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가 내리고 있다. 바람이 세차게 부는지 눈앞 풍경이 찢어지는 것 같다. 그래도 기분은 상쾌하다. 지난밤엔 ‘쌀뜨물 연못에서 달구경’이란 글 한 편을 썼기 때문에 빚 갚은 날처럼 날아갈 듯 가뿐하다. 간밤 글은 가난한 선비가 마당에 구덩이를 파고 쌀 씻은 물을 부어놓고 연못인양 혼자서 달구경하는 풍류를 엮은 것이다. 이렇듯 풍류는 빈곤 속에서도 능히 누릴 수 있는 보석 같은 것이어서 나도 봄비 오는 아침에 그런 풍류를 즐기고 싶었다.
쌀뜨물 연못에서 출발한 나의 의식은 뭔가 신나는 놀이 감을 찾아다니다 문득 양철지붕의 빗소리를 기억해 냈다. 궁하면 통하는지 아니면 텔레파시가 강력한 전파를 날려 보낸 것인지 친구 S에게서 전화가 왔다. “팔공산 밑 옻닭 집에서 빗소리를 듣자”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와인도 한 병 준비했다”고 귀띔해 주었다.
옻닭 집 방에 들어가 행장을 푸니 와인은 99년도 캘리포니아 나파(Napa)계곡 포도로 빚은 ‘파 니엔떼’(Far Niente)였다. 다른 보따리엔 CD 플레이어와 대여섯 장의 CD가 들어 있었다. 붉은 와인에 빗소리를 타 마시는 것만으로도 비 오는 날의 오후가 충분히 행복할 수 있었는데 기대하지 않았던 음(音)의 선물은 덤이었다.
두 부부가 밥상에 둘러앉아 와인의 코르크 마개를 뽑아 올리니 ‘뽀옥’하는 예쁜 소리가 났다. 와인이 유리잔에 따라지는 소리조차 맑고 상큼했다.
이렇게 오붓하게 앉아 와인과 음악까지 즐기고 있으니 뒤통수가 당기는 듯 뭔가 송구스러웠다. 엊저녁에 술잔도 들지 않고 쌀뜨물 연못가에 앉아 달구경하던 그 선비를 이 자리에 초대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이 미안한 마음을 불러낸 것 같았다.
스피커에선 첼리스트 요요마의 ‘더 폴스’(The Falls)가 흘러나왔다. 우리 모두는 행복한 얼굴로 와인을 마시며 약간씩 몸을 흔들고 있었다. 스트라디바리우스의 활이 좌우로 움직일 때마다 첼로는 낮게 흐느끼다가 때론 울부짖었다. 열린 문으로 마구 밀고 들어오는 계곡의 물소리와 양철지붕의 빗소리가 한데 어울려 멋진 화음을 만들어 냈다. 이렇게 멋진 비 오는 날의 낭만. 우린 음악과 와인 속으로 서서히 빠져 들어가고 있었다.
닭백숙이 들어오고 뉴 에이지 음악을 이끌고 있는 야니(Yanni)의 곡으로 이어졌다. 빗소리에 맞춰 ‘더 레인 머스트 폴’(The Rain Must Fall)을 들으며 우린 닭다리 하나씩을 뜯고 있었다. 비가 왜 내려야 하는지를 마지막 부분의 바이올린이 너무 강하게 울어 제치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닭다리 뼈다귀를 활로 착각할 정도였다.
야니의 음악은 묘한 매력이 있었다. 음악에 취해 음식이 줄어들지 않았다. 이동원의 ‘귀천’으로 갈아 끼우자 분위기는 확 달라졌다. “하늘로 돌아가리라,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이 노래가 끝나자 친구가 옆자리 부인에게 말했다.
“여보, 오래 전부터 이 말이 하고 싶었소. 오늘 ‘귀천’을 듣고 보니 말하지 않고는 못 배기겠소. 나의 장례식 음악은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를 틀어 줘요. 영화 대부(The God Father) 제3부의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오! 미오 바비노 까로’(O! Mio Babbino Caro) 그 곡 말이오.”
우리는 요요마와 야니의 음악을 들을 때까진 즐거웠고 살아 있다는 게 정말 행복했다. 그러나 세상 소풍 끝나는 날, 관 속에서 들을 음악 까지 선곡하고 나니 갑자기 여태까지의 기쁜 감정이 슬픔으로 바뀌었다. 빈 술잔에 남은 와인을 따르고 식어버린 열정 같은 닭고기를 씹고 앉았으니 마치 장례식장의 조문객들 틈에 끼어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를 조곡으로 듣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는 조금은 우울했고 약간씩 슬퍼지기 시작했다.
이날 옻닭 집 작은 음악회는 라스트 신이 정말 기억 속에 오래 남아 있는 슬픈 영화처럼 그렇게 끝이 났다. ‘오! 미오 바비노 까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