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의 이동권과 보행권
보행권? 이동권?
보행권이란? 보행자가 안전하고 쾌적하게 걸을 수 있는 권리이다.
오늘날 보행자의 권리는 자동차 위주의 도로체계로 인해 상당히 침해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에 각 지방 자치단체의 시민들은 보행권을 찾기 위한 노력들이 미약하나마 진행되고 있고, 몇몇 지역에서는 보행환경 개선과 보행권확보를 위한 조례 재정을 이루어 냈다. 조례의 이행여부를 지켜봐야겠지만 우리 지역의 사정으로는 부러워 할 만하다.
그렇다면 장애인의 경우는 어떠한가? 장애인의 경우라면 누가 생각해도 보행에 어려움이 있을거라는 정도는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10만명이 넘는 도내의 등록장애인들 중 절반이 3급 이상의 장애인임에도 우리는 왜 그들을 거리에서 볼 수가 없는가? 장애인에 대한 편견 이전에 거리에 나올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장애인 중 비장애인의 다리를 대신할 이동 수단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기에 장애인이 안전하고 쾌적하게 이동할 수 있는 보행권에 상응하는 권리를 이동권이라 한다.
장애인에게 있어서 교육권과 함께 이동권은 생존권에 가까운 중요한 권리이다. 학교에 가서 교육을 받고, 가정을 이루고, 직장생활로 수익을 얻어 정상적인 사회 활동을 하는 것이 비장애인에게는 너무나 평범한 일이지만 이들에게는 수많은 벽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장애인의 이동권은 그들만의 문제인가?
언뜻 생각하면 장애인의 이동권은 그들의 문제라고 외면할 수도 있다. 그러나, 80%가 넘는 장애인이 교통사고 등으로 인한 후천적장애인임을 차치하고라도, 비장애인 중에도 아동과 노약자, 임산부등의 보행약자가 우리의 거리를 나서는데 힘들어 한다는 것을 주지해야 할 것이다.
경남인구 300만 중에 65세 이상 노인이 30만, 마산시민 42만 중에 65세 이상 노인이 2만 5천명에 달한다. 그대로 적용하기엔 무리가 있지만, 2~3가구, 또는 3~4가구 중 한 가정에는 65세 노인이 산다고 보면 우리 주변에서도 고령화는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게 아닌가.
길을 걷는 노인들을 유심히 보면 유모차를 밀고 다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나이가 들면 어린애 같아진다’는 우스개 소리 때문이 아니다. 허리가 굽은 이들에게 유모차는 훌륭한 ‘보행보조기’인 셈이다.
마산시의 10세 미만 5만여명 어린이의 보행환경에 대한 우려는 더 심각하다. 자동차 위주의 도로여건에서 교통사고에 가장 쉽게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장애인 등 보행약자가 걸을 수 있는 길이라면 건강한 비장애인도 걸을 수 있다고 생각 할 수 있다. 따라서 보행환경 개선과 보행권의 확보를 위한 계획에 보행약자의 입장이 충분히 반영되어야 함은 말할 것도 없다.
우리주변의 이동권에 걸림돌이 되는 것들
보도환경
휠체어의 이동이 불편한 보도와 횡단보도 턱 낮춤이 매끄럽지 못한 것, 도로적채물이나 가로수등의 불합리한 배치로 휠체어 진행이 아예 불가능한 경우, 지나친 경사 등 휠체어를 이용해 인도를 다닌다는 것은 장애인 스스로의 힘으로는 여간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종종 아스팔트 차도를 휠체어가 질주하는 모습을 본 일이 있을 것이다. ‘위험 할 텐데 왜 저럴까? ’하는 의문은 휠체어를 타고 마산 시내를 한 시간만 돌아보면 금방 알 일이다. 중증장애인도 홀로 움직일 수 있는 전동휠체어의 보급이 늘어나고 있음에도 그에 따른 편의 시설설치의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아 무용지물인 셈이다. 더구나 전동휠체어의 경우 턱이 몇센티미터만 차이가 나거나 혹은 경사가 급해도 넘어지기 쉽다.
대중교통
초저상버스의 도입을 요구한지 몇 해만에 드디어 경남에도 내년에 30대의 저상버스가 보급된다고 한다. 10월 30일에 도청 앞에서 저상버스타기와 이동보장법률 입법을 위한 서명행사가 있었다. 저상버스는 시내버스와 같은 노선으로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함께 탈 수 있다. 하지만 집에서 버스정류장까지의 이동환경에 대한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이 또한 그림의 떡이다. 휠체어 택시의 경우 일정시간만 운행하고 그것도 숫자가 턱없이 부족하다.
고속철도차량에는 장애인석이 2곳뿐인데다가 전동 휠체어는 들어갈 수조차 없다고 한다.
배나 다른 기차의 경우는 말 할 것도 없다.
편의 시설
건물이나 보도 이외의 장소를 이동하는데 비장애인이 큰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면 굳이 보행권에 포함되는 것인지 모르지만 장애인의 경우 경사로와 리프트, 엘리베이터 등은 없어서는 안될 필수 시설이다. 말하자면 비장애인의 ‘보도’와 같은 것이다.
지하철은 장애인들에게 유용한 교통시설이기도 하지만 사고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최근 여성장애인이 엘리베이터서 전동휠체어를 탄 채로 내리다가 선로에 추락하는 일이 있었다. 며칠 전에는 30세의 시각장애인이 점자 블럭을 찾다가 선로에 떨어져 사망한 일도 있었다. 이는 장애인의 특성을 고려하고 연구하는 세심한 배려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리프트의 경우 지하철직원들조차 조작법을 잘 모르는 경우도 있고, 300kg나 되는 전동 휠체어를 태우기에는 역부족이다. 이른바 숫자 채우기식의 전시행정에 따른 장애인 편의 시설은 장애인들에게 또 다시 상처를 주고 있다.
이동권과는 좀 다른 문제지만 장애인의 바깥 출입을 망설이게 하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가 ‘화장실’이다. 실제로 주변의 휠체어 장애인들 대부분은 식당 등 약속 장소를 정할 때 ‘장애인용 화장실’의 여부부터 물어본다. 심지어는 물 한모금 안마시고 나서는 일도 있다고 한다.
이동권의 확보를 위한 노력
잘 알려진 2001년 오이도역 장애인 추락사건 과 2002년 발산역 추락사망사건 등으로 장애인들의 이동권에 대한 요구는 거세지기 시작했다. 노들야학 교장인 박경석 대표등을 주축으로 ‘이동권연대’ 가 구성되었고, 지하철타기, 버스타기 등으로 주목을 받으며 이동권의 중요성에 대해 알리고 정부를 상대로 구체적인 대책마련도 요구해왔다. 서울시에 저상버스의 도입이 결정되었고 경남에도 내년부터 저상버스가 다니게 된 것은 참으로 어렵게 얻어낸 성과중의 하나다.
올해 9월 1일에 경남에서도 ‘장애인, 노인, 임산부 등의 교통수단 이용 및 이동보장에 관한 법률’에 대한 공청회가 있었고, 최근까지 국회 입법을 위한 단식농성이 있었다.
그러나, 한참을 헤매던 국회가 허겁지겁 넘어가다보면 장애인과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가 다시 묻히지나 않을지 걱정이다.
마산의 이동권과 보행권은 어떻게 지킬 것인가?
마산은 산허리에 자리 잡은 해안도시라 경사가 심하고 언덕길이 많다. 게다가 자연발생적인 도시라 골목길과 소방도로 등의 정비가 부족하고 도로도 좁은 실정이다. 따라서, 인도가 턱없이 부족하고 있어도 그 폭이 좁거나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도로의 개설과 정비에는 상당한 경비가 든다. 따라서 한꺼번에 많은 것을 이룰 수는 없지만
장기적인 계획을 수립하고 잘 보완해간다면 누구나 쾌적한 거리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부족하지만 나름대로의 대안을 몇 자 적어본다.
첫째, 장애인의 이동권을 포함한 보행권 조례재정
조례의 재정은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계획과 개선의 틀이 될 것이다.
둘째, 보행권 관련 계획 및 심의 기구를 구성하여 도로의 신설, 보수와 기존도로의
개선등에 보행약자를 포함한 시민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여 합리적인 보행환경을 만들고 효율적인 예산관리로 연말마다 이뤄지는 예산낭비를 막는 효과도 기대 할 수 있다.
(휠체어 및 유모차 이동에 따른 보도 시스템연구, 횡단보도의 증설, 4차선 이상 지하보도 엘리베이터 설치, 자전거도로의 확보 등 도로의 계획단계에서의 충분한 의견수렴은 합리적인 도로의 개설과 함께 예산낭비도 막을 수 있다.)
셋째, 공영주차장의 충분한 확보, 지역실정에 맞는 차량운행과 주차 등에 관한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운전자와 보행자의 합리적인 공존을 도모한다.
(마을 단위 주차장 확보, 차량의 외곽도로 활용, 중심가를 차 없는 거리로 만드는 대신 셔틀버스 등 대안 교통수단운행 등)
그 외에도 다양한 의견들을 수렴하고 연구하고, 실제로 반영하는 노력들이 계속되어야만 조금이나마 보행환경의 개선이 이루어질 것이다. 흐릿해져 다 지워져 가는 횡단보도처럼 작은 것부터 관심을 가져보자 언젠가는 그런 관심들이 모여서 큰 힘을 발휘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