알 수 없는 한국인 종교단체에 가서 밥을 얻어먹기도 했다고 한다. 종교 단체 측에서 가입하실 거냐고 끈덕지게 물어봤지만, 일단 밥 한 그릇 먹고 나서 생각해보겠다고 하고, 배터지게 먹은 뒤에 빠져나왔다고.. 참고로 임재범은 영어 발음이 굉장히 좋은 걸로 정평이 나 있는데, 아마 듣는 귀가 좋아서 그런게 아닐까 싶다. <위대한 탄생>의 셰인도 썡판 모르는 한국 땅에 와서 노래 부르는데 그정도면 발음이 참 훌륭하다고 생각하는데, 이 역시 귀가 좋아서 그런 것으로 보인다. 음악인으로서 뛰어난 재능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한국으로 돌아온 뒤 김도균은 과거 이태원에서 (임재범이 김도균에게 까인 그 시점, 그 클럽에서) 솔로몬으로 함꼐 활동하던 (시나위, 작은 하늘, 카리스마를 거친) 김영진과 유상원을 불러들여서 아시아나를 결성했다. 녹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앨범을 영국 Matrix 스튜디오에서 녹음하기도 하는 등 심혈을 기울여서 최고의 앨범을 만들려고 노력한다. 가사를 대부분 영어로 한 것도 부분적으로세계 진출을 염두에 뒀기 떄문이었다. (헤비메틀을 한국말로 부르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 가장 큰 이유인 것 같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결과물은 Rock in Korea에 비해서 썩 좋지 못했다. 임재범은 지나치게 샤우팅을 남발했고, 인상적인 곡도 그리 많지 않다. 가장 인상적인 곡은 셀프타이틀인 Asiana아 미발표곡인 Soldier's Came다. Soldier's Came은 반전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곡인데, 심사위원회에서 군화발 소리를 듣자마자 이거 5.18 얘기 아니냐며 음반 수록을 불허했다고 한다. 아시아나는 (말 그대로 탈아시아적 실력을 가진 일본 출신 밴드로 서양 헤비메틀 계의 신성한 충격을 가져다 준) 라우드니스의 내한 공연 떄 오프닝 공연을 맡았는데, 당시 몇몇 관계자들로 부터 메인밴드보다 더 낫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엄청난 라이브 무대를 보여줬다고 한다. (라우드니스의 전설적인 기타리스트 아키라 다카사키도 임재범을 보고 '아시아에 이런 보컬이 있었다니!' 라며 충격을 받았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하지만, 한국의 척박한 음악씬 떄문에 메틀밴드로서 활동을 계속 이어나가기가 어려웠고, 경제적 문제 등이 겹쳐져 팀은 해산하게 된다. 김도균은 다시 3인조로 백두산을 재결성하고, 임재범은 솔로 앨범을 계약하게 된다. 계약 조건 중에 아시아나 활동 등을 병행하게 해주겠다는 조건을 내걸기도 했다는데, 임재범은 그것이 오히려 더 헤비메틀 계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해 거절하고 하나만 열심히 하겠다며 솔로 활동에 나서게 된다. 80년대 헤비메틀 기수들 모두에게 다 그랬겠지만, 특히 임재범에게는 헤비메틀이 거의 종교에 가까운 귀속과 애착의 대상이었음을 알 수 있다.
들어볼 곡은 금지된 명곡인 Soldier's Came이다. 초반엔 어쿠스틱 반주에 약간 몽환적인 느낌의 보컬로 가다가 후반에 폭발하는 The Same Old Story와 약간 비슷한 구존데, 키보드도 넣어서 좀 더 웅장한 느낌을 강조하고 있다. 임재범의 샤우팅의 끝을 여기서 맛볼 수 있다.
솔로 전향 이후
임재범은 메틀 뮤지션들의 목을 조르며 자유를 질식시키는 국내의 척박한 음악환경에 환멸을 느끼며 솔로로 전향한다. 그는 헤비메틀 음악을 하던 동료들에게 미안함을 느꼈으며, 스스로도 정말 많이 괴로웠지만, 결국 스스로가 선택한 일이기 떄문에 해보겠다며 마이클 볼튼 같은 음악을 해보겠다고 대중가요계에 도전장을 던진다.
솔로 1집 On the Turning Away (1991년)
1 너의 곁에서
2 이밤이 지나면
3 사진속에 담긴 추억
4 BEING WITHOUT YOU
5 다시 사랑할 수 있는데
6 이제 우리
7 LET ME LIVE MY LIFE
8 JULIE
헤비메틀 음악을 사랑하던 이들에게는 열받는 일이겠지만, 어쨌든 나는 개인적으로 외인부대, 아시아나 앨범 보다는 이 앨범이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그냥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성인 취향의 곡들이 있고, 무작정 질러대기만 했던 외인부대 이후의 노래보다도 솔로 전향 후의 노래가 훨씬 듣기 좋다. 임재범은 자신이 너무 오만했었다고 술회했었는데, 너무 독보적인 (기술적인 면의) 노래 실력 때문에 매너리즘에 빠져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는 당시 가왕으로 군림하던 김현식을 봐도 고개를 까딱하는 정도로 매우 건방졌다고 한다.
이 앨범에서는 후에 '사랑보다 깊은 상처', '너를 위해'와 같은 히트 넘버를 만들어 준 신재홍이 히트넘버 '이밤을 지나며'를 비롯한 몇몇 곡을 만들었다. 너의 곁에서, 이밤이 지나면, 사진 속에 담긴 추억, 다시 사랑할 수 있는데가 들을만 하다. 재녹음한 Julie는 좀 거세된 느낌이랄까, 외인부대시절의 것이 훨씬 낫다. 솔로 활동을 하던 임재범은 헤비메틀을 배신했다는 중압감에 시달리던 중, 불미스러운 사건 까지 터지면서 이게 뭐하는 일이냐 싶어 산 속으로 들어가고 한참 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산 속에 들어가서 살면서 지금까지 남 흉내내기에 급급했던 자신을 반성하고, 다른 이들과의 공존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며, 인간으로서 외로움을 겪으며 영혼을 달래려고 각종 종교에 심취해지내기도 했다고 한다. 그저 음악 외적인 요소를 통해 뜨려고 하는 대중가요계가 못마땅해서 노래에 전념하기 위해 산에서 맹렬히 연습하기도 했다고도 한다. 무림고수의 비밀 수련의 성과물인지 2집, 3집에서 그의 보컬은 훨씬 숙성되어 나온다. 이 때 이후부터는 정말 단지 자신의 기술적 역량을 뽐내는 게 아니라, 음을 하나하나 느끼며 그 속에서 자유자재로 소리로 유영을 하는 느낌이다.
이밤이 지나면의 라이브 버전과 롤 모델로 했던 마이클 볼튼의 How am I supposed to live without you의 라이브를 들어보자. 후자는 국내 소울계에서 최고의 보컬리스트로 손꼽히는 '고모' 임희숙과 듀엣으로 했다. 역시 노래는 절반 이상은 생물학적으로 타고나야 한다는 교훈을 준달까... 들어보면 아시겠지만 마이클 볼튼 보다 음역이 조금 낮고, 중저음대가 훨씬 두텁고 거칠다. 다음까페 <임재범을 알아야 락을 알지>나 검색 서비스 잘 뒤져서 찾아보면 그가 부른 Rain, Sorry seems to be the hardest world 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정말 죽음이다. 꼭 들으시라.
Desire to Fly (1997)
01. 비상
02. 그대는 어디에
03. 사랑보다 깊은 상처
04. 그대... 내게 와
05. 또 다른 날을 위해
06. 추락
07. 궤변... (광란의 축제)
08. Wish
09. 최선의 고백
10. 아름다운 오해
1997년 임재범은 6년간의 공백을 깨고 느닷없이 2집을 발표했다. 1집에서 히트곡들을 만들어준 신재홍이 후일 CF에 실리고, 박정현에 의해서 듀엣으로 녹음되는 '사랑보다 깊은 상처'를 비롯한 몇 곡을 줬다. 그리고 나머지는 한국 대중 음악 역사상 가장 훌륭했던 그룹으로 꼽히는 U & Me Blue의 멤버이자 요즘에는 영화음악 OST 작업을 주로하고 있는 방준석(이인)과 함꼐 공동 작업을 했다. 아마 임재범 솔로 앨범 중에서 가장 잘 다듬어진 완성도 높은 앨범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몇 곡만 빼면 거의 전곡이 고루 들을만 하다. 당시 한국에 와서 가수 준비를 하며 고시원에서 찌는 여름을 보내며 외로워하던 박정현이 여름내내 끊임없이 반복해서 들은 앨범이 이 앨범이라고 한다. 그는 특히 비상을 최고의 '친구'로 꼽는다. 이 최고의 보컬리스트에 반해 고해에서 코러스를 담당하기도 하고 나중에 '사랑보다 싶은 상처'에 자기 목소리를 입혀 듀엣 형식으로 앨범에 수록하고, 나중에 수요 예술 무대에서 '사랑보다 깊은 상처' 듀엣도 한 번 한다.
그대는 어디에에 얽힌 사연도 재밌는데, 앨범을 완성해서 녹음하려는데 임재범 스타일의 노래가 너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 자리에서 임재범이 즉석에서 곡을 만들어내었고, 재즈 피아니스트 김광민이 녹음하러 왔다가 그걸 듣고 자진해서 피아노 연주, 편곡을 해주었다고 한다. 테크닉 적으로 임재범 노래 중에서 가장 어려운 노래이기도 하지만, 노래 자체에 담겨 있는 soul이 정말 엄청난 명곡이다. '비상' 또한 빼놓을 수 없는데, 세상에 나와서 당당하게 활동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하고 있는데, 자뭇 감동적이기는 하나, 사실 이 놈의 의지는 너무 자주 표명하시고, 또 뜻대로 안되시는지라 ^^;;;
수요예술무대에서 그대는 어디에 라이브와, 1999년 엠넷에서의 비상 라이브를 골랐다. 여담이지만 임재범은 이현우와 1집 때의 인연으로 나름대로 친한 사이고, 김광민과도 이렇게 인연이 있는 사이라 방송 출연을 거의 안 하는 도중에도 가끔씩 수요예술무대는 출연해왔다. 김광민, 이현우 덕에 우리가 임재범 절정기의 영상을 그나마라도 감상할 수 있게 된 셈이다. 다들 알겠지만, 찾아보면 박정현과의 "사랑보다 깊은 상처"듀엣도 있다.
Return to The Rock (1998)
1. Intro (고해)
2. 고해
3. Myth
4. Blue
5. Atlantis
6. Exodus
7. War And Order ("진혼" English Ver.)
8. 또다른 만남의 시간
9. Adam
10. Alcohol
11. Mu
12. 진혼
1999년 임재범은 오랜 메틀 팬들의 염원에 보답이라도 하는 듯 갑자기 메틀 앨범을 들고 나온다. 과거의 무작정 달리고. 내지르던 정통 헤비메틀은 아니고 조금 난해한 앨범이었다. 임재범은 단독으로 곡을 만들기보다는 공동 작업을 즐기는데 이번의 파트너는 캡틴퓨처로 활동하던 송재준이었다. 옛날에 밴드로 하던 메틀 사운드보다 훨씬 힘을 많이 줬다. 과거 메틀 시절의 쉼 없는 샤우팅은 자제하고 보컬은 중음역 대의 파워가 강조한다, 기타 리프 역시 과거보다 훨씬 육중하다. Atlantis 같은 곡은 오리엔탈 풍의 사운드도 많이 가미했는데, 어디서 잘 들어보지 못하는 실험적 스타일의 곡인 것 같다. Exodus와 Mu 같은 넘버들은 진짜 엄청나게 헤비하다. 세션으로 참여 한 토미 킴의 기타도 한 몫한다. (그렇다. 토미 킴은 바로 얼마 전 나는 가수다에서 빈 잔의 기타를 담당한 인물이다.)
이 앨범에서 아무래도 가장 유명한 곡은 처절한 발라드 '고해'인데 임재범 식 보컬의 극치를 보여주는 곡이 아닌가 싶다. 임재범 이전 이후 그 누구도 이런 식으로 노래부르지는 못할 것 같다. (그러니까 노래방에서 부르지 말라고!) 특히, 중간에 애드립 부분이 특히나 훌륭하고, 박정현의 코러스도 일품이다. 나중에 베스트 형식의 편곡앨범인 메모리즈에서 다시 부르는데.. 원곡 버전이 훨씬 더 처절해서 개인적으로는 원곡을 더 선호한다. (그 버전은 유희열 편곡이다. 여담이지만 유희열은 임재범 처럼 노래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부르는 이가 없다며, 앨범을 작업할 때 항상 그를 염두에 두고 작업을 한다고 한 인터뷰에서 밝혔다. 언젠가 두 사람의 협업을 기대해봐도 좋지 않을까?) 요즘 라이브에서 고해를 부르면 많이 힘겨워하는 것 같은데, 전성기 때 왜 활동을 안 했는지 정말 아쉬울 따름이다.
참고로 이즈음에 임재범은 박진영과 듀엣 곡('재회')을 하나 부르게 된다. 고해 만큼은 아니지만, 그의 파워가 유감없이 발휘된 처절한 발라드 넘버다. 작곡자 박진영과 편곡자 김형석이 둘다 임재범의 노래를 너무 좋아해서 참여를 부탁했다고 한다. (박진영이 산 속 깊은 곳 까지 임재범을 모시러 갔다는 얘기가 있다.) 영상을 못찾겠는데, 찾아서 한 번 들어보길 바란다. 두 보컬의 역량 차이가 워낙 커서 좀 미스매치 느낌인데, 임재범의 절창이 모든 걸 커버한다. 이거 하나 들을라고 그렇게 싫어하는 박진영의 5집을 구입하기도 했었다..
개인적 판단이지만, 이 앨범을 끝으로 임재범의 무지막지한 파워는 조금씩 쇠퇴하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원 없이 메틀을 하고 싶어서 이런 앨범을 낸 건 아닐까, 그냥 혼자 상상해본다. 들을 노래는 Exodus다. 고해는 다들 워낙 잘 알테니 그냥 생략한다.
4집 - Story of two years (2000)
1. 너를 위해
2. 다시 시작해
3. 아직도 사랑할 뿐인데
4. You're So Beautiful
5. To me
6. 거인의 잠
7. Three Times a Lady
8. 더 늦기전에
9. Reason's To One
10. 너를 위해(MR)
3집 이후 2년 간의 이야기를 담았다는 뜻에서 2년간의 이야기로 앨범 타이틀이 정해진듯 하다. 그러고보면 활동을 안해서 그렇지 2집 이후로는 재녹음-베스트 앨범인 Memories... 까지 포함해서 앨범은 꼬박꼬박 냈던 셈이다. (사실 임재범의 활동의 부족만 문제 삼을 경우 장필순, 들국화-전인권, 사랑과 평화, 한대수, 김도균 등등 7~80년대 풍미하던 언더그라운드 가수들의 단절적인 활동이 잊혀지게 된다. 임재범은 여러가지 개인적인 이유로 자주 음반을 내지는 않았지만, 척박한 대중문화-음악인 수익구조 환경 속에서 특유의 '대중성'으로 인해 다른 뮤지션들보다 음악을 발표할 기회가 더 많이 주어졌다고 봐야한다.) 4집은 그 어느 때 보다 그냥 대중가요의 느낌이 강하고, 창법도 한층 힘을 뺐다. 임재범의 히트 메이커인 신재홍이 곡들을 주로 담당했는데, 여기서 너를 위해가 영화 '동감'에 삽입되면서 그야말로 메가 히트를 쳤다. 요즘은 없어서 못판다지?
재밌는 건 '너를위해'는 원래 그룹 소호대 출신인 에스더의 '송애送愛'라는 노래였는데, 별로 빛을 못 보고 있다가 비슷한 테마에 가사만 손봐서 임재범이 불렀다. 모던락 풍의 '거인의 잠'이 팬들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이고, 나머지는 비교적 평범한 발라드들이다. 팝송 커버가 두 곡 들어가있는데, 소위 원곡자들 보다 더 뛰어난 커버(cover)곡들이다. 나중에 서영은이 박정현을 벤치 마킹해서 '아직도 사랑할 뿐인데'를 듀엣 버전으로 재녹음 하기도 했다. 녹음을 하다가 도중에 임재범이 잠적해버려서, 너를 위해의 MR 버전을 포함해 10곡을 급히 맞춰서 앨범을 냈다는 뒷 얘기가 있다. '거인의 잠'이 검색에 안 잡혀서, 그냥 '너를 위해' 동감 MV를 띄운다. 이 영화를 통해 김하늘과 유지태가 톱스타로 부상했고, 임재범도 자신을 잘 모를 젊은 청중들에게 존재감을 과시했고. 새로이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고해가 여성들이 노래방에서 제일 듣기 싫은 노래 1순위가 되기 시작한 시점도 아마 이 때 이후일 것이다.
Memories... (2003)
1-1 다시 사랑할 수 있는데 2-1 사진 속에 담긴 추억
1-2 너를 위해 2-2 추락
1-3 그대 앞에 난 촛불이여라 2-3 거인의 잠
1-4 너의 곁에서 2-4 사랑보다 깊은 상처
1-5 아름다운 오해 2-5 Reason's To One
1-6 Julie 2-6 아직도 사랑할 뿐인데
1-7 최선의 고백 2-7 그대는 어디에
1-8 비상 2-8 Have I Told You Lately
1-9 The Same Old Story
1-10 고해
아마 가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온 History '86'00 에 대응하기 위해서 새 기획사에서 낸 게 아닌가 싶다. 기존의 곡들을 새로이 편곡해서 임재범이 다시 불렀다. 예전의 스타일보다 한층 힘을 빼고 불러서 기존 메틀 시절 부터의 매니아들은 불만족스러워하는 것 같다. 고해는 유희열이 대성당 미사 풍으로 편곡했는데, 3집에 실린 원곡의 처절함이 부담스러웠던 이들(특히 여성들)에게는 오히려 더 어필하는 면도 있는 것 같다. 로드 슈튜어트(Rod Stewart)의 커버인 Have I Told You 커버 버전이 매우 훌륭하다. 단, 기타톤이 조금 경박한 느낌이 있다. 참고로 김현식 헌정앨범에서 '비처럼 음악처럼', 이영훈 헌정앨범에서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도 불렀는데, 이 노래들 역시 두말할 나위 없이 훌륭하다.
Coexistence (공존) (2004)
1 살아야지
2 백만번째 환생
3 安 (안)
4 安 (안) - Epilougue
5 아낌없이 주는 나무
6 총을 내려라
7 새장을 열다
8 Sixth Chapter
9 Key
10 사람과 사람들
11 SeaSide
12 살아야지 - Piano Version
2001년 결혼하고, 아버지와 화해하고, 이듬해에 딸 까지 나온 임재범의 심경 변화가 묻어있는 앨범이다. 그 누구와도 화해하지 못하고, 홀로 방랑을 하며 살아갔던 과거를 접고 안식처를 찾았고, 안식처를 바탕으로 다시 한 번 세상에 나가보겠다는 의지를 내보이고 있다. 하지만 앨범 전체의 분위기는 좀 쓸쓸하다. 이 앨범에서 임재범이 가장 아끼는 곡들인 'Seaside', '살아야지'가 이를 정확히 대변해주는 게 아닌가 싶다. 오래도록 조울증에 시달려왔다고 하는데, 당시도 좀 감정적으로 다운 된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 결국 임재범은 겨울에 예정되었던 앵콜 공연을 취소하고, 다시 잠적하게 된다. "이제 더이상 오랜 기다림은 없을 거"라더니..
전곡을 김정민, 조규찬 등과 함꼐 작업했었던 작곡가 최남욱과 작업했다고 한다. 하지만 대중성을 배려한 노래는 사실 많지 않고, 많은 부분 임재범이 하고 싶었던 음악을 풀어낸 느낌이다. 락 넘버들이 절반이고 발라드가 절반인데, 발라드도 '안' 정도를 제이하면 그다지 대중성에는 신경쓰지 않는 느낌이다. 데뷔 초부터 견지해왔던 평화사상과 생명존중 정신을 '총을 내려라', 'Sixth Chapter' 등의 락 넘버를 통해 다시 드러내고 있다. 락 넘버들 자체는 사실 그리 귀에 잘 들어오지는 않는데, 타미 킴의 기타 연주만은 발군이다.
노래는 수요예술무대에서 부른 '살아야지'다. 김광민이 피아노 연주로 가담했다. 이 당시 공연보러 갔었는데, 임재범이 무대에 오르기를 힘들어 해서 녹화가 상당히 지연됐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관객들이 떠나지 않고 끝까지 기다렸고, 결국 임재범은 무대에 올라 1시간여의 공연을 앵콜까지 모두 무사히 마쳤다. 다만, 지하철이 끊겨서 집에 돌아가기가 참 난감했던 기억이 있다...
이 외에 생애 첫 라이브 콘서트 실황을 담은 라이브 앨범 Live & Life도 있지만, 사실 여기서 임재범의 보컬은 조금은 실망스럽다. 당시 임재범이 하는 공연은 모두 찾아가서 봤었는데, 전설을 눈 앞에서 지켜본다는 감동은 있었지만, 당시 컨디션이 안 좋았는지, 아니면 내 기대감이 너무 컸는지 노래를 (앨범만큼) 썩 잘 부르지는 못했다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신체적 노화가 진행되다 보니 과거의 곡들에 중점적으로 포진해있던 육성 최고음 부분에서 힘이 많이 부치다 보니 그런게 아닌가 싶다. 육성최고음, 가성, 두성의 자연스러운 연결이 임재범 최고의 강점인데, 그 부분이 흐트러지기 때문에 보컬의 완성도가 많이 떨어져보인다. 그래서 락커들이 나이가 들면 중고음 부분을 확 줄이고, 중저음에서의 파워와, 하이라이트 부분에서 지르는 초고음 샤우팅을 배합해서 드라마틱한 효과를 내는 곡들을 만들어내는데 <나가수>에서 '빈잔'이 그 전형이었다. 요즈음 드라마 OST로 내놓은 '낙인'이나 '독종'도 그런 연장선에서 음역대를 많이 낮추고, 보다 편안한 창법으로 부르는 것일 게다. 그리고 이 곡들에서 임재범의 보컬은 나이에 걸맞는 새로운 매력을 뽐내고 있다.
마치며
임재범 음악인생 리뷰는 진작부터 쓰려고 벼르고 있었는데, 게으름 때문에 미뤄뒀었었다. 그러다가 어제 <나가수>에서 '여러분' 무대를 보고 더이상 미뤄둘 수 없겠다고 생각해서 어젯밤 내내 썼다. 어제 무대는 정말 내가 보고, 들은 임재범의 노래 중 가장 훌륭했다. 윤도현의 표현대로 임재범 인생의 드라마 한 편이 그 짧은 노래 속에 모두 들어가 있었다. 불우했던 가정사, 좋아하는 음악을 하지 못하게 만들었던 군사정권의 검열과 탄압, 노래를 부르고, 음악을 만들며 달랬던 평생 마음 털어놓을 친구 한 명 없었던 외로움, , 아내의 투병과, 그와 더불어 이제야 절실히 깨달은 부모, 남편으로서의 책임감, 끝까지 자신을 믿고 지지해줬던 팬들에 대한 감사, 뒤늦게 다시 느낀 노래부른다는 것의 행복감, 이 모든 것들이 6분 동안의 노래에 담겨 있었다. 특히, 마지막 애드립 부분에서는 진짜 그의 말대로 한 인간이 부르는 게 아니라, 뭔가 이 세계의 것이 아닌 다른 존재가 부르는 듯한 초월감마저 느껴졌다. 그리고 그 드라마는 지난 주말 수백만 시청자들의 가슴을 울렸다.
나는 오래도록 임재범의 팬이었지만 솔직히 2004년 이후로 그에 대해서 포기하고 있었다. 더이상 목소리는 예전같지 않았고, 새로 내놓는 곡들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가수다> 첫 무대 때만 해도, 마음 속 한 켠에서는, 마음 속에서의 멋진 모습 그대로 남겨두기 위해서 안나왔으면 하는 바람도 가졌었다. 그런데 임재범이 정말 달라졌다. 3집 이후로 아무 의욕 없어보였던 그가, 진짜 제대로 다시 음악을 해보고 싶어하는 눈빛을 드러냈다. '낙인', '독종'도 괜찮았지만, 무엇보다 <나는 가수다>에서 특유의 오리엔탈 사운드가 가미된 된 프로그레시브 록으로 풀어낸 '빈잔'이 그 시발점이었다. 심한 목감기로 인해 음이탈 현상이 많이 일어났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장기호가 말하는 단순한 가창력이 아닌 무언가 동물적인 감각, 야수성이 다시 돌아왔다. '여러분'은 결정타였다. 나는 방송이 끝나고 2시간 동안 아무 것도 못하고 멍하니 음원 서비스에서 '여러분'을 무한 반복해서 들었다. 그리고 한 1시간 쯤 더 듣다가 나서야 무언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임재범은 그 음악적 재능과 노래 실력에 걸맞지 않게 좋은 곡들을 많이 못 남겼다. (이를 달래기 위해 수 많은 종교에 심취하기도 했던) 불안한 영혼과 방랑벽, 그리고 하고 싶은 음악을 하지 못하게 국내의 척박한 음악환경이 그가 오래 지속되는 파트너십을 형성해 안정적인 기반에서 음악적 교류를 하지 못하게 만들었고, 그 결과 누적적으로 축적되는 완성도가 존재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한국 최고의 보컬리스트 답지 않게, - 김현식하면 - 3집, 4집, 5집 전인권 하면 - 들국화 1집, 추억 들국화, 전인권 1집 - 이렇게 당당히 내세울 수 있는 마스터피스가 부족하다. 특히, 98년 3집 이후로는 그냥 이대로 팔리는 노래나 부르면서 적당적당히 음악인생 끝나게 되는 거 아닌가하는 우려도 들었다.
하지만 그가 달라졌다. (앞으로 또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지만), 그 어느 때보다 그는 세상과 함께 존재(Coexistence)하고 있다. 솔로 전향 이후로 지금이 최고로 행복해보인다. 지금의 스피릿은 그 어느 때 보다 균형 잡히고 완숙해 보이면서도 야성은 그대로 살아있다. 지금 이대로라면 어쩌면 이제 그의 음악 인생 최고의 마스터피스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루 빨리 맹장염 수술 후유증을 이겨내고 음악 파트너를 만나서 새로 곡을 만들고, 앨범을 냈으면 한다. 임재범은 단지, 최고의 보컬리스트만이 아닌 최고의 아티스트로서 당당히 세상에 우뚝서야 한다. 이대로는 그의 재능이 너무 아깝다. 더이상 상처받은 사자가 아닌, 세월의 지혜를 깨달아 다른 동물들과도 공존할 줄 아는 늙은 사자로 꾸준히 활동해주길 바란다. 먼훗날 내가 외로울 때 임재범의 2011년 앨범이 큰 위로가 되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그의 개인적 행복과 영혼의 평안, 그리고 그의 부인 송남영 님의 쾌유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