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산행일지 : 경남 함양군 황석산(새로운 출발)
일시 : 2002년 9월 7일(토) 09:00-20:30
차량 : 승용차(문광덕) 이용, 88고속도이용-거창-용추계곡입구 매표소 500m 전 연촌마을까지 1시간 30분 소요
날씨 : 맑음 그리고 때때로 흐림
그간에 이미 여러 산을 등반하곤 하였지만 좋고 나쁨의 여러 기억들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들이 없이 그저 생각날 듯 말 듯한 추억의 단편으로만 그 많던 산이 지나쳐버렸음이 못내 아쉬웠던 차에 오늘부터 독한 마음으로 산행일지를 적어 보기로 마음먹고 그 첫 번째 산행을 시작하려한다.
오는 차속에서 셋이서 논의가 있었지만 매월 정기산행을 결의하고 그 모임을 구체화시켰다는 점에서 오늘을 제1회 창립등반이라 해도 그리 틀린 말이 아니다. 아뭏튼 첫 등반을 첫 일지로 옮기고 있으니 이래저래 의미가 있는 기록으로 남게 되길 간절히 소망해 본다.
세월이 흘러 뒷날에 되새김하면 아마 우리나라의 소중하고 아름다운 대부분 산들의 참모습들이 나의 값진 추억들과 함께 고스란히 옮겨져 있으리라 믿어본다.
어제부터 피부와 폐포에 와닿는 공기의 느낌이 분명 달라졌다. 아침저녁으로의 날씨는 물론 낮에도 비록 온도는 29-30도로 예보되었지만 비교적 상쾌한 햇살아래 논의 벼들은 그럭저럭 고개를 점차 무거워하고 있다.
11시경 황석산 직등로 아래의 연촌 마을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이곳에서부터 정상까지는 4.5km라는 이정표가 붙어있다. 그러나 연촌마을의 고향같은 정경들이 우리의 첫발걸음부터 붙들고 있었다.
더러는 벌써 터져 떨어지거나 속이 꽉찬 굵은 밤송이들, 빠알갛게 익어가는 그 유명한 거창 사과들, 큼지막한 늙은 호박들, 추자나무와 모과나무 그리고 돌담들은 한국농촌의 에센스를 모아놓은 듯 했다.
밤 따느라 시간을 잠시 지체하곤 이내 산길로 접어들었다.
등산로에는 거미줄이 얼굴에 와닿고 좁고 풀이 많은 길이 보여주듯 그리 많은 사람이 다닌 흔적은 없었다.
흔히 보이는 쓰레기들도 이곳에서는 찾기 어려울 정도로 깨끗한 산이다.
정상 3.4km를 앞둔 지점에서 '식수 준비하는 곳'이란 안내를 따라 계곡에서 잠시 물을 준비하며 쉬었다.
그곳에서 물로 닦아 껍질 채 먹는 사과 한 알의 맛이란.... 이내 힘든 산행이 시작되었다. 호흡도 가빠오고 땀은 비오 듯 하고 해서 결국은 나이 많은 내가 쉬어가기를 청해 두 번이나 쉬기를 거듭하고서야 발아래 풍경을 허락하는 능선에 닿았다.
여기까지는 다소 지루하고 힘든 길이었으나 이제부터는 발걸음이 한결 여유있다. 오늘 등반 중 유일한 다른 팀을 만난 것도 이즘에서의 일이었다.
점심먹을 장소를 찾느라 능선을 오르내리기를 몇 번하고 1시20분 경 황석산성과 정상이 보이는 곳에서 짐을 풀고 물을 끓인다. 흠뻑 젖은 셔츠의 느낌이 끈적하지도 않고 오히려 행복하기까지 했다.
금도현, 김생곤 두 친구는 생라면이 맛있다고 아작거리기를 쉬지않고, 끓어가는 물을 두고 각자의 라면취사에 대한 노하우를 자랑하듯 경쟁하고 있으나 조금 비켜 앉은 나는 생각의 단편들을 메모하느라, 주변의 모습을 살피느라 그들의 대화에 끼여들 여유가 없었다.
아래로는 군데군데 마을, 구비 많은 시골길, 그리고 한쪽으로는 대진고속도로가 있고 시장함과 함께 고요한 평화가 있다.
라면과 집에서 준비해 온 밥, 그리고 김치 이 세가지로 배를 불린 후 10여분의 공격으로 정상에 닿았다(14시 30분).
정상에 이르는 마지막 50m는 '우회하시오'라는 안내를 무시하고 암벽등반 하듯이 올라야 했다.
만약 비가 오거나 신발을 제대로 갖추지 않았다면 정상을 포기한 채 뒤로 하산하거나 거망산 쪽으로 왼쪽 길로 접어들어야 할 것이다.
황석산 정상 해발 1,190m. 마치 힘센 장사가 바윗돌들을 정성껏 포개놓은 것 같기도 하고 일부러 큰 칼로 잘라 얹어놓은 듯도 한 멋진 바위들도 많은 돌산, 그래 황석산 정상은 돌산이었다.
올라온 길을 정면으로 하고 왼쪽 10시 방향에는 해발 1,300m가 넘는 기백산과 금원산, 다시 그 왼쪽 8시 방향으로는 거망산이 있고 뒤쪽으로는 대진고속도로위를 소꿉자동차들이 느리게 진행하고 있다.
정상의 양옆으로는 신라 때 축조되었다고는 하나 거의 최근에 쌓은 것처럼 보이는 황석산성이 흐르고 그 위로는 깍아지른 듯한 능선들이 양옆으로 줄을 잇고 있다.
15시경 기념촬영 한 컷하고 정상 도전했던 길로 내려갈까도 생각했으나 아무래도 올라온 길이 위험스럽게 여겨져 좌측으로 붙어있는 시그널을 따라 능선 길로 접어들었다. 그
러나 아찔한 바위 위를, 바위 틈새들을 지난 후 다시 '우회하시오'라는 안내를 만났다. 다시금 갈등을 하다가 우리 일행은 이번에도 이 친절한 안내를 무시하는 교만으로 오른쪽 나뭇가지에 붙은 시그널을 따라 진행했으나 역시 밧줄과 절벽으로 이어지는 칼날능선-이 이름은 마치 날이 선 칼날과 같다는 뜻으로 아마 우리 일행이 즉석에서 지어 붙인 이름임-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비록 절경이었으나 바람이라도 세게 불면 인생의 마침표를 찍어야 할만한 능선들을 팔둑을 긁히면서, 금도현은 다리길이가 10cm 짧아 당황해 하기도 하며 30분 가량 걸려 무사히 지났다.
내려온 길을 뒤로하니 이쪽에서도 '우회하시오' 안내가 선명하게 또 말뚝을 박고 있다. 생각건대 이 칼날능선은 우회함이 좋을 듯 하다. 특히 일행 중 노약자나 여자(여자를 약하다고 절대 무시하는 뜻이 아님), 혹은 팀의 규모가 큰 경우, 신발 등 준비가 소홀한 경우 등은 반드시 이 친절한 권고를 따라 우회할 것을 강력히 추천해야 내 양심이 편안할 것이다.
단지 산행이 몸에 익은 소수의 사려 깊은 일행이라면 도전해 볼 수도 있을 것 같지만 이 경우라도 비가 오거나 산이 젖어있는 경우는 정상을 포기하시고 반드시 우회하시라 생명은 하나이니까.
칼날능선을 뒤로 하고 10여분을 진행하면 사거리를 만난다. 이곳이 뫼재이다. 계속 직진하면 거망산을 지나 금원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길이지만 하루의 산행이라면 아쉽지만 여기서 우회전하여 탁현마을 길로 접어들어야 한다.
탁현까지는 여기서 4.6km. 하산 길은 평이하다. 30여분 하산하여 물로 입을 적시고 금집사가 평생 처음이라는 다래를 주워먹고 따먹기도 하면서 다시 한시간을 내려오면 밤 농장을 지나 20여가구가 살고있는 탁현 마을로 접어든다.
잘 익은 사과밭 길에서 과수댁 아주머니가 건네주는 낫으로 자른 사과 맛은 일품이었다. 얼마 전(8월 31일) 전국을 강타하여 200여명의 인명과 3조에 이르는 막대한 재산피해와 함께 곳곳의 고속도로, 철도, 국도의 단절은 물론 집과 논밭, 아예 전국토를 휩쓴 태풍, 사라호 이후 가장 큰 피해를 입혔다는 태풍 '루사'의 잔해는 이곳 사과밭에 자갈돌들을 쏳아놓고 있었다.
벼를 묶고 있는 아주머니에게 큰 미안한 마음을 느끼며 인사만 건네고는 조금 지나자 뜻밖에 눈에 익은 내차가 앞에 있었다. 유동마을은 우리가 출발한 연촌마을의 코옆 마을이었다. 17시30분 출발선에 도착.
마을 입구 계곡에서 등산화와 양말을 벗고 탁족으로 피로를 날리고 안의로 들어와 물어서 원조갈비찜 식당(대중식당)에 들렀다. 고색창연한 집터가 맘에 쏙 들었음은 물론 청국장, 나물 등은 밑반찬과 갈비탕 국물은 깔끔했으나 정작 35,000원하는 갈비찜은 얼큰한 맛에 익숙한 나에게는 그리 반가운 메뉴가 되지는 못했다. 오는 길은 아무래도 다시 거창IC를 통해 대구로 오는 것이 가깝게 느껴졌다. 대구 성서 도착 20시3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