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명을 녹두라고 쓰니 녹두장군을 떠올리는 분들이 있는 것 같다.
나는 녹두알 그 작은 열매의 연두빛이 좋다.
전에는 어린왕자라는 필명을 썼었는데 아이들이 부쳐준 별명이었다.
40 넘고부터는 스스로 쑥스러워 하다가
얼마 전 오래 알고 지내는 후배가 "형보면 녹두장군 생각나요"하던
격려사 내지는 덕담을 듣고 감히 녹두라 쓰기 시작했다.
존경하는 분이긴 하지만 내 어찌 녹두장군씩이나 꿈꾸랴.
그 작은 알에서 나온 녹두 묵의 흰빛도 참 좋다.
오늘 보충수업이 끝나는 날.
고 3 수업을 하다보니 나 지신도 마음이 쪼그라들기도 하는데
과감하게 선언했다.
1900년대부터 1970년대 소설 정리한다고...
참고서가 아닌 작가의 생애와 작품 소개,
그리고 사진과 인터뷰 등이 실린
고교생을 위한 문학사전이란 괜찮은 잡지 같은 교재를 하루에
30 쪽 넘게 같이 훑는다.
다음 시간 예고하면 절반 정도의 학생들은
대충 보고오는 착한 학생들이다.
나의 말을 줄이자.
간단히 10분 정도 정리하고
학생들이 20분 정도 추가로 읽고 정리한다.
나머지 시간은 퀴즈 식의 문제 정리.
개인 별로도 하고
분단별로도 하고, 전체를 대상으로 하기도 하며
냉면, 아이스크림, 사탕 등을 열심히 걸었다.
에그그, 20분 각자 정리 시간.
산 만한 녀석들이 빨대사탕 하나씩 입에 물고
차마 못졸고 뒤적이며 정리하고 읽는 모습들이라니...
분단별로 냉면산다며 퀴즈할 때면 옆반 생각해서
박수나 환호성은 감점 처리해야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 좋은 것은 작가들의 삶을, 그리고 시대를 들여다보며
뭐가 느낌이 온다는 것이다.
나도 새삼스런 감동을 느낄 때가 있는데
문제풀이에 바쁘던 녀석들은 어떨 것인가?
내가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최소한 1시간에 20-30분이라도 일방적으로 떠들지 않았다는 점이다.
오늘 마지막 수업을 앞두고 어제 밤 산 초콜렛을 냉장고에 잘보관했다.
마음이 조금씩 오가는 교실.
내가 흐뭇한 느낌이 없을 때
아이들은 얼마나 8시부터 밤 9시까지의 강행군에
지치고 힘들 것인가?
오늘 수업을 마치면 미국. 캐나다를 향해 비행기를 탄다.
편안한 마음으로 천천히 둘러보고 싶다.
어차피 얼마나 많이 볼 수 있겠는가?
눈길이 오래가는 것이 있으면 오래 눈길을 주고
눈 감고 자고 싶으면 바둥거리지 않고 눈을 붙이고 싶다.
<작게 적게>란 마당의 제목이 좋아 들어와 횡설수설했는데
번지수 잘못 찾은 건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