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먼지와 혼돈의 도시 카이로
1월 13일 밤, 허겁지겁 인천공항으로 떠났다. 전날까지 밀린 원고 때문에 이집트에 관한 공부는커녕, 혈압까지 많이 오른 탓에 약을 먹고 챙겨야만 했다.
그러나 공항에 들어서자마자 씻은 듯이 두통은 사라지고, 생기가 되살아났다. 역시 난 여행 체질이야.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앞에서 아주 예쁜 아랍 아이가 나를 보고 생긋 웃는다. 나도 미소를 보내며 인사를 나누고, 어쩌다 보니 아이 엄마(마이사)와 대화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들은 한국 주재 이집트 대사관 가족이었으며, 한국에서 약 3년간 살다가 이집트로 돌아가는 길이란다. 내가 마지막 날 알렉산드리아를 간다니 마이사는 퍽 반가워하며 자기 집이 알렉산드리아라며 꼭 놀러오란다. 그리고 그녀는 비행기 안에서도 내 좌석까지 찾아와 언제 오려는지 전화로 미리 꼭 알려달란다. 혼자만의 여행인지라 은근히 걱정이 되었는데 마음이 놓인다. 와아, 이런 행운이!
두바이를 경유해서 카이로까지 대한항공 비행기는 꼬박 16시간(두바이에서 1시간 30분가량 쉬었음) 가까이 날았다. 내 생전 그렇게 오랫동안 비행기를 타 보지 않은지라 어깨가 쑤셨다. 잠이라도 오면 좋으련만...... .
카이로 공항에서 입국 수속을 마치고 나오니 근사하게 생긴 Egyptian 미남이 내 이름이 쓰인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오, 반가워라. 그의 이름은 모하메드(아랍애들은 대부분 모하메드이다),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한다.
잠시 후 한국에서 온 또 다른 아가씨가 동행하게 되었는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녀는 대구에서 모 초등학교 교사였고, 나와 같은 코스의 여행을 한 후, 후르가다(홍해 쪽에 있는 도시로서 스노클링이나 다이빙을 할 수 있는 곳)에서 스쿠버다이빙을 할 거란다. 오오, 부러운 젊음!
공항에서 호텔에 도착하기까지의 풍경은 한 마디로 폭격 맞은 폐허처럼 보였다. 온통 회색빛, 뿌연 안개(먼지인지 모를), 허물어진 집들. 대체 도시가 왜 이런가? 저 허물어진 집에도 사람이 살까? 그 동안 내가 상상했던, 아라비안나이트에 자주 등장하는 환상의 카이로가 아니었다.
호텔에 도착하여 룸메이트(소영)와 인사를 나누고, 짐을 풀었다. 현지가이드와의 미팅 시간이 저녁 6시였기에 우리들-나, 현주(대구초등교사), 소영(대학원생)-은 일단 카이로로 나가보기로 했다. 지도와 가이드북을 보며 어디를 먼저 갈까 의논한 후, 일단 이슬람지구에 가서 블루모스크를 보고, 올드카이로 쪽으로 가보기로 했다.
참고로 카이로는 피라미드가 있는 올드카이로, 이슬람지구, 신시가지로 나뉜다.
호텔 앞에서 택시를 탔는데 블루모스크까지 만원(1이집션파운드=약 200원으로 지금부터 모든 금액은 우리 돈으로 환산하여 적겠음)을 달란다. 그는 또 세 사람이 각각 10달러를 주면 하루 종일 우리를 택시에 태워 구경을 시켜주겠다며 끈질기게 요구했다. 그러나 우리가 바라는 것은 그것이 아니었기에 단호하게 거절하고, 일단 만원을 주고 블루모스크까지 가기로 했다. 그러나 블루모스크는 너무 폐허가 되어 있었고, 나는 이미 이스탄불에서 멋진 블루모스크를 보았던지라 시큰둥했지만, 현주와 소영은 연신 환호성을 올렸다. 그런데 그곳에서 한 남자가 은근슬쩍 다가와 우리를 따라다니며 어쩌구 저쩌구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멋모르고 땡큐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싫다는 데도 자꾸 따라다니며 우리를 탑 꼭대기가 멋있다며 꼬드겼다. 캄캄한 나선형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와아, 그곳에서 올드카이로 전경이 보였다. 둥근 돔형의 가마와 뾰족한 첨탑들이 뿌연 먼지와 햇빛 속에서 은은히 빛나고 있었다. 그에게 1000원 정도의 팁을 주었지만, 작다며 더 달라고 해서 결국 각기 2000원 정도의 팁을 빼앗기고 말았다.
오, 카이로여! 바쿠시시(그들은 요구하지 않았는데 언제든지 따라붙어 작은 친절을 베풀고 엄지와 검지를 비비며 머니를 외치는데 그게 바로 바쿠시시다)를 요구하는 저들과의 싸움에서 이제부터 강해져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블루모스크를 나와 일단 점심을 먹기로 하고 길가에 음식점에 들어가 코샤리(서민들이 먹는 가장 일반적인 음식)를 400원주고 한 그릇씩 사먹었다. 나와 소영은 맛있게 먹었는데, 현주는 영 입에 대지 못한다.
음식점을 나와 시장으로 갔다. 아, 그런데 시장에는 외국인이라고는 우리 셋밖에 없는지라 사람들의 눈길이 영 예사롭지 않다, 속으로 떨렸지만, 주먹을 강하게 쥐고 걸어가는데 아이들은 따라다니며 머니를 외치고, 남자들은 흘금흘금, 여자들은 흘깃흘깃... .
늙은 나야 뭐 걱정이겠는가마는 예쁜 소영과 현주는 내 옆에 달라붙는다. 점심을 먹지 못한 현주가 사과를 하나 사자고 해서 얼마냐고 물었더니 통 말이 안 통한다. 그들이 써 보이는 숫자 역시 우리가 모르는 아라빅언어였다. 우여곡절 끝에 800원을 주고 제법 큰 사과와 석류 하나를 샀는데, 젊은 아가씨가 우리를 막 끌고 웬 노파 쪽으로 가더니 사진을 찍으란다. 또 바쿠시시를 요구하나 싶어 망설이다 그녀의 표정으로 보아 아닌 것 같아 사진을 찍었는데 현주의 볼펜을 장난스럽게 뺏고 영 주지 않는다. 현주는 볼펜이 하나뿐이라며 울상을 지었고, 할 수없이 소영의 싸구려 모나미 볼펜을 주고 되돌려 받았다.
연필이라도 많이 가져 올 걸. 나는 만날 ~걸, ~걸 하다가 만다. 준비성 없는 내가 후회스럽다.
시장을 나와 수도원과 세인트조지교회를 돌아보고 전철을 타고 다운타운으로 나왔다.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 우리도 모슬렘처럼 스카프를 쓰고 돌아다니자는데 의견을 모았다. 그러나 터무니없이 비싸게 부르는 바람에 우리는 마침 카이로 대학생들로 보이는 한 무리의 여자아이들을 만나 도움을 요청했다. 그들은 기꺼이 우리들과 동행을 해주었고, 가격 흥정도 도와주어 3000원씩 주고 스카프 한 개씩을 샀다. 사놓고 보니 질이 형편없었으나, 3000원 버린 셈치고 대학생아이들과 실컷 웃고 떠들었다. 그리고 사진 한 장 찰칵!
시장에서 구아바 주스도 사먹고, 이리 저리 놀다가 택시를 타고(택시기사와 흥정하여 5000원) 호텔로 돌아왔다.
저녁 6시 우리 그룹과 미팅, 유럽 아이들과 영국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서로 간단하게 인사는 나누었지만, 아직 누가 누군지 구분이 안 간다. 가이더는 2명으로 둘 다 샘이란다. 우린 키 큰 샘과 키 작은 샘으로 구분하기로 했다.
미팅 후에 곧 우리는 나일강 위에 야경을 자랑하며 떠 있는 크루즈로 이동하여 밸리댄스와 몇 가지 쇼를 보면서 우아하게 이집션 전통식으로 차려진 뷔페를 먹기로 했다. 식사비는 24000원! 점심은 400원짜리! 나는 왕과 노예의 식사를 하루에 다 체험해 버린 셈이었다.
와서 여러분도 체험해 보면 아시겠지만, 이집션 음식은 정말 우리 입맛에 맞는다. 이러다 아무래도 몇 kg은 불어가야 할 것 같다.
밸리댄서는 허리가 굵은 중년 여성이어서 섹시미는 덜했지만, 허리를 돌리는 기술은 일품이다. 그러나 ??쉬한 김향이 샘이 여기 와서 밸리댄스를 춘다면 모두 뒤로 넘어질껴.
웃고 떠들며 노는 사이 이집트에서의 첫날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첫댓글 먼저 사진을 주루룩 보고 있는데, 생동감이 느껴집니다. 크크~ 이집트를 생생하게 간접체험할 수있을 것 같은 느낌이 팍~~팍~~ => 다운타운 타흐르리 광장앞 사진은 마치 잘 찍은 엽서같고, 갠적으로 코샤리먹고계시는 샘님 사진 맘에 듬뿍듭니다~~^^
저도 가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