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축 소자로 사용된 트랜지스터의 등장은 설계에서부터 디자인, 그리고 성능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으며, 인건비에 전혀 구애를 받지 않았던 중소기업은 호경기를 맞이하게 된다.
반영구적인 트렌지스터의 등장은 새로운 활력소를 가져왔음은 물론 혁신적인 회로설계와 함께 참신한 디자인의 제품들을 등장시켜 소비자들로 하여금 구매의욕을 갖게 했다. 한마디로 말해 70년에 와서 우리 나라의 오디오 산업에 본격적인 태동기를 갖게 해준 것이 바로 트랜지스터 등장이라고 볼 수 있다.
진공관으로부터 트랜지스터로 이어지는 시기에 등장한 전축으로는 바이킹이란 상표가 있다. 한때 무역업에 종사해왔던 사람이 전축에 흥미를 갖고 설립된 회사로 명동입구 등에 전시장을 마련, 대대적인 판매에 임하기도 했다. 바이킹 전축은 당시 4대 유명 일간지에 3일에 한번 광고를 낼 정도였으며 한달 신문 광고료만도 약280만원이 지출되었다고 한다.
공장은 청계천 8가에 위치한 중앙시장 쪽이었는데 래크와 스피커 유닛, 그리고 부품들을 국내외에서 납품 받아 조립한 것으로 거의가 월부 판매 방식으로 운영했다. 당시의 전축은 출력표시도 엉망으로 5~10와트 정도의 라디오 전축에 스피커 유닛이 큰 것을 사용했을 때는 20~30와트라고 했으며 소형 유닛 일 때는 그보다 약하게 표시해 놓았다. 다시 말해 출력이 낮은 제품에 대형 스피커를 연결 청감상 음량이 크게 들리게 되므로 출력을 높게 표시해 주었다.
당시 전축 장사는 몇몇 업체를 제외하고는 영세성을 면치 못하고, 그 당시 전축 사업에 관여했던 사람들이 과다한 세금이 우리 나라 오디오 산업을 가로막는 장애 요소라고 했듯이 이에 관계했던 중소기업인들이 거의가 중도에 포기했던 것을 보면 그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를 알 수 있다.
전자 부문에서 라디오가 단일 품목으로는 가장 인기가 있었고 진공관에서 트랜지스터로 소자가 바뀌게 되자 점차 다양한 종류가 개발되기 시작했다.
삼미와 마샬 전자의 국산 스피커 등장

음향기기의 핵심 부분의 스피커는 거의가 외국제품이었으나 몇몇 중소기업인들이 이 부분에 적극 참여, 국내 제조가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즉 마그네트형에서부터 시작, 다이내믹형 스피커를 만들어 냈다.
1959년부터 스피커 제조를 위해 뛰어왔던 고려 전자 공업사(후에 마샬전자)를 찾아 당시의 상황을 들어보면 순수한 국산재료를 사용, 제작한 다이내믹형으로 상표는 코스모스였고 같은 계열의 삼미사는 웨스턴이란 상표를 사용했다고 한다.
그런 대로 국산 스피커를 제조하게 된 것은 당시 정부와 민간 단체가 주동이 되어 농어촌지역에 스피커 보내기 운동이 일어나 어느정도 활기를 띠었고 전국 유선방송 연합회가 주축이 되어 극장 입장객을 상대로 모금을 벌였다.
스피커 제조 부분에서 과거 삼미사를 들 수 있는데 김문주 형제에 의해 설립되었고 실질적인 사주는 동생으로 엔지니어 출신이다. 고려전자 공업사로부터 상호를 마샬로 변경, 본격적인 스피커 제조에 뛰어든 박병윤은 의학을 전공한 분으로 6.25전쟁 중 단신 월남, 초기부터 음향기기에 뛰어들었는데 70년대 국내시장은 물론 외국까지 한국 스피커 상표를 널리 알려준 장본인이기도 하다.
70년대부터 80년 사이에 레코드 플레이어로 이름을 떨쳤던 신일산업(지금은 가전제품 생산)의 김덕현도 국내 오디오 사에서 손꼽을 수 있는 분이다.
국가정책에 힘입어 출발한 국내 전자산업은 70년을 향해 더욱 힘찬 발전을 거듭해 왔는데, 이때는 누구나 한번쯤 전자제품을 만들어 수출하면 돈을 벌 수 있다고 할 정도었다. 여하간에 우리 나라 음향 기기는 70년대를 기점으로 비약적인 발전의 계기를 마련했는데, 그 중에 70년 초 혜성처럼 등장한 동원전자를 들 수 있다. 동원전자는 90년 3월 이 회사 창립 20주년을 맞아 주식회사 인켈로 명칭을 바꾸었다.
아래운동장(아니 풀밭)에서 점심시간에 목공반과 매일축구 시합했었는데
(영록생각)
1970년대 설립 당시의 동원전자 회사 모습
이 회사를 설립한 조동식은 1918년 출생으로 고령이지만 아직도 건강하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당시 젊은 사람 못지않는 건강과 패기를 보여주고 있다. 그가 전자산업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69년 일본의 전시장인 아키 하바라를 둘러본 후였다.
특히 전자공학 연구한 김완희 박사의 권유를 진지하게 받아들여 1972년도에 설립한 삼풍 전자상사는 전자산업과 인연을 맷은 첫 동기가 되었다.
이를 계기로 그해 12월 통일주체 국민회의 대의원에 당선된 이후, 역시 성동구에서 대의원으로 당선된 일동제약의 윤용구(尹溶求)사장과의 만남이 오디오 산업에 참여하게 된 동기를 마련해준 것이다.
인켈의 전신이었던 일렉트릭 보이스 코리아가 전시회에 참가 각종 제품을 전시회 놓고 있는 부스 모습
일동제약 윤용구 사장의 권유로 결심을 굳힌 조동식 사장은 100% 외국법인(당시 윤두영씨는 미국 시민권을 갖고 있어 외국인이 투자한 회사로 되어 있었음)인 한국 EV의 최고 경영자로 참가하면서 부득이 상호를 인터내셔널 코리아 전자주식회사로 변경하게 된다.
현재 해태전자가 소유하고 있는 인켈이란 회사 이름은 당시 이 회사가 전보 약자로 사용해 온 것으로 인터내셔널의 IN을, 코리아에서 K 첫자를, 그리고 일렉트로닉에서 EL를 딴 것이다.
이렇게 해서 1973년 3월 7일 정관을 개정하고 탄생된 이 회사는 초기에 전축 바늘인 카트리지와 헤드폰을 생산, 현재 위치인 도봉동에 인켈의 아성을 다져가기 시작했다.
새로운 경영진에 의해 출범된 이 회사가 가장 중점을 둔 것은 경리 업무였다.
국내에서 제작해 전세계 시장에 판매된 EV사의 앰프 모습
전 윤사장과 함께 참여해온 일부 임원들이 교체되었고 조사장과 함께 오래 동안 일해온 엄익정씨와 조사장의 차남(현 미국 셔우드 대표)이 참여하게 된다.
엄익정씨는 인켈의 창업멤버이면서 후에 스트라우트 오디오 제조회사를 설립한 사람으로 한국 오디오 시장에 검정패널의 컬러디자인을 가장 먼저 소개한 장본인이다. 회사를 인수한 첫해에 외형상 100%의 신 장세를 가져왔지만 오히려 적자는 늘어나게 되자 부사장직 을 맡았던 윤사장은 더 이상 경영에 참가하기를 꺼린 반면, 조사장은 이 회사에 사활을 걸 정도로 열의를 보였다.
결국 윤사장의 소유지분 주식을 전부 인수해 순수 내국인 업체로 전환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 때 가담한 사람이 당시 인켈의 사장이자 조동식 회장은 큰아들인 조석구였다. 70년 초반 설립된 스피커시스템 전문 제조 메이커로는 KEP를 들지 않을 수 가 없다.
동사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한국전자부품공업으로 오직 스피커 시스템 제조만을 위한 메이커로 제일동포인 김용태에 의해 1973년에 설립되었다. 외국인 투자 승인 절차를 밟아 설립된 동사는 수출공단에 있으며 현재는 설립자 친동생인 김용호가 맏아 운용해 오다가 결국은 최근에 다른 사람에게 경영권을 넘기고 만다.
초라하기 그지없었던 초창기 국내 오디오 제조 회사의 조립 작업 모습
설립자인 김용태는 고국의 낙후된 전자산업의 핵심부분인 부품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에 민단 활동을 중지하면서 귀국, 계획한 사업으로 그 동안 많은 업적을 갖고 있다.
서음전자가 최초로 시도한 검정 색 전면 색상
80년 초기까지만 해도 오디오 시스템의 전면패널 색상은 거의 실버계통의 밝은 쪽이 대부분이었다. 이때 서음전자가 과감하게 검정 색상을 오디오 시스템의 새로운 패션으로 등장시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검정 패널의 스트라우트 제품은 색다른 감각을 갖게는 했으나 검정 색상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던 소비자들에게는 크게 어필하지 못했다. 유럽형의 오디오 시스템의 독특한 면을 알리려고 했던 이 아이디어는 결국 국내에서 당시만 해도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다. 밝은 미래를 내다보며 시작된 사업이 경영 자체에서 문제점이 노출되었고 당시 석유파동으로 인한 수출부진 등에 의해 결국 스트라우트란 이름은 서서히 그 자취를 감추게 된다.
앞서간 디자인 컬러로 오히려 실패를 본 스트라우트 오디오 시스템
이 스트라우트 제품에 관련해 인상 깊었던 것은 당시 신문지상이나 잡지 등에 "소리는 안다, 선택할 오디오는 없었다. 매킨토시와 비교해 보십시오"란 선전문구였다.
서음전자가 스트라우트 브랜드로 한국 전자전에 참가할 당시의 부스 모습
스트라우트가 패션 상품으로 등장시킨 검정 색상은 이후 1~ 2년 후 모든 오디오 시스템이 이 색상을 채택하기 시작, 지금까지도 건재하고 있는 것을 볼 때 퍽이나 아이러니컬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아이디어가 빛을 보지 못한 것은 남보다 너무 앞섰기 때문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지금에 와서 다시 한번 해보게 된다.
현재 오디오 제품을 생산하고 있는 대부분의 회사들은 70년대를 기점으로 설립되었다. 대표적인 메이커로는 아남, 롯데 파이오니아, 인켈 등을 들 수 있고, 천일사를 인수한 태광산업, 그리고 기존의 라인을 늘여 음향기기 제조를 시작한 금성사나 삼성전자도 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참여했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