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연보|정종명
국제PEN국본부 부이사장 역임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부이사장 역임
한국문인협회 25대 이사장 역임
경기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대우교수 역임
숭실사이버대학교 방송문예창작학과 외래교수 역임
한국문학발전포럼 대표(현)
문예지 <계간문예> 발행인(현)
계간문예창작원 동우회 회장(현)
제45회 대한민국문화예술상(문학) 수상
이메일:jmjung8741@hanmail.net
1945년 아버지 정봉수(鄭奉守), 어머니 박임득(朴任得) 사이에 3남2녀 중 맏아들로 태어났다. 1950년에 도계초등학교에 입학했으나 6․25전쟁으로 고향인 경북 봉화군 물야면 수식리 독점동으로 피난, 그곳에서 수식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아버지는 겨울밤 마을 사람들을 상대로 「춘향전」 「심청전」 「장화홍련전」 같은 이야기책을 즐겨 읽어 주었다. 마을 사랑방에 방치된 알렉상드르 뒤마의 「삼총사」를 우연히 읽고 생애 최초로 장차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꿈의 불씨를 가슴에 지폈던 것으로 회고한다.
1960년 강원도 태백시로 이주했다. 태백중학교를 거쳐 1963년에 강릉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각종 백일장에서 입상 경력을 쌓았다. 『학원』에 작품을 투고해 싣고 전국의 여학생들로부터 편지 받는 재미에 빠져 대학 입시공부는 뒷전이었다. 국어는 수준급이었는데, 수학이 너무 어려웠다. 1965년 한․일회담 반대데모 주동자로 낙인 찍혀 퇴학 위기를 가까스로 벗어났다. 조기방학 중에 쓴 단편소설 「도주(逃走)」가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에서 주최한 전국고등학생 문예콩쿨대회에 당선의 영예를 차지했다. 이 작품은 1966년 3월 부산에서 펴낸 문예지 『문학시대』 창간호에 실려 있다.
1966년 대학 입시를 앞두고 장차 작가가 되고 싶다는 내 말에 아버지께서 하신 말씀을 지금도 기억한다. 다리 밑에 가 보면 거지들이 더러운 거적을 덮고 산다. 작가란 그런 거지들하고 함께 밥도 먹고 잠도 잘 수 있어야 하는데, 너 그렇게 할 수 있느냐?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에 특기장학생으로 입학했다. 바로 위에 마종하 이동하 김형영 임영조 박건한 김정례 제씨들이 다녔고, 훗날 문단에 등단한 김년균 오정희 이경자 윤정모 이우선 장경호 이남진 김희원 이옥희 안병국 은 동기생이다.
1971년 대학을 졸업했으나 취업이 어려워 낙향할 수밖에 없었는데, 재워 주고 먹여 준 김년균 형의 호의로 그의 자취방에 들어앉아 500장 넘는 중편소설을 썼다. 김년균 형은 재미도 없는 그 작품을 기회 있을 때마다 읽어 주면서 소설 잘 쓴다. 작가 되겠다. 하고 격려해 주었다. 나는 진짜 내가 소설 잘 쓰는 줄로 오해했다. 동년 4월에 월간 『스포오츠』 취재기자로 입사했다. 주간에 구자운 시인, 편집부장에 최범서 작가가 재직했고, 후에 작가로 등단한 황원갑, 이호일 씨가 함께 근무했다. 그 해 10월에 김원일 작가가 부장으로 재직하는 도서출판 국민서관으로 자리를 옮겨, 4년 6개월간 근무했다. 1974년 11월에 결혼했고, 이후 두 아들을 두었다.
1975년 유익서 이채형 황충상 등을 만나 소설습작 토론회를 만들었다. 만년 신춘문예 낙방생들이었는데, 나중에 이들 모두 작가로 등단했다. 1978년에 문예지 『현대문학』에 입사했다. 주간에 조연현 선생님, 편집부장에 김국태 작가가 재직했고, 감태준 시인이 함께 근무했다. 그 해 가을에 단편소설 「사자(死者)의 춤」이 『월간문학』 신인작품상에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했다. 1979년 「떠돌이의 혼」 등을 발표했다.
1980년 이문열 이외수 윤후명 손영목 서동훈 유익서 김원우 김채원 유홍종 표성흠 등과 작가(作家) 동인을 결성하고 동인지 1집을 민음사에서 출간했다. 후에 강석경 김상렬 김인배 정소성 최학 황충상 등도 참여했다. 이 덕에 나도 덩달아 좀 쓰는 작가로 분에 넘치는 평가를 받았다. 1981년 단편소설 「건널목 뛰어넘기」 「고맙습니다」 「겨울 야화」 「회귀전말」 「추방」 「심판」과 중편소설 「우울한 희극」 등을 발표했다. 1983년 단편소설 「오월에서 사월까지」 「이명(耳鳴)」 등을 발표하고, 만 5년간 근무한 현대문학사를 떠나 문예지 『소설문학』으로 직장을 옮겼다. 1984년 중편소설 「탈춤」, 단편소설 「사설문담」 등을 발표했다.
1985년 동년 5월호부터 장편소설 「거인(巨人)」을 『소설문학』에 연재했다. 창작예술사에서 소설집 『오월에서 사월까지』를 출간했다. 제1회 동포문학상 신인상을 수상했다. 1986년 문예지 『문학정신(文學精神)』 편집장으로 부임했다. 이승훈 시인의 추천으로 장편소설 「거인(巨人)」을 「인간의 숲」으로 개제하여 고려원에서 출간했다. 1987년 3월 동아출판사에서 간행된 우리 시대 우리 작가 32권 문학전집 중 27권에 장편소설 「거인」이 수록되었다. 중편소설 「우울한 희극」을 고려원 소설 문고본으로 출간했다. 1988년에 소설집 『이명(耳鳴)』을 도서출판 동아에서 출간했다. 1989년에 전상국 작가의 추천으로 장편소설 「아들 나라」를 강원일보사에서 발행하는 『월간태백』에 연재했다. 동년에 중편소설 「숨은 사랑」, 단편소설 「피아트 볼론따스 뚜아」 「서울은 천국이다」 등을 발표했다. 장편소설 「거인」이 MBC 미니시리즈 8부작으로 방영되었다.
1990년 중편소설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어느 몽상가의 빗나간 운명론」 「빠른 바람은 소리로 남는다」 「아무도 죽지 않는다」 등을 발표했다. 장편소설 「아들 나라」가 세계일보 출판국에서 출간되었고, 이듬해 12월 영화로 만들어져 대한극장에서 상영되었다. 이듬해에 중편소설 「그러나 사랑은 아름답다」 등을 발표했다. 1992년 1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역사소설 「거물(巨物)」을 서울경제신문에 연재했다. 1993년 소설집 『숨은 사랑』을 동아출판사에서 출간했다. 1994년 11월부터 1995년 9월까지 대동일보에 역사소설 「제왕의 춤」을 연재했다.
1995년 7월에 역사소설 『신국(新國)』(전3권)을 문예산책에서 출간했다. 11월에 역사소설 『대상(大商)』(전2권)을 한국경제신문 출판국에서 출간했다. 1997년 단편소설 「의혹」에 이어 「빛과 그늘」 「내 사랑 내 곁에」, 중편소설 「꼭꼭 숨은 입」 등을 연달아 발표했다. 1999년 3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영남일보에 장편소설 「욕망의 늪」을 연재했다. IMF 시절인데, 월 300만원의 원고료를 받았다. 1999년 10월 소설집 『의혹』을 뿌리출판사에서 출간했다.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 동문회에서 주관하는 서라벌문학상을 수상했다.
2001년 3월부터 경기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 출강, 2010년 2월까지 강사ㆍ겸임교수ㆍ대우교수를 거치면서 수필쓰기, 소설쓰기, 동화쓰기 등을 강의했다. 같은 기간에 롯데백화점 잠실점 MBC문화센터에서 소설쓰기를 강의했다. 2001년 12월 수필집 『사색의 강변에 마주 앉아』를 출간했다. 2002년 11월에 박양호 손영목 유만상 유익서 이채형 정동수 정성환 최학 황충상 등과 『소설마당』 1집을 출간했다. 2003년 한국소설가협회 이사로 피선되었다.
2005년 1월에 국제펜클럽한국분부 부이사장에 피선되었다. 이사장에는 문효치 시인, 부이사장에는 김종상 아동문학가, 이수화 시인, 이길원 시인, 김학 수필가가 동반 당선되었다. 2005년 9월부터 현재까지 숭실사이버대학교 방송문예창작학과에서 소설작법을 강의하고 있다. 경기대학교에서는 우수강의자 표창을 받았고, 한국사이버대학교에서는 240개 과목 중 상위 10%권에 드는 우수 강의자로 평가받았다. 2006년 여름부터 1년간 수필전문지 『수필과 비평』 소속 창작아카데미에서 수필쓰기 지도강사로 출강했다. 2007년 2월 한국문인협회 편집국장으로 부임했고, 2010년 10월까지 『월간문학』 『계절문학』 등 편집 실무를 담당했다. 동화 「어른들은 모른다」를 발표했다. 2009년 장편소설 『올가미』를 출간했다.
2010년 1월에 한국소설가협회 이사로 피선되었다. 2001년 3월부터 9년간 강사ㆍ겸임교수ㆍ대우교수로 출강해 온 경기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강의를 2010년 2월 말로 마감했다. 2010년 10월 한국문인협회 편집국장을 사임하고, 다음 카페 한국문학발전포럼을 개설했다. 2010년 12월 김송배(시인) 김종섭(시인) 진동규(시인) 한분순(시조시인) 이광복(소설가) 정목일(수필가) 박성배(아동문학가) 등과 <숨은 사랑>을 도서출판 청어에서 출간했다.
2011년 1월에 사)한국문인협회 제25대 이사장으로 당선했다. 사)한국문화예술저작권협회 이사로 선임되었다. 사)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이사로 선임되었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으로 선임되었다.
2012년 3월 사)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부회장에 취임했다.
2013년 7월 한국문인협회평생교육원 초대 원장에 취임했다. 10월 제45회 대한민국문화예술상(문학)을 수상했다.
2014년 4월 한국문인협회평생교육원 소속 문학낭송가회 회장에 취임했다.
2015년 2월 13일 한국문인협회 이사장을 퇴임했다. 3월 문예지 <계간문예> 발행인으로 취임했고, 계간문예창작원을 설립했다.
첫댓글 저는 태백 옆의 도계 출신입니다 반갑습니다 . 연보가 딱딱해 보이는 중에도 유머와 자조가 섞여 있네요 가령 재미도 없는 소설 이라는 부분이나 여학생들과 편지 주고 받은 이야기 등 ㅋㅋㅋ 문학에의 외길인생 걸어오셨네요 ! 앞으로도 끝없이 전진하시길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도 도계초등학교에 입학한 적이 있습니다.
저도 도계초등학교 졸업했는데요 ! 앗 반갑습니다
이 장에서는 정종명 교수님으로 부르고 싶네요. 장인정신으로 문학의 숲에 푹빠저 외길 인생 걸어 요셨군요. 정말 장하시고 훌륭하십니다. 문운이 항상 융성하시고 건강하시길 빕니다.
고맙습니다. 살아오면서 고마운 분들을 참 많이 만났고, 그분들 덕분에 여기까지 왔습니다.
오늘 여기서 이사님의 모든 것을 알 수있게 되었습니다. 문학의 외길 한눈 팔지 않고 씩씩하게도 걸어 오셨습니다. 존경스럽습니다. 늦게나마 알게 되어 전 행운입니다.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왔습니다.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난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폭염속에 열대야가 고개를 숙이니 조석으로 가을이라는 느낌~ 반갑습니다. 선거에나 뵐수 있었던 높은신 분들이 문을 열어주시니, 하나된 마음으로 발전을 기원해 봅니다. 광주에서 심성, 경당
고맙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어쩌다 보니 오신길이 나의 길이라 생각합니다.
무구한 사연들이 쌓여 크나큰 태산이 되었습니다.
한국문학의 거장으로서 큰 힘 장대 하기를 기원합니다.
과찬에 부끄럽습니다.
비슷한 삶의 매듭이 시인들의 현실이라기엔 우리는 너무나 배고픔니다. 그러나 인생의 겨울 앞에 후회는 없습니다. 내 속의 것을 누군가를 위해 퍼 준다는게 기쁨이니까요. 시인의 노후의 생활이 건겅하사기를 기원합니다.
훌륭하십니다
제가 알고있는 선생님은 아주 쫴~끔.일부에 지나지 않았나 합니다 부끄럽습니다 참으로~대단하시고 훌륭하십니다 한눈 팔지않고 한길로 걸어오신 선생님 존경스럽습니다 앞으로 더 건강하셔서 한길로 오신 길 크게 빛내십시요
아름답게 봐 주셔서 고맙습니다.
늘 국장님 신세만 지는것 같아 언제 한번 저의 스승님(표성흠선생님)과 국장님을 모시고 함께 할수 있는 시간을 기대 합니다.
저같은 무지렁이에게도 사랑을 주심을 더없는 감사를 올립니다. 올 추석에는 국장님 소원하시는 모든일이 순조롭게 이루어지길 간절히 기원 드립니다. 문자 정말 고맙습니다.
주경야독의 실천을 보여 주시는 선생님께서 마땅히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문학의 외길을 걸어온 정종명 국장님의 지나온 발자취가 또렷한 족적을 남기고 있습니다. 한국 문단의 발전을 위해서도 수고스러움을 더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늘 건강하시고요.
감사합니다. 말은 하지 않아도 많이 의지합니다.
선생님의 한가위 메시지를 받고 들어왔다가 , 연보를 읽고 , 문학 외길을 훌륭히 걸어오신 것을 감탄과 존경으로 바라봅니다. 더 큰 족적을 남겨주시리라 믿습니다.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매사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작가연보를 작성해 여기에 올리게 되었는데 자칫 지나친 자랑으로 비칠까 봐 두렵습니다.
정종명님의 메시지 받고 누구??? 왠??? 하다가 메일 열어 보고야 아! 아!
문학의 한길을 걸어오신 족적에, 오!오!오! 존경을 보냄니다.
정직한 문학인의 무궁발전이 승승 노벨에 이르시기를...바라옵니다.--
봉화 다녀온 -아영-
그라문 고향 친구 아잉교 ㅎㅎㅎㅎㅎㅎ
기다림의 시간이 아름다운것은 기다려 본 사람 만의 것 이지요 정종명선생님의 작가연보를 통해 누구신지알게되어 기쁨니다
한국문단의 발전을 위하여 선생님의 행보에 행운이 늘 함께하시길 바랍니다. 문자 주심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나서지 말아야 할 사람이 앞에 나서서 길을 어지럽힌다는 지적을 받지 않도록 매사 진중하겠습니다.
오로지 문학의 외길을 걸어오신 발자취 잘 보았습니다
많은 기다림의 시간들이 거장으로 성장 하셨습니다
우리 문단에 우뚝 스셔서 문단을 빛내고 문운이 늘 함께 하소서
과찬에 오히려 얼굴이 더워집니다. 더 노력하라는 채찍으로 여기겠습니다.
애오라지 묵묵히 걸어오신 고통스런 길, 문단 지킴이께 존경을 표합니다.
감사합니다. 다시 태어나도 저는 이 길을 다시 걷겠습니다. 고비마다 고마운 분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반갑습니다. 쓰신 글을 읽고 지나온 흔적들을 알수 있었습니다. 뵌적은 없지만 메일로 인사를 드립니다.
문학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직장에 다니면서도 언제가는 도전을 하며 배우고 싶습니다. 더 늦기전에~~ ^.^
꿈은 이루어집니다.
노벨문학상에 도전하는 작가로 새롭게 발전하길 기원합니다. 우리나라 문학에 있어서 소설에서부터 세계의 이목을 받아야 그 자양분이 골고루 번지게 될 것이라 감히 생각합니다. 경륜과 외길문학의 열정을 지니고 한군문학을 대변하는 작가분들이 선의의 경쟁을 통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거두길 기원해 마지 않습니다. 한국문인협회는 그런 목표를 지향하는 데에 힘을 모으고 활로를 개척해 주는 역량을 발휘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 문학을 세계 각 나라에 많이 알리는 홍보와 번역에 정부활동이 강화되도록 정책적 압력도 행사해야 되리라 믿습니다.
가슴에 깊이 새기겠습니다.
제가 필요해서 복사해갑니다. 달리고 달리고 뒤고 뒤고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해 기대에 부응하겠습니다.
선생님의 작가연보를 통해 문학의 외길을 걸어오신 뜻을 알 수 있습니다. 타고난 의지력과 청렴, 강인한 힘으로 한국문인협회의 미래를 더욱더 훌륭하게 이끌어가실 것을 기원합니다. 문인들의 위상을 높일 수 있는 분은 오직 선생님이십니다. 선의의 경쟁에서 승리만을 기원합니다...^*^
고맙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훌륭하신 족적을 남기시고 계시는군요,
더 좋은 발걸음이 되시기 바랍니다.
부단한 노력으로 이루신 빛나는 문학적 歷程에 경의를 드립니다.
연보 아래에 선생님의 E-mail.주소와 Mobile.번호를 남겨주시면 좋겠습니다.
프로필 아래에는, 연락처가 기록되어있어야 소통을 원활히 할 수 있으니까요.....
정종명 이사장님! 연보를 보니 새삼 반갑습니다.
경북 봉화는 김중위 수필가(전직 장관)님의 고향이기도 하지요.
소생은 1990년대 초 한국전력 영주지점장으로 봉직한적이 있는데
영주시, 영풍군, 봉화군이 다 관활구역이라 봉화지역엔 자주 들렸습니다.
소백산 자락의 산자수명한 고장이지요.
근간 자주 문안 드리지 못해 매우 송구스럽습니다.
ㅡㅡ서초동에서 우석규 드림
휼륭하신 선생님과 인연을 감사히 생각하는 시간이였습니다,
내내 건강하시어 문단의 큰별이 되소서~***~
존경합니다. 건강하시고 앞으로도 즐겁게 문학활동 하셨으면 합니다.
안녕하세요. 숭실사이버대학교 방송문예창작학과 졸업생입니다. 학과 이름도 다시 환원 됐습니다. 교수님 강의는 명품강의였습니다. 소설을 쓰고 있는데, 늘 교수님 강의 때 말씀 되새기며 씁니다. 뇌리에 쏙쏙 박히는 강의, 소설가 지망하시는 분이라면 반드시 들어야할 강의라고 적극 추천합니다.^^;; (학교입학,편입도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