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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말씀]] 2002년 봄. 첫 자전거 여행으로 살고 있는 칭다오에서 출발하여, 쌍하이 난징, 지난, 티엔진, 베이징까지의 2,397km는 대부분이 "끝 없이 펼쳐지는 평원의 기행"이었고, 그 해 가을 두 번째 기행은 란저우의 징닝에서 출발하여 씨안, 쩡저우, 타이안을 거쳐 칭다오까지의 1,950 km는 "황토 고원"과 고대 "중국 문화가 피어난 중원의 기행"으로 기억된다.
이듬해(2003년) 봄. 세 번째로 중국 친구들과 비행기를 타고, 고국에 들어가 대구에서 출발하여 허리가 동강난 조국의 산하를 한 바퀴돌아 대구까지는 2,008km로 "고국 삼천리 금수강산으로의 기행"이었으며, 네 번째, 꿈의 실크로드[Silk road, 絲綢之路]기행 1,916km는 "누구도 해 보지 않았을 것이라는 꿈같은 기대"와 "내가 처음일 것이라는 매우 우둔한 욕심"을 가지고 간 기행으로 씨닝을 출발 만년설을 이고 있는 치렌산을 넘어, 타클라 마칸[Takla Makan-塔克拉瑪乾] 사막과 고비[Gobi-戈壁]사막의 중간 지대 사막 1,600여 km 가로 지르는 "고원의 설산과 사막으로의 기행"이었다. - 탱이 왈 : 실크로드는? 사막의 오아시스라는 점[點=井,泉]을 연결하는 선[線-路]이다.
2005년 여름. 4개 국 9명으로 시작한 다섯 번째는 씨닝에서 라싸까지 1,944km이지만, 고산증으로 인하여 일부구간(798km)을 차를 타고 이동을 하였음으로 하여 1,269km를 탔는데, 해발 5,231m 탕구라 고개를 넘어 가는 "지구 꼭대기로의 기행"이었고, 6차 기행은 티벳의 라싸에서 출발. 해발 5천 M가 넘는 써지라와 똥따 고개를 포함 저마다 특색이 있는 12 고개를 넘으면서 리쟝을 들려 따리까지 2006km로 "티벳 오지로의 기행(차마고도 기행)"으로 이름 지었다.
+++ 티벳의 라싸에서 윈난의 따리까지 6차 기행 중에... +++
2006년 봄. 일곱 번 째 기행은 썅하이에서 홍콩까지 중국 동해 연안을 따라 달리다가 같이 간 길벗 로인[老尹]에게 큰 일이 생겨 항저우에서 중단되고 미완성으로 남겨 두었으며.... 지난 해 초겨울(2006년 시월 말)떠난 여덟 번째 기행은 삼국지 촉한의 주무대였던 쓰촨의 청두에서 출발, 하루에도 수십개의 고개를 넘으면서 총칭과 꾸이양, 중국의 3대 자연 풍경구 중 하나인 꾸이린을 거쳐 중국 대륙의 끝을 밟고 하이난으로 건너가 초 겨울임에도 수박을 따는 최남단 섬의 싼야까지 달린 "남국으로의 기행"이었다.
금년 초 떠났던 아홉 번 째 기행은 제 3국을 선택. 적은 경비로 많은 나라를 돌아 볼 수 있는 루트로 정하였다. 쭝궈의 난닝을 떠나 비엣남의 하노이와 싸이공을 들리고, 깜뿌치로 넘어가서 인류의 위대한 문화유산 앙코르 왓을 둘러 보고, 아시안 게임의 메카 방콕까지로 "동남아 4개 국 기행"이 되었다.
이렇게 중국내는 물론... 낳고 자란 조국과 열대의 동남아까지 다녀왔지만 뭔가 차지 않아 만족을 하지 못하던 차에.... 동남아 기행을 마치고 돌아 오면서 가고자 했던 일본을 달려 보기로 하였는데... 일본은 우리에게 지난 3월부터 무비자로 건너 갈 수 있는 나라가 됐지만, 중국 친구들은 그렇지 못함을 핑계로 홀가분하게 혼자 감으로 자유(?)를 만끽하고 싶기도 하였다.
즉, 그 동안에는 올림픽 맞이 기행이라는 한계가 굴레가 되어 중국 친구들과 함께하느라. 사람을 찾고, 같이 떠나면 그들까지 챙겨야 하는 어려움이 불만스럽기까지 했으니, 핑계김에 혼자 가서 그동안 해보지 못하여 한[恨]이 된 "순수한 자전거 여행"을 해 보고자 하는 욕심도 있었는데....
천막은 물론이요. 이러저러한 이유로 출발이 한 달이상 늦어졌기에 얼어 죽지 않을까! 침낭도 하나 준비를 하고 버너와 함께 밥 해 먹을 솥(?)과 국 끊이는 냄비까지 완벽 준비를 하였는데... 티벳에 갈 때 같이 하였던 미국인 친구가 우리에게 기증(?)한 화로가 말썽이 되어 고국에서 사 가지고 간 매콤한 거시기라면을 모두 생으로 먹고 돌아 왔다. 또한 일본에서 지낸 24일 중에, 열일곱 밤을 공원, 식당의 마당. 편의점 주차장, 길가, 산간 계곡 등에서 천막을 치며 자유를 만끽하고 돌아 왔기에 자만에 빠지기도 하였지만, 중국 친구들에게는 "혼자 외국을 다녀온 대단한 한국인"이라는 찬사 까지도 받아 한 가지를 더 보탰다.
지난 겨울에 동남아 갔을 때도 여러 날 천막을 쳤었지만, 그 때는 여럿이었고, 더구나 마당이 있는 농가를 찾아 민박을 하는 형식이었는데, 이번에는 철저하게 혼자 였다. 탱이 낼모레면 한 주먹이 되는 나이인데.... 혼자 세상 밖으로 나가 고독과 싸우면서 잠을 자기는 처음있는 일이다. 선배들이 지나간 자욱에 비하면 새발의 피일지라도....
아뭏튼... 비슷한 연배의 어떤이는 국영방송의 특파원으로 일본에 파견 되어 몇 년을 살고는 "일본은 없다"라는 책으로 역어 대단한 반응을 보였는데.... 결론은 표절을 하였다나 어쨌다나...
탱이. 비록 자전거를 타고 스치듯이 지나왔을 뿐이지만 뭘 보고 어쨌다고 횡설수설 너저분하게 말이 그렇게 많으냐! 하는 이도 있을 것이나, 무지한 탱이가 작고 째진 눈구멍으로 들여다 본 "일본에는 없다"라는 제목을 뽑아 늘어 놓으려 한다.
2005년 여름 티벳을 다녀 온 여행기를 정리 할 때는 "유언"을 남기려고 했는데... 못하였다. 이번에는 중고등학교를 검정 고시로 통과하고 최고의 성적으로 대학에 입학하여 공부하느라 고생(?)이 많은 큰 딸과 굳굳하게 중국인 학교를 다니는 작은 딸에게 번갈아 가면서 편지를 띄우고 그것을 모아 일기를 정리하려고 했는데.... 결국 이래저래 못하였다.
내용은... 正 : 길이 아니면 가지를 말고 바르게 살자. - 위장 전입은 왜? 않되는지....등등 情 : 따스함을 가지고 살자. - 주의를 살펴 어렵고 힘들어 하는 친구들과 함께하자. 程 : 결과만 욕심부리지 말고 과정을 중시하자. - 지나 온 삶이 충실하여야 한다. 靜 : 여자로서의 고요함을 간직하자. - 현대 여성으로서 삶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晶 : 맑고 투명한 삶을 가꾸자. - 음흉하여 속을 알 수가 없는 자는 믿음이 없다. 貞 : 곧고 푸른 대나무의 바름을 새기자. - 속을 비웠기에 곧게 자라는 대나무에서 배우자. 等 等 ... 애비로서 딸에게 부탁 하는 말씀들 전하고 싶었다는...
늘 하는 말씀으로... 여행문이 아니라 기행일기라고 하지만... 짧은 시간에 매우 한정된 곳의 극히 일부분을 보고 제멋대로 끄적인 점에 더하여, 더 염려 스러운 것은 논리적이지 못한 구성으로 보는 분들을 혼란스럽게 함이 많고, 더구나 잘못 전해지는 정보로 인하여 다른 여행자분들께 폐해가 있지 않을까! 함이있다.
그나마, 가슴에 깊이 품어 오래도록 간직하여야 할 것을, 이렇게 기록을 남긴답시고 끄적이는 것이 오히려 알량한 자전거 여행을 망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 말로하라면 조금은... 아뭏튼 기행 기록을 남기고자 일기를 쓰는 일이 탱이에게 무척이나 부담 가는 힘든 일이다.
재미도 없고..., 맞춤법도 틀리고...,
다방면으로 모두 부족하지만, 앞으로도 "자전거 여행"은 계속 될 것이고, 그 때마다 어설픈 기행 기록도 이어 남기겠다고 스스로 다짐한다.앞으로도 자전거와 함께 "탱이의 행복한 기행"은 계속이어질 것이다.
[10-1] 일본을 밟다. 2007년 10월 18일. [목].
[[일본을 밟다.]]
+++ 10월 13일. 떠나기 전에 준비를 하고 자료 사진을 찍기 위하여... 칭다오 대표 광장의 "오월의 바람[五月的風] 탑" 앞에서 자세를 잡다. +++
+++ 10/15 혼자이기에 조용히 가자 했는데..., 평소 같이 자전거를 타는 친구(?)들이 나서 환송식을 해주니... +++
++++ 또 칭다오 TV도 취재를 나오고... 이날 찍은 화면이 저녁 뉴스 중(18시 10분 쯤)에 오륜 일기라는 코너의 신호(?) 화면이 되었다. +++
9시 45분에 5 4 광장 출발.
+++ 환송식이라야 잘 다녀 오라는 인사와 기념 사진을 찍는 것이 전부이지만, 몇몇 친구들은 자전거를 타고 공항까지 끌어 주었다. 점심은 2차 기행을 같이 했던 류팅의 이영철이네 꼬치 집에서 탱이가 냄.+++
푸짐한 점심을 서둘러 먹고, 14시 55분에 공항에 도착하였고, 비행기 시간이 급하여 104 사수 답게 단 10분만에 자전거 해체 함.
새로산 자전거 여행용 가방은 3개로 분리되는데, 16KG이 넘는 자전거 무게를 감안하여 20KG에 맞추어 수하물로 보내고, 남은 것은 목에 걸고 등에 지고 손에 들고 출국 심사를 완료. - 수하물로 붙이는 것은 각 항공사 공히 20KG 쯤. 미국 친구들 때문에 물도 가지고 탈 수가 없음.
자전거 탄거리는 36.04km. 시간은 2시간 20분.
15시 18분에 칭다오 류팅 공항을 뜸. 비행 고도 8,077m. 서울(인천)까지의 거리는 611km.
비행기에서 참으로 오랬만에 한글로 된 신문을 보니, 문국현 후보가 창조 한국당이라는 닻을 올렸다는 기사와 함께 "사람 중심 진짜 경제"에 대한 기사, 대 통합 신당이 경선이 남긴 교훈이라는 정치란 기사와 자이툰 부대의 파병이 연장 되었다는 기사. 그리고 핵심 기술은 국가 안보 차원에서 다루어야 한다는 기사가 눈 길을 끈다.
17시 29분. 인천 공항에 탱이가 탄 대한 항공 비행기 바퀴가 활주로에 닿음.
오랫만에.... 추석 전에 귀국을 하여 부모님 산소도 들러보고, 일가친척들도 찾아 뵙고, 친구들과 회포도 풀려 했지만... 목구멍이 뭐라 했던가! 바이어의 방문으로 무산되었다. 칭다오에서는 일본의 후쿠오까와 도쿄 등지로 항로가 있지만 늦게라고 들리자하여 서울로 가는 비행기표를 떼었다.
오라는 곳은 없어도 갈 곳은 많다고 하였던가! 뵐 분도 많고 기다리는 친구들도 많은데.... 첫 날은 조카딸과 심도 깊은 이야기를 나누느라고 다음날 3시가 돼서야 잠자리에 들고...
둘째 날도 꼭 보아야 할... 보고 싶은 사람들을 만났는데...... 서울의 서북쪽 끝에서 경기도의 서남쪽 끝으로 다시 서울 동쪽 끝으로... 그야말로 동분서주 전절을 타고 다니자니 24시간이 왜 그리도 짧은지.... 번개 불에 콩을 튀기듯이 내가 하고 싶은 말들만 일방적으로 전하기도 바뻤다. 끝에는 시골이라서 한 한급 밖에 없기에 6년 동안 늘 같은 반이었던 동창들을 만났는데... 한 세대 전에 코를 흘리고 머리에 이가 기어 다니던 궁색한 촌뜨기들이 가늘 세월에 얹혀 늙어 가는 모습을 보며 야! 너, 임마... 어쩌구.... 하며 옛 추억을 더듬으며 수다를 떨다보니.... 워낙 늦게 만나기도 하였지만 또 다음날 3시가 되어서야 근처의 여관을 찾아 들었다.
그 동안에는 어느 선거 때도 부부간의 속내를 밝히지 않았었는데... 시국이 하도 요상스러워 당연히 선거법 위반인지 알면서 이번 선거에 나온 후보 중에 한 분을 밝히고 그들의 의견도 들어 보았는데..... 벌써 지난 해 부터 전국을 돌며 선거 운동을 한 당사자는 아무 일도 없고 표현의 자유와 좋아하는 후보에 대한 토론도 마음 놓고 하지 못하는 차이를 알지 못하는 무지렁뱅이 탱이는... - 선거법이 참으로 개떡 같더라는...
아뭏튼... 살아 온 환경이 다르고, 보고 들은 이야기들이 있어 그 느낌이 다 다르니 의견은 당연 제각각... 하여간... 그 이야기는 무릇 지도자란 타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교과서적인 이야기로 마무리.... 그 친구들이 내 뜻을 충분히 알아 먹었을 라나....?
짧은 일정으로 4일을 어떻게 보냈는지 모를정도이다. 아쉬운대로 오랬동안 쌓인 앙금을 다소 덜어내기는 하였다.
흔들면 우는 자전거를 자물쇠 경보기. 말리는 것이 아니라 접히는 깔개를 사려고 애를 썼지만 구하지 못함. 인터넷으로 사야 한다는데.... 넷맹인 탱이가 어이하겠는가! 아침 일찍 의정부에서 나와 서둘러 공항으로 이동하면서 살 것도 많고 챙겨야 할 물건도 많고.... 혼자가는 초행길이라서 일찌감치 공항에 도착.
들어갈 때에 자전거가 문제가 되었다. 밀수품으로 그렇게 가져다가 파는 이들이 있어서 일까 세관 검사를 철저히 한다. 국내에서 그렇게 꾸미자면 돈을 좀 들여야 겠지만, 중국에서 비교적 싼 값으로 맞춘 것이다. 세관원들 포장을 들쳐보니... 탱이 자전거는 워낙에 장거리를 많이 뛰어 영광의 흔적들이 여기저기 엄청나니 볼 품이 없다. 떡 본 김에.... 몇 일 안에 다시 출국을 하여야 하니 맡겨 놓고 가자하니 돈을 내야 한다나 그렇게 하마고 하니... 자기들 끼리 수근수근하더니 3층으로 올라 가야 한단다. 에잉 거기 올라가 들고 헤매느니 가지고 간다고 어깨에 둘러 메고 입국을 하였었다.
자전거와 4개의 가방을 들고 헐레벌떡 서교동으로 가는 합승 택시를 싼 가격에 탔다. 그런데.... 잘못되어 속 주머니에 있는 세종대왕을 모셔내고도 모자라 모택동까지 꺼내서 해결하였는데.....
그동안 듣기만 했던 네비게이션인지하는 물건에 엄청 놀랐다. 가는 동네 이름을 찍으니 어디로 가는 길을 소상하게 일러 준다. 1차 선을 타라. 얼마 쯤 가서 어느방향으로 꺾어라. 공사중이니 조심해라.... 컴퓨터가 나를 부리고 있는 것이다.
나가 살면서 걱정이.... 돈을 얼마나 버느냐 못 버느냐하는 문제도 문제이지만, 아이들이 점차 쳐져가는 것은 아닌지... 그렇게 살다가 현지화 되어 들어 가면 어떻게 적응을 할까 하는 문제.... 점차 벌어져 가는 사람들과의 관계 등등
세상은 무서운 속도로 변해 가는데... 떨어진 나라에 살면서 아이들이 점차 알게 모르게 쳐져가는 문제는... 아이들을 외국에 유학을 시킨 것이다며 큰소리도 쳤지만.... 네비게이션 하나만으로도 외국생활이 오랜 탱이를 주눅들게 한다.
18시 13분 비행기에 앉음. 주위에 대부분이 한국인 여행객들로 낯선 나라로 가는 불안감은 없었지만, 낭랑하지만 알아 듣지 못하는 일본어 방송을 들으니 탱이 초라하게 쪼그라 든다.
+++ 10/18. 야간 비행기라서 다소 한적한 관계로 떨어져도 살아 남을 가능성이 높은 뒷자리를 달라고 하였더니, 이전과는 다르게 날개와 멀어질 수가 있었다. +++
소심한 탱이는 건물의 지하로 들어가면 반듯이 유사시에 튈 탈출구를 확인한다. 특히 야간업소에서는 철저하게.... 18시 30분 이미 어두워진 인천공항을 날아 오름. - 2분 빠른 탱이 시계로.
+++ 인천에서 칭다오도 한 시간 남짓이면 닿는데.... 후쿠오까도 시계의 긴 바늘이 채 한 바퀴를 돌기 전에 닿는다. +++
KE 781편. 뜬지 57분 만에 532km를 날아 19시 27분 후쿠오까 공항에 내림. 일본은 동쪽에 있지만 우리와 시간이 같아 벌써 어두운 것이고..... 중국은 한 시간 늦지만, 대개 8시 출근을 하므로 우리와 출근 시간이 같기에 우리같이 중국에서 일하는 이들은 시간 차 없이 일하여 좋다. - 중국은 동쪽과 서쪽이 4시간 차이가 나지만 비행기 기차 등은 베이징 기준 시를 쓴다.- 생활 시간은 별개로 함.
+++ 비행기에는 대부분이 일본으로 건너가는 단체 여행객들... 그래 그런가 한글 표지판이 반갑다. 외국인이라고 쓴 것이 아니라 "한국인"이라고 써 있기에 더욱 더,,, +++
+++ 외국에 살고, 제3국이 처음은 아니지만, 걱정하는 이에게 탱이도 외국 여행을 할 수가 있음을 고하다. - 1,000엔짜리 전화 카드를 사서 모두 썼고, 또 한 장을 사서 고이 간직하였지만 국제 전화가 되는 전화기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
+++ 여기도 한글! - 어디를 가도 우리 고장에 온 것을 환영한다고 하지만 누가 뭘 어떻게 맞이 한다는 것인지.... +++
돌아 오는 비행기 표가 없다고 하여 입국 심사에서 남는 불상사가 발생. 가지고 간 자전거 여행 기록을 보여주니 "상륙 허가"를 시켜 준다.
섬 나라 일본은 입국이 아니라 상륙이다 상륙!
+++ 일본 땅을 밟다. +++
자전거를 꾸미기 전에 안전한 공항 주차장 텐또(텐트의 일본식 발음)를 치려고 물으니 않된단다. 그렇다면.... 공항을 벗어 나기도 전. 한 쪽 귀퉁이 잔디밭에 텐트를 침.
일본하면 떠 오르는 것은.... 조선 시대 선조 25년, 1592년에 일어난 임진왜란. - 병자호란과 함께 탱이가 외우는 년도. 코와 귀무덤. 그리고 일제시대... 도쿠가와 이에야스라는 인물... 등등 가슴이 쓰린 단어들이 먼저 떠 오른다.
어려서 깍아 신던 게다짝과 스스럼 없이 부르던 가이셍과 뻰또라는 말. 지금도 일부의 사람들이 의식 없이 쓰는 말로 노가다와 와리바시 사라 등등...
2차 대전을 일으킨 전범국가로 독일과는 다르게 용서를 빌지 않은 그들이지만 어느 유명가수의 말대로 이제는 털어 버리고 우리의 힘을 길러야 할 것이다. 그들이 그런지 알고 상대하면 될 것이다. 기다려봐야 우리만 더 초라해 지는 것을...
[[일본에는 없다]] 까치가 없다. 까마귀 없는 곳이 없다. 날이 밝으면 바로 까마귀가 행동을 개시한다. 자명종 시계도 필요치 않다 까마귀가 까악까악대면 날이 밝은 것이다. 도심에도 특히나 공원에는 수 많은 까마귀가 진을 치고 산다. 농촌이나 산간 마을에도 다르지 않다. 자전거를 타는 24일 동안 까치는 한 마리도 보지를 못하였다.
그 까마귀는 엄청 크다. 우리가 보고 자란 까마귀의 3배는 됨직하다. 당연히 짖는 소리도 더 크다. 더구나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기에 가까이에서 볼 수가 있다. 여간 기분 나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내 이전의 이미지를 털어 버리기로 하였다. 만약에 그렇지 않았다면 자전거를 타지도 못하고 돌아 왔을 것이다. 일본에서 까마귀를 보고 그 소리를 듣는 것은 생활인 것이다.
+++ 목욕하는 까마귀 - 요요기 공원. +++
2007년 11월 28일 칭다오에서 탱이. 2009년 1월 4일 다듬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