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靑茶다예의 유래
청차다예의 대표적인 조주(潮州)다예, 선두(仙頭)다예, 장주(장州)다예 등은 청나라 때 민간 중심으로 성행했던 행다법이다. 이때 민간인들은 다방사보(茶房四寶)인 맹신호(孟臣壺), 약침배(若琛杯), 옥서위(玉書위), 조선로(潮仙爐) 등 간편한 다기로 행다순서의 명칭인 유산완수(遊山玩水), 관공순성(關公巡城), 한신점병(韓信點兵) 등의 이름을 붙여 청차를 즐겼었는데 이러한 청차의 민간행다법이 청말 부터 중국 공산정권, 특히 문화대혁명때 자본주의의 퇴폐문화로 간주되어 탄압된 뒤로 중국 본토의 차문화는 점차 퇴색되어 일반인들의 기억속에 사라지게 되었다.
반면 자본주의의 대만정부는 청차문화를 상업화하여 세계 차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었는데 그들은 청차 뿐만 아니라 행다법, 다기 등도 세분화하고, 새로운 청차문화를 정립하여 대만다인들의 차 생활 속에 뿌리내리게 하였다.
1980년 후반 죽의 장막이라 불리던 공산중국이 문호를 개방한 이후, 대만 다인들이 속속 중국을 방문하게 되면서 이때 그들은 대만의 청차 뿐만 아니라 새로 고안된 다기(茶荷, 茶拂, 茶海 등)를 사용한 행다법도 함께 중국 다인들에게 선보이고 중국 각지에 전파하였는데 1990년 중반까지도 중국 차문화는 일천하기 짝이 없었고, 찻잔도 유리컵을 많이 사용하였다.
이 무렵 대만에서 이런 중국본토에 청차문화를 가장 열성적으로 전파한 사람은 천상다엽공사(天祥茶葉公司) 산하 차문화연구기관인 육우다예의 채양명, 왕서선 부부이며, 이들은 무아차회(無我茶會)를 만든 장본인었고, 중국 본토에 차회를 여러차례 개최를 하였고, 무엇보다 차문화 자체가 사라진 중국에서 차문화를 새롭게 태동시킨 주역이다.
다음에 소개되는 청차다예는 육우다예 채양명씨가 처음으로 고안하였고, 여러번 수정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행다법으로 현재 중국, 대만에서 행하는 정통 청차다예 중의 하나로 자리잡고 있다.