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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잔 들이키면 식사가 되고, 흥이 나면서 힘을 쏟게 하여 "농주"라고 해서 관절이 잘 돌게 하는 윤 활유다. 약주와 막걸리는 한 술통에서 나왔지만 깨끗한 술을 걸러낸 약주는 양반네가 폼 잡으며 마 신 술이지만 선별 없이 막 걸러내는 막걸리는 민초들의 끼니가 되고 회포를 풀어내는 양식인 것이다. 그래서 천상병 시인은 막걸리는 술이 아니고 밥이라고 했고 ‘즐거움을 더해주는 하나님의 은총’이 라고까지 했다. 살림살이가 힘들어지고 주머니가 가벼워진 주당들은 막걸리 집을 자주 찾게 되었다. 최근에 막걸리 집이 늘어난 것은 이런 시대상황이 반영된 결과다. 막걸리의 원류를 찾다가 전주까지 오게 되었다. 전주처럼 막걸리 동네가 많은 곳이 드물 것이다. 삼천동 우체국 골목에 30 여 곳, 서신동 본병원 앞 에 15곳, 경원동 동부시장 뒤에 10곳, 효자동 전일여객 근처에 10곳, 평화동 뱅뱅골목에 8곳이나 막 거리집이 거리를 이루고 있다. 아마 전주에서는 호프집 보다 막걸리집이 더 많을 것이다. 나는 서신 동과 삼천동 막걸리 거리를 찾았다. 만원짜리 지폐 한 장이면 막걸리 한 주전자에 기가 막힌 전주의 영양안주가 무료로 딸려 나온다. 나중에는 "아줌마 그만 주세요." 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테이 블 위를 가득 메웠다. |
서신동 막걸리 거리 전주의 막걸리는 생막걸리다. 소주처럼 유통기한을 늘리기 위해 멸균처리를 하게 되면 몸에 좋은 영 양분이 파괴가 되고 맛이 떨어지는데 전주는 워낙 막걸리 소비가 많기 때문에 굳이 멸균할 필요가 없다. 간판에 붙은 "서민들의 안식처" 말에 공감을 했는지 입구부터 줄을 서야 한다. 사전 예약을 했지만 10분 정도 늦게 도착했다고 다른 사람들이 그 자리를 차지해 버렸다. 하긴 막걸리집에서 예 약한다는 것이 참 어색한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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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동은 가난한 서민이 많이 살았는데 IMF가 터지면서 세상사는 것이 힘들어지면서 주머니에 술 한 잔마실 돈 조차 없었다고 한다. 이때 삼천동에 처음 막걸리 집이 들어섰는데 주인아주머니가 이윤을 생각하지 않고 모두 힘드니까 힘내자며 막걸리 한 주전자에 한 상 가득 안주를 내 온 것이 삼천동 막걸리의 시작이란다. 저렴한 가격에 푸짐한 안주가 있다는 소문이 퍼져 사람들이 몰리고 자연스레 한두집이 늘어났는데 모두 장사가 잘되어 결국 오늘날 막걸리촌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전날 서신동 막걸리집에서 당했던 충격(?)이 있기 때문에 테이블에 올라온 안주를 보고 그리 놀라 지 않았다. 이곳은 13가지 안주가 기본으로 나오는데 소풍이 생각나는 찐계란, 밤, 그리고 옥수수, 부부처럼 다정하게 누워 있는 소라와 생굴 그리고 양념게장, 작은 문어도 빠지지 않는다. 돼지두부 김치와 시원한 생태찌개와 간재미 찜까지 배추를 비롯한 싱싱한 야채까지 한 상 가득 채웠다. 이 곳 을 잘 모르는 타지 사람들이 테이블에 앉아 주문도 하지 않았는데 한 상 가득 나온 안주를 보고 주 인을 불러 항의 받았던 일화도 들려준다. 전주의 막걸리집은 말 그대로 서민들의 안식처다. 술을 마 시러 가는 곳이 아니라 풋풋한 고향의 정을 나누는 곳이기 때문이다. 전주술박물관 |
잊혀진 가양주의 맥을 찾고 그 술의 의미를 배울 수 있는 곳이 전통술박물관이다. 술을 만드는 도구 와 과정, 도구와 제기 그리고 전국에서 수집한 가양주들이 전시되어 있다. 유상곡수에서는 굽이도는 물에 술잔을 띄어볼 수 있으며 숙성실과 발효실에서는 스피커를 통해 술 익는 소리와 술 익는 냄새 를 오감을 통해 느껴볼 수 있다. 단순히 보기만 하는 박물관이 아니라 체험을 통해 가양주의 진가를 발견해내는데 의미가 있다.(문의:063-287-6305 전주한옥마을 내에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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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여행작가 이종원 |
첫댓글 가자가자,,,,언넝^^
막걸리는 좀 조아라 하는데~~~ 같이 먹을 사람이없어서 못먹는데,,, 가자!!!
으아~ 맛있겠다~ 나도, 나도.....안주 먹어줄게..ㅋㅋ
전주 사는 후배놈이 맨날 막걸리 노래를 부르더니..이유가 있었군....ㅋㅋ
우와~~~ 완전 땡겨요~~~꽃피는 봄이오면 떠나장~~ㅋㅋ
전주로 오세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