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고향 맛과 멋..

<PRE>맛과 멋 ◎팔팔 끓여도 김이 나지 않아 시집살이 심하게 시킨 미운 시어미 혓바닥을 데이게 만드는 '메생이 국'을 기억할 것이다. 메생이 국을 끓일 때는 굴을 집어넣고 끓인다. 그 담백하면서 개성이 없는 맛을 자세히 설명하기는 어렵다. 추운 겨울날 메생이국은 아주 담백하면서도 친근한 개미를 느끼게 한다. 이 메생이는 서울의 재래 시장에서 간혹 눈에 띄기도 한다. 그러나 바다 오염으로 구하기가 쉽지 않다. 명절 때 늘 상에 올랐던 톳, 뜸북이도 보기 힘든 해조류가 되어 버렸다. 해태 재배하는 양식장에서 바다에 염산을 뿌려서 청정지역에서만 살 수 있는 메생이나 듬북이가 다 녹어 없어져 버렸다고 한다. 씨를 말려야 직성이 풀리는가 보다. 고향에 가면 강진 장에 가보라. 메생이가 있으면 사와서 가까운 벗들과 그 향수를 맛보시라. 강진하면 꼬막이 유명하다. 강진 탐진만의 꼬막은 아주 유명하다. 목리 장어도 유명한데 지금은 잘 잡히는지 모르겠다. "강진원님 대합 자랑, 해남원님 참게 자랑"이란 말이 있다. 강진 꼬막은 명절 후 제사 다음 꼭 올라오는 필수 찬이었다. 짧짤한 꼬막은 지금도 많이 나오고 있다. ◎작은 또랑에 조랭이질하면 한 움큼씩 나오던 작은 민물 새우가 있다. 작은 또랑에 새우, 털개 등이 많이 살았다. 소금에 수염이 떨어지게 박박 문지르고 저려서 보관해 두었다가 찹쌀밥과 3대 1로 섞어서 양념을 해서 만든 토하 젖에서 풍기는 흙 냄새를 맡을 때 거기에 고향이 있었다. 이 흔하디 흔한 토하가 이제는 귀중품이 되어버렸다. 오염과 공해 덕분이다. 강진장에 가면 토하젖을 판다. 강진에서 진짜로 치는 것은 옴천의 토하젖이다. ◎논시밭(남새밭)에 심어져 코가 핑 돌던 자주색이 진하게 울어 나오던 갓똥 김치를 기억할 것이다. 옛날처럼 작지만 그렇게 눈물을 핑 돌게 만들던 그런 갓똥은 오늘날 없다. 갓똥으로 담은 물김치는 예쁜 자줏빛으로 시원한 맛을 낸다. 매큼한 맛은 가래가 끌거나 감기에 걸렸을 때 좋은 약이기도 했다. 속이 니글거리는 술꾼들은 얼큰한 것이 참 좋다. 우리가 냉면을 먹을 때 넣는 겨자가 갓똥 씨라는 사실을 모두 알 것이다. 이 갓똥은 감기에 걸려 칵칵거리는 완고한 담이 있을 때 도움이 되는 약이다. 갓의 매운 맛은 찬 냉면을 따뜻하고 화끈한 기운으로 중화를 시켜 주기 때문에 천생연분인 모양이다. 관절염에도 쓰는 약이 갓의 씨, 백개자이다. 겨자는 비위장이 니글거리는 것을 없애주고 가슴에 냉담이 있을 때 목이 쉬었을 때도 쓸 수 있다. ◎ 눈과 지푸라기 밑에 '징하디 징한' 겨울을 보낸 '독하디 독한' 봄똥의 푸른 소식을 아는가? 꼬돌꼬돌한 봄똥 맛은 참 찰지고 약간 얼큰한 겨자 맛이 나는 것이었다. 이것은 그냥 날로 먹거나 된장에 찍어 먹어도 맛이 있었다. 겨울 내내 묵은 김치에 시달린 입맛에 새봄 소식을 전해주었지! 이 봄똥의 겉절이가 오른 밥상에는 봄의 활기가 넘쳤다 가을 배추를 남도에서는 그대로 두기도 한다. 예전에는 짚으로 옷을 입혀서 싸주었다. 여기에서 생명을 건진 놈은 봄 식탁을 위해서 장렬하게 살신성인한다. 혹독한 겨울을 난 배추이다. 이런 노지의 봄똥과 배추는 사철 푸르른 동백과 대나무가 자랄 수 있는 남도의 끝에서만 가능하다. 치열한 식물의 삶과 생존을 우리는 미각으로 즐기고 있다. 인간들이여 좀 겸허해지자. 이 배추는 냉장이 잘되어 지금도 팔리고 있다. 물김치를 담글 때 비싸지만 이 배추로 담아야 한다. 하우스배추로 담으면 맛이 안 난다. 하우스 배추로 물김치를 담으면 팔십 먹은 노인네의 거시기처럼 전혀 힘이 없다. 대흥사를 들리기 위해 해남의 황토 언덕을 지나갈 때면 노천에 뽑지 않은 겨울배추가 온몸을 사리고 있다. 배추밭 사이사이에 눈이 조금씩 쌓여있던 해남의 황토언덕을 나는 사랑한다. 우리는 남도이지만 가을 겨울이 긴 북쪽 지방이나 고산지방의 음식이 찰지다. 그러나 찰진 만큼 이 지방의 채소나 곡식은 잘다. 작은 고추가 맵다는 말처럼 내실을 기하여 수렴이 많이 된 곡채가 찰진 맛이 난다. 남도의 겨울을 지낸 봄똥은 참 생기 넘치는 채소였다. 그 시절 겨울은 참 추웠다. 눈도 많이 내리고 장수보의 얼음도 두껍게 얼었다. 순수한 시절의 이야기이다. 봄이 올 무렵 장수보에서 설매를 타다가 얼음이 꺼져서 물에 빠진 적이 있다. 그 얼음 위를 올라오려면 다시 얼음이 꺼지기를 반복하였다. 그날 악동들과 함께 독바지에 있는 누구 것인지 모르는 짚 벼늘에서 짚을 여러 단 가져다 불을 피워 옷을 다 말렸다. 짙은 권색 모자가 달린 다우단 잠바였다. ◎ 입이 크고 바닥이 좁은 옹기로 된 추자도 멸치 젖을 엄니 누님들은 강진장에 가서 사왔다. 추자도 옹기를 기억하는지 모르겠다. 이것을 밑구멍을 내어서 엎어서 굴뚝으로도 사용했잖은가? 동네 아짐들 여럿이서 까치내 골을 넘어서 젖을 이고 왔다. 추자도 멸치 젖으로 담은 '김치'는 맛이 아주 깊고 무겁고 힘이 있어 여운이 오래 간다. 전라도 김치는 흡인력이 있다. 김치의 마력에 빠지다보면 과식을 하기 쉽다. 영광굴비처럼 추자도의 멸치도 이름만 남아 명맥만 유지하는 실정이란다 그래도 추자 멸치는 좀 잡히는 모양이다. 이곳에 가면 상치와 양념을 넣고 버무린 멸치회를 맛볼 수 있다. 김장이 끝난 저녁 하얀 쌀밥에 김치를 길게 찢어 먹던 기억이 나시나요? 다들 그 입맛들은 '척하면 삼척', '포하면 삼천포'식으로 우리 기억 속에 살아있다. 한 겨울 복자가 새겨진 사기 접시에 가지런히 썬 김치의 깔끔한 맛도 생각날 것이다. 김치는 왜 찢어먹는 것과 칼질을 해서 먹는 맛이 다를까? 봄이 되면 김치가 익어서 힘이 없어진다. 이 때 김치 속에 든 고기나 생선 썰어 넣은 것이 곰삭아서 이빨에 부드럽게 씹히면서 맛을 발할 때이다. 김치 양념에 들어가는 청각을 기억하는지 모르겠다. 청각의 독특한 향과 맛을 기억하는지 모르겠다. 지금 김치에 들어있는 것을 거의 못 봤다. 상대적으로 충청도 대천의 새우젓이나 안면도의 까나리 젖으로 담은 김치는 담백하고 시원하며 깔끔한 맛이 있다. 충청도로 전라북도와 인접한 추억의 도시 강경과 소리꾼 장사익의 고향인 광천장에서 전국 젓갈 거래가 절반가량 이루어진다고 한다. 여름에 먹을 김치는 짜게 담갔다. 이것은 여름까지 남아서 짜고 신맛으로 더위에 지쳐 밥이 안 넘어갈 때 꺼내어 먹었다. 물에 밥 말아 먹을 때 작게 써린 짠지는 입맛을 돌게 했다. '묵은 내'가 나지만 너무 짜고 시어서 물 말은 밥에 궁합이 잘 맞는 반찬이었다. 아마 추석 전까지 먹었던 기억이 난다. 찬이 귀하던 시절 김장할 때 여름에 먹을 김치를 따로 준비해 땅에 묻어 두었다. 지금은 김치냉장고가 나와 흘러간 추억이 되어 버렸다. 이제는 그 묵은 내도 그립다. ◎강진에 짱뚱이 탕을 잘 하는 곳이 있다. 여기저기 간척지를 막고 하구언을 막아버려 뻘이 없어지고 민물과 썰물을 오가는 길이 막혀버리면서 그 때 그 시절 향수를 알려줄 고기들이 잡히질 않는다. 짱뚱이는 반염수성 물고기로 가슴지느러미가 발달되어 갯벌위를 뛰듯이 걷기도 한다. 개성이 강한 이 놈은 산란기에는 개펄 수렁 속 깊이 파고 들어가서 산란을 한다. 짱뚱이의 본명은 짱뚱어이다. 망둥어과의 바닷물고기라고 한다. 몸 길이 15∼18cm정도로 머리가 몸보다 폭이 넓고, 눈이 개구리처럼 툭 불거진 인상파이다. 청람색 몸에 흰 반점이 여기저기 있다. 서해나 남해의 개펄에 살고 있는 친구들이다. 망둥이가 뛰니 짱뚱이가 뛰다가 배가 터졌다는 말이 있다. 그렇게 흔하던 짱뚱이도 많이 안 잡혀서 아주 귀한 음식이 되어 버렸다. ◎영암에는 숭어알 젖이 유명하다. 이것도 영산강 하구언을 막아버려서 어란 젓은 옛날 그 맛이 아니라고 한다. 영암의 숭어 어란 젖은 옛날부터 임금의 진상품이었다. 음력 4월 초 영암 미암면에서 잡힌 참숭어의 알을 채취한 것이라고 한다. 이것은 깨끗이 싯어 조선장에 염장을 하고 형태가 잘 유지되게 나무판으로 여러 번 누른 다음 말리는데 참기름을 여러 번 칠해주면 말린다. 이 숭어 어란 젖을 먹을 때 재미있는 것이 이빨로 씹어먹는 것이 아니고 혀로 오물거리면서 먹는다고 한다. 하하하! 이렇게 해야 '개미'가 느껴진단다. 그렇다면 우유나 물을 씹어서 먹어보라. 이 또한 또 다른 맛으로 다기온다. 어란 젖을 칼로 썰 때는 칼에 열을 가해서 썰고 종이장처럼 얇게 썰어야 한다. 어란은 한지에 싸서 석작(소리가 반갑제!)에 담은 다음 명주 보자기에 싸서 서울 상감에게 진상을 했다고 한다. 참 공력이 많이 드는 미식이다. 영산강을 막아버렸으니 옛날 숭어 어란 젖이 아니다. 민물과 바다를 오가는 반염수성 물고기들은 갈 곳이 없다. 숨통 활로를 이 근대화가 막아버린 것이다. 목포와 영산포를 영산강을 타고 오가던 배들은 이미 없어진지 오래다. 영산포에서 목포까지는 대략 여섯시간 가량 걸렸다고 한다. 그 낭만을 음미하고 싶지만 이제는 추억이 되어 버렸다. 무엇인가 막는 것은 반 자연적인 것이다. 언제가 지금의 행태를 반성하고 다시 하구언을 철수할 날이 올 것이다. 그 날까지 우리는 영암 어란 젖의 개미를 기억해 둘 것이다. ◎고향도 이렇게 자꾸 변해가고 삭막해지며 사라져 가고 있다. 다시 올 수 없는 옛 시절이 그립다. 정약용의 형 정약전이 흑산도에서 쓴 자산어보에 의하면 향토음식으로 대표할 수 있는 음식은 '흑산 홍어', '미암(영암) 낙지', '몽탄 숭어'라고 한다. 미암 낙지는 세발 낙지로 불리는 것으로 지금 막혀버린 영산강 하구언에서 많이 잡혔다. 여름날 더위 먹은 소가 있으면 세발 낙지를 먹였다. 세발 낙지는 보양식의 역할을 충분히 한다. 몽탄 숭어도 하구언을 막아 버리니 올라오지 못하고 또한 물이 오염되면서 옛 맛을 잃어가고 있다. 댐, 하구언, 간척지 등은 아주 반자연적인 문명의 잔재들이다. 이들은 기존 생태계의 활로를 막아버린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활로를 남겨두고 건설하는 것이 원칙이란 생각이다. ◎ 잔치하면 약방의 감초처럼 빠지지 않는 썩은 암모니아 냄새를 풍기는 '홍어'는 입천장이 벗겨지게 만들었다. 홍어를 삭히면 껍질에 나오는 끈적거리는 진액이 나오는데 이것을 지푸라기로 닦아내고 듬성듬성 썰어서 굵은 왕소금과 고춧가루 섞은 것에 찍어먹기도 했다. 진도 사람들은 그렇게 먹는데 우리는 보통 맵고 시큼한 초장에 찍어서 먹었다. 마늘을 좀 다져서 넣으면 초장 맛이 좋았다. 초장이 맵고 시큼해야 억센 홍어의 뼈가 부드러워진다. 산미는 상근하고 연골을 부드럽게 만들어주고 긴장된 근육을 풀어준다. 고급자용 홍어(지금은 모두 수입산이지만)는 눈물이 핑돌 정도로 매웠다. 전라도의 잔치에 홍어가 빠지면 그것은 곧 격이 없는 집안이라는 말이었다. 충청도 밥상에 간월도의 어리굴젓과 무젖(게)이 빠지면 양반의 밥상이 아닌 것처럼 홍어 빠진 잔치는 '귀 빼고 좆 뺀 당나귀'라던가? 홍어는 삼합이 있다. 익은 김치, 삶은 돼지고기, 홍어가 만나서 이루는 맛의 황금분할이다. 여기에서 홍어가 빠진 것이 보쌈이다. 삼합을 소주가 아닌 막걸리와 함께 먹으면 둘이 먹다 혼자 홍콩가도 모른단다. 홍어 먹고 홍콩간다고 해서 '홍어'라고 한다는 '믿거나 말거나'학설이 있다. 참 미각은 우리의 몸과 정신에 모두 살아있다. 맛은 온 몸으로 느끼는 것이다. 이렇게 궁합에 맞는 음식은 넓고 깊은 인생의 향기가 풍기는 맛깔 있는 중년(中年)과 같다. 홍어 아무리 좋게 봐주어도 참 징하디 징한 엽기적 식도락이었다. 홍어냄새는 측간 냄새에 비길 바가 아니다. 홍어냄새가 옷에 베면 며칠을 간다. 참 점잖은 음식은 아니다. 그러나 그 깊은 맛에 빠지면 빠져 나오기 힘들다. 이렇게 홍어 얘기를 하면 침을 질질 흘리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깽깽이가 아니고 따불빽이 아니고 누가 이 오묘한 미(味)의 세계를 짐작할 수 있을까? '만만한 홍어'는 다 어디 가고 진짜 홍어는 이제 금값을 호가한다. 홍어도 다른 고기들처럼 암컷이 맛이 좋다고 한다. 그래서 그물질을 하면 수없이 나오던 홍어 중 수컷이 나오면 어부는 신경질적으로 홍어의 거시기를 발로 차버렸다. 홍어가 아프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만만한 게 홍어 좆이냐!". 그렇게 '만만한 게 홍어 좆이던' 시절이 그래도 그립다. 또 하나의 어두운 그림자, 홍삼(?)들이 지금 당하고 있는 모습이 '만만한 홍어 좆(그들도 수컷이네)'을 생각나게 한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 홍어애와 된장을 넣어 끓인 보리국을 기억하는가? 군대에서 휴가 나와서 월출산을 가려고 성전 무위사로 들어가면서 어느 주막집에서 막걸리를 시켰다. 나그네가 주막집에 들어가 탁배기를 시키면 안주는 기본으로 나왔다. 이 막걸리 안주로 나온 것이 홍어애(창자)를 넣고 끓인 보리국이었다. 설지나 춘삼월 몹시 매서운 꽃샘 추위 무렵 백설이 만건곤한 곳에 홍매화가 봉우리를 맺었음직한 무위사 가는 길이었다. 이 주막집에서 만난 맛의 충격은 평생의 전율로 와 닿았다. 그래서 늦겨울 아침 산행 길은 취기로 흔들거렸지만 아름다웠으리라. 이렇게 손에 잡히지 않는 맛이 그리움 되어 우리의 몸과 마음에 멋스럽게 새겨져 있다. </P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