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름 방학이 되니 제주에 자전거 여행을 계획하고 또한 여행을 떠나기 위해 문의하는 사람들이 많다. 일일이 그 사람들에게 여행에 관해 다 답변을 상세히 해줄 수 없음이 안타깝다. 여행을 떠나는 사람마다 계획하는 경비가 다르고 일정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각다 못해 내가 딱 한번 제주에 대한 기행문을 써 놓은게 있는데 상당히 상세히 기술해 놓아 읽는 사람에게 참고가 되고 도움이 되리라 판단이 되어 용기를 내어 이렇게 싣는다. 미천한 글이라 글의 잘 쓰고 못 씀은 탓하지 말고 일부 필요한 내용만 참고하기 바랍니다. 글이 길어서 읽는데 상당히 고생하리라 생각하며, 꼭 필요한 사람만 읽어 보시길~~~~~~
우선은 제주자전거여행에 대해 개락적인 부분은 간락하게 서술해 본다.
제주는 대구에서 비행기로 가는 방법과 부산에서 배로 가는 방법이 있다. 배멀미가 심한 사람은 가능하면 배를 피하는게 좋고 여럿이 많이 갈때는 배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돌아올 때도 마찬가지다. 자전거는 앞뒤바퀴를 빼고 자전거 가방(고급 자전거 상회에서 2만원정도 함)에 넣으면 화물비를 주지않고 배나 비행기에 싣을 수 있다. 제주에서 자전거를 빌릴 경우 하루 1만원씩 달라고 하는데 하루 5천원에 빌릴 수 있다.
제주는 일주 도로에 자전거도로가 80% 정도 완성되어 있고 곳곳에 따로 경치 좋은 해안선 도로를 따라 갈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제주에서 서쪽방향으로 일주를 하는 것이 돌기에 쉽고 해안선을 따라 돌면 180km정도 거리인데 일주하는데 4일을 잡으면 여유있게 놀면서 구경도 해 가면서 돌수 있다. 제주-협제-서귀포-성산포-제주 이런 순서로 돌면된다. 돌면서 충분히 해수욕도 할 수 있다.텐트를 치시는 분들은 숙박지를 주로 해수욕장을 이용하면 되고 나머지는 위에 쓰인 지명에서 민박이나 모텔을 이용하면 된다.
그리고 나머지 일정은 한라산 등정이나 하루정도 자전거로 가보지 못한 곳(산굼부리-도깨비도로-목석원-제주 자연사 박물관-삼성혈 등)을 차량으로 관광을 하시거나, 자전거를 잘 타시는 분들은 자전거를 타고 5.16도로나1100도로를 달려 제주 서귀포 왕복 해보는 것도 괜찮다. 제주도는 자전거타기에 여름보다 겨울이 적합하다. 제주의 겨울은 그렇게 춥지 않기 때문이다. 여름엔 거의 비 맞을 확률이 많기 때문에 필히 비옷을 준비할 것. 세면도구와 수영복, 내의, 여름 옷 2벌 정도는 배낭에 넣어 어깨에 메고 자전거를 타면 된다. 일주도로를 따라 마을들이 많기 때문에 필요한 것은 수시로 보충하면 된다.
더 상세한 제주 자전거 여행에 대해 알고 싶으면 <제주도 자전거 여행>도서출판 삼화 / 박성득. 이재택 공저 / 7000원. 책을 서점에서 사서 보면 된다. 혹시 못 구하신 분들은 011-820-5244로 전화 주시면 제가 우편으로 책을 보내 드리겠습니다. 물론 책값은 온라인으로 보내 주셔야 하구요.
자! 모두들 즐거운 제주도 자전거 여행이 되길 바랍니다.
- 새천년 맞이 탐라 자전거 순례를 다녀와서 -
나는 자전거타기운동연합 사무총장으로으로 개인적으로는 행사관계로 인해 제주도를 많이 다녀왔지만, 이번에는 새 천년 맞이 의미도 있고 해서 경제적인 부담을 감수하고 아내 박은현과 딸 경빈이를 데리고 가족이 함께 다녀왔다. 신혼여행을 제주도로 갔는데 아내에게 10년 후에 다시 제주도로 여행을 가자고 약속했지만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결국 12년만에 그 약속을 지키게 되었고, 딸에게는 올해 자전거를 스스로 탈 줄 알게 되면 제주도에 데리고 가겠다고 약속했는데 이번에 한꺼번에 그 약속들을 지키게 되고 마음의 짐을 덜게 되어 더욱 기쁘다
12월 30일 오후 3시 30분 부산 김해공항에서 대구 회원 몇 분과 부산 YMCA 이준호 선생 및 학생들을 태운 비행기는 힘차게 창공을 날아올랐다. 비행기를 처음 타보는 11살의 경빈이는 창 밖을 내다보며 연신 신기해하고 기뻐하는 모습이 내 마음을 흐믓하게 했다. 딸을 바라보는 아비의 마음은 어쩔 수 없는 것인가 보다. 날씨는 맑고 하늘은 푸르기만 하다. 제주공항에 도착하니 한승철 제주본부장님이 마중 나와 계셨다. 이 기회에 여러모로 많이 도와주신 한승철 본부장님에게 깊이 감사 드린다. 신제주에 있는 한라호텔에 도착하니 서울 팀들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방 배정을 받고 서로 인사를 나누고 저녁을 먹고, 밤엔 학생들은 팀파워 교육을 하고 어른들은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 설명을 들은 뒤 자유시간을 이용 시내구경을 다녀와 취침을 하였다.
12월 31일 아침 6시 30분 기상, 세면을 하고 7시 식사를 한 뒤 7시 30분에 버스를 타고 호텔을 출발, 어리목에 도착 윗세오름까지 등산길에 올랐다. 1100번도로 어리목 입구에서 어리목까지 눈이 쌓여 차량이 오르기 힘든다고 안내원이 길을 막는데도 용감히 어리목까지 차량을 운행해 주신 기사님, 결국 어리목 20m전에서 눈에 빠져 멈추고 말았지만 그 마음 써 주심에 감사 드린다. 눈이 쌓여 아이젠 없이는 오를 수 없다는 걸 준비부족으로 그것도 구두를 신고 미끄러지면서 열심히 올랐다. 눈 쌓인 한라산은 대학생 때 졸업여행 와서 올라본 기억이 있다. 그땐 백록담까지 올랐는데 지금은 많이 훼손되어 이를 보호하고자 휴식년 기간이라 정상까지는 오를 수 없고 윗세오름까지만 등산이 가능하다. 공기는 맑고 더없이 포근한 좋은 날씨는 1999년 마지막 날 한라산을 찾은 이들에게 하늘이 축복을 내리는 것 같다. 딸아이는 학생들과 함께 벌써 쏜살같이 앞서 올라가 보이지 않고 내 아내는 숨을 헐떡이며 천천히 올라오겠다며 함께 온 할머니들과 뒤처져 올라오고 있다. 광진지부장과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경사가 심한 숲길을 가픈 숨을 몰아 쉬면서 때론 눈에 빠지기도 하면서 올랐다. 구두라 발바닥에 힘을 주고 한참을 걸었더니 엉치뼈 부분에 통증이 온다. 해발 1450m지점에 이르자 숲길이 끝나고 앞이 확 트이며 눈밭이 펼쳐졌다. 맑은 하늘에서 내리쬐는 햇살을 받아 더욱 반짝이는 눈밭, 나를 힘들게 하였던 급경사는 사라지고 완경사의 눈밭이 산정부분에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아이 마냥 뒹굴고 미끄럼 타고 싶은 마음이 내 몸에 전율을 느끼게 한다. 물도 준비 못 하고 올라온 길이라 윤철준 사무국장이 준 밀감 두 개가 왜이리 상큼하고 갈증을 해소시켜주는지, 뒤에 올라오는 아내를 위해 깃발 밑 눈밭에 밀감 6개를 묻어 두고 그 옆에 큼지막히 아내 이름을 적어두었다. 그리고 밀감을 너무 좋아해 귤순이라는 별명을 가진 아내에게 사랑하는 마음을 눈처럼 소복소복 담아서 휴대폰으로 전화를 했다. 휴대폰이라는 문명의 이기는 이럴 때 좋다. 눈밭을 천천히 걸으면서 지나온 세월들을 생각해본다. 태어나고 자라고 공부하고 결혼하고 사회생활하고, 기뻐하고 슬퍼하고 힘들어하고, 행복한 시간들과 어려웠던 시간들, 무언가에 매달려 열심히 살아온 나날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그리고 내일부터 살아갈 새 천년 속의 나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1999년 마지막 날을 걸으면서 하념없이 상념에 잡혀 있을 때 문득 눈앞에 산장이 보인다. 어느새 윗세오름에 도착한 것이다. 어떻게 오를까 걱정했던 4.7km의 등산길이 끝난 것이다. 모든 일에는 시작하는 두려움이 있지만 열심히 하다보면 언젠간 자신도 모르게 좋은 결과를 가져다준다. 바로 눈앞에 한라산 정상이 보인다. 올라가고 싶은 충동을 느끼지만 그럴 수는 없다. 돌아서니 눈앞에 끝없는 눈밭과 숲을 지나 멀리 사람들이 사는 흔적들 너머 아스라히 바다가 펼쳐져 있다. 늦게 올라오신 할머니가 에베레스트 등정하신 것보다 더 기분이 좋으시단다. 산장에서 사발면(1개 천원)을 사서 가지고 온 김밥과 함께 먹었다. 그 기막힌 맛은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때론 비밀도 필요하니깐! 커피를 마시고 폼잡고 사진도 찍고 눈사람도 만들면서 모두 재미있어 했다. 어린아이나 할머니나 마음은 매한가지다. 우리가 먹은 쓰레기들을 모아들고 미끄러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산정에서 아이젠을 사서 신고 하산하기 시작했다. 숲 속으로 난 다져진 눈길, 산장에서 준비한 비닐 봉지를 꺼내들었다. 비닐을 눈길 위에 펼치고 앞부분은 꽉 잡고 비닐봉지 위에 앉았다. 발을 드니 정신없이 신나게 내려간다. 말 그대로 인간 봅슬레이, 서로 부딪히고 넘어지고 웃으며 뒹굴었다. 옷은 좀 버렸지만 엄청난 재미에 비하면 그것쯤이야, 다른 하산객들도 재미있어 보이는지 우리들을 따라했다. 버스를 타고 호텔에 돌아와 옷을 갈아입은 뒤 제주 부두 뒤에 있는 사라봉에 가서 사봉 낙조제에 참석했다. 많은 사람들이 20세기 마자막 낙조를 보기 위해 모여들고 있었다. 줄을 서서 풍선을 받아 풍선에 세가지 소원을 적었다. 하나는 가족들 건강과 행복을, 또 하나는 21세기에는 자전거 생활화하는 사람이 많아지기를, 그리고 마지막으로 거창하게 21세기에는 지구에 전쟁이 사라지기를, 임시 무대에서는 낙조제 행사를 진행하고 있고, 우리는 낙조를 잘 감상할 수 있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눈앞에 펼쳐진 제주시의 전경, 부두의 모습, 제주 앞 바다에 떠있는 배, 1999년 마지막 태양은 사람들의 바램과는 다르게 떨어지기 싫은 듯 시간을 지체하고 있었다. 저무는 태양을 향해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이 순간을 잡아놓고 싶은 마음, 그러나 시간은 어김없이 흘러간다. 태양은 지고, 소원을 적은 풍선은 저 하늘 멀리 끝없이 날아가고, 우리는 또 새로운 태양을 맞이하기 위해 내일을 움직일 것이다. 호텔에 돌아와 저녁을 먹고 휴식를 취한 뒤 심야 밀레니엄 페스티발에 참석하기 위해 딸아이의 손을 잡고 제주시 중앙로에 나갔다. 차량통행은 금지되고 도로 네거리에는 무대가 마련되어 행사를 분주히 진행하고 있으며 제주 MBC에서 멀티비젼을 세워 놓고 전국 네트워크로 카운트다운을 중계하고 있었다. 자정이 가까워 오자 인파는 몰리고 드디어 9, 8, 7‥‥‥2, 1, 0라는 카운트다운이 끝나고 새 천년이 시작되었다. 제주의 밤하늘에 울려퍼지는 팡파레와 레이져 빔, 하늘을 수놓는 다양한 폭죽들, 사람들의 환희, 21세기는 밤의 정막을 깨고 이렇게 요란하게 시작되었다. 이 순간 문득 누구에겐가 전화하고 싶어진다. 힘든 등산을 해서 피곤하다고 호텔에 쉬고 있는 아내에게 가장 먼저 전화를 했다. 통화량이 많아 세 번 정도 시도한 후에 통화가 되었다. 나의 생활을 이해해 주고 나와 가족들을 위해 고생하는 아내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21세기 첫 음성으로 전했다.
1월 1일 5시 30분 기상 6시에 아침식사를 하고 6시 30분에 버스를 타고 2000년 첫 일출을 보기 위해 종다리에 있는 지미봉으로 갔다. 9시에 있는 밀레니엄 자전거 레이스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출봉 일출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대신 4일 아침에 일출봉에 오르기로 하고, 종다리 부녀회에서 지미봉을 찾는 사람들에게 무료로 녹차와 커피를 나누어주고 있었다. 시골여인들의 훈훈한 정을 커피잔에 담아 마시면서 지미봉 중턱에 올라 일출을 기다렸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와 함께 2000년 첫 일출을 기다리고 있었다. 7시 45분 일출, 그러나 구름 때문에 정시에 일출을 보지 못하고 8시 10분에야 구름사이로 찬란히 빛나는 태양을 봤다. 태양은 어제 사라봉에서 헤어진 그 태양이거늘 오늘 아침에 보는 태양은 왜 이리 다른 감동으로 다가오는지, 많은 사람들이 함성을 질렀다. 그 함성 속에는 각자 나름대로의 뜻이 담겨 있으리라, 다시 버스를 타고 9시 10분에 제주시 탑동에서 시작하는 밀레니엄 자전거레이스 행사장에 도착하니 식은 벌써 시작되고 있었다. 번호표를 받아 걸고 자전거를 지급 받아 레이스 준비를 했다. 경빈이는 등에 자전거타기운동연합 대구본부 깃발을 맸다. 제주일보에서는 우리들을 취재하고, 드디어 레이스가 시작되었다. 우리는 레이스 가장 후미에 출발해서 행렬을 따라갔다. 2000여명이 함께 출발하는 레이스는 장관이었다. 용두암을 지나 해안도로를 따라 도두동을 돌아오는 20km정도의 레이스 길, 2000년 첫 출발을 자전거로 한다는 것이 무엇보다 기분이 좋았다. 딸아이와 보조를 맞추어 가면서 시작하는 2000년의 새 출발, 왠지 올해 모든 일이 잘 풀릴 것 같다. 이 자전거 레이스를 개기로 올해엔 자전거 생활화가 좀더 많은 국민들 사이에 자리잡고 활성화되어 건전하고 검소한 생활습성이 모든 국민들에게 보편화 되었으면 좋겠다. 돌아오는 길에 언덕이 높아 많은 사람들이 걷고 있으며 딸아이도 힘들어 자전거에서 내릴려고 한다. 경빈아 내리면 안돼 이 정도 언덕쯤은 이겨내야지 이야기하고 힘을 북돋우어 가면서 행사장까지 완주했다. 서로서로 완주를 축하하면서, 이어서 경품 추첨이 진행되고 우리는 점심식사를 마친 뒤 제주도 일주 자전거 순례에 들어갔다. 내가 선두에 서서 길을 인도하고 광진지부장을 비롯한 진행요원 6명이 보조를 맞추어 가면서 레이스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용두암에 가서 사진 촬영도 하고, 이호해수욕장을 지나 해안도로를 따라 달렸다. 따뜻한 날씨에 제주 서쪽바다의 풍경이 언제 보아도 감탄사를 자아내게 한다. 에머랄드빛 바다, 살랑거리는 해풍, 멀리 바라보이는 둥근 지평선, 가문동쪽에서 바라본 해안선 너머로 보이는 신제주는 한폭의 절경이다. 이쪽 해안선 도로는 굴곡이 많아 일부러 중간중간 많이 쉬어 갔다. 머무는 곳마다 자연이 만들어 놓은 경관은 사람들이 감탄하고 사진 찍기에 바쁘게 만들었다. 해안도로를 벗어나 애월에서 12번 국도로 들어섰다. 길을 따라 펼쳐진 사람 사는 모습들, 제주는 용암지대라 물을 저장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대부분 밭이고 논은 거의 볼 수가 없으며 강이라고 해봐야 장마 때만 물이 흐르고 평상시엔 물이 흐르지 않는 건천이다. 그래서 제주에는 폭포가 많은데 평상시엔 폭포가 아니고 비만 오면 생기는 폭포가 많은데 이름하여 제주도말로 엉또폭포라 한다. 그리고 지역마다 생산되는 농작물도 다르다. 북제주지역엔 당근, 마늘, 배추, 양배추, 남제주 지역엔 밀감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한라산 중턱엔 감자 고구마 등이 주로 생산된다. 특이하게도 한림지역엔 선인장이 많다. 한림지역에 들어서자 양쪽에 선인장 밭이 늘어서 있다. 선인장 열매는 백년초라하여 술을 담거나 차를 만들어 마시는데 색깔이 붉은 빛이며 관절염 등에 효험이 있다고 한다. 한림공원에 들릴 계획이었으나 밀레니엄 레이스 때문에 시간을 많이 지체한 관계로 그냥 지나기로 하고 5km쯤 더 달려 숙소로 정해진 한경면 판포리에 있는 스위스 콘도에 도착했다. 밀레니엄 레이스 20km를 포함 오늘 총 70km정도 자전거로 달렸다. 숙소에 여장을 풀고 아내와 바닷가를 거닐었다. 바다 위에 점점이 떠있는 고기잡이배에 하나둘 불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저녁을 먹고 내일 일정을 의논한 후 1월1일을 기념하기 위해 어른들끼리 회를 사다가 소주를 한잔할 계획을 세웠는데 가족이 함께 온 권영동씨가 회원들끼리 모았다면서 회값에 쓰라고 10만원을 가지고 오셨다. 모슬포항에 가서 살아있는 방어 7kg을 6만원에 사서 포만 떠 주겠다는 걸 사정해서 회를 만들어 포장해 가져오고 학생들을 위해 양념통닭 4마리를 사서 술과 양념은 슈퍼에서 구입해 푸짐한 신년회를 했다. 회식이 끝난 뒤 밤 바닷가에 나왔다. 검은 바다 멀리에는 환하게 불 밝힌 고깃배가 점점이 떠 있고 귓전에 들려오는 파도소리는 마음을 참 편하게 해준다. 제주의 겨울 바다는 춥기 않아서 좋다. 모슬포항 주변 도매 횟집은 철 따라 나오는 회를 정말 싸게 판다. 앞으로는 제주에 오면 꼭 계속 애용하리라 마음먹으면서 이틀씩이나 아침 일찍 일어나 잠을 설쳤던 것을 보충하기 위해 내일은 9시에 기상하기로 하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1월 2일 아침 8시 30분에 눈을 떴다. 잠을 푹 잔 탓에 기분이 매우 상쾌하다. 샤워를 하고 9시에 아침을 먹은 후 짐을 정리하고 10시경에 스위스 콘도를 출발했다. 오늘 갈 길은 대정, 화순, 중문을 거쳐 서귀포까지다. 오늘은 광진지부장이 선두에 서고 나는 차량을 운전했다. 상쾌한 아침이다. 제주는 여름보다 겨울에 자전거 여행하기가 더 좋다. 제주의 겨울 날씨는 포근하여 T셔츠에 얇은 점퍼정도의 차림이면 자전거 타기에 불편함이 없기 때문에 여름에 장마 만나기 쉽고 땀 흘리며 타는 것보다 좋아 개인적으로 겨울을 더 선호한다. 오전에 주행하는 길은 언덕이 거의 없는 평탄 한 도로로 자전거 주행에 무리가 없다. 대정 좀 못 가서 비를 만났다. 오늘 비올 확률이 20%라고 하였는데 갑자기 내린 겨울비는 순간 일행들을 당황하게 만들었지만 계속 비를 맞고 추사적거지까지 주행하기로 했다. 10여분 동안 내린 비는 그쳤으나 추사적거지에 도착하니 비에 젖고 흙투성이가 된 일행의 모습은 말이 아니었다. 그래도 모두 즐거운 표정이다. 비에 젖었지만 겨울날씨가 별로 추운 편이 아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추사적거지를 돌아본 후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화순에 있는 화순장 식당에 정확히 12시 30분 약속시간에 도착했다. 춥다고 난로를 피워주시고 언제 가도 항상 푸짐하게 식사를 차례 주신다. 그리고 얼마든지 더 주는 밥과 반찬 특히 우리 일행은 제육볶음을 엄청나게 더 먹고 된장찌개 등을 곁들여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쉬면서 난로가에서 젖은 옷도 말리고 일부는 겉옷을 갈아입었다. 너무 고맙고 2000년 첫 만남이라 식사 값에 만원을 더 드렸다. 한사코 받지 않으시려 하더니 2000년 처음이니까 새뱃돈으로 생각하고 종업원들이랑 음료수라도 사 드시겠단다. 언제나 가족같이 대해주시는 사장님 내외가 정말 고맙고 장사하시는 분이라는 생각이 안 든다. 점심을 먹자말자 안덕계곡 옆을 지나는 긴 오르막이 나온다. 전체 자전거 코스 중 가장 힘든 코스이다. 오르막이 끝나면 내리막 없이 또 오르막이 나오곤 하기 때문에 모두들 힘들어하는 코스이다. 서로에게 파이팅을 외치며 열심히 올랐다. 비에 젖어 약간의 추위를 느낄 사이도 없이 땀은 나고 옷은 옷대로 마르고 있었다. 일행들이 힘들어하고 경빈이 역시 힘이 들어 내리려고 하는 것을 격려해가면서 끝까지 오르게 했다. 오르막 정상에서 모두 기다렸다가 뒤에 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일일이 보내주었다. 학생들에게는 여행의 목적보다 교육의 목적이 더 강하다. 이런 정도의 어려움은 무난히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 요즘 아이들에게 가장 부족한 것이 자신감과 인내심이다. 적어도 자전거에 내려서 걷는 일없이 제주도 한바퀴를 완주해야 의미가 있다. 아마 완주한다면 이번 여행이 평생에 있을 수 없는 여행이 되리라 믿는다. 오르막이 있으면 언젠가는 내리막도 있다. 중문관광단지가 가까워 오자 신나는 내리막이 내온다. 모두 야호를 외쳐가며 중문단지 안을 지나 지삿개 입구까지 한 달음에 내달렸다. 현재 지삿개 입구 쪽은 개발 공사로 정리가 되지 않아 비포장 오솔길이 나 있다. 언젠가 제주도 토박이 한 분에게 제주도에서 볼만 한 곳이 어디냐고 물어 봤더니 산굼부리와 지삿개 외에는 볼만한 곳이 없다고 단정적으로 말씀하셨다. 지삿개를 바라보면서 그 말에 공감을 느낀다. 용암과 파도에 의해서 만들어진 육각기둥 모양의 바위들과 오묘한 조각품으로 만들어진 병풍바위들, 거기에다 에머랄드빛 바다, 부서지는 파도, 보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감탄사를 자아내게 한다. 하지만 아직도 이곳은 관광버스들이 거의 잘 들리지 않는다. 사진도 찍고 현지에서 파는 해삼과 생소라로 소주도 한잔 했다. 우루루 모여 한잔씩 마신 소주였지만 소라껍질을 잔 삼아 마시는 소주는 꽤나 운치가 있었다. 지삿개를 나와 대포동에서 잠시 쉴 때 할머니 한 분이 큼지막한 밀감을 두 소쿠리나 가지고 나와 주신다. 당신도 객지에 자식과 손주들이 있다면서 우리 학생들이 무척 귀여워 보였나 보다. 할머니의 훈훈한 인심에 감사하며 달디단 밀감을 나누어 먹었다. 나는 밀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밀감이 워낙 맛있어 두 개나 먹었다. 문득 삼 년 전에 남원 근처 위미를 지나다가 중앙다방에 들러 커피를 한잔 한 적이 있다. 3명이 앉아 커피를 마셨는데 다방 주인이 밀감을 한 소쿠리 갖다주어 맛있게 먹은 기억이 난다. 정말 제주에는 인심이 후한 분들이 많다. 오후 5시 30분에 서귀포 신세계호텔에 도착했다. 저녁을 먹고 희망자들만 모아 노래방에 갔다. 테크노란 이름을 가진 노래방인데 이틀 전에 개업을 해서 아직도 벽에서는 석고 냄새가 난다. 그런데 노래방비가 무척 싸다. 한 곡에 500원인데 만원을 주면 25곡을 입력해 준다. 한시간에 17곡쯤 노래할 수 있는데 결국 한 시간에 만원이 안된다는 소리다. 그것도 대구에서는 2만원정도 하는 큰방을 두 개나 빌려서 어른 한방, 아이들 한방, 이렇게 두시간 정도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즐겁게 놀았다. 이렇게 또 하루를 마무리한다.
1월 3일 아침8시 30분에 기상 9시에 식사를 하고 10시에 출발했다. 이틀을 충분한 수면을 취했기 때문에 모두 컨디션이 좋다. 오늘 코스 또한 대부분 평지이고 해안선 도로가 많으며 경치가 좋을 뿐만 아니라 성산포까지 거리도 멀지 않기 때문에 편안하고 즐거운 자전거여행이 되는 구간이다. 오늘은 내가 선두에 섰다. 먼저 정방폭포부터 들렸다. 돈내코 샘을 발원지로 하고 있기 때문에 언제 찾아와도 물이 마르지 않고 시원하게 바다를 향해 떨어지는 정방폭포, 햇빛을 받아 물보라 속에 무지개가 선명히 어린다. 바다 쪽은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물결, 바다 위에 한가로이 떠 있는 배, 이 아름다움을 무어라 표현하리오. 모두들 폭포를 배경으로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생각보다 시간을 많이 지체한 후 남원에 있는 신영영화박물관을 향하여 출발했다. 영화인 신영균씨가 사비를 들여 만든 영화박물관으로 1999년에 개관 한 터라 내부관람은 이번이 처음이다. 영화의 역사, 영화 기자재의 전시,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기법들을 공부 할 수 있는 좋은 박물관으로 관람료가 좀 비싼 것이 아쉽기 하지만 한번씩은 들러 볼만한 곳이다. 이것저것 볼 것이 많아 박물관에서도 시간을 많이 지체했다. 오늘 거리가 멀지 않다고 천천히 출발했는데 남은 성산포까지의 일정이 좀 바빠질 것 같다. 남원에서 점심을 먹은 후 표선을 향해 출발했다. 세화2리에서 해안선 도로로 접어들었다. 이 해안선도로를 따라가면 표선에 있는 제주민속촌 앞으로 나온다. 도중에 바닷가에 용암 바위들이 많은 곳이 있는데 여기에서 쉬면서 돌탑을 쌓고 각자 새해 소원도 빌었다. 제주 민속촌에 도착하니 3시 30분이었다. 생각보다 시간이 지체되고 있었다. 4시 20분까지 다시 모이기로 하고 민속촌 관람을 했다. 이곳은 제주 전통초가와 특유의 풍습을 재현해 놓은 곳으로 옛사람들의 생활상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이었다. 민속촌은 상당히 넓어 관람하는데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되지만 지체시간이 많아 좀 빨리 돌아보고 4시 30분에 출발했다. 갑자기 날씨가 추워지고 바람이 많이 불기 때문이었다. 제주는 원래 바람이 많은 곳인 것은 알지만 그 동안 날씨가 참 좋았는데 4시가 넘어서자 기온이 떨어지면서 바람이 많이 부는 것이다. 성산포까지 20km정도 남았는데 혹시라도 학생들이 감기에 걸릴까봐 걱정되었다. 우리 팀의 속도로 봐선 1시간 30분 정도 걸려야 성산포에 도착할 것이다. 6시면 겨울 시간으로 늦은 시각이다. 추위도 이길 겸 일부러 속도를 좀 높였다. 신산리에서 해안선도로로 접어들었다. 광진지부장에게 무전연락해서 내가 차를 몰고 광진지부장이 선두를 맡았다. 충남식당에 전화해서 6시에 도착하겠노라고 알려 놓았지만 날씨가 추워지는 관계로 차량이 먼저 성산포에 도착해서 저녁식사를 준비 해 놓고 회원들이 도착하자마자 따뜻한 곳에서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식당에 가서 모든 조치를 취한 뒤 돌아와 다시 내가 선두를 맡았다. 6시15분에 성산항에 있는 충남식당에 도착했다. 추위 속 2시간 정도 힘든 여정이 끝났다. 서로 수고했다고 격려하면서 몸을 녹였다. 식당에선 해물탕과 고등어졸임을 차려주었는데 음식이 너무 맛있고 푸짐해서 모두 포식을 했다. 식사를 마친 뒤 속소인 민박집으로 이동했다. 새로 생긴 민박집인데 방도 넓고 깨끗할 뿐만 아니라 따뜻해 모두 좋아했다. 밤엔 충남식당 강현두 사장님이 우리가 미리 부탁해서 준비해 놓은 쥐치회 두 접시와 매운탕 한 냄비를 가지고 오셨다. 거기다 윤홍로회원 아드님이 어머니 위문차 서울에서 왔는데 가면서 또 히라스 회 두 접시를 주문해 주고 가서 이래저래 또 회 파티가 벌어졌다. 학생들은 다과를 먹으며 야간활동으로 캠프법정을 열고 있고 어른들은 이번 여행의 마지막 밤인지라 아쉬운지 밤늦게까지 웃고 떠들면서 놀았다.
1월 4일 아침 6시 기상, 샤워를 하고 6시20분에 모두 깨웠다. 7시까지 차량에 짐을 모두 실어 놓고 일출봉에 오르기 시작했다. 오늘 해 뜨는 시각이 7시 36분이라고 입구에 적혀 있다. 올라가는 시간은 20분 정도, 왠지 날씨가 쾌청해 어쩌면 일출을 제대로 볼 수 있을 것 같아 기대를 가지고 올랐다. 100여명정도가 일출을 기다리고 있었다. 7시 36분 정확하게 수평선 위로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아마 내가 가장 먼저 해를 본 것 같다. 「해다」 라고 주위사람들에게 이야기했다. 모두 태양을 주목했다. 태양은 수평선 위로 물안개 때문에 옅은 빛을 띄며 조금씩 조금씩 떠오르고 있었다. 상당히 여러번 일출봉에 오르고 다른 지역에서도 일출을 가끔씩 보긴 했지만 항상 구름이 방해꾼으로 등장해 이렇게 정시에 수평선 위로 태양이 떠오르는 것은 처음 본다. 2000년 처음 오른 일출봉에서 완전한 일출을 보게 된 것 또한 행운이 아니겠는가, 잠깐사이 태양은 완전히 떠오르고 특유의 강렬한 빛을 내며 온 세상을 비추기 시작했다. 사진을 몇 장 찍은 후 내려와 제주 특유의 칼치국으로 아침식사를 마치고 8시 30분에 성산포를 출발 제주공항까지의 여정에 올랐다. 오늘은 광진지부장이 선두에 서고, 내가 차량을 운전했다. 아름다운 종다리 지역 해안선 도로를 따라 1월 1일 일출을 본 지미봉 앞을 지나 모두 상쾌한 기분으로 자전거 페달을 밟고 있다. 어제 저녁 무렵 바람이 많이 불어 오늘 날씨를 걱정했는데 다행히 날씨가 좋고 바람이 없다. 걱정한 이유는 겨울철에는 북서풍이 많이 부는 편인데 일주코스 중 이번 구간이 바람을 안고 자전거를 타야만 하는 구간이기 때문이다. 문주란이 자생하는 난도 앞을 지났다. 문주란 꽃이 하얗게 피었을 때 모습이 흰토끼를 닮았다해서 일명 토끼섬이라고도 부른다. 세화해수욕장을 지나 제주공예단지 앞에서 휴식을 했다. 공예단지에서 이것저것 구경을 한 후 함덕까지 한달음에 달려갔다. 12시 30분 점심을 먹고 함덕해수욕장으로 내려갔다. 바다를 보고 모두 감탄사를 터트렸다. 왜냐하면 함덕해수욕장의 물빛은 열대지방의 바다를 연상케 할 정도로 아름답다. 궁금하신 분들은 직접 한번 가보시라. 아이들과 장난도 치고 모래밭에 자전거도 타고 사진도 찍고 놀며 휴식을 취하다가 2시에 제주를 향해 출발했다. 함덕 가까운 곳에 있는 항일운동기념관을 들렀다. 이곳은 제주에서 일어난 항일운동자료들을 모아놓은 곳이다. 조천을 지나 제주 삼사석지를 구경한 후 31일 일몰을 본 사라봉 옆을 지나고 시외버스 터미널을 지나 4시 목적지인 제주공설운동장에 도착했다. 탑동을 출발 200여km를 달려 제주도 일주를 무사히 끝낸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축하 인사를 하고 자전거를 반납한 후 경빈이를 비롯한 학생들은 이틀 더 제주 프로그램이 남아 맥심호텔로 가고 어른들은 제주공항으로가 제주도와 함께 6일간 생활하면서 정 들었던 것에 대한 아쉬움을 남긴 체 각자 목적지를 향해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저녁6시 하나 둘 불빛이 켜지고 어둠이 깔리는 제주를 뒤로한 체 비행기는 창공을 힘차게 솟아올랐다. 제주의 불빛은 서서히 멀어져만 간다. 5박6일의 시간들이 머리 속에 영화 필림처럼 돌아간다. 이번 제주기행은 참 알차고 의미있고 보람있었던 것 같다. 어느새 비행기는 대구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을 걸어나오면서 오랫만에 기행문을 써보리라 생각했다. 대구의 불빛, 내음이 정답게 내 가슴에 와 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