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흘산 일출앞에서

[고인돌(임종삼)]

지음, 2005년 1월 1일, 신년 새해의 일출을 맞이하고자 경상남도 남해군 가천리의 위치한 설흘산 일출 산행에 나섰습니다. 2004년 12월 31일 밤 10시, 야간 등산 장비를 갖추어 집을 나섰습니다. 제주도와 전라남북도 바닷가 해안에는 폭설이 내린다하여 스패치와 아이젠 그리고 랜턴 하나를 더 구입하였습니다. 무박 2일 산행을 처음 따라 나서는 후배 임 군의 몫이었습니다.

  수원 시청 앞에서 10시 30분에 출발한 산행버스는 새로 개통된 대진(대전-진주)고속도로를 달려 새벽 3시 30분에 목적지인 경상남도 남해도 가천 마을에 도착하였습니다.

아직 해맞이 시간이 일러 버스에서 잠을 청하며 쉬었습니다. 설악산 대청봉 일출처럼 서너 시간을 올라가는 길이 아니어서 시간에 여유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불편한 버스의 좁은 좌석에서 한번 깬 잠이 다시 올 리 없었습니다. 어제 저녁 수원문학인협회 송년문학의 밤 행사 뒤풀이와 버스에 올라 지루한 시간을 잊기 좋다며 산행 친구들과 나누어 마신 몇 잔의 소주에 취해 1-2시간의 단잠에 빠졌던 것입니다.

  그런 까닭으로 임 군과 함께 이 마을의 기념물인 암수바위를 찾아 가고자 하였습니다. 대체로 우리네 바닷가 포구 마을에는 해신당이 모셔지고 당나무가 있는 것이 우리의 토속 신앙이기에 암수 바위의 모습이 궁금하기도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나와 임 군은 곧 바로 되돌아 와야 하였습니다. 이정표에만 나타난 암수바위를 캄캄한 밤에 찾아간다는 것이 아무래도 무리한 일이었습니다. 대낮이라면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 볼 일이었지만, 개 짖는 소리도 없는 꼭두새벽에 누구에게 물어 암수바위를 찾아 간다는 말입니까? 그래서 산행을 서둘러 마치고 난뒤에 시간을 내서 찾아보기로 하였습니다.  

  이러저러 5시가 되어 아침 식사를 하였습니다. 아침 식사는 산악회 모대장이 준비한 육개장이었습니다. 모대장은 요리 솜씨가 좋아 종종 산행을 따라 다니며 산행에 나선 사람들의 식사를 준비하는 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은 무박 2일의 산행이기에 따끈한 국물의 육개장에 김치, 깍두기를 준비하였던 것입니다. 야외용 가스버너에서 펄펄 끓인 육개장 국물에 밥을 말아 갯바람을 등지고 훌훌 불며 아침 식사를 하고 나니 전 날에 마신 소주의 숙취가 단번에 날아가고 뱃속이 붕긋이 따스해져 왔습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설흘산을 오르기 시작한 시간은 5시 50분경이었습니다. 저마다 이마에 는 갱도를 찾아드는 광부처럼 헤드라이트를 켜거나 랜턴을 들고 산을 올랐습니다. 설흘산으로 오르는 외길에는 자욱눈이 내려 산을 오르는 길이 붐볐습니다. 대략 120명 정도의 일출맞이 인파가 몰렸을 뿐인데도 모두들 시간에 맞추어 나선 까닭에 뒤에 출발한 사람들은 여기까지 와서 일출맞이 시간에 늦을 까 봐 조바심을 내는 이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맑은 달빛과 랜턴 불을 밝혀 산을 오르기 1시간 30분을 소걸음으로 올라 설흘산 정상에 다다랐습니다. 산의 정상에는 봉수대가 서있었습니다. 아마도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로 이어진 봉수대였습니다. 왜구의 출몰을 감시하여 봉화를 올렸던 전초기지의 역할에 충실하였을 봉수대인데 떠오르는 새해 일출을 전망 좋은 장소에서 보려고 이미 봉수대와 봉수대 아래에는 빈 자리가 없었습니다.       

  설흘산 봉수대가 위치한 가천은 조선시대 임진왜란에 극난극복의 위대한 인물 이순신 장군이 남긴 난중일기에도 가끔 등장하는 작은 포구 마을이었습니다. 어쩐지 낯익은 이름이다 

싶었는데, 봉수대를 마주하니 퍼뜩 그 기억이 되살아났습니다.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펴보니 사천 방향으로 높은 산이 솟았는데 그 산의 봉우리에 듬직한 곰바위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 바로 그 바위였습니다. 그 옛날, 뱃사람들이 열도에서 대마도를 거쳐 한반도로 건너 올 때에 선장들이 기준을 삼는 바위, 바로 곰바우였습니다. 사천의 곰바우를 보고 바다를 건너오다 뱃머리를 오른 쪽으로 돌리면 배는 거제도에 이르고, 뱃머리를 왼쪽으로 돌리면 배는 여수를 거쳐 목포로 향하는 이정표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임 군과 나는 봉수대에서 내려와 100m 쯤 산등성이를 타고 나아가 관망지를 잡았습니다. 그로부터 10분 여를 기다려 7시 40분 경에 남해 바다를 뚫고 솟아오르는 2005년 새해 일출을 환호로 맞이하였습니다. 그리고 새해의 벽두를 여는 남해도 일출에게 가족의 몸과 마음의 건강과 나를 격려해주고 이끌어주는 주위 분들의 몸과 마음의 건강을 설흘산 봉수대에서 남해도 붉은 일출에게 기원하였습니다.

  경상남도 사천과 전라남도 여수 사이에 위치한 남해도 가천 마을 앞바다에서는 LNG 가스 운반선이 뱃고동 소리로 새해 아침을 열었습니다. 화물선 선장 또한 가천 봉수대에 올라 환호로 새해 일출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희망찬 모습을 본 모양이었습니다.

 ‘부웅, 부~웅, 부웅, 부우웅’
  여수항을 들고나는 커다란 화물선이 내는 뱃고동 소리는 산골에서 자란 소년의 낯선 귀에는 굵은 버들피리 소리에 비교되었습니다.

굵은 저음의 파이프 오르간이 내는 소리, 남해 바닷가에서 나서 자란 사람 중에 음악가, 시인, 화가 등이 많은 것도 아마 쪽빛 바다와 뱃고동 소리, 바다에 면한 다도해의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자란 유년 시절의 풍요로운 정서에 바탕을 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계적인 가수 조수미가 그러하고, 시인 청마 유치환이 그러하고, 화가 김병종이 그러하듯 

아름다운 환경이 주는 어린 시절의 소중한 체험은 순백의 무명천에 핏물로 물드는 것처럼 5감으로 받아들이는 것이기에 한 사람의 영혼을 지배하는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문득 왜구의 괴롭힘도 없는 평온한 이즈음에는 이 곳 바닷가로 이사와 살고 싶은 충동이 들었습니다.

  설흘산에서 매봉을 거쳐 가천 해수욕장 바닷가 포구로 이어지는 칼바위 능선에서 바라본 주변 바다는 온통 쪽빛이었습니다. 그 아래로 푸릇푸릇 산다랭이 논이 그리는 곡선이 또한 아름다웠습니다. 처음에는 그 푸릇푸릇한 논밭이 보리밭이려니 하였는데 산을 휘돌아 내려와 보니 푸릇푸릇한 산다랭이 논밭에 자라는 작물은 마늘이었습니다. 올 겨울의 이상 난동으로 벌써 한 뼘이나 웃자란 마늘밭이 자욱눈 내린 하얀 언덕에 싱싱한 초록빛을 더하는 것이었습니다.

  포구 마을에는 하얀 어선들이 물오리처럼 떠있고, 마을 언덕에는 수백 년도 더 된 소사나무가 마을을 수호하는 당나무로 창호지에 싼 지전을 꿴 새끼줄을 두르고 있었습니다. 돌아가는 길도 대여섯 시간이 걸리려니 일행은 서둘러 길을 떠났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바지를 걷어 붙이고 겨울 바다에 들어가 손발이라도 씻고 싶었으나 나를 따라 일출 산행을 처음 따라온 임 군과 행동을 같이 하다보니 오늘 산행은 시간에 쫓기었습니다. 일행 중에 한 분은 이곳에서 홀로 떨어져 남해를 일주하고 수원으로 올라간다며 길을 떠났다는 말을 듣고 그 사람의 자유로운 행보가 부럽기도 하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자동차로 남해 바다 해변을 일주하며 신년 휴가를 보내는 이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런 저런 일로 이곳의 기념물인 암수 바위도 찾아보지 못하고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길에 수바위만 순간으로 보았습니다. 수바위는 사람 키만 한 크기의 남근석의 형태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일행은 노량 대교 아래에 12시에 도착하여 점심을 들게 되었습니다. 곰바우 횟집이 눈에 띄어 들어가고자 하였으나 이미 단체 손님이 자리를 차고 앉아 있었습니다. 약속한 시간을 넘기지 않아야 하겠기에 그 부근의 마산횟집에서 우럭회 한 접시에 매운탕을 곁들여 식사를 마치었습니다. 세 사람이 생선회 한 접시를 안주하여 소주 세 병을 마시며 매운탕을 먹는데 걸린 시간은 대략 1시간 30분, 30분 정도의 시간이 더 있었으면 좋으련만 차안에서 기다리는 일행의 마음을 헤아려 서둘러 발길을 돌렸습니다.

  지음, 내일은 2005년 새해 일년지계(一年之計)를 간결하게 세워야 하겠습니다.       

[모연응]

지마누란 식당경영 경험이 없는디유!^^

[고인돌(임종삼)]

수정해야 겠네요 무얼 잘못 들었는가봐요

[은비령]

글 잘읽었습니다. 고인돌님의 글들은 한편의 단편을 읽는것같아 무척이나 흥미롭습니다. 미처 알지못했던 역사와 산행정보도 좋습니다....

[Designer]

그 때가 눈앞에 그려지는군요! 올해를 계획했는데... 다시 한번 마음잡는 계기가 되었군요. 살뜰한 산행후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