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 먹었사오니] 원문보기 글쓴이: 진실과 열정
70인성서를 언급한 두 번째 이유는 매우 중요한 것으로, 이것은 ‘예레미야서가 어떻게 전해졌는가?’라는 질문과 연관된다. 앞서 언급한바와 같이, 70인성서는 히브리어성서를 번역한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표기(기호)만 다를 뿐 내용은 1대 1로 맞아 떨어지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히브리어 디브레[רבד]가 헬라어 레마[ρημα]로 되듯이). 사실, 창세기를 비롯한 모든 책들이 1대 1로 맞아 떨어진다. 그런데, 예레미야서에서만큼은 그렇지가 못하다. 히브리어성서와 70인성서는 매우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70인성서가 히브리어성서보다 1/7정도 짧다. 어떻게 짧다는 것일까? 히브리어성서 렘 33:14-26; 39:15-18은 70인성서에는 없다. 그리고, 70인성서(LXX 42:13)는 ‘주’ 즉 ‘여호와’라고 짧게 말하는 반면, 히브리어성서(35:13)는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 살을 덧붙였다. 또한 예레미야에 대해서도 70인성서는 ‘예언자 예레미야’를 4번 표현하고 있지만(그것도 예루살렘 멸망 이후의 사건에서), 히브리어성서는 무려 26번 표현하고 있다. 그만큼 히브리어성서는 군살이 붙었다는 말이다. 순서에 있어서도 차이가 있는데, ‘열방을 향한 신탁’이라는 부분이 히브리어성서(이를 번역한 한글성서)는 뒤에 나와있다(46-51장). 그런데, 70인성서는 가운데(26-32장)에 위치해 있다. 다시 말하면, ‘열방을 향한 신탁’인 46-51장이 25장 13절 다음에 왔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사야서와 에스겔서만 봐도 ‘열방을 향한 신탁’이 가운데 들어있다(이사야 1-12 [13-23] 24-66, 에스겔 1-24 [25-32] 33-48장). 이렇게 히브리어성서와 70인성서의 차이는 생각보다 매우 심하다. 그렇다면,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예레미야서 만큼은 70인성서가 히브리어성서를 번역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70인성서는 다른 히브리어성서를 원본으로 삼고 번역에 임했다는 뜻이다. 기원전 2세기 것으로 추정되는 쿰란동굴에서 발견된 예레미야서는 놀랍게도 히브리어성서 형태와 70인성서 형태로 남아있었다. 이 말은 아주 오랫동안 두가지 형태의 예레미야서가 전해져 내려왔음을 뜻한다. 그렇다면, 어느 것이 더 오래된 것일까? 70인성서가 더 오래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 말은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한글성서가 잘못되었다는 말이 아니다. 여기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는 성서라는 책이 각각의 공동체에 의해서 전해져 내려왔으며, 게다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더욱 공고히하기 위해서 어떤 부분들은 덧붙여져(혹은 삭제)왔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앞서 말한 군살이라는 개념이며, 이를 학자들은 ‘편집’이라는 용어를 붙인다. 그래서 편집자들의 공교한 작업이라할지라도, 종종 틀릴 수가 있다. 편집자들의 잘못된 손길이 미친 좋은 예가 렘 27:1,3에 나와있다(과연 어느 왕인가? 1절의 여호야김이 시드기야로 바뀌어야 된다):
유다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의 즉위한 지 오래지 아니하여서… 유다 왕 시드기야를 보러 예루살렘에 온 사실들의 손에도…
이것은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원래부터 성서는 ‘굳어버린 교리집’으로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서는 닫혀있지 않았다. 성서는 아주 먼 신앙의 선배들에게 있어서 생생한 일기였기 때문이다. 신앙인들끼리도 ‘교환’(편집)해서 읽었던 일기였기 때문이다. 이것이 보전의 개념이다(보존이 아니다!). 성서가 어떻게 우리손에 들어오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공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박창환 교수가 쓴 「성경의 형성사」(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97)는 큰 도움이 된다. 이상의 내용을 정리해 보자. 예레미야서란 ‘예레미야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과 예레미야가 경험했던 일들에 대해 신앙의 공동체가 보전해 온 책’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예레미야서’의 장르는 무엇입니까?
‘예레미야서’는 예언서이다. 앞서 언급한바와 같이 ‘예언’이라는 장르는 오늘날 거의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에게 낯설다. 따라서 우선 예언에 대해서 알아볼 필요가 있다.
이제 예언이라는 ‘장르’를 생각해보자. 렘 7:1-2은 예언의 형식을 잘 보여준다:
여호와께로서 예레미야에게 말씀이 임하니라. 가라사대, “너는 여호와의 집 문에 서서 이 말을 선포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경배하러 이 문으로 들어가는 유다인아! 다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예언이라는 장르는 여호와의 말씀을 받은 사람이 ‘마치 자신이 하나님과 동일하게 되어(이것이 진정한 대언자이다)’ 선포하는 형식이다. 그런데, 인류의 문화적 역사를 통해서 볼때, 예언의 형식은 어디에서든지 볼 수 있었다(우리나라의 굿이 그렇다). 이러한 전형적인 예언의 방식(즉 ‘장르’)은 비이성적인 행동과 함께 나타났다. 이를 황홀경(엑스타시)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황홀경을 유발시키기 위해서 음악에 심취하거나(성서에서도 엘리사와 같은 초기 예언자들은 이러한 방법을 사용했었다[왕하 3:15]) 몸에 상처를 내거나(슥 13:6) 중언부언하는(왕상 18:29) 경우가 일상적이다. 그러나, 여호와의 예언자들은 더러는 특이한 행동들도 보여주기는 했지만(사 20:2; 렘 16:2; 겔 24:17), 그들의 예언내용 자체는 이성적인 방법으로 전해졌다. 앞서 언급한 문학적 기교가 좋은 예이다.
예레미야 역시 비록 약간의 예외적인 면들도 발견되지만(23:9; 51:63), 전체적으로 볼 때 다음의 내용들로 예언 장르를 분석해볼 수 있다: ①표제(렘 1:1), ②때와 장소를 가리키는 짧은 언급들(렘 26:1; 27:1; 28:1), ③예언자의 행동(렘 37-44), ④예언자의 소명(렘 1:4-10), ⑤예언자의 기도(렘 11:8-23), ⑥예언자의 신탁선포. 이것은 크게 두가지 문학적 형태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①-③은 주로 산문(이야기식)이고, ④-⑥은 주로 시문으로 되어있다. 정리하면, 예언서는 ‘시로 표현된 예언자의 선포’와 ‘산문으로 그려진 예언자의 행동들’을 보여준다.
‘예레미야서’의 특징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예레미야서는 신구약을 통틀어서 가장 길다. 그리고 신구약을 통틀어서 가장 복잡하다. 예레미야서의 권위자인 R. P. Caroll은 다음과 같이 예레미야서의 특징을 요약한다(Jeremiah: 1989, 9):
예레미야서를 읽고서 혼란스럽지 않은 사람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다.
앞에서 문맥을 보면 성서를 이해할 수 있다고 했지만, 예레미야서는 앞뒤를 읽어봐도 쉽게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복잡하다. 이것은 앞서 언급했던 히브리어성서와 70인성서라는 두가지 형태가 전해져 내려왔다는 사실에서도 느껴진다. 예언 자체가 짧은 신탁이기 때문에, 그것들을 잘 수집해서 일목요연하게 배열하는 것이 필요했다. 이런 일은 사실 대단히 어려운 일들이다. 그러므로, 예레미야서에서 중복되는 것도 많이 있으며(6:13-15〓8:10-12; 11:20〓20:12; 16:14-15〓23:7-8; 23:5-6〓33:14-16; 23:19-20〓30:23-24; 30:10-11〓46:27-28; 49:19-21〓50:44-46), 그 순서도 일관되지 못하다고 해서 놀랄 필요는 없다. 이러한 복잡함은 특별히 2-20장에서 확연하게 나타나는데, 그 어떤 배경을 알 수 없으며 짧은 신탁들이 마치 진주목걸이와 같이 걸려있다(주로 시문으로 구성되었음을 기억하라). 반대로 26-45장은 나름대로 시대적인 배경도 알 수 있으며, 특별히 45장은 예레미야서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바룩’이라는 중요한 인물을 소개하고 있다(주로 산문으로 구성되었음을 기억하라). 그래서, 이 부분은 수월하게 읽어볼 수 있다. 한편, ‘열방을 향한 신탁’인 46-51장과 ‘예루살렘 마지막 역사’인 52장은 따로 두도록 하자.
이제 나름대로 정리할 수 있는 것은 예레미야서는 주로 시문으로 된 2-20장과 주로 산문으로 된 26-45장, 그리고 그 이후의 ‘열방신탁’(46-51장)과 ‘예루살렘 멸망’(52장)으로 나누어진다는 점이다. 그런데, 앞서 70인성서가 더 앞선 본문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열방신탁의 위치인 25장을 기준으로 시문과 산문을 나눌 수 있다. 2-20장의 다양한 예언들은 예레미야의 초기 사역에 해당하며(우상숭배를 심판한다는 것은 앞에서 다루었다), 26-45장은 예레미야의 예언들과 행동들이 ‘신명기적 편집자’에 의해서 ‘산문’(편집자가 서기관이며, 이들은 전문적인 글쓰는 사람임을 기억하라)으로 재구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2-25장(21-25장이 마무리글)과 뒤로 가버린 46-51장(51장이 마무리글), 그리고 26-45장이 된다. 여기에 1장과 52장은 각각 예레미야서의 제목과 후기의 역할을 하게 된다.
이를 좀 더 자세히 연구하게 되면, 예레미야서의 특성을 잘 파악하게 된다. 중심부분 역할을 했던 ‘열방신탁’(46-51장)이 뒤로 옮겨간 이유는 차치하고, 먼저 우리는 예레미야서의 큰 두 부분인 2-25장과 26-45장을 살펴보아야 한다. 이제 본격적으로 예레미야서의 목소리를 들어보도록 하자.
3. 예레미야서의 목소리
복잡하다면서, 예레미야서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가능합니까?
성서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꼭 필요한 것이 주석이다. 주석(comment)이란, 말 그대로 성서본문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풀이해 놓은 것을 말한다. 예레미야서는 상당히 많은 종류의 주석들이 있다. 그만큼 다양하게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특별히 2-20장의 잡다한 예언들의 복합체는 논쟁의 주요 대상이 된다. 과연, 아무런 배경도 모르는 상황에서 어떻게 재구성을 할 수 있을까? 여기에서 의견이 분분하게 나뉜다. 재구성이 가능하다고 여기는 학자들도 서로 약간의 차이를 보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불행한 것이 아니라, 바람직한 것이다. 성서야 말로 다양한 시선을 통해서 볼 때에 나만의 아집을 내려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연구의 흐름은 예언자 예레미야 시대 상황에 맞추어 예레미야서의 본문을 재구성해가면서 그 목소리를 들어보도록 하자. 단, 명심해야할 것은 앞서 언급했던 것과 같이, 예언자 예레미야의 예언 자체(시문)와 후대의 신명기적 역사가의 편집(산문)이 있었기 때문에, 두 시대가 공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떤 면에서는 예레미야 예언(행동)이 그대로 살아있으며, 어떤 면에서는 예레미야의 예언(행동)를 신명기적 역사가가 다른 방향으로 보여주고 있으며, 또 어떤 면에서는 예레미야의 예언(행동)이 신명기적 역사가에 의해서 같은 방향으로 확대되어 가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을 구별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간략하게 예레미야의 예언(행동)이 그대로 살아있는 것을 중심으로 진행해가도록 하자(다른 부분도 필요상 언급할 수 있다).
예레미야의 시대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나요?
이제, 연구는 남유다 왕국의 멸망 반세기를 앞둔 상황에서부터 시작한다. 이 시대는 요시야(BC 627년)에서부터 남유다 멸망 이후의 비참한 상황(BC 585년)이다. 나라의 멸망이라는 것은 주변 나라라는 상대가 있다는 뜻으로, 남유다 뿐만 아니라 주변 고대근동의 여러 나라들간의 다양한 움직임도 같이 봐야 함을 뜻한다. 그만큼 복잡한 내용이 아닐 수 없다. 요시야의 개혁이 그 출발점이라는 것은 앞서 말했기 때문에 다시 자세히 언급하지는 않겠다. 렘 3:12을 보자:
너는 가서 북을 향하여 이 말을 선포하여 이르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배역한 이스라엘아 돌아오라! 나의 노한 얼굴을 너희에게로 향하지 아니하리라. 나는 긍휼이 있는 자라. 노를 한없이 품지 아니하느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북’은 어디인가? 북이스라엘 왕국을 말한다. 예레미야는 그들에게 ‘돌아오라’고 말한다. 이 말은 무슨 의미인가? 탈북하라는 것인가? 중요한 것은 북이스라엘 왕국은 당시 패왕국(覇王國)인 앗수르에 의해서 이미 멸망하고 없으며(BC 722년), 그 땅에는 포로되지 않은 사람들만이 앗수르 총독의 지배를 받으며 살고 있었다. 또한, 남유다도 엄청난 피해를 받고 아하스 왕은 앗수르의 예배도구를 여호와의 전에 놓아두기까지 했다(왕하 16:10-16). 이 말은 남북할 것없이 전국이 이방 나라의 신앞에서 무릎을 꿇었으며, 그들을 섬겼다는 말이다. 실제로 고위 관직들도 강대국의 비위를 맞추어가면서 정직한 통치에서 멀어졌다(렘 2:8). 이것이 바로 예레미야가 선포했던 이스라엘의 범죄이다(이것은 앞서 말했던 우상숭배와 비윤리적인 삶을 뜻한다):
내 백성이 두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2:13)
그런데, 요시야 12년(BC 628년)에 앗수르 왕인 앗술바니팔이 사망하게 된다. 고대에 왕은 곧 신이었음을 기억할 때, 지금은 남유다에게 있어서 신앙의 독립(나라의 독립 자체가 이웃나라 신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이다)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아닐 수 없다. 요시야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대대적인 개혁을 한다. 그런데, 중요한 부분이 바로 영토확장에 있었다. 앞서 ‘벧엘’이 강조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사실 벧엘은 멸망하여 지금은 앗수르 총독의 지배를 받고 있는 북이스라엘의 땅이다. 요시야가 벧엘까지 올라간 또 하나의 이유가 여기서 발견되는 것이다. 다윗의 나라를 재건하는 것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예레미야의 예언은 함께한다. “북이스라엘아! 이제 돌아오라!”
그러는 동안, 예레미야는 많은 적들을 만나게 된다. 그 적이란 개혁의 결과 이익이 사라진 단체에서 던지는 원망이다. 가까이는 예레미야의 친족에서부터 시작한다:
여호와께서 아나돗 사람들에 대하여 이같이 말씀하시되, “그들이 네 생명을 취하려고 찾아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예언하지 말라! 두렵건데 우리 손에 죽을까 하노라’하도다”(렘 11:21)
여기서 어떻게 예레미야의 친족들을 발견할 수 있다는 말인가? 렘 1:1을 기억해보라. 예레미야는 ‘베냐민 땅 아나돗의 제사장’ 가문의 한사람이었다. 그리고, 베냐민은 예루살렘 밖의 지역임을 생각해보라. 예루살렘을 제외한 지역의 제사장들이 갑자기 밥줄 끊기게 되는 개혁의 주동자가 바로 예레미야가 아닌가! 누가 책임을 져야하겠는가? 바로, 예레미야의 가족들이 ‘철부지 미꾸라지’를 잡아야 하지 않았겠는가? 예레미야는 이제 가족에게서 멀어지며, 이로써 예레미야의 슬픔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네 형제와 아비의 집이라도 너를 속이며, 네 뒤에서 크게 외치나니 그들이 네게 좋은 말을 할지라도 너는 믿지 말지니라(렘 12:6).
내 생일이 저주를 받았더면, 나의 어미가 나를 생산하던 날이 복이 없었더면 … 어찌하여 내가 태에서 나와서 고생과 슬픔을 보며 나의 날을 수욕으로 보내는고(렘 20:14,18)
앗수르 왕의 죽음 이후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이 세력을 얻게 되며, 결국 바벨론이 새로운 패자(覇者)로 등장한다(612년). 바벨론은 세력을 넓힐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서쪽에 오래된 구렁이가 있었으니 바로 에굽(이집트)이었다. 에굽은 팔레스틴 땅에 있어서 영원히 떨어질 수 없는 그런 관계였기 때문에(남유다 왕국은 쉴새없이 에굽을 의지했다), 쉽사리 바벨론에게 자리를 양보할 수 없었다. 그 상황에서 609년 큰 싸움이 벌어지게 된다. 그 싸움에 요시야가 껴든 것이다.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듯이 요시야는 에굽왕 바로느고의 손에 죽는다. 이 말은 반대로 요시야가 바벨론의 편이었음을 뜻한다. 이것은 앗수르를 벗어나려는 요시야의 의지에서 쉽게 생각해 낼 수 있다(히스기야 왕도 앗수르보다 바벨론과 친교했음을 기억하라[왕하 20:12]). 아무튼, 이 고래등 싸움에서 에굽이 승리를 거두게 된다. 요시야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남유다는 큰 혼란을 경험한다. 남유다는 서둘러 요시야의 아들 ‘여호아하스’를 왕으로 세우지만(왕하 23:30), 에굽왕은 벌을 준다하여 ‘여호아하스’(살룸)를 잡아가고(왕하 23:33), 요시야의 아들 ‘엘리아김’을 ‘여호야김’으로 개명한 후에 에굽의 하수인으로 세우게 된다(왕하 23:34). 이제 그 밑의 권력자들도 어떻게 해야 자기 목숨이 길어질 것인지를 알게 되었을 것이다. 한편, 이스라엘 백성들의 슬픔이 어떠할지는 상상안해도 알 것이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중요한 것은 오늘이며 내일이기 때문이다:
너희는 죽은 자[요시야]를 위하여 울지 말며 그를 위하여 애통하지 말고 잡혀 간 자[여호아하스=살룸]를 위하여 슬피 울라 그는 다시 돌아와서 그 고국을 보지 못할 것임이니라. 나 여호와가 유다 왕 요시야의 아들 곧 그 아비 요시야를 이어 왕이 되었다가 이곳에서 나간 살룸에 대하여 말하노라 그가 이곳으로 다시 돌아오지 못하고 잡혀 간 곳에서 죽으리니 이 땅을 다시 보지 못하리라(22:10-12)
에굽에 의해 왕이된 여호야김의 시대가 왔다. 에굽이 왜 여호야김을 세웠는지를 알 수 있을 만큼 그의 행동은 우리의 추측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사회는 갑자기 후퇴하게 되었다. 예레미야는 이제 다른 방향으로 선포한다. 지도자(권력자)들의 여호와 경외이다. 그렇다면, 여호와를 경외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불의로 그 집을 세우며 불공평으로 그 다락방을 지으며 그 이웃을 고용하고 그 고가를 주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화 있을진저, 그가 이르기를 “내가 나를 위하여 광대한 집과 광활한 다락방을 지으리라”하고 자기를 위하여 창을 만들고 그것에 백향목으로 입히고 붉은 빛으로 칠하도다. 네가 백향목으로 집 짓기를 경쟁하므로 왕이 될 수 있겠느냐? 네 아비가 먹으며 마시지 아니하였으며 공평과 의리를 행치 아니하였느냐? 그때에 그가 형통하였었느니라. 그는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신원하고 형통하였나니, 이것이 나를 앎이 아니냐? 여호와의 말이니라(22:13-16)
여호와를 경외함은 다른 것에 있지 않다. 여호와를 아는 것에 있으며, 이는 여호와가 어떠한 분임을 알고 닮아감에 있는 것이다. 여호와는 공평과 의리를 중요시 여기신다. 여호야김과 그 지도층(여기에는 제사장, 예언자, 서기관, 그리고 ‘지주’를 포함한다)은 여호와를 알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꼬박 ‘성전에서 주일’을 지켰다. 세상에서 어떻게 살든지 ‘교회 나와서 주일만 지키면’ 안전하리라! 놀랍게도 1급보험을 들어둔 오늘날의 교인들과 붕어빵이다. 이러한 상황에 예레미야는 성전에 올라갔다:
여호와께로서 예레미야에게 말씀이 임하니라. 가라사대 “너는 여호와의 집 문에 서서 이 말을 선포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경배하러 이 문으로 들어가는 유다인아! 다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로 이곳에 거하게 하리라!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 너희가 만일 길과 행위를 참으로 바르게하여 이웃들 사이에 공의를 행하며,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지 말며, 무죄한 자의 피를 이곳에서 흘리지 아니하며 다른 신들을 좇아 스스로 해하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를 이곳에 거하게 하리니, 곧 너희 조상에게 영원 무궁히 준 이 땅에니라’ … ‘너희는 내가 처음으로 내 이름을 둔 처소 실로에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악을 인하여 내가 어떻게 행한 것을 보라’”(7:1-7, 12)
실로가 완전히 폐허가 된 것과 같이, 예루살렘 성전도 완전히 무너지리라! 이러한 예레미야의 예언은 매우 충격적인 것이었고, 예언이 성취된 이후 후대의 편집자들도 이를 다시 기록했다(렘 26). 이 말을 들은 여호야김은 당장 사람들을 불러서 예레미야를 죽이려 들었다(렘 26: 8-24). 여호야김은 ‘청종치’ 않고 ‘돌이키지’ 않았다. 드디어 예레미야에게 들려진 여호와의 음성은 무시무시한 것으로 변하였다:
유다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 사년 곧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 원년에 유다 모든 백성에 관한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 보라 내가 보내어 북방 모든 족속과 내 종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불러다가 이 땅과 그 거민과 사방 모든 나라를 쳐서 진멸하여, 그들로 놀램과 치소 거리가 되게 하며, 땅으로 영영한 황무지가 되게 할 것이라(렘 25:1,9)
이러한 내용을 예레미야의 개인 서기관인 바룩이 적어서 왕의 사람들에게 전해주었으며(36장), 그 중 한사람인 여후디가 여호야김 앞에서 낭독했다(36:21). 그날은 참 추웠다고 한다. 왕은 겨울 궁전(별장)에 앉아서 따뜻한 화롯불 앞에서 턱을 괘며 여호와의 말씀을 들었다(36:22). 그런데 여호야김의 간은 단단히 부었다. 그는 여후디가 읽는 족족 두루마리를 잘라내서 화롯불에 던져 열기를 더했던 것이다. 여호와의 진노의 불이 뜨겁게 타올랐다.
여호야김 시대에 또 고래싸움이 벌어졌다(BC 605년). 이를 유명한 ‘갈그미스’ 전투라고 하는데, 여기에서 바벨론이 대승을 거두게 되면서 서쪽구역을 접수하게 된다. 자연히 여호야김은 바벨론으로 손을 뻗쳤다. 에굽이 세운 왕이었지만 그는 줏대도 없었던 허수아비였던 것이다. 그러다가, 에굽이 힘을 키우는 것처럼 보여서 다시 에굽쪽으로 기울이게 된다. 결국, 바벨론의 무서운 보복이 시작된다(BC 598년). 그런데,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바벨론이 쳐들어오기 전에 여호야김은 저 세상으로 간다.
왕위를 뒤 이은 ‘여호야긴’에게 모든 덤태기가 씌워졌다. 여호야긴은 바벨론의 파상공격에 손도 못쓰고 성문을 열어놓을 수 밖에 없었다(왕하 24:10-16). 이 때 바벨론은 왕과 성에 살고 있는 권력자들을 포함하여 3000명을 사로잡아간다(렘 52:28). 그리고, 여호와의 전의 보물들도 모조리 약탈하고 만다(왕하 24:13). 여호야긴의 포로됨은 다윗 왕조의 종말을 뜻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삶으로 맹세하노니, 유다 왕 여호야김의 아들 너 고니야[여호야긴]가 나의 오른손의 인장 반지라 할지라도, 내가 빼어 네 생명을 찾는 자의 손과 너의 두려워하는 자의 손 곧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손과 갈대아 인의 손에 줄 것이라 … 땅이여, 땅이여, 땅이여, 여호와의 말을 들을지니라.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는 이 사람이 무자하겠고, 그 평생에 형통치 못할 자라 기록하라! 이는 그 자손 중 형통하여 다윗의 위에 앉아 유다를 다스릴 사람이 다시는 없을 것임이니라”(렘 22:24-25, 29-30)
바벨론 왕은 여호야긴을 대신하여 여호야긴의 아자비인 ‘맛다니야’를 ‘시드기야’로 개명하고 왕위에 세운다(왕하 24:17). 다윗의 혈통이 끊어진 셈이다. 그러나, ‘시드기야’는 무엇인가가 달랐다. 그는 예레미야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렘 37:17; 38:16). 예레미야는 ‘시드기야’(그 이름의 뜻은 ‘여호와는 나의 의’이다)를 인정해주면서, 새로운 희망을 바라본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행사하며 세상에서 공평과 정의를 행할 것이며, 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얻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거할 것이며, 그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렘 23:5-6)
앞선 22장이 요시야-살룸(여호아하스)-여호야김-고니야(여호야긴)의 순서로 남유다의 왕들을 가리키고 있음을 명심한다면, 이어지는 23장에서 우리는 섣불리 ‘예수 그리스도’로 비약하면 안된다. 23장에서 나온 ‘가지’(즉, 순수 혈통이 아니라는 의미이다)는 발음도 ‘짜디크’로 ‘시드기야’와 유사하며, ‘여호와 우리의 의’가 바로 시드기야 이름의 뜻이다. 이름처럼 예레미야는 ‘시드기야’에게 진정한 ‘여호와의 공의’를 세상에 보이라고 한다. 종교적인 면에서 유월절은 요시야 때에 사상 처음으로 말씀대로 실시되었으니(왕하 23:22), 사회적인 면에서 이제는 공의의 절정인 노예해방이다. 사실 그동안 이스라엘 사람들은 노예해방법(신 15)을 한번도 지키지 않았었다(렘 34:14):
시드기야 왕이 예루살렘에 있는 모든 백성과 언약하고 자유를 선언한 후에 여호와께로서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34:8)
시드기야는 예레미야의 말을 들었다. 그러나, 예루살렘은 3000명이나 되는 많은 사람들이 포로가 되었지만, 아직 권력자들은 충분히 건재했다. 그런데 이들은 시드기야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았고, 포로로 간 여호야긴(여고니야)이 다시 돌아올 것을 기다렸다(렘 29:2). 거짓 예언자 하나냐는 공공연하게 여고니야가 돌아올 것이라고 선포했다(렘 28:4). 이러한 상황속에서 시드기야의 자리는 흔들거렸고, 예레미야의 말을 듣는 것보다 권력자들 편으로 돌아섰다. 결국, 시드기야는 권력자들의 말을 듣고 노예해방을 취소하고 만다(렘 34:11; 37:1-2). 여호와의 분노는 이제 남지 않았다: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가 나를 듣지 아니하고 각기 형제와 이웃에게 자유를 선언한 것을 실행치 아니하였은즉, 내가 너희에게 자유를 선언하여 너희를 칼과 염병과 기근에 붙이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너희를 세계 열방 중에 흩어지게 할 것이며 두려움이 되게 할 것이며, 송아지를 둘에 쪼개고 그 두 사이로 지나서 내 앞에 언약을 세우고 그 말을 실행치 아니하여 내 언약을 범한 너희를, 곧 쪼갠 송아지 사이로 지난 유다 방백들과 예루살렘 방백들과 환관들과 제사장들과 이 땅 모든 백성[암 하레츠=지주]을 내가 너희 원수의 손과 너희 생명을 찾는 자의 손에 붙이리니 너희 시체가 공중의 새들과 땅 짐승의 식물이 될 것이며, 또 내가 유다 왕 시드기야와 그 방백들을 그 원수의 손과 그 생명을 찾는 자의 손과 너희에게서 떠나간 바벨론 왕의 군대의 손에 붙이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내가 그들에게 명하여 이 성에 다시 오게 하리니 그들이 이 성을 쳐서 취하여 불사를 것이라 내가 유다 성읍들로 황무하여 거민[지도자]이 없게 하리라.”(렘 34:17-22)
시드기야는 바벨론을 대적하기 위해서 주변의 나라들을 불러 힘을 모은다(27:3). 그러나, 그것은 계란‘들’로 바위치기일 뿐이다. 그런 와중에서도 예레미야는 시드기야에게 끝없이 바벨론에 항복할 것을 권한다. 멍에를 지고가며 시위를 한다. 남아있던 권력자들에게 예레미야는 가시와 같은 존재였음에 틀림없었을 것이다. 방백들이 예레미야를 잡아서 웅덩이 속에 가두고 만다(37:15). 그러나, 시드기야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예레미야를 불러내어 여호와의 뜻을 묻고는 예레미야가 시위대 뜰에서 안전하게 거하도록 돕는다(38:13). 예레미야에게 있어서 남아있는 희망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듯했다. 그러나, 그는 여호와의 예언자였다. 그는 바벨론에 70년간 포로가 되지만 그 후에 돌아올 것이니, 지금은 항복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계속해서 외쳤으며, 실제로 난리통속에서 밭을 사는 믿음의 실천을 보이기도 한다(32:1-44).
결국, 시드기야의 반란음모는 들통났다. 노예를 해방했다가 다시 거두어들인 시드기야의 선택처럼, 하나님은 똑같이 바벨론으로 하여금 예루살렘 포위를 잠시 풀었다가 다시 바벨론을 보내어 예루살렘을 완전히 멸망시키고 만다(렘 52:4-8). 시드기야는 눈이 뽑힌 상태로 옥살이 하다가 생을 마감했고, 예루살렘의 남은 지도자(거민)들도 하나같이 죽거나 포로가 되었다. 이 때가 기원전 586년이니 예루살렘 성은 폐허가 되어버렸고, 빈천한 국민들만이 남아서 포도원을 지키는 농부가 되었다(왕하 25:8-12). 바벨론은 그다랴를 총독으로 세워서 미스바란 곳에서 임시정부를 허락한다(렘 40:7-12).
그러나, 이때 예레미야는 바벨론에 의해서 풀려나게 된다(39:11-14).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할 것이라는 예레미야의 예언은 드디어 성취되었다! 바벨론의 군대장관 느부사라단은 예레미야에게 경의를 표하며, 그에게 자유를 허락했다. 이제 예레미야는 바벨론에 가서 높은 위치도 차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백성들과 끝까지 함께 있었다. 그가 뼈를 묻을 곳은 백성들 곁이었던 것이다(렘 40:6). 남은 일은 과연 무엇일까? 비록 오합지졸들이지만 그들은 예레미야의 예언을 신뢰하며 70년을 기다려야 했다. 그러나, 그 남은 오합지졸들 사이에도 권력의 암투와 배신의 칼이 도사리고 있었다. 총독 그다랴는 믿었던 요하난에게 죽임을 당하고(렘 41:2), 요하난은 바벨론의 징벌을 두려워하면서 에굽으로 도망가게 된다(렘 43:7). 이 도망자들의 행렬속에 예레미야는 꼼짝없이 잡혀서 에굽에서 생을 마치게 된다.
예레미야에서 우리가 들어야 하는 메시지는 과연 무엇인가요?
지금까지 우리는 예레미야서의 목소리를 대략 역사적 재구성을 기반으로 들어보았다. 그렇다면, 과연 예레미야서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그리고 우리가 들어야 하는 메시지는 과연 무엇일까? 사실, 예레미야서 전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며, 예레미야서 전체가 메시지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몇가지 핵심사항을 뼈대로 세우는 것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가장 핵심이 되는 뼈대를 이루는 부분을 삼으라면 렘 30:1-33:26이다. 이 부분을 학자들은 “위로의 책”이라고 한다. 물론, 부분적으로 심판도 들어있지만 전체적인 뉘앙스는 “여호와의 은혜는 과연 어디까지인가?”라고 감탄하게 되는 부분이 바로 여기이다. 우리가 많이 알고 은혜받았던 구절이 바로 여기에 들어있다:
예레미야가 아직 시위대 뜰에 갇혔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다시 임하니라. 가라사대,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33:1-3)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종 야곱아 두려워말라! 이스라엘아 놀라지 말라! 내가 너를 원방에서 구원하고 네 자손을 포로된 땅에서 구원하리니, 야곱이 돌아와서 태평과 안락을 얻을 것이라! 너를 두렵게 할 자 없으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와 함께하여(임마누엘!) 너를 구원할 것이라!(30:10-1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세운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파하였음이니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것이라.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31:31-34)
위의 구절들은 예레미야 자신의 말이기도 하면서(33:1-3), 원래 상황에 선포되었던 예언을 받아서 새로이 해석해서 자신들의 신앙공동체(신명기적 율법에 순종을 강조하는 요시야 개혁의 추종자들)의 유익을 위해서 편집된 것이기도 하면서(30:10-11), 최종적으로는 (어떠한 외형적인 율법의 지킴보다도) 여호와께서 친히 함께하심으로써 은혜 아래에서 여호와를 아는 믿음의 공동체에게로까지 이어져갔다(31:31-34). 사실, 이를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친히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었는가? 그러므로, 예레미야서에서 들어야할 목소리는 아직도 많이 있다.
예레미야의 예언자적 삶은 성공적이었나요?
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예언자로 세웠노라
‘열방의 예언자’가 예레미야의 타이틀이며, 그의 운명이었다. 사실 예레미야는 다른 어떤 예언자들보다 열방을 향해서 엄청난 예언을 했다(렘 46-51장). 비록, 이 부분은 다루지 못했지만, 여호와가 어떠한 분이시라는 것을 백성들에게 충분히 알렸음에는 틀림없다.
예레미야는 부르심에 매우 주저했다. 이는 모세의 주저함과 맥락을 같이 한다. 우리는 예레미야서를 읽을 때마다 예레미야를 이해할 수 밖에 없다. 예레미야는 독신으로 살 것을 명령받았다(16:2). 이것은 후손을 가질 수 없음을 의미하며, 생의 종말을 상징한다. 즉 유다의 종말인 셈이다. 자신의 삶 자체가 국가의 마지막됨을 몸소 나타낸 것이다. 11-20장은 애가로 유명하다. 하나같이 애절하며, 마음 졸이는 예레미야의 깊은 슬픔을 느낄 수 있다. 정말로, 예레미야의 사역은 가시밭길 그 자체였다. 또한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예레미야는 사역 초기에 가족에서부터 시작하여 엄청난 압력을 받아야만 했다. ‘열방의 예언자’가 ‘수신제가’(修身齊家)도 못한 것이다. 그러한 감정은 예레미야를 매우 힘들게 했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권유하시므로 내가 그 권유를 받았사오며, 주께서 나보다 강하사 이기셨으므로 내가 조롱거리가 되니 사람마다 종일토록 나를 조롱하나이다(렘 20:7)
한글성서에서 읽을 수 없는 부분이지만, 이 고백은 엄청난 내용을 담고 있다. ‘권유’는 ‘꼬드기다’라는 의미이다(출 22:16; 삿 14:15; 욥 31:19). 쉬운 말로 속였다는 것이다. 예레미야는 자신의 예언자됨에 대하여 ‘내가 하나님께 속았다!’라고 말할 정도로 고통받고, 그 사역이 힘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여호와를 이길 수 없었다. 여호와가 더 강하기 때문이다. 가슴에 불이 붙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예언자의 삶을 대표한다. 또한 이것이 교사들의 삶이 아니겠는가! 예레미야의 평가는 역사가 증명했다. 예레미야서는 신구약 성서중에서 가장 두꺼우며(시편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대할때에 사람들은 마치 ‘예레미야’를 본 것과 같다고 했다(마 16:14)!
4. 오늘의 예레미야서
예레미야서는 어떻게 신앙공동체에 영향을 끼쳤나요?
마태는 예수 그리스도를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분으로 소개해야 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라면 당연히 모세이다. 결국, 마태는 예수님을 새로운 모세로 소개한다(앞서 말한 5개의 큰 가르침을 기억하라). 여기서 ‘새롭다’라는 것은 모세(율법실천적 중심의 신앙)가 할 수 없었던 진정한 구원을 이뤘다는 것을 말한다. 즉, 모세는 오직 가르침만을 남겼을 뿐이다(어찌보면 신명기적 역사가도 이 가르침만을 붙잡았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그 가르침을 뛰어넘어서 실천으로 보여주셨다. 바로 십자가에서 여호와의 사람사랑하심을 몸소 보주신 것이다(모세는 자기 죄로 죽었다!). 그런 측면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예레미야서의 핵심 메시지와 맥을 같이 한다(한편, 마태복음에서 예레미야는 3번 등장한다[2:17; 16:14; 27:9]).
사람들은 예레미야를 ‘눈물의 예언자’로 받아들였다. 예레미야의 분위기는 암울하다. 다음의 두 그림은 위대한 미술가들이 그려낸 예레미야이다.
역시,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 예레미야를 형용사는 ‘우울’이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그 중심에 여호와의 임마누엘이 있었다(32:39-41). 예레미야는 길고도 긴 슬픈 꿈을 다 꾸고나서 다음과 같이 기지개를 폈다:
내가 깨어보니 내 잠이 달았더라(렘 31:26)
끝
출처: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 먹었사오니] 원문보기 글쓴이: 진실과 열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