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사람들을 불러모으는 매력적인 도시 로마(ROME) |
ROMA 를 거꾸로 하면 AMOR!!
사랑의 도시 '로마'는 한마디의 말로 설명하기 힘든 독특한 매력을 소유한 도시이다. 도시 전체가 커다란 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는 로마는 옛 유적을 그대로 보전한 채 현대문명과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다. 관광객들에게는 소매치기와 좀도둑으로 악명이 높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는 매년 수많은 관광객으로 붐빈다.
전설에 의하면 로마는 군사와 전쟁을 주관하는 신(神)인 마르스(MARS)와 인간인 레아 실비아(Rhea sivia)의 사이에서 태어난 쌍동이 형제 레무스(REMUS)와 로물루스(ROMULUS)에 의해서 건국 되었다고 한다. 태어난후 티베레강에 버려진 쌍둥이 형제를 암늑대가 젖으로 키웠다고 전해지며, 우리나라의 단군신화와 같은 로마를 세운 시조로 널리 알려진 에피소드이다.
티베레강 하류에 접해 있으며, 대부분이 구릉지대로 이루어져 있는 이탈리아의 수도로 7개의 언덕을 중심으로 발전한 '영원의 도시'이다. 이탈리아의 정치, 문화의 중심지이며, 특히 바티칸은 카톨릭의 총본산으로 카톨릭과 관계된 국제적인 연구·교육기관이 자리하고 있다. 로마의 주요산업은 관광업으로 연간 천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이곳을 찾는다. 고대부터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듯이 육지, 수상교통의 중심지로 로마를 기점으로 이탈리아의 모든 교통이 발달되어 있다. 한국과는 8시간정도가 느리다. 로마는 여름에는 고온건조하고, 겨울에는 발칸 반도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의 영향으로 가끔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기도 한다. |
대형 원형 경기장, 콜로세움(Colosseum) |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알려진 로마의 상징이며 거대한 원형경기장으로 당시 로마인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콜롯세움 주변은 콜롯세움과 포로로마노등의 고대로마의 유적이 많이 남아있다. 네로의 궁전의 뜰에 있었던 인공연못에 AD 72년에 건설을 시작하여 80년에 완성된 대형 원형투기장 겸 극장이다. 생사를 겨누는 검투사와 짐승과의 격투기등이 여기에서 개최되었고 80개 정도가 되는 출구에 5만 5000명도 넘는 관객이 입장할 수 있는 경기장이었다. 네로 통치시대를 영화로 한 영화 "쿼바디스"에서는 기독교도의 박해장으로 사용된 콜롯세움 장면을 잘 보여준다.
고대 로마 유적지 중 가장 규모가 큰 것으로 최대지름 188m, 최소지름 156m, 둘레 527m, 높이 57m의 4층으로된 타원형 건물이다. 콜로세움은 거대하다는 뜻으로 근처에 거대한 네로상이 있어서 이름 지어졌다는 전설이 있다. 1층은 토스카나식, 2층은 이오니아식, 3층은 코린트식의 아치가 장식되어 있다.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려면 입구 반대편에서 엘리베이트를 이용하면 된다. |
대전차 경기장 |
이 장방형의 길쭉한 건물은 시민들의 즐거움을 제공해 주기 위해 지어진 전차경기장으로 벤허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1인승 이륜 전차 경기와 검투사들(글래디에이터)의 검투가 이루어진 곳이다. 지금은 무너진 흔적만 남아있는데, 그 크기가 너비 664mX124m에 이른다. 이 건물은 로마에 있는 가장 오래된 건축물 중의 하나로 과거에는 25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경기장이었다. 로마의 역사와 견줄 수 있을 정도이며, 중간 중간에 계속 증축되었다. 이 경기장은 에트루스칸 왕 때, 타르키니오 프리스코에 의해 만들어 것으로 추정되며, 트라얀(Trajan)에 의해 개축되었고, 카라칼라(Caracalla )가 확장공사를 하였다. 현재는 이 지역이 공원과 폐허만 남아 있지만 콘스탄티누스도 개축 공사에 참여하여 이 당시에만 20만명을 수용했었다고 한다. |
동전을 던져 사랑을 이루는 트레비 분수(Fontana di Trevi) |
교황 클레멘스 13세에 의해 분수 설계 공모전이 이루어졌으며, 이때 당선된 니콜라 살비의 작품이다. 1732년에 착공하여 1762년에 완성되었으며, 분수의 아름다운 배경은 나폴리 궁전의 벽면을 이용한 조각으로 이루어져있다.
로마시대에서 볼 수 있는 바로크 양식의 마지막 걸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분수 중앙에 자리한 해마가 끌어올린 커다란 조개 위의 냅튠신과 트리톤신의 대리석 조각들은 브라치의 작품이다. 이 분수의 물은 '처녀의 샘'이라고 불리우는데, 이는 전쟁에서 돌아온 목마른 병사에게 한 처녀가 샘이 있는 곳을 알려주었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는 샘을 수원지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분수에 동전을 던지면 다시 로마로 돌아올 수 있게 된다는 전설을 갖고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로마로 돌아오길 소원하며 동전을 던지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스페인 광장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에 있으며, 등뒤로 동전을 던져 한번 던지면 로마를 다시 찾을 수 있고, 두 번 던지면 사랑이 이루어지고, 세 번 던지면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한다는 전설이 있는 분수로 이곳의 동전은 정기적으로 수거하여 자선사업에 쓰인다. |
진실과 거짓말을 가려내는 진실의 입 |
보카 델라 베리타 광장에 한켠에 자리잡고 서있는 코스메딘 산타 마리아 성당의 입구 한쪽 벽면에 진실을 심판하는 입을 가진 얼굴 모양의 원형석판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진실의 입이다. 이 원형 석판은 해신 트리톤의 얼굴을 조각한 것이라고 한다.
원래 이 원형 석판은 기원전 4세기경쯤 로마시대에 하수도 뚜껑으로 사용된 것으로 추측되는 물건이라고 한다. 어원적으로 풀어보면 '보카 델라 베리타'란 말에서 보카(Bocca)는 입, 베리타(Verita)는 진실을 의미한다. 거짓말을 한 사람이 입에 손을 넣으면 손이 잘린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곳으로 그레고리팩과 오드리 햅번이 주연한 코믹 로맨스 영화 '로마의 휴일'에 나와서 더욱 유명해졌다.
☞ 진실되지 못한 한국인 진실의 입 오른편 벽에는 온갖 낙서가 다 되어 있다. 특히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한글로 된 낙서이다. 시 당국에서 한번 지웠지만 여전히 한글로된 낙서는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해 현지 교민들도 부끄러워할만큼 국제적인 망신을 사고 있다. |
'로마의 휴일'로 유명한 스페인 광장 |
스페인 광장은 17세기 스페인 영사관이 있던 지역으로, 오드리 헵번과 그레고리팩이 주연한 영화 '로마의 휴일'로 한국에 널리 알려져 있어 관광객들이 많이 모이는 지역이다. 이 광장은 137개의 스페인 계단과 트리니타 데이 몬티 교회(삼위일체교회)의 종탑 및 오벨리스크가 이채롭다. 광장에는 보트 모양의 17C 대리석 분수가 있는데 베르니니의 아버지 피에트로에 의해 세워진 것으로 바르카시아 분수(조각배 분수)라 불리운다. 여행자들에게 쉴 자리를 제공하며 만남의 장소로도 유명하다.
광장 근처의 86번지에는 바이런, 셸리, 키이츠, 괴테, 보들레르, 리스트 같은 유명 인사들에게 인기있던 그레코 카페가 유명하고, 스페인 계단 우측에는 키츠&셸리 박물관이 위치해 있다. 이 광장 앞거리는 세계적으로 이름난 명품점 쇼핑가인 콘도티 거리, 코르소 거리로 통해 있다. |
'로마 교통의 중심지, 베네치아 광장 |
포폴로 광장에서 남쪽으로 늘어선 코루소거리의 하단에 위치하고 있으며, 로마 교통의 중심지로 6개의 주요 도로가 사방으로 뻗어있다. 광장 정면에 "하얀 웨딩케잌"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비토리오 엠마누엘 2세 기념관이 있다.
1871년 이탈리아를 통일한 엠마누엘 2세를 기념에서 건설되었으며, 1911년에 완성된 네오클래식양식의 건물로 유명하다. 엠마누엘 2세국왕의 기마상아래에는 제1차 세계대전의 무명전사의 묘가 있다. 왼쪽에는 베네치아 궁전이 있으며 현재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
'고대 로마의 유적지, 포로 로마노 |
베니치아광장와 콜로세움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포로"라는 뜻은 공공 광장이라는 의미로 또한 "포럼"이라는 말의 어원이 여기에서 생겼다고 한다. 여기에서는 상업,정치, 종교등의 시민생활에 필요한 기관의 모든 것들이 밀집해 있던 지역이였다.
로마의 중심지로써 로마제국의 발전과 번영그리고 쇠퇴와 멸망이라고 말하는 로마 2500년의 역사의 무대가 되었고, 중심이 되는 곳을 제외한 많은 건물들이 283년에 대화재로 소실되었다. 바실리카 에밀리아와 시저 신전, 원로원, 개선문,셉티미우스 세베루스의 아치, 새턴신전,바실리카 율리아,베스타신전,베스타신녀의 집의 흔적, 카스토르와 플룩스 신전, 로물루스의 신전, 콘스탄티누스의 바실리카등 다양한 유적들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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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로마의 유적지 - 포로로마노 |
안토니우스와 파우스티나의 신전 |
고대 로마의 유적지 - 포로로마노 |
이탈리아의 경제적인 중심지 밀라노 |
해발 122m의 이탈리아 롬바르디아주의 주도로 예로부터 경제의 중심지로 현재도 19세기 후반에 발전하기 시작한 근대공업으로 북이탈리아 공업지대의 중심도시로 문화의 중심지로 발전하였다. 우리에게 밀라노 패션쇼로 익숙한 밀라노는 패션뿐만 아니라 음식, 오페라, 세계에서 네번째로 큰 두오모 성당과 유럽 오페라의 중심인 스칼라 극장, 그리고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피에타로 유명하다.
밀라노의 중심가는 두오모 광장으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쇼핑 거리로 일컬어지는 비토리오 엠마누엘레 2세 갤러리아(Galleria Vittorio Emanuele II)와 연결되어 있다. 이 곳은 거대한 아케이드로, 전통있는 유명한 카페와 부티끄가 줄지어 있다. 이 곳에서는 또한 연중 수많은 전시회가 열린다 |
'세계에서 4번째로 큰 성당이며 이탈리아 고딕 건축의 정수 |
두오모 대성당은 2245개의 거대한 조각군으로 장식되어 있고 135개의 첨탑이 하늘로 치솟아 있다. 길이 157m, 높이 108.5m로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 런던의 세인트 폴, 독일의 쾰른 대성당에 이어 4번째로 큰 규모를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가장 높은 첨탑에는 도시를 수호하는 황금의 마리아 상이 세워져 있다. 1386년 밀라노 공 잔 갈레아치오 비스콘티 공작의 명으로 착공되었으며, 450년에 걸쳐 공사가 진행되어 19C 초에 완공되었다. 두오모 성당 정면 앞쪽으로 두오모 광장이 조성되어 있다. 시내 중심에 있는 이 광장을 축으로 1-2km 안에 관광지가 집중되어 있다. 이 광장은 시당국의 계획으로 1862년 건축가 주세페 멘고니가 조성했다. 중앙에는 비토리오 엠마누엘레 2세의 기념 동상이 서 있고, 밀라노 시민의 휴식 장소로 애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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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의 대작 <론다니니의 피에타>가 있는 스포르체스코 성 |
두오모 광장의 북서쪽에 위치해 있으며, 밀라노의 영주 프란체스코스 포르차의 명령에 의해 다빈치, 브라만테 등의 참여로 1450년에 완공되었다. 비스콘티가의 거성으로 지어졌으며 성의 내부는 고고 미술관과 고고학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미켈란젤로가 임종하기 3일 전까지 작업을 했고 지금은 미완성으로 남겨져 있는 대작 <론다니니의 피에타>가 보관되어 있다.
중세예술품 공예품과 가구, 무기 등이 전시되어 있다. 그 외에도 벨리니의 "성모자", 만티냐의 "마리아와 성인들" 등도 유명하며, 1층에는 박물관과, 2층에는 회화관, 3층에는 민속, 공예품 등으로 전시되어 있다.
성의 안에는 영국식 정원인 셈피오네 공원이 있어 푸르름이 짙은 향기로운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나폴레옹이 밀라노를 들어온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평화의 문'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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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 엠마뉴엘 2세 아케이드 - 유행과 패션을 한곳에 모아둔 아케이드 |
두오모 광장과 스칼라 극장 앞 광장을 이어주는 광대한 아케이드로 밀라노의 많은 아케이드의 종합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크고 입점한 상점, 식당이 많다.
1865년에서 1877년에 걸쳐서 지어진 것으로 천정은 글라스로 길게 빛을 비추이게 장식되어 있으며, 미국과 아프리카, 유럽, 아시아 등 4개의 대륙이 특징적으로 프레스코화로 그려져 있다. 많은 부티크와 레스토랑, 카페들이 있어, 화려한 유행과 패션의 거리 밀라노임을 실감나게 한다. 사람들이 즐겨찾는 유명 브랜드의 상품을 파는 상점들은 많은 동양인들로 붐비고 있으며, 인기있는 상품은 금방 품절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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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 - 1982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피렌체 역사지구 |
이탈리아의 중부에 위치해 있며, 14-15C 메디치 가문의 후원에 힘입어 르네상스를 꽃피운 도시이다. 약 46만의 인구를 지닌 토스카나 지방의 중심지인 피렌체는 도시 전체가 하나의 아름다운 작품으로 피렌체 역사지구 전체가 1982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피렌체는 이탈리아 관광의 메카라고 불리울 정도로 로마에 이어 역사와 문화의 장이라 할 수 있다. 세계적인 문화유산을 한 눈에 볼 수 있으며, 11세기~16세기에 걸친 많은 문화유산들이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다. 세계 예술 유산의 많은 부분을 이탈리아가 간직하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피렌체는 로마와 함께 엄청난 유산을 보유한 도시이다. 식품·가구·의료·자동차 부품 등의 공업이 활발하며 상업이 매우 발달한 신흥공업 도시이자 교통의 요충지이다.
피렌체 시의 중심지에는 르네상스 시대의 많은 예술작품과 건축물들이 남아 있어 하나의 박물관과 같다. 2차 세계 대전에는 연합군의 공습을 받아 도시 전체가 파괴되었으나 여전히 아름다운 많은 볼거리와 학술, 연구 기관이 있는 문화·예술의 도시이다. 두오모 광장을 중심으로 꽃의 성모마리아 성당(두오모 성당, 정식명은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과 산지오바니 세례당 그리고 지오또의 종탑(깜빠닐레)이 식지 않는 볼거리를 제공하고, 이곳을 중심으로 걸어서 단테의 생가와 시뇨리아 광장과 베키오 궁과 베키오 다리, 그리고 미켈란젤로 광장까지 모두 걸어서 구경을 할 수 있다. |
피렌체의 정치 중심지였던 시뇨리아 광장 |
중세 이래로 피렌체의 중심인 시뇨리아 광장은 오늘날까지도 피렌체 사람뿐만 아니라 관광객들을 모으는 정치적인 연설과 시위의 장소로 남아있다. 광장에는 복제품을 비롯한 많은 예술작품들이 즐비해 있어 사진 찍기에 안성맞춤이다. 곳곳에서 거리의 판토마임이 열리고 있고 수많은 관광객들이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다.
공화주의의 이상이 명백히 표현된 절대군주의 살해자,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이 곳에 있는 것은 복제본이고 원본은 아카데미아 미술관에 있다.)에서 지암볼로냐(의 기수상의 듀크 코지모 1세의 초상화식 동상(1594년)과 사비니 여인의 강간(또는 강탈)까지, 이 곳에 있는 건축물에서 신화와 과거의 정치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다. 광장 중앙에는 넵튠 분수가 있고 종교개혁을 주도하다 처형된 사보나롤라의 처형지라는 표식인 화강암도 보이며 저쪽으로는 베키오 궁전이 보인다. 최근 광장 밑에서의 발굴로 인해 중세의 건물뿐만 아니라 AD 1세기의 로마 건축양식도 있음이 알려졌다. |
지암볼로냐의 사비니 여인의 강간 |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 |
넵튠의 분수 |
피렌체의 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미켈란젤로 광장 |
미켈란젤로 광장은 도시의 동남쪽에 있는 작은 언덕으로 피렌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절호의 지역이다. 두오모를 비롯해 베키오 다리가 인상적인 이 광장은 아르노강 남쪽 기슭의 언덕위에 조성되어 있다.
이곳 광장의 곳곳에는 미켈란젤로의 작품 "다비드상"등의 복사품들이 서있다. 관광객들의 사진촬영지로 유명하며 여러 복제품이지만 예술작품들과 사진촬영이 가능하다. 또한 장사꾼들도 많이 있어서 선물등을 고르는 관광객들도 눈에 많이 띈다. 아름다운 중세풍의 피렌체의 시가지를 여러각도로 바라보면서 르네상스시대의 화려한 도시의 모습을 상상하며 역사의 한속으로 잠겨보는 것도 좋은듯하다 |
피렌체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 |
베키오 다리는 아르노강에 세워진 피렌체의 최고로 오래된 다리이다. 다리라고 말해도 여느 다리와는 달리 보석점과 금세공을 해서 파는 상점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그러기때문에 외관에서 보면 창문이 쭉 늘어서있는 벽과 지붕이 세워져있기때문에, 다리라고 한번에 알아보기 힘들다. 다리를 건너면서, 여느 거리를 걷는 듯한 착각을 하게 만들며 상점가를 지나게 된다.
원어인 "폰타 베키오"라는 뜻은 "낡은 다리"라는 의미이다. 궁전과 강건너의 피티궁전을 연결하는 교량역활을 한다. 윗쪽으로는 귀족과 상인이 아래쪽에는 서민들이 거닐었다고 전해지며 16세기에는 금은세공하는 가게들이 즐비해있었다고 해서 당시의 번화된 모습이 그대로 보여지고 있다. 베키오 다리의 중앙에는 인물의 흉상이 하나 서있다. 16세기의 조각가에 의해서 금세공인인 벤베누토 첼리니의 흉상으로 벤베누토라는 뜻은 영어로 웰컴"Welcome"이라는 뜻이다. 또한 <신곡>을 쓴 단테가 이상의 여성인 '베아트리체'를 만난 곳도 이 다리이다. |
피렌체의 상징, 두오모 |
거리의 중심을 향하면 눈앞의 거대한 건물이 눈앞에 펼쳐진다. "가능한한 장엄하게, 더욱더 화려하게"라는 말처럼 175년, 엄청난 세월을 거쳐서 만들어진 아름다운 꽃의 성모 마리아 성당 두오모는 피렌체 시내 어떤 외진곳에서도 두오모의 아치형 돔의 일부분이 보일정도로 거대하고 화려하다. 성 당의 광장에는 관광객을 위한 마차가 준비되어 있다. 두오모는 1292년에 착공되어 1436년에 완공되었으며 정식 명칭은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이다. 깜비오가 설계를 하였고, 106m의 높이를 자랑하는 돔은 브루넬레스키 작으로 1420년 착공후 14년간 이 건축 공사에 종사했으며 사후 1461년에 완성을 보았다. 대리석 모자이크 장식의 벽체는 장관을 연출하며, 내부는 전성기 고딕 아치형 천정이 아치들로 받쳐져 있다. 관광객들이 직접 돔까지 올라갈 수 있으며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 보는 것이 가능하다.
성 요한(산 지오바니) 세례당 원래는 피렌체 대성당이라고 불리는 건물로, 두오모 성당 바로 맞은 편의 천국의 문이 있는 건물이다. 5세기 전에 최초의 건물이 세워졌으며, 로마네스크 양식의 팔각형 건물로 외벽은 흰 대리석의 줄무늬로 만들어져 있다. 천국의 문은 기베르띠의 작품으로 구약성서를 상징하며, 르네상스 최고의 작품으로 손꼽힌다. 프랑스 로댕 박물관의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이 앉아 있는 '지옥의 문'과 비교해서 보면 더욱 흥미롭다. 북문도 역시 기베르띠의 작품으로 성경의 내용을 담고 있고, 세례 요한이 그려져 있는 남문은 안드레아 피자오에 의해 1330년 완성되었다.
지오또의 종탑(Campanile Giotto) 높이 85m의 거대한 고딕 양식의 종탑은 1334년 지오또에 의해 기동되어 안드레아 피자노와 프란체스코 랄렌리에 의해 완성되었다. 당시는 페인트와 같은 안료가 없었기 때문에 흰색과 녹색 대리석을 사용하여 외관을 조화롭게 구성하였으며, 근처의 두오모 성당과 성 요한 세례당과 조화를 이루어 질식할듯한 규모와 경탄을 자아내게 한다.
그 외에 이 두오모의 주변에는 볼 것이 굉장히 많다. 두오모 부속미술관에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pieta), 도나텔로의 막달라 마리아 등의 대성당에 관련된 예술품들을 소장하고 있다. |
피렌체의상징 두오모 |
지오토 종탑 |
산 죠반니 세례당의 청동문 |
단테의 생가 |
두오모 성당에서 시뇨리아 광장으로 들어가는 좁은 골목길에 단테의 초라한 생가가 있다. 현재 이곳이 단테의 생가였다는 증거는 벽에 붙어있는 단테의 토르소가 전부이다.
그가 이탈리아에 남긴 유산에 비하면 초라하기 그지없지만 현재는 미술작품을 전시하는 갤러리로 사용되고 있다. |
피사의 사탑으로 유명한 피사 |
유명한 '피사의 사탑'이 있는 도시로 토스카나 지방 피사주의 주도이다. 중세에는 해양도시 국가로 군사적, 상업적 입지가 강력했으나 1905년이후 피렌체에 정복되면서 소박한 도시로 변하였다. 피사는 피렌체와 제노바라는 강력한 라이벌 도시국가들 사이에서 때로는 협력하고 때로는 시달림을 받았으나 나름대로 화려했던 과거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과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와 이탈리아 최고의 고딕 조각가 조반니 파사노의 고향이기도 하다. 피렌체에서 피사로 가는 버스가 많으며 거리도 가깝다. 피사에는 피사의 탑만 유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두오모와 세례당 등 그 외에도 유명한 건축물들이 많이 있다. |
기울어진 탑, 피사의 사탑 |
현재 기울기 5。 30′로 매년 1mm씩 기울고 있다는 이 사탑은 지상으로부터 54.5m이다. 1174년에 착공하여 10m 높이에 이르렀을 때 지반이 내려 앉아 공사를 중단했다가 다시 계속 건설하여 1350년에 8층 탑으로 완공되었다. 294개의 계단이 내부에 있으며 정상에 오르면 시가지 전경을 감상할 수 있다. 갈릴레이가 이곳에서 낙하 실험을 했다고 한다.
- 이탈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두오모 성당(Duomo) 이탈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으로 1068년에 착공하여 50년동안 공사한 피사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이다. 조반니 피사노의 설교단앞에는 갈릴레이가 진자의 원리를 발견한 계기가 된 '갈릴레이의 램프'가 있다. 사탑의 서쪽에 위치한다. 12∼14세기 때 건축된 건물로 두오모 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설교 소리가 구석구석 전달되도록 음향 효과를 계산하여 설계했다는 이 성당은 내부의 직경이 35m이다.
- 세례당 니콜라 피사노의 작품인 설교단은 1260년에 건축되었다. 두오모의 종탑과 어울려 회색빛의 화려하지도 간소하지도 않은 건축이다. |
해상 도시이자 물의 도시, 베니스(Venice) |
바다로 이어지는 석호 위에 발달한 '물의 도시'로 역사 깊은 항구도시이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다. 9-15C에 지중해의 상권을 장악했던 베네치아는 동서 문물의 합류 지점이었다. 영어로 베니스(Venice)라고 부르는 베네치아는 이탈리아 반도의 동쪽, 아드리아해의 끝에 위치하고 있으며, 인구가 약 30만명이다. 이탈리아 본토에서 약 4km정도 떨어져있는 120개 정도의 작은 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150개의 운하로 연결되어 있는 곳이다. 베네치아는 해상도시로 유명하다. 옛부터 지중해 무역의 중심지로써 발전해왔으며, 동양과 서양이 함께 공존하는 도시로 번영해 왔다.
18세기말 나폴레옹에의해 점령당할 때까지 1000년간 독자적인 문화를 가지고 공화국체제를 지켜오며 번창해왔으며, "아드리아해의 여왕"으로 불리우며 화려한 시대를 풍미했던 곳이다. 근대에 들어서는 본토와의 사이에 철도다리가 세워지고 1932년에는 자동차 다리가 건설되면서 본토와의 본격적인 교역이 시작되었다. 이곳의 주요 관광지는 산마르코 광장을 중심으로 한 산마르코성당과 두칼레 궁전, 유리 세공업으로 유명한 무라노 섬, 해수욕장· 카지노·국제 영화제(베니스 영화제)로 유명한 리도 등이 있다. 특히 산 마르코 광장의 산 마르코 성당과 두칼레 궁전, 아카데미아 미술관 등은 이탈리아 관광, 미술, 건축예술의 보고라고 할 수 있다. 공화국 번영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베네치아는 로마, 피렌체와 더불어 가장 중요한 관광지로 명성이 높다. |
죄수들의 탄식 소리가 묻어있는 탄식의 다리 |
17세기에 만들어진 탄식의 다리는 그 이름에 특별한 사연이 있다. 베니스의 여러 다리들은 섬들과 도시의 여러지역들을 이어주는데 탄식의 다리 역시 총독부가 있던 두칼레 궁과 피리지오니 누오베라는 감옥을 연결하는 다리였다. 두칼레 궁에서 재판을 받고 나오던 죄수들이 이 다리를 건너면 세상과 완전히 단절된다는 의미에서 한숨을 내쉬었다하여 '탄식의 다리'라는 이름이 붙여 진 것이다.
또한 작가이자 바람둥이였던 카사노바가 투옥되었다가 탈옥을 하여 더 유명해진 곳이다. 성 마르코의 연안에서 부터 고급 카페와 상점, 호텔들이 들어서 있으며, 이곳을 지나서 카스텔로 공원까지를 베니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지역으로 일컫는다. |
베니스 고딕 양식의 대표적인 건축물인 두칼레 궁전 |
베니스에서 가장 멋진 건물로 9세기경, 베네치아공화국의 총독의 성으로 지워졌다고 한다. 현재에 외관으로 보이는 것은 궁전의 모습으로 14~15세기경에 북방에서 전해진 고딕예술이 베네치아의 동방적인 장식과 융합이 되어서, 독특한 양식을 탄생시켰고 이것을 베네치안 고딕이라고 불리운다. 두칼레궁전은 그 양식의 최고의 걸작으로 일컬어진다.
건물 외관은 백색과 분홍 대리석의 아름다운 문양으로 그멋을 더해주고 있으며, 회랑은 개성있는 기둥받침을 지닌 36개의 기둥으로 이루어져 있다. 과거에 포고문을 게시했던 '게시의 문'인 중앙 현관은 고딕 양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안뜰은 르테상스 식의 멋진 구성과 조각으로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으며, 실내는 황금 계단, 안티콜레지오, 접견실, 투표실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총독이 앉는 자리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유화 중에 하나인 틴토레토의 "천국(1590)"이 걸려 있으며, 천정 벽을 따라 76명의 베니스 총독의 초상이 걸려있다. |
유럽에서 가장 큰 산 마르코 광장 |
이탈리아어로 광장이라는 말을 피아차(Piazza)라고 한다. 그러나 베네치아에서는 많은 광장 중에서도 그 이름을 가진 것은 산 마르코 광장뿐이다. 산마르코(San Marco)는 마가복음의 성 마가(St. Mark)를 이탈리아식으로 부른 명칭으로 베네치아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피아차는 특별한 의미를 가진 장소이다. 이 광장의 역사는 두칼레 궁전과 산 마르코 성당이 세워진 9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2세기에 운하를 메꾸고 세워지면서 광장이 확장되었고, 16세기에는 로마인 건축가에 의해서 르네상스 문화와 융합하여 여러가지 공용건축(도서관, 종탑아래 부분의 기둥 등)이 광장 주변에 만들어졌다.
이 쯤에 종탑(깜빠닐레)을 중심으로 한 산 마르코 광장이 완성되었다. 그리고 19세기에 나폴레옹에 의해 광장의 서쪽에" 나폴레옹 관"이 더해져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즉 광장의 중앙의 종탑으로 갈릴레오가 천체 관측을 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길이 175m, 폭 80m의 대리석으로 구성된 세계적으로 유명한 산 마르코 광장 주변에는 회랑이 설치되어 있으며, 유명한 시인묵객이 찾아와 한담을 나눴다는 플로리안(Florian)과 같은 유명한 카페와 명품을 파는 고급 상점들이 즐비해 있다. 광장 입구 정면으로 들어가서 2개의 베네치아의 상징인 사자와 엠마뉴엘레 2세의 동상이 있는 오벨리스크 기둥과 오른편으로 두깔레 궁전, 그리고 바로 옆의 성마르코성당과 정면으로 보이는 무어인의 종탑과 왼편의 깜빠닐레(종탑)는 관광객들이 베니스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찾아가는 곳으로 항상 관광객들로 붐빈다. |
광장에 있는 수많은 비둘기 |
산마르코성당 종탑 |
산마르코 광장 |
로마네스크 양식의 유럽최고의 건축물, 산 마르코 성당 |
산 마르코 성당은 비잔틴과 서방 양식의 혼합 구조로 건축되었으며, 1063-1073년에 산 마르코의 무덤을 덮는 교회로 세워졌다. 황금의 교회로 이름 붙여진 성당으로 르네상스와 17C에 변형이 가해졌으며 다양한 양식으로 재건되었되었다. 특히 대리석과 모자이크의 아름다운 장식이 유명하다. 성당 앞에는 사이프러스, 칸디아, 모레아의 베니스 왕국을 상징하는 세 개의 깃대가 꽂혀있다.
성당내부에는 금색찬란한 모자이크로 장식되어있다. 모자이크는 성 마가의 유해를 성당으로 옮기는 내용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입구의 좌측에서 2층에 올라가면 금색의 모자이크를 가까이서 볼 수 있다. 콘스탄티노플에서 가져온 이 성당의 입구 위에 장식된 네마리의 청동말의 오리지날은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1805년에 나폴레옹과의 전쟁에 패하여 파리로 약탈당했다가 나폴레옹이 워털루 전투의 패배하자 다시 되돌려받은 조각품으로 아직도 루브루 박물관의 카루젤 개선문 위에 복제품이 있다. 현재 테라스에는 복제품 청동말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이 장식은 시카고 미술관에도 몇점인가가 장식되어 있다. 성당 내부를 관람할 때는 의상에 신경을 써야 하는데 민소매나, 짧은 반바지, 미니스커트 차림은 입장불가이다. |
성당위에 솟은 수호성인 산마르코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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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마르코성당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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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마르코 성당의 황금색 모자이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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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의 중심부를 흐르는 대운하 |
베니스시 중심을 역S자를 그리면서 관통하는 길이 3.8km의 넓은 수로로, 대운하를 따라 12-18C에 걸쳐 세워진 대리석 궁정과 산 시메오네 피콜로 교회, 페사로 궁전, 고딕 건축의 카도로, 베니스의 명소 리알토 다리 등을 볼 수 있다.
왼쪽 연안에는 베니에르 데이 레오니 궁, 레초니코 궁, 포스카리 궁, 피사니 궁, 페사로 궁이 있으며, 오른쪽 연안에는 코르테르 델라 카 그란데 궁, 코르네르 스리넬리 궁, 카도로, 그리마니 궁이 있다. 대운하를 따라 아름다운 건물을 누비는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으며, 산 마르코 성당을 출발하는 곤돌라, 바포레토 등을 이용해 관광할 수 있다. |
리알토 다리와 대운하 |
베니스운하와 곤돌라 |
베니스 수상택시 |
베니스 대운하 투어 |
대운하 투어는 도보로는 교통 사정상 다 볼 수 없는 대운하를 전용 수상 택시를 이용하며 고성능 수신기를 통하여 가이드의 자세한 설명을 들으며 비나 눈 등 악천후 속에서도 편안하게 관광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산 마르코 광장부터 시작하는 약 4km의 대운하를 달리다 보면 나폴레옹이 그의 부인이던 죠세핀을 닮아서 좋아했다는 산타 마리아 살루테 성당과 작가 헤밍웨이가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를 집필하였던 그리티 궁전, 베니스 상인의 배경이 되었던 리알토 시장, 작곡가 바그너가 자신의 생을 마감하였던 벤드라민 궁전 등 수없이 많은 중세시대부터의 건축물들이 유럽의 역사에 자신들의 발자취를 남긴 위인들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어 더욱 더 알찬 알찬 여행을 즐기실 수 있다. |
유리공장 견학과 쇼핑 |
이곳 베니스는 가위와 핀셋만으로 유리를 만드는 곳으로 유명하다. 이곳에는 예전부터 장인들을 감금하고 이곳에서 유리제품을 만들게 하고, 품질이 나쁘면 장인들을 죽여버렸던 곳으로 악명이 높았다고 한다.
산마르코 광장의 바로 옆에 위치한 Bushi에 가면 우리나라에서는 주요 인간문화재로 불리는 마에스트로가 1900도로 달궈진 유리로 각종 글래스나 제품을 만드는 시범을 보여주며, 만들어진 유리 제품에 구리, 금 등을 넣어 유리의 색상을 만들고, 금박을 입혀서 가공하는 과정을 잘 설명해 준다. 마에스트로는 위에서 언급한 장인들의 후예이며, 30년 이상의 경험을 가지고 있어야만 마에스트로의 호칭을 받을 수가 있다고 한다. |
세계 3대 미항 나폴리 |
"나폴리를 보고 죽어라!"라고 누가 말하지 않았던가? 로마 테르미니 역에서 기차를 타고 차창 밖으로 이탈리아 남부의 전원 풍경을 느긋히 즐기면서 두시간을 달리면 평온하고 목가적인 도시 나폴리를 만난다. "세계 3대 미항" 중의 하나인 나폴리에서 그러한 마음이 든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나폴리는 고대 그리스인이 이 땅에 온 이래 통치자는 몇번이나 바뀌었지만 남 이탈리아의 중심 대도시로 발전해 왔다. 각각의 시대의 소중한 유산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며, 부르봉가 시대의 산 카를로 극장, 이탈리아의 삼대 극장중의 하나로 17세기의 왕궁 Palazzo Reale을 시작으로 대성당인 두오모, 긴역사를 가진 도시의 거리 스파카 나폴리, 안쥬가의 누오보성, 카포디몬테국립미술관), 나폴리 국립고고학 박물관등 유수의 관광지를 가지고 있는 곳이다. 또한 나폴리에는 2개의 섬이 있다. 카프리섬과 이스치아섬으로 나폴리만에서 페리로 1시간정도 걸리면 닿는 아름다운 섬이다. |
세계 3대 미항, 산타루치아 항구 |
나폴리의 민요 산타루치아로 유명한 항구. 원래는 한적한 어촌이었지만 지금은 고급 호텔과 레스토랑이 즐비한 관광명소가 되었다. 황혼 무렵 항구를 바라보며 석양빛을 받아 붉게 물든 카스텔 델로보의 모습이 환상적이다. 서쪽으로 가면 해안선을 따라 시민광장이 있다. |
천상의 미를 간직한 섬, 카프리 |
나폴리에서 20마일 정도 떨어진 곳에 하늘빛의 만밖으로 불쑥 솟아 있는 작고 아름다운 섬 카프리는 나폴리를 찾아온 모든 여행객들에게 특별한 유혹으로 다가온다. 따사롭고 온화한 카프리의 기후는 나폴리에서 일몰시의 한기를 느끼는 것과는 달리 급격한 기온의 변화없이 한결같다. 여름에는 당일 여행객으로 붐비니 조용한 카프리섬의 정취를 느끼고 싶은 이들은 봄이나 가을에 카프리를 방문하도록 하자.
'카프리'라는 이름은 고대 그리스어 "Kapro"에서 나온 것으로 멧돼지라는 뜻을 가진 단어이다. 카프리 섬의 화석에서 발견되는 것이 이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BC29년 로마황제 아우구스투스가 카프리를 방문한 후 그 아름다움에 반해 카프리보다 훨씬 큰 규모의 이웃섬을 포기하면서까지 나폴리로부터 사들였다고 한다. 그 다음 왕위 계승자였던 티베리우스 황제가 올림푸스의 12신에게 바친 12개의 저택을 지었다고 전해진다. 카프리에는 850여종의 다양한 꽃과 식물, 나무가 자라고 있어, 섬 어느 곳을 둘러봐도 아름다운 경관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많은 해양생물의 보고이기도 하고, 많은 종류의 텃새들의 서식지이기도 하다.
카프리의 풍경은 아름다운 자연과 예쁜 집들이 어우러져 보는 이들의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언덕, 절벽, 올리브 농장, 포도원과 정원의 테라스 앞에는 눈이 시리도록 푸르른 지중해 바다가 펼쳐져 있다. 저멀리로 나폴리와 베수비오산이 어렴풋이 보이고 페리와 고속정이 만에서 지그재그로 움직이고 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온다. 도보로 교회, 역사적인 별장이나 대저택, 유적 등이 자리하고 있는 카프리 곳곳을 돌아볼 수 있으니 활동적으로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여행객들에게는 정말로 멋진 곳이다.
섬 동쪽에는 카프리섬에서 가장 큰 마을 카프리 타운이 있는데, 페리와 고속정이 도착하는 마리나 그랑데 항구에서 타운 중심부까지 오르막으로 되어 있다. 아주 좁은 절벽길을 버스를 타고 꼬불꼬불 올라가면 해발 299m로 가파른 언덕인 아나카프리 정상에 올라가기 위한 리프트를 타는 곳이 있다. 리프트는 1인용으로 10여분정도 올라가는데 그동안에 아름다운 바다와 동화같은 집이 어우러져 한폭의 그림처럼 다가온다. 카프리섬은 너비가 1.6km, 길이가 2km로 도보로 여행이 가능하며 거주지와 관광명소를 연결하는 미니버스를 이용해도 그리 비싸지 않다. 페리를 타면 소렌토에서 40분, 나폴리에서 80분 정도가 소요되는데, 나폴리에서 고속정을 탈 경우에는 50분만에 도착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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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나 그란데와 카프리 마을의 전경 |
카프리마을의 전경 |
카프리의 코발트빛 바다 |
평화롭고 고요한 소렌토 |
"돌아오라 소렌토로(Come back to Sorrento)"와 "오! 솔레미오(O sole mio)"는 모두 세계에서 가장 친숙한 가곡 중의 하나일 것이다. 나폴리만의 색조와 친숙한 소음, 그리고 오렌지 숲으로 쌓인 소렌토는 역사와 예술을 자랑하는 평화와 고요의 천국이다. 시인 토르쿠아토 타소(Torquato Tasso)가 여기서 태어났던 곳이기도 하다. 소렌토(Sorrento)는 소렌타인 반도의 북서쪽에 위치한, 나폴리 근처의 도시이다. 예전부터 나폴리와 인접한 해안 휴양지로 명성이 높았다.
절벽 위에 지어진 이 작은 도시에서 맑은 빛의 바다를 조망할 수 있다. 아름답고, 풍요로움을 갖춘 가구와 그림 그리고 도자기가 진열되어 있는 코레알 박물관도 가봄직한 곳이다. 소렌토의 수공예 목조품과 치즈, 올리브유, 리몬첼로(limoncello)라 불리는 지방 특산품을 제외하고 주요 산업은 관광업이다. |
소렌토 전경 |
카프리의 코발트빛 바다 |
소렌토 항구 |
화산폭발로 잊혀졌던 로마제국의 도시, 폼페이 |
서기 79년 8월 번영하던 로마제국의 도시 폼페이는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로 도시전체와 2만여명의 주민이 화산재에 파묻히는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한 비운의 도시이다. 베수비오 화산은 폼페이가 완전히 화산속에 덮여버리는 폭발 이전에 몇차례 경고를 했었지만 폼페이 사람들은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한 순간에 손써볼 겨를도 없이 고대 이집트에서 볼 수 있는 미라의 형상으로 화산재에 뒤덮혀 최후를 맞게 되었다. 베수비오 화산이 엄청난 폭발을 일으키며 폼페이를 삼켜버렸을 때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던 폼페이는 로마제국의 어떤 도시보다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위락시설로 로마 귀족들 사이에서 인기높은 리조트 도시였고 농업, 상업도 발달해 있었다.
BC 62년 대지진으로 파괴되어 시민들이 힘을 합쳐 주택과 사원들을 재건해 겨우 재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그것도 잠시 BC 79년 신의 분노라고는 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베스비오 화산의 폭발로 고스란히 화산재 속에 묻히고 말았다. 강진을 동반한 베수비오 화산폭발로 분철한 화산재가 무려 1m가까이나 쌓였었고, 나폴리의 하늘을 검게 뒤덮었다. 교외로 도망치는 사람, 집안에서 잠잠해지길 기다리며 피신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계속해서 내린 비로 인해 분출한 화산재와 용암이 응결하면서 거리 전체가 마치 찌는 솥과 같은 형상이 되면서 도시전체가 그대로 매몰되었던 것이다. 그 후 잔디와 덩굴식물들이 자라 그 자리를 덮게 되면서 폼페이란 도시라는 이름과 함께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그리고 1500년 동안 역사의 저편에 사라져 있었다. 17세기 중반부터 시작된 조심스러운 발굴작업은 아직까지도 진행되고 있다. 지금까지 발굴된 유적과 유물들로 당시의 폼페이인들의 문화와 예술, 건축수준을 짐작할 수 있기에 충분하다.
폼페이가 로마제국으로 편입됬을때 로마인들은 폼페이를 지리적,지형적 특성에 맞게 고쳐나갔다. 자갈로 포장된 도로에 하수로가 있었기 때문에 보행자 도로를 조금 높게 올렸고, 포룸과 원형극장에는 보행자들을 위한 특별 구역을 지정해 교통소통을 원할하게 통제했다. 폼페이는 9개의 구역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폼페이 시로 들어가는 관문 근처에는 여관과 마굿과, 병원이 이었고, 시내 중심 거리에는 선술집과 현재의 패스트푸드점과 같은 카페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 카페들은 로마인들이 공중 목욕탕에서 목욕을 마친후 간단한 먹을거리를 얻을 수 있는 곳이었다. 폼페이 유적 발굴을 통해 드러난 하수시설, 목욕탕, 시장, 극장, 원형 경기장, 음식점 등 각종 시설은 2000년이라는 시간을 고려한다면 현대의 그것과 비교해 떨어진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하다. 폼페이 주변에는 당시에 덮였던 휴양도시인 폼페이와 더불어 Ercolando라는 마을이 존재한다. 이 역시 화산에 덮였던 도시로 폼페이와 더불어 많은 여행객들이 찾고 있다. 이밖의 네로황제의 부인이었던 popaea Sabina의 집이었던 Oplotis가 있어 고대로마양식의 건축양식과 프레스코와 모자이크 등을 볼 수 있다. |
폼페이 아폴로신전 |
폼페이의 도로 |
폼페이의 유적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