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현2동 두일 마을의 유래
◆ 조선시대에 "안산군 마유련 장상리로 칭한 뒤일은 군자봉
북쪽에 자리잡은 마을로 북곡을 뒤일이라 부른다"가
기록되어 있고 앞의 지도에는 현재 두일에 북곡리로 표기되어
있으며, 두일이라고 부르는 것은 일제 강점기때 일본인들에
의해 붙여진 이름 이라고도도 하며,
본래 능곡동의 뒤일과 같은 마을로 능곡동의 뒤일은 밖뒤일
장현동의 뒤일은 안뒤일이라 불러왔고 군자봉의 북쪽에 자리
잡은것을 보아도 알 수가 있습니다.
◆ 1914년 3월 1일 부터 과천군, 안산군이 시흥군에 흡수 통
합되면서 같은해 3월 13일 안산군의 마유면, 대월면, 와리면을
합쳐 군자면을 설치함에 시흥군 군자면 장현리로 개청이 되었
습니다.
우리 두일마을은 원래는 고씨성을 가진 분들이 많이 살았다
고 하며 후로는 권씨성을 가진 분들이 안산시 성곡동에서 이주
하여 살았으며 다수의 많은 성씨들이 외지에서 들어와 살면서
가족같은 마을, 정이 넘치는 마을, 살기좋은 마을로 주민들의
협동정신을 이웃 마을에서도 매우 부러워 했습니다.
또한 두일마을은 인구는 많지 않지만 3개마을로 형성되어
장자터마을,, 오성동 마을, 절골마을이 있었는데..
장자터 마을은 판서벼슬한 부자가 살고 있었다하여 백만장자
의미를 담아 지어진 이름이라고 하며, 오실개(오성동)은 큰
아름드리 소나무가 다섯그루 다섯그루 모여 서 있어서 지어진
이름이라고 하며, 절골은 마을 뒷산에 절이 있었다하여 절골마
을 이었다고 합니다.
◇ 또한 날씨가 몹시 가물어서 주위 전답에는 농작물이 말라
죽고 식수마저 고갈되어 마실물이 없었어도 마을 아래 장자우
물 답 360번지 주위에 우물에는 항상 넘쳐 흐르는 물이 있어
마을 주민들은 그곳에서 물을 길어다 식수로 사용했다고 전해
지고 있습니다.
이미 이곳은 보리라는 곡식이 없어진지 오래 되었지만 1965
년을 전후로 배고픈 보리고개를 겪을 당시 박정희대통령이 출
범하면서 새마을운동을 시작으로 아침식사전에 풀한짐베어 퇴
비만들기, 마을에 차하나 들어올 길도없었던 마을(일명 군자면
강원도라고 부르는 곳)이 장현2동 두일 마을이 아니었던가?
♡ 이러한 곳을 주민들은 1KM가 넘는 길을 어렵고 어려운
개인땅을 양보를 얻어 지금과 같은 현대식 장비가 없이 삽과
괭이, 가래로 땅을 파서 길을 만들었고 지금은 어는 전답이라
도 일금 40~50만원만 주면 누구든지 전기를 끌어 사용할수
있지만,
1971년도 당시에는 석유를 이용해 사기로 만든 등잔불이나
호롱불에 의지해 살다가 전기다 들어온다 하니 마을에서 집집
마다 각출하여 비용도 분담하였고 전주도 마을 분들의 협조
로 전주 세울 곳을 삽과 괭이로 직접파서 같이 세우고 1973년
부터 마을회관 건립, 회관앞 석축 쌓는일,
교량을 놓을 때는 지금은 흔하고 흔한 판넬 한장 마을에 없었
던 시절이라 집집마다 대문을 떼어다 콘크리트 치는데 사용을
하였으며,
마을에 식수가 부족하여 어려움을 겪고 있을때 마을분들의
지혜로 정문동 산밑에 샘물이 잘나는 곳을 개발하여 1KM나 되
는 거리를 주민들이 삽과 괭이로 땅을 파내어 PVC를 연결하
여 전기도 없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물을 보낸후 마을저
장물탱크로 보내 물을 저장해 각 가정으로 보내 상수도 수돗물
을 편리하게 쓸수 있게 하였으며 ,
지금은 이ㅣ 고인이 되신 분들도 많이 계시지만 살아계셔도
고향을 떠나 사시는 분들, 노환으로 거동이 불현하신 분들,
이 모든 분들이 역사의 산증인 이시기도 합니다.
◆ 1987년 5월 1일은 마을 주민 모두가 투철한 준법정신과
질서 의식을 발휘하여 1986년에 한건의 범죄도 발생치 아니한
마을로 범죄업는 마을로 선정 제24회 법의날을 맞이하여 표창
과 일금 300만원의 상금으로 주민의 숙원사업인 편의시설을
만들었으며, 노태우 대통령 제6공화국 출범 민속의 날을 맞이
하여 경축행사에 군자면 25개리 척사대회에는 주민모두가 참석
하시어 1등과 5등을 차지하는 쾌거를 오려 돼지를 상품으로 받
아와 마을에 큰 잔치도 벌리는 기쁨도 나우었습니다.
두일마을은 1973년도에 그린벨트지역으로 묶어놓고 30년
이 넘도록 건축및 토지용도 변경등 모든 행위제한을 받아오다
정부에서는 장현지구 택지개발 지구지정을 2004년 6월 29일로
88만 6천평을 해놓고 대한주택공사로부터 시행을 하게 해 놓았
습니다.
2009년 10월 들녘에는 곡식의 풍요로움과 나무및 온갖 식
물들이 겨울채비의 옷을 갈아입고 낙엽이 뒹구는 가을을 맞이
하여 풍년농사의 추수와 함께 기뻐해야만 할이때 이 모든 풍요
로움과 기쁨은 어느 누구에게도 찾아 볼수 없습니다
존경하는 장현2동 두일마을 향우회여러분!
이제 택지개발로 500여년동안 우리의 선조들이 지켜온 이
땅을 내어주고... 고향이 없어져도 우리 두일마을 향우회 회원
모두는 눈부신 발전을 고대하며 고항을 영원히, 영원히 마음속
에 담아두고 역사를 만드는 우리마을 고향쪽으로 우리 다 같이
손짓 합시다.
2014년 4월 1일
두일 향우회 회장 : 권 용 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