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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물류, 칠곡으로
철도·도로·물길 만나 사통팔달…'물류 중심도시'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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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을 따라 어느덧 칠곡에 다다랐다. 칠곡은 낙동강 중류에 위치해 있다. 칠곡의 낙동강 역시 한국사에 큰 획을 그었고, 또 긋고 있었다. 칠곡의 낙동강은 두 줄기다. 한 줄기는 ‘물류’요, 다른 한 줄기는 ‘호국’(護國)이다. 6·25전쟁의 운명을 갈랐고, 또한 그 옛날 낙동강 물류의 최대 중간 거점이었다.
우리는 사람과 물자가 오간 칠곡의 낙동강으로 발길을 옮겼다. 낙동강은 1,300리다. 낙동강의 또 다른 대명사는‘낙동강 700리’다. 강다운 모습을 갖춘 구간이 부산에서 상주 구간인 까닭이다.
낙동강은 1,300리를 따라 유유히 흐르면서 수많은 사람과 물자를 실어 날랐고, 애환도 함께 오르내렸다. 애환과 사람, 그리고 물자는 1,300리 강변에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나루와 창고를 낳았다. 칠곡의 낙동강에서 이전 중·상류의 낙동강에서 거의 찾을 수 없었던 옛 나루의 흔적을 볼 수 있어 가슴이 울컥했다. 육상교통의 발달로 낙동강 수운의 역할은 지금 사라졌다. 만약 낙동강 수운이 영남 내륙지방의 물자 수송을 도맡았던 100년 전으로 되돌아간다면 나루에는 수많은 배가 오가고, 사람들로 북적이지 않았을까.
낙동강에서 왜관의 위치는 어떠했을까. 낙동강을 중심으로 활발했던 경제활동의 산 현장이 바로 왜관(倭館)이다. 왜관은 조선시대 일본인이 건너와 통상을 하던 곳이다. 오늘로 치면 일종의 국제 자유무역항이라고 할까. 옛날 낙동강 주변에는 모두 10개의 왜관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지명으로 고착된 곳은 칠곡군의 왜관(지금의 군청 소재지인 왜관읍)밖에 없다. 부산 구포에서 출발해 경남 삼랑진과 남지를 거쳐 올라온 나룻배들의 중간 기착지는 왜관이었다. 남쪽에서 올라온 해산물과 북쪽에서 내려온 농산물·목재의 만남의 장이 바로 칠곡 왜관이었다. 낙동강변에 있었던 도선장은 언제나 인파와 물자로 북적였다. 낙동강 전 구간에서 수운을 이용한 교역이 이루어졌으나 가장 성행한 곳이 바로 왜관이었다. 1930년대까지만 해도 부산에서 5일 간격으로 소금배가 올라왔고, 그때마다 낙동강변에 대규모 해산물 시장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왜관은 또한 일제강점기 때 경부선 철도가 개통한 이후 낙동강변과 왜관역을 잇는 협궤철도(소형 도르래식 무개차로 화물을 싣고 인력으로 미는 방식)가 연결돼 육상과 수운의 교류처의 역할까지도 했다. 상주나 안동 등 경북 북부지방에서 생산된 물자가 강물을 따라 내려와 왜관에서 다시 열차를 통해 전국으로 운송됐고, 철도로 운송된 물자는 다시 왜관에서 낙동강을 따라 경북 북부지방 등 전국으로 퍼졌다.
왜관이 낙동강을 대표하는 물류기지였던 것은 나루도 증명하고 있다. 지금은 이름만 남겼지만 그 수만해도 석적읍의 밤실나루·개내미나루, 북삼읍의 말구리나루, 약목면의 구왜관나루, 왜관읍의 돌밭나루·공암나루·강창나루·가실나루·금남나루, 기산면의 흰돌나루·강정나루·노실나루 등 12개나 됐다.
낙동강의 고장 칠곡은 조선시대 영남대로의 고장이기도 했다. 영남대로는 조선 팔도를 관통했던 대동맥이다. 부산 동래에서 출발해 대구, 칠곡을 거쳐 문경, 충주에 이어 한양으로 연결됐던 옛길이다.
영남대로는 이웃한 낙동강·한강과 함께 물자와 사람이 오간 ‘생활의 길’이었다. 영남대로는 죽어 있는 길이 아니라 살아 있는 길이었다. 그 길의 중심에 칠곡이 우뚝 섰던 것이다.
우린 칠곡의 영남대로를 찾아 과거 속으로 다시 발걸음을 되돌렸다. 등에 가상의 괴나리봇짐을 지고서. 부산 동래를 출발해 대구를 거친 후 금호강을 건너자 곧바로 칠곡땅이 한눈에 잡힌다. 지금의 대구 북구 칠곡은 원래 칠곡군의 땅이었다. 매천초등학교 앞을 지나 태전삼거리와 동아백화점 칠곡점을 거쳐 경상북도 농업기술원에서 동명면 봉암리로 접어든다.
옛 대로를 짐작케 하듯 큰 도로가 영남대로를 대신하고 있다. 동명으로 접어든 영남대로는 다시 왼편으로 저멀리 태봉산을 끼고, 오른편으로는 가산산성을 곁에 두고 소야재를 넘어 다부원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동명 초입의 태봉산은 조선 중종 임금의 왕자인 봉성군의 태(胎)를 묻은 곳으로 정상에 태실임을 알 수 있는 비각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찾을 수 없어 안타까울 뿐이다. 마을 어른들은 일제가 조선왕실의 권위를 떨어뜨리고 민족정기를 말살하기 위해 태실을 파괴했다고 전하고 있다.
영남대로에는 으레 원(院·지금의 숙박업소)이 있게 마련. 국도 5호선인 구안국도 동명면 소재지를 지나는 길에 독명원이란 서민들이 주로 묵었던 원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독명은 일제에 의해 동명으로 그 이름이 고쳐졌다. 동명 소재지 영남대로의 오른편에 위치한 해발 902m의 가산(架山)에는 가산산성이 자리 잡고 있다. 대구 시민들은 한번 쯤은 가보았거나 익히 들은 지명일 게다. 임진왜란 때 남하하던 명나라군 5천명이 이곳 가산산성을 중심으로 가산 일대에 주둔했던 곳이다. 가산은 또한 6·25전쟁 당시 한국군이 전세를 역전하기 위해 교두보로 삼았던 역사의 현장 중 한 곳이기도 했다.
소야재를 넘어 위치한 다부원 역시 조선시대 출장 나온 관리들이 묵었던 일종의 국립여관이다. 나라에서 직접 관리의 숙박시설을 만들었으니 칠곡이 영남대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가늠케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다부원이 위치한 영남대로는 6·25전쟁 당시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고, 한국군에게 대반격의 기회를 제공한 곳이기도 하다.
바로 그 유명한 다부동전투다. 전투의 현장은 바로 영남대로가 지나는 곳이었다. 다부원을 지난 길은 다시 가산면 소재지인 천평삼거리를 거쳐 25번국도를 따라 구미~상주~문경새재~충주~한양으로 이어졌다. 우리는 소통의 대명사인 낙동강과 영남대로를 한꺼번에 끌어안고 있는 칠곡이 예로부터 전쟁에선 역사를 새로 쓴 곳이자 사람과 물자가 오간 교통의 요충지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낙동강 물길의 중간 기착지이자 문경과 함께 영남대로의 중심인 칠곡은 그 옛 영광을 ‘물류 중심도시 칠곡’으로 이어가고 있다. 바로‘사통팔달’,‘거미줄’ 칠곡이다. 그래서일까. 경북의 도시 중 인구가 느는 극소수의 시·군 중 한 곳이 바로 칠곡이다. 칠곡은 철도의 도시였다. 또한 도로의 도시이기도 했다. 조그마한 시·군 단위에선 놀라운 일이다.
1905년 개통 이래 100년 넘게 경부선 철도가 칠곡의 중심부를 통과해 전국 각지와 연결되고 있다. 특히 칠곡구간만 통과하는 경부선에 왜관역을 비롯해 약목역, 연화역, 신동역, 지천역 등 한꺼번에 5개 역을 거느린 자체가 칠곡이 물류 중심도시임을 알려주는‘증거’가 아니겠는가. 고속도로도 경부고속도로가 칠곡 중심부를 관통하고 있고, 경북 북부와 강원도를 거쳐 서울로 이어지는 중앙고속도로도 동명면과 가산면을 지나고 있다. 경남 마산에서 경북 북부와 충청·경기권을 거쳐 역시 서울로 통하는 중부내륙고속도로도 북삼읍과 불과 1㎞ 간격을 두고 있다.
국도도 마찬가지다. 국도 노선 하나 없는 시·군이 있는데 칠곡은 모두 5개 노선의 국도를 품고 있다. 전라도 군산에서 경주 감포로 이어지는 국도 4호선, 성주에서 왜관~구미로 이어지는 국도 33호선, 대구에서 안동으로 가는 국도 5호선, 천평삼거리에서 국도 5호선과 갈라져 상주로 이어지는 국도 25호선, 왜관에서 구미로 이어지는 국도 67호선 등이 바로 대표선수들이다. 국도와 비슷한 국가지원지방도로(약칭 국지도)도 국도와 고속도를 사이에 두고 역시 거미줄이다.
낙동강, 영남대로, 철도와 고속도로, 국도로 대표되는 사통팔달 칠곡의 완결판이 바로 물류중심도시 칠곡이다. 그 완결판의 핵심은 바로 영남권 내륙화물기지다. 전국 5대 권역의 거점 물류기지다. 내년 완공을 목표로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었다. 칠곡 지천면 연화리 일원 45만5천㎡부지에 복합화물터미널과 내륙 컨테이너기지 등이 들어선다. 영남권 내륙화물기지는 향후 대구·경북권과 경남 서부 지역의 화물을 처리하는데, 본격적인 운영에 들어갈 경우 4천700억원의 생산 유발 효과와 3천600명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7천명의 인구 증가 효과도 거둔다고 한다.
영남권 내륙화물기지와 함께 칠곡을 대표하는 물류 시설은 현대자동차 복합물류센터다. 지난해 완공됐다. 17만㎡로 전국을 넘어 동양 최대 규모다. 왜관읍 삼청리에 있는 현대자동차 물류센터는 1만7천대의 자동차를 동시에 하차할 수 있고, 매월 7천대의 차량을 출고하고 있다. 물류센터는 당초 달성군 구지산업단지에 있던 것을 칠곡군이 유치했다. 유치 당시 칠곡군과 대구시, 충북 괴산군이 각축전을 벌였으나 거미줄 칠곡의 벽을 넘지 못한 것이다.
어쩌면 영남권 내륙화물기지와 현대자동차 복합물류센터는 낙동강과 영남대로가 준 선물이다. 이들 뿐이랴. 민간 물류 시설들도‘칠곡행’열차에 잇따라 몸을 실었다. 대구·경북 일원에 식자재를 공급하는 삼성에버랜드 물류센터가 일찌감치 왜관읍 삼청리에 자리 잡았고, 인근에 GM대우 출고센터, 신세계 푸드시스템 영남물류센터, 하이마트 동부물류센터, 진로 왜관물류센터 등도 위치했다. 중앙고속도로를 끼고는 GS리테일 칠곡물류센터와 스머프치킨 물류센터가 있고, 경부고속도로 인근에도 패밀리마트 물류센터 등이 자리하고 있다. 현재 칠곡에 자리한 민간 물류시설만 15개이며, 영남권 내륙화물기지 완공과 함께 추가 입성을 꿈꾸는 시설도 적잖다.
음양오행설에서 지금은 ‘물의 시대’라고 한다. 물은 바로 흐름이다. 유추하면 물은 곧 물류이기도 하다. 칠곡은 지금 물류의 중심에 서는 꿈을 이뤄가고 있는 것이다. 글 이종규기자 칠곡·조향래기자 사진·정운철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