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슬로 폭스트로트와 퀵스텝의 뿌리 찾기(1).
경쾌하고 생기 넘치는 [퀵스텝]은 도대체 누가 고안한 것일까?
또, 강이 흐르는 것과 같이 부드럽게 춤추는 [슬로 폭스트로트]는 누가 창시한 댄스일까?
나는 이 의문을 풀기 위해 열심히 조사한 결과, 드디어 그 뿌리를 찾아냈다.
-[퀵스텝]도[슬로 폭스트로트]도 재즈 음악의 4박자로 춤추는데, 이 “재즈”가 미국의 뉴 올리언스에서 세계처음으로 탄생한 것이 1895년의 일로, 버디 볼든이 래그타임 밴드를 결성해 연주한 4박자 리듬의 음악 이였다.
미국의 남북전쟁 때 북군의 장병이 놓고 간 트럼펫 등 악기를 사용해 흑인들이 연주한 이 4박자의 래그타임은,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루이 암스트롱이 대표하는 [딕시랜드 재즈]라고 불리고 있다.
이 음악에 맞추어 춤추는 흑인들의 댄스에 힌트를 얻은 영국태생의 버논 캐슬은, 부인 아이린의 협력을 얻어 걸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출 수 있는 댄스를 목적으로 [캐슬 워크]라고 하는 워크와 샤세(shasse)를 기본으로 한 댄스를 창작, 파리에서 사업을 하기 위하여 미국을 떠났으나 세상은 그리 쉽지 않아 처음의 계획과는 달리 형편없는 생활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우연히 여성 프로모터의 마음에 들게 된 캐슬 부부는 [카페 드 파리]라는 클럽에서 캐슬 워크를 선보여 파리의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게 되어, 하루 밤 사이에 스타가 된다
1912년의 일이지만 이 캐슬 워크가 유행하게 된 원인 중에는 어빙 벌린이라는 사람이 1911년 발표해 많은 인기를 얻은 “Alexander's Ragtime Band”라는 곡의 영향도 컸다.
또한, 콜 포터나 조지 거슈윈 등이 작곡한 음악이 가지고 있는 힘도 잊을 수 없다.
1910년 이전에는 직업적인 댄스밴드가 거의 없었지만 20세기가 되어 댄스와 음악이 크게 변화, 많은 댄스밴드가 결성되었다. 이전의 무도회는 상류사회의 사람을 위한 사적인 것으로, 레귤러 댄스밴드가 활동 할 수 있는 홀이 없었다. 댄스를 위한 반주는 바이올린과 피아노, 드럼, 밴조 정도인 소인수로 편성된, 무도회를 위해 임시로 짜인 아르바이트 뮤지션이 많았다.
누구나 들어올 수 있는 마을의 댄스홀은 신사, 숙녀들이 갈만한 장소가 아니라는 인식이 있었으나, 20세기에 들어선 후 변화된 라이프 스타일의 영향으로 사람들은 호텔이나 레스토랑에 식사를 하러 가는 것 같이 가벼운 기분으로 춤추러 가게 되었다.
그리고 댄스 홀도 점점 호화스럽고 일반 여성들도 안심하고 춤을 출 수 있는 장소로 변화, 레귤러 댄스밴드가 출연하기에 이르렀다.
댄스홀이 마련됨과 동시에 트럼본과 섹서폰이 더해진 대 편성 재즈밴드가 잇달아 등장하였다. 폴 화이트먼, 에디 듀친, 가이 롬바르도, 듀크 엘링턴등이 활약, 그리고 30년대 스윙시대에는 아티 쇼,베니 굿맨, 글렌 밀러등의 밴드가 기분 좋은 재즈음악을 연주했다.
미국의 뉴올리언스에서 발생한 재즈음악은 지금까지의 댄스를 크게 바꿔, 이전의 댄스는 스텝을 중요시 하였다면 재즈음악에 맞춰 춤 출 때는 비트를 중시 하였고, 재즈의 특징인 Syncopated로 한 박자 한 박자를 매끄럽게 춤추는 지금까지의 댄스와는 달리, 사람들은 현대적으로 느껴지는 매끄럽지 않은 악센트를 들으며 유쾌하게 댄스 스텝을 밟았다.
이, 한 박자에 브레이크를 넣는 리듬이 래그타임으로 이 리듬에 맞춰 [Cake Walk]가 유행했다.
Cake Walk라 불리우는 춤은, 남녀가 손을 잡고 점잖게 걸으며 갑자기 다리를 차올리는 춤으로, 흑인 유랑인 들이 피날레에 이 춤을 추어, 가장 잘한 커플에게 케이크를 주었기 때문에 Cake Walk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래그타임의 유행과 함께 Cake Walk가 사교계에서도 사랑 받았고, 거기에 에니멀 댄스라는 여러 동물의 몸짓을 흉내 낸 댄스가 생겨났다. [monkey dance], [horse trot], [fish walk]등이 그것으로 [폭스 트로트]도 여기에 속한다.
이 [폭스 트로트]댄스는 버논과 아이린 캐슬 부부가 유행시킨 것으로, 1914년에 미국에서 공연, 단기간에 미국 전역에서 유행했다.
그리고 1917년에는 영국에도 재즈음악이 유행하기 시작, [원스텝]과 [밀리터리 투스텝], [터키 트로트]를 췄다.
그럴 때, 세계대전으로 런던까지 출정한 미국장병들에 의해 들어온 새로운 형식의 폭스 트로트는 원스텝 보다 재미있는 댄스라는 것을 영국인은 알게 되었다.
이렇게 캐슬 워크, 즉 폭스 트로트가 런던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영국과 독일이 전쟁을 시작하기 조금 전의 일이었는데, 당시의 폭스 트로트는 매우 간단하여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추었다.
이 댄스를 창시한 캐슬 부부는 미국의 대스타로, 두 사람을 모델로 한 전기 영화가 프레드 아스테어와 진저 로저스 주연으로 제작될 정도로 유명해졌다.
영국의 댄스팬들은 왈츠, 탱고는 익숙하지 않아 추지 못해도, 폭스 트로트의 스탭은 간단하기 때문에 바로 춤출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히틀러가 지휘하는 독일과의 전쟁에 출정하여 죽을 수도 있는 아들과 댄스홀에서 밤새 춤을 추고 이별을 아쉬워하는 가족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탱고는 아르헨티나에서 프랑스 파리로 건너갔으나, 폭스 트로트는 미국 장병에 의해 프랑스보다 먼저 영국에 전해져, 모든 댄스홀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머지않아 1920년에는 전쟁도 끝나, 영국에서 처음으로 [댄스 콘테스트]가 열렸는데 그 경기종목이 폭스 트로트였다. 그리고 이 댄스 콘테스트에서 우승의 영광을 얻은 사람이 미국인 케네트 안데르손 이라는 남성과 콤비를 결성해 출전한 죠세핀 브래들리이였다.
이와 같이 4박자 리듬에 맞춰 춤추는 폭스 트로트의 유행에 더불어, 4박자의 리듬에 춤추는 [찰스턴]이라는 댄스가 생겨나 댄스홀은 복잡해졌다.
찰스턴은 1923년 미국의 사우스 캐롤라이나주의 찰스턴이라는 항구도시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추기 시작한 다리를 차올리거나 뛰어오르거나 하는 빠른 움직임의 댄스로, 래그타임으로 춤추는 폭스 트로트에 믹스, 누구나 춤을 출 수 있도록 어려운 사이드를 간단하게 하여, 1925년 영국에 전한 춤이다. 하지만, 젊은이들이 너무나도 많이 사이드 킥을 하며 찰스턴에 열광하여, ‘찰스턴 무도병’이라 불리며 댄스홀에서는 “찰스턴은 조용하게”라고 쓰인 벽보가 있을 정도였다.
또, 후일 에드워드 8세가 되고, 심슨부인과 사랑에 빠져 왕관과 왕위를 버린 영국의 황태자도 찰스턴의 팬 이였다고 합니다.
찰스턴 외에도 [블랙 바텀], [지미]와 같은 아프리카계의 움직임이 빠른 댄스가 유행, 바닥에 닿는 긴 드레스를 입고 춤췄던 올드 타임 때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상태였다. 코르셋을 입지 않고 무릎까지 오는 짧은 스커트의 여성이, 아프리카풍의 큰 팔찌를 차고 무릎을 다 보인 채 찰스턴을 췄던 것이다.
이와 같이 재즈음악에 맞춰 춤추는 여러 동물의 몸짓을 흉내 낸 댄스의 출현, 다리를 오른쪽, 왼쪽으로 차올리며 추는 위험한 춤 찰스턴 때문에, 댄스의 종목과 스텝이 범람한 댄스홀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이와 같이 프랑스 혁명 이래, 나타나서는 사라지는 댄스의 종목과 스텝의 범람에 질린 대중은 댄스를 그만두기 시작했다.
이런 댄스홀의 상태를 우려한 필립 J 리처드슨(영국의 유력한 댄싱 타임즈사 편집장)은, 댄스교실을 경영하는 댄스 선구자들과 여러 번의 회의를 열어, 댄스를 선별해 누구라도 쉽게 접할 수 있고, 즐겁게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표준댄스”의 성립을 목표로 1920년부터 준비를 시작, 1924년에 [대영제국무도교사협회]중에 [볼룸댄스부문 위원회]를 설정, 발족하였다.
위원회의 초대위원장은 Josefin Bradley여사가 임명되어, 5명의 위원이 선출되었다.
턴게이트 스미스, 뮤리엘 시몬즈, 레즐리 헨프리, 죠지 폰타나, 그리고 빅터 실베스터가 있었다.
교사 대표인 위원들이 장래 댄스계의 발전에 대해 토의한 결과, [원스텝], [폭스 트로트], [왈츠], [탱고]를 표준 댄스로 정해,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뿐만 아니라 예술적인 댄스의 교육제도의 확립에 힘을 쓰고 있었다.
이것은 1665년 프랑스의 루이14세가 창설한 [국립무도전문학교]이래, 댄스계의 획기적인 일이였다.
1929년 리처드슨을 위원장으로 한 공식자문위원회(오피셜 보드)를 설치, [원스텝]이 [퀵스텝]으로 명칭을 바꾸고, [폭스 트로트]를 느린 템포로 연주해 [슬로 폭스트로트]라 부르기로 하였다. 또, [왈츠]도 템포를 느리게 하여, 빠른 템포의 [비엔나 왈츠]와 [스케이터스 왈츠]와 구별하기로 하였다.
[대영제국무도교사협회](Imperial Society of Teacher Dancing)에서는 세계 각국의 댄스를 조사하여, 표준댄스로서 보급할 수 있을지를 검토, 각 종목의 스텝을 커트하거나 개량하거나 추가하여 [Revised Technique]이라는 댄스에서 가장 중요한 기초교본을 만들었다. 당시 회장이었던 알렉스 무어의 이름으로 발간한 것이 1948년의 일이다.
그리고 1950년에는 [국제볼룸댄스평의회]도 발족, 세계 각국이 가맹하여 [세계댄스선수권대회]의 공인과 심사원, 선수의 파견 요청 등의 창구 활동 외 여러 가지 활동을 하였다. 또, 여러분도 알다시피 [룸바]와 [살사], [차차차], [파소 도블레]등의 라틴종목도 표준화 시켜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그렇다 해도 베니 굿맨이 연주한 “Let's Dance”와 글렌 밀러의 “American Patrol”등의 곡으로 청춘의 피를 끓게하고 전신에 땀이 흐를 정도로 점프를 하거나 크게 턴을 그리며, 스피드를 높여 샤세(Chasse)나 록스텝(Lockstep)을 밟아, 다른 커플에게 지지 않도록 열심히 홀을 돌아다니며, D급과 C급에서 우승, B급에서 준우승을 하고, 동경의 A급 선수가 되었을 때가 그립다.
자료:NATD(일본댄스무도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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