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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산리(機山里)
일동면의 면소재지로 본래는 영평군 일동면 지역으로 틀미 또는 기산리라 하였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때 기산리라 하고 포천군 일동면에 편입시켰다. 1989년 6월 30일 2리와 3리에서 6리와 8리가 나뉘어져 현재 여덟 개의 행정리가 있으며 전통적으로 뿌리를 내리며 살고있는 성씨는 전주이씨(全州李氏)와 김해김씨(金海金氏), 청송심씨(靑松沈氏), 밀양박씨 (密陽朴氏) 등이 있으며"기산"은 옛날에 비단을 짜는 직기(織機)인 베틀에서 나온 이름이며 기산리의 앞산이라고 할수 있는 금주산(金珠山)의 옛 이름인 錦珠山이 비단을 상징하는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 금주산
기산리와 영중면의 경계에 위치한 산으로 569m의 그리 높지않은 산이지만 일동면의 주민에게는 매우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다. 청계산과 더불어 동서(東西)로 시내를 감싸안아 바람막이 구실을 할뿐 아니라 주민의 건강과 체력단련의 등산코스로 많이 이용되고 있다.
금주산(金珠山)은 본래 錦珠山이었다. "錦珠" 라는 의미는 비단에 구슬을 수놓았다는 의미로 기산리라는 이름과 서로 보완관계의 지명이 된다. 김정호 선생의 ≪대동여지도≫에도 "錦珠山"으로 적혀 있어 이러한 해석을 뒷받침 해주고 있다.
참고로 금주산에는 일제시대에 영중광산이 있어서 반세기 동안 채금(採金)을 하였다고 하며 최근에는 4차선 도로건설이 되면서 금주산의 허리가 잘려나가 볼상이 사나워 졌다.
▶ 나분돌
현재의 일동시내를 일컷는 지명으로 생각되는데 "나분"은 비단을 짤 때 쓰는 실오라기를 말하는 "나부랑이"에서 나온 말이며 "돌"은 실을 매다는 추를 상징한다.
▶ 일동새마을시장
일동면 기산2리 189-2번지에 위치하고 1955년 12월17일 1000평의 부지네 설립되었으며 처음에는 기산시장이라 불리었으며 1955년 3월25일 설립된 이동시장과 운천시장에 이러 포천군에서 세번째로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 틀 미
현재 기산리가 위치한 지역을 말하며 기산(機山)의 우리말 표현인 틀뫼의 말음이 변화된 것이다.
▶ 청 계(淸 溪)
청계는 일동면 기산7리 청계산 자락의 큰골과 질마재계곡, 노채계곡을 말하며 행정구역으로는 일동면 기산7리에 속하나 지역적 특성상 독립된 취락이 형성된 곳으로 우리마을에 주민이 처음 정착하게 된 것은 약 220~230년전에 철원군 김화읍 사곡리에서 평해황씨(平海黃氏),진주강씨(晉州姜氏), 연일정씨(延日鄭氏) 등이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살면서 부터이다.
현재는 80여가구에 약 230여명의 인구가 살고 있으며 주된 소득원으로는 청계계곡을 이용한 음식장사와 최근들어 붐을 일으키고 있는 펜션, 민박이 있다.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풍습으로는 음력 9월초에 주민의 안녕을 위해 실시하는 산신제가 약 45년의 전통을 이어어고 있다.
그리고 이곳에는 깊은 골짜기 만큼이나 재미있는 전래지명이 많은곳으로 질마재계곡에는 질마재, 마당바위, 소말뚝바위, 귀웅소, 달밭골, 복홰골, 삼단폭포, 칡나무골, 실우봉 등이 있으며 큰골쪽에는 망구대, 설통바위골, 삿갓봉, 첫새골, 둘재샛골, 셋째새골, 작은음터골, 큰음터골, 새목두란지, 새목고개, 삼선탕 등이 지명이 전해온다.
청계라는 이름은 소의 마굿간에 있는 닭장을 말하는 것으로 청계의 의미는 푸른 닭 즉 靑鷄를 말하는 것인데 여기에서 말하는 닭의 색깔은 실재의 색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일동시내에서 볼 때 이곳의 위치가 동쪽이며 동쪽은 청룡(靑龍)을 말하는 것으로 靑鷄라는 말이 맑은 시내라는 뜻으로 잘못 전해오고 있는 것이다.
《대동여지도》에는 靑溪로 표기되어 있는데 이것은 靑鷄와 淸溪의 중간단계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조선시대 숙종때에는 천계산(天鷄山)으로 불리었으며, 청계저수지 아래에 위치한 대원사(大願寺) 절 뒤의 뾰죽한 바위봉우리가 닭의 벼슬에 해당된다.
※ 방위별 동물과 색깔
동(東)쪽은 청색(靑)이며 용(龍)
서(西)쪽은 백색(白)이며 호랑이(虎)
남(南)쪽은 붉은색(朱)이며 공작(孔雀)
북(北)쪽은 검은색(玄)이며 현무(玄武)
▶ 질마재
청계산 실우봉(失牛峰) 옆에 위치한 고개로 고개의 모양이 소의 등에 짐을 싣기위한 도구인 길마를 닮았다고 하여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길마재가 표준발음이며 고개 넘어는 가평군 상면 상판리라는 마을이 위치한다.
▶ 마당바위(場岩)
청계저수지 상류에 위치한 마당같이 넓은면적의 바위를 말하는 것으로 소가 여물을먹는장 소를 상징하는 것이며 이러한 내용을 의미하는 것으로 천자문(千字文)에 白(흰백) 駒(망아지구), 食(밥식,먹을식) 場(마당장,장터장)이란 글귀가 나온다.
이곳 마당바위에는 오랜 예날 누군가에 의해 새겨진 소의 여물통을 의미하는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지금은 저수지의 물속에 잠겨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없는 아쉬움이 있다.
▶ 실우봉(失牛峰)
청계산에 있는 가장높은 봉우리로 실우는 소(牛)를 잃어버렸다는 의미로 이것은 실우봉 자락에 풍수지리학적 용어로 소가 누워있는 형상, 즉 와우형(臥牛形)의 명당자리가 있음을 말하는 것으로 실우봉 자체에는 소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다.
따라서 이 산자락 어디엔가 와우형의 명당자리가 있음을 암시하는 지명이라 할 수 있으며 현재에는 발음이 변하여 시루봉(甑峰)이란 아무 의미도 없는 이름으로 불리우고 있다.
▶ 싸리고개
일동시내의 기산리와 화대리의 경계에는 청계산에서 내려오는 하나의 산줄기가 있고 그 중간에는 세 개의 고개가 있는데 그 중 청계쪽으로부터 두곳의 고개는 경운기가 다닐 수 있는 정도의 비포장 도로이고 가장 아래에 위치한 일동시내를 관통하는 47번 도로의 고개가 가장 크고 개발이 잘된 곳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재 47번 국도가 지나는 가장 큰 고개를 싸리고개라고 알고 있는데 싸리고개의 원조는 가장 위쪽에 위치한 고개라고 전해온다.
옛날에는 사람들이 이고개를 넘어 청계산에서 내려오는 냇물을 건너 "일명" 돼지산소라 부르는 곳으로 넘어서 왕래를 하였으며 조선 초대임금인 태조 이성계도 함흥에서 한양으로 돌아올 때 이곳으로 지나갔다고 한다.
이 고개를 싸리고개라 부르게 된 것은 이 산줄기가 청계산 실우봉이 상징하는 소의 고삐를 상징하는 것으로 고삐를 예날에는 사리라 불렀는데 이것이 발음이 변하여 싸리나무 고개란 전혀 다른 의미로 불리게 된 것이다.
싸리고개는 일동시내의 등뼈역할을 하면서 북쪽의 찬바람을 막아주는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으며 예전부터 일동면(一東面)에는 상사(喪事)가 나면 꼭 삼초상(三初喪)이 나는데 그 이유가 바로 이 싸리고개가 세 번 끊어졌기 때문에 그렇다는 이야기가 있다.
▶ 칡나무골
실우봉 아래에 있는 골짜기 이름으로 칡은 소의 먹이를 상징하는 것으로 와우형(臥牛形)을 상징하는 지명의 하나이며 실재로도 이곳에는 칡이 많아 자연의 신비감을 느끼게 해준다.
▶ 노채고개
청계저수지 우측으로 약수터를 지나 가평군 상판리 쪽으로 넘어가는 고개이름으로 이 고개는 차량이 다닐 수는 있지만 비포장이고 비만 오면 유실리 많이되어 많이 사용되지는 않는 도로이다.
이 고개를 노채고개라 부르게 된 것은 이 고개 맞은편에 금반옥배형(金盤玉盃形), 즉 술상과 술잔모양의 명당자리가 있음을 상징하는 것으로 안주를 집어먹는 놋쇠젓가락 즉 놋저의 발음이 변화된 것이다.
▶ 신학약수(神鶴藥水)
노채고개로 오르는 중턱에 위치한 약수 이름으로 십여년전 한대사(韓大師:한동준)라는 분이 이곳을 개발하고 약수터의 뒷봉우리가 학(鶴)의 부리처럼 생겼다 하여 지은 이름이며 지금도 약수터 상단에는 그분의 친필로 새겨진 조그만 비석이 새겨져 있으며 물맛이 좋기로 소문이 나서 지금은 일동지역은 물론 서울, 인천 등지에서 약수물을 마시러 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 청계산과 청계호
일동면 기산리에서 동쪽으로 3km정도 떨어진 곳에 청계산이 있고 그 계곡 밑에 자리잡고 있는 광활한 호수를 청계호(淸溪湖)라 한다.
1979년에 완공한 이 호수의 제방길이는 150m에 이르며 높이는 25.8m, 만수시(滿水時) 저수량이 100여만톤이나 되는 호수이다. 수정같이 맑고 오염없는 물은 보는사람마다 뛰어들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게 하는가 하면 물에잠긴 청계산의 모습은 아름답고 웅장한 한폭의 그림이 아닐 수 없다.
이 호수에는 오래전에 방류한 치어 50,000마리가 현재는 월척이 되어 물살을 가르며 뛰놀고 있어 강태공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경향각지의 태공들과 탐승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경승지로 부각되고 있다.
이 호수의 수원(水源)을 이루고 있는 청계산은 해발 849m의 백운산(白雲山) 래맥(來脈)으로 일동면 동쪽을 남북으로 병풍처럼 가로막아 가평군과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울창한 숲과 계곡마다 흐르는 맑은물은 옥수(玉水) 그 자체이다.
산자락에 펼쳐진 기산벌의 농업용수로 이용되어 풍요로운 수자원으로도 크게 기여하고 있는 청계산과 청계호의 천혜적(天惠的) 자원을 일동주민 모두가 아끼고 보전하여 항상 깨끗하고 맑은 환경으로 간직하여야 할 것이다.
▶ 똥통바위
일동종합고등학교 우측개울 건너에 커다란 바위 봉우리가 솟아있고 그 아래에는 수많은 크고작은 바위와 돌들이 깔려있는 곳으로 옛날에 지나가더 중이 똥을 싸다 떨어져서 이러한 이름이 생겼다는 이야기가 전해오는 곳이다.
똥통바위라는 이름이 생긴 이유는 이곳에 금계포란형(金鷄包卵形) 즉 닭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의 명당자리가 있음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똥은 누렇고 누런 것은 황금이며 황금은 서쪽을 의미하고 서쪼은 닭(酉)을 말하는 것이다.
일동시내에서 보면 똥통바위는 서쪽으로 동쪽에 있는 청계와 구분이 되는 것이다.
※ 방위(方位)와 동물
동(東)은 토끼(卯), 서(西)는 닭(酉), 남(南)은 말(午), 북(北)은 쥐(子)
▶ 흰바위
똥통바위의 북쪽 개천가운데 있는 바위로 백(白)은 오행으로 서쪽을 나타내며 동물로는 닭을 상징하는 것으로 똥통바위와 연계가 있는 이름이다.
▶소 야(巢 也)
똥통바위 서남쪽에 인접한 마을로 "소야(巢也)"는 새의 둥지라는 말로 지역에따라 서야, 소이 등으로 발음이 변한곳도 있으며 이곳에서는 똥통바위가 상징하는 닭의 둥지를 말하는 것이다.
▶ 해방촌(解放村)
일동초등학교 뒤편과 소야 중간쯤에 위치한 곳으로 8.15 해방 이후에 월남한 주민들이 주로 모여 살게되어 이러한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 말 미
일동시내에서 서울쪽으로 가다보면 삼거리 우측에 있는 작은 마을이며 마산(馬山), 말무덤 등으로 불리는데 이러한 이름이 생긴 이유는 풍수지리학에서 말하는 갈마음수형(渴馬飮水形), 즉 목마른 말이 물을 마시는 형상의 명당자리가 있음을 상징하는 것이며한가지 재미있는 일은 이곳 말미에서는 다른가축은 잘되지 않아도 양계(養鷄)만큼은 잘된다고 한다.
예날에 닭장은 마굿간에 만들지 않았던가?
▶ 진사래
일동초등학교 맞은편에 위치한 마을이름으로 "말미"가 상징하는 말의 고삐를 말하는 "긴사리"의 발음이 변화된 것이다. "진사래"는 사리고개와 같은 의미이지만 가까운 곳에 같은 이름이 중복되는 것을피하려는 의도로 볼수 있으며 이와같은 이름은 다음과 같은 옛시조에서도 나타난다.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소치는 아이는 상기아니 일었느냐
재너머 사래긴밭 언제갈려 하느냐
이처럼 시조에도 나오는 "사래"는 밭고랑을 뜻하기도 하지만 밭고랑 모양이 소나 말의 고삐인 "사리"의 모양과도 같음을 알 수 있다.
▶ 질고지(길고지)
진사래 뒷편에 위치한 곳으로 말을 말을 기르는 마굿간(마곳간)을 의미하는 것이다.
▶ 덕고개
말미 맞은편에 위치한 곳으로 "덕"은 옛날에 닭장을 말하는 것으로 옛날에는 닭장을 마굿간에 지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 배 리
덕고개 아래에 있는 마을 이름으로 "배리"는 닭장속의 병아리를 상징하는 것이다. 즉 "병아리"가 "비아리"에서 다시 "배리"로 발음이 변화된 것이다.
▶ 샛 말
배리와 인접한 곳에 위치하며 새가 있는 마을이라는 의미인 "새마을"이 줄어서 새말로 다시 샘말이라는 전혀다른 이름으로 변화된 것이며 인접한 덕고개와 배리가 의미하는 닭과 병아리가 새(鳥,鳳,禽)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 괸 돌
기산삼거리 남쪽에 있는 마을로 예전에 길가운데 고인돌이 있었다 하여 고인돌이란 이름이 줄어서 발음이 변화된 것으로 현재는 고인돌의 흔적을 찾을수 없는 아쉬움이 있다.
▶ 생 이
기산리와 길명리의 경계에 있는 이른바 생이 고개를 넘어가다 보면 우측 골짜기쪽으로 금주산 자락아래 자그마한 농가가 아늑하게 자리잡고 있는 곳으로 "사양리" 또는 "사향이" 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사향(麝香)이란 원래 사향노루의 분비물을 말하는 것이 입으로 전해오면서 "사양리→사양이→생이"로 변화된 것이다.
이러한 이름이 생기게 된 것은 이곳에 갈록분애형(渴鹿奔涯形), 즉 목마른 사슴이 물을 마시러 물가로 달려가는 형상의 명당자리가 있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지명이라고 하겠다. 따라서 "생이"는 "사향리(麝香里)"라고 부르는 것이 정확한 이름이라 할수 있다.
그리고 이곳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온다
옛날 이 마을의 어떤사람 [산소의 비문을 보면 송씨(宋氏) 성을 가진사람]이 사향노루의 배곱 형상을 한곳에 묘를 쓰고는 여덟명의 판서가 났다고 한다.
훗날 이고장의 한사람이 지나가는 스님에게 산소자리를 하나 잡아달라고 하자 스님은 이골짜기가 끝나는 곳쯤에 이러이러한 곳이 있을터이니 그곳에 산소를 쓰되 석자(三尺)만 파되 만약 바위가 나오면 바위를 치우지 말고 그냥 쓰라고 하였다.
이 사람이 스님이 알려준 곳을 찾아 산소자리를 잡고 땅을 파내려 가는데 석자쯤 파니까큰 바위 가 나타났다. 그렇지 않아도 너무 얕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던터라 스님의 당부를 무시하고 바위를 들어내자 그곳에서 피가 흘렀고 그것을 본 사람들은 혼비백산을 하여 모두 도망을 갔다. 이런일이 있은후 여덟판서가 난 집안도 서서히 쇠퇴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몇 년전까지만 해도 이곳에는 당시의 전설을 증명하듯 상석(床石) 등이 흩어져 있었는데 최근에 방문해 보니 어디론가 치워져 흔적을 찾아볼수가 없었다. 이곳은 노루의 머리에 해당하는 곳으로 머리가 깨진 사향노루의 배꼽은 아무런 힘을 쓸수가 없는 것이다. 글고 이곳 묘역(墓域)의 비석 등에는 육이오때의 것으로 보이는 총탄 흔적이 여러군데 나잇어 아픈 역사의 상처를 말해주고 있다.
▶ 범바위
생이마을로 들어가는 입구 즉 생이고개를 넘자마자 좌측에 생이 쪽을 바라보는 형상으로 서 있는 바위를 말하는데 이것은 범(호랑이)이 숲속에서 나오는 노루를 잡아먹으려고 지키고 있는 형상을 의미하는 것이다.
일반사람들은 범이 길목을 지키고 있으면 노루가 잡혀먹힐테니가 못쓰게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이것은 실재의 호랑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풍수지리학에서 말하는 음양(陰陽)의 이치로 생각하면 된다. 즉 노루의 입장에서 보면 범이 길목을 지키고 있음으로 헤서 살아남기 위해서 자신의 힘과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 거물개봉
진사래 남쪽에 위치한 봉우리로 새가 춤을추며 날아온다는 의미인 고무래(高舞來)를 아궁이에서 불덩이를 긁어내는 도구인 고물개로 잘못 해석을 한 것이 다시 거물개라는 아무 의미없는 이름이 된것이다.
▶ 금오작골
오동나무와 거문고(琴梧), 또는 오동나무숲에 있는 새라는 의미인 (禽梧)의 두가지 의미로 해석할수 있으며 비봉형(飛鳳形)의 명당자리가 있음을 말하는 것으로 비봉형에는 포란형(抱卵形)과 귀소형(歸巢形)이 있는데 포란형은 암놈이고 귀소형은 숫놈이다.
★ 유동리(柳洞里)
화현면과 경계에 위치한 곳으로 본래는 버들골, 또는 유동이라 하였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때 기산리 일부를 병합해서 유동리라 하고 포천군 일동면에 편입시켰다. 두 개의 행정리(行政里)가 있으며 창원유씨(創原柳氏)와 우계이씨(羽溪李氏), 인동장씨가 12대에 걸쳐사는 전통적 토박이 성씨이며 주된 산업으로는 논농사와 인삼이 있다.
유동리라는 지명은 "버들골"이라는 말을 한자로 바꾸어 쓴 것으로 이러한 지명은 유동리의 주산(주山)인 옥녀봉(玉女峰)에 의한 것으로 이산 아래에는 옥녀산발형(玉女散髮形)의 명당자리가 있으며 옥녀는 몸과 마음이 옥처럼 깨끗한 여인을 뜻하는데 여인이 머리를 풀어 아름다운 머리카락이 바람에 나부끼는 모양을 버들가지가 휘날리는 모양에 비유한 것이며 이것은 베틀을 의미하는 기산리(機山里)와 비단을 의미하는 금주산(錦珠山)과 연관이 있으며 비단을 짜는 아가씨를 의미하는 것이다.
▶ 원통산(圓通山)
유동리와 화현면의 동쪽에 위치한 표고 567m의 산으로 이산의 서쪽 기슭에는 높이 8m, 폭 4m 3단계의 층암폭포를 이루고 있는 원통폭포가 있다. 폭포소리도 우렁차지만 기송노수(巨松老樹)로 우거진 숲의 경치도 아름다워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숙연케 한다. 이러한 폭포가 영평8경에서 빠진 것이 원통해서 원통산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 선달재
옛날에는 과거에 급제하였으나 아직 벼슬을 하지못한 사람을 선달(先達)이라고 했는데 이곳은 그러한 뜻이 아니라 닭의 벼슬모양이 부채(扇:부채선)와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 양지편
선달재와 인접한 곳으로 닭이 우니 아침이 밝아온다는 의미이며 편이란 말은 방향을 의미하는 어느쪽이란 의미이다.
▶ 용호동
양지편 북쪽에 위치한 마을로 닭장을 침입하는 여우를 상징하는 것이다.
▶ 구렁고개
기산리와 유동리의 경계에 위치한 고개로 맞은편 선달재가 의미하는 닭을 잡아먹으러 닭장을 침입하는 구렁이를 상징하는 것이다.
▶ 수리동
선달재와 인접한 곳에 위치하며 닭과 상대적 관계인 매나 수리를 상징하는 것이다.
▶ 가는골(細谷)
새가 있는 골짜가는 의미인 새골을 세골로 발음이 변화된 것을 한자로 적다보니 가는골이란 전혀 의미없는 이름이 된 것이다.
▶ 대추나무골
새가 있는 골짜기라는 의미인 鳥谷을 棗谷으로 잘못 해석하여 대추나무 골이란 이름이 생긴 것이다.
▶ 무시골
새가 숲에서 춤을 춘다는 의미인 무수골(舞樹谷)의 발음이 변화된 것이다.
★ 길명리
영중면과 경계에 위치하며 본래는 길명동이라 불리었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때 포천군 동촌면의 지현리 일부를 병합해서 길명리라 하고 포천군 일동면에 편입시켰다. 전통적으로 뿌리를 내리고 사는 성씨에는 전주이씨(全州李氏), 김해김씨, 청주양씨(淸州楊氏) 등이 있으며세 개의 행정리(行政里)가 있으며 길명리라는 이름은 닭이 울어 여명(黎明)의 새날이 밝아오며 날이 밝는 것은 길한 징조라는 의미이다.
▶ 두리동
유동리와 인접한 곳에 위치한 곳으로 닭의 머리를 의미하는 "두유(頭酉)"가 "두류"로 다시 "두리"로 변화된 것이다.
▶ 맹개골
닭이우는 골짜기라는 "명계골(鳴鷄谷)의 발음이 변화된 것으로 닭의 형상이 있다는 것을 표현하는 지명의 하나이다.
▶ 사기점
금주산 동쪽의 맹재울 중간에 위치한 도요지가 마을이름이 되어 전해온 것으로 가마터 전체에는 10여년생 아카시아 나무가 우거져 있고 우측으로는 사철 마르지 않는 계곡물이 흐르고 있다. 가마는 20∼25도의 완만한 경사면에 축조한 오름가마로 장축은 동서가 20m이고 전체 면적으로 보아 1기가 형성되었다.
가마터의 윗부분은 6.25 이후 인위적으로 파괴 되었으나 아랫부분에는 검은빛의 소토와 함께 각종 백자편, 도지미편, 굽바침, 벽체편, 봉통석채가 널려있고 오른쪽에는 가마를 보호하려고 쌓았던 석축이 확인된다. 그릇은 대접이 주류를 이루는데 기종과 변조기법으로 보아 17세기 중엽이후에 민수용으로 운영되던 도요지로 보인다.
▶ 곰내미골
맹개골과 인접란 곳으로 새가 높이 날며 고개나 산을 넘어가는 모습을 말하는 고무(高舞)넘이의 발음이 변화되어 곰(熊)이라는 전혀 다른 의미가 된 것이다.
▶ 비선골(飛扇谷)
새가 날개를 부채모양으로 펼치고 날아가는 모습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곳에서는 인접한 두리동이 의미하는 닭을 상징하는 것이다.
▶ 말고개
두리동과 인접한 곳으로 닭장을 옛날에는 마굿간에 지었음을 상징하는 것이다.
▶ 장장골(獐藏谷)
생이와 인접한 곳에 위치하며 노루(獐)가 숨어있는 골짜기란 뜻에서 나온말이며 생이와는 암놈과 수놈의 관계라고 할수 있다.
▶ 꼭두바위
장장골 맞은편에 위치한 바위 이름으로 "꼭두"는 눈앞에 없는 사람이나 물체의 모습이 실제로 있는것처럼 보이는 환상(幻像)을 의미하던 옛말인 "곡두"가 변화된 것으로 장장골의 노루에게 적(敵)인 범(虎)이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며 인근에 있는 생이와 범바위의 관계와 같은 의미이다.
▶ 장방모루
장장골과 인접한 곳으로 "장방"이란 노루가 있는 장소를 뜻하고 "모루"는 산자락을 휘어 돌아가는 곳이라는 모퉁이를 의미하는 것이며 이곳을 돌면 지현교가 나온다.
▶ 쇠고개
정자골에서 비선골로 넘어가는 고개를 말하며 "새고개(鳥峴,鳥嶺)"의 발음이 변화된 것이다.
★ 화대리(禾垈里)
싸리고개를 경계로 기산리와 인접한 곳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때 사당리, 수입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화대리라 하고 포천군 일동면에 편입시켰다. 세 개의 행정리(行政里)가 있으며 나주나씨(羅州羅氏)와 전주이씨, 능성구씨(綾城具氏)가 전통적으로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으며 산업으로는 논농사와 소나 돼지를 기르는 축산업(蓄産業)이 있으며 전해오는 풍습으로는 음력(陰曆)10월2일 마을의 화합(和合)과 안녕(安寧)을 기원하는 산제(山祭)를 지내고 있다.
화대리라는 지명은 본래 꽃이 있는 장소 또는 터라는 의미로 여기에서 말하는 꽃은 이곳에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 즉 연꽃이 물에 떠있는 형상의 명당자리가 있음을 상징하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禾垈里는 花垈里로 고쳐써야 옳다고 생각된다.
▶ 지청말(芝靑洞)
지청말의 "지청"은 맑은 연못을 뜻하고 "말"은 마을의 준말로서 연꽃이 피는 연못을 상징하는 이름이다. 따라서 현재의 "芝靑洞" 은 池淸洞으로 고쳐서야 옳다고 본다.
▶ 운 담(雲 潭)
지청말과 인접한 곳으로 구름연못이란 뜻이며 "물움데미" 또는 "무른데미" 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물이 고여있는 작은 연못을 말하는 물웅덩이란 뜻으로 연꽃이 피는 연못을 상징하는 지명이다.
근래들어 이 지역에 온천(溫泉)붐이 이는것도 이러한 지명과 연관이 있다고 볼수 있다. 물웅덩이 연못에서 온천수를 계속 뿜어 올리며 수증기가 구름처럼 피어오르고 있으니 말이다.
▶ 무리울
다락에서 춤을 춘다는 의미인 무루울(舞樓鬱)의 발음이 변화된 것으로 "다락"은 높은곳에 있는 방(房)으로 새의 둥지를 상징하는 것이다.
▶ 고비골
골짜기에서 새가 난다는 의미로 무리울과 관계가 있는 지명이다.
▶ 송치골(松峙谷)
무리울에 인접한 곳으로 솔고개에 골짜기란 말이 덧붙은 것으로 학(鶴)과 관련되 명당자리가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 마 곡(馬 谷)
말이 있는 골짜기란 의미로 인접한 갈기(渴騎)와 연관이 있는 말이다.
▶ 다목동(한나무골)
마곡과 인접한 곳으로 말(馬)을 기르는 목동(牧童)을 상장하는 지명인데 나무가 많다는 의미인 多木洞(한나무골)으로 잘못 해석한 것이다.
▶ 불근덕고개
운담과 왼부리 사이에 있는 고개 이름으로 "붉은닭"이란 말이 변화되어 불은 언덕이란 뜻으로 전해온 것이며 지역에 다라 불은덕이 또는 불은데기 등으로 부르는 곳도 있다.
▶ 무당골
웬부리에 있는 골짜기 이름으로 불근덕이가 의미하는 닭이 춤을 춘다는 의미인 무달의달을 달단는 의미인 당(糖)으로 해석하여 무당이라는 전혀다른 의미로 해석한 것이다.
▶ 불당골
무당골과 같은 의미로 닭이 있는 골짜기라는 의미인 달골을 당골로 해석하여 불당이라는 전혀다른 의미로 해석한 것이다.
▶ 싸리고개
숫터에서 사직리로 넘어가는 고개를 말하며 기산리의 싸리고개와 같은 의미인데 이곳에서는 마곡(馬谷) 의미하는 말의 고비를 상징하는 것이다.
▶ 왼부리
숫터 동족에 있는 마으로 새의 주둥이를 말하는 것인데 이곳에서의 새는 인접한 연곡리의 제비를 말하는 것이다.
▶ 참물둔지
새가 있는 마을이라는 의미인 새마을이 새말로 발음되어 다시 샘말로 발음이 변한것을 샘물이 있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잘못해석한 것이다.
▶ 삼밭골
마곡과 인접한 곳으로 말(馬)은 옛날에 군사용으로 많이 사용되었는데 말을타고 싸운다는 의미인 마전(馬戰)을 대마(大麻) 즉 삼베를 심은 麻田으로 잘못 해석한 것이다.
★ 사직리(社稷里)
이동면과 경계에 위치한 마을로 본래는 영평군 일동면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때 수입리 일부를 병합하여 포천군 일동면에 편입시켰다. 네 개의 행정리(行政里)가 있으며, 논농사와 인삼, 낙농(젖소)이 주된 산업이며 양촌허씨(陽村許氏), 안산김씨(安山金氏), 연안차씨(連安車氏), 밀양박씨(密陽朴氏) 등이 대대로 살고있는 토박이 성씨이며 이 마을의 풍습으로는 10여년부터 남녀노소가 같이 참여하는 공동세배와 봄, 가을 안산(마을앞산)에서 마을의 평안을 위해 산제를 지내고 있다.
사직리라는 마을이름은 "사당말"이라고도 부르는데 지난날 국토신(國土神)을 모시던 곳을 사단(社檀), 오곡신(五穀神)을 모시던 곳을 직단(稷檀)이라 하여 이 둘을 합하여 사직(社稷)이라 했으며 , 고려시대 이전 삼국시대부터 전해오던 풍습이다.
이 마을에 사직리라는 이름이 붙게된 것은 조선시대 태조 이성계(李成桂)가 함흥에 머물다가 한양(漢陽)으로 돌아가는 길에 이곳에서 사직단을 차려놓고 제(祭)를 올렸기 때문이라 고 하는데 실제로 화인된 자료나 흔적은 남아있지 않다. 이것은 아마도 자그만 사당이 있던 것이 와전되어 이러한 이름이 생긴 듯 싶다.
▶ 조치미(조산, 조침리)
새가 있는 마을이라는 의미로 이곳에는 제비둥지형(燕巢形)의 명당자리가 있는데 조(鳥)는 새라는 의미이고, 치(致)는 이르렀다 또는 당도했다는 의미로 즉 새가 머물러 있다는 해석이 되며 조산(鳥山)은 새가 있는 산이라는 의미이다.
이곳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온다.
옛날 이곳 제비둥지 형상의 자리에 조상을 모신 집안의 대감 한사람이 어느 스님과 내기장기를 두었는데 대감이 이기자 스니의 한쪽귀를 베었다고 한다 . 이렇게 되자 스님은 아무리 내기장기라고 하지만 귀를 베인지라 속으로 큰 원한을 품고 그 고을을 떠났다.
몇 년이 지난후 그 스님이 고을에 다시 나타나서 이상한 소문을 퍼트렸다. 대감네 산소를 현재의 자리에서 한금정(사람의 키로 한길정도의 길이)만 올려다 쓰면 정승이 한명만 날것이 세명이 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소문은 금새 대감의 귀에 들어갔으며 대감은 욕심이 생겨 산소를 옮기기로 결심을 하고 작업을 하기 시작하였다. 어느정도 땅을 파내려가자 갑자기 "펑" 소리가 나더니 학(鶴)이 날아갔으며 스님은 후환이 두려워 고개를 넘어 도망을 가다가 피를 토하고 죽었다고 한다.
이것이 이곳에 내려오는 전설의 대략적인 내용이고 여기서 학(鶴)이라고 한 것은 실제로 땅속에서 학이 나왔을 리는 없고 땅속의 더운 기운이 갑자기 찬공기를 만나 하얀 안개같이 보였던 것을 과장하여 설명한 것이라 할수 있으며 실제로 이곳에는 전설의 내용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먼저 썼던 산소의 제절(분상앞의 절을 할수 있는 자리)의 흔적과 그위로 다시 만든 산소가 있다.
부연하는 이야기로 귀를베인 스님이 내기장기를 두고 이 마을을 떠난 후에 대감이 가족들에게 부탁하기를 앞으로 한쪽귀가 없는 스님이 와서 뭐라고 유혹해도 절대 속지말라고 했는데 그 스님은 나무를 귀모양으로 깎아 만들어 달고 나타나서 감쪽같이 속았다고 한다.
▶ 가칠고개
뱀말에서 조치미로 넘어가는 고개 이름으로 노래고개라는 의미인 가치(歌峙)에 고개라는 말이 합쳐져서 "가치고개"였던 것이 발음이 변화되어 지금의 "가치고개"가 된것이며 노래하는 것은 인접한 연곡리가 상징하는 제비를 말하는 것이다.
▶ 감투바위
앵바위 옆에 있는 바위 이름으로 감투의 의미는 옛날 벼슬하던 사람이 머리에 쓰던 것으로 우리가 보통 이야기 할 때 벼슬한 것을 감투를 썼다고 표현한다.
이 곳에는 금관옥대형(金冠玉帶形)이라는 명당 자리가 있다하여 이러한 이름이 생긴 것이며 머리에 쓰는 것은 관(冠)이요, 허리에 두르는 허리띠를 옥대(玉帶)라 부르며 원래의 발음은 감두(監頭)로 쓴다.
▶ 새 터
조침리와 인접한 곳으로 새(鳥)가 있는 장소라는 뜻으로 여기에서 말하는 새는 인접한 연곡리의 제비를 말하는 것이며 표현방법에 따라 새마을, 새골, 새내 등이 있다.
▶ 밸 말(배말, 뱀말)
뱀이 있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연곡리가 상징하는 제비둥지를 노리는 구렁이를 상징하는 것으로 뱀말의 발음이 변화된 것이다.
▶ 가운데고개
새터에 있는 고개 이름으로 "새고개(鳥峴)"를 "사이고개"로 발음하던 것이 "가운데 고개"라는 전혀 의미없는 이름이 된 것이다.
▶ 이장산(裏將山)
새터 서북족에 위치한 산으로 장군대좌형(將軍大坐形)의 명당자리가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 선바위(扇岩)
복골 동쪽에 있는 바위이름으로 인접한 불근덕고개가 상징하는닭의 벼슬리 부채와 같이 생겼다는 의미에서 생긴 이름이다.
▶ 속개들
구렁이 집터 서북쪽에 위치하며 닭의 둥지를 의미하는 소계(巢鷄)의 발음이 변화된 것이다.
▶ 큰소막골,작은소막골
새의 둥지가 있는 마을이라는 의미인 소말의 말을 말막자로 생각하여 이러한 이름이 생긴것이다.
▶ 성주골(城主谷)
성(城)의 주인이란 뜻으로 인접한 이장산의 장군을 의미하는 것이다.
▶ 활터고개,활터들
사당말에서 이동면의 연곡리로 넘어가는 고개를 말하며 활이나 화살은 엣날 군사들이 사용하는 무기의 일종이다.
★ 수입리(水入里)
일동면의 서북쪽에 위치한 곳으로 본래는 영평군 일동면 지역으로 옛날지명은 갈기라 불리었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때 산내지를 병합하여 수입리라 하고 포천군 일동면에 편입시켰다. 네 개의 행정리(行政里)가 있으며 해주최씨(海州崔氏)와 전주이씨, 김해김씨 등이 전통적으로 살고있는 토박이 성씨이고, 산업으로는 논농사가 주된 산업이다.
옛날에는 "갈기(渴騎)" 또는 "가계"라고 불리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수입리로 불리게 되었다. "水入"은 물이 들어오는 곳이라는 뜻인데 지금은 이곳이 온천개발로 많은 수입(輸入)을 올리고 있어 한자표현은 다르지만 같은 내용이 된것이다.
▶ 갈 기(渴 騎)
수입리의 예전 이름으로 목마른 말이 물을 마시는 형상인 갈마음수형(渴馬飮水形)의 명당자리가 있음을 상징하며 맞은편에 있는 이장산이 말을 탄 장군이 된다.
▶ 사래골
윗갈기 서쪽에 있는 골짜기 이름으로 기산리의 진사례와 같이 말의 고삐를 상징하는 것이다.
▶ 닥밭골,당나무골
가운데 갈기에 있는 골짜기 이름으로 갈기가 의미하는 마굿간에 닭장을 말하는 것이 닥나무 밭이라는 의미로 발음이 변화된 것이다.
▶ 곰네미고개
가운데 갈기에서 영중면 금주리로 넘어가는 고개 이름으로 새가 하늘높이 춤을추며 고개를 넘어간다는 "고무(高舞)넘이"라는 말이 변화된 것이며 여기에서 말하는 새는 닭밭골이 상징하는 닭을 지칭하는 것이다.
▶ 무나리고개, 무나리골
새내지에 위치한 고개 이름으로 새가 춤을추면서 날아온다는 의미인 무내리(舞來里)의 발음이 변화된 것이다.
▶ 방개골
곰네미와 인접한 곳으로 가축(家蓄)을 놓아 기르는 것을 방사(放飼)라 하듯 "방계"는 닭을 산야에 풀어 기른다는 "방계(放鷄)"의 발음이 변화된 것으로 인접한 닭밭골의 닭을 지칭하는 것이다.
▶ 신관평
곰네미와 인접한 곳이며 "신"은 새를,"관(官) 닭의 벼슬을 상징하는 것으로 닭이 있는 들이라는 의미가 된다.
▶ 옻나무우물
아랫갈기에 위치하며 군사들이 적을 공격한다는 의미인 칠정(征)을 옻나무 우물이라는 전혀다른 의미로 해석한 것이다.
▶ 깃대봉
갈기와 영중면의 경계에 있는 305m 높이의 봉우리이며 옛날 군사들이 출전(出戰)할 때 앞세우고 나가던 깃발을 상징하는 것이다.
▶ 둔지벌
갈기 앞에 있는 들 이름으로 맞은편에 이장산이 의미하는 장군이 있으므로 그 앞에 부하인 군사들이 모여 있음을 상징하는 것이다
▶ 산내지(새내지)
삼팔교를 지나 성동(城洞)쪽으로 1km정도 가다보면 좌측에 사방이 산으로 아늑하게 둘러 싸인 자그마한 마을을 말하는 것으로 새가 안쪽에 있다는 의미인 새내지의 발음이 변화된 것으로 이곳에는 꿩이 엎드려 있는 형상인 복치형(伏雉形)의 명당자리가 있음을 의미하며 이곳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온다.
이마을에 살던 어떤 사람이 이곳에 산소를 쓰는데 지관(地官)이 이르기를 땅을 파다가 큰돌이 나타나면 그돌을 치우지 말고 그대로 쓰라고 부탁을 하였다. 그런데 땅을파던 사람들이 돌이 나오니까 그대로 쓰면 너무 얕은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돌을 들어내자 갑자기 날씨가 흐려지고 그곳에서 학이 날아갔으며 지관도 사라졌다고 한다. 그리고 이곳에 산소를 쓴 집안도 후손이 끊기고 망하였다고 한다.
▶ 기룡소
마을사람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새내지 안에는 연못이 있었으며 이 연못의 용이 승천하지 못하여 이지역에 큰인물이 나지않는다는 전설이 있는데 그것은 "비룡소(飛龍巢)"의 발음이 변화된 것으로 비룡은 풍수지리학에서 모든 날짐승 예를들면 학(鶴), 봉황(鳳凰), 기러기(雁), 닭(鷄), 매(鷹), 수리(鷲), 꿩(雉) 등을 말하는 것이며 소(巢)는 새의 둥지를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용이 승천하지 못해서 큰인물이 나오지 않았다는 것은 꿩 즉 비룡(飛龍)의 자리가 망가졌다는 의미로 보는 것이 옳을 듯 싶다.
그리고 이러한 전설을 뒷받침 해줄만한 연못의 흔적도 찾아볼수 없지 않은가?
▶ 수리바위(수리봉)
새내지 맞은편에 있는 봉우리로 꿩과 상대적 관계인 매나 수리를 상징하는 것이다.
▶ 와룡암(臥龍岩)
산내지의 영평천과 수입천이 합류되는 하류에 있는 기암으로 영평팔경(永平八景)의 하나인데 바위자체의 기이함 보다는 주위의 풍경이 절승이다.
형태가 누워있는 용처럼 생겨, 상체는 수면위에 떠있다. 바위의 길이는 50미터나 되며 평시에는 수면위에 떠 있다가도 물이 줄면 차츰 용신이 나타나서 마치 승천하는 요과 같다고 한다.
이 기암의 이름은 고려시대의 문헌에도 나와있는 것으로 보아와룡이라는 명칭은 훨씬 이전에 생겼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홍수예방 조치로 그 자취를 찾아볼수가 없다.
▶ 절 골(사 곡)
가운데 갈기와 영중면 금주리의 문아리 사이의 고개이름으로 갈기가 상징하는 말(馬)의 고삐인 사리를 절사(寺)자로 잘못 해석한 것이다.
▶ 활 터
둔지벌에 위치하며 둔지가 군사들의 주둔지를 상징하는 것으로 볼때 황터는 옛날 군사들이 사용하던 무기의 일종이 활(弓)을 상징하는 것이다.
첫댓글 우리 카페지기님 일동면의 지명유래를 알수 있는 좋은 자료 올려주셔서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계속 좋은 자료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