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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릿골(흐릿골, 허리골, 유리, 본류) 원류리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이 만을 사람들은 정감록의 심승지지가 바로 여기라고 주장한다. 한길에서 안 보이는 마을이므로 피난처로 알맞다. 조선시대에 이 마을 이름을 따서 유리면이 되었고, 유리면 소재지이었다. 마을 뒤에 방아 살개처럼 생긴 형제봉이 있고, 그 봉의 낮은 목의 지형이 허리처럼 생겼다고도 한다. 16세기에 함양 박씨 희이당(希夷堂) 박수겸(朴守謙)[蕓의 아들]이 이곳에서 시묘살이를 하였다.
원사부(沙夫郞, 沙夫, 사부랭이, 仙遊洞) 사부리의 원마을인데 임진왜란 때 경주 金氏와 전주 李氏가 들어와 마을이 열렸다고 한다. 그들은 마을 앞의 큰 바위에 삼봉산하선유동(三峰山下仙遊洞)의 일곱자를 새기고 선유동(仙遊洞)이라 하다가 1900년경 모래가 뜬다는 소문이 있어 사부동이라 하였다. 안 사부랭이, 밖 사부랭이, 원사부랭이로 나눈다.
지도실(知道室, 知道谷) 사부리의 동북쪽에 있는 마을로, 이 마을 뒤의 불당골에는 지도암(知道庵)이라는 절이 있었다. 또 쥐도새도 모르게 피난할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이 마을 앞에는 반송 한 그루가 있는데 洞神나무라고 한다. 임진왜란때 명나라 장수인 이여송이 이 지방 의병장들과 만났다는 기록이 있다 한다.
시목실(枾木谷, 柴木洞, 枾木實, 시목) 용문사 입구에서 오른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로 감나무가 많이 있다. 15세기 후반에 趙氏가 이 마을을 개척했다고 하는데, 다른 곳은 산짐승이 무서워 입산을 못하고 이곳만은 산이 낮아 들어왔다고 한다. 땔나무가 많아 시목실(柴木室)이라 했는데 1830년대부터 감이 많이 나서 枾木室로 개칭했다고 한다.
◈ 웃능내(上能川, 上能內, 上能, 書堂골) 능천리의 능내 위쪽에 있는 마을로서, 높은 산기슭에 마을이 있어 아래쪽에서 보면 마을이 있을 것 같지 않아 '하늘 아래 첫 동네'라고도 한다. 또 陵처럼 생긴 山과 냇물이 있다고 하여 능내(陵川)이라고도 했는데 지금은 能川으로 적고 있다. 뒷날에 아랫마을이 생겨서 이 마을을 웃능내라고 부르기도 하며 마을 北쪽에 能川書堂이 있었다 하여 書堂골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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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지으동내 사진수집하느라 고생만이했내 그림같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